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laugh! The whole world will laugh with you. Weep! you will weep alone)
난 그 말을 ‘올드보이’라는 영화의 대사에서 처음 듣고, 마음에 확 와 닿았다. 나중에 그 말이 영어권 국가의 속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짧은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하고, 교류하고, 친구가 되었다. 그중에는 여전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있고, 잊혀진 사람들도 있고, 때론 안좋게 끝나기도 한 사람도 있다. 그들 중 괜찮아 보이는 애들과 친해져서 그늘이 없어 보이고,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밝은 외면과는 달리 내면은 가슴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애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겉모습만 보면은 좋은 가정에서 굴곡없이 큰 사람처럼 그늘이 없어 보이나, 실제로 마음으로는 가슴아픈 상처를 혼자서 삼키면서 밝고 씩씩하게 살아간다. 어차피 아픔은 나눌 수도 없는, 혼자만의 몫이기에..
아래는 혼자 울지언정 남에게는 항상 좋은 모습을 보였던 직접 내가 보았던 사람들이다.
*최근에 나는 JS라는 아이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 애는 나보다 3살 연하이나, 지적인 아이이고, 정치, 경제, 역사에 대한 지식이 빠삭하고, 논리적인 아이다. 그러면서도 현학적이지 않고, 항상 밝은 웃음과 남들에 대한 배려심이 있는 부드러운 아이다. 난 그 아이의 인간성과 지적인 통찰력에 매력을 느꼈다. 전라도 광주출신이지만, 정치성향은 우파인 나와 그리고 경상도 부산출신이지만, 정치성향이 좌파인 그는 정말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울 것 같으나, 종교만큼 민감할 수 있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번도 언성이 올라간 적이 없다. 최근에 그애와 술한잔 하면서, 자기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그 애와 그애의 누나는 정상적인 가정이 아닌 한 유부남의 내연녀에게서 태어났다. 그 애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그 애의 엄마는 그애의 누나에게 몇억원의 빚을 남기고, 잠적했다. 무책임한 어머니 덕분에 학교를 다닐 수도 없었으나, 학교성적이 전교 1등인 그 아이를 담임 선생님이 안타깝게 여겨 자기 집에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키워줘서 겨우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대를 갈 수 있는 실력이 되었으나, 경제여건상 부산대를 4년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고 한다.
* 내가 SU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중립을 나와서 증인을 관두고, 학교에 복학해서, 영어동아리에 가입을 했을 때이다. 멋도 부리지 않고, 촌스러운 고시생처럼 하고 다녔던 공대생 SU는 의사가 되는게 꿈이어서, 오로지 의대대학원내지는 의대편입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한 집념이 강한 놈이었다. 그 당시 스물 서너살밖에 안되었을 때, 그 아이가 내게 했던 말은 아직도 내 귀가에 생생하다.
‘난 내나이 40을 바라보고 살아’
나이가 같은 친구지만, 사실 나에게는 선생같은 존재였었고, 난 그를 통해서 어느 정도 인생을 배웠었다. 그 애는 나중에 치과대학원을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되었다.
최근에 난 그애와 맥주한잔 하면서, 그 애한테서 이런 말을 들었다.
‘난 능력이 별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야. 하지만, 나는 항상 내 능력치보다 몇단계 높은 것을 아무 생각없이 도전해서 거기에 나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결국 이 자리까지 왔어.“
최근에 그 애는 강남의 한 유명한 병원으로 자리를 옴겼다.
그 애를 안지 이제는 10년 남짓 되었지만, 그 애의 성장배경을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그 애의 아버지는 학교선생이셨으나, 대단히 폭력적이고, 바람기 많은 가장이셨다. 자녀들 보는 앞에서도 그 애의 엄마를 무차별적으로 구타를 하는 분이셨고, 대놓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는 못된 아버지셨다. 덕분에 그 애의 엄마는 지금 지병을 얻어서, 항상 아프시다고 한다. 난 SU를 그동안 보면서 그애가 한번도 폭력적인 것은 커녕, 화를 내는 것도 본적이 없고, 오히려 신사적이고, 배려심있고, 부드러운 모습밖에 기억이 안난다.
*항상 밝은 미소가 매력적이었던 JR..
말을 참 센스있게 잘하고, 남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심과 밝은 성격의 JR를 처음에 본 건 그 애가 20살 대학교 1학년일 때였고, 내가 28세였을 때다. 어느날 난 그 애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너하고 이야기 하다보면 20대중반에서 후반정도로 느껴질만큼 성숙하게 느껴져. 너와 비슷한 또래인 내 여동생과 이야기 하면 완전 애같은데, 넌 도대체 그동안 어떤 인생을 살아온거야??’
얼마 후 그 애는 자신을 쫓아다니던 한 남자와 사귀게 되었고, 구속이 심한 남친 때문에 나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몇년 후에 난 그 애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고, 예전 남친과 여차저차한 일로 헤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얼마 후 그애는 나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그제서야 난 그 애의 살아온 인생을 들을 수 있었다. 그애의 아버지는 그애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무책임한 어머니는 그애를 떠나서, 대전에서 할머니 밑에서 컸다. 그리고 그 애가 대학을 들어갈 무렵에, 할머니도 돌아가셨고, 그제서야 광주에 살던 엄마가 나타나셨다. 하지만, 그 엄마가 나타난 이유는 딸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니라, 남자에게 버림받고 생활고로 힘든 자신의 삶을 이제 갓 스무살된 딸아이에게 의지하려는 이유였다. 결국 학교도 휴학하고, 광주로 이사와서 그 애는 일을 하면서, 원룸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그 애의 엄마는 몸이 불편한 것도 아닌데, 일을 하면 한달을 못견디고 그만두는 전형적인 무책임한 백수 스타일이라서, 그 아이가 먹여 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애는 참 밝고, 애정이 많은 아이였다. 당시에 난 결혼할 생각도 없었고, 그 애의 개판인 엄마를 책임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결국 이래저래 해서 별로 안좋게 헤어졌으나, 난 그 애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 GY를 처음 봤을 때, 그의 약간 북한식의 억양이 특이해 보였으나, 고향이 강원도라고 해서 그 애가 탈북자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어지간한 남한사람보다도 더 남한사람스러웠고, 완전히 남한사회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그 애는 참 명랑하고, 정이 많다. 주변사람에게 자신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산다. 내가 전직여증이라는 것을 숨기는 것과 똑같은 이유일 것이다. 괜한 선입관을 줄 수도 있기에 그애의 그런 태도는 당연하다. 하지만, 그애와 여러 이야기 도중 몇 가지 단서들을 나에게 들켜버렸다. 결국 모자이크처럼 조합을 해서 난 그애가 탈북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그 애의 예전 기록을 보면, 19세에 탈북을 해서, 남한에 와서 대학까지 졸업을 했다.
탈북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는 그 애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난 그애에게 내가 그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주변사람에게도 일절 말하지 않았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그 아이의 소원은 지금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시골에 2층집을 짓고, 1층은 자신의 가족이 살고, 2층에는 장모님을 모시고 살고 싶다고 했다. 난 그 말을 듣고 아무 생각없이 이렇게 말했다.
“그냥 3층으로 지어서 3층에는 너희 부모님도 모시지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그 아이의 얼굴은 슬픈 표정이었던 것 같다. 힘없이 그 아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 부모님이야 저없이도 잘 사실거에요.”
어쩌면 그 애의 부모는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을지도 모른다.
내가 본 그들은 가슴아픈 상처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과거 때문에 세상을 저주하지도 않고, 남들에게 못된 모습들을 보이지도 않고, 그늘도 없이 밝게 웃으며 살아가며 남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들이다. 사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사랑을 받는 이유가 있고, 미움을 받는 사람들도 다 이유가 있다.
내가 실제로 본 경험치들이 이러하기에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정상에서 한참 벗어난 못된 사람을 내가 이해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냥 오랜만에 카페 들어와서 글을 읽다가 드는 생각이 있어서, 두서없이 적어본다.
첫댓글 사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사랑을 받는 이유가 있고, 미움을 받는 사람들도 다 이유가 있다. 에 공감이 가네요.
왠지 어렸을 때부터 괜히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다 큰 지금까지도 내 정신을 지배하고 있으니 정신병인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