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꽃이 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곳이 있다.
그중 제일 먼저 떠 오르는 곳이 전라도의 명옥헌이고, 그 다음은 이곳 하목정이다.
명옥헌은 너무 멀어서 해마다 마음으로만 그리워할 뿐이고, 이곳 하목정은 가까운 곳에 있으니 바람처럼 훌쩍 갔다 오면 된다.
지난 번 삼가헌의 연꽃을 찍으러 갔을 때에 그곳 하엽정 입구에 배롱나무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삼가헌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하목정의 배롱나무꽃을 만나고 싶었으나...
시간이 여의치 못해서 그냥 아쉬운 마음을 접고 왔는데...
일전에 삼가현 연꽃을 새벽에 만나보리라 나랑 한 약속도 지키고 배롱나무도 볼겸해서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삼가현 연꽃은 역시...땡볕에 보는 것보다 새벽에 보니 더욱 아름다웠다.
은은히 풍겨 오는 연향이 아니라..그냥 푹 안겨 오는 연향에 순간 아찔하다.
황소개구리 울음소리가 사못 요란한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남의 집에 발들여 놓는 것이 조심스럽다.
아!!
사람의 인연이란 그때 그 순간이다.
지난 번 방문때에는 그리도 새벽 연꽃이 보고 싶었는데..오늘은 내 마음이 이미 연꽃보다 배롱나무꽃에 기울어져 있다보니
연꽃을 보는 눈이 조금은 시들해져 있다.
그것은 이틀 연이어 몰려 온 태풍의 영향으로 연밭이 좀 어지러워 보였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연꽃 몇 장 찍고는
서둘러 하엽정을 빠져 나와 하목정으로 향했다.
하목정은 안내판에 쓰이져 있는대로 인조가 잠룡 시절에 잠시 이곳에 들른 것을 인연으로 정자의 이름이 생겼고..
그리고 건축물에서도 나름 특징을 갖고 있다.
일반 서민 주택에서는 달 수 없는 부연을 달았고...그리고 그 부연 끝을 동구스럼하세 방구메기 수법을 사용했다.
이것은 한창 답사 다닐 때에 공부하던 시각이었다면 오늘 나는 그저 배롱나무에만 마음이 간다.
이 안내판에다 한 가지 더 설명을 붙이자면
당고조의 아들인 이원영이 홍주자사로 재직할 때 높고 화려한 누각을 지었는데, 그는 당시 滕王(등왕)에 봉해져 있어서
그 누락 이름을 '등왕각'이라고 했다.
그 후 홍주태수로 염백서라는 사람이 부임해서 등왕각을 중수하고 연회를 여는데...그에게는 제법 문장깨나 하는 사위가 있었는데
그 사위를 자랑하고 싶어서 미리 등왕각 중수 서문을 지어 놓으라 하고
연회가 열리는 날 초대한 손님들에게 즉석에서 서문을 짓자며 제법 연회 분위기를 띄웠는데...
이미 태수의 의중은 눈치 챈 선비들은 아무도 글을 지어 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마침 그 옆을 왕발(王勃)이 지나가다가 술 한잔을 얻어 먹게 되었다.
그는 당시 글을 하나 잘못 써서 왕에게 미움을 받아 벼슬자리를 잃고 울분 가득한 마음으로 멀리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던 길이었다.
술도 한잔 먹었겠다..속에 울분도 찾겠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날 해질녁이겠다. 글을 토해내기엔 안팍이 다 갖추어진 상황이었기에 단숨에 글을 써내려갔다.
이것이 그 유명한 왕발의 <등왕각서>이다.
연회를 베풀은 염백서는 사위자랑을 하려고 했는데
왠 어중이 떠중이 같은 녀석이 일필휘지로 글을 써내니 불손한 행동에 노기가 일어서
그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버렸는데..
그래도 궁금해서 노비넘을 시켜서 던져 버린 그 글을 다시 갖고 와라고 해서 읽어보고는
무릎을 딱 치며 경탄을 했다는 것이다.
그 글 중에서 염백서의 마음을 사로 잡은 글귀가
'낙하여고목제비(落霞與孤鶩齊飛)
추수공장천일색(秋水共長天一色)'이라는 구절이다.
저녁놀은 짝잃은 따오기 나란히 떠 있고
가을 강물은 넓은 하늘과 같은 색이다.
바로 여기에서 따온 정자 이름이 하목정이다.
이 구절을 다시 음미해보면 정말 멋진 하목정의 풍경을 상상해볼 수 있다.
누마루에 앉아서 저 멀리 바라보면 낙동강물이 유유히 흘러가고...
어느 가을 날 저녁 노을은 붉게 타는데...그곳에 기러기 한 마리 날아간다.
그런데..푸르던 강물색은 지는 저녁놀이 비쳐서 하늘과 같이 붉은 색이다.
한 폭의 그림이 충분히 그려지는데...아직 임금이 되지 못한 인조는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이곳에 와서 하룻밤을 머물면서
한 마리 따오기를 자신의 처지로 생각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날밤의 그 기분을 잊지 않고 훗날 임금이 되어서 자신의 머물렀던 집에다 하룻밤의 인연을 이 편액으로 남긴 것이리라.
부연
여기까지가 하목정의 유래였다면 나의 하목정은 오직 배롱나무로 추억한다.
배롱나무는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에 마치 하늘과 맞짱이라도 뜰 태세로 붉게 붉게 피어난다.
줄기를 감싸고 있는 굴피는 얇아서 살살 벗기면 여름날 해수욕 하고 태운 등의 피부 허물이 벗겨지듯이 살살 벗겨진다.
그래서 이 나무를 '간지럼나무'라도고 한다.
한 번 꽃을 피우면 백일 동안 핀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 하는데 초본 백일홍이 있어서 구분하느라 목백일홍이라고 한다.
목백일홍나무 , 목백일홍나무 하다가 그냥 발음하기 쉽게 배롱나무라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배롱나무는 초본의 꽃들이 사라지고 난 여름철에 꽃을 피우다 보니 문화 공간의 정원수로 많이 심었다.
각 사당은 물론이요..절에도 배롱나무를 많이 심고,,,성당의 정원수로도 많이 심는다.
요즘은 도로가의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롱나무는 전라도 명옥헌의 배롱나무이고..기림사의 배롱나무도 그에 못지 않다.
내가 매일 드나드는 모영재 서당 뒷편 두사충 장군의 묘소에도 오래된 배롱나무가 장군의 묘소를 지키고 있다.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반월당에서 수성교 쪽으로 오는 길의 길 가운데 화단에도 여름날이면 배롱나무가
아름답게 피어있었는데...언제부터인가 수종이 교체되어서 이제는 배롱나무꽃을 볼 수가 없다.
가실성당 배롱나무
육신사입구의 배롱나무
낙화가 아름다운 꽃은 단연 동백이지만, 동백 못지 않게 배롱나무의 낙화도 참 아름답다.
명옥헌의 배롱나무
이사진은 명옥헌의 배롱나무 사진이다.
어느 해...내가 명옥헌 배롱나무 꽃이 하도 보고 싶어서 야생화 사이트에 올라온 것을 주인의 허락을 받고 가져 온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명옥헌의 배롱나무 꽃을 언제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첫댓글 좋은 글과 사진
한참을 읽고 보고 갑니다.
길고 지루한 글...
내 흥에 취해서 쓴 글을 잘 읽으셨다니 고맙습니다.
배룡나무 실컷 구경하고 갑니다.
상세하게 올린글 감사히 봅니다...
늘 성심어린 댓글 감사합니다.
배롱나무 잘 알았고 덕분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배롱나무에 얽힌 사연이 있는곳들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문사이로 비치는 그리고예전에는그냥 지나친 꽃을상세하게 역사공부까지.''''''' 자유인 감사합니다.
자유인이 못되는 자유..ㅋㅋㅋㅋ
자유님의 글과 사진에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그저 고맙고 감사합니다 ^^
저도 그저 고맙고 감사합니다.
아주 오랜만에 야심한 시각에 컴앞에 앉아서 좋은 사진과 글을 마주합니다.
잠을 조금 덜 자도 좋은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