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린다 에겐스
1986년부터 아미쉬인들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그 이야기들을 『코블스톤 Cobblestone』, 『플레인 Plain』『아이오와 소스 The Iowa Source』에 발표해 왔다.
그녀가 처음 아미쉬 마을을 찾아가게 된 것은 현재의 물질문명을 거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녀는 물질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한 것이다.
린다 에겐스는 이제 아미쉬 마을의 단순한 방문자가 아니다.
그들과 함께 웃고 지낸 시간만큼, 그녀의 따뜻한 시선을 통해 오롯이 묻어난 아미쉬인들의 풍경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린다 에겐스는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글을 오랫동안 써왔고 『모든 사랑은 자신에게 흐른다 - 우파니샤드로부터 얻은 불멸의 이야기 All Love Flows to The Self : Eternal Stories From the Upanishads 』 등 여러 권의 저서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현재 아이오와 주 페어필드에 있는 마하리쉬 경영대학에서 문학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있다.
역자 : 조연숙
총회신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번역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성서 바로 읽기와 기독교 대안 문화를 만들기 위한 모임인 '예수의 좋은 친구들' 회원이며 『성전에서의 외침』『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 등을 번역했다.

아미쉬 여자들이 창조력을 발휘하고 집을 화려한 색으로 꾸밀 수 있는 것은 퀼트를 만들 때이다.
퀼트 만들기는 공동체마다 형식이 다르다.
고풍스런 퀼트는 랭카스터와 펜실베이니아에서 유래한 것인데, 대담한 모양과 어두우면서 강렬한 색상의 기하학적 무늬를 특징으로 한다.
아이오와 주 아미쉬인들의 전통문양은 그 이름만큼이나 화려하다.
'흉칙한 손잡이', '헛간에 난 구멍', '햇살과 그림자' 같은 이름들이 그것이다.
'샘플러'라고 불리는 퀼트는 '칠면조 발자국', '통나무 오두막', '날아다니는 벌' 등 갖가지 부채꼴과 별 모양의 도안들을 혼합하여 만든다.
레오나가 어느 가족이 조부모를 위해 만든 샘플러 퀼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샘플러 퀼트에는 '하느님이 우리 가족에게 복을 주셔서 존과 에드나 매(1946~1991)의 45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습니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고 자식들과 손자손녀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남자들까지도 이 퀼트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고 한다.
아미쉬 여자아이들은 퀼트 만드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간단한 나인 패치 도안부터 시작한다 .
레오나는 나인 패치 퀼트를 열두 살에 처음 만들었는데, 그때 이후로 계속 퀼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 나인 패치 퀼트 만들기
1. 색상이 같은 천을 정사각형으로 5개 자른다. 변의 길이는 각각 1.5인치이다.
그리고 같은 크기로 다른 색상의 천을 4개 자른다.
2. 재봉틀을 이용하여 나인 패치를 잇는데 색상을 엇갈리게 놓는다.
3. 나인 패치는 나인 패치 퀼트의 기본 단위를 이룬다.
이 나인 패치를 16개 만든다.
4. 단색 천을 이용하여 나인 패치와 크기가 같은 사각형을 16개 자른다.
5. 나인 패치 사각형과 단색 사각형을 다 잇는다.
6. 다 이으면 나인 패치 퀼트를 만든 것이다.
나머지 퀼트 과정은, 가장자리를 바느질한 다음 나인 패치 퀼트를 펼쳐 퀼트 틀 맨 위에 놓고,
그 아래속에 들어갈 것과 뒤쪽 홑이불을 차례로 깔고, 세 겹을 한번에 손바느질하면 된다.
식구가 많은 아미쉬 가족에게는 마차가 여러 대 있다.
그밖에 다른 운송수단들도 있다.
오픈 스프링 이륜마차는 푹신한 의자가 있지만 덮개가 없어 날씨가 맑을 대만 사용할 수 있다.
망아지가 끄는 이륜마차는 아이들이 학교에 갈 대 사용하는 운송수단이다.
이륜마차는 높이가 낮고 이름대로 바퀴가 두 개이며 의자 받침대가 하나로 되어 있다.
말이 끄는 썰매는 겨울에 빙판길을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이다.
어떤 가족은 이중 사륜마차를 만들어 탄다. 이 마차는 부드러운 벨벳을 두른 여분의 의자가 있어 온 가족이 타고 함께 교회에 갈 수 있다.
열 세살짜리 아미쉬 아이에게 돌아다니는 방법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웃으며 답했다. "제 발이죠!"
그가 걸어서 가장 멀리 간 곳은 아버지의 농장으로 5.6킬로미터를 걸었다고 한다.
"급할 게 없으니까 서두르지 않았어요."
그의 남매들은 0.8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학교를 걸어다닌다.
아미쉬인들은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버스나 기차를 타거나 짐마차를 빌려 타고 다른 주에 사는 친척을 방문하거나 장례식이나 결혼식에 참석한다.
거리가 너무 멀어 마차로 갈 수 없을 때에는 짐마차를 빌려 병원이이나 이웃 마을에서 열리는 경매에 가기도 한다
아미쉬인들은 자동차 타는 것을 반대하지 않지만, 아미쉬인 모두가 차를 소유한다면 공동체가 파괴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륜마차를 몰고 다닌다는 의미는 집에서 가까이 머물고, 이웃과 더 친해지고, 필요한 것을 구입하기 위해 그 마을 상인들을 더 의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말과 마차는 '세속에 있지만 세속을 따르지 않는다'는 아미쉬 신앙을 상징한다.

아미쉬란 누구인가?
원래 아미쉬인들은 독일, 스위스, 알사스(독일과 스위스 경계에 위치한 프랑스 지역으로 독일 사투리를 쓴다)에서 살던 사람들로, 심한 박해를 피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1737년 아미쉬인은 최초로 미국에 도착하여 펜실베이니아 주 랭카스터 시에 정착했다.
1815년에서 1860년 사이에 또다시 이주의 물결이 이어졌고, 아미쉬인들은 아이오와 주를 포함한 20개 주로 퍼져나갔다.
아미쉬 신앙은 스위스 재침례파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재침례파 운동은 종교개혁에 불만을 품은 개혁가들이 시작했다.
아미쉬란 이름은 프랑스 알사스 지방의 재침례파 목사 야콥 암만을 따르는 이들이 붙인 것이었다.
암만 목사는 더 엄격한 개혁을 주장하다 1693년 다른 재침례파 교인들에게 파면을 당했다.
메노나이트와 후터 등의 재침례파와 마찬가지로 아미쉬인들은 태어났을 때 하는 유아세례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아이가 청소년기를 지나 교회생활에 대한 책임감을 깨달아 선택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세례서약은 보통 16세에서 18세 사이에 하는데, 그때 젊은이들은 죽는 날까지 교회와 공동체 규율을 따르겠다고 엄숙하게 맹세한다.
아미쉬인들은 예수의 삶과 산상설교를 모범으로 삼아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가족, 공동체, 형제애를 중시하며 세속과 분리된 채 절대로 폭력을 행하지 않고 겸손하고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아미쉬인들은 욕설이나 폭력적인 행동에 침묵으로 답하도록 배운다.
그들은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대주라'는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외부인들의 공격을 받더라도 (외부인들이 아미쉬인을 괴롭히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아미쉬인들은 반응하지 않고 지나간다.
그리고 절대로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군대에 가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많은 아미쉬인들이 감옥에 갔고 2차대전 때는 심한 탄압을 받았다.
신앙에 따라, 선거를 하지 않고 정부 일에 참여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자신들에게 잘못을 하더라도 법에 호소하지 않는다.
아미쉬인들은 선교 활동을 하거나 외부인을 설득하여 아미쉬 신앙을 갖게 하지 않는다.
500년 전과 변함없는 그모습 그대로의 공동체
아미쉬인들은 5백년 동안 거의 변함없는 전통을 따른다.
집에서는 여전히 '펜실베이니아 독일어'라 불리는 독일 사투리로 말한다.
아미쉬 신앙의 가장 큰 부분은 교회와 공동체의 생활 계율과 규칙을 따르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아미쉬인들은 '오르드눙(규율)'이라는 엄격한 육체 계율에 따라 행동하고 옷을 갖춰 입는다. '세속적인 방식'을 차단하기 위해 현대문명(자동차, 전화, 텔레비전, 전기)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옷차림을 갖춘다.
아미쉬 남자들은 재킷에 단추나 접는 깃을 달지 않는다.
그들은 옷을 여미는 데 단추나 지퍼보다는 대부분 훅과 아이어를 사용한다.
아미쉬교도들을 '훅과 아이어를 쓰는 사람들(hook-and eyers'라고 부르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아미쉬 남자 교도들은 콧수염을 기르지 않지만, 결혼을 하면 턱수염을 손질하지 않은 채로 기른다. 이런 특이한 관습은 구세군파가 아미쉬교도들을 박해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당시 구세군파는 단추와 접는 깃을 사용하고 콧수염을 길렀지만, 턱수염을 기르지 않았다.
그래서 아미쉬 남자들은 구세군파와 다르게 통이 넓은 바지에 멜빵을 메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게 되었다.
아미쉬교도들은 오르드눙을 따라야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수 있다고 믿는다.
가령, 아미쉬 여자들은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
대신 집안에 있을 때는 머리를 땋아 흰색이나 검정 오건디(얇은 모슬린 직물)로 만든 '기도 모자'로 단정하게 가린다.
그리고 공공장소에 있을 때는 모직으로 된 검정 보닛을 쓰는데, 1백년 전 개척지 여자들이 쓰던 것과 비슷하다.
이 관습은 '예배를 드릴 때 여자는 머리를 가리라'는 성경 말씀을 따른 것이다.
그리고 하루중 언제라도 기도할 수 있으므로 항상 머리를 가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여자는 화장을 하면 안되고 앞치마가 달린 단정한 긴 원피스를 입고 단추 대신 아이어로 옷을 여민다.
옷감은 무늬가 없는 단색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