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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노대통령의 2005년 시위농민사망 대국민 사과문-
‘미수다’라는 TV프로에서 '미르야'라는 독일 아가씨가 한국인들이 자신에게 히틀러에 대하여 물어 보거나 심지어 긍정적인 표현까지 하는데 자신뿐 아니라 독일 국민들은 예외 없이 히틀러에 대해 심한 수치심으로 언급을 꺼린다면서, 그런 대화를 하는 사람들과는 다시는 안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히틀러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프랑스인 역시 히틀러에게 지배당했던 2차 대전을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아예 화재거리로 삼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런 측면에서 일본인들의 침략전쟁에 대한 무지와 무책임과 전범에 대한 신사숭배는, 독립운동가나, 4.19나, 5.18을 좌빨로 제거하려는 짝퉁 이스라엘 황인종들처럼 용감하고 뻔뻔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는 늘 울그락불그락하며 기괴한 인간관계와 냉소적인 대화가 난무하며 갈등으로 얼룩지는 TV드라마나, 대부분 본질을 건너 뛴 나쁜 뉴스만 반복하여 학습시키는 언론미디어와 전쟁드라마나 조폭드라마도 싫어하고, 별이 주렁주렁한 2mb나 전쟁광 히틀러의 성장과정은, 아예 관심을 가질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 와서, 혹시 ‘미르야’에게 찝쩍거린 사람들의 수준과 비슷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몰라서 조사해 보았는데, 민생타령으로 촉발되고 광우, 언론장악, 용산참화... 로 이어지는 우리의 상황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미르야’처럼 정말 큰 수치심이 들었습니다.
◈ 민주주의로 민주주의를 무찌르자?
히틀러는 1889년 4월 독일 국경의 오스트리아 마을 브라우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가정부 출신으로 아들을 버릇없이 키웠고, 아버지는 세관원이었는데 집안의 폭군이었습니다. 베네딕트 수도원에 보내진 히틀러는 선생님들을 미치광이며 폭군이라고 욕하며 지냈는데 16살에 그곳에서 벗어난 기념으로 술을 마신 후, 3년 동안 부랑아로 떠돌다 비엔나의 싸구려 여인숙에 정착해서 무료 급식소 신세를 지며 수준미달의 그림을 그렸으나 팔리지 않자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그 고민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군중 틈에서 그는 1차 대전의 선전포고를 들었습니다. 후에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무릎 꿇고 하늘에 감사드렸다."
히틀러에게 전쟁은 삶의 좌절감을 해소할 돌파구였으며 기쁨이었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그의 뒤틀린 전쟁 사랑을 경멸했지만, 군인으로서 그는 대량살상에 큰 희열을 느꼈으며 부상으로 제대한 후, 철십자 훈장을 받았습니다.
히틀러가 전선에서 돌아 와 보니 독일 국민들은 패전의 수치감으로 아귀다툼이었고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복고주의자들의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히틀러는 정부의 정보원으로 취직되어 독일노동자당을 감시하라는 임무를 받았으나 오히려 그 정당의 당원이 되어 혁명의 음모를 꾸미는 일에 짜릿한 흥분을 느꼈습니다.
히틀러는 맹렬한 거리의 선동가 일을 했고 곧 당의 지도자로 승진했습니다. 그는 당명을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 곧 나치로 개명하고 불만에 찬 부랑자와 불량배들을 "부자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자에게," "강한 독일을 만들자." 며 포섭했습니다. 그는 영원한 투쟁, 승리, 전쟁, 피, 따위의 단어를 즐겨 쓰면서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대중을 지배하는 것이다. 대중을 사로잡는데 나를 이길 자는 없다."며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거리의 부랑아들을 규합하여 사병조직인 돌격대, 즉 테러와 협박이 임무인 나치(갈색 셔츠부대)를 만들었습니다. 히틀러의 나치당은 수천 명에 불과한 소수파였으나 무시 못 할 세력으로 부상하며 히틀러는 권력의 맛에 도취되기 시작하여 정부를 축출하고 독일의 독재자가 되려는 야심으로 한 맥주 집에서 집회를 하고는 뮌헨의 거리로 나서 정부전복을 시도합니다.
이 뮌헨 봉기는 실패하고 반역자로 체포되지만 정치적인 배려로 겨우 8개월 복역 후, 석방됩니다. 복역 중에 그는 자신이 전 유럽을 통치한다는 기괴한 망상을 적은 "나의 투쟁"이라는 책을 씁니다.
히틀러는 국가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누구도 찰리채플린 수염의 이 정치깡패를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석방된 히틀러는 굳은 결의로 변절자, 도둑, 협박꾼, 살인자등 전과자들을 모아 망가진 나치 돌격대를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독일의 위대함을 회복하고 힘센 군대를 만들겠다!”며 "오직 힘만이 지배한다! 피나는 투쟁이 모든 성공의 아버지이다!"고 외쳤습니다. 나치의 구성원들에게 히틀러는 운명의 사나이였으며 세력이 커지면서 권력의 중심에 날마다 한 걸음씩 다가갔습니다.
국민의 500만 명이 실업상태였고 중도파 정부는 위기 속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히틀러는 이 절박한 상황을 이용하여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공산당 역시 폭동을 일으켰는데 두 세력은 서로 권력 장악에 혈안이었습니다.
바이마르공화국의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히틀러를 미워했으나 84세로 정신이 혼미했고 그의 정부는 무능력하여 나치와 타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힌덴부르크를 만난 후 히틀러는 '이제 그들은 내 손 안에 있다."며 기고만장했습니다.
1932년 히틀러는 힌덴부르크에 도전하여 차기 대통령에 출마해서 "폭동도 필요 없다! 민주주의로 민주주의를 무찌르자!"고 연설했지만 독일 국민은 잠재적 독재자 보다는 차라리 병든 노인을 택했습니다.
선거의 참패로 화가 난 히틀러는 더욱 더 폭력적으로 변하여 나치를 동원하여 정치적 소요는 물론 살인까지 자행했으며 궁지에 몰린 힌덴부르크는 "악으로 악을 물리치려" 악질 정치가를 수상에 앉히고 독재에 가까운 권한을 주었으나 여의치 않자 다음 수상을 앉혔으나 위기를 돌파하지 못하여 결국 히틀러를 수상에 앉히게 됩니다.
하지만 1933년 2월 나치 돌격대에 의해 의회 건물은 화염에 무너지고 히틀러는 공산주의자들의 방화로 덮어씌우고 매수한 국회 결의를 얻어 합법적으로 독재 권력을 차지합니다. 이렇게 한 나라의 자유가 독재자의 수중에 넘어가게 되고 히틀러의 유럽장악의 야욕은 불이 붙게 됩니다.
히틀러는 독일의 완벽한 독재자가 되어 약물 중독자였던 헤르만 괴링을 경제상, "위대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히틀러를 사랑한다. 그것은 바로 천재의 특성이다."라고 말 한 요셉 괴벨스를 선전상, "이상적인 지도자는 피를 보고도 쫄지 않아야 한다. 수류탄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어야 한다. 히틀러는 바로 그런 지도자다."라고 연설하는 과거 거리의 악당이었던 루돌프 헤스 등……. 극도로 충성스럽고 무자비한 자들을 요직에 기용합니다.
"사상은 위험한 것이므로 그런 책은 태워 없애야만 한다! 국가의 언론과 문화는 정부가 통제해야만 한다! 나치 이외의 정당은 모두 밟아 없애라! 형편없는 소수민족 유태인은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헤치니 추방하라! 유태인 기업을 배척하고 거리에서 내 물아라! 유태인을 사회에서 추방하라!
히틀러의 광란에 독일은 이렇게 2차 대전의 악몽에 빠져 들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독일 국민은 이러한 테러를 모르는 체하게 됩니다.
◆ 존 러스킨식 共利主義를...
진보의 대한민국과 보수의 대한민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대한민국만이 있을 뿐입니다. 김정일의 나라, 뉴라이트의 나라, 영남의 나라, 호남의 나라, 중부권의 나라, 수도권의 나라, 강남의 나라, 종교 세력의 나라, 재벌의 나라, 학벌의 나라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COREA만이 있을 뿐입니다.
정치권은 권력욕을 버리고 초당파적인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특히 야권은 이념과 가치관의 차이를 극복하고 납득이 된다면 경쟁보다 포용을 택하고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적이 아닌 친구가 되어야 하며 분리보다 통합을 찾아야 합니다. 애국적 넷티즌들도 온라인탄압이나 폐쇄 커뮤니티보다 아고라와 서프등의 오픈web에 집중하여 민중들의 참여를 넓히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벽을 허물고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우리를 이간질해 왔던 이 모든 혼란스러운 것들은 민주주의와 분리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이 모든 혼란에 가담해 온 폴리패서들과 언론들과 정치세력들은 부정이 아닌 긍정적인 희망의 원천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통치자에 의해 행정부와 노동자는 대량해고로 신음하고, 경제는 무너져 가고, 흔들리는 국제관계속에서 우리들은 민생을 오해한 것을 깊이 반성해야 하며, 기업인들은 역할을 바꿔 기업인들에게 맞는 노동유연성(flexibility)과 노동자들을 위한 고용안정성(security)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와 경제 정의에 앞장서야만 합니다.
서민과 중산층이 잘 살지 않으면 기업은 클 수 없습니다.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서로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면 최악보다는 최선을 찾을 수 있습니다.
훌륭한 국민들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10년 동안 쌓아 온 민주주의가 있으니 모든 걸 재건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몫을 해낼 수 있습니다.
구 소련체제에서 당원의 5%만이 미하일고르바초프를 지지했다고 합니다. 당원 95%와 모든 국민들은 5%가 주장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5%가 전체주의를 무너뜨리고 냉전을 종식시키고 개혁개방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우린 전체주의 국가도 아닌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변화를 이루는 것은 쉽습니다.
자유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재구성할 수 있으며 이제 그런 때가 된 것입니다.
국민들과 사회조직의 목적과 선택이 잘못되면 잘못된 거번먼트(government)로 인해 최악의 상황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뒤틀린 욕망과 개인적 이기심으로 혼란을 직시하지 못하고 베블렌 환각에 서로 상처를 주던 사회적 약자인 모든 국민들이 나서서, 새 시대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리더십과 새로운 파트너십과 거버넌스(governance)를 관철해야만 합니다.
어느 시기든, 어떤 상황이든, 어떤 국가나 사회조직이든, 위기는 늘 다가오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무수히 다가오는 위기를 관리하는 역량이 있어야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위기가 다가와서 대응하기보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미리 예측해서 국민에게 위기가 오지 않게 만드는 것이 지도자인 것입니다.
정치가와 국가기관은 대한민국을 이용하려는 강대국들이나 로비스트나 재벌이나 부유한 자들과의 관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정의와 기회를 대변하는 시스템입니다. 잘못된 신념과 정보에 근거한 모든 정책은 국력을 약화시켜 더 큰 재앙을 불러 올 것입니다. 우리는 대내외적으로 서민과 중산층과 국민 전체의 안정과 통합을 대변하는 대통령과 국회와 사법부와 행정가가 필요합니다. 통치자가 그런 지도력이 없다면 국민들에게 자리를 돌려주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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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더버그 클럽의 하수인 오바마가,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 대해 실제로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되지만, 그의 어머니에 대한 회상에서 "어머니는 잔인함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제가 약한 아이를 때리거나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했을 때 화를 많이 내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런 나라의 유권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빠짐없는 투표행위 하나하나가 민주정의를 위한 희망이 되어야 하며, 공통된 목적을 찾아 행사되고 잘못된 진로를 바꿔야만 합니다! 권력으로 아무리 은폐하고 억압해도 2mb의 무능은 이미 국가와 국민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으니 이를 심판해야하며 우리는 민주주의에서 절대 후퇴할 수 없습니다!
12년전 고 건 서울시장때부터 추울때 곤경을 겪는 철거민들에 대한 秋,冬철거는 금지되어왔습니다. 그러나 엄동설한의 용산 참화와 공권력의 만행은 살인을 일으켰으며 중대한 문제입니다. 이런 무책임에 분노와 동정심조차 갖지 않는다면 조만간 한 명의 정권욕으로부터 더 많은 기본권과 생존권을 잃게 되고 마지막에는 나라를 잃을 것입니다. 서민들과 오늘 울부짖는 자영업자들은 단순한 이기심에 기꺼이 자승자박하는 길을 무자비하게 선택한 것이 아니었나 되돌아 봐야만 합니다.다음은 유사한 불상사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반응입니다.
2005년 11월 WTO(세계무역기구) 쌀 협상안에 반발하던 농민대회중 농민 전용철, 홍덕표씨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하자, 국가인권위가 조사하여 경찰의 과잉진압에 따른 사망으로 결론나 대통령과 청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이틀 뒤인 12월29일 허준영 경찰청장이 책임을 지고 옷을 벗어야 했다. 그는 "불법시위에 가담한 농민 2명의 희생 때문에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청장이 물러나선 안된다"며 항변했지만 비난여론에 끝내 물러나야 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농민 시위의 원인을 제공한 박흥수 농림부장관도 물러날 것을 강력히 요구했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시위 도중에 사망한 전용철, 홍덕표 두 분의 사인이 경찰의 과잉행위에 의한 결과라는 인권위원회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이 조사결과를 수용한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사죄말씀을 드리고 아울러 위로 말씀을 드립니다.
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서 정부는 책임자를 가려내서 응분의 책임을 지우고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절차를 거쳐서 국가가 배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번 더 다짐하고 또 교육을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이 사과에 대해서는 시위대가 일상적으로 휘두르는 폭력 앞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힘들게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의 사기와 안전을 걱정하는 분들의 불만과 우려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자식을 전경으로 보내 놓고 있는 부모님들 중에 그런 분이 많을 것입니다.
또 공권력도 사람이 행사하는 일이라 자칫 감정이나 혼란에 빠지면 이성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인데, 폭력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원인된 상황을 스스로 조성한 것임에도 경찰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공직사회 모두에게 다시 한번 명백히 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쇠파이프를 마구 휘두르는 폭력시위가 없었다면 이러한 불행한 결과는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점에 관해서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정부도 이전과는 다른 대책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다시 한번 송구스럽다는 말씀과 함께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다짐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ttp://cafe.daum.net/ma-oolⓒ
우리는 극과 극의 대단한 대빵들을 선택하고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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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 기억이 맞다면 내용을 추가하신 것 입니다.,,,위키님,맞습니까?^^ 아하~!! 검색창에 그 표시가,,,파란색 사각 표시가 ,,,ㅎㅎㅎ
들켰네여~! 광명/님은 정말 기억을 잘 하시고 예리하신거군요....^ ^ 사실 제가 진보도 개혁도 좌도 우도 아닌 공리주의자인데 이것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워 말을 가끔 수정합니다. 조금씩 이해시키는 셈이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