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산들＞ 발터 보나티 저./ 김영도 옮김

[이용대]

<서평>

<내 생애의 산들> 발터 보나티 저 / 김영도 옮김 .조선매거진. 글 이용대

슈퍼알피니즘의 전설 보나티

유럽 알프스의 모든 북벽들이 초등된 후 1950-60년대에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것은 동계북벽 등반이다. 그 주역을 떠맡은 사람이 바로 발터 보나티(Walter Bonatti.1930-2011)다. 그는 동계 북벽등반이라는 극한 알피니즘의 새 장을 연 독보적인 등반가다. 보나티는 동계 북벽 단독등반으로 신화가 되고 전설이 되었으며, 그가 남긴 극한의 등반기록들은 어두운 밤의 폭죽처럼 밤하늘을 밝혔고, 2011년 8월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는 그렇게 신화와 전설이 되어 사라져 갔지만 그가 남긴 자전적인 등반기록<내 생애의 산들>과 만나면 현존이 된다.

그가 남긴 극한등반의 동선을 따라 가보면,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의 치마 오베스트(Cima Ovest). 치마 그란데(Cima Grande) 북벽을 동계에 초등했고, 프티 드류의 남 서벽 단독초등. 그랑드조라스 북벽 동계초등. 마터호른 북벽 동계단독초등을 이룩하여 새로운 극한알피니즘의 시대를 연다.

리카르도 카신(Riccardo Cassin)이 이탈리아 현대 알피니즘을 유럽 산악 계에 부각시키는데 공헌하였다면, 보나티는 알프스의 험난한 북벽에서 동계단독등반과 안데스. 히말라야 등에서 대담한 등반으로 슈퍼 알피니즘의 새 시대를  열어온 위대한 별이다.

이 책은 2011년 8월 향년 80세로 암 투병 중 영민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등반가 발터 보나티의 1949년부터 1965년까지의 전성기 등반기록을 담은<내 생애의 산들. Berge meines lebens>의 번역본이다. 그동안 해외유명산서들은 윔퍼. 머메리. 불. 메스너 등이 산서출간의 중심에 있었을 뿐. 어찌된 일인지 극한등반의 지존격인 보나티는 비켜갔다. 산서깨나 즐겨 읽은 사람들이라면 이 거장들 속에서 보나티의 등반기가 없음에 갈증을 느껴왔다. 그의 책이 지금 발간된 것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국내독자들이 뒤늦게나마 보나티와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퍽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내 생애의 산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원로산악인 김영도 선생의 노고 덕분이다.

1930년 이탈리아의 베르가모에서 출생한 보나티는 소년시절부터 강인한 체력과 용기. 모험심을 지녔다. 그는 그리그나의 침봉과 돌로미테(Dolomite) 등지에서 등반기술을 익힌 뒤 19살이 되던 1949년 그랑드조라스 북벽에 도전 한 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며칠 뒤 재도전하여 워커슈퍼의 캐신 리지를 등정한다.

그는 등산의 세계에 매료된 나머지 회계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등산 가이드의 세계로 뛰어든다. 사람들은 상식을 벗어난 일이라고 말했지만 높은 곳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자유와 생의 환희를 더욱 사랑했기 때문에 산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1949년 브레갈리아 산군의 피치바딜레(Piz Badile) 북서벽, 두 차례에 걸쳐 실패한 그랑까프 생(Grand Capucion)동벽을 1951년 마침내 초 등정에 성공한다. 1976년 초등 2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21세에 초등반한 루트를 46세에 재 등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까프생 등반은 연속적인 인공등반방식(Continuous Artifactual Climbing)을 서부알프스에 최초로 적용시킨 것이었다.

1953년 치마오베스트 북벽과 치마 그란데 북벽 동계초등. 1954년 K2원정. 1955년 프티드류 남서벽 단독초등. 1958년 캐신(R. Cassin)이 이끄는 가셔브룸 4봉(Gasherbrum Ⅳ·7925m)원정대의 일원으로 참가해 북 동릉을 경유 초 등정에 성공한다. 같은 해 파타고니아의 세로토레(Cerro Torre·3020m)등정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으며, 세로모레노(Cerro Moreno·3506m)를 초등정한 후, 세로아델라(Cerro Adella)산군의 연봉을 횡단한다. 1961년 남미 안데스의 네바도 니나샹카(Nevado Ninashnca·5638m), 세로파린 노르드(Cerro Parin Nord·5166m), 론도이 노르드(Rondoy Nord·5820m) 등을 초 등정한다. 같은 해  마지막 미등의 벽으로 남아있는 6등급의 프레네이 중앙 필라를 이탈리아와 프랑스 산악인 7명이 합동으로 등반 중 폭풍설에 휩싸여 그의 파트너 오조니와 3명의 동료를 잃는다. 목숨이 위태로운 속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동료를 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레종 드뇌르(Legion d’nonneurr) 훈장을 수여한다. 1963년 19세에 등정한 바 있는 그랑드조라스(Grandes Jorasses)워커스퍼(Walker Spur)를 코시모 자펠리(C. Zapelli)와 6일 동안의 사투 끝에 동계 초등반하여 동계 등반의 이정표를 세운다.

1965년 마터호른 노드반트 직등(Matterhorn Nord wand Direct)루트를 동계 단독 초 등정한다. 이 해는 마터호른 초등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는 마터호른등반을 끝으로 극한알피니즘과 결별한다.

단독등반. 배신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

K2는 보나티의 생애에서 중대한 전환을 맞게 하는 산이었다.

그는 K2에서 동료의 배신으로 고통과 좌절을 맞본다. 1954년 23세의 어린나이로 이탈리아등반대가 초 등정을 이룩한 K2 원정대의 최연소 대원으로 발탁된 그는 정상등정대원 콤파뇨니와 라체델리를 지원하여 초 등정에 공헌한다. K2 아브루찌 능선 해발 7700m지점의 C8에서 정상공격 조 라체델리는 보나티에게 최종캠프(8150m)까지 정상공격용 산소를 운반해주면 건강상태가 나쁜 자기대신 공격조로 끼워 주겠다고 약속하고 C9로 올라갔다. 정상등정의 꿈에 기대를 품은 보나티는 산소운반을 꺼리는 셰르파 마디에게 자기와 함께 정상등정에 투입될 가능성을 주지시키며 설득했다. 보나티가 셰르파 마디(Mahdi)와 함께 19킬로그램이 넘는 무거운 산소통 2개를 해발 8000m 지점까지 운반했을 때 어둠이 닥쳐오고 있었다. 9캠프를 설치하기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고 캠프도 설치되어있지 않았으며 어둠 때문에 콤파뇨니를 찾을 수가 없었다.

보나티는 미친 듯이 소리치며 콤파뇨니를 찾았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절망에 빠진 그는 눈구덩이를 파고 은신처를 마련한 후 또다시 공격 조를 찾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들이 있는 훨씬 위쪽 9캠프에서 랜턴 빛이 켜지면서 공격조의 한 사람인 라체델리가 산소를 그 자리에 두고 즉시 8캠프로 하산하라고 대답했다. 보나티는 어둠 속에서 하산은 매우 위험하므로 약속한 대로 9캠프에서 함께 머물게 해 달라고 애원했으나 공격조로부터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들은 랜턴의 고장으로 하산이 불가능했으며, 텐트와 침낭은 고사하고 비박장비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들은 8000m 부근에서 60cm 깊이의 눈구덩이를 파고 앉아 혹한과 강풍에 시달리며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뜬눈으로 밤을 새운 뒤 다음날 새벽 가까스로 8캠프로 내려왔다.  훗날 라체델리는 두 사람이 산소통을 내려놓고 하산한 줄 알았다고 변명했으나 보나티의 주장은 크게 달랐다. 2인용 텐트에 두 사람을 불러들이면 다음날의 등반 시도가 무산될까봐 그랬을까, 아니면 강인한 체력의 보나티에게 초등정의 영광을 빼앗길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까? 어떤 이유에서든 정상 공격조의 행동은 비인간적이었다. 동료 두 사람이 혹한 속에서 죽어갈지도 모르는데 초등정의 영광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콤파뇨니의 초등정기에는 보나티가 산소를 옮겨준 것이 K2 초 등정에 큰 공헌을 했다는 것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으며, 초등 당시 보나티가 초등의 영예를 차지하려고 공격 조와 경쟁을 벌였다는 콤파뇨니의 모함으로 괴로워하다가 법정 투쟁까지 벌인다. 훗날 라체델리는 두 사람이 하산한 줄 알았다고 변명했으나 보나티의 주장은 크게 달랐다. 당시 K2원정에서 있었던 일은 이탈리아산악계의 화제였고 비난의 화살이 그에게 집중되자 상당 기간 동안 괴로워했으나, K2초등의 영광에 누가될까봐 이런 사실을 함구해 오다가 자신의 저서에서 초등당시의 비화를 공개한다.

이탈리아 팀의 K2 초등에 크게 기여하고 귀국한 보나티는 1955년 알프스의 드류(Dru) 남 서벽 단독 등정을 시도한다. 그가 드류 남서 필라를 단독으로 등반한 이유는 K2등반에 대한 항의형식의 등반이었다. 또한 이 등반은 미래에 대한 예견이었고 개성의 주장이었다. 그는 K2원정에서 겪은 동료대원의 배신에 충격을 받았고, 조직적인 팀 등반에 환멸을 느껴 단독 행을 선택한다. 감성이 한창 예민한 20대에 인간적인 좌절을 겼었으니 가슴에 쌓인 앙금이 어떠했겠는가. 그는 K2의 일로 자신만 믿기로 했다. K2이후 정신적인 갈등을 겪으며 더 이상 좌절을 맛보지 안기위한 자구책의 결과로 단독등반이라는 개인적인형식을 택한다. 그 첫 번째 시도가 드류 단독등반의 실행이었다. 그는 K2에서 겪었던 좌절에 대한 탈출구로 드류 남 서 필라 단독 행을 결정하여 심리적인 보상을 얻고자 했다.

‘정당한 방법’을 구현한 드류 단독등반

보나티 필라(Bonatti Piller)라 부르는 드류의 남 서 필라(South West Pillar)는 인공등반 A1~A2, 자유등반 V~Ⅵ의 난이도를 지닌 어려운 루트로, 그는 한 개의 볼트도 사용하지 않은 채 5일 동안 단독으로 등반을 성공시켜 놀라운 성취를 기록했다. 이는 한 시대를 앞서나가는 성과였으며, 그의 독자적인 ‘정당한 방법(By fair means)’의 등산의식과 행위였다. 그는 ‘암벽에 구멍을 뚫고 볼트를 박아 길을 개척하는 것은 알피니즘의 윤리를 벗어난 것이며, 그것은 암벽루트라 할 수 없다. 이런 방법으로 불가능을 없애는 것은 모험을 없애는 일이며 결국 불가능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을 제거하는 일이다’라고 말했으며, 제 20장‘알피니즘에 대한 고찰’에서 ‘알피니즘은 단순한 기술이나 피크헌팅 이상의 가치며 알피니즘이 앞으로 계속 모험의 분야로 남으려면 테크닉의 편중이나 필요 없는 조직체 같은 것은 만드는 일이 없어져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전통과 새로운 도전(1989)’이란 제호의 국제심포지엄에서의 발제 강연내용은 알피니즘에 관한 도의적 가치에 대해 모험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과 이해를 촉구하는 보나티 나름의 깊은 성찰이 담겨있는 글이다.  

그는 드류 등반에서 손가락에 심한 동상이 걸렸다. 이때 그는 1주일분의 식량과 장비를 자루(Duffle Bag)에 매달아 끌어올리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이 방법은 요세미티보다 10년이나 앞선 것으로 홀링 색(Hauling Sack) 시스템을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그는 이 등반으로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용감한 시민 상을 받는다. 그는 시상식장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인간은 모험을 하게 된다. 불가능의 매력은 그것을 포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요약해 보나티의 두류 단독등반은 전후 알피니즘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등반이었다.

그는 알프스의 거벽 등반뿐만 아니라 히말라야와 남미의 거벽에서도 활동했다. 이후 그는 ‘알피니즘이여 안녕’이라는 글을 남긴 후 극한등반의 세계와 결별한 후 시사지<에포카>에서 모험 기사를 전문으로 다루는 저널리스트로 활동한다. 그러나 그는 산에 대한 향수를 떨쳐버리지 못한 채 고향에 돌아가는 심정으로 몽블랑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