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석 만화, <100℃>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
가볍게, 아주 가볍게 글을 시작하려고 했다. 만화책이지 않나. 만화책 이야기를 하는데 작정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하면서 소개할 필요가 무에 있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더라. 물론 만화라는 장르가 가볍고 접근이 쉽다, 뭐 그런 생각 때문은 아니었다. 최규석이 그리는 만화가 그런 류의 것은 아니지 않나. 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 보면 그런 말 쏙 들어간다.
그래도 가볍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봤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이 책을 사고, 봤으면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가 않더라. 왜냐구?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더라도 읽다보면 어느 새 가벼운 마음이 묵직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가끔은 목울대가 뻑뻑해지고,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는 얘기다. 그러니 어찌 가볍게 이야기하고 가볍게 넘어갈 수가 있으랴.
가볍게 읽을 수 없기에 가볍게 시작하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잘 알려졌다시피 최규석 만화 <100℃> 1987년의 6·10 항쟁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내용은 거창하지도 구호로 가득 차 있지도 않다. 이 땅 위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6·10항쟁의 현장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는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더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런데 말이다. 이 책, <100℃>는 1987년의 이야기만 하고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는 말이다. 어떤 여운이냐고? 현재를, 지금의 이 시간을, ‘작금의 현실’을 짚어보게 한다. 작금의 현실이 어떠냐고? 눈 감고 사시나? 귀 막고 사시나?
멀리 갈 것도 없다. 아침마다 출근할 때 노량진에서 버스를 타고 삼각지까지 간다. 노량진과 삼각지 사이에 용산이 있다. 용산에는 용산 참사현장이 있다. 어느 날 아침인가, 우연히 걸개그림 다섯 개를 보았다. 용산 참사 희생자들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 그림만 있었으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내 눈에 띈 것은 핏빛처럼 붉은 꽃이었다. 그림으로 살아난 희생자의 가슴에 붉은 꽃이 달려 있었던 것이다. 얼핏 지나가면서 본 것으로는 카네이션이지 싶었다. 그건 그림이 아니었다. 여러 날이 흘러도 시들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조화지 싶은데, 그거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걸개그림에 매달려 있는 붉은 꽃은 그림이 아니라서 무척이나 도드라져 보였다. 특히 붉은 색이. 그것을 보는 순간, 가슴에 화살이 날아와 박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죽은 이들의 영가(靈駕)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몸은 냉동고에서 꽁꽁 얼어붙어 있으나, 그들의 영가는 용산 참사현장에서 한 걸음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저 죄를 어찌 받으려고 그러나, 싶었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 편안하게 잠을 이루는지 궁금하다.
그들이 어찌 죽었는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데도 그 죽음을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철저히 탄압하고 있다, 정부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고 했다. 용산 참사 하나로 우리는 ‘작금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다른 예를 더 들 필요가 있겠나.
우리의 현재는 암울하고, 더불어 미래도 같은 색채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100℃>는 1987년과 지금을 비교하게 하고, 그 때의 온도와 지금의 온도를 비교하게 만든다. 6·10항쟁 직전, 민주주의의 온도는 99도였고, 6·10을 기점으로 비등점에 다다랐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100℃>를 보면서 작금의 현실을 돌이켜 생각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현재는 과거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이를 뒤집어서 말한다면 과거는 현재가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100℃>를 보면서 6·10항쟁을 복기하는 거, 이 시점에서 정말 필요하지 않나.
우리나라 사람들, 참 빨리 끓어올랐다가 참 빨리 식는다고 한다. 빨리 잊는다고도 한다. 물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 맞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빠르다고 한다. 하지만 잊는다고 다 잊는 줄 아나. 한번 체화된 경험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몸이 기억하고, 마음이 기억한다. 해서 같은 상황이 왔을 때 더 빠르게 반응한다.
<100℃>는 어쩌면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당시의 상황이 재현될 지도 모른다는.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우리, 먹고사느라 바빠서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 있는 줄 아나 본데, 정말 그럴까?
6·10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 역사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건 사족인데, <100℃>는 아무리 생각해도 불온서적이다, 국방부의 시각에서 본다면. 국방부는 <100℃>를 불온서적으로 선정해야 하지 않을까? 경제 침체로 책이 안 팔린다는데, 국방부가 출판계의 불황 극복을 위해서라도 나서줘야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쓸데없는 생각도 더불어 해봤다.
2008년 국방부가 23종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선정, 출판계가 조금이나마 덕을 봤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기에 덧붙여 봤다.
뭐, 안 그래도 많이 팔리고 많이 볼 것 같기는 하다, <100℃>.
최규석 - 1977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2003년 상명대 만화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잡지사 신인만화 공모로 만화가로 데뷔했다. 2003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 초청되었다. 그린 책으로 <대한민국 원주민>, <습지생태보고서>,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등이 있다. <대한민국 원주민>으로 2008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원글 출처 : http://blog.ohmynews.com/olives/284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