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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가는 산경표 (* 홀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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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약봉분기점~슬치 스크랩 4/14-15 만덕산(모래재-슬치)구간 종주-호남정맥1차
배슈맑 추천 0 조회 98 09.10.27 11: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산행  시간표)

4/14  22:00   신도림

 

4/15  03:20   모래재 공원묘지

        03;30   조약봉

        04:09   적내재

        05:40   곰재                                          5.3km

        06:20   오두재

        06:46   제2쉼터

        07;15   만덕산 삼거리 (만덕산 15분)          2.5km

        07:45-08:15     아침식사  

        08:27   관음봉-제5쉼터

        09:05   마령

        10:20   566봉-슬치-북치

        10:46   416.2봉                                      6.9km   

        11:36   신전리재

        12:20   황산재

        12:45   박이뫼산    

        13;00   슬재                                          6.3km

                       (시산제)

                          

               9시간 40분                          20.9km  

 (개별꽃)

 

(4/14 22:00) 지난 구간 경주 행사 관계로 별도로 진행하여 동료들을 2주만에 만난다. 호남의 첫구간을

지난 번에 2시간 정도 맛보기로 진행한 덕에 오늘 새벽 구간은 크게 부담이 없이 천천히 걸을 수 있겠다.

단지 구간 거리가 꽤 길어지니 첫 구간 끝내고 올리기로 한 시산제가 걱정되고, 오후에 비소식까지 겹치

니 배낭무게만 더해진다. 점점 남으로 향하면서 이동거리는 늘어나고, 올 한해동안에 마무리 짓고자하는

일정이 매우 빠듯하여, 다음달까지 한달에 3주 연속 출정이 이어지니, 배중위 얼굴보기가 어렵겠구나..

 

바쁜 학교생활로 한 밤중에만 얼굴 접하는 예비역 배병장은 운동을 할 시간이 없어 걱정된다. 항상 당부

하거니와 공부나 일상 생활도 중요하지만 체력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운동도 즐길 줄 아는 여유로운 삶이

이어지길 바랄뿐이다. 오늘날 젊은 아들 딸들이 취직을 앞두고 자신의 진로에 대한 선택의 고민이 많을

수 밖에 없겠지만,  선택을 강요받는 직업이  삶의 수단으로 꼭 필요한 보수의 댓가 부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길지 않은 인생사에서 평생의 대부분을 몸담아야 하는 직업이 단지 수단으

로 그칠 수는 없다. 스스로의 시간들에 만족할 수 있고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보람과 명예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비록 남들이 많이 선택하지 않는 길이라 할지라도 내 취미와 훗날의 보람이 예상된다면...

 

그동안 대간 길과 금호남정맥 길에서 자주 이용하던 통영고속도로를 이별하고 천안에서 호남고속도로

를 택하여 익산 I.C를 벗어나 난생 처음 거쳐가는 완주군의 깊은 밤이 정겨웁다. 너댓명의 청소년들이

전주 쯤에서 밤이 깊도록 놀다가 새벽 귀가길 마저 아쉬운지 신작로 나무 주위를 돌며 웃음꽃을 피운다.

그 시절이 그립다. 어쩌다가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어 하릴없이 쏘다니며 밤새도록 노닐던 그 시절이..

밤 하늘에 흩날리는 벚꽃 낙화 처럼 그들의 영혼에도 화려한 축복이 내려와 이 땅을 짊어질 그 날에는

아무런 갈등도 없이 환한 웃음으로 조국을 노래할 수 있기를.. 

 

 (늦게 마주한 마이산 일출)

 

(4/15 03:20)오룡동 고개를 지나 모래재 공원묘지 상단부까지 올라온 산행버스 덕분에 오늘의 출발지인

조약봉까지의 접근로는 많이 단축되었다. 오후의 일기도 걱정되고 시산제등 바쁜 일정을 고려하여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발 아래 모래재 휴게소의 불빛만이 칠흑의 밤길에 동행한다.조약치를 넘어가는 세봉임

도를 따라올라 10여분 만에 조약봉 3정맥 갈림길에 가쁜 숨으로 올라선다. 지난주에 금남호남의 종착을

고하며 절했던 곳이다. 부디 올 한해동안 여수까지 이어지는 호남정맥의 길에서 많은 보람을 안고 무탈

산행이 이루어지길 다시 한 번 빌며 대원들의 다짐을 함께한다.(03:30)

 

남으로 향하는 발길이 헬기장을 지나고, 완만한 내리막을 걸으며 모래재 내림길을 이어가니 산꾼들의 랜

턴 불빛을 본 탓일까 휴게소 멍멍이가 요란스레 짖어대니 주인장의 피곤한 잠을 깨울까 미안하다. 후미

에서 대열을 뒤따르며, 지난 주에 한번 걸었던 기억이 새롭게 느껴지며 달빛도 없는 그믐밤을 서두른다.

쓰러진 전신주를 넘어 된오름과 함께 이어지는 서너개의 작은 봉우리를 남으로 넘을 동안 오른쪽 깊은

계곡의 송정리 마을 불빛 서너개만 동행한다. 산죽군락의 능선을 내려선 후 적내재(죽천치) 고갯길을 넘

어 서면서 신보광산 표지석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04:10)

 

이어지는 작은 봉우리들을 산죽 길과 좌측 경사길을 번갈으며 서너번 다시 넘고서야 쓸쓸한 묘가 지키고

있는 정상을 지나며, 남으로 마주 보이며 동서를 가로지르는 560봉 능선 마루금이 마지막 힘겨움을 요구

하며 다가온다. 한 시간쯤 지났는데도 선두는 쉴틈도 없이 계속 앞서 나간다. 마주하는 514봉 좌측을 돌

아 넘어 서면서 뒤따르던 불빛은 신촌마을 두목리로 바뀐다.좌측으로 편하게 방향을 바꾼 능선은 작은

암릉을 오르는 된오름을 거쳐 563봉에서 90도 오른쪽 사면으로 꺽어 내린다.(04:50) 이 쯤에서 좀 쉬어

가고 싶은데 선두는 곧장 이어 내리면서 웅치까지 이어갈 모양이다.

 

 (새벽을 여는 익산-포항 고속도로 건설현장)

 

10여분의 급경사 내림길이 묘가 자리잡은 작은 안부를 지나면서 우측 목장 펜스를 따라 가벼운 내림길을

인도한 후에 좌우 하산길이 뚜렷한 곰티재에 발을 내린다.(05:00) 어둠 속에서나마 임진왜란의 역사를 읽

으며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왼쪽 덕봉마을에서 올라오는 역사의 함성들이 진치골, 송장골, 피난골, 먹덤

골의 아픈 상처들을 어루만지며 1592년의 여름밤을 실어 나른다.

 

지도상으로 여인네 자궁혈같은 남쪽의 관촌마을을 지나는 슬재를 통해서 전주성으로 침공하기엔 너무나

위험부담이 컸던 탓일까..진주성을 지난 왜병들은 육십령을 넘어 전주성으로 향하는 허리재인 이곳 곰티

재를  택하여 그 힘든 전투를 벌인 모양이다. 결국 그들의 힘을 지치게 할 만큼 사력을 다한 이 곳 능선

곳곳에 산재된 채 돌무덤으로 합장된 병사들의 원혼들만 이 밤에도 조국의 안녕을 빌고 있을 뿐이다.

피어나는 새벽의 안개 속에서 잊혀져 가는 역사의 교훈들이 다시 살아 오른다.

 

계속 이어지는 목장 펜스를 따라 완만한 오름길을 거쳐 신촌 월상마을로 이어지는 임도 사거리를 지나며

마지막 깔딱오름이 지켜보고 있는 곰재를 향한 걸음을 이어간다. 출발한 지 2시간이 되어가면서 급격히

힘이 빠진다. 지난 주의 마지막 걸음보다도 더 힘든 것 같다. 급경사 된오름 후에야 607봉으로 향하는 3

거리에서 오른쪽 내리막을 편히 밟아 가족묘지와 웅치전적비가 있는 곰재 안부에 내려서서 첫 휴식을

취하며 목을 추긴다.(05:35-05:50) 동녘이 어슴푸레 밝아 오기 시작한다. 지난 주에 택시를 타고 내려 갔

던 동쪽 부귀면 작업장에서 새벽을 깨우며 돌깨는 작업 소리가 벌써 시작되었다. 

 

 (조약봉,운장산,대둔산..금남정맥)

 

(05:50)긴 휴식을 취한 후 만덕산 큰 오름을 향해 새로운 호흡을 가다듬는다. 점점 밝아오는 새벽을 느끼

며 곳곳에 진달래가 만개한 오름길에서 더욱 선명하게 짙어보이는 꽃잎들에 갈증을 느끼고 두세개 따서

입에 넣어 본다.상큼한 봄을 맛본다. 짧은 된오름으로 마주보이는 삼각봉 사면을 올라 이어지는 작은 봉

우리들을 오르내린 후 오두재로 내려서기 전 마지막 암봉에서 신촌마을의 새벽과 고속도로 현장이 펼쳐

지는 서쪽 월상리 계곡을 마주하며 속도를 늦춘다. 좌측 사면으로 크게 내려선 후 오두재 묵은 인삼 밭터

를 지난다.(06:20)

 

우측 사면을 따라 오른 후 능선마루에 서니 오른쪽으로 만덕산 정상이 크게 다가오는 편한 내리막이 이

어진다.작은 암릉들과 산죽길을 번갈으며 원불교 훈련원에서 붙여 놓은듯한 '초선성지' 팻말과 함께 서

너번의 오르내림을 거친 후 깨끗한 벤치가 있는 제2쉼터에 도착하여 5분여 휴식을 취한다.(06;45)  오른

쪽 북사면 계곡에 자리잡은 미륵사 요사채의 빨간 지붕이 가깝게 보인다. 본디 불교 이전의 민속 기도처

로 금강암이라 불리우던 암자에서 조선시대 진묵대사 一玉의 모전석탑의 전설을 남긴 채 1928년 원불교

의 초기성지로 결의를 보인 후 오늘날 만덕산 '初禪聖地'의 명예로운 기도처로 자릴 잡았다. 단지 눈높이

로 지나가는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그 소음이나 풍광이 미륵사 인법당 안에 자릴잡은 미륵불의 심기를 건

드릴까 염려된다.

 

여러 토속종교들의 시샘을 뒤로하고 비교적 순탄하게 뿌리내린 원불교의 정신이 부디 이 땅의 중생들에

게도 혹세무민치 말고, 一圓相의 진리를 일깨우고 불교의 현대화를 일깨우는 法身佛로 깨어나기를..

處處佛像,事事佛供으로 四恩에 보답하고 四要를 실천한다면 어느 누가 종교를 일컬어 인간이 만든 가장

완벽한 허구라 말하리요..아귀싸움 같은 헐뜯음에서 벗어나 그 진정한 참됨을 추구하며 병든 인류의 근

본을 치유하는 종교 본래의 가르침으로 돌아서기를..헌금과 시주를 앞세우는 잿밥에서 벗어나기를.. 

 

 (만덕산 분기봉)

 

제2쉼터 오른쪽 오르막을 올라서며 산죽밭과 통나무 계단을 힘겹게 밟아 바위 전망대에 올라선다. 만덕

산 아래 바위 봉우리에 까만 염소 두마리가 아침 일찍 산천 구경에 나선걸까, 위태로운 내림길에 붙어 서

있다.아랫마을에 염소 목장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오른쪽 만덕산 분기봉과 멋진 자태를 보이는 암봉을

바라보며 암봉 좌측을 우회하여 만덕산 분기점 봉우리에 올라선다.(07:15-07:30) 배낭을 벗어 놓고 주봉

을 다녀오는 동안 통신 시설물 앞에서 휴식을 취한다.

 

萬德山..그 이름 만큼이나 넉넉한 지세를 보이며 진안 고원의 끝 자락에 서서 全州 完州 고을의 완벽함을

지켜 주고 있는 것일까..만덕사 절터는 사라졌지만 그 부처산의 영예로움을 간직한 채, 임진년의 아픔과

해방 이후 빨치산의 뼈아픈 소용돌이를 견뎌 낸 곰치재를 지켜보며 오늘도 묵묵하구나..멀리 발 아래 서

쪽 계곡 정수사 마을에서 아침 안개가 사라지면서 무넘이마을(水越里) 아래 상관 저수지가 반짝인다.   

아침 식사를 펼칠 만한 적당한 자리를 찾을때 까지 좀 더 진행하기로 하고 만덕산 남봉 내림길을 왼쪽으

로 밟아내린다.

 

바위전망대를 지나 작은 오르내림 후 소나무가 예쁘게 서 있는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하여 정수사,원불교

훈련원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네거리 안부를 지난다. 아무리 맞추어도 그 방향이 틀린 이정표다. 그냥 지

점만 확인하고 지도를 참조할 일이다. 이어지는 암릉 날등에 서니 다가오는 관음봉이 멋드러지다. 약간

떨리는 기분으로 조심스레 암릉을 밟아 내려 암봉아래 안부에서 아침상을 펼친다.(07:45-08:15) 막걸리

한잔으로 갈증을 풀고 단촐한 식구들끼리 나누는 마루금 식사에서 점점 깊어지는 우정을 느낀다. 

 

 (만덕산 내림날등)

 

30분간의 식사와 휴식을 끝낸 후 뾰족한 관음봉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 길이 보이지만 너무 아랫 쪽으로

크게 내려가는 것 같다. 조금 위험하지만 조심스레 기어 올라 봉우리 정상에 오르니 가히 조망이 멋지다.

남서 쪽으로 전주 모악산이 감싸고 있는 상관면 계곡과 능선들이 한 눈에 들어오며 冊積岩이 있다는 죽

림온천이 내려다 보인다. 다시금 낡아 보이는 가는 로프를 버리고 조심스레 암봉을 넘어 제5쉼터 벤치를

지난다.(08:27)

 

우측으로 조금씩 방향을 바꾸며 마루금은 완만하게 내려간다. 망가진 이정표를 지나고 두세번의 작은 오

르내림으로 봉우리들을 지나니 산죽길도 지나고 묘지가 있는 안부를 넘어 왼쪽 발 아래 마치마을이 보이

면서 국사봉 능선을 가로지르는 성수온천 길이 꾸불거리며 시멘트 포장이 되어 나타난다. 아무래도 정맥

마루금은 더욱 더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서쪽 상관면으로 이어질 것 같다. 벌목되어 휭하니 조망되

는 마치고개 느티나무 아래에서 잠시 독도로 위치를 점검한다. 고개 내림길이 지워진 탓에 다소 혼돈이

올 수도 있겠다.(09:05)

 

마치고개 위로 올라서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왼쪽 능선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566봉에 오르

니 왼쪽 회봉리와 상월리를 잇는 포장도로가 나타나며 남쪽으로 마루금이 확연해진다.(09:30)

왼쪽 국사봉을 사이에 두고 회봉리(임실 관촌면)와 용포리(진안 성수면)로 나누어진 군경계가 계곡 마

을들을 지나는 도로를 동서로 넘나든다.신흥사로 보이는 상월 마을은 큰 능선에 가려져 보이질 않는다.

이 후 편안한 능선길엔 진달래와 새순 피어나는 잡목가지들 사이로 벚꽃나무와 매화나무를 번갈으며

서너개의 봉우리를 무심코 넘어선다.(10:00)

 

 (마치 느티나무)

 

잡목 숲을 지나면서 하얗게 피어나는 개별꽃 야생화를 바라보며 봄을 느낀다. 오른쪽으로 굽어지던 능선

길이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상월마을 축사와 수레길이 따르면서 묘목밭을 지나 오름길을 지치니

지도상의 좌표로 표시한 슬치(봉우리)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한다.(10:15-20) 아무래도 그 이름은 잘 못

된 것 같지만 산행지도의 표기 지점이라 서로 참고 할만한 사항으로 남겨두어야겠다.

 

휴식후 내려선 북치에서 왼쪽 月隱里(달은골이마을)로 통하는 길과 오른쪽 죽림온천으로 내려서는 길이

확연하다. 각시붓꽃 보라색 꽃잎이 화려하게 인사한다.(10:39) 작은 오르내림으로 두세번을 거친 뒤 삼

각점이 있는 416.2봉을 올라서서(10:46) 오른쪽으로 천천히 방향을 바꾸고  밤나무와 전나무 조림지를

지나고 지루한 걸음으로 오르내린다. 큰 오르내림 없이 당산나무 한 그루 서 있는 신전리재를 지나면서

왼쪽 신전마을을 내려다 본다.전주 이씨의 화전이 일구어진 곳이란다.(11:36) 

 

 (새 순)

 

이후 30여분간은 조망도 별로 없이 새소리와 이름 모를 야생화들을 벗삼으며 봄날을 즐긴다. 조팝나무

하얀 덤불을 스쳐 오른쪽 요암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을 내려서니, 도로공사를 하듯 크게 훼손된 채

컨테이너 사무실 마저 차려진 공터 임도에 내려선다. 두무실 마을로 이어질 임도인 모양이나, 아름다웠

을 억새밭을 온통 파헤친 흙더미를 공동묘지 무덤처럼 쌓아 놓은 채 방치하여 이미 긴 풀섶을 이룬다.

이후 잡목 숲을 오르내리며 황산재에 이를때까지 마음이 편칠 않구나.(12:19) 그냥 잊어버리기엔 너무나

많이 훼손되는 정맥 길..백두대간 길인들 엉터리 국립공원 관리공단에 맡겨두면 저리되지 않을까..

  

해마다 봄이되면

                            -조병화-

 

해마다 봄이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이제 이 걸음이 이어지는 가을 날, 월출산 아래에서 농사일을 가꾸는 K군을 만나, 생막걸리 한잔 나누며 

수년간의 변화를 읽을 수 있을까..힘든 대학생활의 와중에도 결코 티내질 않고 잘 버텨 온 그가 어떤 연

유로 학교를 자퇴하고 신학교로 옮겨가야 했을까..내가 엉뚱한 일에 연루되어 학교에서 벗어나 고척동

102번지를 거쳐 군대에 가 있는 동안에 그에게는 엄청난 정신적 갈등을 겪은 모양이다. 졸업을 앞둔 마지

막 여름 내가 근무하는 동해안으로 면회를 와서 함께 휴가를 즐기며 설악을 넘었다.

 

휴가를 함께 동해에서 보내고 귀대한 후 며칠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던 그가 보름 후에야 다시 부대로 면

회를 온 것이다. 사연인즉, 귀경 길에 들런 주문진 포구에서 문득 오징어잡이 배를 타고 싶었던게다.

돈 한푼 없이 외상으로 어구를 준비하고 1주일정도 오징어 잡이 배에서 일하면 적은 보수라도 몫을 챙겨

외상 값을 갚을 수는 있겠다 싶어 얼렁뚱땅 어부의 길에 나섰단다.

헌데 2-3일 후 풍랑을 만나 대마도로 피항을 하고 보름만에 겨우 주문진에 귀항하니 남은 건 외상값 뿐이

란다. 참 멋지고 한심한 첫 해외 나들이다. 그렇게 그의 인생도 엉뚱하게 흘러 가고 있었다.

 

 (박이뫼산)

 

황산재를 지나고 밤나무 단지의 오르막과 숲을 지나 가족묘지가 있는 포장도로 능선길에 올라선다.

이 후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번갈으며 온통 묘지로 뒤바뀌어 가는 山亭마을을 지나면서 아픈 발걸음

을 끌고 걷는다. 시멘트로 잘 포장된 능선 농로를 따라 농약과 상여가 쉽게 올라와 얼마나 많은 소출과

영혼들의 편한 잠자리를 일구어 낼까마는 꼭 이렇게 무분별한 개간을 허락해야 되는 것일까..(12:46)

 

남쪽 진행방향으로 자리잡은 박이뫼산(박씨이씨묘터)을 좌로하고 오른쪽 언덕을 넘어서니 묘지를 지나

슬치 언덕아래 모텔 뒷문으로 내려선다. 瑟峙를 넘나들던 도인의 비파소리는 들리지 않고 17번 8차선 도

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에 실린 허망한 바람소리와 모텔 장막에 가려진 차량들 너머에서 이해 못할 영혼들

의 신음소리만 난무한다. (13:00) 이렇게 호남정맥의 첫 구간을 마무리하며 다음에 넘어갈 갈미봉을 쳐다

본다.

 

 (시산제)

 

유세차- 


단기 사천삼백사십(4340)년, 서기 2007년 4월 15일,

저희 자유인산악회 호남정맥 탐사대 회원 일동은

좌 청룡 모악산, 우 백호 만덕산, 위용 갖춘 슬재 산정마루에서

천지신명과 백두대간 호남정맥 산신님께 고 하나이다.


1999년 10월 개천절에 지리산에서 출정한 백두대간 탐사의 길이

이제 10회차의 대장정을 함께하며, 그 넘쳐나는 정기를 이어가는

호남정맥의 첫 걸음을 오늘 다시 시작하며 신령님의 가호를 다시

맞이하고자 엎드려 한 잔 술로 감축 드리옵니다.


그동안의 우여곡절도 불구하고 영취산에서 출발하여 남쪽 백운산에

이르기까지 예정된 마루금을 밟아 나가며, 이 땅의 아픈 역사를

함께 느끼고 질곡의 상처들을 치유하여, 저무는 망년의 날에

여수 앞바다 외망 마을에서 모든 고통을 훌훌 털고 ‘自由人의 길’로

다시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유란 누구에게서 구걸하는 것도 아니요, 어떠한 큰 힘일지라도

뺏어갈 수 없는, 바로 천지신명께서 내려주신 인간의 근본임을 잘

알고 있기에, 저희 자유인 탐사대는 이 땅 산산 골골을 걸어 나가며

만나는 모든 자연과 인간세상에서 그 축복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이에 우리들이 신령님께 막걸리 일 배 정성들여 올리옵고,

올 한해 남으로 향하는 정맥 길의 모든 신령님께 비옵니다.

모든 자유인 탐사대원들이  무탈 산행케 하옵시고, 그 가족도 함께 보살펴

주시옵길 간곡히 비옵니다.


오늘 저희가 정성껏 준비한 술과 음식을

우리의 소원과 함께 즐거이 거두어 주시길 바라오며

다시 한번 절과 함께 한 순배 크게 올리나이다.


단기 사천 삼백 사십년 4월 15일 자유인 호남정맥 탐사대 일동

 

 

4/16 道然 배 슈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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