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정맥 7구간**
-.일 시:2006. 12. 08 (금) 흐림
-.산행시간 :5시간 50분
중장리재(09:25)-널티재(10:15)-상리마을(11:00)-반송리재(13:00)-성항산(13:40)
-복룡리재(고속도로)(14:40)-진고개(16:15)
-.참여인원:백두산악회 12명
눈이라도 내렸으면 좋으련만 모골이 송연한 겨울비가 주적주적 내린다.
상주팀들이 빠져 가득이나 줄어든 인원 때문에 취소자가 발생할까 봐 걱정이 마음의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어둠속의 빗줄기는 더욱 신경을 자극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한 분을 빼고는
모두가 모습을 나타내고 출근의 짜뚜리 시간을 내어 설영식씨가 건넨 음료수 한 박스는 정이 흠뻑
담겨져 있어 짧은시간 동안에 쌓였던 가슴속의 먹구름을 몰아낸다.
이젠 한 구간만을 남겨둔 터라 다소 아쉬움이 남는 가운데 전주 논산을 걸쳐 23번 국도를 빠져
나와 하산주를 나누었던 691번 지방도의 중장리재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는 소강상태를 보인다.
버스에서 노곤해진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시작된 산행으로 초반의 오름길이 다소 버거웁고
비로 인하여 미끄러움이 심한 너덜지대에서 달그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단발마를 쏟아내는
님들이 속출하여 삼각점 이 있는 팔재산에 올랐으나 고도차가 적어서인지 누구 하나 눈길
주는 사람 없이 곧바로 진행하여 버린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310봉쯤 되는 봉우리를 올라서고 우측 편으로 팻트병 하나씩을 매단
밤나무밭을 경계로 출입을 방지하려는 듯 능선을 따라 철조망이 쳐저있다.
좌측 편으로 건물이 보이며 쓰레기가 너저분한 안부로 내려서고 밭 길을 따라 널티로 접근하는데
정맥길은 민가 마당으로 곧바로 진행하여 앞서던 등반대장님이 잠시 갈등을 겪는 듯 하더니 밭
가장자리로 되돌아 분수령으로서의 맥을 다하고 있는지도 헷갈리는 23번의 국도의 널티재로
내려선다.
4차선과 중앙분리대로 여성회원님들에 대한 배려와 안전상 일부는 약 200여 미터 아래에 있는
굴다리로 우회하고 차량이 뜸한 틈을 타 중앙분리대를 넘는데 후에 팀장님은 이 모습이 탈북자들이
대사관을 넘는 모습과 흡사하였다고 전한다.
지나왔던 불록한 봉우리가 한발 한발 내딛는 봉우리가 발품의 가치를 알켜주는듯 까마득히 보이고
뒤쪽의 계룡산은 흰구름에 덮여 좀처럼 모습을 들어내지 않고 있다.
일행을 기다려 묘지 사이를 뚫고 숲 속으로 접어드니 우측 편으로 언듯 폐쇄 된 듯한 공장이
보이고는 곧 원시림인듯한 잡목이 시야를 삼켜버리고 고장난 스틱을 배낭의 옆에 낀 연성주님은
스틱이 안테나역할을 해 수시로 나뭇가지를 감지하여 진행에 애로를 겪고 있어 보다 못한
권여사님이 지청구를 하는데도 아량 곳 없이 초지일관이다.
미로인 듯한 잡목길이 계속되고 홍성산꾼들의 네모난 정맥안내판과 함께 선답자들의 안내리본들을
길잡이로 삼아 218봉인듯한 봉우리 하나를 우회하여 두 명의 부인을 끼고 있는 묘지를 대하는데
연성주님은 후환의 두려움도 잊은 체 생전에 누렸을 부와 정력에 부러움을 토해낸다.
우측 편으로 상리마을을 쭉 끼고서는 그만 그만한 봉우리들을 휘어 돌아 갈색으로 채색된
밤나무밭도 지나고 고구마밭를 가로질러 상리마을의 임도로 내려서니 마침 이곳을 넘어가던
트럭이 한 무리의 산꾼을 보고는 특유의 산골인심과 정으로 마루금상으로는 산길이 없음을
누차 일러주며 눈길을 떼지 못한다.
비 걱정을 잡식시키는 햇살이 간간히 비치고 널따란 가족묘지가 산면을 잡아먹어 버린 경사면의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를 김성자님이 스틱으로 힘겨웁게 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기원님이
가시의 장막을 뚫고 감나무를 흔든 수고 끝에 질퍽한 홍시를 한입씩 넣는데 혀끝의 달콤함이
호남정맥시의 하얀 눈 속에서 유독 빨갛게 빛을 발하는 번식의 유혹에 빠져들어 한참의
시간을 잡아먹어 버렸던 살얼음이 낀 홍시의 추억을 이끌어 낸다.
곧이어 앙증맞게 가꾸어 놓은 양다래 나무에 알알이 달려있는 열매를 수지맞은 듯 입에 넣다가
신맛에 고스란히 달콤함을 반납하고는 오르막길로 들어선 후 얼마 후 좌측편으로 철조망이
따라 붙어 팔재산이후 두 번째 최고봉인 330에 올라 팀장님이 돌린 톡 쏘는 알콜로 피로도를 날려
버리고는 마을 뒷산처럼 아기자기한 봉우리길을 계속 진행한다.
산새들이 없는 쓸쓸함을 달래려는 듯 님들의 대화소리가 재잘재잘 정겨웁게 들리고 두아리와
범말을 잇는 말미고개로 위치를 잡아 묘지로 인하여 생긴듯한 널따란 달머리재로 내려서서
점심을 먹는다.
일어서자 마자 오름길로 접어 들어 식후 부담감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와 고개마저 들기
힘드는데 이름 없는 야산에서 이정표역할을 하던 묘지도 이곳에서는 문중의 세력을 과시하는
듯한 묘지가 워낙 많아 무용지물에 가깝고 표지기를 따라 벌목지의 심한 잡목지대를 빠져나오니
통신안테나를 깃점으로 탄천면과 이인면을 잇는 2차선의 포장도로 내려선다.
우측으로 인공적으로 가꾸어진 소나무가 즐비하고 봉우리 하나를 올라서 특징 없는 봉우리에
자그막게 매달린 성황산의 이정표를 대한다.
정맥길은 성황산에서 좌측으로 꺾이어 북으로 진행되던 길이 되려 남으로 진행되니 이기원님이
뭔가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아 진행방향에 의문점을 남기나 진행은 순조롭게 잘되고 있고
우려했던 김성자님은 등반대장의 뒤를 바짝 붙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훌륭히 해 이제 정상
고도에 올라선 황인성님 홍숙희님 그리고 정맥에 서서히 빠져든 듯한 오연규님등은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
고도를 바짝 낮추어 야트막한 지역을 형성하다 보니 밤나무 밭이 수시로 나타나고 주위의
능선들은 개간으로 황폐화 되어가고 있고 철조망이 수시로 나타나며 이번 구간은 온통 묘지
전시장이고 묘지천국이다.
우측으로 별장지 같은 단독집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 과수원으로 인하여 정맥길은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버려 여성회원을 비롯하여 후미는 우회를 하고 권여사님만이 철문에 매달려 용을
쓰고는 기어코 타고 넘어 시멘트길의 반송고개를 밟는다.
여기 철문에는 얼마나 묘지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섰으면 허가 없이 묘지조성을 경고하는
경고판이 매달려 있다.
벌목지에 형성된 잡목지대를 사면을 타고 오르는 님들의 뒷모습이 꼭 고지를 점령하는
각개전투의 형상으로 옛 드라마 전우의 한 장면을 보는 것 마냥 흥미진진하다.
하늘은 잔뜩 흐려져 이젠 이슬비까지 비치기 시작하고 마을이 지척인 듯 내려다 보이는
야산지역으로 독도마저 시원찮은 데 벌목지는 여지없이 잡목이 파고들어 선답 했었던
산적일당들의 충고가 세삼 피부에 와 닿는다.
빗줄기가 고압전신주에 닿아 지지직 거리며 위협하고 이 전신주를 세우기 위해 개설된 듯한
널따란 길이 이어지며 허리에 하얀 리본이 묶인 나무들이 정맥리본들과 함께하여 밤나무단지에
이른다.
묘지의 양지바른 곳에는 계절을 잊은 개나리가 피어있어 하루살이 마냥 반짝 세상 구경에
나섰고 또다시 철조망이 정맥길과 마주하는데 일부님들은 철조망을 넘지 못하고 되돌아
나오나 그 속에서 토끼만은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대단위 밤나무 밭에서 잠깐의 쉼을 하는 사이 비에 대한 대비를 하고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차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안부에 내려서는데 정맥길은 축사가 있는 마을쪽이 아니라 통신탑이
있는 능선마루다.
이젠 지겨울 정도인데 또다시 과수원의 철조망이 좌측으로 슬그머니 붙고 통신안테나에
이르니 논산-천안간 고속도로 사이로 이인휴게소 안내간판이 보이고 건너편으로 철계단이
직벽에 걸쳐 있다.
고속도로와 나란히 하는 697번 지방도의 복룡리 표지석이 있는 복룡재에 내려서서는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메케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돼지 축사쪽의 굴다리를 통해
마루금으로 접근한다.
먹구름에 안개마저 몰려와 더욱 을씨년 해졌는데 배낭을 하나씩 메고 철계단을 오르는 님들은
에베레스트의 정복에 나선 사람마냥 힘에 겨워 보인다.
키 작은 소나무들이 운집하다 보니 자연사한 나무들이 수시로 갈 길을 잡는데 기원님은
힘자랑 아닌 뒷사람의 배려차원에서 나뭇가지를 제거하여 그 뒤를 따르는 나만 편해졌다.
귓전을 울리는 고속도로의 차량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고속도로 마냥 넓다란 4차선의
40번 국도가 우측편으로 직선을 이루고 이 도로에서 진고개로 갈래 친 갈림길이 시야에 잡힌다.
잡목을 뚫고 내려서니 주위가 환해지면서 줄을 쳐서 출입을 막고 있는 댓골사거리가
나오고 넓다란 임도가 이어지며 또다시 줄을 처놓고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는데 이제 막
식재한 주목을 보호하기 위함인 것 같다.
금연으로 잠시 외톨이로 지내다 다시금 뭉쳐 한결 단결력이 돋보이던 거시기님과 기원님은
고원지대에 있어야 할 주목이 야트막한 곳에 있어 구상나무다 아니다로 침을 튀기며
갑론을박을 펼쳐 마땅한 돌파구가 없던 차에 팀장님의 해박한 지식에 주목으로 결말을 맺는다.
그려서 집안에 기둥이 있어야 된당께~~
시야가 터져 광명리에서 꾸불꾸불 올라오는 임도가 훤히 보이는 임도를 좌측으로 내려
보내고 숲으로 들어서니 가시밭길이 사라지고 요통을 방지해 주려는 듯 자유롭게 큰
소나무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재미를 만끽하며 걷는 사이 좌측에 645번
국도가 보이는가 싶더니 40번 국도에서 갈래 친 697국도 와 만나는 삼거리의 진고개로
순식간에 내려선다.
지당세계만물박물관 안내판과 광명리 표석이 있는 날머리에 평상시에는 있어야 할 버스가
보이지 않아 전화를 해보니 시동이 걸리지 않아 탄치나들목에서 이동을 못하고 있다는데
탈출 없이 일사천리로 운행을 하다 보니 이젠 버스 때문에 알바아닌 어프로치를 감수해야 한다.
30여분을 내려와 겨우 한켠에 주차된 버스와 만나서……
열분은 해보셨슈~, 버스를 밀어서 시동 거는 것.., 우리는 해봤슈…,
전주막걸리 골목의 멋진 뒷풀이가 기다리고 있어 그나마 다행인 가운데 전주가 고향이신
남희우님 형제분들의 안내로 찾아든 삼천동 막걸리 골목에서 산님들이 건네는 막걸리
잔속에 정신마저 혼미해 저 버렸다.
<금남정맥 7구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