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산회 76차 산행기 (2003. 7.20):
행선지: 북한산 상장봉(543M) 능선
코스: 솔고개 –상장봉-우이령-육모정 고개- 마당바위-육모정고개 매표소-그린파크
날씨: 흐림-갬(오후)-소나기 (15:30)
참석자:10명( 김 상희, 김 승기, 김 원탁, 김 호경, 이 명인, 이 종원, 정 태성, 최 해관, 한 경록, 그리고 나 윤신한)
제1부. 상장능선
아무래도 여름산행은 아침 일찍 시작하는 편이 낫다. 그래서 아침 08:30에 불광동 서부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모이기로 했다. 오늘 가는 상장봉 능선은 이번이 4번째인데, 이 능선에 오를 때마다 날씨가 안 좋았기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중부지방에는 오후 늦게나 5-30 mm의 비가 예상된다고 하니 일단은 안심이다.
불광동 전철역을 빠져 나오니 08:20. 버스터미널 초입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비록 한달 만이지만 우리는 “왜 (대합실에) 들어가 있지 않고?” “응, 그 쪽에는 매연냄새가 나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다시 보는 즐거움을 나눈다.
지난 달 관악산에서 얘기가 있던 대로, 오늘은 박 세훈군의 송별산행을 하기로 한 날이다. 8시 반이 조금 넘어 인원을 점검한다. 10명이다. 그런데 정작 당연히 와야 할 세훈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짐 부치는 일에 차질이 생겨 등산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하산하여 자리를 같이 하기로 했다고 해관이가 알려준다.
08:45. 송추로 가는 34번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혼잡하지 않은 일요일 아침의 시내를 휘저으며 구파발 쪽으로 쾌속으로 달린다. 얼마 가지 않아 윤 한근이 조금 늦었다며 호경이에게 전화로 알려왔다. 솔고개로 직접 오라고 얘기하는 사이 버스는 등산객들로 복닥거리는 구파발에 닿는다 (08:55). 여기서 버스를 타도 되지만 그러면 서서 가야 한다. 오늘따라 이곳에서 정차하는 시간이 좀 긴 것 같다.
09:00 버스는 구파발을 떠난다. 창 밖의 풍경은 이제 푸르다 못해 검푸르다. 장마가 끝나가고 있으니 여름은 이제부터 한창이다.
09:20 솔고개에서 버스를 내렸다. 코스안내를 맡은 호경이를 선두로 우리는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은 그간 늘 이용해오던 등산로 입구 대신 오른쪽으로 산자락을 끼고 100 미터쯤 똑바로 나아간 다음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산으로 접어들었다. 숲속으로 난 길을 따라 다시 100 미터 정도 올라가니 원래의 등산로와 다시 합류한다. 여기서 일행은 호경이의 안내로 다시 한적한 길로 들어선다. 인적이 드문 탓이지 자주빛 꽃이 피기 시작하는 싸리나무가 길을 막고 옆으로 자라난 오리나무 가지가 발에 걸린다. 군데군데 톱으로 잘린 리기다 소나무 가지들이 자주 눈에 띈다. 추어탕에 넣는 산초가 막 열리기 시작하는 산초나무의 햇순이 배추속 같은 연두빛을 띄고 여기저기 올라온다..
09:40 폐타이어를 박아 만든 예비군 진지가 있는 곳에 올라 땀을 닦는다. 하늘엔 잿빛 구름이 엷게 덮여있어 해는 나지 않지만, 바람이 한 점도 없고 나무들까지 무성하니 이만저만 덥지가 않다. 5분쯤 있으려니 검은 등산복을 차려 입은 등산객 몇 명이 올라온다. 우리는 일어나 자리를 내어주고 길을 재촉한다. 아직 몸이 풀리지도 않았는데, 길은 벌써부터 급경사로 치달으니 입에서 단내가 나기 시작한다. 눈 앞의 흰 바위로 올라서니 시야가 탁 뜨인다. 우리가 두 번째로 숨을 고르는 자리이다. 완전히 깨끗하지는 않아도 제법 멀리까지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시원해진다. 얼마 안 있어 머리에 빨간 머플러를 모자처럼 감아 맨 한근이가 웃는 얼굴로 나타난다.
이제부터 상장봉까지는 백운대 밑의 깔닥고개 보다 더 가파른 오르막 길이다. 거기에 덥기까지 하니 땀도 힘도 모두 아래로 흘러 내린다. 이래서 여름산행이 힘들다. 나도 다리가 후들거려 몇 번이나 쉬어 숨을 골라야 했다. 그러나 오늘 선두를 맡은 호경이는 걸음이 가볍다.
10:15 상장봉 (해발 543미터)에 도착했다. 봉우리가 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그곳이 상장봉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시멘트로 만든 표석이 없다면 그곳이 봉우리인지 조차도 분명하지 않을 게다. 대개 솔고개에서 이곳까지 1시간정도 걸리는데 오늘은 5분 정도 빨리 도착했다. 그것이 바로 올라오는 동안 다른 때보다 더 힘들었던 까닭이라고 둘러대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뒤이어 후미의 일행이 도착하고 우리는 세 번째로 휴식을 갖는다.
10:25 땀이 걷히고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능선길이다. 몇 발자국 지나 뒤돌아 앉은 듯한 바위가 있는 지점에서 하늘이 열린다. 왼쪽의 영봉으로부터 오른쪽으로는 인수봉과 백운대로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눈 앞에 펼쳐진다. 그러나 오늘은 엷은 모시로 만든 천에 가린 제막식 직전의 동상처럼 희미하게 보인다. 안개가 걷히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 내린 겨울날 이 자리에 서서 온 산을 뒤덮은 흰 눈 사이사이로 흑백 점묘화처럼 나무줄기와 솔잎들이 군데군데 검게 혹은 잿빛으로 점점이 박혀 있는 가운데 그 위로 시원스레 솟아오른 암봉들을 볼 수 있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위로 흰 나신을 드러내는 봉우리들의 늘씬한 몸매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이 능선의 백미인데 오늘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올 때마다 비와 안개를 만나던 지난 경험을 생각하면 이만한 날씨도 고맙기 그지없다.
그러나 능선에도 나무들이 무성하여 산 봉우리들의 모습은 금방 시야에서 사라진다. 떡갈나무와 소나무가 터널을 이룬 가운데 그 밑의 공간은 가슴 높이로 자란 진달래와 연분홍 꽃이 피는 둥근잎 철쭉이 지배하고 있다. 군데군데 시야가 트일 때마다 잠자리들이 두세 마리씩 떼를 지어 기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듯 바삐 날갯짓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처럼 높은 곳에서 잠자리를 볼 수 있다니 신기하다. 이 산릉에서도 여름은 이렇게 익어 간다.
10:45 얼마 가지 않아 능선길은 큰 암벽에 막혀 떠 뻗지 못하고 오른 쪽으로 살짝 방향을 튼다. 우리는 두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올라 붙어 그 암벽의 측면을 타고 오른다. 오른쪽으로는 수십길 낭떠러지를 끼고 암벽 틈새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 조금 전에 밑에서 바라보던 암벽의 옆에 선다. 그때 종원이가 준비해 온 수박을 꺼내놓자 순식간에 모두 동이 난다. 땀흘리는 한국 사람들에게 시원한 수박만큼 더 좋은 것이 있는지 언뜻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시 능선길을 50여 미터 가량 따라가면 내리막 바위길이다. 눈 온 겨울날에는 제법 산에 다녔다는 축들도 오금이 저리는 곳이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은 없다. 해관이와 몇 명은 왼쪽의 크랙을 따라 내려가고 경록이와 호경이, 종원이등은 오른쪽 바위 난간을 걸어 밑의 바위로 내려선다. 그 다음에는 45도 경사의 슬라브. 모두들 잘 내려오는 데도 나는 이따금 뒤를 돌아보며 발을 십일자(11) 모양으로 하여 걸어내려오라고 아는 체를 한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바위 옆을 따라 10 cm 폭으로 좁게 난 3-4m의 내리막길. 그것으로 좀 신경이 쓰이는 바위길은 끝이 났다.
이제 능선을 따라 계속 앞으로 가다가 우이령과 만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육모정고개를 거쳐 영봉- 하루재-만경대로 이어진다. 오늘은 세훈이와 안국동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육모정고개에서 능선을 넘어 우이동 쪽으로 내려가야 할 것 같다. 나무들 사이로 오봉과 도봉산의 봉우리들이 보인다. 구름/안개만 없었다면 더 멋있는 경관을 즐길 텐데 아쉽다. 같은 산인데도 불과 몇 달 차이로 그 모습이 이렇게 달라지는 것을 눈 앞에서 보면서도 믿기 어렵다. 능선의 양옆은 깊어가는 여름만큼이나 짙은 수목으로 뒤덮이고 있다.
11:15 지난 3월 이 능선을 올랐을 때 간식을 먹던 ‘폭풍의 언덕’에 도착했다. 암반위로 늘어진 노송의 그늘에는 10여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는 데다 눈 앞이 탁 틔어 전망도 일품이고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세상근심을 잊게 하는 자리이다. 호경이와 입구로 들어서니 한발이 늦어 이미 딴 사람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하는 수 없이 좋은 자리를 지나 그 언덕의 끝쪽에 자리를 편다. 이제는 안개가 걷혀 햇볕이 뜨겁다. 후미의 도착을 기다리는 동안 호경이는 눈앞에 펼쳐진 북한산 연봉의 이름을 줄줄이 꿴다, 이렇게 말이다.
인수봉 백운대
염초봉
N (노적봉) 만경봉
윤재봉 영봉
<폭풍의 언덕>
바로 눈앞에 있는 윤재봉은 줄무늬도 선명한 화강암이 강냉이처럼 박혀있다. 호경이가 문제만 내고 알려주지 않은 영봉과 만경봉 사이의 뾰족한 봉우리(괄호친 부분)는 위치나 생김새로 보아 노적봉이 분명하다. 몸을 뒤로 돌리면 왼쪽으로는 오봉이 줄지어 있고 오른쪽으로는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이 뚜렷하게 보인다.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11: 25 이윽고 후미의 일행이 모두 도착하여 우리는 각자 가져온 간식거리를 꺼내어 놓는다. 오늘은 특별히 집에서 만든 <사제 김밥>도 있다. 그런 와중에 경록이는 뒤돌아 앉아 혼자서 부시럭 거리더니 조금후 설거지통만한 플라스틱 그릇을 앞으로 밀어놓는다. 가자미회에 상치를 숭숭 썰어넣고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가자미회 무침이다. 모두 경록이의 솜씨에 한마디씩 한다. 그러고 보니 경록이의 모자패션이 이채롭다. 밀짚모자처럼 엮어서 만든 것인데 재료는 안데스산맥에서 자라는 라마(llama: 낙타과의 젖먹이동물)의 털이라고 한다. 오늘이 행사(?)가 있는 날이다 보니 모두들 간식준비와 복장에 다른 날보다 신경을 쓴 것 같다. 세훈이가 참석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아마도 이심전심으로 알 것으로 믿는다.
모두 소주잔을 따라 높이 들고는 건배를 외친다. 술이 한 순배 두순배 돌 때마다 술 재고가 줄어 간다고 호경이가 앓는 소리를 한다. 뒤늦게 8병만 사온 것을 후회하면서 한근이가 늦게 왔으니 내려가서 더 사와야 한다고 짐짓 억지를 부려본다. 그때 잠자코 있던 승기가 소주팩을 가져온 사람이 있다고 한다. 물론 술독을 관리하는 호경이가 제일 반색을 한다. 얼마간의 승강이 끝에 해관이는 배낭 밑바닥에서 멀쩡한 소주팩을 하나 건져 올린다. 기분이 좋아진 호경이가 연령집단별로 이름이 달라지는 불(火)에 관하여 한 마디 한다. 10대는 대기만 하면 터지는 성냥불, 20대는 폭죽, 30대는 장작물, 40대 화롯불, 50대 반딧불 그리고 60대는 도깨비불이란다.
12:20 간식이 끝났다. 남풍이 부는 걸 보면 오늘의 일기예보가 맞으려는가 보다. 자리를 거두고 능선을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 조금 후 우리는 사기막골과 우이동 쪽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하여 왼쪽 길로 접어든다. 오른쪽 길은 사기막길로 가는 길이다. 그때 호경이가 앞으로 나서며 지난 3월과는 다른 하산길로 일행을 안내한다.
이 코스는 우이령-영봉 능선을 지름길로 넘어 우이동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능선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내려서서 곁으로 난 작은 능선을 따라 20여미터 나아가면 갑자기 수직동굴 같은 바위길이 나오고 곧이어 거의 직벽에 가까운 10미터 길이의 내리막길이 나온다. 우리 일행보다 앞에서 가던 팀들이 내려가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곧 이어 우리팀도 내려오고… 승기에게 더 긴 자일이 있는데, 기다릴 수가 없어 내가 가져간 짧은 보조자일을 직벽 위에 선 소나무에 걸고 앞 팀부터 그 자일을 타고 차례로 내려가도록 했다. 이런 데서는 너무 네것 내것을 따질 필요없이 안전을 우선으로 하면 모두가 유쾌한 산행을 할 수 있다. 군대시절 유격장을 주름잡았던 승기가 자일을 잡고 내려가다가, 미끌어진 상태에서 자세를 바로잡는 시범을 익숙한 동작으로 보여준다. 우리 일행은 물론 다른 팀들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안전하게 내려섰다.
일행은 몸을 추스리고 나서 다시 하산길을 재촉한다. 급한 경사의 슬라브가 두어번 더 이어진 뒤, 다시 자일이 필요한 곳에 이르었다. 다시 자일이 걸렸고 일행들이 그걸 잡고 내려 가는 동안 승기가 슬라브 중간에 서서 부축하며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였다. 승기와 내가 내려가고 자일을 회수하는 것으로 위험한 코스는 모두 끝이 났다.
13:00 마당바위 도착. 하산 길에 마지막으로 북한산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장소이다. 이제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해는 땡볕을 내리 퍼붓는다. 먼저 도착한 등산객들 때문에 우리가 오래 머물 수가 없어 다시 길로 들어선다. 세갈래길에서 한근이와 태성이, 경록이와 나는 왼쪽 길로 들어섰는데 뒤에서 오던 나머지 일행은 오른쪽 길을 따라갔다. 멀지 않은 곳에서 계곡 물소리가 세차게 들린다. 산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계곡쪽으로 내려가면 99% 길을 만날 수 있다 (물론 낭떠러지에 주의를 해야지만). 물소리를 따라 계속 오른쪽으로 내려가니 마침내 원래의 등산로가 나타났다. 계곡물이 너무나 맑고 수량도 풍부하다. 어제 비가 온 탓이리라.
13:20 한발 먼저 온 팀들이 계곡을 차지하고 있다가 우리가 오는 것을 보고 자리를 내어준다. 그리고는 큰 바위로 가려진 우묵한 곳을 가리키며 목욕을 해도 좋은 곳이라고 귀뜸을 한다. 그래도.. 싶어 등산화를 벗고 아픈 발을 달래고 있는데 나머지 일행은 꿩 구어 먹은 소식이다. 그때 아까 마당바위에서 보았던 팀들의 모습이 보이길래 혹시나 하고 소식을 물으니 위쪽에 있는 작은 계곡에서 쉬고 있다고 한다.
13:40 후미의 일행이 그 자리에 도착했다. 시원한 물을 보더니 배낭을 내려 놓기가 우묵한 곳으로 달려간다. 명0, 해0, 한0, 종0 모두 웃통을 벗어 젖히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아랫쪽은 입구에 선 바위에 가렸으니 알 수 없다. 동무들 시원하게 목욕하라고 태성이와 원탁이는 계곡 입구에 놓은 간이 시멘트 다리 양쪽에서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통제한다.
14:00 다시 하산길에 올라 10분 뒤에 육모정고개 매표소를 통과했다. 거기서 이 등산로에 2005년12월31일까지 자연휴식년제가 시행되어 입산금지중인 것을 알았다.
14:40 그린파크에 도착하여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6번 버스에 올랐다.
2.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去者必反)
세훈이와는 안국동 전철역 근처의 만남터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행은 수유역에서 두패로 나누어 호경, 승기, 경록 그리고 나는 전철로 가고 나머지는 계속 버스로 갔다. 전철팀이 현장에 도착하니 약속시간인 15:15이 조금 못 되었다. 조금 있다가 세훈이가 시원한 남방셔츠 차림으로 손을 흔들며 나타났고 뒤이어 버스팀이 당도했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며 한 바탕 쏟아질 듯하다. 때마침 포도대장의 행차를 재현하는 행렬이 인사동 골목을 지나가는데 온 거리를 가득채운 구경꾼들이 그 뒤를 따른다. 우리 일행과 그 행렬과는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지리산이라는 한식집에 자리를 정했다. 신발을 벗고 방에 안기가 무섭게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진다.
우리는 다시 모두 잔을 모아 장도에 오르는 세훈에게 행운을 기원하고 한동안 보지 못할 것을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누구나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會者定離 去者必反)>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떠나는 세훈의 심정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엊그제 승용차로 출국 인사차 선영에 다녀오다가 중앙고속도로에서 피곤하여 운전 중에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아찔한 사고를 당했다는 세훈의 이야기는 우리가 이런 인연을 맺고 이 자리에 앉아있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당하고서도 세훈이는 달관한 사람처럼 태연자약하여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했고 오히려 내년쯤 우리를 그곳의 Linear Mountain 으로 초청하겠다고까지 했다. 회장단에서는 떠나가는 세훈에게 그곳에서 트레킹할 때 쓰라고 등산용 지팡이를 선물했다. 나는 금년 2월부터 쓰기 시작한 산행기 전권의 사본을 세훈에게 기념으로 건넸다.
창밖에는 굵은 빗줄기가 죽죽 내리고 있었지만, 가는 사람과 주고 받는 술잔 위로 우리의 감정은 조용히 그리고 잔잔하게 물결치고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5학년이기 때문이리라. 세훈이의 제의로 우리는 근처의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석별의 마음을 멜로디에 담았다. 돌아가며 노래를 했고 경록이가 <나그네 설움>을 부른 다음 모두 일어나 마지막곡을 합창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끝> (윤 신한)
<후기> 1. 지리산에서 식사 중에 누군가의 제의로 백세주에 산(山) 소주 두병을 섞어 마셨는데 그것이 바로 <백두산>이란다. 오늘은 북한산에 올랐다가 지리산에 앉아 백두산을 삼킨 셈이다.
2. 지난 6월 15일 관악산 등산때 정 태성군이 사정상 산행은 같이 못하고 남현동에 있는 종로빈대떡집에서 식사를 할 때 합류했었는데 그것을 지난 달 산행기에 적지 못하였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