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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19. 10. 26.~27.(주말)
●산행지: 금남호남정맥 (마이산-조약봉), 금남정맥 (조약봉-백령고개)
●산행코스: 마이산-봉두봉-익산~포항 고속도로-활인동치(강정골재)-마이산전망대-부귀산-우무실재-질마재-가정고개-오룡동고개-장구목재-오산리재-조약봉-입봉-보룡고개-황새목재-연석산-만항재-운장산서봉-활목재-피암목재-성봉-장군봉-북장군봉-큰싸리재-금만봉-작은싸리재-성재봉-신선봉-성치지맥갈림길-질재-백암산-임도-백령성-백령고개
●먹거리: 생수2,000cc, 쏘시지1, 사탕, 치즈크래커2, 양갱2, 군밤100g, 토마토케찹9gx3
●준비물: 바람막이, 우모, 충전지, 스틱, 헤드랜턴, 수건, 약, 장갑, 수면용안대, 귀마개, 휴지, 물티슈, 부직반창고, 예비 양말, 옷
●거리: 약 63.2Km
●소요시간: 약 29.05h
●누구랑: 나홀로
●경비: 하행고속15,300, 버스4,200, 식사10,000, 택시14,200, 소태정휴게소14,700(빵, 음료, 식사 등), 백령고개택시23,400, 뒤풀이30,000, 상행버스18,500
●날씨: 5~18도
●산행경과:
- 11:17 : 남부주차장
- 11:42 : 봉두봉 들머리
- 12:07 : 봉두봉 (540m)
- 13:10 : 강경골재
- 14:30 : 부귀산 (806.4m)
- 16:56 : 오룡재
- 18:54 : 조약봉
- 20:17~21:00 : 보룡고개 (소태정휴게소)
- 22:30 : 황새목재
- 01:10 : 연석산 (925m)
- 01:52~02:25 : 노박
- 03:10 : 운장산 서봉 (1,123m)
- 04:15 : 피암목재 (동상휴게소)
- 05:20~06:00 노박
- 08:00 : 장군봉 (742m)
- 09:26 : 금만봉
- 09:47 : 작은싸리재
- 10:20 : 성재봉 (824m)
- 12:55 : 신선봉 (790m)
- 15:04 : 백암산 (654m)
- 16:30 : 백령성
- 16:37 : 백령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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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산~배티재: 70.5km
1-2구간: 마이산~조약봉 23.5km
1-1구간 조약봉~금만봉 22.2km
- 조약봉~피암목재 14.5km
- 피암목재~금만봉 7.7km
- 피암목재~백령고개 19.4km
1-2구간 금만봉~배티재 24.8km
- 금만봉~백령고개 11.7km
- 백령고개~배티재 13.1km
※ 사전정보
- 운장산 정상0.6km, - 해골바위 0.7km
- 태평봉수대 0.17km, - 서암산 0.22km (정상석 없음)
※ 식수조달 가능지역 :
- 강경골재 마이종합학습장 수도 시설,
- 보룡고개(소태정휴게소), 010-4712-3559, 06:00~19:30
- 황새목재 과수원 민가,
- 피암목재(동상휴게소) 낮시간대,
- 백령고개 매점, 010-9944-5649, 09:00~17:30
※ 서울에서 마이산 가는길
- 용산~전주(KTX) 05:10~06:41
- 용산~전주(1501) 05:45~09:16
- 서울~전주(KTX) 07:05~08:54
- 센트럴시티~전주 06:20, 2.40h, 동양
- 동서울~전주 06:00, 2.50h, 중앙
- 인후동~진안 07:15, 09:20, 09:50
- 전주~진안 50분 소요, 4,600원
전주시내버스터미널에서 진안 차편은 25~30분만에 한대꼴, 하루 41회 운행, 약 50분 소요됩니다.
※ 백령고개 서울 오는길
- 금산 시내버스 1일3회 [06시, 11:40, 18:10]
- 금산개인택시: 010-5426-2014
- 진산개인택시: 041-752-4802, 041-753-7373
- 금산터미널-강남터미널, 3시간 소요
※ 배티재 서울 오는길
- 34번버스~대전서남부터미널(45분 간격, 1시간 소요)
- 대전청사고속버스둔산정류장-서울고속버스터미널 2h, 10,500
- 서대전역-서울역 1.14h, 2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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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에 끝내지 못한 금남호남정맥을 마무리 짓고 막바로 금남정맥을 이어갑니다.
진안터미널에서 마이산 남부주차장 탑사가는 버스가 자주 있을거로 예상했는데 그게 아니네요.
마령가는 버스로 마이산 입구까지 가서 1km 걸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저는 그냥 택시를 불러~
백암산 한쪽 귀퉁이 서암산 다녀와 백령고개로 가는 길에 임도에 내려서서 위아래로 올라다니며 대체 600고지 충혼탑이 어디 있지? 다리가 덜 피곤했는지 마지막에 헤맸습니다. 차단기가 있는 임도 내려선 곳에서 전방에 야트막한 고개 바로 백령성을 넘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ㅋ~^^
금남정맥은 전북 진안 부귀면과 전북 완주군 소양면 경계 조약봉에서 호남정맥과 분기하여 북쪽으로 진행하다 전북 완주 동상면으로 넘어가는데....
동쪽은 전북 진안에서 충남 금산으로, 서쪽은 전북 완주군 진안, 동상, 운주로 넘어갑니다.
동상면은 본래 고산현의 동쪽에 있어 동산면이었는데 조선시대부터 `전국 8대 오지` 중 한 곳으로 첩첩산중 산골입니다. 금산은 1963년에 전북에서 충남으로 바뀌었는데 서해쪽은 옥구가 충남에서 전북으로 옮겨졌죠. 진산은 고산현에 속했습니다.
동상면은 6.25직후 대둔산과 지리산으로 넘나드는 빨치산들의 해방구 거점으로 소탕하는데만 5년, 담양호 상단 가마골, 구림, 쌍치, 복흥보다 저항이 더 극렬했답니다. 고산읍내에 11사, 8사가 주둔하고 작전을 전개했으니깐요.
지도를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 진행 방향 서쪽은 보룡고개 출발 1.3km 700고지 지점에서 동상면으로 진입합니다. 동쪽은 진안 주천면에서 금산 남이면으로 진입하는데 성치지맥갈림길에서부터 좀더 진행하여 713.5봉에서 선야봉쪽이 도경계이고 우측 백암산 진행방향은 금산군입니다. 성치지맥갈림길부터 우측이 금산군 남이면입니다. 금산군 진산면 이치고개 직전 570고지에서 다시 완주군 운주면으로 넘어갑니다.
금만봉을 사이에 둔 큰싸리재와 작은 싸리재는 걸어다니는 시절 교통의 요지였나봅니다. 삼국시대 진안고원에서 사비로 향하는 통로 봉수대 아래 작은싸리재, 신라와 백제의 접경으로 역사의 흔적이 켜켜이 묻어나는 조망도 훌륭하고 굵직한 산이 줄지어 있어 실거리에 많이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금남정맥의 꽃이라 불리는 1구간을 단풍은 덤으로 추캉스 제대로 즐기고 왔습니다. 금남정맥 1구간 특징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예고에 없던 산죽밭을 꽤나 만나게 됩니다.
애초 교통과 다음구간을 고려하여 임진왜란 전승지 이치까지 목표로 삼고, 최후의 경우 백령고개에서 2시간을 쉬기로 계획을 잡았는데 출발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마지막 백령성을 넘지 못하고 임도에서 600고지 충혼탑을 찾아 오르락내리락ㅠㅠ 헤매는 통에 백령고개 매점에서 저렴한 교통편을 알아보기도 전에 택시를 불렀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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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남정맥(錦南正脈) 개요
1. 금남정맥(錦南正脈)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영취산에서 분기하여 서쪽으로 뻗어내린 금남호남정맥이 조약봉(주화산 565m)으로 이어지다가 이곳에서 다시 남쪽으로 호남정맥, 북쪽으로 금남정맥이 분기된다.
금남정맥은 북으로 금강과 나란히 치달아 대둔산과 계룡산을 거친후 서쪽으로 망월산을 지나 부소산 백마강 조룡대에서 끝난다. 금강의 남쪽과 서쪽으로 만항강, 동진강의 분수령이 되어 자연히 군산을 중심으로 한 평야지방과 내륙지방을 양분하고 있다.
금남정맥을 이루는 주요산은 조약봉(565m)에서 시작하여 연석산(928m), 운장산(1126m), 인대산(666m), 대둔산(878m), 월성봉(650m), 바랑산(555m), 천마산(287m), 계룡산(845m), 부소산(105m) 등이다.
2. 금남정맥(錦南正脈)은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주화산(珠華山, 600m)에서 시작하여 왕사봉·대둔산을 지나 계룡산으로 이어지고 부여의 부소산에서 끝나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금강의 남서쪽을 지나므로 금남정맥이라 하였다.
금남정맥은 조선시대 조상들이 인식하던 한반도의 산줄기체계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정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상에서 비롯된 이들 맥은 10대강의 유역을 가름하는 분수산맥을 기본으로 삼고 있어 대부분의 산맥 이름이 강 이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금남정맥은 금강 상류유역과 만경강 유역을 구분짓는 산줄기이다. 동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금강 상류를 이루며, 서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만경강을 이루고 일부는 금강 하류로 흘러든다. 이 산줄기가 시작되는 주화산에서 남쪽으로 연결되는 호남정맥과 함께 전라북도의 동쪽 산간지방과 서쪽 해안의 호남평야를 경계짓고 있다.
연결되는 산은 왕사봉·배티[梨峙]·대둔산·황령(黃嶺)·개태산(開泰山 혹은 天護峰, 360m)·계룡산·널티[板峙]·망월산(望月山)·부소산 등으로 그 길이는 약 107.6㎞이다.
☆ 금강정맥 개요
금강정맥이란 조약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금남정맥이 연석산을 걸쳐 피암목재로 내려가다가 다시 솟구쳐 성재봉으로 가기 직전에 있는 싸리재와 작은 싸리재 중간 755m봉(금만봉)에서 북서쪽으로 분기해서 왕사봉(718.3m), 칠백이고지(700.8m), 불명산(480m), 작봉산(419.6m), 성태봉(871.3m), 천호산(501m), 용화산(342m), 미륵산(429.6m)에 이르기까지 산다운 형국을 보이다가 미륵산을 내려선 후로는 온전히 낮아져 미륵산 이후의 최고봉이 전북 익산시 웅포면과 함라면의 경계에 솟은 236m의 봉화산일 만큼 비산비야의 산세를 보여준다. 크고작은 도로로 인해 수십 군데의 산줄기가 끊어지고 정맥길이 아예 도로인 곳도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렇게 신음하면서도 우리땅의 뼈대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금강정맥은 미륵산과 봉화산 사이 삼기면과 함열읍 및 황등면 그리고 함라면 일대의 허허벌판을 지나면서 절묘하게 물길을 가르며 군산 월명산을 지나 서해바다까지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산경표가 가리키는 금남정맥은 진안 주화산(조약봉)을 출발해 운장산, 대둔산, 계룡산을 지나 부여의 부소산 넘어 백마강 구드래나루터에서 그 맥을 다하는 산줄기로서 이는 산을 가르는 경계(산자분수령)라는 물 가름의 원칙으로 볼 때 오류라는 지적이 진작부터 있어 왔다. 산경표 원리에 충실하자면 금남정맥은 군산으로 산줄기를 이어가는 대동여지도가 더 합당해 보일 수 있다. 산경표에 의한 금남정맥은 마루금의 흐름이나 산세가 훨씬 더 당당하고 멋지나 물 가름의 원리를 두 눈으로 확인하며 걸어가는 대동여지도의 금남정맥은 그와는 다른 감각을 보여준다. 대동여지도 금남정맥은 산세는 낮아도 금강과 만경강을 끝까지 뚜렷하게 가르며 이어지는 산줄기이므로 실질적인 금남정맥이라 할 수 있기에 이를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두개의 금남정맥을 모두 종주하는 의미를 가지면 되겠다. 그 이름이야 뭐가 되어도 좋다. 금강정맥은 옛 백제의 숨결이 오롯이 남은 전주와 익산 땅을 크게 휘어 감으며 지나는 산줄기로서 전북 완주군과 진안군의 경계에 위치한 금만봉(750m)에서 서쪽으로 분기해서 금강과 만경강을 가로 지으면서 군산의 월명산까지 이어진 산줄기이다. 거리는 조약봉에서 부소산 조룡대까지의 금남정맥은 107.6km, 금만봉에서 군산의 장계산까지 금강정맥은 131.5k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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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남호남정맥 1-2구간 마이산 ~ 조약봉 23.5km
- 마이산(숫마이봉) - 부귀산 10km
- 부귀산 - 조약봉 13.5km
* 금남정맥 1-1구간 주화산 ~ 피암목재 14.5km
1-2구간 피암목재 ~ 백령고개 19.4km
탑사(塔寺) → (0.8km) → 마이산 봉두봉(馬耳山 鳳頭峰/540m) → (0.4km) → 고금당(古金堂) 갈림길 → (0.5km) → 전망대(展望臺) → (2.9km) → 활인동치(강정골재/活人洞峙/350m)→ (0.3km) → 전망대(展望臺/398m) → (2.7km) → 개실마을갈림길 → (1.0km) → 절골갈림길 → (0.7km) → 부귀산(富貴山/ 806m)
부귀산(富貴山/ 806m) → (1.6km) → 복호봉(653m) → (0.5km) → 우무실재 → (0.5km) → 645봉 → (0.9km) → 질마재 → (1.1km) → 필봉(600m) → (2.7km) → 가죽재 → (1.9km) → 622봉 → (0.9km) → 오산리재 → (1.0km) → 봉우재봉(641m) → (1.0km) → 조약봉(鳥躍峰/565m) → (0.2km) → 주화산,금남/호남정맥 분기점(565m)
주화산(珠華山/3정맥분기점/536.5m) → (0.8km) → 조약치(鳥躍峙/460m) → (2.0km) → 입봉(笠峰/637m) → (1.3km) → 보룡고개(26번국도/440m) → (1.3km) → 황새봉(黃鳥峰/674.4m) → (1.2km) → 황새목재(黃鳥峙/490m) → (3.1km) → 820봉 → (1.4km) → 연석산(硯石山/925m) → (0.5km) → 만항재(늦은목이재/765m) → (1.2km) → 운장산서봉(雲長山西峰/독재봉/칠성대/1,120m) → (0.6km) → 운장산(雲長山/1,126m) → (0.6km) → 운장산서봉(雲長山西峰/독재봉/칠성대/1,120m) → (2.2km) → 피암목재(55번지방도/운장산휴게소/동상휴게소/553m)
피암목재(55번지방도/운장산휴게소/553m) → (0.7km) → 675.5봉(헬기장) → (4.0km) → 장군봉(將軍峰/725m) → (2.5km) → 싸리재(금강기맥분기점/690m) → (1.5km) → 작은싸리재(660m) → (1.5km) → 786.6봉 → (4.0km) → 713.5봉(선야봉갈림길) → (2.5km) → 백암산(白岩山/육백고지/654m) → (2.0km) → 백령고개(栢嶺/잣고개/635지방도/36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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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구간 조약봉~금만봉: 22.2km
- 조약봉~피암목재 14.5km
- 피암목재~금만봉 7.7km
* 1-2구간 금만봉~배티재: 24.8km
- 금만봉~백령고개 11.7km
- 백령고개~배티재 13.1km
탑사 가기 전 봉두봉 입구 이번 구간 들머리...
봉두봉에서 바라본 나봉암 정자와 좌측의 고금당
암마이봉에서 직접 봉두봉으로 가게되면 사찰관람료 3,000원을 절약 가능합니다.^^ 대신 탑사에는 들르지 못하고 은수사-암마이봉-봉두봉 순입니다.
변변한 정상석 하나 없는 봉두봉 정상
♤ 봉두봉(540m)
진안읍 단양리와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경계에 있다. 마이산 산봉과 유사한 역암으로 된 탑모양 또는 돔형상의 지형은 마이산 동남쪽 약 2km 지점까지 10여 개 소가 분포하는데 그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광대봉, 마두봉, 관암봉, 비룡대, 나봉암, 탄금봉, 봉두봉 등의 봉우리들이다.
봉두봉 지나 만나는 이정표가 있는 이곳 안부에서 좌측 광대봉으로 가는 길과 오른쪽 북부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잘 보이지만 가운데 진행길은 희미하여 알바하기 쉬우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활인동치로 가며 뒤돌아 보니 이런 경치가 보입니다.
마이종합학습장 외부에 수도시설이 있네요. 여름엔 힙겹게 처음부터 물을 가져가기 보다는 여기에서 물을 보충해도 충분할듯 보입니다.
활인동치에서 동물이동로를 지나 힘겹게 언덕을 기어오르니 좌측 정자 아래로 월포국민학교가 폐교되고 생긴 마이종합학습장을 만납니다. 정맥길은 이 곳 정문을 통과~
♤ 활인동치(강정골재/活人洞峙/350m), 강경골재
마이산 천황문과 읍의 남서부에 있는 활인동 고개(강정골재)가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계가 되는 강의 경계, 강경골재가 강정골재로 바뀌었다. 진안읍은 금강과 섬진강의 상류에 해당한다.
전주시와 장수를 잇는 26번 도로에서 올라오면 활인동치(강정골재/活人洞峙)에 서게 된다. 활인동은 진안군지에 의하면 활처럼 굽은 귀목나무가 있어 얻은 이름이라 하고, 국립지리원에 의하면 마을에 임중화(林中花) 또는 연화도수(蓮花倒水)의 명당이 있어 “화림동”이라 불렀는데 변음이 되어서 활인동치가 되었다고 한다.
♤ 개실마을
개실마을의 지명 유래는 개가 새끼 세 마리를 품고 엎드린 형상이라 하여 개실마을이라 부른다.
부귀산 정상에 전망은 없습니다.
부귀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이산 모습입니다. 뒤편으로 성수산과 지나온 정맥의 연봉들이 보이죠
♤ 부귀산(富貴山/ 806m)
부귀산(富貴山/806m)은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과 진안읍에 걸쳐있는 높이 806m 산으로 지명에서 말해주듯이 이 지역이 산수(山水)가 좋아 천하명당 자리에 터를 잡은 부귀한 곳이라는 의미라고 하며 풍수인들이 말하기를 이곳은 사지양천(蛇之仰天) 즉 뱀이 하늘을 우러러보는 형상인 명당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부귀산(富貴山/806m)은 전북 지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스테인레스 말뚝이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었으며 대곡마을 주민들은 부귀산을 “배택산”이라고도 하는데 말세가 되면 이 산을 올라 배를 타고 나가야 살 수 있다고 하는 속설을 간직한 산이라고 한다. 이 산에는 고림사라는 천년사찰이 있고 풍수지리설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상에 묘지가 3기가 있다. 금남호남정맥길이 지난다. 부귀산(富貴山)은 진안의 명산이면서도 주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이곳 진안에는 유명한 마이산. 운장산. 구봉산 등 전국의 산악인에게 알려진 곳만도 3곳인데 이곳 3곳을 진안의 3삼이라 하고 부귀산을 합하여 4산이라 부른다. 진안의 3산은 저마다의 독특한 자태를 지니고 있다면 부귀산은 어떠한 특성이 없는 그저 한국의 평범한 육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잡목으로 어우러진 숲길과 능선은 봄의 신록과 함께 잡목에 피어난 겨울설경은 위험부담도 줄이고 겨울설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겨울에는 적설량이 많아 정상에 서면 바로 눈앞에 펼쳐진 운장산, 구봉산의 웅장한 자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정고개 일까요? 오룡재 이르기 약 15분 전에 우측으로 가깝게 저수지(수류지)가 보이던데 나뭇가지에 빈 플라스틱 물통이 많이 꽂아져 있어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 물을 구할 수 있는 것인가? 짐작들게 했습니다.
♤ 질마재(鞍峴)
질마재란 지명은 고개의 지형이 길마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안현(鞍峴)이다. 좌측에 광주동과 우측에 오룡동으로 연결되는 고개로 “질매재”란 또 다른 이름으로 전국에 두루 분포하고 있으며 짐을 실을려고 소나 말의 등에 얹는 안장인 길마(질마)를 뒤집어 놓은 U자형의 선명한 재의 모습을 말한다.
오룡동 동물이동로 근처에 주유소는 보이지 않았고 그 자리에 진안명과 한과 공장이 생긴건지.. 산 옆으로 인가도 눈에 띕니다. 다급하면 물을 구할 수도 있겠어요.
♤ 오룡동고개(가죽재)
오룡동고개는 전주와 진안을 잇는 고개로 가죽재라고도 한다. 동물이동통로 아래로 26번 국도가 지나가고 오룡동은 다섯 봉우리의 산에 둘러 싸여 있고 오룡농주(五龍弄珠)의 명당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삼정맥 분기봉/ 신산경표의 조약봉(鳥躍峰/565m)
실질적인 금남호남, 금남, 호남의 3정맥 분기점으로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와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해월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모래재 터널에서 북쪽으로 700여m 떨어진 지점에 있는 봉우리이다. 예전에는 이름이 없었으나, 1997년 조석필 저 `태백산맥은 없다`에 따라 주화산으로 작명되어 불려졌고 2000년대 이후 산악인들이 산경표에 등장하는 주화산으로 해석하고 팻말을 세웠으나 주줄산(珠崒山)이 현재의 운장산으로 밝혀지고 이름없는 3정맥 분기점 무명봉에 산경표식 표기(산경표는 분기점에 이름이 없으면 분기점 직전의 산이나 고개이름을 쓰고있다.)에 따라 분기점에서 금남호남정맥을 따라 50여m정도 내려가면 조약치(鳥躍峙)가 나오는데 그 고개명을 인용하여 조약봉으로 명명되었다. 산악인들은 이 조약봉을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시작한 금남 호남 정맥의 마지막 지점으로 상정하고, 이를 기점으로 북쪽으로 금남정맥, 남쪽으로 호남정맥의 기점으로 삼고 있다. 이 부근을 기점으로 금강[정자천], 섬진강[부귀천], 만경강[완주군 소양면 소양천] 등 3개 강의 수계가 나누어진다.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진안군으로 가는 모래재길의 모래재 휴게소에서 모래재 터널 쪽 임도를 따라 10분가량 올라가면 호남정맥의 능선이 나타나고, 5분 정도 호남정맥 능선을 오르면 헬기장이 나타나며, 여기에서 2분 정도 더 오르면 조약봉사거리가 나타난다. 2000년에 전북 산사랑회에서 이정표를 설치하였다.
금남정맥 분기점의 명칭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다. 먼저 산경표를 보면, 29頁 백두대간 長安峙에서 分二歧, 87頁로 넘어와 금남호남정맥이 기재되면서 馬耳山에서 分三歧하여, 웅치로 호남정맥이 이어가고 금남정맥은 “주화산(珠華山)”으로 내려가는데, 여기서 금남정맥(錦南正脈)이 ‘錦山正脈’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이어, 88頁로 넘어가서는 마이산 아래칸에 “주줄산(珠崒山)”으로 기재된 채 금남정맥이 시작된다. 주화산이냐 주줄산이냐에 대해서는, 대동여지도와 택리지 등에 주줄산으로 기재되어 있으므로 주화산은 일단 표기상의 오류로 보고 -주화산은 없다-, 다음으로, 주줄산의 현 위치가 어디냐는 것. 즉, 현재의 3정맥 분기점인 565봉이 주줄산이냐는 것이다. “龍潭 西삽십리, 高山 東사십오리, 錦山 南사십리”의 산경표 표기로는 정확한 좌표를 찍기가 용이치가 않고, 대동여지도에 표기된 주줄산은 고산과 용담을 잇는 직선상의 중간쯤으로, 반일암 서쪽, 주자천의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현재의 운장산이나 장군봉쯤 되어 보인다. 호남정맥을 하면서도 그랬지만 현재의 565봉은 옛 문헌에서 얘기하는 주줄산으로 보기에는, 그 위치로나 글자가 가진 뜻으로 보나 (珠崒 : 구슬 주, 산높을 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즉 주줄산에 딸린 봉우리가 조약봉인 것이다.
종합하자면 신 산경표의 조약봉(鳥躍峰)으로 보는 견해가 합당해 보인다. 현재 지형도에 565봉 아래쪽으로 조약치(鳥躍峙), 조약골이 나오므로, 새가 뛰어 넘는다는 '鳥躍'이 아담하고 나지막한 마을 뒷산인 565봉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또한 금남정맥의 산줄기가 다하는 끝점을 보면 ‘산자분수령’과는 다소 동떨어진 부여라는 도읍으로 향한다. 금북정맥 또한 금강의 하구는 버려둔 채 반도 끝인 안흥진으로 향하고 있어, 이래저래 금강은 산경표가 제대로 물길을 가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신 산경표에서는 금북정맥과 마찬가지로 금강의 하구로 산길을 돌려, 금강정맥으로 이름을 지었다.
♤ 모래재(288m)
모래는 ‘몰’이라는 옛말로 산을 뜻하고 ‘산고개’라는 뜻이다. 과거 전주에서 진안까지 유일한 통행로는 ‘곰티재’였지만 모래재에 터널을 뚫어서 도로를 개설했으나 길이 험해서 눈으로 교통 두절이 잦자 1966년 전주에서 부귀 방향으로 우회하는 보룡고개 도로 개설로 모래재는 한적한 고개가 되었다. 전주공원묘지가 있다.
해드랜턴 불빛에 "그대로 멈춰랏!" 스틱으로 건드리니 죽은 채 그대로 툭 떨어집니다. ㅋㅋ 다 알거등~~
♤ 입봉(笠峰/삿갓봉/637m)
전라북도 완주군의 소양면 신원리와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산의 서쪽은 소양천의 상류이며 만경강 수계, 동쪽은 금강 수계에 속한다. 아래에는 만경강의 발원지인 밤샘이 있다. 지명은 산 모양이 삿갓 모양이어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입봉 주변에는 전주와 진안을 이어주는 모래재, 보룡고개, 황조치 등이 있다.
소태정휴게소는 소태정주유소 사장의 조카가 2층에 거주합니다.^^ ㅎㅎ~ 늦게 도착하여 가게 문은 이미 닫혔지만 불러 내렸습니다. 안 그러면 더이상 못가는데 별 수가 있어야죠.
♤ 보룡고개(26번국도/440m)/ 소태정고개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과 진안군 부귀면을 잇는 고개로 26번 도로가 지나며 신도로명이 전진로이다. 지도상 고개 양쪽으로 성산휴게소와 소태정휴게소가 자리하는데 피암목재(동상휴게소)는 심야에 지나게 되니 금남호남정맥과 연결하여 홀로 멀리 가고자 하는 산객에게는 피암목재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여기에서 준비해야 하기에 두 휴게소의 소식이 여간 궁금했습니다.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과수원을 관리하는 인가가 한채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연석산 오름이 시작되네요. 오히려 개가 짖지 않는다는게 특이하더군요. (시끄러워서 안 키우나??)
♤ 황새목재(黃鳥峙/490m)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황조리에서 진안군 부귀면 궁항마을을 잇는 고개이다. 다급한 경우 우측 가까이 과수원 민가가 있어 물을 구할 수 있다. (黃鳥-뻐꾸기), 황조리(黃鳥里)는 익산 왕궁에서 진안으로 가는 지름길로 재를 넘어가는 산의 모양이 황새 목과 같다하여 황새목재라 부르며 이 마을을 황조리라 불렀다.
연석산에서 바라본 전주시내 야경입니다. 밤에 통과하기에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죠~^^
소태정휴게소에서 약7km, 황새목재에서 약 4.5km 밥 먹은게 다 꺼졌습니다.
이번 구간 길게 느껴지는 구간이 유독 많던데 장군봉에서 금만봉도 멀게 느껴졌고, 성재봉에서 신선봉도, 신선봉에서 백암산도...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 연석산(硯石山/925m) 삼면봉
전라북도 완주군의 동상면과 진안군 부귀면, 정천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서부는 완주군, 동부는 진안군의 경계에 있다. 동상면 쪽의 사봉천, 고산천은 만경강 수계이고, 진안군 정천면 · 부귀면 쪽의 정자천, 주자천은 금강 수계이다. 산의 정상까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며 칭칭나무 군락, 연석사, 산제당 등이 있다. 벼루[硯]를 만드는 돌[石], 벼룻돌이 많이 난다고 해서 연석산(硯石山) 지명이 유래되었다. 여인이 베를 짜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베틀바위가 있고 시집을 온 각시가 거기서 베를 짜면서 피로와 외로움을 잊기 위하여 폭포 아래에 있는 소(沼)에서 목욕을 하였다는 각시소가 있다.
♤ 만항재(늦은목/765m)
전북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 정수암 마을에서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검태골 마을을 잇는 고개 길로 높이는 765m이다. 늦은 목 사거리, 우측 궁항리, 여기서부터 서봉까지 약 400m를 올려야 한다.
낮시간대라면 운장대에서 천반산을 찾아봤을 겁니다.
♤ 운장산서봉(雲長山西峰/독재봉/칠성대/1,120m)
일명 ‘독재봉’이라고도 하며 큰 암봉으로 되어 있고, 서봉 아래에 서얼출신으로 기축옥사를 기획했다는 정여립과 동시대인 운장 송익필이 은거하였다는 오성대가 있으며, 부근에는 북두칠성의 전설이 담겨 있는 칠성대(1,120m)가 있다.
♤ 운장산 칠성대 전설(雲長山 七星臺 傳說)
전라북도(全羅北道) 진안군(鎭安郡) 주천면(朱川面) 대불리(大佛里)에서 칠성대(七星臺)의 유래에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로 북두칠성의 일곱 성군이 진안 운장산에 내려와서 산의 암자에서 공부하던 선비들을 일깨워주고 갔다는 칠성대(七星臺)의 유래를 밝힌 이야기이다.
주요 모티프는 ‘칠성 하강’과 ‘선비들의 불도 귀의’이다. 칠성대(七星臺)는 운장산 정상을 이루는 상동, 동봉, 서봉 세 봉우리 가운데 서봉에 해당한다. 칠성대(七星臺)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이루는 명소로서 북두칠성의 일곱 성군이 여기에 내려와 선비들을 일깨우고 올라갔다는 신비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운장산 칠성대 전설’은 다양하고 풍부한 화소로 구성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천상의 존재인 칠성의 하강에 얽힌 신비담(神秘譚)을 독특한 자연 환경과 결합한 지명 전설로서 의의가 있다. 칠성 성군의 가르침에 따라 선비들이 불도에 귀의한다는 데서 불교적 주제 의식이 드러난다.
【전설】
전라북도(全羅北道) 진안군(鎭安郡)에 있는 운장산(雲長山) 깊숙한 골짜기에 옛날 절이 있었고 그 절에는 다만 주지 스님만이 절 앞의 산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어가며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깊은 산중에 손님이 찾아왔다. 그들은 불공을 드리러 온 사람도 아니고 불도를 배우러 온 사람도 아니었다. 모두가 미목이 수려하고 잘 생겼는데 망태를 둘러매고 있었으며 눈이 유난히 반짝이는 청년들이었다. 일곱 명이 일행인 이들은 주지에게 요기를 시켜달라고 하였다. 주지는, "나 먹을 밥도 없다."고 냉정히 거절하자 이들은 산위로 올라가 암자에 이르러 과거 준비하는 선비에게 이르러 밥을 주기를 간청하였다.
마침 저녁밥을 준비하던 선비는, "불공을 드린 다음 식사를 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며 불상 앞으로 불공을 드리려고 하였다. 그러자 일곱 명의 청년들은 화를 내며, "배고픈 사람의 사정도 모르면서 벼슬은 무슨 벼슬을 한다고!" 하면서 밥상을 지팡이로 내려쳤다. 선비가 놀라 뒤돌아보니 그들은 온 데 간 데 없고 자기가 공부하던 책도 없어져 버렸다 한다.
이들은 칠원성군(七元星君)으로 탐랑성군(貪狼星君), 거문성군(巨文星君), 녹존성군(祿存星君), 문곡성군(文曲星君), 염정성군(廉貞星君), 무곡성군(武曲星君), 파군성군(破軍星君) 등으로 북두칠성의 일곱 성군(星君)이었다 한다. 이들이 운장산 암자에서 공부하는 선비가 큰 동량이 되어 벼슬에 나갈만한 재질이 엿보여 그를 한번 시험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실망하여 선비를 혼을 내주고 하늘에 올라갔다고 한다. 선비는 그 후 자기의 모자람을 깨닫고 벼슬의 꿈을 버린 채 수도승이 되었다 하며 그곳을 칠성대(七星臺)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출처 진안군청 홈)
♤ 구봉 송익필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운장(雲長), 호는 구봉(龜峯). 아버지는 천문학관 사련(祀連)이다.
할머니가 안돈후(安敦厚)와 비첩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庶女)였으므로 그의 신분도 서얼(庶孼)이었다. 아버지 사련이 안돈후의 손자 처겸(處謙)을 역모자로 고변하여 안씨 일가를 멸문시켰다. 이 공으로 사련은 당상관에 오르고 부유해졌다. 그러나 죄상이 밝혀져 1566년(명종 21)에 안씨 일가에 직첩이 환급되었다. 따라서 송익필은 서얼인데다 아버지 사련의 죄로 인해 과거를 볼 수 없었고, 이후 출세의 길이 막히고 말았다. 과거를 단념하고 경기도 고양(高陽) 구봉산 밑에서 학문을 닦으며 후진을 가르쳤다. 이이·성혼·정철과 교유했으며, 무이시단(武夷詩壇)을 주도하여 당대 8문장의 한 사람으로 문명을 날렸다. 탁월한 지략과 학문으로 세인들이 '서인의 모주'라 일컬었다. 1584년(선조 17) 이이가 죽자 동인의 질시가 그에게 집중되었다. 동서의 공방이 심해지는 가운데 동인의 사주를 받은 안씨 일가에서 그의 신분을 들어 환천(還賤)시켜 줄 것을 제소했다. 1586년(선조 19) 마침내 그의 형제를 비롯해 일족 70여 인이 환천되었다. 이후 그는 김장생·정철·이산해의 집을 전전하며 숨어 지냈다. 이름을 바꾼 그는 황해도에서 복술가(卜術家)로 변신하고 부유한 토호들을 꾀어 호남에 있는 정여립을 찾게 만들었다. 그런 뒤 정여립이 모반을 꾀한다고 고변을 하여 1589년(선조 22)의 기축옥사를 일으키는 배후조종자 역할을 했다. 은인인 이산해가 궁중과 결탁해 세력을 굳히려 하자 시로써 풍자한 것 때문에 이산해의 미움을 사서 극지에 유배를 당하게 되었다. 1592년(선조 25) 유배중 임진왜란을 당해 명문산(明文山)으로 피했다가 면천에서 김진려의 집에 기식하다 1599년(선조 32) 66세로 객사했다. 그후 제자들이 신원소(伸寃疏)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751년(영조 27)에야 신원되어 통덕랑사헌부지평(通德郞司憲府持平)에 추증되었다. 학문적으로는 사변적인 이론보다 실천 윤리인 예(禮)를 통해 이(理)에 접근할 것을 중시했다.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은 그의 제자이다. 문학적으로는 시·문에 다 능해 시는 성당시(盛唐詩)를 바탕으로 청절(淸絶)했으며, 문은 고문을 주장하여 논리가 정연한 실용적인 문체를 사용했다. 〈제율곡문 祭栗谷文〉은 조선시대 23대 문장의 하나로 평가받을 정도이며, 〈은아전 銀娥傳〉은 당대로서는 보기 드문 전기체(傳記體)의 글이다. 저서로 문집 〈구봉집〉이 있다.
야간에 굳이 운장대에 다녀와야 하나 싶은 생각에 귀차니즘이 작동.... 패스~
♤ 운장산(雲長山,주줄산(珠崒山)/1,126m) / 사면봉
전라북도 진안군의 부귀면 황금리에 위치하며, 정천면 · 주천면과 완주군 동상면에 걸쳐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126m이다. 산 이름은 산중(山中) 오성대에서 은거하던 조선 중종 때의 성리학자 운장 송익필(宋翼弼)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지며, 19세기 중엽까지는 주줄산으로 불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호남지도』, 『해동지도』에는 '주줄산(珠崒山)', 『여지도서』, 『광여도』, 『1872년지방지도』 등에는 '추줄산(崷崒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진안지』에는 '주이산(朱伊山)'이라고 수록되어 있으며, "산이 높아 구름이 감돈다고 해서 운장산(雲藏山)이라 했다."고 하였다. 여기서 주이천은 주자천(朱子川), 이천(伊川, 즉 정자천)의 발원지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 및 응회암으로 된 지질로 이루어졌고, 노령산맥에 위치한 주봉으로, 정상 부분은 세 봉우리로 이루어진다. 동봉(東峰, 1,133m)은 주천면과 정천면의 경계가, 서봉(西峰, 1,120m)은 완주군 동상면과 주천면·부귀면의 경계가 되며, 중봉(中峰)은 운장산의 최고봉을 이룬다. 이곳에 측량을 위한 삼각점 기표석이 꽂혀 있으며 여기로 통하는 입구에는 예전에 산성을 쌓았던 흔적이 있다. 산의 서쪽 사면은 동상면으로 동상·대아저수지, 북쪽 사면은 금강의 지류인 주자천(朱子川), 남쪽 사면은 금강의 지류인 정자천(程子川)의 유역이 된다. 완주군과 진안군이 접경과, 동상과 대아저수지는 만경강의 상류이므로 운장산은 만경강과 금강의 분수계가 된다. 남한의 대표적 고원지대인 진안고원의 서북방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상에는 상봉, 동봉, 서봉의 3개 봉우리가 거의 비슷한 높이로 있다. 동쪽 10km 부근에는 같은 능선에 속하는 구봉산(九峰山:1,000m)이 있다. 서봉은 일명 독재봉이라고도 하며 큰 암봉(巖峰)으로 되어 있고, 서봉 아래에 오성대가 있으며, 부근에는 북두칠성의 전설이 담겨 있는 칠성대가 있다. 운일암(雲日岩)·반일암(半日岩)으로 유명한 대불천(大佛川) 계곡이 운장산에서 발원하는 주자천(朱子川)의 상류지역에 있다. 주변이 높은 산이 없는 평야지대이기 때문에 정상에 오르면 전망이 좋고, 물이 맑으며 암벽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 있다. 능선에는 기암괴석과 산죽(山竹)이 많으며, 북쪽 비탈면에서는 인삼과 버섯이 많이 생산되고 산허리에서는 감나무가 많이 자란다. 서쪽으로 동상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다.
♤ 운일암(雲日岩)·반일암(半日岩)
기암절벽에 옥수청산(玉水靑山) 천지산수가 신묘한 어우러짐으로 절경을 빚어낸 곳이 바로 운일암·반일암이다. 진안읍에서 북쪽으로 정천을 거쳐 24km를 달리면 주천면에 이르고 운장산쪽 주자천 상류를 2km쯤 더 올라가면 운일암.반일암의 장관이 시작된다. 운장산 동북쪽 명덕봉(845.5m)과 명도봉(863m) 사이의 약 5km에 이르는 주자천계곡을 운일암·반일암이라 하는데, 70여년 전만해도 깎아지른 절벽에 길이 없어 오로지 하늘과 돌과 나무와 오가는 구름 뿐이었다 한다. 그래서 운일암이라 했고, 또한 깊은 계곡이라 햇빛을 하루에 반나절 밖에 볼 수 없어 반일암이라 불리워졌다 한다.
운일암 반일암 28경은 제1경 와룡암(臥龍菴)·제2경 한천(寒泉)·제3경 백록담(白鹿潭)·제4경 조영지(鳥影池)·제5경 견우탕(牽牛湯)·제6경 텃골못·제7경 삼선탕(三仙湯)·제8경 명천(明泉)·제9경 중선 바위[僧立岩]·제10경 형제 바위[兄第岩]·제11경 천렵 바위·제12경 대불 바위[大拂岩]·제13경 옥폭연(玉瀑淵)·제14경 열두굴·제15경 만곡 바위[晩谷岩]·제16경 세불연(洗拂淵)·제17경 옥정연(玉鼎淵)·제18경 운일암 산장(雲日岩 山莊)·제19경 복룡암(伏龍岩)·제20경 용소·제21경 옥정봉(玉鼎峯)·제22경 취저암(吹著岩)·제23경 캠핑장·제24경 칠은산(七隱山)·제25경 태평 봉수대(太平熢燧臺)·제26경 노적봉(露積峯)·제27경 오성대·제28경 운장산(雲長山)이다.
서봉에서 내려가다 활목재에서 잠시 오르막길로 능선 하나를 더 넘어야 피암목재이고요. 활목재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알바입니다.
♤ 활목재(860m)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 있으며 높이는 860m이고, 독자동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이다. '궁항(弓項)'은 활목의 훈차 표기인 것으로 보인다.
내려서자마자 사유지라고 표식된 폐건물도 있고요. 도로 옆에 컨테이너박스에 매점이 있습니다.
심야시간대 통과라 주인장에게 전화번호와 운영시간대, 진열된 물품 등을 알아보진 못했습니다.
♤ 피암목재(55번지방도/운장산휴게소/동상휴게소/553m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과 완주군 동상면을 잇는 5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로 높이는 553m이며, 운장산휴게소(동상휴게소)가 있다.
♤ 복두봉((幞頭峰 / 1,018m)
진안군 주천면과 정천면에 걸쳐 있는 복두봉은 운장산과 구봉산의 중간에 있는 봉우리로 운장산의 북동쪽에 위치하며 산 아래로 구봉산이 늘어서 있다. 복두봉은 이름이 말해 주듯 한자로 두건복(幞), 머리두(頭)를 써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홍패(紅牌)를 받을 때 머리에 쓰던 복건으로, 복건을 쓰고 구봉산의 장군봉을 향해 엎드려 절을 하는 형상이라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상에는 집채만한 바위덩이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바위속에는 송장이 들어 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성봉에서 동쪽 호남알프스 능선으로 해가 뜨고 있네요.
♤ 성봉 (성봉산성/787m)
정맥길은 피암목재로 내려서서 다시 성봉으로 오릅니다.
성봉에는 둘레 약 4km, 680m 정도의 산성이 남아있어 성봉으로 불리며 축성시기와 연대는 기록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국방상 요지로 한국전쟁 때는 수많은 공비들이 만행을 저지르며 월성봉과 운장산, 대둔산을 오가던 길목이었습니다. 주천면 대불리 방향에서는 평범한 육산이지만 동상면 구수리 방향에서 보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암릉이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장군의 위용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세 봉우리를 성재산(城峙山)으로 부르며 통상적으로 성봉, 장군봉, 북장군봉으로 나누는데 장군봉보다 성봉이 높지만 산세나 조망을 따져 장군봉을 주봉으로 봅니다.
성봉 아래 밤목리 마을은 늦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산간오지의 마을입니다.
성봉은 사람이 살던 집터와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나는 샘터가 있다는데 샘터를 찾으면 좋겠네요.^^성봉 산꼭대기에 그 많은 돌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날라왔는지 신기합니다.
아직까지는 구수리마을로 장군봉이 소개되어 등산객이 찾고 있으나, 원인은 밤목마을로 가는 진입로를 방해하여 밤목마을로 가는 등산로를 이용하지 못한 때문으로 장군봉 산행은 밤목마을을 초입으로 잡으면 장군봉과 성봉을 한꺼번에 산행할 수 있습니다. 밤목마을에서 임산물에 손대는 등산객으로 인해 사유지 주인이 접근을 싫어하니 임산물에 손대지 맙시다.
장군봉에 올라 남쪽 지나온 방향을 바라보니 간밤에 통과한 운장산과 연석산이 훤합니다. 연석산에서 0.5km 만항재도 짐작되죠~
장군봉 정상에서 서쪽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완주군 고산면 대아리 저수지쪽 구수리 마당목... 맨 우측 봉우리라 운암산입니다.
첫번째 장군봉 정상석입니다.
멀게 느껴지지만 한발한발 가다보면,,, 여기서 대둔산 조망이 깨끗하게 나옵니다.
장군봉 오르내림이 초보산꾼에겐 매우 위험하겠더군요. 위험한 암벽길을 바라보며 저 보조물을 설치하지 않았을땐 어떻게 올라다녔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두번째 장군봉(북장군봉) 정상패입니다. 조망은 없습니다. 삼각점만 달랑~
두번째 장군봉을 지나고 용뜯어먹은바위(해골바위)가 제일 가까운 모양입니다. 사진으론 구경 많이 했고, 가파른 0.7km를 왕복해야~ 자신없어 그냥 갑니다~^^
♤ 장군봉(將軍峰/725m)
전라북도 완주군의 동상면과 진안군 주천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금남정맥 종주꾼들에게 일종의 통과의례 역할을 한다. 서쪽 물줄기는 고산천으로 만경강 수계, 동쪽은 주자천으로 금강 수계에 속한다. 진안 방면에서 완만한 경사이지만, 동상면 신월리 구수리마을 방향에서는 가파른 경사와 절벽이다. 장군봉의 정상은 암석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자바위, 두꺼비 바위, 해골바위(일명 `용 뜯어먹은 바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기암들이 존재한다. 지명은 병풍처럼 펼쳐진 암봉(巖峰)들이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장군의 형상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 운암산(605m)
금산군 진산면과 완주군 운주면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이치재(배티재)를 넘으면 고산을 지나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대아저수지가 있다. 일제시대에 쌓았는데 제방 규모가 꽤나 크다.
숨어 있는 보석같은 1급 명산, 전북 완주 운암산은 100대 명산은 고사하고, 200대, 300대 명산에서도 제외되어 있다. 명산 순위는 어떤 멍청이가 정하는건지 100대 명산, 200대 명산이 부질없는 허명(虛名)이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이렇게 보배같은 산이 이 정도로 알려지지 않기도 힘들텐데 신기할 정도다. 대아정에서 바라본 대아저수지는 물이 벙벙하고 산들이 싸안고 있어서 마치 그릇에 담아놓은 물인 듯하다. 산 또한 특이한 모습이다. 첩첩한 산인데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산마다 따로 자리잡고 있었다. 병력이 산을 타면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야 하기 때문에 그것도 가파른 산이라 이동이 지극히 어렵고 골짜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지형이다. 그런데 1950년 10월 중순에 국군 백골부대가 멋도 모르고 동상면 뒷산에 올라왔다가 골짜기로 내려와 매복하고 있던 빨치산 부대에게 큰 피해를 당하고, 그 후로는 경찰이 들어오지 못했다고 한다. 저수지 오른쪽 산너머에 남로당 완주군당이 있었고 가운데 보이는 산너머가 동상면이다.
♤ 칠백이고지(702m)
전북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 칠백이고지를 비롯한 충남 금산군 남이면에 위치한 서암산(西岩山)과 육백고지는 한국전쟁 때 수많은 국군과 애국지사들이 산화한 피로 얼룩진 비극의 현장이다. 1950년 9월28일 아군의 진격에 쫒겨 북녘으로 도망치던 괴뢰군 패잔병과 공산분자들이 육백고지와 서쪽으로 칠백이고지, 팔백고지, 느티골, 대활골, 피목리, 고당리, 싸리재, 왕사봉 등에 진을 친 본거지였다. 무기탄약까지 만들어 충남 금산군 전 지역과 논산, 전북 완주군과 무주군 등의 지역까지 출몰하였다. 그리곤 양민대학살, 식량과 가축약탈, 민가방화, 경찰관저 습격 등 천인공노할 만행을 일삼았다. 이곳을 무대로 준동하던 공비들의 총책은 소위 남조선 빨치산 총사령관은 이현상이었다. 그 휘하의 45사단 총참모장 길병래가 지휘하던 백두산부대, 압록강부대, 청천강부대, 한듬산부대, 외팔이부대, 나팔부대, 호랑병단인민학교, 인민병원, 남로당 완주. 금산. 논산군당 등 각부대, 괴뢰군 대위 전광순외 거물급이 통솔하는 2만 명이 집결하였다. 그리고 인접 대둔산, 운장산지역과 멀리는 덕유, 지리산을 거점삼아 출몰하던 공비들까지 합동작전을 지휘하던 막강한 세력으로 국내 치안을 교란했다. 아군과 경찰, 향토청장년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9·28수복과 동시 약 5년 반 동안 공비 토벌작전을 감행(11사단과 8사단 토벌사령부가 고산에 주둔), 수백회의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하였다. 충남도와 전북경찰대, 향토방위대, 국군 8사단, 화랑부대, 김화산부대 등이 합동작전을 전개하여 적사살 2,287명 생포 1,025명과 중화기 탄약등 다수의 전리품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진안고원에서 고산현, 왕궁을 통과 익산, 전주로 나가는 고개입니다.
♤ 싸리재(금강기맥분기점/690m) 진안에서 고산, 익산, 전주로....
전라북도 진안군의 주천면 대불리에 소재한 고개이다. 군의 주천면 대불리 웃진등(윗진등)과 서북쪽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사이의 재로 높고 가파르며, 싸리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이웃한 북동쪽 능선에 작은 싸리재가 있으며, 이 봉우리에는 태평봉수대(지방기념물 제36호)가 남아 있다. 봉수대가 산 정상부에 있으며 1595년(선조 28)에 태평산성(太平山城)과 전주감영에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해동지도』와 『1872년지방지도』 (용담)에 '유령(杻嶺)'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후에 '축령'으로 변음된 것은 싸리나무라는 의미의 '유(杻)'자를 '축(丑)'으로 잘못 읽은 것으로 추정된다.
금만봉, 오름 짧지만 제법 굵습니다.
♤ 금만봉(750m) /삼면봉
전북 완주군 동상면과 운주면 그리고 진안군 주천면의 경계에 있는 삼면봉이다. 진안 방향은 금강유역, 완주군 방향은 만경강 유역이다. 싸리재와 작은싸리재의 중간에 있는 봉우리로 금강과 만경강의 수계를 이루며 북서쪽 왕사봉으로 금강정맥이 분기한다. 이는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임을 착안해 작명한 것이다.
작은싸리재로 급다운하며 건너편 성재봉 오름이 걱정입니다만 이 또한 시간이 해결~^^
♤ 작은 싸리재(660m) 진안고원에서 논산, 대전, 부여로...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와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중리마을을 잇는 고개로 완주와 진안의 5일 장을 보러 많은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길이다. 장등마을에서 고당리까지는 6km가량 거리이다. 싸리나무가 많아 유래되었다. 일반적으로 ‘싸리재’하면 큰싸리재가 아닌 작은싸리재를 지칭한다. 작은싸리재는 현재 임도가 개설되어 있고 완주군 쪽은 시멘트 포장까지 되었다. 작은싸리재에는 두릅나무가 많다.
저 위에 나무로 가건물을 지으면 보루라고 봐야 되겠죠. 그런데 불을 피우는 원형의 봉수시설이 있었답니다.
대둔산도 가깝고요. 좌측으로 천등산도 보이고요. 진안 용담호도 잘 보입니다.
서대산도, 진악산도 시계가 멀리나가 눈이 밝으면 그 뒤로 천성장마까지 잡아보겠습니다.
내려서다가 뒤돌아 다시 잡아보았습니다.
여기는 방금 지나온 건너편 금만봉에서 왕사봉 702고지로 뻗어가는 금강정맥의 능선입니다.
운일암반일암이 있는 대불리 쪽이네요.
♤ 성재봉 태평봉수대(太平烽燧臺/824m) /봉화산/삼국시대 봉수대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31-2에 있으며, 전라북도 기념물 제36호이다.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무릉리와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접경지역인 진등마을에서 북서쪽으로 직선거리 1,200m 정도 떨어진 성재 봉우리(해발 824m)에 위치하고 있다. 이 봉수대는 백제 때에 처음 축조되었다고 전하며, 조선 중기 1595년(선조 28)에 태평산성과 전주감영에 신호를 보내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산봉우리에서 남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룬 자연 암반 위에 잡석으로 축조하여 남쪽이 북쪽보다 약 1m 정도 높게 쌓았으며 전체 높이는 4∼5m, 둘레는 32m 정도이다. 형태는 대체로 네모꼴에 해당하나 가장 윗부분의 한 변 길이가 동 9m 서 9.9m, 남 6.8m, 북 6.4m 정도로서 일정하지는 않다. 이 봉수대는 동남쪽의 장수군 장안산(長安山) 방면에서 승계하여 북서쪽의 완주군 탄현성(炭峴城)을 연결하는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는데, 봉수대가 자리하고 있는 이 성재는 삼국시대에 동쪽으로 진안군 용담면 성남리 산성이나 북쪽으로 탄현성(일명:쑥고개)과 연결되어 수도 방어의 요충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남쪽과 서쪽 벽이 훼손된 상태였으나 1995년에 거의 원형대로 보수되었으며 동쪽편의 돌계단도 보수 당시 만들었다. 그러나 석축 이외에는 봉화를 올리기 위한 어떤 시설물도 남아있지 않다.
♤ 신선봉(790m)
내리막으로 급좌틀합니다. 이름이 제일 특이하네요. 선야봉에도 신선봉이 있던데...
이름 때문에 여기에서 시산제를 지내는 경우도 왕왕 있나봅니다.
성치지맥을 하기위해선 진안군 주천면 무릉리 강촌마을로 버스를 이용해 게목재로 올라야 합니다.
♤ 성치지맥(城峙枝脈) /767m/ 삼군봉/ 빨치산들이 뛰어놀던 성치지맥.....
성치지맥은 금남정맥 백암산 신선봉(790m)를 조금 지나 육백고지 전 남쪽 765m봉에서 남동쪽으로 가지를 쳐 충남과 전북의 도경계를 따라 동쪽으로 분기하여 선봉(697m), 성치산(670.4m), 봉화산, 솔치, 성덕봉, 덕기봉, 소사봉을 끝으로 금강의 지류인 금산군 제원면 봉황천 두물머리에서 맥을 다하는 무주 금강 서쪽, 금산 봉황천 남쪽 분수령을 이루는 44.6km의 산줄기이다.
♤ 성치지맥 개념도
이곳 선야봉갈림길에서 도경계는 좌측 선야봉으로 가고 정맥꾼은 우측 금산군 남이면 백암산(600고지)으로 갑니다. 지나가며 볼 수는 있지만 나뭇가지때문에 선야봉을 사진찍기는 애매하네요.
♤ 선야봉(仙冶峰/758.7m)
전북 완주군과 충남 금산군의 경계에 솟아있는 봉우리다. 선야봉은 선치봉으로 잘못 불리기도 하는데 풀무야(冶)를 다스릴치(治)로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거나 녹이기 위하여 화덕에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는 기구를 풀무라 하는데, 조망이 최고인 정상의 북동쪽 신선풀무대에서 신선이 쇠를 달구느라 풀무질을 해서 선야봉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완주 피묵리 고당마을 주민들은 뾰족한 산세 때문에 촛대봉 또는 선녀가 마을 앞 계곡에서 목욕하며 놀았다는 의미로 선하봉으로도 불렀다. 선하봉 주변에는 선녀봉, 또는 선녀남봉 등 선녀와 신선에 관련된 지명이 많아 신령스러움이 묻어난다.
♤ 질재(백암마을재/헬기장/510m)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 백암마을에서 남이면 건천리 큰골을 잇는 고개로 백암마을 방향은 길이 뚜렷하다.
600고지라 불리는 백암산 조망도 굉장하군요. 대둔산입니다.
천등산입니다.
이 600고지를 두고 피아간 전투가 치열했던 사정이 짐작됩니다. 산이 험해 접근하기도 어렵지만 주변 모든 골짜기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감제고지 역할입니다.
♤ 백암산(白岩山/육백고지/654m)
충남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 대양리와 남이 자연휴양림이 있는 건천리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 백암산 정상 남동쪽 방면은 수십 길 바위벼랑이다. 그 아래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바위벼랑에 햇살이 비치면 하얗게 보인다고 해서 ‘흰바위산’으로도 불린다. 백암산은 서쪽에 솟은 서암산과 함께 이름이 말해주듯 바위봉우리로 매의 형상을 하고 있다. 산줄기는 한국전쟁 당시 전략적 요충지로서 산속으로 숨어든 빨치산과 이들을 격퇴하려는 군경 토벌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치러진 곳이다. 이 산에서 양측 모두 수많은 이들의 고귀한 생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에 있으며 높이는 654m로, 6·25전쟁 때 치열한 싸움이 있었던 600고지로 유명한 산이다.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에 있고, 대둔산에서 운장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속해 있다. 이런 지형적 여건으로 빨치산이 이곳을 중요 요새로 삼았고, 군경 합동 작전의 토벌 과정에서 양편 모두 2,500명 이상의 군인이 희생되었다. 이 전적을 기념하기 위해 산 아래에 육백고지전승탑과 충혼비가 세워졌다. 전승비에 군경 276명 전사, 빨치산 사살 2,287명, 생포 1,025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이 해방구 인민들을 사살하고 생포했겠지만 빨치산의 희생이 적지 않았던 격전지, 수많은 인민이 죽고 빨치산이 죽고 군과 경찰이 희생된 곳이다.
임도에 내려서서 이곳으로 다시 올라야 하는데 임도에서 600고지 충혼탑을 찾아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 마지막에 힘이 남았던지 어이없는 알바를 했네요.^^
♤ 백령성(栢嶺城) / 삼국시대 백제 석성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와 건천리에 걸쳐 있는 백제시대의 성곽이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83호. 길이 4,000m로 기록되어 있을 뿐, 연혁 및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 단지 김정호(金正浩)에 의해 1834년(순조 34) 간행된 ≪청구도 靑邱圖≫에는 ‘백자령(栢子嶺)’이라 하였다가 1861년(철종 12)에 간행된 ≪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에는 백자령 대신 ‘탄현(炭峴)’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백제말까지 신라의 영토였던 김천∼무주, 논산∼부여를 잇는 가장 가까운 길로서, 험한 고갯길에 축조한 산성이기 때문에 백제의 요충지(要衝地) 구실을 하였다. 660년(의자왕 20) 나당연합군이 침공하자, 충신 흥수(興首)가 백마강과 탄현을 지킬 것을 의자왕에게 건의하였으나 간신들에 의해 묵살되었고, 결국 그해 8월 사비성(泗沘城)으로 향하던 신라군에 의해 함락된 곳이 이곳 탄현이다.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으로 1990년 5월 24일 충청남도기념물 제83호로 지정되었다. 백제시대에 견훤이 남이면 대양리(大陽里)에 경양현을 설치하고 금산의 서남방면을 방어하기 위해 수축한 성으로, 6·25전쟁 때의 전적지인 백암산(白巖山)의 육백고지 전승탑 뒷산에 있다. 축조 당시에는 4km에 달하는 테뫼식 석축산성이었으나 현재는 서벽·남벽·동남벽 등 400m만이 남아 있다. 일부가 남은 백령성 안쪽은 넓은 산판길 같은 평지가 있으며 성 안에는 백령성지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6·25전쟁 때는 빨치산들이 전라북도 운주(雲洲), 충남 논산(論山)으로 왕래한 길목으로서 지금도 초소의 흔적이 있다. 백령성에서 능선을 타고 1km쯤 올라가면 산봉우리에 봉화대가 있어 진악산의 관양불봉 봉수대와 서로 교신했었다.
백령성은 남이면 건천리와 역평리 성치산(선치산(仙治山)/해발 759m) 동쪽 정상부에 있으며 둘레가 약 207m에 이르는 백제의 테뫼식 석성으로, 금산군 제원면과 추부면을 통하여 충북 영동과 옥천으로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는 산 정상 부분을 둘러 싼 테뫼식이며, 성벽의 동쪽, 남쪽, 북쪽은 대부분 허물어졌으나 서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다. 성벽의 너비는 4m이다. 유물로는 백제시대 각종 명문와를 포함한 다량의 기와편과 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김정호(金正浩)의 『청구도(靑丘圖)』에는 백자령(栢子嶺)으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탄현(炭峴)으로 나와있다. 금산군의 외곽성(外廓城)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쪽을 제외한 동, 남, 북쪽은 거의 허물어졌다. 서쪽 벽의 남은 상태를 보면 바깥쪽 벽의 높이는 5.8m~6.9m 이고 안쪽 벽은 2.3m~3m이며, 성벽의 너비는 4m에 이른다. 성내에서는 백제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이 발견되며 산봉우리에는 봉수대(烽燧臺)가 있어 진악산(進樂山)의 관앙불봉(觀仰佛峰)의 봉수와 서로 교신하였다. 특히 견훤(甄萱)이 완산(完山)에 도읍을 정하고 도읍 방어를 위해 이 산성의 아래에 있는 남이면 대양리에 경양현(景陽縣)을 설치하고 백령성을 다시 고쳐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백령고개 육백고지 참전공적비와 충혼탑 시설입니다.
백령고개 간이매점
버스는 하루 세번, 여기서 주로 히치하이킹으로 금산으로 나갑니다.
♤ 백령고개(栢嶺/잣고개/635지방도/360m)
잣고개 또는 육백령이라고도 불리는 이 고개에는 육백고지 전승탑과 백령성이 있으며 금산군 남이면과 진산면을 잇는 63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에는 ‘백령정’이란 정자와 매점이 있다.
금산터미널 뒤 식당에서 쇠주 한병에 가브리, 삼겹으로 급한 허기를 채웁니다.
배낭안에 군밤 100g, 치즈크래커 두 개가 남은 상태로 소태정휴게소에서 빵3개 도넛 1개를 보충 구입했는데 낮동안에도 걷는다는걸 계산에 넣지 못했습니다. 우와~ 마지막에 먹을게 부족해서 쪼개먹느라 신경써야 했습니다. ㅋ~~^^
첫댓글 금강정맥 길 후반에 천호(옆산)용화(앞산),미륵(뒷산) 집근처라 함 돌아봐야 겠군요 ~ 웅포 곰개나룻터도 나름 한적하고요 함라산도 .... 말씀대로 지도와는 달리 온통 차도로 끊긴곳이 쫌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라 지형이 머릿속에 잘그려짐니다
먼길 혼자서 고생하셨습니다 😊
진작 알았으면 중간 지원이라도 갔을텐데요 ~ 😊
말씀 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논산에 누님 살고, 아는 지인들도 많지만 불쑥 연락하기가 미안해서요.^^
퐁프렌드님 거침없는 발길 응원합니다
교통이 항상 힘들것인데..토요일날 뵈면 소주한잔하입시다
교통보다 힘든게 추위입니다.^^
잠깐 쓰러져 잘려도 추워서 눈이 떠지네요.
텐트, 오리털침낭은 버거우니
생존용 은박침낭에 핫팩 준비할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msr 1인용이 참 갠찮아보이던데요
추울때 따듯한차나 그리고 가볍게 음식정도는
또한 추울때 응용할때가 많던데요..
그리고 발열용 조끼 가벼운것도 하나의 대안일수있습니다..
짐이 무조건 가벼워야 합니다. 조금 적게 먹는건 괜찮아요.^^ 내려와서 얼마든 먹으니깐요.
금남.호남에 이여 금남정맥에 드셨군요.
항상 느끼지만 먹거리가 저래가지구 어떻게 산행을하나 싶습니다.
60km가 넘는 긴산행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 부뜰이운영자님!^^
이번엔 계산 착오로 둘쨋날 낮동안 먹거리를 준비치 못 했습니다. 그래도 있는 것으로 쪼개서 끝까지 허기지지 않고 갔습니다.^^
금남호남 끝내시고 금난정맥 도 진행하셨네요 ^^
수고 많으셨읍니다.
네! 무영객님, 생각대로 끊질 못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를 두 구간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마지막에 여유가 좀 남아야 백마강, 고란사, 낙화암 관광을 하는건데~
훔.
지나고 나니
이게 좋은듯 합니다.
칠장사 가기가 쉽지 않으니..ㅋ
칠장사는 한남금북에 있지않나요?^^
켁..
또
틀렸어요^,^
음주후 귀가중이라..
켁
죄송..
어여 줌세요^^
네~ 저는 오늘도 야근입니다~ 편히 쉬십시요.^^
대다나십니다 긴거리고생많으셧어요
항상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추위에 약하고 더위에 강한지라 겨울이 걱정되긴 합니다.^^
이번 모임 행사로 다소 늦게야 인사드립니다.
진행해 오시던 금호남 마무리하시고 금남길로 백령고개까지 진행하신 거군요.
홀로 박배낭 메고 거침없는 질주 모습 그려봅니다.
다음은 대둔산 구간이군요.~
이어지는 안전하고 기억남는 여정되세요.~
수고많으셨습니다.
박배낭은 무거워서 어려울것 같습니다.
현재 밤샘으로 진행하고 워낙에 졸리면 잠깐 길에서 쓰러져 쉬는 정도입니다.^^
대단하십니다 저는 어느해 겨울날~
백령재~피암목재구간을 힘에 겨워 야간산행까지 이어지면서 간신히 탈출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추억을 상기시켜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겨울에 그 힘든 장군봉 구간을... 저랑은 반대로 진행하셨네요. 고생하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