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스트극장>
殉葬
<나오는 사람>
가. 신씨 문중의 사람들
신만승(35세):영월관 35세손-태사공 묘비석 찾는 데 가장 열성을 보임
신정섭(60세):영월관 29세손-태사공 묘비석의 소재를 최초로 확인
신봉식(57세):영산관 29세손-투장묘 이전 후 기계 파출소에 자수함
신우식(42세):영산관 29세손-투장묘 이전 후 기계 파출소에 자수함
신종보(37세):영산관 32세손-투장묘 이전 후 기계 파출소에 자수함
신영무(39세):영산관 30세손-투장묘 이전 후 기계 파출소에 자수함
신상근(42세):영월관 32세손-투장묘주로부터 분묘복구 유골인도 청구소송당함
신오승(61세):영월관 35세손-심묘고유제 판공유사 맡음
신학근(54세):영월관 32세손-심묘고유제 판공유사 맡음
신주하(55세):영월관 33세손-태사공 지석을 자신의 집에다 봉안함
신익수(47세);영산관 33세손-묘지석을 찾기 위해 이영구에게 50원을 마련함
신도승(37세):영월관 35세손-만승의 재종
신명승(38세):영월관 35세손-만승의 재종
신지승(41세):영월관 35세손-만승의 재종. 경주서 교편을 잡고 있으며 투장묘 이전 작업 계획을 은밀하게 주도.
신점순(7세-만승의 딸)
신용수(4세-만승의 아들)
나. 유씨 집안사람들
유분이(33세)-만승의 처. 투장묘주 집안에서 신씨 집안으로 시집 옴
유인영(61세)-만승의 장인
장석조(60세)-만승의 장모
유병국(35세)-만승의 큰처남
유병기(30세)-만승의 둘째 처남
유현식(50세)-유씨집안의 종손
김인곤(62세)-유현식의 고숙
유진학(57세)-유현식의 재종숙
다. 그 외
최판술(35세)-만승의 친구
장경욱(55세)-최초로 정섭에게 태사공 묘지석의 존재를 알림
이영구(44살)-신씨 문중으로부터 50원을 받고 태사공 묘지석의 묻힌 장소를 암시
주민 1, 2, 3, 4.
아낙 1
이영구 처
익수 처
명승 처
주모
왜경 1,2
동네 아이들 1,2,3,4
씬#1 화봉재 원경(기계면 소재, 영월영산 신씨 재실)
5월 5일, 영산영월신씨 춘향대제를 지내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신씨 문중사람들의 무리. 타고 온 차량들(고속버스, 승용차, 레저용....)이 화봉재 앞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고 일부는 주차장을 벗어나 무질서하게 주차되어 있다.
씬#2 화봉재 경내 뜰
화봉재 경내에서 춘향대제에 참례하는 신씨 문중 사람들. 남녀노소가 뒤섞여 있고 ‘영산영월신씨종친회’ 글씨가 적힌 조끼를 입은 남녀청년봉사단원들이 한편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춘향대제를 맡은 제관의 외치는 모습이 비치면 일제히 재배를 하는 신씨 문중의 참배객들.
씬#3 화봉재 안
춘향대제 제상이 차려져 있고 제례복 차림에 유건을 쓴 제관들이 제상 앞의 향에다 흠향을
한 다음 제단 위에 술잔을 올리고 있다.
씬#4 화봉재 경내
춘향제 전경 멀어지면서 화봉재 경내 영산영월신씨 선대 비석이 보인다.
화면 흐려지면서 화봉재 건물은 사라지고 산천 풍경이 흑백으로 변하면 타이틀.
殉葬
씬#5 영일군 기계면 소재 신작로 삼거리에 있는 객줏집 앞<F.I>
자막: 1917년 늦가을.
만승이 최판술의 멱살을 잡고 드잡이를 하고 있다.
만 승 : 이 넘아, 다시 함 더 말해 봐라. 머어? 신씨가 쌍놈이라고오?
최판술: 그라마 신가가 순 쌍놈이지 양반이가?
만 승 : (분을 삭이지 못하고) 야, 이 넘아. 순 쌍놈은 너거 성이 쌍놈이다, 이 넘아. 우리 신씨 문중에서는 너거 성은 성에다 안 쳐준다, 이 넘아.......
최판술: (만승을 밀쳐내며) 그래서 너거 신가들은 시조 무덤도 몬 찾고 있나? 에라이 천하에 돌쌍놈들 같으니......
만 승 : (기죽지 않으려 악을 쓰며) 야, 이 넘아. 우리 시조 어른 금자광록대부문하시랑 평장사 정의공께서는 개성 서화담에 떠억 모셔져가 있는데 무신 개차반 겉은 소리를 씨부리노 이 넘아........
최판술: (가소로운 듯) 그래에? 그라마 너거 신가가 자랑하는 중시조 태사공 묘는 오데
있는지 알고나 있냐, 이놈아...
만 승 : (당장 한풀 꺾인다)...............
최판술: 거어 바라, 이 넘아. 조상 무덤도 똑똑히 간수도 못하는 집안이 양반 타령은 무신 양반 타령이고! (만승을 세차게 밀쳐버린다)
만 승 : (주저앉아 할 말을 잃은 채 중얼거린다) 하! 저 넘이........ 꼭 이럴 때 마다............ 저 넘이....
씬#6 만승의 집 안방
만승의 처 유분이(兪粉伊), 바느질하다 말고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온통 흙먼지 투성이의 만승을 쳐다본다.
분 이 : 머하고 인자 오능교?
만 승 : 알 꺼 엄따.
분 이 : 또 술 자싰능교?
만 승 : (드러누우며) 알 꺼 엄따 커이......
분 이 : 쌈박질한 거 봉이 또 모서 양반하고 술 했구마는.........그대로 눕지 말고 밖에 나가서 좀 털고 들오소!
만 승 : 구신이 따로 엄네..... 판술이 하고 술 문 거는 우찌 아노?
분 이 : 술 묵고 쌈 할 데는 거어 빽끼 더 있나 오데..........또 내가 양반이네 니가 쌍놈이네 하고 동네 사람들 뵈기 우사시럽구로 쌈판을 벌맀구마는.......인자 지발 정신 좀 차리소! 요새 시상에 양반 쌍놈이 오딨노?
만 승 : (반사적으로 힐끗 보며) 무신 소리! 와 양반 쌍놈이 없어?
분 이 : (달래는 투로) 다 이전 말이지....요시는 사람 사는 형편이 양반도 맨들고 쌍놈도 안 맨든다 아이요? 그라이 인자 제발 타성받이들 하고 성씨 타령 좀 고마하고 댕기소.
만 승 : (무시하며) 그거는 뼈대도 없는 성씨들이 하는 소리지....와 양반 쌍놈이 없어?
분 이 : 그나저나 내일 묘사 지내러 갈 양반이 정신을 들여야하지 조상님 들먹이가민서 그래 쌈박질이나 하고 댕기마 우짜능교 응이? <F.O>
씬#7 나지막한 야산
무덤 몇 기가 있고 무덤 앞 상석에 간단한 제수가 차려져 있다. 만승을 비롯한 만승 집안 사람-정섭, 상근, 익수, 도승, 명승-들이 의관을 갖추고 시제를 지내고 있다.
무덤 저 편에 동네 조무래기들이 시제가 끝난 후 나누어 줄 떡을 받아먹기 위해 군침을 삼키며 얌전히 엎드려 있다.
정 섭 : (아이들에게) 야들아! 이리 오이라! (도승에게) 거 인절미하고 아들한테 나나주라. 이 추운데 아들이 울매나 떨었것노.....
도 승 : 우리 집안 아들은 아인 것 겉은데예, 할아버지?
정 섭 : 그기야 뭐 이 근방 유씨네 아이들 아이겠나. 아무 집안이라도 아이는 아이지 머. 아나, 야들아 이리 오이라.(아이들을 향해 손짓한다)
씬#8 무덤이 있는 야산
아이들이 도승이 나누어주는 떡을 손수건에 받아 싸들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만승이 그중 한 아이에게 눈을 주며
만 승 : 저 넘아 저거.... 판술이 아들인것 같은데예?
도 승 : (돌아보며)누가?
만 승 : 방금 떡 받아들고 간 아 말입니더.
도 승 : 판술이가 이 동네 살았던가?
명 승 : 판술이라 카마 그저께 자네하고 멱살잡이한 그 친구 말이가?
만 승 : (쑥스러운 듯) 성님도 봤능교?
명 승 : 지나가다보이 자네하고 실랭이를 하고 있데........ 자네도 인자 다른 성씨들하고 집안 이야기는 좀 가려가며 해야 하네.
만 승 : (변명하듯) 자꾸 중시조 묘도 몬 찾고 있는 쌍놈 집안이라고 트집을 잡길래......
정 섭 : (반사적으로 만승을 돌아보며) 누가?
만 승 : 판술이 뿐만 아이라 지금꺼정 다른 성씨들한테서 늘 듣는 소리라 솔직히 낯이 안 섭니더........
정 섭 : (먼 산을 바라보며) 그거야 입이 열 개 있어도 할 말이 엄따만........그렇다고 쌍놈 소리를 듣고 다녀서야 오데.......
상 근 : (꾸짖듯) 너거가 책 잽히는 짓을 아예 안 해야 되는데......하기사 젊은 혈기에 그런 소리를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지, 솟기야..........
씬#9 태사공 묘가 있는 능골
산불이 나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능골에 연기가 피어오르면 인근 주민들이 각자 삽과 바가지 따위를 들고 능골 주변에 집결하여 산불을 끄는 데 여념이 없다. 특히 태사공 무덤 가까이 불길이 번져가자 유씨네 집안사람들이 조상들 무덤으로 불길이 옮겨갈 것을 우려하여 몸을 아끼지 않고 불길을 잡는다.
만승과 판술도 한 몸이 되어 불길을 잡는 데 여념이 없다. 연로한 정섭은 유진학, 유현식과 더불어 사람들을 독려하여 진화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점차 불길은 잡혀가고 연기는 가늘어진다. 장경욱이 정섭과 유진학을 번갈아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정 섭 : 마치맞게 바람이 안 불어서 다행히 불길이 잽혔네............
유진학: (고마운 표정이 역력하다) 하마터면 조상님 유택에까지 불길이 번질 뿐 했습니다. 어르신 집안사람들이 애써주셔서 고맙소이다.
정 섭 : 무신 말씀을......... 당장에 산불이 났는데 누구네 산소가 문제겠소.
유현식: (곡괭이를 메고 오는 만승을 가리키며) 저 사이상(*사돈댁 사람을 높여 일컫는 말)이 화상은 안 입었능가 모르것네...... 사람이 어찌나 열성인지......
최판술: (옷에 묻은 재를 털며 지나다가 대화에 끼어든다) 저 친구 원래가 이런 일에 몸을 아끼는 사람이 아니라서 ..............
정 섭 : (최판술을 새삼 쳐다보면서) 자네는.......?
최판술: 어르신도 나오셨습니까? 저 모서동에 사는 최판술입니더.
정 섭 : 아, 그래? 자네 춘부장은 어떠신가?
최판술: 예, 아직 세 끼 조석도 잘 자십니더........
만 승 : (그런 최판술을 보자 시비조로) 산불 구경나왔능가?
최판술: 이 친구가 또....
만 승 : 어때? 불길이 일찌건이 잽히서 서운하제?
최판술: 야, 이 사람아, 말을 해도 우찌 그리하노........ 안주꺼정 성이 안 풀렸는가? 어제 일은 미안하네....
씬#10 동네 어귀
산불을 끄러 간 사람들이 돌아온다. 장경욱이 정섭의 뒤로 바짝 붙는다.
장경욱: (머뭇거리다가) 저어..........어르신?
정 섭 : (돌아보며) 누구신가?
장경욱: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예............
정 섭 : 나 한테?
장경욱: (주위를 살피며) 네.
정 섭 : 무슨 일인데?
장경욱: (계속 주위를 살피며) 여기서는 좀...........
씬#11 정섭의 사랑방
큰 충격에 휩싸인 정섭. 그 앞에 장경욱이 안절부절 못 하고 있다.
장경욱: 어르신.........이 일은 절대로........
정 섭 : 알았네... 그나저나 자네는 우째서 여태까지 있다가 인자 와서...........
장경욱: 오늘, 조상의 묘도 모르고 산불을 끄고 있는 신씨 문중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발길이 안 떨어지서..........
정 섭 : 자네로서야 와 앙 그렇겠나만 ....... 허어 참, 이럴 수가!
장경욱: 어르신......절대로........만에 하나 제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알려지는 날에는.........
정 섭 : 물론이지.
장경욱: 저도 처자식이 있고.........
정 섭 : 절대로 비밀로 함세..... 대신 내일 오시에 능골에서 꼭 만나세.
장경욱: 저쪽 사람들이 알게 되면 저는........
정 섭 : 그 문제는 나한테 맡기시게. 이 은혜는 우리 집안의 명예를 걸고 꼭 갚을걸세.
씬#12 정섭의 사랑방<밤>
희미한 호롱불 밑에 정섭과 상근, 익수, 명승, 도승, 만승이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상 근 : 장씨라는 사람이 어디 사는 사람입니까?
정 섭 : 형산면 양덕 사람인데 능골 산불 구경나왔다가 제 조상 무덤을 남의 산소로 알고 불길을 잡는 우리 집안사람들을 보고 도저히 발길이 안 떨어진다며 나한테 귀띔을 하던거로 ....... 참말로 고마운 사람이지.
만 승 :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그라마 처갓집 산소 가운데 있는 그 큰 무덤이 바로 중시조 신태사공 묘라는 말입니꺼?
상 근 : (주위를 살피며) 자네 목소리 좀 낮추게........
익 수 : 그래. 이 일은 보통 큰 문제가 아니네.
만 승 :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명 승 : 생각할수록 억울합니더. 중시조 묘를 바로 옆에다 두고도 여태꺼정 모르고 살아온 거로 생각하마.............
도 승 : 대체 언제부터 투장을 했다는 이야기입니꺼 그라마........?
정 섭 : 그거는 저쪽 집안사람들, 자기네들끼리도 잘 모르는 모양이라...........아마도 몇 백 년은 안 됐겠나?
상 근 :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인곤 씨를 만났는데 능골에 있는 큰 무덤이 자기 처갓쪽 조상 묘인 거는 틀림이 없는데 묘지석이 없어져서 억울하다면서 속을 태웁디다.
만 승 :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억울한 쪽은 우린 데...........
도 승 : 문제는 묘지석만 찾으면 되는 거 아입니꺼?
명 승 : 맞습니더. 비석을 찾아내기마 하마 저거도 할 말이 없을 낍니더.
만 승 : 당장 찾으러 가입시더 고마.
익 수 : 어허, 이 사람..........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네는 특별히 좀 진정하게. 상대는 자네 처갓쪽 집안 아인가?
만 승 : 그기이 무신 상관입니꺼? 처가는 처가고, 우리는 우린데....
도 승 : (만승에게) 그래도 재종은 종수씨 생각해서라도 앞에 안 나서는 기이 안 좋것나?
익 수 : (정섭을 보고) 그건 그렇고, 장씨 그 사람, 정말로 비석을 몰래 파묻은 장소를 알고 있답디까?
정 섭 : 말하는 뽄새로는 알고 있는 모양이라.......내일 만나기로 했응이 자네들은 각별히 말조심하고 기다리게. 이 일은 우리 문중뿐만 아이라 사회적으로도 보통 문제가 아인만큼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되네.
씬#13 만승의 집<밤>
만승의 집 방문에 희미하게 비치는, 서있는 만승의 그림자.
분 이 :<E> 점순이 아부지? 와 그리 서 있능교? 또 모서양반하고 싸왔능교?
씬#14 만승의 집 안방<밤>
만승이, 아내 유분이(兪粉伊)를 노려보고 서 있다. 어리둥절한 만승의 처 유분이.
만 승 : 당신.....(무슨 말을 하려다가 생각난 듯 억지로 참는다)
분 이 : 와 무슨 일잉교? 말 해보소? 이상하네, 사람이 말도 없이..........
만 승 : (외면하면서 자리에 드러눕는다)
분 이 : 와? 내가 무신 잘못한 거 있능교?
만 승 : (등을 돌린 채) 잘못한 거? 당신이 잘못한 거는 아이지.......
분 이 : 내가 아이면.....그럼 누가 무신 죄라도 짔단 말잉교? 아이구 얄구지라....
만 승 : (돌아누우며 큰 소리로) 모르면 가만이나 좀 있어!
분 이 : 참말로 사람이 이상하네? 점순이 아부지, 갑자기 와 이라능교?
만 승 : 지금 우리 집안이.........(말 하려다 억지로 입을 닫는다)
분 이 : 또 오데서 씰데 없는 집안 자랑하다가 싸왔구마는.....고마 인자 대강하소이....
만 승 : (벌떡 일어나 앉으며) 모르마 가만이 있으라 안 카나!
분 이 : 아이구, 놀래라! 사람 치것네. 사람이 평소 안 하던 짓을 하고 와 이라능교 참말로....?
만 승 : (천정을 쳐다보며) 내일 가 볼 데가 있응이 두루마기나 좀 챙기 놔!
분 이 : 그래 마실만 댕기고......... 싸리골 보리 파종은 운제 할라커노?
만 승 : 허어.......이 여편네가 지금?..... 농삿일 따위는 문제가 아이라커이......
씬#15 능골
의관을 정제한 정섭과 상근, 만승이 태사공 묘가 있는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서성대고 있다.
만 승 : 큰골 할아버님, 아무래도 장씨가 안 오는 것 같습니더. 미시가 다 돼 갑니더.
정 섭 : 조깨마 더 지달려보자. 자기도 넘 눈이 있응이 안 조심스럽것나.
상 근 : 우리가 능골에 올라오능 거 저쪽 집안사람들이 보지는 않았지 그리? (만승을 보며) 자네는 오늘 안 와도 되는데........ 백지 우리 집안사람끼리 여럿이 능골에 오면 표가 안 나것는가.....
만 승 : 걱정하지 마이소. 아무도 본 사람 없을낍니더. 지는 일부러 저 웃골로 해서 돌아왔습니더.
상 근 : 혹 돈을 바라고 있능 거는 아이겠습니꺼?
정 섭 : 후하게 대접하겠다고 언질은 주었지.
만 승 : 아무래도 장씨가 약속을 어긴 것 같습니더.
정 섭 : 그래도 사람을 한 번 더 믿어 보자. <F.O>
씬#16 다른 방향에서 바라 본 능골 <F.I>
멀리 정섭과 상근, 그리고 만승이 처연하게 서 있다.
정 섭 : 이 사람이 기어이 안 올랑갑다. 그만들 내려가자.
만 승 : 시장하시지예? 모서 장에 가서 국밥이라도 드시지예?
정 섭 : 아이다. 올라올 때 맨치로 각자 떨어져서 내려가자.
상 근 : 그기이 좋겠습니더.
씬#17 장경욱의 집 마당
지승이 마당에 들어서며
지 승 : 장서방 있는가?
장경욱:<E> 누구시오? (방문이 열리며 얼굴을 내밀다가 지승을 보고 안색이 변한다)
지 승 : 좀 들어가겠네 (동시에 마루에 올라선다)
씬#18 장경욱 집 안방
지승과 장경욱이 마주하고 있다.
지 승 : 자네 입장은 모르는 바가 아니네.
장경욱: 지송합니더. 어르신들을 기다리게 해서...... 그날 갑자기 몸이 아파서.....
지 승 : 그럴 줄 알았네. 자네가 약속을 어길 사람이 아니지. (장경욱을 지그시 바라보면)
장경욱: (시선을 피하는데)..........
지 승 : 이보게, 장서방?
장경욱: (대답을 못하고)
지 승 : 다시 한 번 걸음을 해주게. 응?
장경욱: 저 사실은...........
지 승 : (장경욱의 머뭇거림을 막으며 친근하게 다그친다) 이보게 장서방........사실 몇 백년간 우리 집안의 수모였네. 자네도 잘 알고 있다 아이가? 우리 가문이 이거 때미로 울매나 고충이 많았는지...... 아마 자네도 그래서 말을 꺼 냉 거 아이가?
안 그렁가?
씬#19 정섭의 사랑방
만승이 정섭의 분부만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만 승 : 장 씨 집으로 제가 한번 직접 가 보까예?
정 섭 : 아이다. 하마 무신 기별이 올 끼다.
만 승 :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정 섭 : 장 씨가 그럴 사람은 아인데..... 일단 한번 지달려 보자. 그날 태사공묘도 모르는 우리 집안사람들이 딱해 보여서 자진해서 말을 꺼낸 사람 아인가......
만 승 : 석물을 묻은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했지예? 장씨가........
정 섭 : 말투는 그랬다마는........
만 승 : 혹 위치를 잘 몰라서 발뺌하는 거는 아이까예?
정 섭 : 그런 중대한 사정을 발설했을 때는 자기 나름대로 알고 있는 것이 있다고 봐야 안 되것나? 자네 너무 조급히 서둘지 말게나. (이때 지승의 소리가 밖에서 들려온다)
지 승 : <E>큰골 할아버님. 저 댕기 왔습니더.
정 섭 : (반색을 하며) 그래? 어서 들오게.
지 승 : (사랑방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만승을 보자 의외라는 듯) 재종이 여기는 어떻게?
만 승 : 궁금해서 전딜 수가 있어야지예....... 아이고, 경주서 운제 오싰능교? 이번 일로 성님이 수고가 많네요.
정 섭 : 내가 특별히 저 사람을 불렀다 아이가. 장 씨하고는 처남남매 간이고 해서.....그래, 장씨는 만나 봤나?
지 승 : 생각한대롭디다. 남의 집안 송사에 끼일 걱정으로 아파 누워 있습디다.
정 섭 : 그렇지...... 그기이 작고 큰 일이 아이지.
만 승 : 그래도 그렇지예. 일단 말을 꺼냈으마 매듭을 지어 주야 안 됩니꺼?
지 승 : 우리 생각은 그렇지만 장서방 그 사람 처지로는 또 좀 다를 거 아이가?
정 섭 : 내가 보기에도 장씨 그 사람 마음이 여리서 망설일 만도 하다.
만 승 : 그거야 그렇지마는 이거는 우리 집안의 명운이 걸린 문제 아입니꺼?
정 섭 : 그래 장씨 생각은 어떻등가?
지 승 : 결심이 서는 대로 조만간 다시 한 번 찾아뵙는다고 했습니다.
만 승 : (조급함을 누르지 못하고) 결심? 조만간?
정 섭 : (침울한 모습) 사람 맘이 안 변해야 되는데..........
씬#20 비석골<밤>
장경욱이 만승의 팔에 이끌리다시피 비석골 비탈을 오르고 있다.
장경욱: (숨을 헐떡이며) 이보게, 만승이. 좀 쉬었다 가세.
만 승 : (역시 가뿐 숨을 몰아쉬며) 그라입시더.
장경욱: 웬 걸음이 그렇게 날랜가?
만 승 : 조상님을 찾는 일이라 내 마음이 바빠서 그런가 봅니더.
장경욱: 자네 성의가 참 대단도 하네 그려.
만 승 : 아까 낮에 기계 장터에서는 미안했습니더.
장경욱: 아잉기 아이라 여러 사람 보는 데서 다짜고짜로 젊은 사람한테 맥살을 잽히고 보이 황당하더마는............
만 승 : 이해를 해 주이소. 제 딴엔 남의 눈을 속일라카다봉께 고마.....
장경욱: (웃음을 머금고) 그래도 그렇지. 노름빚 안 갚는다고 장판에서 젊은 사람한테 맥살을 잽혔응이 사람들이 나를 영판 노름쟁이로 안 보겠나, 이 사람아.
만 승 : (쑥스러운듯) 그런데 능골에 있는 비석을 왜 비석골에다 묻었으까예?
장경욱: (자신 없어하며) ....그거야.... 들키지 않으려면.... 멀리 내다 버려야 안 되것나?
씬#21 또 다른 비석골<밤>
장경욱이 팔을 뻗어 가리키면 만승이 유심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만 승 : 그렁이까 저 비녀 바우 아래 그 어디쯤이라 그 말이지예?
장경욱: 나도 그렇게 들었다네.
씬#22 또 다른 비석골<낮>
인파가 하얗게 운집한 비석골.
자막: 1918년 4월 3일
씬#23 비석골에 운집한 구경꾼
흰옷의 군중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일제히 한 방향을 응시하고 있다.
주민 1: 초제(草提) 죽동(竹洞) 성계(星溪) 세 문중의 신씨들이 다 모일만도 하지.
주민 2: 능골에 있던 묘지석을 비석골에서 찾을 수 있으까?
주민 3: 누가 신씨 집안사람들한테 그렇게 일러주었다더만.
주민 2: 그것 참 고약한 일도 다 있네......
주민 4: 거 무거운 돌을 여기까지 져다 날랐으까이?
주민 2: 내 말이 그 말이네.
주민 3: 듣고 보이 그렇네?
주민 4: 아무래도 신씨들이 헛수고를 하는구마는..........
주민 2: 차라리 능골을 파 뒤비능기이 빠를 긴데.....
주민 4: 능골에 있는 큰 묘가 신 태사공 묘라는 소문이 있는데 일리가 있어.
그 정도로 큰 무덤이라카마 왕릉이나 태사공 벼슬쯤 되는 사람 무덤 아이겠나? 그래서 골짜기 이름도 능골 아이던가베?
주민 3: 쉬이-. 누가 들으마 우짤라고?
주민 4: 차라리 요번 참에 정식으로 능골 묘를 태사공묘로 봉안하는 것이 저런 헛수고를 하는 것보다야 백배로 현명한 일일 낀데..... 모르겠다...... 남의 문중 일이라서.......
주민 3: 누군지 모르겠지만 유씨들 후환이 겁나서 일부러 거짓말을 한 기이 틀림없을 끼야.
씬#24 장경욱의 집 안방
장경욱이 불안한 표정으로 곰방대를 물고 있다가 담배 연기를 내 뿜는다.
씬#25 유현식의 집 마당
유진학이 급히 마당에 들어선다
유진학: 종손! 종손! 그 안에 있는가?
씬#26 유현식의 집 안방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유진학. 유현식과 김인곤을 보자 목례를 건네며 급히 앉는다.
유진학: 응...자네도 소문을 듣고 왔는가? (유현식을 보고) 저어 종손!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능골에 있는 우리 산소를 신씨들이 자기네 선영이라며 지금 비석골에서 묘지석을 찾는다고 난리가 났다는데?
유현식: 이전부터 그런 소리가 없었던 건 아이지만 글쎄요, 지금 와서 갑자기 와 저러는지 저도 이상해서 고모부님께 알아 보고 있는 중입니다.
김인곤: 영산영월신씨 대동보에 보마 태사공묘(太師公墓)의 위치를 ‘묘재경주기계리 (墓在慶州杞溪里)’라고 써있는데 신씨들이 그거를 근거로 능골에 있는 묘가 태사공묘 아이겠느냐고 주장을 한다는 기야. 이거 가마이 있다가는 큰 일 나게 생겼어. 까딱하다가는 유씨네 조상묘를 빼앗길 지도 몰라.
유진학: 그리되마 능골의 우리 산소는 우찌 되는 겁니꺼?
김인곤: 신씨네 조상 묘 옆에다 자네 집안에서 투장을 한 꼴이 되는 기지.
유현식: (안색이 변하며)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그 산소가 운제부터 내리 오는 우리집안 선영인데.......
씬#27 만승의 집 마당
아낙1이 만승의 집 마당에 급히 뛰어 들어오다가 부엌에서 나오는 유분이와 마주친다.
아낙 1: 점순이 엄마! 점순이 엄마! 지금 점순이 아부지 오데 갔능지 모르제?
분 이 : 와 그라능교?
아낙 1: 지금 비석골에 신씨 문중 사람이 다 모있다 카는데 점순이 엄마만 모르고 있네?
분 이 : 비석골에? 집안사람들이 거기서 머할라고 모있답디까?
아낙 1: 아이고오 우짜것노. 점순이 아부지가 이바구를 안 해주덩가베?
분 이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점순이 아부지가 머로 숨긴단 말잉교? 새북에 일찌건이 연장 챙기들고 밭에 간다고 갔는데.........
아낙 1: 아이고오, 그것 보래미? 괭이들고 나갔제? 태사공 비석 캔다고 온 집안사람들이 비석골에 모있다 아이가?
분 이 : 태사공 비석을 캐요?
아낙 1: (무언가 감이 잡히는 듯) 쯧쯧...... 점순이 외가 쪽하고 걸리는 일이 돼 낭께 말로 안했능갑다. 능골에 있는 태사공 비석을 점순이 외가 쪽에서 몰래 비석골에다
파 묻었다고 누가 일러바쳐서 지금 난리가 났다 아이가?
분 이 : 아이 대체 그기이 무신 말잉교? (표정이 심각해진다)
씬#28 비석골 묘지석 발굴 현장
신씨 문중 사람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땀을 닦고 있다. 땀에 젖은 옷에 잔뜩 묻은 흙먼지.
만 승 : 분명히 여기에 묻었다고 했는데...........반경을 넓히갖고 한 번 더 파 보입시더.
봉 식 : 아니네. 나는 사실 처음부터 이상하다 싶더마는.....여기에 묻었을 리가 없어.
정 섭 : (한숨을 쉬며) 그렇게 하세. 오늘 찾기는 틀렸능가 싶다. 허어, 그것 참.....
만 승 : (분을 삭이지 못하며) 장씨 이 사람 이거......
우 식 : (울먹이며) 하늘도 무심하시지.......우리가 몇 백 년을 기다린 일인데........
종 보 : (미련이 남아서 계속 곡괭이질을 한다) 큰골 할아버지예, 해 있을 때 꺼정은 더 파 볼랍니더. (그러나 가망이 없는 곡괭이질이라는 것을 체감한 신씨 문중 사람들은 하나 둘 흙더미 위에 주저앉는다)
이때 왜경 둘, 순찰차 발굴 현장에 올라와서 정섭을 찾는다.
왜경 1: (정섭에게 다가와서) 당신이 이 많은 사람들이노 불러 모았소?
정 섭 : 네에, 그렇습니다.
왜경 1: 무엇 때문에 불러 모았소?
정 섭 : 조상님 비석을 찾느라고 그렇습니다.
왜경 1: 비석을 찾는데 저기 저 많은 사람들이노 왜 불러 모았소?
정 섭 : ...........?? (얼른 대답을 못하자)
왜경 1: 비석이노 찾는데 저 많은 사람들이노 모일 필요가 없지 않소?
정 섭 : 아, 저 구경하러 온 사람들 말입니꺼? 저 사람들은 우리가 불러 모은 것이 아이라 자발적으로 구경하러 온 것 뿐입니더. 순전히 비석 찾는 거 구경하러 모인 구경꾼들입니더.
왜경 2: 거짓말이노 하면 연행하겠어. 비석이노 찾는데 무슨 볼 것이노 있다고 사람들이 이렇게 모인단 말이야?
이때 지승이 왜경들의 순찰 의도를 알고 해명을 자청한다.
지 승 : 저어....부끄럽습니다만 우리 집안이 오래전에 조상님의 묘비를 유실하여 가문의 수치로 여겨오던 차에 이번에 누가 묘비석 묻힌 곳을 알으켜 주어서 지금 찾고 있는데 우리 조선 사람에게는 이것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큰 관심거리라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구경나온 것입니다. 우리도 조상님의 묘지석을 잃어버리고 되찾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 사람들이 많이 구경하러 올수록 부담스러울 뿐입니더. 그러니 사람들을 일부러 불러 모을 까닭은 전혀 없습니더.
왜경 2: (지승과 정섭의 아래위를 훑어보고, 건너편 인파를 관찰하다가 왜경 1에게) 이 사람들 말이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니 그냥 가자. (돌아서 비석골을 내려간다)
씬#29 신작로 삼거리에 있는 객줏집<저녁>
만승이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다. 떨어져서 만승을 응시하는 이영구.
만 승 : 아지매! 여 술 좀 더 주소!
주 모 : 쯧쯧. 얼매나 속이 상하것노. 그란다고 술을 이리 무갖고 어짤라카노? 점순이 아부지, 오늘은 고마 마시지......
만 승 : 술은 속이 상할 때 무야 되능기요. 얼른 술이나 내 놓으소.
주 모 : 벌써 마신 술만 해도 속이 상했을 낀데.......(이영구를 보며) 머로 좀 듸리꼬예?
이영구: (생각이 없다는 손짓을 한다)
씬#30 신작로<밤>
비틀거리며 괭이를 메고 가는 만승. 그 뒤로 이영구가 따른다. 만승, 발을 헛디뎌 길가 수로로 굴러떨어진다. 이영구가 얼른 만승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운다.
만 승 :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누군지 모르지만 고맙소.
이영구: 댁이 오뎁니까? 지가 모시다 드리지요.
만 승 : 아이고오, 무신 말씀을...... 선조 무덤도 못 찾는 못난 후손입니더. 그런 과분한 대접을 받을 자격도 없심니더..........
이영구: 아니올시다. 사실은 오늘 신씨 문중 사람들한테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더.
만 승 : 댁에도 오늘 비석골에 오셨소이까?
이영구: 아이구, 그럼요. 인근에 사는 사람치고 오늘 비석골에 구경 안 간 사람이 없습니더.
만 승 : 그러니 더욱 집안 망신이지요. 속으로는 얼마나 숭을 보았겠습니꺼.
이영구: 천만에 말씀입니더. 조상의 무덤을 되찾기 위해서 애를 쓰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칭송이 자자합디다.
만 승 :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니 참으로 고맙구만요. 실례지만 어디에 사시는 누구십니까?
이영구: 아, 예....저는 화대동에 사는 이영구라고 합니다.
씬#31 만승의 집 마당
방문을 열고 만승의 처 유분이가 잠이 든 용수(만승의 아들-4세)를 안고, 잠이 덜 깬 점순이 (만승의 딸-7세)를 데리고 나오는데 만승의 목소리
만 승 : <E> 아들 딜꼬 박골 아재 집에 가 있거라. 거어서 누우 자고 낼 아침에 오등가......
분 이 : (방 쪽을 향해 잠시 시선을 주다가 용수를 추스려 안으며 걸음을 옮긴다)
씬#32 익수의 집 안방
유분이가 잠든 용수와 점순이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익수 처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익수 처: 질부야, 됐다. 고마 오늘은 여서 자고 가도록 해라. 아재는 큰골에 가셔서 안 오신다.
분 이 : 아입니더. 집에 손님도 오시고 해서 가 봐야 됩니더.
익수 처: 아이다. 종질이 자고 오라 캤으마 다 곡절이 있어서 그리 말했을 끼다. 아이고오, 요새 종질이 울매나 집안 일로 애로 쓰는지.......... 몸이나 안 상해야 될 낀데........
분 이 : 그래 말입니더. 산소 일이라카마 우리 식구는 아예 안중에도 없습니더.
익수 처: (목소리를 가다듬고) 보래, 질부야. 앞으로 무신 일이 생기도 맘을 달리 무마 안 된대이? 점순 아부지가 질부한테 무슨 소리로 해도 꾹 참고 전디야 된대이? 무신 말인지 알겠제?
분 이 : (익수 처를 가만히 보다가 다소곳이) 예.
씬#33 만승의 집 안방<밤>
술이 확 깬 만승, 이영구의 손을 부여잡고 감격해 한다.
만 승 : (떨리는 목소리) 오늘 댁을 만난 것은 필시 태사공의 계시라고 생각됩니더.
이영구: (목소리를 낮춰서) 후손들이 이리도 애를 쓰는 것을 보고 저도 감탄했습니다.
만 승 : 그러이까, 저, 저, 그 머슴살이 했던 김씨가 의성 쪽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사는 곳을 지금은 모르신다는 말씀이지예?
이영구: 예, 그렇지예. 벌써 20여 년 전 일이라서............그 머슴 김 씨가 힘이 장사였던 모양입디다. 논두렁을 쌓다가 발견한 무거운 지석을 집에까지 지고 온 것을 보면 말입니더.
만 승 : 아무리 20여 년 전이라 캐도 김씨가 지고 온 지석의 글씨를 주인이 확인했다면 내용도 기억하고 있겠지요?
이영구: 신 태사공의 묘지석인 것을 주인이 알았으이까 당장 갖다가 묻으라고 머슴한테 호통을 쳤을 것 아이겠습니꺼? 잘못했다간 큰 화를 당하겠다 싶어서 주인이 서둘러서 태사공의 표석을 묻혀 있던 곳에다 도로 묻은 것이지예.
만 승 : (재삼 감격한다) 감사합니더. 감사합니더. 이제야 조상님의 체백을 찾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더. 감사합니더. 내일 당장에라도 능골에 같이 가 주시겠지예? (이영구를 보면)
이영구: (만승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그게 그러이까.............<F.O>
씬#34 정섭의 사랑방<F.I>
정섭, 상근, 익수, 도승, 명승, 만승이 이영구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상 근 : (만승을 보고) 확실히 얼마를 요구하덩가?
만 승 : 얼마라고 딱 뿔라지게 말은 안 해도 눈치가 그렁거 같습디더.
정 섭 : 이런 중대한 일에 개입할 때에는 큰돈을 바라고 있을 낀데........
상 근 : 그것보담도 태사공 표지석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눈치덩가?
만 승 : 아마도 사례금을 건네마 가르쳐 줄 낌새는 낌샙디더......
상 근 : 돈을 요구할 때는 자기도 뭔가 알고 있는 것이 있다는 이야긴데.......(익수를 보고) 어짜것노? 자네하고 내가 경비조로 돈을 마련해 보는 것이.........
익 수 : 아재, 돈이야 얼마가 들등가 태사공 묘만 찾을 수 있다면야 당연히 해야지요.
만 승 : 저도 다문 얼마라도 보태겠습니더....
정 섭 : 아이다, 자네는 형편도 그렇고 하이 심부름이나 좀 해주게...
명 승 : 그러게. 큰골 할아버님 말씀대로 하게나.
씬#35 만승의 안방
이영구가 한지에 붓으로 신 태사공의 비문을 들은 기억대로 적고 있고 흥분한 만승이 주시하고 있다.
만 승 : (감격하여) 태․사․신․공(太師辛公) 몽․삼․지․묘(夢森之墓)!
이영구: (주위를 살피며) 비석 앞면에 새겨진 것이고 뒷면까지는 다 기억을 못합니더.
만 승 : (감동을 억누르며) 틀림이 없어! 마침내 조상님을 찾았다! (이영구를 보며) 이 은혜를 우째 갚아야 되겠심니껴?
이영구: 오히려 지가 더 송구시럽십니더.
만 승 : 아입니더. 우리 문중의 가세가 넉넉지 못하여 충분히 보은을 하지 못해 미안할 따름입니더.
이영구: 무슨 말씀을..........50원이란 거금을 받고도 별반 도움을 드리지 못해 지송스럽십니더.<F.O>
씬#36 화대동 이영구의 집 <F.I>
이영구의 집을 찾아간 만승이 마당에서 이영구를 불러내고 있다.
그 위로 자막: 1918년 5월 29일
만 승 : 주인 계십니껴?
이영구:<E> (기운 없는) 누구시오? (방문이 열리며 고개를 내미는데 병색이 짙다)
만 승 : 아니? 편찮으십니껴?
이영구: 아이구우.....만승씨....... 이래 오실 줄 알았습니더. 약속을 못 지켜서 이거....지송해서 우짭니꺼? 몸만 안 아푸마 내 꼭 능골에 가서 장소를 알으켜 디릴라 캤는데 보시다시피 이 모양 이 꼴이라서.....<F.O>
씬#37 화대동 이영구의 집 앞 <F.I>
자막:1918년 7월
농기구를 들고 나서다가 집 앞에서 만승과 맞닥뜨린 이영구.
이영구가 당황하며 손짓과 발짓을 섞어가며 농번기라 바빠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변명을 하고 있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이영구를 쳐다보는 만승.<F.O>
씬#38 들판 <F.I>
자막:1918년 7월 하순.
논을 매다가 만승에게 끌려나와 닦달을 당하는 이영구. <F.O>
씬#39 능골<밤><F.I>
자막:1918년 8월 초순
이영구가 만승에게 붙잡혀서 능골의 능선을 오르고 있다. 마지못해 특정 장소를 가리키는 이영구. 몇번이나 다짐을 하는 만승의 표정이 험악하다.
씬#40 만승의 집 안방<밤>
만승의 처 유분이가 만승의 저녁상을 들여온다. 밥상에 다가앉는 만승. 허기진 듯 급히 저녁을 먹는다. 그런 만승을 유분이, 안쓰럽게 바라보며
분 이 : 조석이나 지대로 묵고 댕기능교?
만 승 : 알 꺼 엄따. 물이나 떠 온나.
분 이 : 알 꺼 엄따이, 내가 넘잉교 ?
만 승 : 차라리 넘이마 괜찮쿠로!
분 이 : (놀라며) 점순이 아부지............ 그기 무신 소린교?
만 승 : (냉정하게) 와? 몰라서 문나?
분 이 : (작정한 듯) 친정 산소 때문에 어른들이 맘이 상해서 제 한테 서운한 심정인 거는 모르는 일은 아이지만, 점순이 아부지. 오래 전에 죽은 조상일로 살아 있는 우리가 이래 마음을 다치싸마 되것능교? 아니 할 말로 몇 백 년 전에 벌어진 일에 내가 무신 관여를 했능교? 아이마 관여를 할 수나 있었능교? 아요, 이치를 따자서 함 생각해보소. 나는 당신이 농사일을 팽개치고 밤낮주야로 산판으로 뛰 댕기 쌓는 거, 당신 성질을 알기 때민서 말을 몬했지만 앞으로 우리 식구 우찌 살낑교? 올 농사 겉이 이리 손을 놓아 뿌마 가실에 가서 우리는 머 묵고 살랑교? 당신이 산소 문제로 애를 써 준 대가로 누가 우리 겨울날 양식이나 대 준답디까? 그저께도 친정서 사람이 댕기 갔는데 친정은 친정대로 내가 신씨 집으로 시집온 죄로 이리저리 눈치가 뵈이고.....이기 사람할 짓이 몬 된다 아이요.
만 승 : (눈을 번득이며) 처가서 사람이 댕기갔다고오? 누가 왔더노?
분 이 : 금곡 정씨 집으로 시집온 사춘 동상이 댕기로 왔데요. 점순이 아부지가 요새 주로 오디로 출타를 하는지 물어봅디다.
만 승 : (극도로 흥분하여) 그래서? 머시라 캤는데?
분 이 : 내가 뭐시라 칼 꺼는 머있능교. 모른다 캐야지. 또 알고 있능 것도 엄꼬.
만 승 : 그래서?
분 이 : 그래서라니요?
만 승 : 그라이께 순순히 돌아가덩가?
분 이 : 돌아가고 자시고가 어딨능교.....그런 싱거운 심부름 겉은 거 하지 말라고 멀캐서 보냈지요.
만 승 : (뭔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거는 잘한 짓이다.
분 이 : (그런 만승이 못마땅한 듯 쳐다보며) 지발 부탁이요. 우리 집 농사, 이리 손 놓고 있으마 우리는 고마 굶어 죽소이?
씬#41 능골
태사공 비석을 발굴하려는 신씨 문중 사람들과 구경나온 인근 주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자막 : 1918년 9월 21일 (음력8월17일)
주민 1: 지난번엔 엉뚱하게 비석골을 파더니 이번엔 능골을 바로 짚었네.
주민 2: 거 참 남의 집안일이라도 보기가 참으로 딱하네. 저 신씨 집안은 추석 명절도 지대로 못 쉬었을 거 아이가?
주민 3: 글쎄 말이요. 요번 참엔 비석을 찾아야 할 낀데.....
주민 2: 지발 그렇게 되야 할 낀데......또 지난번 맨치로 누가 잘못 갈차준 거는 아인가 몰것네.
주민 4: 신씨 집안사람 중에서도 저 만승이란 사람은 아예 올 농사는 팽개치뿟다더마?
주민 2: 오죽하마 농사를 제끼 놓고 설치겠나. 젊은 사람이 열정이 대단하네.
주민 3: 해필이마 처가가 또 저쪽 집안이람서?
주민 4: 그러이 입장이 울매나 난처하것노? 그래서 더 열성인지도 모르지.
주민 2: 돈도 많이 씼능갑더라.
주민 4: 누가? 만승이? 저 사람은 살림살이는 별 볼 것도 없을 낀데 무슨 돈을 씬단 말고?
주민 2: 그기 아이고, 큰골 어른하고 집안사람 몇이 돈을 모아서 태사공 비석 묻은 데를 알으켜 준 사람한테 사례를 했능갑던데.....50원을 줬단 소리도 들리고 뒤에 또 50원을 더 주었다 카기도 하고........
주민 1: (동작이 굳어진다) 야이 사람들아, 저기 함 보래. 신씨들이 이번에도 비석을 몬 찾았능가 구덩이를 도로 덮고 있네?
주민 3: 쯧쯧 이번에도 또 실팬가? 허어 거 참.......또 엉뚱한 곳을 비석 묻은 데라고 했구만?
주민 2: 거 누군지 모르지만 너무하네. 50원이나 받았으마 적은 돈이 아닌데.........
씬#42 능골-비석발굴현장
만승이 쓰러져서 통곡을 하고 있고 정섭과 지승이 역시 흥분하고 있다. 만승 주위로 맥을 놓고 있는 신씨 문중 사람들.
만 승 : (이를 간다) 이영구, 내 이 놈을 ...............당장......아, 흐흐흑
정 섭 : (하늘을 쳐다보며) 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지 승 : (눈물을 흘리며) 조상님예, 우리를 좀 도와주시지 않고 머합니꺼.
만 승 : (일어나 앉으며 눈물을 닦는다) 이럴 게 아이라, 당장 영구 놈을 잡아 오겠습니다.
명 승 : 그래, 나하고 함께 가세!
도 승 : 나도 같이 갈 꺼네. 억울해서 전딜 수가 있어야지.........
씬#43 능골 입구
옷자락을 휘날리며 산을 내려오는 만승, 명승, 도승.
씬#44 신작로 삼거리
급히 달려가는 만승, 명승, 도승.
씬#45 이영구의 집 마당
삽짝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는 만승, 명승, 도승. 뒤따라 들어오던 명절 나들이 차림의 이영구와 이영구의 처가 당황한 기색으로 3인을 맞이한다.
만 승 : 옳지! 마침 잘 만났오! (이영구의 멱살을 잡는데)
이영구: (만승의 손을 맞잡으며) 어서들 오시오. 여서 이랄끼 아이라 안으로 좀 드가입시더.
명 승 : (격한 만승의 손길을 가로막으며) 당신, 사람이 어째서............도대체 우리 집안 사람들한테 이럴 수가 있소?
이영구: 아이고, 안에 드가서 이야기합시더. (처를 보며) 머하고 있노? 거 퍼떡 술상부터 좀 채리 온나!
영구 처:아, 예 (부엌으로 급히 들어가고)
도 승 : 하, 이 사람.......넉살이 보통이 아이네? 온 집안 사람을 농락을 해놓고도 눈 하나 깜짝 안하네?
만 승 : 맞습니더, 성님 말씀이 맞습니더. 인자 이 양반 하는 소리는 어떤 소리도 들으마 안 됩니더. 제가 여태껏 속은 것을 생각하마 피가 거꾸로 솟습니더. 말리지 마이소! (하며 다시금 이영구의 멱살을 잡으려는데)
이영구: (되려 큰 소리를 지른다) 하, 거 참! 신씨 집안사람들이 이래 어리석은 줄 몰랐네!
(이영구의 난데없는 꾸지람에 멈칫하는 세 사람)
씬#46 이영구의 집 안방
이영구가 술상을 가운데 놓고 만승, 명승, 도승 3인을 나무라고 있다.
이영구: 역지사지란 말도 모릅니껴? 아무리 내가 신씨 문중으로부터 돈을 받았어도 매일 유씨들과도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야 할 이 고장 사람입니더. 제 입장을 조깨이라도 생각하는 겉으마 오늘 겉이 이랄 수는 없능 깁니더.
명 승 : (기가 차서) 이 사람이 지금 누가 누구를 보고.......?
이영구: 아니, 생각을 좀 해 보이소. 능골이라고 귀띔을 한 것 이상으로 저는 그 우에 더 말씀드릴 수가 없는 문제 아입니껴? 상대쪽 집안 눈도 있는데............
만 승 : 아니, 그런 엉터리 제보로 온 집안사람들을 허탕을 치도록 해놓고서는 지금 와서 하는 소리가 머시라? 역지사지? 이 양반이 정신이 있나, 없나?
이영구: 이보게, 만승이........그라마 오늘 내가 갈차 준 자리서 태사공 비석이 나오마 나는 우찌 되것노? 하루라도 고향 땅에서 걸어 댕기미 살 수 있것나? 유씨들과 나는 하루아침에 원수가 될 판인데?
도 승 : 이미 당신은 유씨들 눈에 난 사람이 아닌가? 새삼 무슨 그런 걱정을 하고 있소?
명 승 : 그래. 그거는 각오하고 있어야지........
이영구: 아이지요. 오늘 능골서 신씨들이 태사공 비석을 몬 찾았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이 고장서 숨을 쉬고 있능거 아이겠습니꺼? 이영구 저 사람, 신씨들한테 돈만 받았지 실지로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래 소문이 나야 내가 살 수 있능거 아이겠습니꺼?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껴?
만 승 : 그래, 당신 하나 살리자고 우리 집안이 이래 망신을 당해야 한단 말이요?
이영구: (만승을 돌아보며 딱한 표정을 짓는다) 이래서 신씨들이 어리석다고 하는 거이네. 이보게, 만승이........내가 좀 전에 머라고 하덩가? 나로선, 태사공 비석이 능골에 있다고, 그 이상은 가르쳐 줄 수가 없다고 안 하덩가? 그 나머지는 신씨 문중에서 생각해내야 하는 문제 아니것능가, 이 답답한 사람아!
도 승 : (뭔가 눈치를 채고) 아, (가벼운 신음을 한다)
씬#47 정섭의 사랑방 <밤>
기쁨에 넘치는 표정의 정섭, 상근, 익수, 지승, 명승, 도승, 만승이 둘러앉아 있다.
도 승 : 이영구, 그 사람.......보기보다 생각이 깊은 사람입디다.
정 섭 : 그래, 말 그대로 우리 신씨 문중 사람들이 어리석었어.
지 승 : 묘지석을 도로 파묻었다면 원래 있던 자리인 태사공묘 앞에 묻었다는 뜻인데 와 우리가 진즉 그걸 몰랐던공 참.............
익 수 : 능골이라고 일러줄 때, 그때 바로 태사공 묘를 생각해야 하는데, 참 어이가 없네.
만 승 : 지금이라도 당장 가서 비석을 파 오겠습니더.
상 근 : 인자 서두를 거는 없네. 이미 비석을 발견한 거나 마찬가지니까니.
명 승 : 우짜마, 오늘 우리가 비석을 발견 몬 핸거로 이영구 그 사람으로서는 은근히 바래고 있었던 거 아이겠습니꺼? 그래야 자기도 살아남고..........
도 승 : 그렁이까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는 기지...........
만 승 : 어떻게 하까예? 지금은 밤이라 그렇고...........낼 아침에 지가 가서 비석을 찾아 오겠습니더.
정 섭 : 아이다. 이거는 그리 할 문제가 아이다. 날을 잡아야 한다. 길일을 택해서 인근에 사는 종친들을 전부 불러서 비석을 찾으면 심묘제를 올려야지. 자, 그동안 애들 많이 썼다. 가서 푹 쉬게나.......
씬#48 유현식의 집 안방 <밤>
유진학이 장손 유현식, 김인곤과 함께 신씨 집안사람들이 이영구를 찾아간 사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진학: 그동안 화대동 이영구가 틀림없다고 내가 그러지 않덩가? 오늘 봐라, 능골서 태사공 비석을 찾는 데 실패한 신가들이 그질로 이영구한테로 몰려가서 행패를 부린 거만 봐도 이영구 그놈이 틀림없다 아이가?
유현식: 이영구가 우째서 태사공 비석의 행방을 알고 있단 말입니껴?
유진학: 정말로 비석의 행방을 알고 있능가는 모르것고........알고 있다문 거금 50원이나 받아 묵고도 말을 안 해준 기 또 이상하고................
김인곤: 이영구 선친이 화봉동에 살았던 연일 정씨와 친구지간이었는데 정씨 집 머슴이 어디서 묘지석을 캐다가 짊어지고 온 것을 주인이 크게 나무래서 도로 묻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마도 이영구가 그 이야기를 대강 주워들어 알고 있능기 아인가 싶으네....
유현식: 그기이 사실이라카마 이거 큰일 난 거 아입니꺼?
김인곤: 그래도 신가들이 비석을 찾아내지 몬핸거 보마 이영구도 확실히 모르고 있다고 봐야 안 되것나? 일단 한분 지키 보자.
유진학: 만에 하나, 신가들이 태사공 비석을 찾아내면 능골 산소를 빼앗길 판인데 지켜 보기만 한다고 해결이 되겠능가?
김인곤: 허어, 그리는 안 될 걸세. 능골에 있는 유씨 산소가 투장묘라는 증거도 없는 데다가 신가들이 태사공묘를 찾으려면 오히려 법정 소송을 걸어야 할 판인데 우리가 답답할 거는 머시 있것노?
유현식: (안도하며) 맞습니더. 누구라도 능골 우리 선영을 건드리기만 하마 그때는 우리가 고소를 해야지요.
씬#49 만승의 집 안방<밤>
유분이, 곤히 자고 있는 만승을 내려다보다가 이불을 덮어 준다.
씬#50 만승의 집 마당<아침>
정장(두루마기) 차림으로 길을 나서는 만승. 그 뒤로 만승 처, 유분이가 따라 나오며.
분 이 : 비석도 찾게 됐는데 또 무슨 일로 아침 일찌건이 나서능교?
만 승 : (싸늘한 어투로) 이기 다 당신 친정 집안이 저질러 놓은 뒤치다꺼리 아이가.
분 이 : 또 그 놈의 만정 떨어지는 소리한다. 이리 함 앉아보소. 내 이약을 듣고 가든지 말든지 하소이. (억지로 만승의 팔을 끌어 마루에 앉힌다)
만 승 : 이 팔 좀 놔라 좀. 당신이 머슨 할 말이 있다고?
분 이 : 나도 들은 이약이 있소. (정색을 하고) 점순이 아부지? 당신은 딱 비석 캐내는데 까지만 가담하소이? 알아들었능교? 우리 식구 굶겨 직일 작정이 아이라면 능골에 있는 친정집 산소는 건드리지 마소이?
만 승 : 그래에? 팔이 안으로 굽는다 카더마는 너거 조상 무덤 걱정부터 하고 앉았네? 허어, 거 참! 기도 안 차네?
분 이 : 지금 무신 정신 나간 소리 하고 있능교? 내 팔이 그럼 안으로 굽지 바깥으로 굽으까이? 나는 당신이 이번 일로 관청에 잽히 갈까 그기이 걱정이지 친정 집안 산소 걱정을 내가 머 때민에 한단 말잉교? 정신 좀 차리소 고마!
만 승 : 관청에 잽히 간다는 말은 또 무슨 구신 씨나락 까 묵는 소리고?
분 이 : 그저께 친정 동상한테 들었소. 능골 산소에 손가락 하나만 갖다 대면 관청에 고발할끼라고....
만 승 : 웃기는 집안이구마는....우리 조상 묘를 우리가 찾는데 누가 우째 고발을 한단 말고?
분 이 : 그기이 아이라 안카요. 법으로는 신가들이 다치게 돼 있다요. 제발 내 말 좀 들으소, 아요..............
만 승 : (뿌리치며 일어선다) 시끄럽다 마! 아침부터 여편네가 재수 없구로........
씬#51 능골 태사공 묘 앞
경주 지역 초제(草提) 죽동(竹洞) 성계(星溪)의 3문중의 신씨들이 다 모여서 태사공 묘 앞에 묻혀 있던 비석을 파내고 있다 .
자막: 1918년 10월 20일.
만승과 도승, 명승, 종보 등이 태사공 묘 앞에다 허리 깊이까지 구덩이를 파고 있고 수많은 신씨 문중 사람들이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만 승 : (삽질을 하다가 갑자기 고함을 지른다) 있다! 여 있다! (동시에 문중 사람들이 술렁인다)
정 섭 : (감격하며) 조심하게. 살살.........조심하게. 비석을 다치면 안 된대이...
상 근 : (지승이에게) 그 아까 가져온 한지와 베, 그리고 비단 보자기를 챙겨 놓게 (지시를 하고는 구덩이에 직접 뛰어 든다)
씬#52 능골 태사공 묘
묘 앞에 모인 신씨 문중 사람들이 만승이네가 파고 있는 구덩이 주위를 삽시간에 에워싸며 함성을 지른다.
신씨 문중 일동 : 찾았다! 만세! 태사공 비석을 찾았다! 만세! (함성이 능골 전체를 쩌렁쩌렁 울린다)
씬#53 태사공 비석이 묻혀있던 구덩이 안
소나무 뿌리로 만든 길쌈용 솔을 든 상근, 거의 윤곽이 드러난 태사공 비석에 묻은 흙을 조심조심 쓸어내린다.
천천히 드러나는 태사공 비석 전면에 새겨진 비문
-太師寧州辛公 夢森之墓 配貞夫人文州柳氏衣付-
<O.L>
씬#54 태사공 비석 후면
삼베 위에 깔린 한지에 반듯하게 놓인 태사공 비석. 후면의 비문, 클로즈업 되면서
-杞溪縣北禾峯洞五里 木宰木谷子坐午向 景陽四年 九月日-
<O.L>
씬#55 태사공 묘 앞
일제히 태사공 묘를 향해 엎드려 절을 올리고 있는 신씨 문중 사람들. 감격에 겨워 일부는 눈물까지 흘리고 있다.
<O.L>
씬#56 정섭의 집 안마당
차일이 쳐지고 마당에 걸어 놓은 큰 가마솥에서는 김이 세차게 뿜어져 나온다.
태사공 묘지석을 찾아낸 신씨 문중 사람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멍석 위에 차려진 상에다 돼지고기를 담아내는 신씨 문중의 아낙들. 유분이도 보인다. 집안 어른들과 어울려 술상에 앉아 있는 만승에게 이따금 눈길을 보내는 유분이.
상 근 : 뭐라 뭐라 해싸도 요번 태사공의 묘영을 되찾게 된 일등 공신은 여기 우리 만승이 종질이 젤로 공덕이 많은 기라. 이보게 만승이, 정말로 애 많이 썼네 그래...
정 섭 : 실로 태사공께서 우리 만승이 한테 영험을 내린 것이 아인가? 우리 집안의 영예를 되찾아서 주어서 정말로 고맙네.
만 승 :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지가 머 한 기이 있습니꺼. 지는 고마 집안 어르신들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더.
익 수 : 만승이 뿐만 아이라 요번에 조상님 무덤을 찾기 위해 몸을 안 애낀 우리 집안의 젊은 후손들, 정말로 자랑스럽구마는......이제 태사공 묘역을 명실 공히 우리 신씨 가문의 산소로 확정을 지어야 하는 마무리만 하면 되는데.....한 번 더 희생을 감수해야 할 것이네.
씬#57 정섭의 집 부엌
바깥 잔치 마당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온 신경을 기울이는 유분이. 국을 떠다 말고 동작이 멎는다. 이때 들려오는 익수의 목소리
익 수 :<E> 하도 세월이 오래돼놔서 파내야 할 묘가 한 두 기가 아인데...... 이기 다 유씨들의 선영이라 보통 문제가 아이라.......... 실지로 태사공 묘를 찾는 일은 지금부터가 진짜 고비라고 각오들 하고 있어야 된대이?
이때 명승의 처 부엌에 들어서면서 유분이에게 만승의 칭송을 늘어놓는다 .
명승 처:보래, 동시. 온 집안사람이 점순이 아부지 칭송이 자자하네 그랴. 자네도 그동안 맘고생이 많앴제?
분 이 : 지야 머, 점순이 아부지에 비하마 한 기이 있어야지예........
익수 처:(부엌에 들어오다가 명승 처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아잉기 아이라, 점순네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울매나 속을 낋있는지 모린다. 남정네들이야 집안 조상들 일이라면 껍뻑 죽는다 아이가. 농사일이고 머고 안중에 있더나 오데.....온 여름내 점순 엄마 혼자서 논매고 다 했다 아이가? 거어다가 친정 집안이 걸리 놓깨 맘까지 안 핀체...
명승 처:아이고 아지매, 와 아이겠습니껴? 우리 여자들 속을 남정네들이 손톱만치나 알아 주마 하지마는 그래 하는 신랑들이 오데 쉽습니꺼?
씬#58 주하의 집
자막: 1918년 11월 18일
흰 비단에 싼 태사공 비석을 제단에 모셔 놓고 심묘고유제(尋墓告由祭)를 올리고 있는 신씨 문중 사람들로 비좁은 주하의 집 마당이 인파로 넘쳐난다. 대문 밖까지 줄을 서서 땅바닥에서 절을 올리는 신씨들. 판공유사(判供有司)를 맡은 학근과 오승이 제사를 주관한다. 오승이 꿇어 앉아 축문을 읽고 있다. 축문이 낭독되는 동안 심묘제를 지내는 주하의 집 전경이 회전하는 카메라에 담긴다.
오 승 : (떨리는 목소리)....시조 정의공(貞懿公)의 증손이요 4世祖 되시는 휘(諱), 몽삼조(夢森祖)께서는 고려국 태사(太師)의 벼슬에다 영원부원군(靈元府院君)의 작위(爵位)를 받으시어 가계(家系)를 완전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을 뿐 아니라 공(公)으로부터 비로소 혈손이 벌어져 번창하였으므로 바로 우리 가문의 중흥태조(中興太祖)이심에도 불구하고 애통하고도 원통하도다!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극심한 사회적 혼란의 와중에서 우리 가문이 당한 수난 등으로 11世祖까지 조상의 묘소가 거의 실전(失傳)되는 최악의 불운에 직면하게 되니 지나온 수백 년 간, 영산영월 신씨 성을 지닌 우리 후손들은 조상의 묘영을 모두 실전(失傳)하고 체백(體魄)을 모시지 못함으로써 위선숭조(爲先宗祖)의 후손(後孫)된 도리(道理)를 다하지 못하는 치욕의 세월을 살아오게 되었도다.
그러나 중흥시조 태사공의 영험하심과 후손을 돌보시는 영명하심이 미련한 우리에게 이르러 오늘 다시금 체백을 모시게 되는 기적이 일어남에 우리 영산 영월 신씨 후손 일동은 위대한 조상님 영전에 삼가 엎드려 그 높으신 은덕을 비옵나이다....... .....(소리 작아지며 )
씬#59 주하의 집이 내려다보이는 마을 언덕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심묘제를 올리는 장면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한다.
씬#60 주하의 집
심묘고유제(尋墓告由祭)가 끝나고 우식, 종보, 만승, 도승, 명승이 학근과 오승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있다.
오 승 : 덕재공파 문중은 우식 종친님이 걸음을 해주시고, 초당공파는 종보 종친, 그리고 또 영산관인 상장군공파 문중 분들에겐 만승이 자네가 통지문을 전해주게. 우리 영월관 문중도 부원군 집안에는 도승이, 판서공 문중이야 우리 문중이지만 그래도 명승이 자네가 혹 빠진 사람이 있나 없나 빈틈없이 챙겨서 이 기쁜 소식을 좀 전해주게.
학 근 : 바쁜 집안일들이야 와 없겠노마는 그래도 태사공 묘를 되찾은 소식만큼은 일각을 지체해서는 나중에 원망을 들을 정도로 경사스러운 소식인 만큼 모두들 서둘러 주시게들. 나는 이 길로 한양에 올라가서 매일신문에다 이레 동안 신씨 문중의 역사적인 경사를 광고하여 전국에 있는 모든 영산영월 신씨 종친들에게 알릴 작정이네.
만 승 : (만승이 떠날 채비를 하자 오승이 부른다)
오 승 : 큰골 할아버님으로부터 자네 이야기를 들었네만 오늘 심부름을 끝내고 나면 자네는 집에서 좀 푹 쉬게나. 그동안 애를 너무 많이 썼다더만.......
만 승 : (단호하게) 그럴 수는 없심니더. 아직 능골에 타성받이 묘가 떠억 버티고 있는데 우째 잠인들 오겠습니꺼?
학 근 : (만승에게 다가와서 등을 두드리며) 이 종친이 이번에 수고가 많았담서? 고맙네. 정말로 고맙네.
씬#61 만승의 집 안방 <밤>
귀가한 만승의 두루마기를 받아서 벽에다 거는 유분이
분 이 : 영산까지 백리가 넘을 낀데, 그 좋은 소식을 전해주러 간 사람보고 자고 가라고 대접하는 일가도 없등교? 이 한밤중에 백리 길을 걸어서 오다이..........
만 승 : 안 그래도 자고 가라고 어찌나 붙잡아 쌓던지.......그래도 있을 수가 있어야지......
분 이 : 인자 가을걷이도 끝났는데 바뿔 일이 머 있다고 그래 서둘러 온단 말잉교? 밀양 얼음골 고개 넘어 오는 데는 요지음도 호랭이가 나온다 카던데?
만 승 : 호랭이가 머시 겁나노? 인자 태사공께서 우리로 떠억 지키 주실 낀데.....(자리에 들며) 눈이나 좀 붙이자, 내일 처가에 갈려면 잠 좀 자 두야지.....
분 이 : 점순이 아부지?
만 승 : ?
분 이 : 내일 처갓집 회갑연에 갈라고 일부러 이래 왔능교?
만 승 : 그라마 장인어른 회갑인데 사우가 안 간다모 말이 되나?
분 이 : 참말로 처갓집에 갈 작정인교?
만 승 : 아, 사우가 처갓집에 간다는데 그기이 무슨 말이고? 이래도 명색이 맏사운데.........
분 이 : 백지 처갓집 걸음해갖고 맘이나 상하까 싶어서 걱정이 돼서 안 그라능교.
만 승 : 내가 무슨 죽을죄라도 짔나 오데, 처가로 몬 가게?
씬#62 만승의 처갓집 마당
만승의 장인, 유인영의 회갑연. 동네 사람들이 잔치에 와서 음식 대접을 받고 있다.
씬#63 만승의 처갓집 안방
회갑연 상을 앞에 두고 장인 유인영, 장모 장석조가 앉아 있고 사위인 만승과 유분이가 절을 올리려 한다. 주위엔 처남들과 가까운 친지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다.
만 승 : 장인어른, 만수무강 하이소.
분 이 : 아버님......절 받으이소(절을 하려는데)
유인영: 너거 신가놈 절은 내 받을 맴 없다! (옆으로 돌아앉는다)
장석조: 영감, 돌았나? 이 존날에 사우 절을 와 안받을라카노? (유인영의 옆구리를 꼬집는다)
유인영: (처 장석조를 홀겨보며) 돌기는 내가 와 돌아?
분 이 : (유인영에게 급히 다가가며) 아부지? 와 이라십니꺼? 신 서방이 머 잘몬했는데에?
유인영: 시끄럽다마, 니도 출가외인 빽끼 더 되나? 저리 비키라 마!
점순이와 용수, 외조부 유인영이 엄마를 내치는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회갑연에 때 아닌 아이들의 울음소리
만 승 : (처남들 쪽을 한번 보다가 표정이 굳어지며) 정 그렇다면........(돌아서 나온다)
분 이 : (깜짝 놀라며) 점순이 아부지! 점순이 아부지! (만승을 따라 나온다)
씬#64 만승의 처갓집 마당
유분이가 만승의 소매를 부여잡고 설득을 하고 있다.
분 이 : 저리 사랑방으로 좀 갑시다. 아부지가 저러시능거 당신이 이해를 해야지 우짜능교?
만 승 : 사우를 사우로 안 보는데 이해는 무슨 놈의 이해?
분 이 : 집안끼리 맘이 상해서 하는 말씀을 당신꺼정 그라마 우짜능교?
만 승 : 그기이 그 말 아이가?
이때 만승의 처남 병국, 병기가 마당으로 따라 나와서
병 국 : 매제, 잠깐 이바구 좀 하자. (사랑방 쪽으로 만승을 데리고 간다)
씬#65 만승의 처갓집 사랑방
만승이 처남 병국, 병기와 마주하고 있다.
만 승 : (병국에게) 처남, 말해 봐라. 머가 잘 몬됐노?
병 국 : 매제가 잘못했다능기 아이고........
만 승 : 그라마 머신데?
병 기 : 자형, 아버님이 서운해 하시는 거는 자형 집안에서 지금 능골의 우리 산소를 파 옮긴다는 소문 때문에 그라시능거 아입니꺼? 자형도 모르겠십니꺼?
만 승 : 아이, 처남들. 그거야 산소를 원래대로 바로잡아야 하능 거는 당연지사 아이가?
병 국 : 매제,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능거 아이가? 그게 누구네 산손데?
만 승 : 그래, 말 나온 김에 바로잡고 넘어가자. 이번에 태사공 묘지석에 뭐라고 적혀 있능가 들었으마 세 살 문 아라도 알 거 아이가? 누구네 산소인지.....
병 국 : 그거는 함부로 판단할 일이 아이지.....역사적으로 고증을 거치야 되는 것이고....
만 승 : 역사적 고징? 그래 조오타, 얼마든지 고징을 하자고.........
병 국 : 물론, 매제나 우리나 개인적으로 감정이 있어서 일이 이렇게 된 거는 아이지만 그래도 소문에 듣기로는 매제가 태사공 묘지석 찾는데 제일 앞장을 섰다민서? 그러이 아버님이 서운해 하시는 것 아이겠나?
만 승 : 어이, 처남. 자네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기고? 그라마 조상님 무덤을 찾는데 처갓집 눈치 때문에 뒤로 물러나 있어야 된단 말가 머선 말고?
병 기 : 그기이 아이고, 자형. 이런 문제는 어차피 두 집안 간에 분란이 생기기 마련인 거로 뻔히 알면서 자형이 앞장을 서니까 서운한 거 아이겠습니꺼? 자형이 우리 집안을 조금이라도 생각했으마 한 발짝 정도 물러나 있을 수도 있는 문제고, 또 자형이 그렇게만 했어도 우리가 만다고 이래 서운하게 여기겠습니꺼?
이때 유분이가 울면서 사랑방에 들어선다.
분 이 : (병국을 보고)오래비요, 사우는 백년손이라 캤는데 손을 불러다놓고 이기 무슨 일입니꺼? (병기를 보고) 보래 동상! 아무리 딸 자석이 출가외인이라지만 그래 동기들 보는 코앞에서 누비가 넘 취급을 당하는 데도 아무렇지도 안하더나? 그기 형제간의 윤기가? 인정머리가 없어도 시상에 이렇게..........오래비요, 오늘 너무 서운하요. 점순이 아부지....갑시다.
씬#66 만승의 처갓집 삽짝문 앞
만승의 장모, 장석조가 음식 보퉁이를 용수를 업은 유분이에게 건네며 달래고 있다. 만승이 점순이를 데리고 저만치 떨어져서 처 유분이를 기다리고 섰다.
장석조: 너거 애비나 오래비, 많이 참는다고 참은 기다. 신 서방 만나기마 하마 한바탕 할끼라고 벼라고 있었디라.......
분 이 : 아부지도 그렇고...... 오래비나 동상도 그렇고....... 점순이 아부지도 그렇고.............(한숨) 와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조상때민에 서로 으르릉거리쌓는지.....내사 마 기가 차 죽겠다, 오매, 이기 무슨 일고? 아이?
장석조: 남정네들이야 그 놈우 가문 때문에 목숨도 건다 아이가? 그렁거로 오데 하루 이틀 봤나, 우짜든지 니는 출가외인이다. 시가에 가마 시가집 의논대로 따라 해라이?
분 이 : 오매, 아무래도 점순이 아부지가 일을 벌이지 싶은데 우짜꼬?
장석조: (만승을 한번 힐끗 곁눈질하고 귓속말로) 능골 산소에 손댈라 카제? 함부래이! 그거는 니가 뜯어 말기야 댄데이? 거 손댔다가 잡혀가마 너거는 머 묵고 살끼고?
씬#67 정섭의 사랑방
심각한 표정으로 능골의 투장묘 이전에 관한 의논을 하고 있는 정섭, 상근, 우식, 종보, 만승, 도승, 명승, 지승을 비롯한 신씨 문중 사람들.
도 승 : 한두 사람도 아이고, 여럿이 연장을 들고 능골로 올라가마 틀림없이 저쪽 집안사람들도 눈치를 채고 몰리올낀데.........
명 승 : 몰리 오능기 문제가 아입디더. 어제 보이까 유씨네들이 능골에 움막을 짓고 있던데 아예 능골에다 산소지기 한 사람을 상주시킬 작정아이겠습니꺼?
정 섭 : (혀를 찬다) 앗뿔사! 우리가 한발 늦었구나!
만 승 : 어차피 묘를 파 옮길라카마 우리 집안의 힘센 청년들이 저쪽 사람들 손발을 묶어놔야 할 일인데 산소지기 한 사람쯤이야 무신 걱정입니꺼?
정 섭 : 그기이 그런 문제가 아이다. 우리가 착수하마 바로 순사를 딜꼬 올 모양인데 힘으로 밀어부칠 문제가 아이다 지금.....
상 근 : 큰골 할아버님 말씀대로 사실은 그기이 지금 문제라.......힘으로 될 일이 아잉기가 우리가 투장묘에다 삽질을 하는 동시에 그 자리서 체포될 판인데........투장묘는 묘대로 손도 못 대보고 형사입건은 형사입건대로 되는 형국이라서..........
이때 아까부터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던 지승이 정섭 앞으로 다가앉으며
지 승 : 할아버님. 태사공 묘에서 춘향 묘사를 언제 드리기로 돼 있습니꺼?
정 섭 : 3월 보름으로 잡혀 있지. 그 안에 유씨네 투장묘를 모두 치아뿌야 될 낀데.......
지 승 : 그래 하시지 말고예......지한테 생각이 있습니더.
정 섭 : 좋은 묘책이 있나?
지 승 : 우선 올해 하고 한 두 해 정도는 전 종친들이 모여서 춘향묘제만 지내는 겁니다.
정 섭 : 투장묘는 그대로 두고?
지 승 : 예. 그라마 저쪽도 한 이삼 년 춘향제만 지내는 거로 보고 우리가 자기네 산소를 건드릴 생각이 없는 걸로 여길낍니더.
정 섭 : 그런 다음에?
지 승 : 예. 저쪽 집안을 안심시킨 담에 춘향묘제를 지내면서 순식간에 묘를 파 옮기마 안 되겠십니꺼?
상 근 : 그거 좋은 생각이다.
만 승 : (불만스런 말투로) 그라마 우찌 된다는 얘깁니꺼? 유씨네 묘를 이삼 년이나 더 놔뒀다가 옮긴단 말입니꺼?
상 근 : 쉿, 말조심하게. 만에 하나 이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가마 천신만고 끝에 되찾은 태사공 묘가 유씨네 문중 산소에 영영 갇히게 되는 꼴잉깨............
씬#68 만승의 집 안방<밤>
유분이가 만승의 옷을 받아 걸며
분 이 : 우짜기로 했능교?
만 승 : 머로?
분 이 : 능골 산소, 우짜기로 했능교?
만 승 : 우짜기는 머 우째? 태사공하고 유씨 조상하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분 이 : (얼굴이 환해지며) 그기 정말인교?
만 승 : 안 그라마 별 수 있나? 건드리기마 하마 순사가 와서 바로 잡아간다 카는데.......
분 이 : 순사가 안 잡아가도 원래 그런 식으로 사이좋게 지내마 우떻능교? 아이고오 마, 참 잘됐다. (만승에게 다가가며) 점순이 아부지...........(안기려 하자)
만 승 : (계면쩍어서) 와 이래 쌓노? (슬며시 뿌리치지만)
분 이 : 점순이 아부지.....정말 고맙소이.......(만승의 가슴을 파고든다) <F.O>
씬#69 유현식의 사랑방 <F.I>
유현식이 고숙 김인곤, 재종숙 유진학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능골 산소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자막 :1921년 4월
유진학: (유현식을 보고) 종손, 산소지기는 인자 고마 내려오라 캐도 안 되겠나?
유현식: 안 그래도 그래 생각 중입니더.
유진학: 신가들이 정말로 산소에 손을 댈 작정이마 진작에 사단이 안 났것나? 산소지기 하나 있다고 손을 못 쓰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틀림없이 고발조치 당하는 것 때문에 꼼짝 못하고 있을 기야. 아무리 신가들이 조상을 숭배하는 정성이 뛰어난다 캐도 감옥에 갈 각오까지는 할 사람이 오데 있겠나? 어렵지...... 어렵어.
김인곤: 못골아재 사우 만승이 그 사람도 요새 조용한 거 보마 아마도 신가들이 능골 산소에 손대는 거를 포기한 거 아이겠나?
유현식: 못골아재 사우 신서방까지 조용하다몬 적어도 신씨 문중에서 우리 산소에 손 댈 배짱을 징긴 사람은 없을낍니더.
김인곤: 기미년에 첫 춘향묘제를 지낼라다가 만세 사건 때민에 몬 지내고, 작년에는 무슨 일인공 춘향제를 건너뛰더마는 올해사 첫 춘향묘제를 지낸다카이 신씨 문중도 양반 소리 듣기는 틀맀다.
유진학: 춘향제를 지낸다면 태사공 묘에서 지내것지요?
김인곤: 당연히 그리하겠지.
유현식: 춘향제 지내기 전에 산소지기는 불러 내라야 되겠심니더. 신가들 춘향제 지내는데 유씨 집안의 산소지기가 버티고 있는 모양도 우습고.............
씬#70 정섭의 사랑방<밤>
정섭과 봉식이 춘향제를 기해 유씨 투장묘 이전 문제를 은밀히 논의하고 있다.
정 섭 : 먼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더.
봉 식 : 수고야 큰골 종친님이 더 많지요.
정 섭 : 연장을 능골에 미리 갖다 놓을라하다가 아무래도 눈에 띄이지 싶어서 내일 머슴들 지게로 직접 져다 나르기로 했습니다.
봉 식 : 머슴들 지게로요? 그라마 더 눈에 띄일낀데? 괘안겠습니꺼?
정 섭 : 겉으로는 춘향제 제사음식으로 위장한 짐인데 안에는 전부 연장을 숨겨놓도록 해두었습니다. 태사공께서도 이해를 해 주실낍니더. 사실 내일 춘향제는 춘향제가 아이라 유씨들 투장묘를 파 옮기는 날 아입니꺼? 그런 담에 춘향제는 정식으로 지내도 안되겠심니꺼?
봉 식 : 정말로 신출귀몰할 묘책입니다. 누가 이런 묘안을 냈는지.... 거 참.
정 섭 : 우리 집안에 경주서 접장으로 있는, 이름이 지승이라고 하는 35세손이 있습니다. 그 아이가 요 몇년 간의 일을 은밀하게 주선해갖고 이렇게 꾸밌습니다.
봉 식 : 참으로 놀라운 묘책입니다. 그거는 그렇고 내일 투장묘를 옮긴 후에는.....
정 섭 : 사람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봉 식 : 그럼.........? 사람이 다 정해졌습니까?
정 섭 : 투장묘가 다섯 기니까 묘 하나에 한 사람씩 최소한 다섯 명이 잡혀가야 합니다.
봉 식 : 다섯 명이라면 누구누구?
정 섭 : 영산의 우식 종친과 종보 종친, 고성의 영무 종친 그리고 우리 집안의 만승과 명승 이렇게 다섯입니다.
봉 식 : 정말로 고마운 일입니다. 어느 문중에서 이렇게 조상을 위해 스스로 희생을 자처하는 후손들이 있겠습니까?
정 섭 : 그렇지요. 어느 문중에서 이런 후손들이 나오겠습니까? (회상에 잠기면서) <O.L>
씬#71 정섭의 사랑방
만승과 지승이 언쟁을 벌인다. 도승과 명승이 지승을 거들고 정섭이 만류한다.
만 승 : 그래 형님 말씀대로 제가 유씨네 문중으로 장가를 들었습니다. 유씨 가문의 사웁니다. 장가들 때 태사공 묘에다 처갓집이 투장한 거로 알민서 장가를 갔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 승 : 보래 재종, 그 말이 아이다 아이가? 우리는 재종을 생각해서 말리는 것 아이가? 우쨌거나 재종은 유씨집 사위이고 재종수의 친정 집안 아닌가? 그거로 먼저 생각해야지, 앙 그렇나?
명 승 : 그래, 재종. 그동안 누구보다 재종이 욕봤다 아이가. 이번에는 재종이 물러나 있어도 아무도 재종보고 무슨 소리 안 할끼다. 아뭇소리 말고 경주 성님 시키는 대로 해라 고마. 유씨들 산소는 내하고 도승이가 맡을테이까...........
만 승 : 나는 그래 몬하것습니더. 정 그라마 나는 이 질로 능골로 가서 밤중에 내 몫으로 유씨 묘 한 개만 파 옮겨 놓고 별도로 기계 경찰서에 가서 자수할 낍니더...... (정말로 일어설 기세다)
지 승 : 자, 우리가 왈가왈부하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그라지 말고 빨리 정하자. 지금 영산에서 종친 두 분, 고성에서 한 분, 이렇게 지금 의논이 돼 있는데 정작 우리가 몬 정하고 있으마 말이 안 된다. 정히 만승이 가담하겠다면 우리 문중에서 명승이와 도승, 만승이 세 사람을 합쳐서 여섯 명이 나서도 된다. 많으면 많을수록 형벌이 감해질 수도 있다. 연장이 부족할 테니까 몸에 숨겨올 수 있으면 표 안 나게 챙겨 오마 좋것네.....
씬#72 만승의 집 마당<아침>
유분이가 두루마기 차림의 만승의 소매를 붙들고 늘어진다.
분 이 : (통곡을 하며) 아이고오, 점순이 아부지...이기 무슨 일잉교? 묘사 지내러 가는 사람이 연장은 만다고 몸에 지니고 가능교? 아이고오, 점순이 아부지.....
만 승 : (당황하며 유분이의 입을 틀어막는다) 이기 미쳤나? 오데서 큰소리고? (유분이를 끌다시피 얼른 청마루를 거쳐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씬#73 만승의 안방
악에 바친 유분이가 만승에게 덤벼든다.
분 이 : 어디 봅시다.(만승에게 달려들어 두루마기 자락을 들치니 만승의 사타구니 사이로 괭이가 보이고 자루는 아랫배에다 밀착시켜 동여매었다) 시상에, 우짤라고 이라능교? 응이? 내 죽는 꼴 볼라요?
만 승 : (주위를 살피며) 니 정말로 입 안 다물 끼가? (유분이의 입을 틀어막는다)
분 이 : (입이 틀어막힌 채로 고함을 친다) 머 때문에 여러 수백 년 전에 썩어서 흙이 된 조상 때문에 생생하이 살아 있는 사람이 산채로 매장될라카요!
만 승 : 산채로 매장되다이? 그기이 와 매장이고?
분 이 : 살아있으마 머하노! 감옥에 갇혀 있는 기나 무덤에 갇혀 있는 기나 똑 같은 거 아잉교!
만 승 : 정말로 조용히 안할 끼가?
분 이 : (목소리를 한층 더 높여서) 동네 사람들아! 읍,..... 우리 점순이 아부지 함 보소! 읍... 살아 있는 사람이 읍, 무덤 속으로 걸어드갈라 카네! 멀쩡하이 살아 있는 사람이 감옥 속으로 걸어드갈라 카네! 읍!
만 승 : (버둥거리는 유분이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사이 시간이 흐른다 싶어 초조해 한다) 하, 이거 미치것꾸마는....
분 이 : (갈수록 더 버둥거리며) 동네 사람들아...............!
만 승 : (초조가 극에 달한다) 아이구, 조상님...........
씬#74 능골
태사공 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수백 명의 신씨 문중사람들을 방패막이로 신속하게 투장묘를 파헤치는 수십 명의 영산영월신씨 집안사람들-봉식, 우식, 종보, 상근, 대근, 주하, 익수, 영무, 지승...........만승은 보이지 않는다. 지승에게 황급히 다가오는 정섭.
자막-1921년 4월 28일(음력3월 15일)
정 섭 : 만승이는 우찌 됐노? 명승이와 도승이도 안보이네?
지 승 : 명승이와 도승이는 산 밑에서 유씨들을 몸으로 막고 있습니더.
정 섭 : 그라마 저쪽 사람들한테 들킸단말가?
지 승 : 방금 유씨 집안사람 몇이 이리로 뛰어오는 거로 보고 명승이와 도승이 보고 내려가서 길을 가로막으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정 섭 : 만승이는?
지 승 : 무슨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안 올 사람이 아인데.........제가 한번 내려갔다 오겠습니다.(뛰어 내려가고)
봉 식 : (투장묘 발굴을 지휘하다가 정섭에게 다가와서) 급한 대로 유골은 대강
수습해서 사람을 시켜 별도로 보관시켰습니더. 이젠 바로 기계 경찰서로 갈 사람을 출발시켜야 합니다. 여기서 어정거리다가 체포되는 것 보다 우리 발로 걸어가서 자수하면 훨씬 형량이 감해질 터인데........자수하기로 한 종친들이 누구누구입니까?
정 섭 : (난감해 하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서 창원 종친 뵐 면목이 없습니더. 우리 집안 사람들이 지금 자리를 뜨고 없습니더. 이일로 우짜지예?
봉 식 : (비장한 표정) 그렇담 할 수 없습니다. 우식이, 종보와 영무 종친을 데리고 제가 가겠습니다. 큰골 종친은 여기 뒷수습을 좀 맡아서 해 주십시오.
정 섭 : (깜짝 놀라며) 아니, 연세도 있는데 창원 종친이 어떻게?
봉 식 : (웃으며) 사실은 처음부터 젊은 사람보다 제가 갈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일을 대비해서 인원을 여유있게 잡아 놓았는데.....괜찮습니더. 걱정마이소....
정 섭 : (어쩔 줄 몰라 한다) 아, 이리 되마 우리 집안 면목이.......
씬#75 능골 입구
유병국과 유병기가 도승과 명승을 밀치며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유병국: 춘향제를 지낸다면서 와 남의 산소를 파헤치노? 이 무슨 망나니 같은 행패고?
도 승 : 우리 조상 묘 찾을라고 그란다 와?
유병국: 너거 태사공묘 찾았다 아이가? 와 우리 조상 묘를 파헤치노 말이다!
명 승 : 태사공 묘 옆에다 투장을 한 기이 너거 유가들 아이가? 그래놓고 인자 와서 머시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남의 산소에다 묘를 썼으마 죽을죄를 짔습니다 하고 백배 사죄를 해야지 우째 다부 큰소리고, 큰소리가?
유병기: 능골이 우리 산소지 우째서 신가들 산소고?
명 승 : 태사공 묘지석을 읽어보지도 안했능가베? 와? 글자를 몰라서 몬 읽었나?
이때 유현식과 유진학 김인곤 등이 능골 입구로 헐레벌떡 들이닥친다.
유현식: (병국을 보고) 보래! 너거는 여서 이랄 끼 아이라 빨리 기계로 뛰어 가서 순사를 딜꼬 온나!
김인곤: 그래! 걸음이 빠른 너거가 속히 가거라! 오늘 우리 산소에 손가락하나라도 갖다 댄 신가들은 모조리 감악소에 쳐넣었뿌야 돼!
유진학: (명승과 도승을 가리키며) 너거도 요 꼼짝 말고 있거라! 콩밥 좀 무 봐라! (이때 들려오는 봉식의 고함소리에 놀라서 뒤돌아보면)
봉식이 우식과 종보, 영무와 함께 기계 경찰서로 자수하는 가는 길이다.
봉 식 : 거 귀한 신씨들 자손 건드리지마라! 콩밥은 지금 우리가 무로 가는 길이다!
명 승 : (깜짝 놀라며) 아니? 종친 어른? 자수는 우리가 하기로.......?
도 승 : 그렇습니다, 창원 어르신. 오시던 길로 도로 올라가시이소.
봉 식 : (급히 말을 막으며) 시끄럽다! 유가들 무덤 흙 부시리기도 하나 안 만져본 너거가 우째 자수를 한단 말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라!
종 보 : 그래! 종친들은 아무 관련도 없으니 그런 소리 함부래 입 밖에도 내지 마소이?
영 무 : (유현식과 김인곤 들을 향해) 뭐하고들 있습니까? 어서 앞장 서이소! 빨리 우리를 잡아다 순사한테 넘겨야 될꺼 아입니껴?
유씨네 사람들,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를 본다
씬#76 신작로 삼거리 객줏집 앞
만승이 소매를 붙들고 늘어지는 유분이. 이때 저 멀리서 뛰어오는 지승.
분 이 :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점순이 아부지, 점순이 아부지.....죽은 조상이 살아있는 자식보다 중하단 말인교! 지발 정신 좀 차리소! 진짜로 후손을 위하는 조상이라마 후손을 감옥에 가다놓것능교?
만 승 : 이거 몬 놓나? (뿌리치려하나 사력을 다한 유분이의 손아귀 힘은 요지부동이다)
분 이 : 이 손 놓으마 그 질로 당신은 감옥살이하러 갈 낀데 우째 놓는교? 안딘다. 안 돼!
만 승 : 허어 참, 넘사시럽구로.....
분 이 : 넘사시럽운기 우리 식구 목숨보다 중하다 말잉교? 안 딘다 안 돼! (이때 지승이 다가와서)
지 승 : 어이 재종. 보이소, 종수씨. 이 손 놓고 좀 진정들 하이소.
분 이 : (하소연한다) 아이구, 경주 아지벰. 우리 점순 아부지 좀 말리주이소오....! 생떼 같은 식구들 놔두고 자기발로 감옥소로 갈라하능데 내가 우째 진정하겠습니꺼?
지 승 : 예, 예. 종수씨 좀 진정하이소. 재종은 원래 감옥에 안 가도록 의논이 됐습니더......
분 이 : 의논이 그리 되마 머합니까? 이 양반은 자기발로 감옥에 가고 싶어 안달인데....
지 승 : 조상님을 위해서 누군가는 감옥에 가야 되기는 됩니다만.....
분 이 : 경주 아지벰. 아지벰도 생각 좀 해보이소. 참말로 후손을 위하는 조상이라마 우째 산사람을 생매장시킬라 캅니꺼?
지 승 : .......? 종수씨......생매장하는 기 아이고, 잠깐 옥살이 하는 것.......
분 이 : (가로막으며) 그기이 그거 아입니꺼? 감옥에 갇힌 기나 무덤에 묻힌 기나 그기이 그거 아입니꺼?
씬#77 객줏집이 멀리 보이는 신작로
자수하러 가는 신씨 문중사람들의 앞뒤로 유씨 문중 사람들이 에워싼 채로 걸어간다.
멀리 객줏집 앞에 만승과 지승, 유분이가 보이면
유병국: 저기, 저 사람들......신서방하고 신서방네 아이가?
유병기: 맞네요. 누부가 자형을 붙들고 있는 갑는데?
유현식: 우째 못골 아재 사우가 안 보인다 캤더마는 자네 누이한테 붙들맀구마.
유병국: 신서방 성질도 엉간할 낀데 저러다가 동상이 다치지나 않했능가 모르겠다.
김인곤: (병기와 병국이를 보고) 신서방은 신서방대로 입장이 있을낑께 자네가 빨리 뛰가서 신서방을 오데 딴 데로 피신시키게!
유병기: 예. (얼른 뛰어간다)
씬#78 객줏집 안
만승이 처남 병국과 병기에게 꼼짝 못하게 잡힌 상태로 객줏집 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보면 자수하러 가는 신씨 문중 사람들이 유리창으로 보인다.<느린동작>
그 옆에 지쳐서 늘어진 유분이.
만 승 : 보래, 처남들! 이래 하능기 나를 위하는 기 아이데이, 그거 모르나?
유병국: 매제는 못 본 척하고 가만 있어라 고마.
유병기: 자형! 그동안 자형이 애 많이 썼다 아입니꺼. 요번 일에는 눈 딱 감으이소.
주 모 : (객줏집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아이구, 세상에! 신씨 문중 사람들이 조상 무덤 찾아놓고 감악소 가네!
만 승 : (괴로운 표정으로 유분이를 돌아보며) 이 여편네가 기어이 사람을............(고개를 떨어뜨린다)
분 이 : (안도하며 옆으로 힘없이 쓰러진다)
씬#79 신작로
멀어져 가는 신씨 문중 사람들 <F.O>
씬#80 자료화면:1921년경의 기계면 경찰서 사진<F.I>
스크롤 자막: 이날 투장묘 5기를 앞장서 파 옮긴 후 기계 경찰서에 자수한 고성(固城)의 신영성(辛榮成), 창원(昌原) 신상식(辛翔植), 영산(靈山) 신오식(辛五植), 신종복(辛鐘復)등 네 사람의 신씨들은 그 즉시로 형사입건, 구속 송치되었고<F.O>
씬#81 자료화면:1921년경의 대구지방법원 재판 광경 사진<F.I>
스크롤 자막: 동년(同年)(1921년) 7월 20일(양력 8월 23일)에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8개월의 언도를 받았으나 <F.O>
씬#82 자료화면:1921년경의 고등법원 항고심 광경 사진<F.I>
스크롤 자막: 고등법원 항고심(抗告審)에서는 8개월의 언도를 받아 복역(服役)하고 1922년 2월2일 (양력 2월28일)에 출감(出監)하였으며 <F.O>
씬#83 자료화면: 1921년경의 경주지방법원 사진 <F.I>
스크롤 자막: 1921년 3월 20일(양력 4월27일)에는 투장묘주(偸葬墓主) 유현식(兪顯植:가명) 유진학(兪鎭學 :가명) 김인곤(金麟坤:가명)등으로부터 분묘복구 유골 인도 등 청구 소송을 경주지방법원에 제소당하고<F.O>
씬#84 자료화면: 1921년경의 포항경찰서 사진 <F.I>
스크롤 자막: 경주 신석근(辛碩根) 외 40여 신씨 문중이 포항경찰서에 형사고소 당하는 등 많은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F.O>
씬#85 자료화면: 2005년 현재의 화봉동 신태사공 묘 전경 사진 <F.I>
스크롤 자막: 오늘의 이 묘를 봉안(奉安)하는 영광을 영산영월신씨 후손들이 갖게 되었다 <F.O>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