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신질환의 원인적 분류
정신의학에서 다루는 정신질환은 사실 뇌의 질병에 의한 정신질환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물론, 뇌의 질병으로서의 정신질환을 보이는 사람들을 다루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긴 하지만, 다른 문제에 의한 정신이상이 여러 경우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대체로 그 원인을 생물학적 요인, 심리적 요인, 사회학적 요인으로 크게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1)생물학적 원인
생물학적 원인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뇌의 이상에 의한 경우와 둘째, 뇌 이외의 신체적 이상에 의한 경우를 들 수 있다.
먼저, 뇌 이상에 의한 경우를 살펴보면, 정신병과 기질적 뇌증후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신병 : 더 세밀한 원인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있지만, 정신이상의 원인이 뇌의 이상에 있는 것으로 분명히 밝혀진 경우이다. 여기에는 정신분열병, 정신병적 우울증, 조울증, 편집장애, 단기 반응성 정신장애등이 있다.
기질적 뇌증후군 : 교통사고 등에 의한 머리 부상, 뇌졸중 등과 같은 사고 또는 뇌염이나 매독과 같은 감염성질환, 뇌종양, 약물(알코올 포함)등등으로 인하여 뇌에 손상이 가서 정신이상을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손상이 심각하지 않을 때는 미미한 정신이상의 증상을 보이다가 이내 자연적으로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손상이 중증 이상일 때는 정신이상의 소견이 상당히 지속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평생가면서 항정신병 약물로 치료 반응이 쉽게 오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둘째, 뇌 이외의 신체적 이상에 의한 경우에는 독성물질의 과부하(예: 만성신장염), 전해질의 불균형(예: 심장수술), 내분비의 변화(예: 갑상선 질환)등등 여러 신체적 이상들에 의해 정신이상이 일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그 기전을 이해하려면 전문적 의학지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경우는 그 원인을 교정하였을 때 정신이상의 증상이 바로 소실된다.
이와 같이 소인의 결함, 질병, 내분비선 장애, 외상은 정상적인 발달에 큰 장애를 주는데 이들은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또한 박테리아, 유독성 물질, 신체적 손상, 비타민과 호르몬의 결핍도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또한, 유전자의 결함이 있을 때 이상행동이 나타나기도 한다. 즉 염색체의 변이나 불안전한 유전인자의 유전, 혹은 선천적 정신장애 소인의 유전은 부적응행동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유전학의 발달로 염색체의 이상을 쉽게 발견하게 되어 정신적 장애와 그것이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을 비교적 정확하게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정신질환의 증상을 일으키는 뇌 속의 이상 물질이나 독성물질을 발견하려는 연구는 오래전부터 시도되어져 왔고 지금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뇌 속의 이상대사물질에 관한 연구,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의 연구, 에너지 대사 이상에 대한 연구, 신경내분비에 관한 연구, 뇌의 기질적 병변에 관한 연구 등등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즉 우리 몸에 있는 많은 신경전달 물질이 신경과 뇌의 기능에 관여하고 있는데, 이들 중 일부가 여러 종류의 정신질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이런 연구를 근거로 정신질환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치료약물이 만들어지고 있다.
2)심리적 원인
정신질환의 대부분이 심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있고 지금까지 알려진 원인도 수 없이 많이 있다.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든지, 기족 구조에 병적인 소인이 개재되어 있었다든지, 어렸을 때에 정신적 외상을 받았다든지, 왜곡된 대인관계를 형성하였다든지, 혹은 현대사회에서의 스트레스를 받았다든지 등이 그것이다.
신경증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 뿐 아니라, 건강한 일반인에게 있어서도 공포, 불안, 분노, 자책 등등에 의해 정신적인 불안정이 심하게 야기 될 때 정신병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심리적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잘 지내다가도 심리적인 문제가 활성화 되는 경우에는 몇 번이고 비슷한 정신질환의 현상이 반복 될 수 있다.
사회병질, 신경증, 그리고 조현병을 앓고 있는 대부분 사람들은 아동기에 부모가 세상을 떠났거나 그와 별거하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고아원 같은 수용기관에서 자란 아이들의 상당수가 후에 정신병자, 성격장애자, 정신 지체자, 혹은 신경증 환자가 된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연구에 의해서 밝혀졌다.
인간은 몸과 정신을 분리할 수 없게 일체적으로 되어 있는 존재다. 그래서 인간을 몸의 관점에서 고려해야 하는 것 뿐 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도 관여를 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는 ‘정신신체’(psychosomatic)이라는 개념이다. ‘정신신체’ 개념은, 신체적 병은 발병의 단계에서 단순히 신체적인 원인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영향도 중요하게 받으며, 치료의 과정에서도 신체와 정신 이 두 가지 영역을 꼭 함께 고려하여 치료해야 최고의 회복을 보일 수 있다고 한다. 암에 대한 예를 들어보면, 암을 앓는 사람들 가운데 ‘나는 낳지 못할 것이다’라면 절망 가운데서 치료를 받는 사람과 ‘나는 틀림없이 암을 극복할 수 있다’라며 소망 가운데 치료를 받는 사람의 결과가 의미 있게 차이가 난다는 보고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적 요소(환경적 요소) 중에는, 태어날 때부터 맺어 가장 긴밀한 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떠했는가가 다른 어떤 요소들보다 압도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정신질환인 조현병을 예로, 발병의 기전에 대해 생각을 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생물학적인 요소와 심리적인 요소의 점수들이 합쳐져 100을 채울 때 조현병이 일어나고, 100이 채워지지 않으면 발병이 되지 않는다.’
즉 생물학적 요소의 수치가 90이라면, 심리적인 요소의 수치가 10만 되면 발병이 되지만, 부모님들이 아주 좋고 지혜로운 분들이어서 아이 양육을 잘 하고 부모자녀 관계가 아주 좋은 가정이라면 환경적인 요소의 수치가 10이 되지 않아, 두 요소가 합쳐져도 100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발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물학적인 요소가 아주 적은 경우(예를 들어 5)라 하더라도 문제가 많은 병적인 가정이어서 심리적인 요소가 많게 된다면(예를 들어 95이상), 두 요소의 수치의 합이 100을 넘게 되어 발병하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가정이라고 하더라도(예를 들어 5 이하), 생물학적인 요소가 심각하다면(예를 들어 95 이상) 조현병이 발병된다고 일단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3)사회문화적 원인
한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의 구조에 따라 개인의 성격 및 특성도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회든지 간에 그 사회가 구조와 기능을 상실하면 성격 구조에도 큰 변화가 온다. 예를 들어, 사회가 파괴되면 빈곤, 매음, 중독, 가정파탄, 비행, 범죄가 판을 치게 되고 그로 인해 정신질환 환자도 크게 늘어 날 수도 있는 것이다.
문화적, 사회적 요인과 정신 장애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은 조현병과 같이 가장 일반적인 정신장애의 경우를 보아도 문화적, 사회적 배경에 따라 그 증후가 다르고 발생 빈도가 다르다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정신질환의 여러 가지 사회 문화적인 원인을 살펴 볼 때, 먼저 미국을 보면, 정신적 장애 때문에 입원 가료 중인 환자 중에 백인보다 흑인이 훨씬 많다. 그 이유는 흑인들의 열등국민의식, 사회적 스트레스, 경제적 약점들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의 통계에 의하면 조현병, 조울정신병, 노인성 정신장애 및 알코올성 정신병으로 입원한 사람 가운데 이주민이 토착민 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이는 이주한 후의 사회경제적 열등성의 영향일 가능성이 많다. 이주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의 정신적 장애자의 빈도가 매우 놓은 것을 본다면 생활환경을 자주 옮기는 것도 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정신질환을 실직이나 경제적 타격의 부산물로 볼 수 있을 만큼 두 변인 간에는 깊은 관계가 있는데 장기간 실직 후에 감각상실, 실망, 분노, 도피의 증후가 뚜렷이 나타나고 알콜 중독자가 되는 사람도 많다. 결혼파탄과 가족불화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 구조와 변천도 정신질환과 깊은 관계가 있다. 복잡하고 변화가 심한 사회에서는 신경증이 많고, 반대로 변화가 별로 없고 미개발 사회에서는 반사회적 행위가 많다. 사회적 변동 그 자체도 적응문제를 초래하는데, 사회적 관례가 기술발전을 따라가지 못할 때 전통문화의 가치, 관념, 신앙 등은 현실을 따르지 못하고 개인의 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하여 사회적, 문화적 갈등을 일으키고 개인은 반사회적 행위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