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나무] 도리성혜(桃李成蹊) ● 인품이 고상하면 부르지 않아도
후투티 ・ 2022. 7. 2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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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나무 아래 지름길이 생기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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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나무
자두는 경상도 토속말로 '애추' 혹은 '외추'라고 한다. 곳에 따라 '홍굴래'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두는 옛날 말로 '오얏'이다. 오얏의 한자는 李(이), 우리나라 성씨로는 두 번째 많은 이 씨와 글자가 같다.
요즘 자두 수확이 한창이다. 과일 시장에는 다양한 품종의 자두가 경쟁하듯 쏟아져 나온다. 김천, 경산, 의성, 군위 등 경상북도에서 생산된 자두는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생산 고장의 이름을 내걸고 상품화에 나서며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홍보를 위해 축제도 연다
자두는 대부분 모양이 둥글고 아랫부분이 약간 들어가 있으며 여름에 자주색으로 익는다. 시중에 있는 자두는 대부분 수확량이 많은 개량종이고 토종 '오얏'은 보기 어렵다.
『천자문』에는 '과진이내'(果珍李奈)라 하여 과일 중에는 오얏과 능금(사과)이 보배라고 했다. 그만큼 맛이 좋다는 뜻이다. 단맛에 길들여진 입맛으로는 자두나 사과보다 당도가 높은 과일도 많은 계절이라서 '과진이내'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여름 과일가게에 진열된 진한 보랏빛 자두를 보면 어릴 때 맛본 강한 신맛의 추억이 떠올라 지금도 눈이 찔끔 감길 지경이다. 우리가 시장에서 사먹는 자두는 신맛보다 단맛이 강해졌지만 어릴 적의 '신맛 트라우마'가 잊히지 않아서 입안에 군침이 가득 고인다. 요즈음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겠지만 먹거리가 귀한 시대의 선조들은 신맛의 오얏을 중요한 과일로 취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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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
자두 언제부터 재배했을까
조선시대 『훈몽자회』나 『동의보감』 등에 나오는 자두의 옛 이름은 오얏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시문집 『성소부부고』의 음식품평서 격인 「도문대작」에는 '자두' 혹은 '녹리'라고 했다. "자두[紫桃]는 삼척(三陟)과 울진(蔚珍)에서 많이 나는데 주먹만큼이나 크고 물기가 많다. 녹리(綠李·오얏)는 서울에서 많이 나는데 서교(西郊)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 자두와 오얏을 따로 적고 있어 품종이 다른 것은 아닌지 헷갈린다.
실학자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 「만학지」(晩學志)의 과일류[菓類]에 맨 처음을 보면 자두나무[李]의 종류와 열매의 맛, 색깔, 모양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오얏의 종류는 황리, 자리 등 몇 종류뿐인데 자리(紫李)는 속칭 자도(紫桃)라고 한다"고 서술돼 있어 녹리도 색깔이 푸른 오얏의 한 종류로 보인다.
중국이 원산인 오얏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1의 온조왕 3년 "10월에는 우레가 있고, 복사꽃과 오얏꽃이 피었다"라는 백제 건국 초기의 기록에 등장하는 만큼 한반도에 들어온 시기는 삼국시대 이전인 삼한시대로 추정된다.
구미시에 있는 도리사(桃李寺)는 신라에 불교와 향(香)를 전한 인물로 알려진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아도가 냉산을 걷다가 눈 속에서 활짝 핀 복사꽃과 오얏꽃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절을 세웠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사찰의 이름으로 자두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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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화상
오얏과 복숭아는 단짝
고전에 자두와 관련된 이야기를 보면 '도리'(桃李)라고 하여 대부분 복숭아와 단짝으로 나온다. 먼저 중국의 『시경』 「대아」(大雅)에는 솔선수범을 강조한 말인 "(다른 사람이) 나에게 복숭아를 던져주니 오얏으로 보답하네"(投我以桃 報之以李)라고 했다.
우리나라 시가(詩歌) 여러 구절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조선 후기 가인(歌人) 김수장의 시조 「창송은 어찌하여」에도 도리를 소나무의 절개와 빗대는 상대로 나온다.
창송(蒼松)은 어찌하여 백운(白雲)을 웃는 고야
도리(桃李)는 어떠하여 청애(淸靄)를 두리는고
아마도 사시불변하니 군자절(君子節)을 가졌다
푸른 소나무는 어찌하여 흰구름을 비웃는가
복사꽃과 오얏꽃은 어째서 맑은 아침 안개를 두렵게 여기는가
아마도 사시변하지 않으니 군자로서 절개를 가졌다는 뜻이다.
도리의 다른 뜻은 다른 사람을 천거한 어진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는 믿을 만한 자기 사람이 세상에 가득 찼다는 뜻으로 세상의 실세를 뜻한다. 중국 당나라 부활에 큰 공을 세운 적인걸(狄仁傑)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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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나무
그가 최고의 재판관인 대리승을 맡아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여 주위의 칭송이 자자할 때 측천무후가 상서랑(尙書郞) 자리에 인물을 추천하라고 하자 아들 광사를 내세웠다. 처음 혈육의 정을 앞세운 '아빠 찬스' 의혹을 샀지만 아들이 능력을 발휘하자 더 큰 믿음을 얻게 됐고 적인걸이 추천한 사람들이 조정 실권을 장악하게 됐다. 이에 사람들이 "천하의 인재들이 모두 공의 문하에 있다"(天下桃李 悉在公門矣·천하도리 실재공문의)라고 말했다고 한다.
흔히 쓰는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는 말은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이다. 의심받을 만한 행동이나 부정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행동은 아예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만큼 자두나무가 사람들 가까이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흔한 나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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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얏 문양과 대한제국 이화 뱃지
조선왕조와 오얏 문양
오얏꽃은 1897년 10월 12일 고종 황제에 의해 왕조의 성씨가 이(李)씨이므로 대한제국 황실의 문양(문장)으로 정해져 사용됐다.
옛사람들은 봄에는 하얀 오얏꽃을 감상하며 시를 읊고, 여름에는 자줏빛으로 익은 열매를 따먹는 과일나무로 곁에 두기를 좋아했다.
자두나무는 낙엽활엽수이자 교목이며 유실수이다. 과수원이 아니더라도 2000년대 이전에는 농촌 집 주변에도 흔하게 보였다. 나무껍질은 회흑색이고 세로로 갈라진다. 달걀 모양의 잎은 끝이 차츰 좁아지고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으며 어긋나게 줄기에 달린다.
근래 자두나무 중에서 이파리가 자주색인 자엽꽃자두를 공원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봄에 일찍 꽃이 피는 특성 덕에 정원수와 조경수로 심게 됐다. 열매는 7월에서 9월 중순까지 빨갛게 익는데 표면에 하얀 분이 있다. 날것으로 먹기도 하고 잼을 만들기도 한다.
자두나무나 자엽꽃자두나무의 꽃은 봄에 잎보다 먼저 하얗게 핀다.
너는 나와 성이 같구나
汝與我同姓(여여아동성)
봄을 맞아 좋은 꽃 피었는데
逢春發好花(봉춘발호화)
내 얼굴은 예전 같지 않아서
吾顔不似舊(오안불사구)
귀밑머리에 서리만 가득하다
反得鬢霜多(반득빈상다)
고려시대 문호 이규보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전집』 제14권에 실린 「이화」(李花·오얏꽃)라는 시다. 나이 든 이규보가 오얏꽃을 보며 자신의 머리가 백발로 변해가는 것을 한탄조로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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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꽃
'오얏꽃' 이야기에는 조선왕조와 얽힌 사연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신라 말 풍수설의 원조인 도선국사는 저서 『도선비기』(道詵秘記)에 500년 뒤 오얏, 즉 이씨 성을 가진 왕조가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에 풍수도참설이 유행해 '이씨가 한양에 도읍을 할 것이다'라는 소문이 돌자 고려 조정은 오얏나무가 무성한 서울 번동에 벌리사(伐李使)를 보내 오얏나무를 베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선 말기 대한제국은 오얏꽃을 왕실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당시 우정국이 발행했던 우표는 태극 문양과 함께 오얏꽃 문양이 들어간 '이화우표'(李花郵票)였다. 또 창덕궁 인정전의 용마루와 덕수궁(德壽宮) 석조전(石造殿)의 삼각형 박공, 군대 계급장에도 오얏꽃 문양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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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엽꽃자두나무의 열매
도리성혜(桃李成蹊)의 교훈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 아래에 저절로 지름길이 난다'(桃李不言 下自成蹊·도리불언 하자성혜)는 말은 바로 이광(李廣) 장군을 두고 한 말이다." 『사기』(史記) 열전에 나오는 중국 한(漢)나라 무제 때 '한비장군'(漢飛將軍) 이광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다. 이광은 전쟁에서 이겨 임금이 준 상을 부하들에게 나눠 주는 덕장이었다. 병사들이 무척 잘 따랐다. 무제의 외척인 위청의 명령에 따라 흉노와의 전투에 나가다 길을 잃어 싸움터에 늦게 도착한 이광은 문책을 받게 됐다. "대장군이 무리하게 진군을 명령했기 때문이라고 밝히자"는 부하들의 진언에도 명예를 중하게 여겨 그는 자결했다. --- 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도리성혜'(桃李成蹊)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 아래에는 지름길이 난다.' 라는 말에는 능력과 지혜, 인정이 있는 지도자에게는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의미다.
좋은 열매가 있는데 누군들 그 아래로 가려고 하지 않겠나. 인품이 고상하면 부르지 않아도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게 예나 지금이나
세상인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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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나무(plum tree, Prunus salicina)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교목으로 높이 10m에 달하며 나무껍질은 흑갈색으로 불규칙하게 갈라지는 장미과의 갈잎 큰키나무이다. 한반도 중부 지방에서 자라며, 자도(紫桃)나무, 오얏나무(李木)라고도 한다.
높이가 10미터에 달하고 작은가지는 적갈색으로 털이 없으며 광택이 있다. 잎은 어긋나며 광피침형 또는 도란형이고 양끝은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며, 흰꽃이 보통 3개씩 달린다. 꽃받침조각은 톱니가 약간 있고 꽃잎은 길이 1cm이다. 열매는 난상 원형 또는 구형이고 7월에 황색 또는 자적색으로 익으며, 과육은 연한 황색이다. 핵은 도란형이며 양끝이 약간 좁고 겉이 거칠다. 재배종은 열매의 길이가 7센티미터에 달하는 것도 있다. 한쪽에 홈이 있으며 7월에 황색 또는 자적색으로 익는다.
전 세계에 약 30종이 있는데, 그 중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것은 18종으로 유럽·아시아·북아메리카의 3대륙에 분포되어 있다.
자두나무는 병충해에 강하고 토양적응성이 좋아서 한반도 전역에서 재배가 가능하다.
현존하는 자두나무는 1920년 한말 이후부터 개량품종을 도입하여 재배하기 시작하였고, 일부는 1950년대에 미국에서 일본계 자두인 산타로사·윅슨(wickson)·포모사(formosa)·뷰티(beauty) 등을 도입하여 현재까지 재배하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
오얏열매가 거의 대부분 붉은 빛이어서 붉은(紫) 오얏(李)이라는 뜻의 자리(紫李)라고 불렀고 모양이 복숭아 하고 유사하게 생겨서 붉은(紫) 복숭아(桃)라는 의미의 자도(紫桃)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자도'가 '자두'가 되었다는 것이 현재 전해 내려오는 자두나무의 유래이다.
오얏나무(자두나무)에 얽혀있는 전설은 오얏나무 아래서 태어났다는 노자 탄생부터 시작하여 조선 건국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또한 선비의 정신으로 늘 회자되는 말로 '오얏나무 아래선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李下不整冠)'는 뜻으로 남에게 의심 받을 일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도 찾아 볼 수 있다.
고려시대 말에 쓰인 《서운관비기(書雲觀秘記)》라는 책에 “이씨가 한양에 도읍하리라”는 기록이 발견되었다는 설이 퍼지고 고려 충숙왕이 크게 걱정하여 한양에 남경부를 설치하고 이씨 성을 가진 사람으로 부윤을 삼아 삼각산 아래 오얏나무가 무성하면 오얏나무를 베기 위해 벌리사를 보냈다는데서 이곳을 “벌리(伐李)”라고 칭하였다는 얘기와 함께 후에 “번리(樊里)”가 되었다는 강북구 번동의 지명유래도 전해 오고 있다.
한국에는 약 1,500년 전경에 도입되었다. 줄기의 일년생가지는 적갈색이며 털이 없고 윤채가 있다.
잎은 어긋나기이며, 타원상 긴 달걀꼴이고, 급한 점첨두로, 예저이고, 길이와 폭은 각 5~10cm × 2~4cm이다.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 또는 이중거치가 있고, 잎자루 길이는 1~2cm이며 꿀샘은 2~5개가 있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대개 3개씩 달리며, 지름은 2~2.2cm로, 백색이며 작은 꽃대의 길이는 17~18mm이다. 꽃받침 열편은 톱니가 약간 있으며, 꽃잎은 5장이고 길이는 1cm이다.
열매는 핵과로 구형이고, 밑부분이 들어가며 지름 2.2cm(재배종은 보다크고)이고, 핵은 거꿀달걀형이며, 양 끝이 약간 좁고 겉이 거칠며, 황색 또는 자주색으로, 7월에 성숙한다. 벚나무 대목에 좋은 과일이 열리는 자두나무의 접수로 접목하거나, 벚나무가 없을 때는 복숭아 대목도 쓸 수 있다. 한국(전라북도 이북), 중국, 극동러시아에 분포.
관상 가치가 있으며 날것으로 먹기도 하고 잼이나 파이 등으로도 가공한다. 잎 뒷면에 털이 있고 열매가 타원형이며 벽흑색인 것을
서양자두(P.domestica)라고 한다. 한국에서 재배하는 자두나무는 대부분 유럽 종 자두로서 1920년대 이후 재배하였다.
[출처] [자두나무] 도리성혜(桃李成蹊) ● 인품이 고상하면 부르지 않아도|작성자 후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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