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채그릇(Punch Bowl)처럼 생겼다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펀치볼마을은 양구군 해안면의 만대리, 현1,2,3리, 오유1,2리의 여섯개 리로 구성되어 있다. 펀치볼마을이라는 이름은 먼 옛날 해안(海安)의 해자는 바다 해(海)자를 썼는데 그 당시 해안분지에는 뱀이 많아 주민들이 밖에 나가지 못 할 정도로 뱀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초 해안 주민이 시제를 지내면서 유명하신 스님 한분을 모시니 스님은 "뱀은 돼지와 상극이니 바다해 자를 돼지해자로 바꾸어 쓰면 되겠다."라고 일러주었다. 그 다음부터 주민들은 돼지 해(亥)자로 고치고 집집마다 돼지를 많이 길렀다고 한다. 그 후 신기하게도 뱀이 없어져서 주민들은 집밖 출입을 자유롭게 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록으로는 고려시대 이전에는 이 분지를 "번화"라고 불렀으며 그 후 "해안(亥安)"으로 불렀다가 해안으로 바뀌었다가 1885년 (고종32년)엔 해안면이 설치되기도 했다. 1956년 휴전 후 난민정착사업의 일환인 재건촌 조성으로 100세대씩 입주시키며 농민들의 개척에 의해 마을의 틀이 만들어졌다. 원래 동면 관할 아래 있었던 해안 출장소가 1983년 전국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동면 북부를 분리 승격시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6.25격전중 해안을 바라본 종군기자가 이곳을 형태를 본따 펀치볼이라 부른데서 세계적으로는 펀치볼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을지전망대 강원 양구군 해안면 현2리에 위치한 DMZ 남방한계선에 위한 북측을 전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서 북한군 초소와 1㎞ 미만으로 유관으로 관측 가능한 가까운 곳으로 날씨가 좋으면 금강산이 관측되는 곳이다. 을지전망대는 양구 동북쪽 27㎞, 군사분계선으로부터 1㎞ 남쪽 지점에 해안분지를 이루고 있는 가칠봉의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1987년 12월 12일 전경련회장단이 육군 제1862부대를 방문해 안보교육관의 건립을 제의했고 이듬해인 1988년 5월 31일 1억2,500만원을 부대에 기탁함으로써 을지전망대를 건립하게 되었다. 금강산 비로봉 등 내금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해발 1,049m의 최전방 안보관광지로 매년 10여만 명이 찾고 있는 분단의 아픔과 국방에 대한 중요성을 재인식할 수 있는 안보교육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전망대는 높이 10m, 건평 98평의 2층 콘크리트 슬라브 건물로서, 현재는 전망대까지 7km를 군 작전도로를 이용하는데 양구군에서는 이 구간에 대해 확장포장공사를 완료했으며 1998년 2월부터 당일 출입이 허용되었다. 제 4땅굴 김일성이 전면적 기습전과 후방공략을 달성하기 위한 북한의 땅굴은 2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땅굴사업은 1971년 9월 25일 대남공작 총책 김중린(金仲麟)과 북한군 총참모장 오진우(吳振宇) 등에게 내려진 “속전속결전법을 도입하여 기습전을 감행할 수 있게 하라”는 김일성의 '9·25교시'에 따라서 시작되었다. 땅굴의 발견경위와 규모는 다음과 같다. 1. 제1땅굴 : 1974년 11월 15일 경기도 연천 고랑포(高浪浦) 북동쪽 8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약 1.2k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90cm, 높이 1.2m, 깊이 지하 45m, 길이 약 3.5km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전술능력은 1시간에 1개 연대의 무장병력이 통과할 수 있고, 궤도차를 이용하면 중화기와 포신(砲身)도 운반할 수 있다. 2. 제2땅굴 : 1975년 3월 24일 강원도 철원(鐵原) 북쪽 13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900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