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케리 주연의 ‘트루만쇼’라는 영화가 있다.
트루만이라는 한 인간의 탄생부터 성인이 되었을 때 까지 그의 모든 일상 생활이 티비에 생중계 된다는 터무니 없는 영화이다. 영화속에서는 이 프로가 단연 시청률 1위이다. 이십 몇 년 동안… 만화 같은 영화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난 요즈음 이 카페를 운영하며 내가 트루만이 되어 버린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트루만과 내가 다른게 하나 있다면, 나의 경우에는 제작, 감독, 주연을 내가 모두 한다는 것 뿐이다.
사회심리적으로 볼때 현대인 들은 트루만과 같은 모습으로 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소위 ‘프라이버시’를 빙자하여 베일 (혹은 가면) 속에서 자기를 철저히 감춘 채 살아가고들 있다.
이 프라이버시(가면)가 제대로 활용될 때에는 그저 봐줄만 하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 보면 아무 쓸데 없는 프라이버시(가면,가식) 로 자기를 치장하며 사는 모습들이 너무 많다.
난 내가 철 들 때 쯤부터 이러한 사회 병리들에 대해 완강하게 거부하며 살아 왔다. 그러다 보니 내게는 별로 달갑지 않은 수식어 들이 꼬랑지 처럼 붙어 다니곤 했다. 그래도 그 중 제일 듣기 좋았던 말이 ‘마지막 휴머니스트’ 라는 말인데, 난 그 사람이 나의 뭘 보고 그런 말을 했나 하고 아직도 반문하며 산다.
내가 이제껏 살면서 나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 주었던 무수한 예술 장르 속에서 난 트루만과 같은 성격의 것 들을 좋아했다. 그들의 한결같은 주제는 ‘인간성 해방’ 이다. 어떠한 가식도 어떠한 가면의 울타리도 뛰어 넘어 우리의 삶 – 잘났건 못났건 - 그 자체를 보여 줌으로써 신께 결코 부끄럽지 않은 인간세계의 질적 향상을 꾀했던 것이다.
투루만처럼 자기의 삶을 공개하며 산 많은 선각자 들의 고뇌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고뇌하는 모습에 이입(移入) 되고 녹아드는 현상을 스스로 체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의 인생이 참된 드라마가 될 수 있다. 민중을 웃기고 울리는 비극이 여기서 나오고, 이러한 엄청난 파토스 (PATHOS)의 힘으로 우리 인간의 역사가 이나마 지탱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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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들은 노상 차를 마신다. 차를 마시는게 생활 그자체이다. 어떤 한국인이 중국에 와 차에 대해 해박한 지식으로 여러 설명을 한다. 그리고는 폼나게 – 배운 다도 실력으로 – 차를 마신다. 그것을 보는 중국인은 아무 생각도 없다. 멍청하게 구경만 할 뿐이다. 그 한국인이 차 마시는 것은 차가 아니라 폼잡는 것 (가면, 구경꾼) 이고, 중국인이 마시는 것은 생활 (트루만, 삶? 주인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몇년간 아침마다 조깅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친구가 찾아와 조깅의 좋은 점에 대해 조깅의 장단점에 대해 조깅의 요령에 대해 어떻게 하면 조깅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나에 대해 티비나 책에서 보고 배운 바를 열심히 설명한다. 이렇게 폼잡는 (가면의 틀어 갇힌) 친구에게 그 사람은 차마 자기의 생활 (이미 조깅이 자기 삶의 일부이며, 트루만과 같이 그냥 적나라하게 사는) 을 보여 줄 수가 없었다.
이렇듯 사실 그자체를, 인생의 끈적끈적한 모습을, 옆에서 구경만 하며 비켜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게 끈적거리는 인생을 부등켜 안고 혼자 고민하며 악으로 살아가는 트루만 같은 삐에로 들이 있다.
비켜가건, 멀리서 보고 감상을 하건, 멀리서 감상을 하다가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이 자기에게 손해라도 끼칠까봐 한 걸음 물러나건, 아니면 무대로 올라와 삐에로가 되어 보건,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수 밖에 없다.
쉬운 얘기를 하나 하자…
여러명의 친구 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친구가 아주 래디칼한 자기의 가치관 얘기를 신중하게 하고 있다. 그는 자기가 사는 얘기를 최소한 진솔하게 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 싸구려 가면에 자기의 삶을 꽁꽁 감춘 한 친구는, ‘그래 네 생각데로 하려면 이렇고 저러야 해…’ 하며 자기가 마치 학생의 얘기를 들으며 그것을 지도해 주는 선생 인양 한다. (이러한 현상을 이입의 반대어인 이탈이라 하며 코메디의 근원이 된지 모르겠다.) 나머지 친구 들은 노래나 하자며 분위기를 바꾼다.
트루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트루만이 되기 위해선 남들에게 뭔가 <<귀감이 되는 삶, 혹은 남보다 - 물질적으로나 사회신분적으로 -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잘 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 나는 몇 인물 들을 살펴보자.
우선 내가 좋아하는 시인 김수영…
그가 언제 자기 인생을 가식의 휴지에 싸서 보여 준 적이 있던가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그룹의 몇 가수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의 삶을 그대로 보이며 사는 많은 순박한 사람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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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 애인을 찾아 피지로 떠나는 트루만은 바다에서 엄청나게 큰 무대 장치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제작진 들은 모두 한숨만 쉰다.
그 후의 트루만…
영화는 끝났지만 내 안에 들어와 있는 트루만은 오늘도 모든 가면과 가면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부자유함, 인간성의 상실을 안타까와 한다. 안타까운게 아니라 차라리 거부한다.
실제와 무대의 갈림 길에선 트루만에게
가슴에 남아 있는 피지의 여인을 향한 사랑의 감정은 더욱
불타고 있었다........
누가 이 트루만을 비난할 것인가........
02/12/15/일
(*필자 주 :
영화 '트루만쇼'를 나 나름대로 다르게 해석해 보았다.
세간의 모든 작품 들은 원작자 손을 벗어나면 그 원작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독자 (혹은 관객)의 저마다의 판단에 의해 다시 해부되고 분석되며 비판되어 져야 한다. 이게 제대로된 문화감상법이라 생각한다. 문학비평에서는 이러한 접근법을 '독자비평 (REDER'S RESPONSE) 이라 한다.
하나의 비평에 목을 매달고 달달 외워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한국의 교육 현실이, 이러한 교육 환경에서 머리 터져라 공부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 안타까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