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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 과 김삿갓
 
 
 
카페 게시글
일반여행 스크랩 천등산 박달재
뜬 구름 추천 0 조회 31 09.05.11 11:4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천등산 박달재는 해발 453m 충북제천에 있는 고개길로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애닯은 사랑이 전해져오는 곳이며 대중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의 소재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이지요.

"박달재의 원이름은 천등산과 지등산의 영마루라는 이등령이었으나 조선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과 이곳의 어여뿐 낭자금봉의 애닯은 사랑의 전설이 회자되면서 박달재

로 불리우게 되었다.

장원의 부푼 꿈을 안고 한양으로 가던 박달은 고개아래 촌가에서 하룻밤 유하려다

길손을 맞이하는 금봉의 순수하고 청초한 모습에 정신을 빼앗기고 금봉도 박달의 준수

하고 늠름한 모습에 잠을 못이루고 달밤을 거닐다가 역시 금봉을 그리면서 서성이던

박달을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몇날을 머물며 금봉과 사랑을 속삭이던 박달은 과거에 급제한후에 혼인을 하기로 언약

하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나고 그 날부터 금봉이는 박달의 장원급제를 서낭님께

빌었으나 과거가 끝나고도 박달의 소식이 없다 크게 상심하여 고개를 오르내리며 박달

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다가 한을 품고 삶을 거두고 말았다.

한양에 온 박달도 과거준비는 잊은채 금봉을 그리는 시만 읊다가 낙방을 한 후 금봉을

보기가 두려워 차일피일 미루다 금봉의 장레 사흘후 되돌아와 금봉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땅을 치며 목놓아 울다가 언듯 고개를 오르는 금봉의 환상을 보고 뒤 쫓아가서

와락 금봉을 끌어 안았으나 금봉의 모습은 사라지고 박달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후 사람들은 이등령을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이상 박달재 비에서~~)

이제 구경 해야 겠죠..................!

박달재 안내표지석과 나무로 만든 박달과 금봉이~~~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여 관광자원화한 박달재 그 옛날은 이길이 좁고도 좁은 고개길이 였겠죠?

흙 길 천리를 상상도 해보고~~~~~~

시집도 가기전에 세상 떠난 금봉이가 아기를 둘이나 낳았는가?

아니면 다시 환생하였을까? 

아이구 이건 뭐 시라 .......... 박달도령의 것인가?

금봉이가 여기에 반했는강 ........... 박달재 안내에는 그저 준수하고 늠름한 모습에 어쩌고 했는디......

박달재 휴게소 주변에 이런 목작품이 더러 있었다. 

박달재 노래비도 이렇게 만들어 세워두고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네...

사랑과 이별이라는 제목의 조각작품 서로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으니 어찌 가슴이 찡~~~

공원조성을 하여 아름답게 잘 꾸며져 있고 물레방아 돌아가니 옛 시절이 생각나고 50년 전만해도 우리마을에도 이런 물레방앗간이 두 군데나 있었는데~~~~~~~~~ㅎㅎㅎ 

 솟대라 하는것인지 이런 여러 조각 작품들을 만들어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돌아 봄직도 하고......

 주변 (구학산과 사랑산) 산세와 조각작품등과 잘 어울리도록 정자까지 세워져 있고

성황당(서낭당) 오르는 길에 세워진 박달과 금봉의 목장승 

여기 이 성황당(서낭당)은 금봉이가 박달의 장원급제를 위하여 빌고 빌던 곳입니다.

제천시에서 1997년에 재건하여 그 혼을 기리고 있습니다.

성황당 안에는 박달성황지신 을 모시고 있네요. 

 근년에 지나는 길손이 이렇게 흔적도 남겨놓고~~~~~~~~~~~~

박달령 종거사라는 분이 남긴 길이 쓰여진 내용을 담아 두었는데 ~~~~~~~~~

이 령(嶺)은 고려시대 1217(고종4년) 년 김취련 장군이 거란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곳으로도 유명하다.  (2008. 7월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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