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반 아이조프스키의 ‘아홉 번째 파도’,1850, 캔버스에 유채,221 x 332cm,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러시아국립미술관소장
섬에서 자란 필자에게 바다는 애증(愛憎)과 후박(厚薄)의 대상이다.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수평선을 바라보며, 바다의 고요함과 광대함, 그리고 포용력을 늘 몸으로 느끼며 살아 왔다. ‘강물이 끝나는 곳에서 새롭게 열린’ 바다는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혼탁해진 영혼을 세척해주며 육신이 지친 자들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늘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태풍이 몰려 올 때면 집체만한 파도가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삶의 터전 자체를 송두리 체 앗아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수없이 보아온 해일이나 큰 파도는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전율을 느끼게 했다. 특히 태풍, 그것도 겨울의 폭풍우를 접할 때마다 어린 시절 경험한 성난 파도 앞에 마주했던 죽음의 공포가 생각나곤 한다. 육지로 진학하기 위해 중학교입시를 치룬 후 곧 바로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마침 태풍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에서 바람이 조금 가라앉자 근해 여객선의 출항이 허용되어, 고향으로 가는 야간 배를 타게 되었다. 출항 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태풍주의보가 경보로 바뀌고 성난 파도 때문에 표주박처럼 흔들리며 가던 여객선은 마침내 접영을 하듯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였다. 밤배라 손님이 거의 없어 배가 흔들릴 때마다 승객들이 이쪽구석에서 저쪽구석으로 굴러다니게 되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방송에 의해 비상조치를 하던 선원이 실종되었으며, 승객들은 객실에서 나올 수 없음을 알고 나니 공포감이 더욱 밀려들었다. 배가 물속으로 들어갈 때 마다 그대로 가라앉을 것 만 같았다. 객실까지 들어오는 물보라가 마음까지 젖게 만들었다. 배가 곧 침몰될 것이라고 판단한 선장은 시체라도 유실되지 않도록 출입문을 봉쇄하고 밖에서 철문을 닫아 버렸다.
심한 멀미로 육신뿐만 아니라 정신을 가누기 힘든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내손을 꼭 붙잡고 계셨다. 조류의 흐름이 빨라 평상시도 항해하기 힘든 곳인, 명랑해전으로 유명한 울돌목을 지나 간신히 최초의 접안시설이 있는 곳까지 가서 해양경찰의 도움을 받아 기어 나오듯 하선하였다. 고향까지는 3시간을 더 가야 하지만 태풍 때문에 해양경찰이 항해를 중단시킨 것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죽음의 사자가 노닐고 있는 밤바다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배에서 내리자 “육신이 흐느적흐느적 거릴 때 정신이 은하처럼 맑다”던 이상의 말처럼 멀미와 공포감에 지친 육신임에도 불구하고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맑은 영혼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밤배를 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태풍은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허리케인’ 이나 ‘퍼펙트 스톰’ 등 바다를 그린 어떤 영화에서도 필자가 경험했던 공포감을 느낄 수 없었다. 이러한 충격적인 한 번의 경험은 바다와 관련한 수없이 많은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소잔(銷殘)시켜버렸다.
그런데 필자가 경험한 바다와 관련된 다양한 상황과 상념들을 형상화 해놓은 그림을 러시아 여행 중에 접하게 되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할 경우 그림 애호가 여부를 불문하고 수만 점이 전시되고 있는 에르미타쥐미술관을 관람하고, 그림들에 대해 감탄하게 되는데,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짧은 여행기간에 이틀을 투자하여 감상하였음에도 아쉬움이 많았다. 그런데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에르미타쥐미술관 이외에도 꼭 찾아보아야 할 미술관이 또 있다. 그곳이 바로 러시아국립미술관인데, 이곳에서의 감동 역시 결코 에르미타쥐에 못지않았다.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들이 주종을 이루는 이 미술관에는 10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4만점 이상의 예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특히 안드레이 루블로프, 이바노프, 폴레노프, 쉬시킨, 니콜라이 게, 레핀, 브루벨, 말레비치와 칸딘스키 등 러시아를 대표하는 화가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고대 러시아 이콘이나 민속품 등도 전시되어 있다. 그래서 특화된 하나의 박물관으로서 러시아 예술의 산 역사와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전시되고 있는 그림들은 서구 유럽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러시아작가들의 그림이 대부분이어서 필자에게 더 감동스러웠다.
그 중에서도 이반 아이조프스키(Ivan Konstantinovich Aivazovskii 1817∼1900)의 바다에 관한 그림들은 섬에서 자란 필자에게 무척 감동스러웠으며, 너무나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림에 따라 공포와 환희, 고독과 평안함이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거대한 파도 등 폭풍과 관련된 그림들이 특히 인상 깊었다. 대자연 앞에 서 있는 인간의 왜소함과 나약함이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어린 시절 경험했던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공포에 떨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림 하나하나가 바다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는 듯하였다. 이 그림들에서는 낭만주의적 색채뿐만 아니라 사실주의적 경향이 공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조프스키의 그림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바다의 오묘함과 신비로움, 광대함을 통해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왜소함, 그리고 숙명을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해 주고 있었다. 바다와 관련한 모든 제재들을 소재로 삼아 그린 그림이 6000점에 이른다고 한다. 달빛 가득한 고요한 바다, 바다위의 하늘, 수평선 그리고 포구는 평온한 인생이나, 희망과 믿음, 그리고 사랑과 풍요의 대상으로 다가오게 했으며, 폭풍, 성난 거대한 파도와 구름, 바람 그리고 칠흑 같은 밤바다는 절망과 시련, 고통, 번뇌, 고독으로 그려졌다.
아이조프스키가 그린 수많은 바다관련 그림중에서도 ‘아홉 번째 파도’가 필자에게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이 그림은 3m가 넘는 대작으로서, 그 앞에 서니 꼭 파도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 정도로, 뛰어난 화가라도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그릴 수 없는 사실성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필자는 어린 시절 여객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흔들리는 조그마한 종(목)선을 타고 몇 백m만 가도 외지인들이 공포에 떨며 소리를 지르던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 그런데 난파한 배의 부서진 돛대 등 잔해를 부여잡고 거대한 파도와 밤새 싸워야 했던 선원들이 겪었을 공포감이 실탄처럼 가슴에 박히는 것이다. 같은 미술관에 전시되어 바로 몇 분전에 보았던 그 유명한 칼 브룰로프의 ‘폼페이 최후의 날’(Karl Brullov, Last Day of Pompeii, 1833)에서 화산폭발로 용암이 덮쳐오는 순간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선원들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물론 선원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원들이 밝아오는 하늘을 향해 붉은 천을 흔드는 것은 ‘살아야겠다.’는, 그리고 아직 ‘살아있음’을 표현하는 구원의 함성인 것이다. 인간사에서 이 보다 더 강력한 열망을 담은 신호가 또 있을까? 그래서 제목을 ‘아홉 번째 파도’로 정한 것이 아닐까? 우리의 삶속에 부딪치는 수많은 파도는 오히려 우리의 존재의미를 확인해 주는 것이며, 절대자의 존재와 우리의 나약함으로 인한 몸부림의 의미를 알게 한다. 그래서 일곱 번째나 여덟 번째의 파도를 넘어, 이제는 고난과 절망 속에서 희망의 유혹이라는 아홉 번째 파도를 맞이할 수 있다는 의미로 다가 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흰 이빨을 드러내려 달려들던 파도로부터 탈출하면서 육지로 오르려던 순간 밀려왔던 파도가 아니겠는가.
화가들에게 변화무쌍한 바다의 이미지 속에서 광휘나 확신, 평안함을 추출하여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조프스키는 그의 수많은 바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같은 작업을 너무 수월하게 해 낸 것처럼 보인다. 풍부한 감정과 정확하고 섬세한 표현력으로 바다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너무 잘 그려낸 것이다. 화가는 바다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듯하고, 바다를 너무 사랑한 것 같다. 바다는 화가에게 작품의 근원이자 완성이며, 기쁨이며 삶의 존재 이유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삶에도 이 같은 대상이 있다면 얼마나 삶이 풍요로울까. 특히 요즘처럼 팍팍한 생활에서는 이 같은 풍요로움이 더욱 그리워진다.
윤철홍 숭실대 법대 교수
2010. 2. 8 ©Art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