영화의 시작은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이 샤워실에 들어가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느끼는 기분은 말 그대로 가증스러운 기분이다. 유대인들이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소리에서는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주인공인 유대인 ‘사울’은 가스실에서 죽은 유대인의 시체를 처리하는 ‘존더코만도’의 일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가스실에서 처리된 한 무리의 유대인 중 아직 숨이 붙어 헐떡이던 소년을 사울이 발견한다, 그는 이 아이가 자신의 아들임을 직감한다. 그리고 이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아이를 나치 의사는 조금 살피더니 이내 입을 틀어막아 질식사 시킨다.
시간이 지나, 사울은 소년의 시체를 묻어줘야 한다며 같은 존더코만도의 일원인 랍비에게 기도를 부탁한다. 랍비는 명복은 빌어줄 수 있지만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기도는 해줄 수 없다고 말하며 사울의 부탁을 거절한다.
영화속에서 사울은 여러모로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다, 시도 때도 없이 장례 타령만 하는 사울이지만, 정작 그는 장례에 꼭 필요한 랍비 한 명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다. 화약을 숨겨서 가져오는 일을 맡지만 정작 그는 랍비를 찾다 화약을 잃는다.
가장 중요한 점은 죽은 아이가 진짜 사울의 아들인지는 관객이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영화 초반 사울은 동료들에게 이번 물량이 헝가리에서 왔냐고 묻는다. 사울 또한 시체들에게서 나온 버려진 신분증들로 그들이 헝가리에서 왔는지 단서를 찾아보지만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다. 그리고 영화 후반, 이 아이가 누구냐고 묻는 아브라함에게 사울은 자신의 아들이라 말하지만 아브라함은 "넌 아들이 없잖아?"라고 되물으며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으라고 한다. 이런 부분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마치 은폐하려는 듯이 이 아이가 사울의 아들이 맞는지 의문점을 던진다.
만약 이 아이가 사울의 아들이 아니라면, 사울은 대체 왜 장례에 집착하는 것일까? 어찌 보면 사울은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외면한 이들의 죽음에 대해 약간이나마 속죄를 하고자, 아이의 장례를 치루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나는 권한이 거의 없는 '배달부'에 불과했다.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크건 작건 '아돌프 히틀러'나 그 외 어떤 상급자의 지시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고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부정했다, 그저 상급자의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라면서. 사울도 비슷했다, 심지어 그는 그곳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명령을 수행해야만 연명할 수 있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그는 시체를 숨기고 장례를 준비하는 등, 다분히 위험한 일을 한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나름의 속죄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 아이가 자신의 아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가스실로 밀어 넣은 누군가의 아이를 위해 장례를 치름으로써 그 누군가에게 약간이나마 속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다운폴>은 히틀러의 생애 마지막 12일, 나치 제3제국이 몰락하기 전의 마지막 날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극 초반 소련이 베를린을 침공해 히틀러의 군대는 완전히 파괴되고, 권력에 눈이 멀어 히틀러의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공군 원수 헤르만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부상병들로 가득 찬 벙커에서 히틀러는 여전히 병사들에게 의미 없는 공격을 하도록 강요했다. 일부 참모들이 진실을 말해도 그는 모든 실패의 책임을 참모들에게 돌리며 거친 욕설만을 뱉었다.
결국 베를린 시내에도 소련군의 폭격이 시작되고, 10대 소년의 손에서 폭탄이 던져지고, 무장 경찰과 민간인이 전쟁에 반대하는 일반인을 가로등에 매달고, 군사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일반인이 강제로 전투에 투입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히틀러와 그의 정부인 에바도 벙커 아래로 피신했습니다. 에바는 자신이 히틀러와 함께 묻히게 될 것을 알았지만 후회하지 않았고, 히틀러와 에바는 벙커 아래에서 권총으로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히틀러의 충실한 추종자였던 괴벨스는 자신의 가족 모두가 총통과 함께 묻힐 것이라고 결심했습니다. 총 7명의 자녀를 둔 괴벨스와 그의 아내는 아이들이 제국이 없는 세상에서 자라게 할 수 없다고 결심하고 히틀러와 에바가 자살한 후 자녀들과 함께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 영화는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사회 전체가 광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히틀러 정권 하의 비극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인물의 묘사에 있습니다, 이 영화 이전에 히틀러를 묘사한 모든 영화는 그의 광기와 뛰어난 웅변능력만을 묘사했지만, 이 영화에서 히틀러는 과묵하고 망상적이며, 동시에 매우 인간적인 평범한 인간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물론 이 영화 역시 히틀러를 미화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강조된 것은 궁지에 몰린 인간으로서의 히틀러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히틀러는 교양 있고 존경받는 지도자였으며 항상 조용히 일을 처리했습니다. 그는 타이피스트가 오타를 내거나 다른 잘못을 해도 항상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히틀러가 자살하기 전까지 수많은 인물들이, 심지어 몇몇은 그가 죽은 뒤에도 히틀러를 존경했습니다. 이 영화는 히틀러 또한 인간임을 강조합니다, 상황이 안 풀리면 격노하고, 애완견이 죽는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하고, 실수를 해도 이해해주며 꽃이 시들기 때문에 사무실에 꽃을 두지 못하게 했고, 죽은 것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화는 히틀러가 그러한 지극히 평범한 인간임을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