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Ⅱ
사실은
너무 고맙습니다
저보다
조회수 작으신 분
그 몇 분때문에
참괴하는 마음을 겨우 추스립니다
고맙습니다
글을 올리면
제 글은 0
앞 글은 이미 좀 많습니다
제가 늦게 올렸으니 당연하지요
시나브로 조회수가 올라갑니다
좀 있다가
다른 글들이 올려집니다
좀은
순서에 맞추어지면
좋으련만
그게 그러지 않으니 참담합니다
그냥 추월하고 표나지 않으면
또 좀 다행이겠는데
남들 다 색깔이 바뀌어도
독야청청 제 색 유지합니다
그래서
더 고맙습니다
비슷하거나
더 작으신 몇 몇 분
너무 고맙습니다
그에 더하여
고우신 댓글까지 남겨주시는
몇 분은 더 감사합니다
미련한 흉내시인이 두손모아
로또 2등만큼의 행운이 고대
여러분께 깃들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복받으소서
2-101
나쁜 운명
운명은
나쁜 운명은
어찌하여
한치도
한푼도 아닌 한치도
비껴가지질 않는걸까
이렇게 애달피
빌고 빌고 비는데도
어찌 그리 정확하게 찾아와
기다렸다는 듯이
정수리부터
온 몸통을 꿰뚫어 버릴까
하느님 맙시사
빌고 빌었건만
짐작은 했지만
오오, 운명은
도통 피할수 없는
백발백중의 화살인가
2-102
어머님 은혜
나는야 몰랐다네 까실한 보리이삭
그이삭 한자루면 밥 굶지 않으려니
오뉴월 뙤약볕에서 허리필새 없던것을
내사야 보리이삭 놀이로 주웠건만
어머닌 한나절을 허리도 펴지 않고
지금에 돌이켜보니 그마음이 애닯다
어머님 그은혜를 어떻게 잊을까요
5월은 어버이달 다시한번 그려보며
어머님 고맙습니다 백번한들 무슨 소용
2-103
능사가 울고
오뉴월 뙤약볕에
남의 엄마처럼
까매진 얼굴로도
우선은 까슬한 보리이삭
해 있을 때 하나라도 더 줍고
그래서 허리 한 번 안 펴고
철없는 아들은
보리이삭이야
그보다
요놈 구멍에선
언제나 독사 한 마리 나올까
후벼 파고
야이야, 밭 주인한테 혼난다
이미 반 쯤 뭉개진
두렁에선 콩 몇 포기가 쓰러지고
저 놈은 보리이삭 몇 개가
지 저녁 밥 한그릇 되는 줄 모르니
애 닯고
저어기 집헐린 능사가
휘척 휘척
기어가며
울고
2-104
조심해야 돼
저렇게
간 빼줄 듯
살살살할 땐
조심해야 돼
지가 뭐가 아쉬워
나같은 무지랭이한테
그 귀한 간 빼 주겠어
잘 생각해 봐
아들은
밥묵자
자자
하는 남편이
아유 파마 참 잘나왔네
고운 시심에 파묻힙니다
그런 간살스런 사람들보다
백 배 천 배 낫잖아
조심들 해야 해
어느 새
뒷통수에
묵직한 시기와 욕
있는 힘대로 퍼부을지 몰라
그저 남자답게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그게 마땅한 지 몰라
정말 그말대로
고운시 예쁜 시라면
천지 모두 김소월될걸
김영랑 아닌 사람은 누구야
나는 개새끼되고 난후
글로 원수놈 만든 건 난생 처음인데
어떤 놈은, 시러배 놈은
반성은 커녕
아직 글도 지우지 않네
썩을 놈이
2-105
우야꼬
세상에
훤칠한 조카 신랑
신행 인사 왔는데
앳되고 예뻐
현신한 내 님인가 싶더니
외로운 밤 허전한 밤
비몽사몽 꿈에 나타나
씨익 웃음지며
갸느린 손 잡아끄니
우야꼬
수절한 30년
긴 세월 원통해
우야꼬
가슴이 둥당둥당
헛바람이 들어
이놈의 미간에
길고 깊은 주름
우야먼 좋으꼬
60평생
이런 꼴 처음본다이
내는
우야꼬
엄청시러버
2-106
몇 명의 40대 남자
어느 40대 가장은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딸을 보호하려고
칼을 든 강도와 혈투를 벌이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려
그만 운명을 달리하고
어떤 방종한 40대는
모텔 3층에서
비밀스런 만남을 갖다
방을 잘못찾은 다방아가씨 노크소리에 놀라
3층에서 뛰어내려 도망치려다 죽고
이 기사를 보던 뚱뚱한 40대는
그 가장의 가족들에게 신의 가호를
방종한 40대의 아내에게는 자비를
다방아가씨를 모텔로 부른 사람은
혹시 또 다른 40대가 아니었을까?
2-107
오! 5월
사람들마다
5월엔 좀 비장감이 드는 건
저 산하가 푸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불의에 반대하기 위해
너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같은 길을 걸었기 때문이리라
5월의 광주는 아직
그대로 역사이다
전해 듣던
궁둥이를 스쳐간 폭도들의 총알
그리고 일제 사격
이미
모두가 알아버린
그 도청 광장의 총알세례도
쏜자는 없다
다만 죽은 자들이
사무친 원한으로
분수대 앞을 맴돌 뿐이다
5월엔
비장하게
정의를 돌이키고
뻔대머리 괴뢰도당의
만행을 기억하자
단돈 29만원으로
풍족한 노후를 즐기는
마주 눈알 부라려 대치한
이 사선에서
뒤에 올 정의로운 자들에게
광주의 결백을 증명하자
5월엔
좀 정의롭자
아직
너무 많은 불의와 부조리
내가 감히
아니다
라고 외쳐야 할
수많은 잔재들이 남겨져 있으므로
촛불에
다만 내 마지막 남은
양심이라도 담자
너무 푸른
5월이므로
나도
푸르러고 싶은
5월이므로
2-108
사랑하는 법
조르고 졸라 똥개 한 마리
토실해서 귀엽고
귀여워서 이쁘고
‘똥칠아 개새끼는 그카만 짜구난데이’
그 말 몰라
안고 빨고 아유 예뻐라
‘먹지마 똥 먹지마
엄마 봉실이는 똥 안먹일래’
이쁜 봉실이 내 밥 남겨 먹였지요
뭐든지 자꾸 먹여 배는 뽕글하고
어느 날 갑자기
몸을 떨며 앓았습니다
‘봐라 니 아무거나 자꾸 멕이지 마라카이’
결국 배만 뽕그랗게 짜구난 봉실이
이틀 앓다 죽었습니다
그냥 안죽고
끼이이이 끼이이이
이틀 밤을 앓다가 죽었는데
뒷산에 묻는데
무서워 따라가지도 못했습니다
엄마가 말한 짜구나는 거
모르긴 해도
정말 좋아하면
정말 사랑하면
좀 멀찍이서
지켜보란 말 같습니다
너무 안고 빨고 비벼대면
오래 못산다는 말입니다
봉실이처럼 짜구나지 않도록
은근한 사랑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래 사랑하기엔
2-109
숨바꼭질
하하
자는 몰라
내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열 번 세는 동안도
고개 살짝 돌리고
새우눈 뜨고
저 가는 데만 쫓는 걸
몰라
다른 사람 다 건성건성
저만 찾아다니는 걸
꿈에도 몰라
저만 쫓는 걸
내겐 저뿐인 걸
2-110
아카시아향
울컥
아카시아향은
그래 울컥
저 먼 옛날
아카시아 새순으로
손톱 물 들일 때
난 자주 꿈을 꾸었다
지금도 생생한
지진 꿈이 가장 두렵고
회전그네를 타다
하늘을 날고
은비늘 큰 물고기는
잡아도 잡아도 잡아도
끝없이 잡아도
바로 옆에 또 있고
아카시아 까시가 아직 여물기전
용가리같은 괴물과 싸우며
그 괴물을 죽일땐
괴물의 턱밑에 있는 급소를
힘껏 눌러야 괴물은 죽고
아차 실수로 손을 깊이 넣어
덥썩 잘린 내 오른 손
아카시아 향은
울컥
온 동리를 퍼져
꿈꾸 듯
흐른다 2-111
순이언니
순이언니는
그냥 수더분한 동네 처녀
청보리 키가 무릎을 넘고
그날
오월 푸르른 날
바람이
참 곱다
청보리 쓰다듬을 때
떠꺼머리 이웃 총각과
무슨 맘으로
무슨 얘기로
그 보리밭 길 걸었을까
해가 질 듯 말 듯
누가 그걸 보았을까
순이언니는
무슨 일로 서울로 갔을까
해마다
보리밭에 무성한
서울 간 순이언니의 뜬소문
2-112
부부싸움
엄마 아빠는
왜 저리 살까
그냥 죽어라 사랑만하지
왜 맨날 싸울까
어떨 땐 정말
서로 원수진 사람들 같아
나도 저렇게
싸우게 될까
나는 평생동안
한번도 싸우지 말자고
각서 쓰고
결혼해야지
정말 싸워야 할땐
가끔 눈꼴시도록
다정한 엄마 아빠처럼
업고 싸우자고 해야지
2-113
광우병 한탄
괜찮다 암 괜찮아 먹어도 무탈하다
그리고 아니할 말로 니들이 소고기를
아무리 싸다고한들 그리많이 먹겠나
광우병 소라지만 미국분들 드시는데
벌거지 다름없는 니들이 그걸 먹고
광우병 걸린다한들 뭐가그리 대수냐
괜찮다 광우병소 먹어도 안죽는다
그러게 돈 좀 벌어 국내산만 먹지를
촛불로 반대만하면 결정난 것 바꾸나
촛불켜고 마음모아 반대한들 어쩌냐
지난번 초례인사 선물로 드렸는데
아서라 이미 끝난 일 재론하지 말아라
우리네 벌거지들 목숨이야 어쩌랴만
굴욕적 협상타결 선례되어 버리면
앞으로 이민족 자존 기대하기 어렵지
소고기 수입만의 단순한 문제인가
경제대국 미국께서 원하는 그대로만
약소국 비애라고만 생각할수 없다네
촛불 하나 마음하나 간절한 희망으로
불평등 조항찾아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네 후손들에게 무어라 변명할꼬
사람들아 일어서라 아이야 너도 같이
조막 손 그힘까지 보태주지 않으련
반드시 바로잡아야 후회없는 일되리 2-114
청보리 밭
청보리 파랗게 자라
5월 아카시아향
바람에 날리던 날
눈에 익은 단발머리
보리밭 속에서 소곤소곤
조놈 가스나들 놀래켜야겠다
살금살금 다가가
왁
단발머린 엄마야
그 옆에 더 놀라
돌아보는 퉁방울 눈
니 머꼬
굵은 바리톤
이웃동네 중학생 히야
청보리밭 길 달리며
무서운 비밀로
두근대는 가슴
터질라
그래도
그 히야 디기 놀래더라
웃을까
울까
2-115
詩
사상을 은유하고
사건을 희화하고
느낌을 각색하고
오호 뭐든 주장도 해야 한다
눈을 새로이 떠라
그저 색깔 골라 칠하지 말고
사유하고 사색하라
가급적
단색으로 단순하지 말라
표현하라
함정도 파고
복선도 깔고
어렵다
그래서 난
비슷한 흉내가 좋다
시
아니다
글
내 글을
시로 읽어주는 고마운 분들
너무 감사해
복받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2-116
고향내음
바람에 실려오는 아카시아 향내음
그향을 따라오는 고향생각 고향소식
아파라 언제쯤이면 돌아갈까 내고향
2-117
가난의 비애
아이는
하하하 깔깔깔 웃다가도
오호 저 것
저 것에 온통 마음 빼앗겨
어지간한 시간 지나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고집을 피웁니다
기어코 얻어내고 맙니다
어떤 아이는
아무리 떼를 쓰고 고집부려도
안되는 건 안되고
될만한 것도 어쩌면 안됩니다
더 잘 알기에
떼 쓰는 것도
그리 치열하지 않습니다
노상 얼굴 찡그려
이미 깊은 골이 페인 아이는
이젠 떼도 쓰지 않습니다
아무리 떼 쓰도
아무리 고집부려도
들어 줄 사람 없습니다
길가에 드러누운 아들보며
화도 나지 않고
헐헐 헛웃음이 납니다
잠깐동안 아내에게서
엄마같은 냄새가 나서
큰 숨 흐읍 들이쉬며
그 냄새에 취해 봅니다 2-118
그 몇 밤
아이가 엄마에게
‘엄마, 몇 밤 자고 와’
마지못한
‘세 밤’
하나, 둘, 셋
세 밤
작은 손가락 구부려
하나, 둘, 셋
세 밤
어머니
오천 번 째
세 밤입니다
아직
그리웁습니다
2-119
5월의 노래
5월하늘 너무 맑아 산하도 더 푸르고
코끝에 스치이는 아카시아 맑은 향
오호라 푸른오월엔 향그로운 맑음이
오늘은 어린이날 내일은 어버이날
아이들 잘 자라고 부모님 건강하소
5월의 하루하루는 기쁨으로 좋아라
부처님 태어나신 탄신일 맞이하여
아이들 손을 잡고 부모님도 뫼시고
깊은 산 도리사오니 자비심이 일어라
아이도 어른들도 산 좋고 맘도 좋아
온가족 마음속에 기쁨가득 행복가득
5월아 너무좋구나 오월만 같아라
2-120
학생주임선생님
‘전부 눈감아’
그 살벌한
학생주임선생님 납시었다
찬바람
오죽하면 찬바람일까
저 무시무시한
정신봉
옻나무로 깍아 만든
보기만해도 아찔한
손바닥 탁탁 때리시며
‘어제....’
예의 그 느린
느리면서 찢어지는
‘어제....’
‘나와’
누군지
무슨 일인지
짐작도 못하겠지만
단호한 한 마디
‘나와’
누굴 나오라는 건지
전부 한껏 고개 처박고
쭈삣거리고만 있다
‘마지막이다’
‘어제....’
‘나와’
저 뒷자리
한 놈 나간다
또 한 놈
또
이번엔 두 놈이 같이
모두 일곱 놈
옆반에서 여덟 놈이었으니
‘그래도 안 나오지’
한 놈이 이젠 죽었다는 얼굴로
삐적삐적 나온다
뭐 그런대로 평균은 했다
‘좋아’
‘오리걸음으로 운동장으로’
요놈들 죄명은 뭘까
뭐라고 자백을 할까
기대에 찬 학생주임선생님
2-121
예수께셔 말셤하셔쎱니다
미안하지만
우리 엄만
예수보다는
신문을 더 신봉했다
예수께셔
뭐라고 말셤하셨다고 해도
엄마는 신문에 났다면
끝이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중요치 않고
신문이기만 하면
어쨌거나
만고불변의 진리로 통했다
그래서
지역신문 어수룩한 기자증에 속아
한질에 60만원짜리
그림동화책을 덜컥 사시고도
당당하시다
예수님
미안합니다
2-122
말인즉슨 맞습니다
소방서에 일반직 공무원이 온답니다
소방직 직원은 전부
불끄는데 보내고
행정은 일반행정직이 본답니다
말인즉슨 정확하게 맞습니다
소방직은 불끄는 일
그에 더하여 구조하고 구급활동하고
소방검사하고 현장 활동을 하는게 백번 지당합니다
그야말로
맞습니다 맞고요
맞는데
그런데
소방서가 없으면 그러면 됩니다
아니면
소방직 일반직 구분없이 뽑았으면 됩니다
현실적으로
소방서도 있고
소방직 일반직 따로 뽑았는데
소방서에 행정보러
일반직이 와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소방서엔 소방직이 근무하고
소방서에 필요한 행정도 소방직이 봐야한다는 겁니다
소방서에 일반직이 와서 소방행정을 본다면
소방직을 뽑을 때 소방행정직을 뽑든가
소방서를 해체해야 합니다
소방서 행정을
일반행정직 직원이 보아야 한다고
굳이 고집을 피우신다면
역발상으로
도청은 물론
일반 시.군청과
모든 관공서에 1명이상의 소방직이
청사의 소방안전을 위해서
배치되어야 합니다
똑같은 원리에서입니다
억지소리 같습니까?
소방서의 일반행정을 일반행정 직원이,
각종 일반 청사의 소방안전을 위한 업무를
소방직 직원이 수행한다
그럴 듯 하지 않습니까?
만약 민방위 재난관리과 직원들이
그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면
우선 그것부터
개선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정말 앞으로는
여러분 말씀대로
미리 소방행정직으로 직원을 뽑으십시오
그 사람들은 화재 출동이나 대형 재난사고에서도
완전히 배제되는
그런 직원을 뽑아 맡기십시오
그러나 지금 추진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어도단입니다
나는 소방직 공채에 지원을 해서
소방직으로 임용되었고
그 사람들은 각기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직렬에 응시하여
지금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 소방공무원은 특정직입니다 2-123
난 어리다
아직
철딱서니없이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다니
세상은
싫어도 좋고
좋아도 좋아야
제법 눈치있게
잘 살아질텐데
싫어도
얼굴 표정은 좀 조히하고
싫을 듯 안싫을 듯
그리해야
그저 속편한 날들 보낼텐데
한 눈에
분명히 싫고야 마니
어린 놈
언제나 철들꼬
2-124
그 놈
중2
첨 배우는 세계사
참 재미있다
샘요
샘요
궁금한 게 너무 많아
선생님이 질겁하시고
어느 날
교무실에 예쁜 아주머니
다소곳이 앉았는데
누굴까?
‘얌마, 일루 와봐’
선생님이 부르신다
‘얘가 걔예요’
아참, 목소리 예쁘네
‘맞아, 그 놈’
‘얘, 어쩌려구 그러니,
자꾸만 머리 빠지는데’
매운 꿀밤 꽁
어지간히
그 놈이 미우셨겠지
그러니 응원군을 모셔왔지
어쩌지
궁금한 건 못 참는데
2-125
新綠
너무나 푸르러 시리도록 푸르러
신록이라 했습니다 5월의 푸르름을
그 빛이 너무 고와서 눈물이 다 납니다
먼산은 진초록 나뭇잎은 연초록
코끝에 향기도 색은 초록입니다
아스라 초록향내에 마음부터 취합니다
아내가 저녁상에 초록밭을 피웠군요
가죽잎 쑥갓 두릅 향좋은 것들로만
신록에 입안 한 가득 푸르름을 담습니다
햇살만 눈부신가 푸르름도 눈부셔
바람결에 팔랑팔랑 나뭇잎 흔들고
참말로 깊고 푸른 봄 너무나 좋습니다
2-126
사나3
태수네 아부지는
반 년에 한 번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은
먼 데 돈벌러 갔다가도
다니러 오시지마는
태수네 아부지만
나타납니다
잊을만 하면 실무시
소리소문없이 나타납니다
‘똥칠아, 똥칠아’
해어름 무렵에
태수가 부릅니다
얼굴이 빨개서
술먹은 줄 알았습니다
놀자는가 싶어서
얼른 나갔는데
주먹만도 내 머리통만한
태수네 아부지
무서운데
뒷산으로 가잡니다
무서워서 아무 말없이
따라갑니다
‘둘이 똑바로 서
니들은 지금부터
싸우는게 아니다
싸우는게 아니라 서로 투쟁해야 한다
투쟁해서 이겨야 한다
얼굴은 때리지 말고
내가 시이작 하면 시작이다
시이작’
싸우진 말고 투쟁하라니
무슨 말인지
둘다 껌뻑껌뻑
‘이 쉐키들 어리버리하나
닝가임마, 닝구라카이
서로 닝가 자빠트리야 이기는기다’
아하 넘어트려야 이기는겁니다
먼저 알아챈 똥칠이가 안다리를 걸어
훌렁 넘겨버렸습니다
‘어, 이 쉐키 잘하네
너 태수 일루와’
뺨에 불나도록 철썩철썩 때립니다
아까 부르러 올 때도 감홍시처럼 벌갰는데
하여튼 이제 사단났습니다
그래도 울지도 않고 눈알만 빨갑니다
‘다시 준비, 시이작’
이제 태수도 독 올랐습니다
그래도 재바른 똥칠이 날래게 걸었습니다
뻐벅 제법 크게 넘어갔습니다
원래 안다리걸기가 똥칠이 주특기입니다
‘이 자슥, 와 맹탕이고 쥑이삐까’
정말 죽일 것 같았습니다
다시 쩌적쩌적 두 대를 맞고
‘태수 너, 이제 똥칠이한텐 졌다
졌습니다캐라’
‘졌습니다’
‘이 자슥 무릎 꿇고’
‘졌습니다’
‘담은 누고’
‘승규요’
목소리가 다 죽어갑니다
하이고 야단났습니다
승규는 내도 이길 흉내도 못내는데
우리 동네 우리 또래 한판씩 다 붙일 모양인데
끝끝내는
태수 뺨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졸래졸래 따라가는 태수 등을 쾅치며
‘따라해라, 사나는 끈기요 안돼면 깡이다’
‘사나는 끈기요 안돼면 깡이다’
태수 아부지 나타나시면
온 동네가 아는 체를 해야 합니다
태수 뺨이 며칠은 볼그리 하니까요
2-127
항아리
제법
된 불에 굽혀
인고(忍苦)의 길 걸었다만
관조(觀照)보단 실용(實用)
꿋꿋이 내 길 가련다
청자(靑磁)야, 백자(白磁)야
너는
이름하여
뭇 사람의 보물(寶物)이구나
나는 그저
끌깨이 댓마리 꾸불꾸불 기는
할메 손길에만
그런대로 보물(寶物)
간장 된장 고추장에 막장
4대 열여섯 식구(食口)
간맞추는 보물
할메 손에
반들반들 윤기나고
내 자리도
뒤뜰 높은 자리
따슨 볕에 서늘한 바람
유리관 부럽잖은 상좌(上座)다
2-128
아내3
누구라도 자신있고요
아들과 딸과 아내와
넷이 함께 외출하면서
뒤돌아보지 않고
뒤로 손을 내면
틀림없을 겁니다
퍼뜩 잡는 건
아내의 손
눈감고
고개 숙이고 있으면
오래지 않아
걱정스런 눈으로
찬찬히 뜯어보고
금시라도 같이
울어줄 사람은
당신, 내 아내입니다
저는 괜찮답니다
며칠후 친척 결혼식에 가야하는데
이것 저것 고민하지만
저는 입던 옷중
가장 유행 덜 떨어진 옷을 골라
입고 가려합니다
입던 옷으로
다만 내 옷은 백화점에 가서
찌지미바지 새로 사고
윗도리도 새로 사고
넥타이까지 새로 사고
최신 유행으로 사려고 고민합니다
그런 아내랍니다 2-129
이판의 노래
컹컹컹
깨앵 깨앵 깨갱
어우우 어우우
왈왈왈왈
하도 다들 개소리라
이리 노래하니
들을만 하우
좀만 자제들 하시길
2-130
항아리Ⅱ
들일 나갔다
오메 몬살것네
저 쪽 산너머
시커먼 먹구름
소낙비 몰려 온다
달려라 달려
신금단이다
저 놈의 남정네
장독 뚜껑 좀 덮지
장죽만 버꿈버꿈
붕어새낀가?
어휴, 장맛이라도 바뀌면
시어미 깡짜를 어째?
마실간 시어미는 다행히 안오고
날 마르면
한 움 소금이나 처 넣으리
마음먹고
‘아, 비오면 독 좀 덮지’
‘내사 누렁이 비설겆이로 한참 바빴네그랴
장맛이야 짜야 장맛이지
이따 소금이나 한 줌씩 넣게’
그 놈 소낙비 시원토록 온다
2-131
아빠의 슬픔
산사에 오르는 길을 걷다가
연록빛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리는 모양이
정말 나뭇잎들이 서로서로 무언가 이야길 주고 받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에게
“딸, 저거봐 나뭇잎들이 서로 무언가 얘기를 나누는 것 같지 않니?”
라고 했는데
딸아이가 피식 웃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줄 알았어요
그 연록 작은 잎들이
살랑살랑 살랑 살랑살랑살랑
‘오늘 바람은 좀 약해’
‘아니야, 아카시아향을 묻혀 오느라 그래
어제와 같아’
이게 아니라도 뭐든
‘언제쯤 우린 진초록, 청록 푸르러게 될까’
무슨 얘기든
나누는 것 같은데
딸이 피식 웃으니
힘이 슈우우우 빠져나갔습니다
실없는 아빠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아빠는 왜 저런 어이없는 말을 할까?
그런 딸이 야속했습니다
그렇게 가르친 자신이 더 미웠습니다
아카시아향을 실은 바람과
저 연록 작은 잎의 대화
그들의 생각을
상상도 할수 없는 딸이
다른 때보다 너무 불행하다는 생각으로
슬펐습니다 2-132
마음이 아프구나
아이야
조금 더 참지 못하고
니 뺨을 후려쳤구나
1초도 지나지 않아
왜 그랬을까
후회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
도로 담고 싶다
담을수만 있다면
못고리 떨리는 것
알지
너무 분해서가 아니라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이야
마음이 너무 아파
어쩔 줄 모르겠다
2-133
취해서
허허허 이것봐라 댓글이 달렸고나
조회수가 올라가네 잘썼다고 말해주네
그 소리 혼자 취해서 흉내시인 되었어요
흉내도 흉내나름 어렵고도 어려워요
읽으면 눈물나는 고운 시 짓고픈데
할수록 내 아둔함에 깊은 좌절 느껴요
그래도 꾸역꾸역 이렇게 쓰가는 건
언젠가 그런대로 좋은 시 내놓을까
아직은 자아도취로 자기만족 뿐입니다
오늘도 시에 취해 하루를 보냅니다
꽃보고 풀을 봐도 시상을 그려내고
언제나 흉내시인은 취해서 삽니다
2-134
부모님 마음
엄마는 너무해요 아서라 말아라
아빠도 마찬가지 안된다 하지마라
우리가 할수있는게 도대체 무엇인지
어릴 땐 그말씀을 야속하다 생각했죠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보고 싶었는데
되는거 몇가지 보다 안되는게 너무 많아
그런데 결혼하고 내가 부모 되어보니
아이에게 해줄 말이 너무도 똑같구나
어린날 내가 들었던 똑같은 말들일세
어머님 아버님 말안듣던 불효자식
부모되어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보니
이제사 부모님 마음 읽을 듯도 합니다
2-135
내외하는
맨날
학교갈 때
저그 집앞에 기다렸다가
손 꼭 잡고 갔는데
빤뚜깨미 살 땐
맨날
지는 엄마 나는 아빠
정분 났는데
고 가스나
4학년 되니
모른 척
못본 척
아이 참
내 잘몬한 기 먼데
차갑고 쌀쌀맞아
가가 간가
아이 가스나
속 다 탄다
2-136
좋다
좋다
아주
니가
좋은
내가
좋다
좋다
웃음
나는
니가
정말
좋다
2-137
얘들아
그래
깔깔깔깔
보기 좋다
그냥
벙싯 웃지 말고
깔깔깔
그렇게 웃어
무어 겁날거 있어
뒷생각은
아예 말고
나만 믿으라고
자신있게 말할
그런 처진 아니지만
어쨌거나
좀은 호쾌하게
통쾌하게
웃는 아이이길 바래
더구나
오월이잖아
2-138
씨름
허메
엄청시러버
저 배
뱃심
으랏차
끄으뜩 들고
패대기를 치네
우불퉁 투불퉁
허메
심쓰먼
내겉은 건
맨날천날 업고 다니겠네
어짜쓰까
난
저 힘으로
날 어찌하면
허메
왜
두욱뚝 떨어지는
땀방울
황홀허까이
2-139
독종
‘야! 저자슥 깡 좋데이’
눈 똑바로 뜨고
뺨 쩔걱쩔걱 몇 대나 맞고
‘샘요, 지가 멀 잘모했심미꺼?’
당차게 대들던 놈
‘니 올 죽어바라’
왁작지껄 시끌하니
‘어데 이 쉐끼가 선생한테 대들어’
지나가던 학생주임 선생님께
정말 죽도록 얻어터지고도
‘진 잘몬핸거 한개도 읎심다’
파리파리한 눈총 쏘던 그 놈
중학교 입학 하자마자
완전히 스타된 놈
덩치는 자그마 해도
‘절마 저그 그때 그 독종이다이
절마 조오심 해라’
2학년들도 좀 조심을 했던 그 놈
지금
그 맛난 한우 전문점
문 닫으까마까 고민하며
눈물 훔칩니다
‘우째야되노’
막막하다며
긴 기인 한숨집니다
2-140
民草
일본도 중국도 미국은 米國
우리는 美國이야
그러니
狂牛病도 光牛病인줄
그렇게 알았겠지
明博을 盲懪이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우리 國民이
穹民이기에
이래도 慘苦
저래도 참고
그러다 한번 터지면
民草 무서운 줄 알랑가
아아, 憫憔여!
2-141
다른 추억의 항아리
한 겨울 밤
누구네 사랑
쇠죽을 끓여
뜨끈한 방
궁디 델라
없는 누구 흉도 보고
노래도 하고
맞춤으로 네명
하하호호 재미난다
시장기 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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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은 꽁먹고
2등네 집 물김치, 무시
3, 4등아 갔다와라
부디 표 안나게
뚜껑이나 잘 덮어라
눈치빠른 어메
모르도록 살며시
너는 물김치 나는 무시
한아름 들고 안고
옜다 한 바가지
캬아 시원타
무시는 덤붕덤붕
모양나게 잘 깍아라
사각사각 꿀맛이다
동짓달 깊은 밤
이 시린 물김치
2-142
맞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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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맞을거예요
저보단
그이가
뭐든지 더 잘 하잖아요
저는
그냥
그이 얼굴만 보다가
아무것도 생각 못하고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그이 얼굴만 보다가
그러니
그이가 맞아요
다
모두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인 다 알아요
그이가 그랬다면
절보고
바보라고 했다할 때
아니라고 안그랬어요
더 심한 말 해도
아니라고 안해요
저는
바보같이
그이만 바라고
아마 맞을거예요
2-143
5월
봐
저건
너무 심한
연록
초록과 연초록 사이에
오오 올라운 연록
봐
파란 하늘보다
초록 앞산보다
연초록 나뭇잎보다
연록의 아이 웃음
오오 희망의 5월이지
2-144
고무줄
조오기
은행나무 뒤
숨어 있고
우리도
안다
눈치챘다
모른 척
고무줄만 팽팽
기찻길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너무 낮아
무릎은 너무 낮아
좀만 더 기다리자
우리도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그래 허리
이때다
우리도
고무줄 중간을 가로지르고
놀라는 척
엄마야
몇 발작씩 더 뒤로 물러 나
잡아챘다
놓았다
으악
한끝은 손에
한끝은 얼굴에 정통
달려야 하는데
너무 아파
지지배들중
덩치큰 옥순이
똥칠이 너 일루와
와고고
아프고
부끄러워
우는 수 밖에
우왕
2-145
그대들
단결
정구죽천이요
그만하면
뭔가 이루겠소
대가에게
경하드리며
쭈욱
똥칠로
벽화라도 그리시길
달다달다 달아도
어디
세치 혀
따라올 이 있겠소
오로지
단결이요
그에
정구죽천이요
좀은
외롭소
2-146
골라골라골라
막 골라여
아지메 기양 가면 어예
이리와 봐
은근히 이끄는대로
아유, 몸매 지기네
이거봐 참 곱다
골라골라골라
골라골라골라
아지매요
막 골라바여
뭐시라 두장에 오천원이 비싸다꼬
안팔아
가 아지매
가 가 훠어이
두장에 오천원이 비싸면
아지맨 펴엉새앵
몸뻬이 몬벗는다
시장에
저놈 제법 젊은 티 나는 놈
난전에서 날고 난다
입 걸다
이놈아 난들
천사 날개같은 옷 마다하겠나
그돈 오천원이면
우리 네식구 몇날을 산다
미안하다 이놈아
제발 웃진 마라 2-147
사랑타령
그건 정말 아니야요 나는요 아니야요
얼굴을 돌리고 찡그리고 있어도
정말로 싫어서여는 아니요 아닙니다
님께서 이리오라 오니라 가까이로
하이구메 가슴이 둥당당 둥둥당당
이것아 좀만참아라 너 터지면 나 죽는다
정이네 사랑이네 요리조리 예쁘구나
오늘은 저하늘에 달도 따고 별도 따고
어린년 풋사랑으로 꿈결같은 시간이
가련다 떠나련다 사랑이 시들하다
님께서 마음변해 찬바람 싸늘하니
울래도 맘두근거려 눈물없이 웁니다
떠나간 여쁜 님이 다시온다 기별왔네
혹여라 맘변할까 꽃단장 하였더니
저없는 짧은 시간에 바람났나 물으시네
2-148
미안해Ⅲ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아니 착각인지 모르지
내 생각인지도 몰라
그래 입을 달싹이며
미안
후 몹쓸 인간
양심은 있었는가
미안
미안
그 놈의 미안소리
백번도 넘고 천번도 넘을
그놈의 미안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미안
그리 미안할 짓 하질 말지
고개를 끄떡여 주었다
미안하다면
용서해 주어야지
죽어가며
용서를 비는데
아직 새댁인데
배부르다고
새시앗을 두고
아유 아유 말로다 뭤해
그래 편히 가소
좋은 데 가소
가서
혹 내키거든
내 자리도 좀 봐 두소
마지막 숨 몰아쉬고
숨은 저리 넘어가는구나
싶은데
눈가에 맺혀지는
눈물
한 방울
내 알겠소
편히
후울훨
어데든지
편코 좋은 데
그런 데 가소
2-149
장미
뒷덜미 잡아채는
장미향에
결국
몇 발작 못 걷고
돌아서서
꽃잎에
코를 들이대고
말았다
오월
붉은 장미
그리고
향
2-150
회룡포
용꼬리
휘감아 돌아
하회보다
더 고운 모래밭
회룡포엔
모래무지
미꾸라지와 달리기 한다
회룡포가는
장안사
눈물 흘리는 종
올해도
많이 우시니
겹경사 있을라나
옹기종기
고사리떼
바람 맞으라 청한다
용궁속
물길 휘도는 회룡포
전망대에서
저 놈 용대가리 때려잡을
죽창 다듬고
아미타불
금강경 외며
자비심 일운다
2-151
가정방문
오늘 오후에 가정방문 한다
쿵
천길 낭떠러지로
셈을 놓으니
첫째, 둘째, 셋째
눈물 핑그르르
너무 바쁘다
엄마는야
다 돌고
선생님집에 돌아 가셔도
절대 못와
얼른
다만 자고난 이불이라도
땟국물 짜르르
더러운 이불만이라도
빠르시면
곧
들이 닥치시겠다
복실이 똥
아직 마당에 널널한데
봉당에
자고 있는 복실이
무얼 그리 처먹었는지
똥칠아
부르는 승규가 얄밉다
샘 오셨다
안 그래도 안다
너무 부끄러운
가정방문
2-152
옥수수빵
똥칠아
오늘 좀 남아 선생님 좀 도와 줄래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몇 몇이
또야 또
나지막히 속삭여도
분명하게 들립니다
맞았습니다
또 선생님은
뭐 시킬게 있어서가 아니라
옥수수빵
애들 하나씩 나눠주고 남는 것
여섯 개를 주십니다
작은 보자기에 싸서
남모르게 주십니다
고맙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합니다
그냥 한 개만 더 주시면
두 개만 더 주시면
좋을텐데
그래도
선생님
고맙습니다
2-153
친구에게
봐라 봐 그옛날을 잊었냐 잊은거냐
불알밑 곰실곰실 털날 무렵 우리가
친구야 의리아이가 외치던 그날들을
한잔해 한잔해라 만나면 쓴 소주잔
들어라 마셔라 취하도록 마시고
의리의 사나이돌쇠 그게바로 너와 나
어쩌다 살길 찾아 너는 너 나는 나
이따끔 풍문으로 네소식 반갑고나
언제나 다시만나랴 눈물이 앞선다
잊은 듯 잊혀진 듯 그렇게 살았건만
세월가고 나이차니 더더욱 생각나네
친구야 보고싶구나 그리웁다 내친구
2-154
回想
짜고 짜고 짜내서
기억해낸
1970년대 어느 날
녹원기술학교
낮은 학교로 갑니다
봄동 푸릇한 마당에
돼지오줌보를 차던 아이들
눈물나도록 파란 교복 부러워
문경중학교를 비잉 돌아가려고
논밭두렁을 달려야 했습니다
초여름
언젠가 생긴 카바이트 공장
그 냄새 견뎌내며
최병식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던
원예학을 배워야했습니다
기어코 학교는 없어지고
아이들은 모두
제사공장으로 갔습니다
해성전수학교가 없어지자마자
녹원기술학교도 같이 없어졌습니다
2-155
다알지
애들은
자가
나보다
뭐든지
잘하는 거
잘 알지
그래도
반장선거
자 안찍고
나 찍는 건
자만 몰라
자는
뭐든지
지가
젤이지
그러니
좀은
모자라도
미련없이
내게
한표
던지는게야
부려먹기 쉬운
2-156
댓글
아유 아유 아유
흐흐흐
다들
잘 하면
간도 빼 주겠다
아유 아유 아유
간드러 지냐
간들어 지냐
2-157
시인 천지
하하
제발
시인 아닌 놈만
요요
붙어라
하하
한 놈도
안 붙냐?
대로에서
마주치면
베레모에
수첩 한권 안차고 있어도
김시인님일지 모른다
이시인님일지 모른다
너무 흔해
값없는
시인님들
2-158
님이시어
맘 설레어
못 참겠소
궁광궁광
둥당둥당
님 오시면
어찌 할까
있는대로
아양떨고
오직 나만
보라할까
마음아파
못 살겠소
임 가시면
어이할까
안되겠다
가지마소
제발비니
맘 돌리소
끔찍하고
눈물나오
2-159
항아리여
문경 영남요
김교수님 밑에서
망댕이가마에
불 넣고
좀 갈차주소
포원을
야박시리
너는 남이니
말어라 하시고
에라
난 갈라요
도회로 갔다가
땅바닥 기고 기어도
먹고 살만하지 않아
돌아와
청자 백자 못굽고
옹기쟁이 됩니다
김교수님 아드님은
명장이 되고
한많은 나는
옹기장이
송진 묻어나는
장작 던져넣으며
천출 아버지 원망
참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옹기항아리
반짝
손가락 퉁 튀기면
챙
그 소리에
긴 한 스러질 듯 합니다
천상 옹기쟁이
오늘도
백토 뒤적이며
하루 갑니다
2-160
진실로 이젠 분노할 줄 모르고
내가 좋아하는
껍데기가
허적허적
일상을 걷고
아내가 좋아하는
또 껍데기가
방긋한 미소로
열심을 산다
아이들은
니들이 뭘 알겠니
니들이 뭔 죄있니
내가
다만 용서를 빈다
어쩌면
무릎을 끓고
천배 만배를 올려야 할지도 몰라
2-161
개구리알
똥칠이
니 개구리알 머 반나
아니
개구리알을 누가 머
마야, 개구리 알이 얼마나 마싯따고
에이
이 자슥이 속고만 살았나
에이, 암만 그래도
마 니 전에 석구 버졈난거 밨제
으
마 개구리알 묵고 다 안 난나
깨끗해 졌다아이가
저기 완저이 보약인기라
만뱅통치 아이가
승규한텐 안 속아야 하는데
이미 솔깃해 졌으니
대책없다
아 자슥이 의심은
자슥아 내도 같이 무께
니는 쪼매만 무라
존거 나는 마이 물끼라
에퉤퉤
결국
개구리알
저만 먹었습니다
당하고 당해도
당하고 나야
아, 또 당했구나
압니다
2-162
보릿고개
밤 깊다 개고리가 떼울음 우짖는데
어메는 윤사월에 이 고개 높고 길다
꼬르륵 어메 배에도 어느틈에 개고리
칡뿌리 찾으면 서방님 진짓상에
어메는 솔껍질로 허기를 달랩니다
아이는 옴짜부러진 젖을 찾아 웁니다
배급탄 밀가리는 어찌그리 잘 주나
수제비 한 그릇은 옹골차게 퍼담고
어메는 다시 물부어 숭늉처럼 마십니다
저그나 살피시면 좀이라도 남길사
어따야 배부르다 하는 꼴도 미웁고
남몰래 부뚜막에서 소리없는 눈물만
힘들고 숨차구나 어메의 보릿고개
세상이 뒤바뀌어 보리밥 찾는다만
어머님 영전엔 다만 하얀 쌀밥 올립니다
2-163
내가 아는 휴전선
1983년 7월
신병교육대
각개전투장
돌격앞으로
초전박살 10분간 휴식
그 담배 한 모금
6주 신병교육
자대 배치
삼천봉 비오는 천막
고향이 어디냐
오오 대남방송은
아주 선명하다
뻔대머리 괴뢰도당과
주한미대사 워커
전희순
김창완만
냉장고의 고등어로
맞대응하고
월봉산에선
삐라 삐라 삐라
철조망을 두드리는 빗소리
오후 4시반
일발필중 사격
투입
졸음이 쏟아져도
크레모아 격발기
간첩을 잡으면
육개월 포상휴가
아군을 쏘아죽여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면
영웅이 되고
휴전선에서
까마귀 떼
그 짧은 부리로
백로를 쫓고 있다
니가 없어야 평화
갈대밭에
불이라도 질러야
뻥뻥
대인지뢰가
평화를 외치고
오오 30개월
나의 젊음은
마장동에서
마저 배설하지 못하고
오리걸음으로 대성산을 오른다
2-164
재회
잊을테요
잊고 살테요
잊은 듯
잊고 산 듯
아무 말 안할테요
참 힘드오
우예 그키 말없노
내 잊었나
그단새 잊었나
야속타
야속타고
속모르는 당신
너무 밉소
2-165
경고
나 좀
내버려 둬
가만
내 눈에
눈물 방울 떨어지기 전에
발악할 수도 있어
지금
노랑불이야
2-166
세상살이
아닙니다 하지못해 맞습니다 했지만
혼자 몸이었다면 분명히 했겠지
세상아 미안하구나 내 연기가 그럴듯허냐
저렇게 어린놈도 만만치 않구나
무턱대고 달려들단 큰코나 다치겠다
이세상 날 못당할 놈 어드메 있으랴
사람들 눈초리가 차고도 시들하다
이래도 한번 참고 저래도 한번 참고
죽은 듯 숙여지내니 죽일 놈은 없구나
둥글둥글 사는 것이 신상에 더 이롭고
나먼저 숙이는 것이 세상살이 좋아라
심장에 속썩는 것은 나중 일 아니런가
2-167
귀신불
해질녘
히야가 뒷마당으로 부릅니다
고추밭 작은 흙무덤
‘똥칠아, 요 잘 바라’
틱 성냥을 켜니
폭 불이 붙습니다
‘아, 깜짝이야’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비밀이다, 여 서구 나온다’
‘참말, 참말 히야’
‘그래 인자 우리 부자 됐다’
‘이야!’
똥칠이는 만세를 불렀습니다
한참 웃던 히야가
흙무덤 헤치더니
허연 돌 두개 꺼냅니다
‘짜슥아, 이기 까바이트다’
‘뭐가, 뭐가’
‘똥칠암마, 이기 까바이트란 기다’
파묻고 물 조금 뿌리고
불붙이는 까바이트
학교에 가서
‘야들아 일루 와바’
미리 준비한 귀신불
‘야들아 여게서 서구 나온데이’
틱 불을 붙이니
웅성웅성 소란한데
뒤에 서있던 승규
‘짜아슥 까바이트 가 왔구나’
에이참 싱거워졌습니다
그래도 승규 몰래 없는데서
두 번은 써먹었습니다
신기한 까바이트 귀신불
2-168
나는
나는
아니 저는
아니 아니 나는
아니 저는
저는
아이 씨
아니 나는
나는
나는
아니
저는
할말 없습니다
드릴 말씀 없습니다
2-169
어젯밤의 짧은 시상
아직은 하얀 밤이올시다
승부
져도 돼
김형 내가 말했던 것 잘 기억해
언젠가
그리움
그리 하얐습니까?
이 육신
푸욱 고와
허물허물한
나는 동정녀 머리아와 어떤 관곌까
언젠가
다듬어지고
보태져
시 비슷한 모체를 갖출
불쌍한
나의 한계들
흉내시인의 한숨들
퍼뜩
스쳐지나간 잡스런 시상들
안타까운.......
2-170
5월엔
배부르다 아카시아 장미꽃 그 향으로
아이들 걀걀걀걀 그 웃음만도 배부르다
5월엔 향내음 웃음 행복으로 겨웁다
눈부셔 연록으로 청록으로 드푸른
앞산 뒷밭 가로수 푸른 하늘 눈부셔
5월엔 푸르런 마음 싱그러워 예쁘다
2-171
두 번째 사랑
보이시데이
어예 시간 되니껴
여가 되거든 내 좀 보이시더
어예마 그키 무심하이껴
내가 멀
참 무던타카끼로
어예 그키 재밋대가리 읎시껴
이래 팔도 좀 끼고
어 참 무신 일이고
카지마라
넘사스럽다
아니 누가 누가
홀애비 과부 정분나기 여사지
누가 머라칸단말이시껴
그래도 사람들 눈이
눈이 와요 눈 무서버
사랑도 모할랑가
아이껴 기껴
그래도 이 안동따서는 좀
범절도 갖추고 예도 찾고
하이고야
그 놈의 예의범절에
한 세월 다 보내며는
이 두 번째 사랑마자 홀홀 날라 가뿌릴끼요
우린 고마
사랑만 하이시데이
안그러이껴 그러이껴
도대체 기껴 아이껴
그것만 말해보소
안동 홀애비 권서방
여시겉은 애인에게
우예 대답할랑고
꼬집힌 팔꿈치 좀 아프다
2-172
채변봉투
똥칠이 오빠야 그거 가가나
머
그거
그거 머
똥
구린내 나듯이 코를 찡그립니다
아차차
큰일났습니다
오늘까지는
꼭 가져가야 되는데
정말 야단입니다
가방 내려놓자마자
변소로 갑니다
억지 춘향으로 힘을 주고
땡땡땡 땡땡땡
첫시간 시작종 치는데
영 소식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긴 작대기 구해
변소 칸칸 뒤지다
엎드리면 닿는
똥 조금 찍어
채변 봉투 담아 냈습니다
달포쯤 뒤
야들아 우리반에 신기록 나왔다
선생님이 벙긋벙긋 웃으십니다
동철아 니 배에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마이 키우는구나
이거 다아 먹어라
두 손바닥 수북이 약을 주십니다
2-173
동거 1일째
사무실에
어디서 나왔는지
바퀴벌레 한 마리
모니터 주변에서
긴 더듬이 뽐내며
점점 영역을 넓힙니다
한번
손으로 탁
쳤으나
아주 재빨리
잡동사니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아하 너무 빨라
잡진 못하겠구나
그래서 어정쩡한 동거
깔짝깔짝
신경을 건드리고
그래도
니 맘대로 해라
뭔가 무기될만한 걸
들기만 하면
째빠르게
안전지대로 달아나고
신경이 쓰입니다
하하하하
바보같은 놈
하필이면
달력 틈사이로
짧은 동거 끝났습니다
커피를 마신 종이컵에 갇혀
컵을 들면
다리만 달달달
좀 덜 까불었으면
평생 같이 살았을지도 모를 일
아하 가급적 까불지 말자
동거하는 사람을 위해서
2-174
기대
그래
때론
헛꿈이라도
꾸어야
치열해지지
24, 37, 44, 45....
그래봤자 매번
저 좋아하는 숫자들
물론
더 없을 행운때문이지만
치열해지기 위해
조심스런 검은 칠
토요일 저녁
결판날 때까지는
잔잔한 흥분
손에 쥔 인생역전 한장
치열해지기 시작
2-175
단오날
짖궂은 큰 누야 친구
옥심이 누야가
똥칠아 이거 참 맛있데이 먹어봐라
단오날 영신숲
그네 뛰는 구경하다 누야 친구가
큰 주전자에 쪼르르
막걸리 한 사발 주는데
야곰 야곰 맛있다
누야가
동칠아 안돼 술이야
해도
야곰 야곰 맛있다
히히 히히
야이, 똥칠이 술 챘다
히히 히히
괜히 누나 옷고름 잡으며 웃고
히히 히히
비츨비츨
그네 가까이 가니
그네 뛰던 아줌마 기겁을 하고
그래도
히히 히히
누가 애한테 술을 저리 멕였누
할매들이 까시눈을 하고
큰 누야 무릎을 베고
5월 선들바람에 꿈꾸며 자고
5월 단오엔
지금도 영신 강가에 창폿물 흘러갈까
큰 누야같은 누야들
그네 들뛰고
철없는 나는
막걸리에 취해 꿈꾸며 잘까
그립다
2-176
談笑
꼬부랑 할매 두분 입까지 가리면서
소곤소곤 호호호 호호호 소곤소곤
뚜꺼운 돋보기속에 고운마음 숨겼나
정말로 궁금해서 무었이 어떤 것이
그리도 재미나고 그리도 우스울까
슬며시 옆자리앉아 귀쫑긋 세웁니다
언뜻언뜻 바람결에 홍영감과 박영감
홍영감은 어떻고 박영감은 또 어때
오호라 검버섯 펴도 관심사는 남정네
양지쪽 좋은자리 앉으신 할무니들
소곤소곤 나누시는 가벼운 담소에는
훤칠한 남아대장부 몇분에 관한 말씀
그 모습 어쩌며는 추해도 보이런만
오히려 엿보이는 꽃같은 여린 마음
할머니 예뻐보여요 젊게젊게 사세요
2-177
체육시간
체육시간만 되면
물 만나는
학교대표 달리기선수
옥순이가스나
왠일로
죽을 상을 하고
나뭇그늘에 앉았다
그땐 몰랐는데
가스나는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고
그래서
한치 더 큰 키보다
봉싯한 가슴보다
마음이 이미
누나같았던 게야
2-178
내사
니 캤제
내사 니 엄씬 몬 산다꼬
그 캤제
그 캐서
내 다 내삔지고
왔다아이가
머
머
인물
집안
재산
머
도대체 머
암껏도 엄써도
내사
그 말만 믿고
철떡겉이 믿고
니만 믿고
왔는데
카지마라
좀 좀 좀
내사
머라캐도
니 빽이 엄따
2-179
밤을 노래함
그 밤은 아니지요
하얀 별들이
강을 이루어
곧 견우 직녀가
그 별들을 밟고
서로 만날 것같은
그런 강을 이룬 별들이
내려다 보는 그 밤은
지금은 아니랍니다
그래요
그런 밤의 애틋한 사연은
이젠 그저 먼 과거의
꿈같은 얘기일지 몰라요
별들이 변했는지
내 눈이 흐려졌는지
그 밤이 그립습니다
내 눈에만 像을 이루는
그 아렷한 밤
별들이 쏟아질 듯
유성 하나 선 그으며 떨어지면
저 많은 별들 일제히
따라 떨어질 것 같은
그런 밤 참 그립습니다
2-180
가끔씩
아주 가끔씩
내가 여자였으면
내가진 무거운 짐
좀 줄어들지 않을까
또
내가 바보였으면
이렇게 힘든 생각
하지 않을수 있을텐데
아주 가끔
시를 몰랐으면
시 안된다고
머리 싸매지 않을텐데
가끔 아주 가끔
새털같은 많은 날들
그 많은 날들중
아주 가끔씩만
2-181
세상 살다보면
고개를 살짝 숙였더니
휙 지나갑니다
저건
정통으로 맞았다면
아주 큰
상채기 생겼을겁니다
살다보면
그저
정확한 시점 포착해서
고개 살짝 숙이고
오른쪽 귀와 왼쪽 귀
관통시켜
들은 척 만 척
잘 피해야 할 순간들
많습니다
2-182
고향소식Ⅱ
지방신문에
문경시 시의원
하하하
웃긴다
저 새끼
시의원됐네
하하하
등신같이
좀만 놀리면
눈물 찔찔 짜던
하하
안보던 사이
훤칠허니
얼굴에 번들한 기름끼 빼도
중후하구나
나처럼
배만 뽈록하진 않구나
하하
저 새끼
하하
저 새끼
자가
저래 됐네
담에 만나면
의원님 캐야겠다
허리도 살풋 수그리고
두손으로 잡아야겠지
2-183
성형
쌍까풀, 눈썹문신
견적 120만원
거금 120만원
아깝지 않았습니다
어머어머 참 잘 나왔네
얘 참 예쁘다
어머 어디서 했니 너무 예뻐
이제 몇 번 더 들으면
안 보태고 백번입니다
거울보며
다음 곗돈 타면
턱 좀 깍을까 고민합니다
2-184
속마음
‘야 ’
말할까
말까
학일까
어찌 저리
점잖코
어른스럽나
가스나
‘야
넌
육영수야’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몰라
갸우뚱한 얼굴
‘넌 육영수라고’
그 말 속에
너 참 좋다
속마음
들키지 않으려
궁둥짝을 퍽
2-185
촌놈들
면소재지에서
한참을 더 들어가야하는
촌놈들이
시내버스를 타도
통학을 할수 있지만
굳이
자취를 해야하는 궁극의 이유는
비상시
최소한
돈을 만들
쌀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쌀 한 두번
안 팔아본 촌놈들
있냐?
2-186
무작정
여보여보 촌길로
한적한 촌길로 좀가
어머어머 저거봐
벌써 보리가 폈네
오오오
그랬었구나
아내는
봄인 줄도 몰랐구나
사느라고
아카시아향
밤꽃향
여보
거름냄새가 참 고소하네
너무 고소해
여보 여보 여보
우리 저기서 뭐 먹자
유리문에
빨간 글씨
만리장성
군데군데 헤어진
한 때의 만리장성
장사나 할랑가
역시 쩔걱거리기만 할뿐
열릴 생각이 없다
무작정
촌길로 들어서
잠 온다
아내는
잠이 드는지
추억에 잠기는지
외면한 얼굴에
살짝 눈물 방울 맺혔을 지도 몰라
2-187
자취생
야야
생일 축하한다
다들 마셔
자 부라보
꼭 여덟놈
옹기종기 앉았다
덕팔이놈
담배
그싯게 빼 물었다
낼 아침은 없다
고놈
야박하게
정말
아침을 주지 않는다
얌마 아침 좀 먹자
배고프다
이 자슥아
어젯밤에 우리가 다 마싯자나
자취생은
쌀이 술이고
술이 쌀이고
2-188
소풍
세상에
김밥이
김말고
단무지
햄 계란
이상한
것들을
넣어서
잘 썰어
예쁘게
싸는 건
몰랐네
밥에다
참기름
맛소금
비벼서
무처럼
도시락
담아서
손으로
잡고서
먹는것
그런줄
알았지
2-189
열녀각
한전앞 열녀각
검은 밤
잘 들여다보면
하얀 소복의 예쁜 여인
눈없는 여인
분명히 있다
한전 사택
빨간 일식집
지붕 뾰족하지
해방될 때
일본놈 부부
목잘라 매달았단다
정말이래
한전앞 열녀각
열녀 무섭나?
일본놈 무섭나?
해만 지면
그 앞 지나가자면
뒷덜미 찬바람 불고
좀 뛰어 지나간다
2-190
꿈꾸니
아직
어쩌면
그 자리에
다소곳한 미소띠고
망부석처럼
그렇게
기다리고 있을거라
그런
꿈꾸니
그래서
가끔씩
들리는 거니
2-191
현실아
현실아 웃지마라 어리석다 놀리지마라
난들 좀 약고 셈 바르게 안살고 싶다나
허허허 헛웃음으로 나야 그리 살란다
살다보면 현실이 사알짝 삐진 것 같고
내 어리석음 탓도 되고 마음도 아프고
그러나 속마음으로 언제라도 그러나
좋아요 맞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저사람 바보같다 한입으로 놀려도
그래요 바보입니다 정확하게 아십니다
현실아 어리석은 놈 그냥저냥 살란다
놀리지도 탓하지도 제발당 말어라
세상에 한놈정도는 순수하면 어떠랴
2-192
그녀의
우연히
본
돌돌 말린
팬티
잠시
그렇게 작은 것이
입혀지는 것도 신기하고
내 눈앞에
퍼드러져 있는 것도
신기하고
빨강색
그녀의 팬티
내게
무어라 말하려
옴싹거리고 있다
2-193
너를 그리며
비가 오면
언제나
내 관념은
오래된 습관대로
스레트 함석을
투욱 울리며
빗소리에 젖는다
추억하기에는
너무 색이 바래
지쳐버린 시간들
너무 아련해
마음부터 아프다
자취방의 백열등
가끔씩은
그 등 온기로
외로움을 삭힌다
사방 한자짜리 창
그 창으론
언제나 반달
너무 춥다
비가 온다
우산없이 걷기엔
춥다
외로워 너무 춥다
추워 너무 외롭다
그때도
지금도
너를 그리며 2-194
병 깊다
너를
사랑하는
이 맘
깊은
병이다
딱 한 줄
맘에 쏙드는
글에
벙싯벙싯
흐뭇하니
내병
내 안다
곧 못 고칠
불치의
중병이다
나도 시인이고 싶다
2-195
나비
팔랑팔랑
날아
어디든 가리
오오! 꽃
조금만 날면
꽃은 지천
신이 내게 준 소명 이루기위해
쉼없이
팔랑팔랑
단지
예쁘디 예쁜
꽃들만
애타하고
나는 그들에게
날아가리
그러니
내 날개도
좀 예뻐졌으리
배추흰나비야
너도
가만보면
예쁘다
2-196
봄, 흐르는 세월
세월 흐르는 것
느껴보려
강가에 갔는데
무심하다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고 흐르는 게 아니라
누렇게 누운 풀들
파릇하니 벌떡 일어선
새로운 젊음으로
흐른다
지금은
강가에
봄이 흐르고 있다
2-197
그리움으로 뭐 좀 해봐
젠장
이놈의 그리움은
쓰잘데기 하나 없어
젠장
살살 잘 펼쳐
부침개라도 해 먹을 수 없다면
젠장
가슴 얼얼하도록
아프지나 말 일이지
젠장
못된 꿈처럼
몸 한번 비척이면
겨우 깨어나기나 해야지
젠장
2-198
유월의 긴 태양이여
배들배들 고는 고추모종
세우고 물주느라
우리 아부지
목덜미 다 탄다
어매는
물 한 동이
머리에 이고
따배이 받쳐도
익은 머리
억눌려
머리통 터지겠다
유월 긴 태양아
아부지 따라
어매 따라
논, 밭일 많고 많아
벌써
열흘째 학교 못갔다
너 따갑고
원망스럽다
동무들 안보려
아부지가 배려해 준
헤진 밀짚모자
더 깊이 눌러 쓰고
쩍쩍 갈라진 마른 논
하염없이 바라본다
2-199
봄을 보내며
이봐 한숨 짓지마라
그리 한탄할 일 없다
꽃이야 진들
그 생 끝나는 거 아니다
더 찬란한
더 푸르른
더 만족한
삶 새로 시작한다
자연의 본능
다시 새로운 탄생과
그들의 인생 시작되고
이봐
한숨짓는 자네만
그저 오늘 흐른 시간
되돌릴 수 없음을
서러할 뿐이로다
그러기에
인간들은
자네에게 생소하지만
꽃들은
언제나 꽃들
자네도 자넬 버려
그냥 인간들 속에
속해버려
그럼 무에 한탄하겠는가
무얼 한숨짓겠는가
부질없음에
덧없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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