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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1:1
교회 역사는 세상의 박해 속에서는 신앙이 영롱해졌지만, 내부의 타락과 변질에 대해서는 더 속수무책이었다고 말해 줍니다. 내부의 적이 더 분별하기 어렵고 치명적입니다. 유다서가 겨냥하고 있는 내부 적들의 주장은 무엇이며, 우리 시대에도 여전한가? 공주야! 찌라시도 아니고 딸랑 한 장짜리 유다서는 대충대충 넘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석의, 해석, 적용, 어느 것 하나도 만만치 않은 것 같구나.
According to church history, despite the world's persecution, faith has grown brighter, but it has been more helpless against internal corruption and corruption. Internal enemies are more difficult to discern and are more deadly. What are the internal enemies' claims that Judas is targeting, and are they still alive in our time? Princess! I wanted to roughly pass over the one-page Judas book with a daughter, not a prash. However, it seems that anything from stone, interpretation, and application is diffic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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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진리로 거룩케 함이 마땅하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정결하게 보존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교회는 때때로 경악한 모습을 보여 왔던 것도 사실이란다. 교회사를 보면 지저분해서 못 볼만큼. 이렇게 된 데에는 거짓 복음과 싸우지 않고 타협과 왜곡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유다서의 수신자는 이단들의 위협에 당면한 교회다. 그래서 주님의 동생인 유다는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기 위하여 편지를 보냈는데 해결책은 온고지신이야.
It is also true that throughout history, the church has occasionally been astonished, despite the fact that the church deserves to be holy with truth and must be preserved cleanly until the day the Lord comes. The history of the church is so messy that you can't see it. This is because he walked on a path of compromise and distortion without fighting the false gospel. The recipient of the Judas is the church facing the threat of heresies. The solution is to the God of Ongo, the Lord's younger brother, who sent a letter to strengthen the faith of the sa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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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주신 옛 경고와 옛 시대를 거울삼아 현재의 영적 위기를 대처하라고 하는구나. 공동체에 몰래 들어온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하였다. 경건할 윤리를 무시하고 참다운 자유를 훼손한 채 방종을 정당화하였으며 그리스도를 폄훼하였다.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육체로 경건하게 살고 육체로 선한 열매를 맺고 살아야 할 근거를 잃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처럼 본능으로 육체를 더럽히며 살았다.
You are asking me to deal with the current spiritual crisis by mirroring the old warnings and the old times that I have already given. False teachers who sneaked into the community abused God's grace and made him deny Christ. They justified self-indulgence and disparaged Christ, ignoring the ethics of being reverent and undermining true freedom. If you deny Christ who came to the flesh, you will lose the basis for living reverently with the flesh and producing good fruits with the flesh. Like beasts without reason, they lived with their instincts to contaminate their bo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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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혹하는 사람들의 정체는 잘못된 율법 관 때문에 은혜를 방탕으로 바꾸고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만약 내가 불의한 이 길을 따라간다면 미움과 질투의 화신인 가인의 길을 가는 것이며, 삯을 위하여 불법을 택한 발람의 어그러진 길이 되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분수를 모르고 시기와 과욕 속에 아론에게 대적한 고라의 패역은 심판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Those who reject Christ's lordship are those who turn grace into profligacy because of the wrong crown of law. If I follow this path of injustice, I will go to Cain, the incarnation of hatred and jealousy, and I will have to be careful because it is Balam's twisted path of choosing illegality for the sake of wages. Gora's defeat against Aaron in times and greed without knowing his means will also deserve jud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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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믿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멸하셨고, 하나님을 대적한 타락한 천사들을 결박된 채로 하늘의 어느 한 영역에 감금하셨으며, 음란한 소돔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지 않았느냐?(5-7) 예에공! 구원은 기계적이거나 자동적이지 않다. 구원이 인격이나 관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구원은 비인격적인 사건이 아니란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이 자동으로 최종구원에 이른 것도 아니었으며, 믿지 않는 자는 광야에서 멸망 시키셨고 타락한 천사들을 재림까지 흑암에 결박해 두시질 않았더냐?
In the past, God destroyed the Israelites in the wilderness who did not believe in their promises to the land of Canaan, imprisoned them in one part of the sky, and judged the obscene Sodom Gomorrah with fire? (5-7). Salvation is neither mechanical nor automatic. Remember that salvation has anything to do with personality or relationships. Salvation is not an impersonal event. Israel that did not automatically reach its ultimate salvation, but the nonbelievers destroyed it in the wilderness, and did not tie the fallen angels to the dark until Adv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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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교사들은 말씀보다 자신들의 꿈(환상)을 신성시하여, 말씀 사역자의 권위를 무시하고 영광스런 존재들을 모독했다. 이들은 이성 없는 짐승처럼 본능으로만 행하여 자기 육체를 더럽히는 자들이었다. 에에공, 성도에게는 분별의 책임이 있고, 지도자는 거짓 교사들의 비판의 타깃이 되지 않기 위해 말씀과 삶이 일치하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왜 교회 안에 있는 대적이 바깥에 있는 대적보다 상대하기 어려운가? 나는 시기와 탐욕과 불평으로 사는 가인, 발람, 고라가 아닌가?
False teachers sanctified their dreams (fantasy) rather than words, ignoring the authority of the minister of the Word and blaspheming the glorious beings. These were those who dirty their bodies by performing only with instinct like beasts without reason. Eekong, the saints have a responsibility for discernment, and the leader will have to try to make sure that words and lives are consistent in order not to be the target of criticism from false teachers. Why is the enemy in the church harder to deal with than the enemy outside? Am I not Cain, Balam, or Gora who lives on period, greed and compla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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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안인사(1-2)
서신의 목적, 거짓 교사들의 등자에 대하여(3-4)
불의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5-16)
a.급, 불의한 천사,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과 적용:5-10
b.가인, 발람, 고라의 심판과 적용:11-13
c.심판에 관한 에녹의 예언과 적용: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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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1a)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1b)
부르심을 받은 자(1c)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1d)
사랑을 얻고(1e)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1f)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1g)
편지하노라(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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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과(2a)
평강과(2b)
사랑이(2c)
너희에게(2d)
더욱 많을 지어다(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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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들아(3a)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3b)
구원에 관하여(3c)
내가 너희에게(3d)
편지하려는 생각이(3e)
간절하던 차에(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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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에게 단번에 주신(3g)
믿음의 도를 위하여(3h)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3i)
너희를 권하여야 할(3j)
필요를 느꼈다(3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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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4a)
몇이 있음이라(4b)
그들은 옛적부터(4c)
이 판결을 받기로(4d)
미리 기록된 자니(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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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하지 아니하여(4f)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4g)
도리어(4h)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4i)
홀로 하나이신 주재(4j)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4k)
부인하는 자니라(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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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본래(5a)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5b)
내가 너희로 다시(5c)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5d)
주께서 백성을(5e)
애급에서(5f)
구원하여 내시고(5g)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8h)
멸하셨으며(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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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기 지위를(6a)
지키지 아니하고(6b)
자기 처소를 떠난(6c)
천사들을(6d)
큰 날의 심판까지(6e)
영원한 결박으로(6f)
흑암에 가두셨으며(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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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와(7a)
그 이웃 도시들도(7b)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7c)
음란하며(7d)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7e)
영원한 불의 형벌을(7f)
받음으로(7g)
거울이 되었느니라(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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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데 꿈꾸는(8a)
이 사람들도(8b)
그와 같이(8c)
육체를 더럽히며(8d)
권위를 업신여기며(8e)
영광을 비방 하는 도다(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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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장 미가엘이(9a)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9b)
마귀와 다투어(9c)
변론할 때에(9d)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9e)
내리지 못하고(9f)
다만 말하되(9g)
주께서 너를(9h)
꾸짖으시기를(9i)
원하노라 하였거늘(9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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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은(10a)
무엇이든지(10b)
그 알지 못하는 것을(10c)
비방 하는 도다(10d)
또 그들은(10e)
이성 없는 짐승 같이(10f)
본능으로 아는(10g)
그것으로 멸망 하느니라(1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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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있을 진저(11a)
이 사람들이여(11b)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1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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삯을 위하여(11d)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10e)
몰려갔으며(11f)
고라의 패역을 따라(11g)
멸망을 받았도다(1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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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기탄없이(12a)
너희와 함께 먹으니(12b)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12c)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12d)
바람에 불려가는(12e)
물 없는 구름이요(12f)
죽고 또 죽어(12g)
뿌리까지 뽑힌(12h)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1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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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13a)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13b)
영원히 예비 된(13c)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13d)
유리하는 별들이라(1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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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14a)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14b)
예언하여 이르되(14c)
보라 주께서(14d)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14d)
함께 임하셨나니(1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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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15a)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15b)
경건하지 않게 행한(15c)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15d)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15e)
주를 거슬러 한(15f)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15g)
그들을 정죄하려(15h)
하심이라 하였느니라(1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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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은(16a)
원망하는 자며(16b)
불만을 토하는 자며(16c)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16d)
그 입으로(16e)
자랑하는 말을 하며(16f)
이익을 위하여(16g)
아첨 하느니라(1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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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의 적_an enemy in the church_
엄연한 심판_a stern judge_
분별의 책임_the responsibility of discretio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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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면 접하는 음란의 소식들에 경각심을 갖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법을 좇지 않고 자기만족을 좇아갈 때 타락의 비탈길은 나와 내 가족이제외될 수 없음을 압니다. 주님, 다시 한 번 나와 공동체가 성령님께서 거하실 만한 성전인지 살피게 하시고,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힘써 지키기 위해 나를 지키게 하소서. 주님 제게 영적인 분별력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명예를 얻으려는 헛된 꿈을 접고 하나님이 주신 나라의 비전을 꿈꾸며 살게 하옵소서.
Be alert to the news of obscenity you encounter when you wake up. I know that when you follow your own satisfaction without following God's law, you and your family cannot be excluded from the slope of depravity. Lord, let me and my community once again see if the Holy Spirit is a temple worthy of your life, and protect me to keep the faith you gave me at once. Give me spiritual discernment, so that I may end my vain dreams of being recognized and honored by the people and live dreaming of the vision of a kingdom given by God.
2025.12.19.fri.Clay
서평
유1:1-16
유다서는 분량으로 보면 성경에서 가장 얇은 편지다. 그러나 이 설교문이 보여주듯, 유다서는 가장 무거운 질문을 가장 짧게 던지는 텍스트다. 외부의 박해 속에서 교회는 오히려 선명해졌으나, 내부의 타락 앞에서는 늘 무력했다는 문제의식은 초대교회뿐 아니라 오늘의 교회를 그대로 겨냥한다. 이 설교는 유다서를 “대충대충 넘어가고 싶은 책”에서 피할 수 없는 자기 성찰의 거울로 끌어올린다. 설교의 핵심 통찰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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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가 싸우는 대상은 박해자도, 이방 권력도 아니다.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은혜를 방탕으로 바꾸고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부인하며 자유를 말하지만 책임을 거부하고 영적 체험(꿈·환상)을 말씀 위에 두며 권위를 조롱하고 윤리를 파괴한다. 이 설교는 이들을 단순한 이단이 아니라 복음을 변질시키는 내부 논리로 정확히 규정한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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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해법은 새롭지 않다. 그러나 그 점이 오히려 치명적이다. 광야에서 멸망한 이스라엘-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타락한 천사-소돔과 고모라 이 세 사례는 공통적으로 말한다. 구원은 자동이 아니며, 인격적 관계를 떠난 신앙은 보장되지 않는다. 이 설교는 “출애굽 = 최종 구원”이라는 오해를 정확히 해체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배반한 자유는 구원이 아니라 심판의 문을 연다는 점을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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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탁월함은 유다서 11절의 세 인물을 도덕적 사례가 아닌 영적 유형으로 읽어낸 데 있다. 가인: 시기와 분노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 발람: 삯을 위해 진리를 거래하는 자 고라: 질투와 과욕으로 질서를 전복하는 자 설교자는 이들을 타자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우리에게 돌려준다. “나는 가인인가? 발람인가? 고라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유다서가 노리는 핵심 효과다. 심판의 메시지가 공포가 아니라 자기 점검으로 작동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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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 1:1을 해부하듯 풀어낸 대목은 이 설교의 신학적 백미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야고보의 형제-부르심을 받은 자-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얻고-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 이 일곱 겹의 정체성은 성도가 왜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울 수밖에 없는가”를 설명한다. 싸움은 공격이 아니라 지켜짐에 대한 응답이라는 점에서 이 설교는 유다서를 투쟁의 책이 아니라 보존의 신학으로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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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교는 결코 안전한 자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음란이 일상이 된 시대-인정과 명예를 좇는 신앙-말씀보다 경험을 신성시하는 문화-마지막 기도문은 설교의 연장이 아니라 유다서의 현대적 결론이다.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힘써 지키기 위해 나를 지키게 하소서.” 여기서 싸움의 대상은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임이 분명해진다. 이 설교는 유다서를 경고의 문서에서 분별의 교본으로 복원한다. 교회 안의 적은 실재하며 심판은 엄연하고 분별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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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짜리 서신이 이렇게 무거워질 수 있는 이유는 설교자가 텍스트를 요약하지 않고 텍스트 앞에 자신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설교는 가르치기보다 묻고, 정죄하기보다 드러내며, 두렵게 하기보다 깨어 있게 만든다. 유다서는 짧다. 그러나 이 설교를 읽고 나면, 그 어떤 긴 설교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2025.12.19.fri.Cl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