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마음을 추구하자
철학에서 쓰는 용어 중에 ‘tabula rasa(타불라 라사)’란 용어가 있다. 잡념이 없는 순수한 마음을 일컫는다. 세상의 욕심과 야심, 물욕과 명예욕 등에 물들지 않은 순진무구한 마음이다. 심리학에서는 이 용어를 ‘백지상태, 순백의 마음’의 의미로 사용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산 위에서 가르치신 교훈(山上垂訓)’ 중의 첫 머리에 이르기를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가난하다는 말은 바로 ‘tabula rasa(타불라 라사)’를 일컫는다. 이런저런 세상의 탐심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마음, 글자가 적혀 있지 않은 백지 같은 마음이다. 그런데 복잡한 세상살이에서 나이 들어가면서 어찌 ‘tabula rasa(타불라 라사)’와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가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말한 ‘가난한 마음’은 처음부터 오염되지 않고, 얼룩지지 않은 마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얼룩지고 상처 받은 마음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나와서 다 쏟아버리고 비워진 마음을 일컫는다. 마치 쓰레기통 같이 온갖 잡동사니로 채워진 마음을 쓰레기통을 비우듯이 다 쏟아놓고 깨끗하여진 마음, 텅 빈 마음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백강 이경여 선생이 이렇게 비워짐으로 밝아진 마음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 바가 있어 주목된다.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루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이른바 대근본(大根本)이라한 것이 이것입니다. 함양하는 방도도 불씨(佛氏)처럼 면벽(面壁)하거나 도가(道家)처럼 청정(淸淨)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미리 기필(期必)하지 말고 잊지도 말아 보존해 마지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이 그 속에 거두어져 있어 북돋는 것이 깊고 두터우며 이(理)가 밝고 의(義)가 정(精)하여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기는 것이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백강 이경여 선생, 효종 4년(1653년) 7월2일 상차문(上箚文)에서>.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기쁨을 누리는 방도는 거짓되기 쉬운 자아를 내려놓는 길로 텅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을 추구하는 길이라 생각된다. 평소에 비고 밝은 한조각 마음을 추구하며 그 비움의 공간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Holy Spirit)으로 채워 나가야하는 것이다.
하늘로 부터 임하는 참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기술이 있으니 이는 단순 명확한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건 그것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식하는 기술로서 내가 받은 것들을 언제든지 나의 거짓되기 쉬운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려놓을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체득(體得)한 사람은 하나님의 평강과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우리의 평생에 걸친 인격수련과 신앙생활의 길은 바로 이 기술을 체득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가 있다.
인간은 질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존재로 누구나 약점이 있게 마련이다. 누구나 인간의 거짓된 마음으로 욕망을 추구하기 쉬운데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내 마음을 비우게 하신 후에,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가르침과 강점들을 찾아내서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시는 분이다.
내가 나의 거짓된 마음과 탐심(貪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나의 비워진 마음을 채우려고 노력하며 살아갈 때 약한 나는 어느새 강하고 능력 있게 변한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 23절). 나의 빈 마음에 채워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聖靈)이 내 생명의 근원이 되어 나로 하여금 삶의 보람과 기쁨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2025. 3. 2.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