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 이후...
5월 스페인에서 첫 선을 보인 후, 이번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한국에서 출간된 밀란 쿤데라(71)의 ‘향수’는 80년대 세계문단을 석권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의 속편이자 완결편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참을 수 없는…’이 체코의 68사태를 배경으로 정치적 격변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유하는 개인의 삶을 그렸다면, ‘향수’는 89년 동구권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망명객들이 느꼈던 향수와 귀환, 그리고 삶의 근원에 대한 그들의 존재론적 고뇌를 다루고 있다.
체코 망명객들이 타지에 나가 있었던 바로 그 20년의 간극을 쿤데라는 오디세이의 방랑과 귀향에 비유한다. 오디세이는 20년 동안 오직 향수 속에서 귀향만을 생각한다. 심지어는 아름다운 칼립소와 사랑을 나눌 때조차도 그는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는다. 그러나 막상 이타카로 돌아오자, 그는 자신의 삶의 정수가 사실은 지난 20년 동안의 방랑에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낯설고 나이든 페넬로피 보다는 젊고 다정한 칼립소와의 생활이 더 낭만적이었던 것이다.
체코에서 프랑스와 덴마크로 망명한 ‘향수’의 두 남녀 주인공 조제프와 이레나도 고국에 대한 향수에 시달리다가 공산주의가 붕괴하자 20년만에 고향으로 귀환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20년의 진공상태가 초래한 무관심과 단절뿐이다. 즉 망명객들은 향수만 있었지 지난 20년의 공백에 대한 기억이 없었고, 고향사람들은 망명객들에 대한 기억만 있었지 그들에 대한 향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향친지들은 조제프와 이레느의 망명생활에 대해 관심이 없고, 두 사람 역시 변해버린 고향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지 못한다. 향수와 환멸, 또는 그리움과 상실은 인간의 운명이자 삶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향수‘에서 쿤데라는 다시 한번 예속과 속박보다는 망명과 방랑을 긍정하는 문학의 본질을 확인해주고 있으며, 중력의 무거움을 벗어나는 존재의 가벼움을 찬양하고 있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두 쌍의 섹스 장면도 각각 고상함과 무거움을 벗어 던진 가벼움의 상징적 제스처로서 상처입은 주인공들을 심리적으로 치유한다. ‘향수’에서도 쿤데라는 정치적 무거움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하는 개인의 삶에 대한 고뇌와 사유를 유려한 문체로 풀어나가고 있다.
‘향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마지막에 해외로 망명한 주인공들이 그동안 살아 있다가 20년 후 다시 체코로 귀환했을 때의 문제점을 다룬 소설이다.
그것은 어쩌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쿤데라 자신의 망명생활에 대한 성찰인지도 모른다.
작품의 원제가 ‘무지(L’ignorance)’인 이유는, 어원상으로 향수는 “소식을 알지 못하는 고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역사는 수많은 망명객을 산출했다. 망명과 향수의 갈등 속에서 고뇌하는 지상의 모든 망명객들에게 쿤데라의 ’향수‘는 삶의 근원과 본질에 대한 값진 성찰을 제공해주는 좋은 문학작품으로 다가온다.
--- 동아일보 00/12/2 김성곤(문학평론가·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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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줄거리...상실과 망명, 아물지 않는 연인들의 "상처"
「향수」는「상실과 망명의 시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보헤미아 연인들의 슬픈 랩소디」이다.
1989년 동유럽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프라하도 자유를 맞는다. 냉전이 낳은 현대의 「유목민들」은 꿈에 그리던 귀향길에 오른다. 20년 전 파리로 망명한 이레나는 고향에 관한 두 가지의 꿈에 시달려 왔다. 하나는 가족과 조국을 등진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한 무리 여자들. 그들이 입혀주는 옷이 죄수복처럼 그녀를 조른다. 다른 하나는 시시때때로 눈앞에 펼쳐지는 고국의 아름다운 수풀. 두려움과 그리움의 상반된 감정 속에서 그녀는 귀향을 결심한다. 프라하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파리 공항. 그녀는 한 남자를 알아본다.
덴마크로 망명한 조제프는 아내의 유언에 따라 고향을 방문한다. 파리의 공항에서 자신을 아는 체 했던 여자는 기억에 없다. 고향에서 기다리는 것은 공산정권의 협력자였던 형의 가족. 이들에게 그는 여전히 가족을 버리고 떠난 도망자이다. 형에게서 돌려받은 일기장. 거기에는 사춘기 시절의 방황이 들어있다. 한 소녀. 사랑에 눈뜬 그는 그녀에 대해 맹목적인 질투심을 느꼈고, 자신을 두고 학교 친구들과 스키 캠핑을 가는 그녀를 저주했다.
밀라다는 이레나와 함께 포도주를 마신다. 그녀의 귀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밀라다뿐이다. 사람들은 이레나가 없던 세월에 자신들이 겪은 변화를 알아달라고 강요한다. 이레나에게서 조제프의 이름을 들은 그녀는 학창시절에 만났던 한 소년을 떠올린다.
이레나는 조제프에게 전화한다. 그들은 만나 사랑을 나눈다. 이레나는 조제프를 통해 마침내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레나는 조제프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가 조제프에 대해 갖고 있던 추억은 공유되지 못하고 그녀는 절망한다. 잠든 이레나를 두고 호텔을 빠져나오는 조제프. 그는 이레나의 얼굴에서 찾아헤매던 이미지를 본다. 그는 메모지에 이렇게 쓴다. 「내 누이여.」
--- 조선일보 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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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획일적 사유에 맞서는 실존 탐구"
○신작 "향수"의 작가 밀란 쿤데라 인터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널리 알려진 체코 출신의 프랑스 망명작가 밀란 쿤데라(71)가 오랜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소설「향수」 (L’Ignorance)가 민음사에서 출간됐다.「참을 수 없는…」의 후속 완결편으로 볼 수 있는 이 소설은 프랑스 현지에서도 발표되지 않은 미공개 신작으로, 「상실과 망명의 시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보헤미안 연인들의 슬픈 랩소디」이다. 이 책을 번역한 박성창 서울대 강사가 파리에서 쿤데라를 직접 만나 그의 문학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쿤데라는 85년이후 공식 인터뷰에 한번도 응한 적이 없다. 다음은 그 요약이며, 인터뷰 전문은 「세계의 문학」겨울호에 실릴 예정이다. (편집자)
1985년 이후 공식 인터뷰를 일체 거부해 온 밀란 쿤데라를 만나게 된 것은 최신작 「향수」의 역자로서 이번 작품과 그의 문학세계 전반에 대해 묻고 싶다는 제안에 응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나이로 일흔 두 살인 쿤데라는 나이보다 족히 10년은 젊어 보였다. 큰 키에, 주름살 없는 건강한 얼굴,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강한 체코어 억양이 섞인 프랑스어를 쓰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파리 7구에 위치한 그의 아파트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베란다에서 정원이 내다보이는 아파트의 벽에는 여러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흥미롭게도 그가 직접 그린 그림도 있었다.
-「향수」를 읽으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대응하는 후속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뿐만 아니라 이전작품들에서 부분적으로 다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기억과 망각의 주제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럴 「때」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나이 탓도 있는 것 같아요. 「향수」란 근본적으로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작동시키니까요. 이 주제가 20세기의 커다란 주제임은 틀림없습니다. 』
-이번 작품에서 유럽의 근현대사를 「망명」이라는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정리하고 있더군요. 프랑스 대혁명이 망명객이라는 유럽의 위대한 인물을 태어나게 했다면 80년대말 공산주의의 소멸은 이 인물을 역사의 무대로부터 퇴장시켰다는 지적 말입니다.
『망명의 문제를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제기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그 문제를 「실존적」 범주의 차원에서 다루고자 했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망명의 탄생과 소멸의 문제를 다루고 싶었지만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해석될까봐 미루어왔던 겁니다. 왜냐하면 제 작품에 대한 문학적인 해석보다는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해석이 지배적이었거든요. 소설가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문제틀을 벗어나는 실존적 문제틀의 천착입니다. 망명의 실존적 문제틀은 시간이란 무엇인가, 기억이란 무엇인가, 향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을 제기합니다.』
-이번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꿈」에 관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한국 독자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테레사의 꿈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묘사했던 「망명의 꿈」은 개인적 차원의 꿈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집단무의식에 관련된 것입니다. 이건 픽션으로 꾸며낸 것도 아니고 제 개인적인 환상의 소산도 아닙니다. 이 「망명의 꿈」은 저를 포함해서 모든 망명객들이 꾸었던 꿈이며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현상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번 작품은 53개의 장들로 구성되어 있고 가장 긴 장도 몇 페이지를 넘지 않습니다. 특별히 이런 식으로 작품을 구성하신 이유라도 있습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는 텍스트, 전체가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는 긴 텍스트를 싫어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소설을 「소비」하게 만들지요. 빨리,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읽고난 후에 남는 게 없습니다. 저는 이와는 반대로 제 소설을 이루는 각 장들을 독립적인 한편의 「시의 힘」으로 읽어 주었으면 합니다. 어느 장을 펼치더라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지향합니다. 』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위력이 정말 실감나는 세상입니다. 당신의 소설은 이에 어떻게 대응합니까?
『세계화와 자본주의가 불러일으키는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사고의 획일화입니다. 획일적인 사유에 소설이 맞설 수 있는 것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인물들의 유희를 통해 인간의 실존에 관한 물음을 던지고 이에 관해 성찰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소설가 자신의 사적 이야기를 털어놓는 장소가 아니라 삶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끝까지 천착하려는 문학적 성찰입니다. 빠른 속도의 현대문명 속에서 느림의 전략 또한 유의미한 저항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메일을 쓰지 않는 것도, 또는 사르트르가 죽을 때까지 카페에서 펜으로 집필했다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프라하에서 영화를 가르치기도 했지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감독인 밀로스 포먼으로 대표되는 체코의 영화운동을 이끌기도 하셨지요. 당신의 작품과 영화는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문학적 글쓰기와 영화적 글쓰기는 전혀 길이 다릅니다. 물론 제가 영화학교에서 시나리오를 가르친 건 사실이지만 그 이후의 제 삶은 영화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물론 펠리니의 영화는 매우 좋아합니다만 이는 극히 예외입니다. 소설은 길이와 속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소설가란 작품 뒤로 사라지기를 원하는 사람이라고 하셨지요.
『오늘날 소설가로 남기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서점에 가서 진열된 소설책들을 보세요. 표지에 작가들의 사진이 마치 배우의 사진처럼 실려있어요. 제 생각에는 소설가보다 위대한 것은 소설인 것 같습니다. 소설은 소설가의 편견까지도 극복하게 해준다고 말할 수 있어요. 』
-소설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래에 대해 예언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저는 소설이 아직 천착되지 않은 많은 형식적 가능성들을 열어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이 그것들을 지각할 수만 있다면 소설의 형식적인 가능성들은 무한하다고 확신합니다.』
--- 조선일보 00/12/2 파리=박성창(서울대 강사, 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