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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19. 3. 9.~10.(주말)
●산행지: 호남정맥4구간 (가인연수원~과치재)
●산행코스: 가인연수원-치재-용추봉-오정자재-강천산(깃대봉,왕자봉)-금성산성-광덕산-뫼봉-덕진봉-방축재
-88고속도로-고지산-봉황산-서암산-(설산)괘일산-무이산-봉래산-과치재
●준비물: 떡3종류, 감귤쥬스1.2리터1, 포카리900cc2, 약과2, 사탕
●거리: 약 52.67Km
●소요시간: 약 17.53h
●누구랑: J3클럽 정맥9차 종주대 (12명)
●회비: 10만원
●날씨: 7~10도, 비 후둑후둑 후두둑 후두두둑
●산행경과:
- 21:50 : 가인연수원
- 22:48 : 천치재
- 01:57 : 오정자재
- 04:27 : 강천산 왕자봉
- 05:27~05:50 : 금성산성 북문
- 06:53 : 광덕산
- 08:06 : 덕진봉
- 09:20~10:15 : 방축재 (순대국)
- 11:38 : 봉황산
- 12:42 : 서암산
- 14:14 : 괘일산
- 14:48 : 무이산
- 15:43 : 과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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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맞으며 호남정맥4구간 뛰었습니다.
장대비가 아니었기에 여간 다행이 아니었지요.
4구간 마치고 부상병동 식구가 늘었습니다. 이러다가 환자트가 되는건 아닌지요. ^ㅎㅎ^
화성인님이 덕진봉 내림에서 갑자기 장경인대가 아파 절룩거림에도 끝까지 완주하셨고,
파티마원장님도 서암산 급피치 오름에 무릎을 절으시네요.ㅜㅜ
올만에 복귀한 노루굴형님 체력소진으로 마지막 힘들어 하시고...
황금송형님(72세)은 2차 마치고 버스안에서 팔이 안 올라간다고 하시더니 한주 쉬시며 그 사이 목디스크 수술하고 나오셨습니다.
다리는 멀쩡하담서~
- 1구간: 33km (가인연수원~방축재)
- 2구간: 19.24km (방축재~과치재)
역시나 힘들게 꼬래비에서 악착같이 따라붙었습니다.
템포만 조금 늦추면 그런대로 쫒아가기는 하거든요.
전반보단 후반이 힘들고, 후반 중에도 마지막구간은 여간해서 끝을 바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순창시내 맥반석목욕탕 저울에 올라보니 76.6입니다.
지난겨울 운동 게을리하고 술자리 많이 가진 업보로 근육은 줄고 장거리 적응하기가 고되기만 합니다. ㅋ
일림산 철쭉에 맞춘다고 3월에 세번 뛴다니 엎친 데 덥친 격이네요. ㅠㅠ
우짜모 좋노?
고민에도 아랑곳 없이 뒤풀이 쌈밥 추가로 배터지게 포식하고 올라가는 중입니다.^^
주말이라 연수생들이 많은지 연수관에 불이 환합니다. 단체사진 인증샷하고 21:50경 출발!
큰부래기재(하늘재)를 지나고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치리에 있는 높이는 390.6m 산신산을 지나 치재로 향합니다.
큰부리기재는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답동리 신기마을과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치리 천치를 이어주는 고개입니다.
천치재(29번 국도/347m)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답동리와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치리를 잇는 4차선 29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피잿골 임도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연리에서 가마골 계곡과 갈라지는 임도가 기와가마터를 지나 용추사를 거치고 정광사 입구 삼거리 고개를 넘어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답동리(신 도로명; 가인로)로 연결된다. 정광사 입구 삼거리 임도 고개를 용추봉에서 치재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가로 질러간다.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연리 가마골 계곡에 용연폭포를 지나 용소가 있는데 가마골의 용소에서 황룡이 승천하다가 피를 토하며 떨어져 죽은 계곡이라 하여 ‘피잿골’이라 한다. 정광사 입구 삼거리 임도가 있는 지점에서 피잿골 계곡이 연결된다 하여 피잿골 임도라 하는 것 같다.
치재산(591m)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연리에 있으며, 높이는 591m이다. 가마골 최고봉으로 영산강 발원지인 가마골 용추폭포로 흘러내린 물이 담양호로 흘러들어간다. 가마골은 치재산과 용추봉 사이로 흐르는 10리 계곡이 아름답다. 용의 꼬리처럼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물도 깨끗하다. 용이 승천하는 형상을 갖춘 가마골 용소는 4단 폭포로 영산강의 발원지다. 용면 지명은 이곳에 있던 용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용연(龍淵)은 추월산 동쪽에 있는데, 사단이 있어 매년 춘추로 용에게 제사를 드린다. 날이 가물면 기우제를 지낸다."고 기록되었다. 용소(龍沼)는 용연리 가마골 치재산 자락 야영장 아래에 있는 폭포로, 1990년대 세운 '영산강 시원'이란 표지석이 서 있다. 용추봉 아래에는 백양사에 속한 용추사(龍湫寺)가 있고, 부도군을 지나서 내려가면 용연폭포가 2곳 있다. 용추사는 백제 성왕 때(526년)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태능 주지스님이 승병을 일으켜 금성산성에서 김덕령 장군과 합세해 일본군과 싸웠다. 일본군이 그에 대한 보복으로 절집에 불을 질러버렸다. 30여 년 뒤 태능스님이 주도해 다시 지었다. 6·25 때엔 빨치산의 근거지를 없앤다는 이유로 국군이 또 한 번 불을 질러 전부 태워버렸다. 지금의 전각은 1960년대에 다시 지어졌다.
비도 후득후득 떨어지고 담양호 멋진 전경도 까만 밤에 적셔지고 바삐 가느라 주전자봉을 확인 못했습니다. ㅠㅠ
용추봉(龍湫峰/560m)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연리에 있으며, 높이는 560m이다. 헬기장이 된 용추봉 좌측에는 회문산 아랫마을, 우측에는 가마골이 있다. 용추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지맥은 세자봉(700.9m), 사실재, 장군봉(780m), 회문산(830m)을 지나 구림면 일중리와 회문리에서 섬진강에 함몰되며, 추령천과 구림천을 가른다.
용에 얽힌 전설에 따르면, 옛날 풍류를 좋아하던 현령이 담양 고을에 부임해 구경하고자 관속들에게 예고령을 내리고 그날 밤 꿈을 꾸니 용소에 신령이 내일은 내가 승천하는 날이니 오지 말라 했다. 그 말을 저버리고 가마에 몸을 싣고 찾아와보니 못이 부글부글 끓으며 소용돌이 치고 황룡이 하늘로 오르다 인근 계곡으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용이 피를 토하고 죽었다 하여 그 계곡을 ‘피잿골’, 용이 솟은 못을 ‘용소’라 했다. 그 일대 계곡을 그릇 굽는 가마터가 많다 해 ‘가마곡’이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가마골’로 변해 불리우고 있다고 전해진다.
밤재(517m)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에서 오정자 삼거리와 월정삼거리를 거쳐 구림면을 잇는 21번 도로가 지나는 고개로 높이는 517m이다. 고개마루에는 용추봉과 세자봉을 오를 수 있는 들머리가 있으며, 용추봉에서 세자봉으로 가려면 이 고개를 가로 질러 가야 한다.
친일파 청산도 제대로 하지 못한 나라에서 분단의 설움도 안타깝거늘 그 그늘에서 자의도 아닌 동족간의 이념전쟁에 휩싸여 개죽음을 당해야 했던 민초들의 억울한 신원은 어느 누가 풀어줄 수 있을까요.
순창군 구림면 엽운산(여분산) 가마골, 용추봉에서 이어지는 여분산, 회문산 산줄기(빨치산 능선)... 1951년 전경대장 차일혁이 미군의 무스탕기 폭격을 지원받아 인민해방구가 조성되어 있는 빨치산 소굴 담양군 용면 가마골을 일망타진합니다. 이후 잔당 일부는 변산반도로 옮겨가 또한번의 소탕작적을 전개하고, 빨치산 전북도당사령부는 삼면이 섬진강으로 막아서고 있는 천혜의 요새 회문산에 자리하다 추후 성수산을 걸쳐 지리산 가까이 장안산, 백운산으로 이동하는데 백운산 골짜기에서 방(준표)사령관은 최후를 맞습니다.
오정자재(五亭子-/792번 지방도로/300m)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월정리와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연리를 잇는 2차선의 792번 도로가 지난다. 이 마을아래 순창군 구림면에 오정이란 마을이 있어 그렇게 불린것도 같고, 조선시대 선조(14대 임금)때 文化柳氏들이 처음으로 이곳에 정착할때 마을앞에 다섯 그루의 정자나무가 있었으며 이곳이 부촌이 될것이라고 예언해서 오정자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을 주위로 비닐하우스가 여려 동 차려져 있습니다.
비를 피하고 잠시 출출한 시각 먹거리를 보충하고자 체면 불구하고 몰래 스며들어 잘 이용하고 갑니다.
강천산으로 향하며 용추봉에서 갈래친 밤재-세자봉-여분산-깃대봉-신광사재-사실재-물넘어재-장군봉-회문산 능선도 가늠해 볼 수 있었는데 아쉬웠습니다. 뾰족한 장군봉 옆 회문산의 모습을....
경천산 왕자봉 가기 300m 깃대봉쪽으로 무이지맥이 갈래칩니다.
*무이지맥
무이지맥은 호남정맥 강천산 왕자봉 부근 능선 분기점 삼면봉(순창 팔덕, 구림, 담양 용면)에서 깃대봉 방향으로 분기되어 무이산, 괴야우재, 노령(암치), 멧지봉, 용마산, 갈광산, 건지산, 장덕산, 물통고개, 대동산을 걸쳐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의 외이마을앞 경천이 섬진강에 흘러드는 합수점까지 이어지는 거리 약 30.3Km의 마루금이다.
이 산줄기의 북쪽과 동쪽에는 구림천, 심초천 등이 섬진강으로 흐르며. 이 산줄기의 남쪽에는 경천천, 양신천 등이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강천산 왕자봉(剛泉山 王子峰/584m)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에 있는 산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과 전라남도 담양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583.7m이다. 순창읍에서 10km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강천산은 깊은 계곡과 맑은 물, 기암괴석과 절벽이 어우러져 "호남의 소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도처에 기봉이 솟아있다. 연봉 중에서 제일 높은 초지의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사방이 트여 회문산, 고라봉, 동악산, 설산, 추월산 등을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라남북도의 경계를 이루면서 서로 산성산(山城山:603m), 남으로 광덕산(廣德山:565m)과 능선으로 이어내린 산릉의 굴곡이 묘미가 있다. 원래는 생김새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용천산(龍天山)이라 불렸으며 한국 산수의 전형을 보여주는 산이다.
호남정맥에 속하며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 이다.
1981년 1월 7일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순창군)으로 지정되었다. 비교적 높지는 않지만 병풍바위·용바위·비룡폭포·금강문 등 이름난 곳이 많다.
또 광덕산·산성산에 이르기까지 선녀계곡·원등골·분통골·지적골·황우제골 등 이름난 계곡만도 10여 개나 된다. 세 산의 사이에서 발달된 계곡과 주변에는 아름다운 강천 제2호를 비롯하여 설담과 뇌암이 수도하였다는 수좌굴, 강천산과 광덕산을 연결한 길이 50m에 이르는 현수교[구름다리]가 놓여 있다.
산 암봉 아래에는 887년(신라 진성여왕 1)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세운 강천사가 있는 강천계곡은 단풍나무가 많아 11월 초순이면 애기단풍이 곱게 물들어 절정을 이루며, 또한 50m 높이에 걸린 구름다리는 아찔한 재미를 더해준다. 이 곳의 석탑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92호로 지정되었고, 절 입구의 모과나무는 전라북도기념물 97호이다.
조선조 중종 10년 폐비 신씨의 복위를 위해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유옥이 직인을 소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상소를 올렸다는 자리에 세워진 삼인대(三印臺:전북유형문화재 27), 강천사, 병풍바위, 신선대 등 수 많은 명소가 곱디고운 단풍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그 밖에 금성산성(金城山城:전북기념물 52) 등의 문화유적이 있다. 내장산(內藏山:763m)·백양사(白羊寺)·담양댐 등과도 가깝다.
깃대봉을 다녀와 왕자봉을 갈까말까 쭈뼛거리다 꼬랑지를 잡는 바람에 형제봉 삼거리에서 금성산성 향하는 줄기를 혼자 걷습니다. 다행히 이쪽 지리는 예전 금성리에서 서문을 통과하여 시루봉으로 한바퀴 돌아 강천사 주차장으로 향한 산행경력이 있기에 공부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형제봉삼거리에서 구장군폭포로 내려가 임도를 따르다 광덕산에 오르면 2시간은 절약할 수 있는데... ㅋ 북문에 도착하기 전 제 뒤에는 대대장님 오시고 선두 꼬랑지 노송님과 황금송님을 바쁘게 따라잡습니다.
산성산(山城山/연대봉/598m)
전라북도 순창군의 순창읍의 서쪽 팔덕면 청계(淸溪)리에 위치하며, 담양군 금성면과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603m). 순창군과 담양군 사이에 금성산(金城山)이 위치하고, 이곳에 있었던 산성에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담양)에서는 "금성산에 고성(古城)이 있는데, 둘레는 1,804자이며 안에는 시내가 1곳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명은 금성산의 다른 명칭으로 산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팔도지도』에 순창읍치의 남서쪽에 금성산성이 지명과 함께 여장이 산 능선부에 비교적 상세히 그려져 있다. 금성산성은 무주의 적상산성과 장성의 입암산성과 더불어 호남의 3대 산성으로 불린다.
금성산성(金城山城/담양)
금성산성(金城山城)은 전남 담양군 금성면에 소재한 삼국시대 성곽으로 전라남도 장성의 입암산성, 전라북도 무주의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 3처산성(三處山城)으로 불렸다. 금성산성은 부여와 담양에 각각 있다. 삼국시대에 처음 쌓았고, 조선 태종 9년(1409)에 고쳐 쌓은 후 광해군 2년(1610)에 보수공사를 하면서 내성도 함께 만들었다. 광해군 14년(1622)에는 내성 안에 관청을 건립하고 효종 4년(1653)에 성 위의 작은 담(여장)을 수리하면서, 전반적으로 성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산성산(해발 603m)에 축조된 포곡식 산성으로 산 가운데가 분지 형태로 돼 있어 바깥에서는 성안을 볼 수 없는 천혜의 요새적 지형을 갖추고 있다. 산성은 천혜의 절벽과 산세를 이용해 돌로 쌓았는데, 지표조사 결과에 의하면, 외성과 내성의 2중성으로 되어 있는데, 외성의 둘레는 2㎞, 내성의 둘레는 859m, 성벽의 길이는 약 6.5 Km로 연대봉과 철마종, 시루봉 등 산봉우리를 따라 이어져 있는데 방어력이 뛰어나 병사 한 명 없이도 지켜지는 곳이 산성의 30%에 이를 정도다. 성곽의 높이는 3m 이내이며, 성벽에 사용된 돌은 화강암 이외에 특이하게도 주변에서 산출한 점판암을 사용하였다. 문터는 본성에 동서남북 4곳이 있고, 내성 2곳, 외성 1곳 등 모두 7곳이 있다. 4대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통로로 사용되었던 것은 서문인데, 서문과 동문에는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서문 남쪽에는 성벽을 3m 정도 터내서 만든 대형 수구(水口)가 있다. 건물터는 모두 16곳이 확인되었다.
요새로서의 빼어난 위치 때문인지 금성산성은 많은 싸움을 겪어왔다. 고려 시대에는 몽고군에 맞서기도 했으며, 조일전쟁 당시에는 의병의 거점으로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군과의 전투도 있었다. 1237년(고종 34)에 ‘백제도원수(百濟都元帥)’이라고 하면서 봉기한 이연년(李延年)이 담양군과 원율현(原栗縣) 을 거점으로 세력화하고서, 산 속에서 무리를 불러 모아 촌락을 노략질하였다. 당시 이들은 원율현에 위치한 금성산성을 활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이전인 1256년(고종 43)에는 몽골의 차라대 군대가 담양에 주둔하였는데, 이 때 금성산성은 담양, 광주 등 주변 지역민의 입보산성으로 기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성산성(사적 353호)에 대한 역사 기록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1380년(고려 우왕 6년) 왜구에 대비해 ‘금성(金城)’을 만들었다고 되어 있고 그 후 ‘금성산성’이라는 명칭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1410년(조선초 태종) 전라, 경상도의 12개 산성이 수축된 기록 속에 나온다. 이후 임진년에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가 이뤄지면서 1653년(효종 4)에 병영기지로의 모습을 갖췄다. 이때부터 장성 입암산성(立岩山城) 무주 적상산성(赤裳山城)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으로 불리게 된다. 동․서․남․북 4개의 성문터가 지어졌으나 현재는 동․남․북문터가 남아 있다. 입구에 남문지를 두고, 북문은 순창군과의 경계선에 있다. 문루는 외남문과 내남문이 남아있다. 외남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누각이고, 내남문은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얹은 중층누각이다. 내성 안으로는 마을을 형성할 만한 넓은 평야지대가 있어, 1688년(숙종 14) 에는 성내에 136호의 주민이 살았으며 근처 담양·순창 등에서 거둬들인 군량미가 1만2천석이나 되었다고 전해진다.
동학운동(1894) 때 건물이 많이 불타 없어지고 폐성되어 현재는 동·서·남·북문의 터가 남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성 앞에는 국문영 장군의 비석이 남아 있다. 산성산으로도 불리는 금성산 줄기의 해발 350∼600m 능선에 쌓은 산성이다. 길이가 3km에 가까운 큰 규모로, 1380년(우왕 6) 9월 왜구가 남원성을 공격하고 운봉현을 약탈한 뒤, “광주의 금성(金城)에서 전마(戰馬)를 배불리고서 북상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금성’은 금성산성으로 보인다. 산성의 규모가 큰 것으로 보아, 안으로 들어와 보호를 받는 입보용(入保用) 산성으로 사용되었을 듯하다.
1994년부터 성곽복원사업이 시작돼 외남문, 내남문, 서문, 동문이 복원되어 외남문은 보국문으로 내남문은 충용문으로 명명되었다. 2010년까지 약 7,000m가 넘는 성곽 보수를 비롯해 동헌 등 관아 시설, 대장청 등 군사 시설, 민속촌 등이 조성된다.
시커먼 담양호를 가로질러 멀리 추월산 8부능선 희미하게 보리암의 불빛을 확인 가능한게 그나마 보이는 것의 전부일 정도로 적막에 감싸인 금성산성 북문 누각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또 한번의 요기를 합니다. 이번엔 금성산성의 동쪽면 산성을 따라 시루봉으로 향합니다. 구장군폭포로 빠지는 길이 두 군데나 있군요.
광덕산(廣德山/564m)
전라북도 순창군의 팔덕면 청계리에 위치하고 담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고도:564m). 1981년 전국에서 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고시지명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강천산으로 주로 부른다. 한때 용천산으로도 불렀다. 이는 산세가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형상이라 하여 유래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광덕산은 군의 서쪽 3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유래가 오래된 지명임을 보여 준다. 『대동지지』에는 "강천산(剛泉山)의 다른 이름을 갖는다."고 묘사되어, 하나의 산이면서 둘의 이름을 붙인 모습이다. 『청구도』에는 '광성산(廣城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산록에 강천사(剛泉寺)가 세워졌는데, 예전에는 복천사(福泉寺)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다소 기복(祈福)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광덕산 직전 구장군폭포 빠지는 임도길 폐헬기장에서 이마에 전기를 끕니다.
정상 직전 순수짱대장님 시그널이 다음 구간을 가르키고 있네요.
정상에서 급커브를 돌리는가 싶었는데 다녀와야 했습니다. 전에 광덕산에서 구장군폭포로 내려설 때에는 어느 산악회에서 미나리삼겹살을 굽구계셔 한입 얻어먹었는데 그 향기가 아직도 입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ㅎㅎㅎ
뫼봉(332m)
덕진봉 바로 직전에 있는 332m봉을 뫼봉이라 한다. 이 봉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의는 강천산의 무이단맥 갈림길에서부터 지금까지 따라오던 순창군 팔덕면을 버리고 이제부터는 금과면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봉우리가 삼면봉이 된다는 의미이며, 여기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하면 히여태재를 지나 아미산(516m)을 거쳐 동산을 직행하는 약 8Km의 아미단맥이 된다.
덕진봉(德津峰/384m)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덕성리에 있으며 높이는 384m이다. 정상에는 케른 1기가 있다. 전라북도 순창군과 전라남도 담양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계속 한쪽발은 담양에 한쪽발은 순창에 디디고 진행합니다.
무이지맥을 하신 분의 후기를 보니 바라다보이는 덕진봉이 이 지역에 예사롭게 홀로 솟아있는 뾰족봉이네요. 그저 아무 생각없이 겁없이 앞만 보고 올랐습니다.^^
방축재(防築-/140m)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방축리에 있는 고개에는 정맥 안내도가 있으며, 24번 국도가 지난다. 전라남도 담양군과 전라북도 순창군의 경계가 되는 지점이다. 방축리는 서쪽에 덕진봉(德進蜂, 380m)이 있고 그 아래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서쪽은 높고 동쪽은 낮은 지형이다. 방죽골, 전자촌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방죽골이라 부르던 것이 제방을 쌓아서 마을이 형성되었기에 방축리라고 하였다 한다. 그러나 제방을 쌓은 곳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방죽을 막을 만한 위치가 못되며 설사 방죽을 막았다고 하더라도 방축(防築)이란 말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마을의 형상은 쪼그리고 앉은 쥐를 삽살개가 쫓으려 하는 모양(尨逐 鼠)의 준말로 방축(尨逐)이라 하였던 것인데 한자 표기하면서 방축(防築)으로 기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尨: 삽살개방
- 逐: 쫒을축
- 鼠: 쥐서
방축리 앞 24번 국도를 따라 담양 쪽으로 조금만 가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나온다.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는 원래 중국이 그 산지이나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개량이 되었고 담양군에서는 1970년대 초반 전국적인 가로수 조성 사업 당시 내무부의 시범가로로 지정되면서 학생들을 동원해 3~4년짜리 묘목을 심은 것이 지금은 하늘을 덮고 있는 울창한 가로수로 자라난 것이다.
나름 공부를 하고 갔는데,,, 역시 현지에서의 확인작업이 중요합니다. 방축판서의 줄임말이로군요.
지형이 자리한 형상이 평야지대 담양에서 산촌마울 순창으로 이어주는 고갯길이라 이 고개를 통해 알게모르게 많은 농산물이 오고갔다는 이야기로 해석합니다.^^ 담양군은 삽살개의 입장이 되어, 순창군은 곡식을 얻는 쥐의 입장이 되어....
88올림픽高速國道
영·호남을 직통으로 연결하여 국민 화합과 번영을 상징하는 뜻에서 88올림픽고속국도로 명명되었다.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까지 연장 183㎞, 왕복 2차선(부분 4차로, 6차로)으로 최초의 시멘트 콘크리트 포장도로이다. 총 공사비는 2,039억 6900만 원이 투입되었다.
푸바총무의 탁월한 트랭글 독도로 서목마을을 사이에 두고 고속도로를 오고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해 지름길을 따르다 고지산을 향해 오르는 길을 향합니다.
고지산(316.9m)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늑곡리 산 24-5에 있으며 높이는 316.9m이다. 정상에는 2등 삼각점(순창22)이 있다.
이목고개(159m)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목동리 이목마을에서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봉서리 비내동마을을 잇는 고개이다.
봉황산(鳳凰山/235.5m)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봉황리에 있으며 높이는235.5m이다. 밋밋한 공터로 삼각점(순창453, 81년 재설)이 있는 능선 분기봉이다. 봉황산을 중심으로 금괴면 목동리가 일목리와 이목리로 나뉜다. 마루금은 해발 100미터대의 야산과 논두렁과 밭두렁으로 희미하게 이어지며 봉황산 역시 마을 뒷산에 불과하다. 호남정맥 전 구간에 걸쳐 가장 낮은 구릉으로 이어지는 봉황산 구간이다.
일목고개(156m)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목동리 일목마을에서 봉황제를 거쳐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봉황리 가라실 마을을 잇는 고개로 도로포장이 되어있다.
서암산(瑞巖山/455m) - 전남 담양군 금성면 봉황리
전남 담양에 위치한 풍경 좋은 서암산이다. 이곳에서는 북쪽으로 금성면의 드넓은 들판과 그 뒤를 가로막고 있는 추월산, 용추봉, 산성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의 산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서암산에서 직진하면 고비산(462.9m)을 지나 남산(233m)으로 진행하다 오례천에서 그 맥을 다 하는 즉 담양군 무정면과 금성면의 면계를 따라 진행하는 약 8.3Km의 고비단맥이다.
뾰족하게 솟은 수암산 봉우리를 쳐다보며 과연 저기를 오를것인가 말것인가? 내심 긴장하게 만들었던 노파심이 현실로 나타난 수암산입니다. 오메~~ 다들 이번 구간 최고의 진상이라며 치를 떨었던 막상 올라가면 수풀에 가려 조망은 그리 신통치 않다는 것에 실망, 혀빼물고 올랐는데 에게게 고작 455m 라는데 또 한번 실망^^
정상 사진은 까치님 협찬입니다. 저는 트랭글 뱃지만 확인하고 목전에서 힘에 겨워 하산...
서흥고개
순창 청룡리와 담양 서흥리를 잇는 고개로 동네 이름을 차용하여 고개 이름을 지었다. 전라남도의 서흥리 방향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으나, 전라북도의 청룡리 방향은 포장이 안되어 있다.
민치(民峙=민재)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청용리에서 전라남도 담양군 무정면 서흥리 자동마을을 잇는 고개이다.
5만분의 1 지형도에서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경계를 계속 따라오던 마루금은 설산 삼거리에서 온전히 전라남도의 영역으로 접어든다.
설산(雪山/553m)
설산은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과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설산은 곡성8경 중 하나로 낙조가 유명하다. 책을 층층이 쌓아놓은 것 같은 기암괴석으로 정상부가 이루어져 있어 매우 험할 것 같지만 보기와는 달리 등산로가 아주 잘 나 있어 누구나 쉽게 산행할 수 있는 산이다. 설산은 곡성군의 북서쪽 끄트머리에 있어 북으로는 전북 순창과 경계를 이루고 서로는 담양과 경계를 이룬다. 설산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동악산 일출에 이어 곡성 팔경의 두 번째로 꼽힌다. 설산은 멀리서 보면 정상부 바위가 눈이 쌓인 듯 하얗게 빛나 설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정작 두 산의 바위가 한눈에 들어오는 설옥리에서 바라보면 괘일산의 암벽이 더 두드러진다.
설산에서의 조망을 감상하고 전라남북도를 나누는 경계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잠시 정맥길을 버리고 설산삼거리에서 설산에 올라 금샘을 걸쳐 괘일산방향으로 향하는 산길을 따릅니다. 선두 대대장님, 청명님, 푸바, 까치님... 몇 분만 선발대로 다녀옵니다. 힘들게 얻은 사진 아낌없이 공유해주신 까치님 협찬 사진입니다.^^ 아래는 괘일산방향에서 바라본 설산의 모습입니다.
괘일산(掛日山/455m)
전라남도 담양군의 무정면 서흥리와 곡성군 옥과면 설옥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괘일산 정상부에서는 동서남쪽의 조망이 시원스럽다. 동으로는 섬진강의 본류가 적시고 지나가는 곡성의 너른 벌판과 그 너머 지리산의 웅장한 산세가 아스라하고, 서쪽으로는 담양읍의 벌판과 그 너머로 이제껏 지나온 추월산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이제 가야 할 능선이 굽이굽이 이어지고, 멀리 봉긋한 원추형의 무등산이 산등 너머로 설핏 보인다. 금성산성에서 남쪽 설산으로 내려서는 호남정맥에 위치하며, 영산강과 섬진강 수계의 분수령이다. 괘일의 뜻은 해를 받아 걸어 놓는 것으로 풀이하나, 의미는 생김새가 판자 같은 바위를 층층으로 얹어 놓은 것으로 이해된다. 옥과현에서 중시하는 산이다. 족자동에서 동쪽으로 가파르게 오르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고, 옥과로 넘는 고개는 개산재와 고갓재였다. 괘일산(掛日山)은 전남 담양군 무정면 서흥리와 곡성군 옥과면 설옥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산 서쪽에 정석제(貞石堤)가 있다.
괘일산 한자 그대로의 뜻풀이는 해를 걸어놓는다로 해석되지만 직접 보면 역시 거대한 암벽에 금이 간 형상으로 층층이 겹쌓여져 있는 모습이 바위가 바위를 괴고 있는 산으로 보는게 더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사진은 케이대장님과 노송형님 그리고 까치님 협찬입니다. 저는 부담을 줄이려 바삐 가는 바람에 트랭글 진동만 확인...
삼봉재
전라남도 담양군 무정면 정석리에서 정석제를 지나 서흥리 자동마을을 거쳐 곡성군 오산면 운곡리와 옥과면 설옥리를 잇는 고개이다.
무이산(武夷山/305m)
전라남도 담양군 무정면 서흥리에 있으며 높이는 304.5m이고, 정상에 4등급 삼각점(순창453)이 있다.
운곡재
전라남도 담양군 무정면 동강리와 곡성군 오산면 운곡리를 잇는 고개이다.
모든 구간이 다 그러하지만 이 구간의 진검승부 또한 무이산 이후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끝이 어디에 있는지 가도가도 또 산이 나오고 또 길이 나오고.... 마지막 한시간이 "일각이 여삼추"로 느껴졌답니다.
노루굴형님 올만에 복귀하셔서 따라붙느라 마지막에 체력이 후달려 고생하시고 언제나 노익장을 과시하시는 노송형님, 황금송형님 수고 많으셨고, 아직 많이 남은 구간 재미를 살려 팀원끼리 즐겁게 이어가는 9차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과치재(果峙/13국도/130m)
전라남도 곡성군의 오산면 연화리에서 담양군 무정면 오례리 오례원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대동여지도』와 『1872년지방지도』에 설산에서 이어지는 무이봉에서 연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있는 재로 표시되어 있다. 옥과현과 담양군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현재는 호남고속도로와 13번,15번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피잿골 임도를 따라 용추사 내려가는 고개에서 만지작거리다 나중에 트랭글이 멈추었다는 걸 알았네요. ㅠㅠ
이번 구간도 여러 선배님들의 산행기를 읽고 참고하였습니다.
`산 길 따라 발걸음` 청산 선배님 산행기 많이 참고하였네요. 감사하게 잘 읽고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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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중에 목표산행 구간 마무리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정맥중에 유난히 명산 즐비하고 아기자기함으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용추봉, 강천산, 광덕산, 괘일산, 설산 등등...
다시 들어도 정겨운 이름들입니다.
아픈 부위는 많이 완쾌되셨는지요?
악조건 속에서도 무탈히 마무리하신 분들께 축하의 말씀 전합니다.^^
네 방장님~
정맥길을 걷지않고선 만나기 쉽지않은 명산들입니다.^^
이제 날이 풀렸으니 운동도 재개하고 무엇보다 포식하는 음주습관을 줄여보고자 합니다.^^ 지금 제 나이에서 술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게 따져보니 많지 않네요. ㅋ
수고하셨습니다~
우중 산행이 었내요~
저도 9~10일 봉수지맥을 종주했는데
비온다는 일기예보에 바짝긴장했었는데
어차피 산행가서 후회하자 하고
가서 종주하는데 비는 안내리더라구요~
휴~천만다행~
아무쪼록 항상 안산을 발원드립니다~()()()
지맥하시는 홀대모 모든 선배님들께 다시 한번 대단하시다는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법광선배님~^^
수고 많으셨읍니다.
조만간 가봐야 할길인데..
참고 하겠읍니다. ^^
도움이 된다면 후기를 남기는 보람입니다..^^
저는 말없이 산과 대화하는 혼자가 좋습니다.^^
텃새가 심한 곳에서 나 건들지마! 했더니 주류에 편들어야 살아남는다는 본능에 충실한 분들이 많네요~^^
대충 들었읍니다..ㅎ
인간관계는 항상 상대적인 것이라..
이걸 뛰어 넘으면 성인과 동격 인지라..ㅎ
ㅎㅎ~^^
어울리는거 싫어합니다. 시끄러운것도 싫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