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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1. 7. 4.~ 5.(일,월) - 음력(5. 25~26.), 일출 05:09~일몰 19:45
●산행지: 덕산지맥 1구간(새신마을-위동재)
●산행코스: 신내골(새골)-덕산지맥분기점-959.7m봉-909m봉-934.8m봉-뚝심봉(960.2m)-931m봉-영양터널-폐헬기장(885.1m)-삼각점봉(830.2m)-칠밭목/오미고개-일월지맥분기점-일월산 왕복-일월재-횡악분맥갈림봉-구멍바위(1,062m)-1,054.3m봉-1,011.5m봉-동화재-장수바위-다래바위-대문바위-비조암-삼각점봉(816.1m)-단양우씨묘-653.9m봉-설매재-751.8m봉-수리봉-성황당고개-행화봉-덕산봉-서낭당안부-행전봉(618m)-논골재-삼군봉(591.3m)/청량분맥갈림봉-지통말고개-591.4m봉-삼각점봉(597m)-601.9m봉-장갈재-530.7m봉-장갈령/영등지맥분기봉-삼각점봉(580.9m)-삼각점봉(545.9m)-523.6m봉-물무덤골재-540.3m봉-돌메기재-포대봉-금수천임도-원시미임도-위동재
●먹거리: 생수2.5리터, 빵2(호떡빵), 양갱2, 단백질바2, 핫브레이크, 홀스2, 사탕5, 알마겔3
●준비물: 봄잠바, 스틱, 헤드랜턴,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마스크3, 충전지2, 충전짹, 손수건, 면수건, 휴지, 물티슈, 스패츠, 팔토시, 말방울, 전지가위, 비닐우의, 은박매트, 안대, 귀마개, 머리띠, 양말, 여분의류, 띠지41
●거리: 약 45.54km
●소요시간: 27.18h
●누구랑: 나홀로
●경비: ktx25,100, 시외버스8,800, 아점7,000, 택시30,000, 택시18,100, 식사10,000, 고속버스22,200, 뒤풀10,000
●날씨: 19~29, 첫날 흐리고 둘쨋날 구름 많음
●산행경과:
* 7. 4.(일)
- 11:46 : 새신마을
- 12:33 : 뚝심봉(934.8m)
- 14:34 : 칠밭목/오미고개
- 15:18 : 일월지맥분기점
- 15:26 : 일월재
- 15:43 : 횡악분맥갈림봉(1,043m)
- 16:26 : 동화재
- 16:37 : 비조암
- 17:43~57 : 설매재, 물 보충
- 19:25~35 : 수리봉(716.6m)
- 20:09 : 행화봉(745.6m), 18.55km
- 21:01 : 덕산봉(690.3m), 20.44km
- 21:19 : 서낭당안부사거리
- 22:12 : 논골재/ 산불감시초소, 버스정류장
* 7. 5.(월)
- 04:28 : 논골재
- 05:01 : 삼군봉(591.3m, 청량분맥갈림봉)
- 06:07 : 591.4m봉
- 06:20~35 : 지통말고개, 물 보충
- 08:55 : 장갈재
- 09:46 : 장갈령(565.9m, 영등지맥분기점)
- 09:50 : 장갈령 직후 임도
- 11:10 : 523.6m봉
- 12:08 : 521.2m봉
- 12:55 : 돌메기재/ 직후 임도
- 13:38 : 포대봉(550.6m)
- 14:31 : 한바우앞산/ 원시미임도
- 15:38 : 위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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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구간거리
신내골(새골)입구-3.6km-덕산지맥 분기점-9.9km-일월지맥 분기점-일월산 정상 왕복(3km)-1.8km-동화재-11km-덕산봉-3.8km-논골재-7km-장갈재-2km-장갈령-7.7km-돌메기재-3.8km-위동재-6.1km-뱃티재-3.8km-금댕이재-4km-땅골재-6.4km-광산재-7.1km-관재-7.2km-반변천(좌)
* 구간거리
- 신내골(새골)~논골재 35.1km(접속 3.6km, 일월산 왕복 5km 포함)
-. 덕산지맥분기점~일월지맥분기점 9.9km
-. 일월지맥분기점~일월재 0.5km
- 일월재~논골재 16.1km
-. 일월재~덕산봉: 12.3km
-. 덕산봉~논골재 3.8km
- 논골재~위동재 20.5km
-. 논골재~장갈령 9km
-. 돌메기재~위동재 3.8km
* 식수보충 및 사전 정보
- 수비(발리) 개인택시: 054-682-9595
- 일월산: 왕복 5km, 약 1.50h, (월자봉 왕복 1.5km)
- 설매재: 좌측으로 내려서서 골짜기에 물, 비온 뒤라 가능함.
- 논골재: 직전 마루금 우측 논골마을 식수보충, 논골재에서 주실마을 방향으로 20분 내려가면 인가
- 논골재 대중교통: 영양→재산 07:50, 12:25, 17:25, 재산→영양 08:45, 13:30, 18:20
- 재산면 개인택시: 054-674-0055(15,000원)
- 지통말고개: 우측으로 내려서면 계곡에 물, 비가 온 직후인지라...
- 금수천임도 삼거리: 임도 좌측 대도농장(사과과수원) 식수보충
- 위동재 대중교통: 임동→구룡 06:30, 18시, 구룡→임동 07시, 18:55
- 임동면 개인택시: 010-5502-8883, 요금 18,000
- 임동면 산그림모텔(054-822-4055), 식당, 하나로마트 18시까지 영업
* 서울에서 덕산지맥분기봉 가는길
- 청량리역~안동역: 06시, 06:50, 09시~19시, 02.04h~02.45h, 15,400~25,100~30,100
- 안동~영양: 09:45, 10:45, 11:35~18:30, 20:45, 21:55, 01.20h, 8,800
- 서울경부~안동: 06:10, 07:40, 08:10, 09시, 09:40, 10:10, 11시~17시, 18:40, 19:30, 20:10, 22시, 2.40h, 17,000~22,200
- 동서울터미널~영양: 08:10, 16:20, 4.30h, 32,900
- 영양~수비: 하루 7~8회, 0.25h, 1,300
- 수비~새신마을: 택시 3만원
- 영양~신암리: 05:50, 12시, 17:30
- 영양공용버스터미널: 054-683-2213, 영양여객(054-682-9559, 683-9669)
* 안동에서 서울 올라오는길
- 안동역~청량리역: 15:06, 16:30, 18:18, 19시, 21:25, 02.05h~02.37h, 15,400~25,100
- 안동고속~서울(동서울,경부): 15:50, 16:30, 17:10, 18:40,~20시, 20:10, 2.40h, 17,000~2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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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이 원샷으로 가능하다면 논골재에서의 식수보충, 그리고 금댕이재에서 임동면의 보급지 활용이 중요합니다. 덕산의 특징을 꼽으라면 동화재 이후 덕산봉까지, 논골재 이후 돌메기재까지는 한동안 산패 따먹기로 잔펀치가 계속되는 구간을 들 수 있고요. 마을 단위로 마을 수호신인 서낭을 섬기는데 주로 산마루나 고개에 돌제단이나 당(堂)을 지어 그 안에 모시기도 합니다. 서낭당 터는 자주 지나게 되지만 현존하는 서낭당은 장갈재가 유일합니다. 지맥 후반부로 갈수록 동네 야산으로 쉬워진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덕산은 예정된 출발일부터 애매하게 장마와 일정이 겹쳐 장맛비를 피하는 일정을 잡아야겠네요.
원샷종주는 비 핑계로 불발에 그치고...
4일, 영양에서 신암리 가는 12시 차를 타게 된다면 오후에 붙어 철야산행으로 금댕이재까지 노려볼 수 있겠습니다. 이 경우 시간 절약이 중요한데, 물 4리터를 지고간다면 중간 보급없이 가능하리라 보입니다.
만약 17시 차로 신암리에 들어간다면, 마을회관앞 정자에서 비박하고 다음날 논골재까지로 일정을 잡아봅니다.
이 경우 논골재에서 18:20분, 영양으로 빠지는 차시간이 중요하고, 안동에서 청량리행 막차시간(21:25)도 중요합니다.
다음 논골재를 향할 때는, 봉화에서 재산면으로 갈지, 영양에서 재산으로 들어갈지, 일단 재산의 허름한 여관에서 하룻밤 보내고 다음날 일찍 택시를 타고 논골재로 올라야할 성 싶습니다.
금댕이재에서 끊을 경우, 임동면으로 내려가면 임동면은 영덕과 영양에서 안동으로 나가는 길목이기에 안동행 버스가 자주 있을 듯합니다. 안동역에서 청량리 막차시간(21:25)에 대기만 하면 될것 같군요.
여러 경우의 수를 놓고 심산하던 차에 당장 오늘 오후에 떠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내일 일찍 비가 그친다네요. 만약, 모레 예정대로 금댕이재까지 가게 된다면 현재까지 화욜 장맛비가 예상되어 있는데 한번쯤은 우중산행을 생각해 볼까요? 일단 금댕이재가 목표입니다.^^
덕산 완전정복!
이런말 있으면 좋겠지요. ^^
덕산을 다녀왔더니 나도 모르게 입안에서 '안동역에서' 노래가 흥얼거려지네요. ㅋㅋ
3일 저녁 7시 ktx로 내려가 안동에서 영양으로 가서 일박하고, 영양에서 첫차로 신암리로 들어갈려고 했는데, 그만 비가오는 중간에 택시가 잡히지 않아 1분 차이로 기차를 놓치고, 4일날 첫차로 출발했습니다.
신암리에서 신내골(새골)로 가려던 계획은 시간이 늦었으니 급거 수비에서 택시를 이용해 새신마을로 들어갑니다.
신암리에 들어간데도 신암리에서 신내골입구까지 히치를 하면 좋은데 걸어갈려면 1시간 가까이 소요되지 않을까요. 그럴라면 봉화 재산면에서 개내골까지 버스로 들어가 개내골에서 새신마을로 걸어가는 방법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쨋든 장마기간에 겹쳐 준비를 충분히 한다고 했는데 직전에 갑작스런 변경으로 혼란이 부추겨졌답니다.^^
거기다가 전혀 예상못한 현실이 벌어졌네요. 워낙에 골짜기이기도 하지만 하늘이 푹 내려앉아 새신마을에서 GPS 접속이 안됩니다. 택시비는 가져다니는 현금을 주고 보냈지만 지도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난감무지로소이다.
어프로치에 간간이 보이는 띠지도 찾질 못하고 일단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쳐 올리자 싶어 50여분을 올라서니 가까스로 접속이 됩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 조금만 더 가면 뚝심봉이 나오는군요.
새신마을 농막에서 개울을 건너 다시 좌측에 보이는 임도로 틀어서 15~20분이면 낙동정맥 상에 오르는데 저는 그만 직진을 해서 올랐나봅니다. 어쨌거나 배낭을 두고 덕산지맥 분기점에 다녀오기가 애매하네요.
하늘은 울먹울먹 언제 비가 올지도 모르고, 1분이라도 빨리 논골재에 도착해야 수면 시간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날밤 새고 줄창 가는 방법도 있지만 이제 나이도 있고, 전번 범산선배님 조언을 받아들여 가급적 철야산행 보다는 심야에는 비박을 하고 낮시간대로 걷기로 결정했거든요.
이론과 실전은 다르니, 조급한 마음에 덕산지맥 새신마을에서 한가지 경험을 습득한 것으로 대신하고 덕산분기점을 빠뜨리고 출발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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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지맥 분기점 찾아가는 방법
낙동정맥을 하며 교통의 오지임을 실감한 영양군 수비면 덕산지맥분기점을 찾아가기가 험난하다. 덕산지맥분기점에 이르는 방법은 세 가지로 첫째, 수비면에서 택시를 이용하여 새신마을로 들어가는 방법이 제일 간편하고(30분), 둘째, 신암리에서 낙동정맥 깃재로 접속하여 낙동정맥을 따라 분기점으로 향하는 방법이 있는데 약 4km, 두시간쯤 걸어야 한다. 세번째로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 신내골(새골)로 찾아들 수도 있다. 신내골을 1km 남짓 못 미친 917번 지방도롯가에서 우측으로 샛가지를 친 '낙동정맥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곳에서 양회임도를 따라 신내골(새골)로 1km 정도 들어가면 산아래 첫 농가가 나오고 이후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민가 직전 개울을 건너고 밭가장자리를 지나 다시 개울을 건너 묵은 수레길을 따라 진행 후 다시 개울을 건너 좌측 능선으로 흐릿한 된비알길을 치고 30분 정도 오르면 낙동정맥 마루금에 닿고 이후 우측으로 꺽어 다시 올라야 한다. 마지막 민가에서 덕산지맥 분기점까지 도달하는데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 덕산지맥(德山枝脈)이란
백두대간 매봉산에서 부산 몰운대로 가는 낙동정맥이 칠보산(974.2m) 남쪽 2.2km 지점 850m봉 헬기장 직전에서 서남쪽으로 분기하여 일월산(1217.6m) 서북쪽 2.4km 지점의 일월지맥 분기점에서 일월지맥 산줄기를 떨구고, 덕산지맥은 우측으로 남서진하여 동화재, 덕산봉(690m), 논골재, 장갈령(長葛嶺.565.9m, 분기봉에서 33.1km지점)에 이르러 남쪽으로 또 하나의 산줄기를 분기하고, 벳티재, 금댕이재, 사부란재, 관재를 지나 임하댐을 지난 반변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안동시 용상동 법흥교 앞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73.1km인는 산줄기인데, 덕산봉 이름을 따서 덕산지맥(德山枝脈) 이라 칭한다. 덕산지맥 산줄기 서쪽인 우측(북, 북서)으로 흐르는 물은 안동호로 들어 낙동강 본류가 되고, 동쪽인 좌측(남, 남동)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임하호로 흘러들어 반변천이 되어 낙동강에 합류한다.
♤ 덕산지맥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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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군
경북 북부에 있는 군으로 진한12개국 중의 하나인 기저국(己柢國)이 있던 지역이며 삼국시대에는 지금의 봉성면 일대가 고구려의 고사마현(古斯馬縣)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편 때 봉화군(奉化郡)으로 개칭되었다. 경관이 빼어난 고산준령으로 이루어져 있어 하천연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험준한 산지이다. 행정구역은 1개읍 9개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군청소재지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봉화로 1111이다. 삼국시대에 신라의 고사마현이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옥마현으로 고쳐 내령군(지금의 영주시)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봉화현으로 고침으로써 현재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태종 13)에 현이 되었다. 1457년(세조 3)에 단종복위운동으로 순흥부가 혁파되어 문수산 이동지역을 나누어 받았다가 1683년(숙종 9) 순흥이 복구되면서 이양했다. 임진왜란 후 선조대에 오지인 이 고을 태백산 각화사 근처에 선원각과 실록 등을 보관하는 사고가 설치되어 태백산 사고로 불리웠다. 별호는 봉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고종 32)에 안동부 봉화군, 1896년에 경상북도 봉화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소천면·재산면은 그대로, 춘양면·상동면은 춘양면으로, 와단면·중춘양면은 법전면으로, 동면·상남면·하남면은 명호면으로, 서면·임지면은 상운면으로, 군내면·북면은 봉성면으로, 물야면·수식면은 물야면으로, 내성면·화천면은 내성면으로 통합되었다. 1956년에 내성면이 봉화면으로 개칭되고, 1979년에 봉화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에 소천면과 울진군의 일부지역을 분할하여 석포면을 설치했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이 갈라져 군의 동쪽으로 남하하고, 백두대간이 태백산을 통해 군의 북쪽과 서쪽을 따라 이어져 있으며, 남서쪽으로는 비교적 평탄한 분지가 전개되어 있다. 북부지역은 구룡산(九龍山, 1,346m)·선달산(先達山, 1,236m)·옥돌봉(1,242m)·청옥산(靑玉山, 1,277m)·연화봉(蓮花峯, 1,053m) 등 1,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이 이어져 있으며, 문수산(文殊山, 1,206m)·각화산(覺華山, 1,177m)·청량산(淸凉山, 870m) 등의 높은 봉우리들이 군내 곳곳에 솟아 경북 제1의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다. 낙동강이 봉화군에 이르러 석포리천(石浦里川)·회룡천(回龍川)·현동천(縣洞川) 등과 합류하여 명호면을 거쳐 안동으로 흘러가며, 군의 서부지역을 남서류하는 내성천(乃城川)은 봉화읍을 감싸돌아 범드리들 등의 평야를 이루어 놓은 뒤 예천군에 이르러 낙동강에 합류된다. 기후는 내륙 산악지대인 관계로 대륙성기후를 나타내어 연교차와 일교차가 크고, 같은 위도상의 다른 지역에 비해 기온이 낮다. 연평균기온 11.2℃ 내외, 1월 평균기온 -4.8℃ 내외, 8월 평균기온 26.1℃ 내외, 연평균강수량 988㎜ 정도이다. 군내에서도 북쪽 산간지방은 봉화읍을 중심으로 한 남쪽 분지지방에 비해 약 3℃ 낮으며, 일조량이 적어 그루갈이가 불가능한 지역도 있다. 식생은 풍부하여 젓나무·자작나무·참나무 등의 숲이 울창하며, 예로부터 궁궐을 짓는 데 사용되었던 적송(赤松) 춘양목(春陽木)이 유명하다. 산간지대로서 교통이 매우 불편했으나 영동선이 군의 중앙을 동서로 가로질러 영주·태백·영동 지방을 연결하고 있으며, 제천-울진을 잇는 국도는 간선 산업도로로서 이용가치가 높다. 또한 태백과 안동을 잇는 국도가 동부를 남북으로 지나가고 있어 영남-영동, 내륙-동해안을 연결하는 교통상 요지가 되고 있다. 도로총길이 483.78km, 도로포장률 74.1%이다(2013). [포탈에서 발췌정리]
* 영양군
영양군의 역사에 대해서는 고고학적인 조사의 결여와 문헌적인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이것은 이 지역이 벽지에 위치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사회에서 오랫동안 독립행정구역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사시대에 대한 것은 앞으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역사시대 초기의 사실도 아직 잘 알 수 없다. 본래 이 지역은 고구려에 소속되었던 것 같고, 후일 신라에 의해 병합됨에 따라 고은현(古隱縣)이 설치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유린현(有隣縣 : 영해)의 영현이 되었는데, 오늘날 영양군의 행정구역인 청기면·영양읍 일대는 명주(溟州)에, 일월면·수비면 일대는 양주(良州)에 분할, 소속되어 있었다. 또, 현재의 청기면 일대에 위치했던 청기현(靑杞縣)도 그 역사는 잘 알 수 없지만, 고은현과 함께 유린현에 소속되어 있었다. 고은현은 940년(태조 23) 영양군으로 개명되어 청기현과 함께 1018년(현종 9) 예주(禮州)의 속읍이 되었다. 1175년(명종 5) 감무가 처음으로 임명되었다. 영양군 관내에는 수비부곡(首比部曲)이 있었는데, 문종 때에 일시 울진에 소속되었다가 영양군으로 환속 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대청부곡(大靑部曲)·소청부곡(小靑部曲)이 합해져서 1304년(충렬왕 30)에 청기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고려 말까지 영양현· 청기현은 여전히 예주의 속현으로 존속하고 있었다. 이 지역 속현으로서의 위치는 조선 전기에도 계속되어 영해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당시의 호구수는 영양현이 40호 1,026인, 청기현이 29호 462인이었다고 하며, 영양현의 토성(土姓)은 남(南)·이(李)·김(金)·방(房)씨가, 청기현에는 속성(續姓)에 유(兪)·최(崔) 씨가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오랫동안 독립행정구역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호구수도 적었고 역사무대에서도 제외되어 있었다. 이의 극복을 위한 움직임이 조선 후기에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1664년(현종 5) 이 곳 출신인 조암(趙顉) 등이 영해부로부터의 독립을 상소하면서 예속으로 인한 민폐를 제거하여 줄 것을 아울러 건의하였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부역균등과 같은 민폐제거만 허락하였다. 1675년(숙종 1) 조책 등의 상소에 의하여 독립, 분리되었으나, 1676년 다시 영해부에 환속되었다. 1677년 남시하(南時夏)의 상소가 있었으나 독립은 허락되지 않고 행정편의와 민폐제거를 위해 영양현을 진보현(眞寶縣)과 영해부에 나누어 소속 시켰다. 1682년 남시직(南時稷)의 상소에 의해 마침내 청기현과 합해져 독립현이 설치되어 독립행정단위를 구성하게 되었는데, 이때도 석보면은 계속해서 영해부에 속하였다. 1895년 영양군으로 승격되어 안동부에 속했고, 1896년 경상북도 영양군으로 4등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조정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 안동시
경북 중북부에 있는 시로 유교문화의 본고장이며 전통문화의 유산이 풍부한 역사와 문화의 고장이다. 안동의 역사는 BC 57년 염상도사가 창령국을 세우면서 시작됐으며, 이후 고타야 · 화산 · 고창 등으로 불리다가 고려 태조 13년(930년)에 와서 처음으로 안동이란 지명을 갖게 됐다. 또, 고려 경종 5년(980년)에는 안동부(安東府)를 영가군(永嘉郡)으로 이름을 고쳤는데, 영가라 할 때 영(永)은 ‘이수(二水)의 합자이며, 가(嘉)는 아름답다’는 뜻으로 낙동강과 반변천이 합쳐지는 지세가 아름답다는 의미를 반영한 이름이다. 낙동강은 물산과 인물이 교류했던 곳으로, 남쪽으로부터 어류와 소금을 실은 거룻배가 강을 거슬러 안동을 지나 예안까지 이르러서 싣고 온 물건을 팔고, 내려갈 때는 안동에서 생산하는 많은 물건을 싣고 가는 교역의 중심 역할을 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풍천면 마애리의 구석기시대 유적을 비롯하여 국내 최고(最古) 목조건물 봉정사 등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들이 곳곳에 있다. 한국의 전통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하회마을은 경주시 양동마을과 함께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행정구역은 1개읍 13개면 10개동이 있다. 시청소재지는 경상북도 안동시 퇴계로 115이다. 삼국시대 이전에 창녕국 등 소국(小國)이 있었던 것으로 〈대동지지 大東地志〉 등에 기록되어 있으나, 신라가 이곳에 진출하여 고타야군을 설치했다. 757년(경덕왕 16)에 고창군으로 개칭하고, 직령현·일계현·고구현을 영현으로 관할했다. 후삼국시대에 고려와 후백제의 각축지가 되었던 이 일대는 이 고을 호족인 김선평·김행·장길 등이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승리한 공으로 940년(태조 23)에 안동부로 승격되었다. 후에 영가군으로 강등되고, 995년(성종 14) 행정구역 개편 때 길주로 승격되었다. 그 뒤에도 몇 차례의 변화를 거쳐 1030년(현종 21)에 안동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1197년(명종 27)에 도호부로, 1202년에 대도호부로, 1308년에 복주목으로 계속 승격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에 복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승격되었으며, 홍건적의 침입으로 1361년에 왕이 이곳에 피난해 머물렀던 공으로 이듬해에 안동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안동대도호부로서 경주와 함께 경상좌도의 대읍으로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1576~81, 1776~85년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안동의 별호는 석릉·고령·화산·능라·지평·일계·고장 등이었다. 고종대의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안동부 안동군, 1896년에 경북 안동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로 감천면을 예천군에, 재산면·소천면·춘양면·내성면을 봉화군에 이관하게 되어 면적이 많이 줄었다. 그러나 1914년에 군면 폐합에 의해 예안군이 폐지되어 안동군에 편입됨으로써 면적이 다시 확대되었다. 1931년 읍면제를 실시함에 따라 안동군 부내면이 안동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63년에 안동읍이 신안동시로 승격되었다가 곧 안동시로 개칭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던 안동군과 중심도시기능을 담당해왔던 안동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안동시를 이루었다. 백두대간의 지맥이 시의 동·서에 걸치면서 북동쪽에는 산지를, 남서쪽에는 비교적 평탄한 침식분지를 이루어 놓았다. 시계를 따라 파리봉(497m)·산성산(845m)·두름산(485m)·사일산(649m)·계명산(537m)·화부산(626m)·산지봉(890m) 등이 동쪽에, 불로봉(482m)·갈미봉(548m)·천등산(574m)·보문산(643m)·검무산(332m)·봉화산(401m)·삼표당(444m)·향로봉(327m)·기룡산(508m)·황학산(782m) 등이 서쪽에 솟아 있다. 낙동강이 시의 중앙부를 남류하면서 안동호를 이룬 후 중심시가지를 가로질러 서류하면서 미천(眉川)·송야천(松夜川) 등을 합류하고 서부일대로 흐른다. 반변천·안기천·안막천 등도 낙동강에 흘러든다. 시를 흐르는 낙동강은 하상이 높아 평탄한 곳의 대부분은 모래사장을 이루며, 주변에 넓은 평야를 이루었다. 풍산읍과 풍천면에 이 지역의 최대 평야지대인 풍산평야가 있다. 풍산평야는 낙동강의 소지류인 상리천과 매곡천에 의해 이루어진 충적평야이다. 중심시가지는 대체로 높이 200~400m의 산지로 둘러싸인 침식분지이다. 기후는 내륙분지인 지형적 요인과 대륙성기후의 영향으로 한서의 차가 심하다. 유교문화재로는 도산서원전교당(陶山書院典敎堂, 보물 제210호)·병산서원(屛山書院)·호계서원(虎溪書院), 유성룡을 모신 충효당(忠孝堂, 보물 제414호) 등이 있으며, 건축물로는 안동양진당(安東養眞堂, 보물 제306호)·안동의성김씨종택(보물 제450호)·안동소호헌(安東蘇湖軒, 보물 제475호)·안동김씨종택·하회원지정사(河回遠志精舍) 등이 있다.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은 2019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다른 지역의 7개 서원과 함께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14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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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비면 신암리
동쪽에 갓밭골이 있는데 길이 험하고 걷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서쪽으로는 새신리 또는 조성리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마을 어귀에는 약물탕이 있으며 숲이 우거져 산새가 많이 있고 남쪽에는 주마산이 있고 서쪽에는 칠보산이 있다. 이 산에 일곱 가지 색깔의 쇠가 있다하여 쇳골이 되었으며 경치가 아름답다.
♤ 수비면 새신마을
수비면은 현지에서는 발리라고 해야 더 잘 알아듣는다. 수비에서 택시를 타고 윗대티가 보이는 영양터널을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들어서면 봉화군 재산면 개내골이다. 똘 하나를 사이에 두고 봉화와 영양의 경계가 지어진다.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 272-1 새신마을 입구(개내골 입구)다. 계곡 안쪽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더 들어가서 외딴 농가 앞에서 하차한다. 전에는 예닐곱 가구가 살았는데 지금은 농사철에 방문하는 농막만 한 채 있다. 들머리 주소는 수비면 신암리 263-1
♤ 새신고개/ 애미랑재에서 3.8km지점
신암리와 새신마을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우측 아래의 새신마을에서 고개 이름을 따왔다. 새신은 마을 어귀에 있는 약물탕을 중심으로 하여 숲이 우거지고 산새가 많이 깃들어 살기 때문에 불려진 이름이다. 들머리에서 1.5km거리를 25분 올라와 새신고개를 지난다. 좌우로 이어지는 고갯길로 옛날에는 우측 새신마을과 좌측 신암리 마을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였겠지만 지금은 인적이 끊겨 잡풀만 무성하다.
♤ 덕산지맥분기점/ 면계(수비면-일월면)
새신고개를 출발하여 15분여 꾸준히 올라 낙동정맥 상의 854.7m 봉을 지나고 접속 거리 2.7km를 약 1시간 걸어 덕산지맥 분기점에 도착한다. 이곳 분기점 표고는 약 840m쯤 되는데, 좌측 낙동정맥 길 따라 50여 m를 올라서면 850m 봉의 폐 헬기장이다. 봉화에서 애미랑재를 넘어 영양에 진입한 낙동정맥이 칠보산을 넘어 수비면으로 내려와 덕산지맥분기봉에서 일월면을 만나 수비면과 일월면 면계를 따라 남하하고, 덕산지맥은 북쪽으로 수비면과 일월면의 면계를 가르며 서향으로 출발한다.
- 887m봉에서 좌측의 일자봉, 월자봉을 가늠되고 우측 잡목 사이로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낙동정맥의 칠보산(974.2m)이다.
♤ 영양군 일월면 용화리
영양군 최북단 일월산은 도곡리와 문암리 쪽으로도 열려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용화리 쪽으로 들어간다. 용화리가 도곡리나 문암리보다 일월산 속 깊이 위치한 이유도 있겠고 또, 용화리쪽에 경승지가 몰려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흰 바위가 있는 강점골, 기우제를 지냈던 곳, 대나무가 많은 댓골, 도장바위가 있는 도장골, 병풍바위가 늘어서 있는 병풍골, 호박소가 있는 호박골 등의 아름다운 절경을 모두 용화리 쪽에서 일월산으로 향해야 볼 수 있다. 또 용화사라는 큰 절이 일월산 기슭에 있었다고 하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용화사터에는 영양용화리3층석탑(英陽 龍化里 三層石塔)이 있다. 이 3층석탑 위에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용화선녀탕이 있다. 용화선녀탕이 있는 골짜기 입구에는 천년동굴에서 불어나오는 찬바람과 원시림에서 흘러온 맑은 물이 여름 피서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 삼각점봉(934.8m)
넙데데한 정상에 4등삼각점 소천 458 / 2004재설이 있다.
♤ 뚝심봉(960.2m)
봉우리 좌측 편에 '출입 금지' 표지판이 붙어있다. 표지기만 몇개 걸려있을 뿐 아무런 표식이 없다.
♤ 영양터널
경북 영양군 일월면 용화리 일반국도31호선에 위치해 있는 영양터널은 터널길이가 600.0m 이며 터널 폭은 9.0m 이다. 영양터널은 경북 영양군 일월면과 봉화군 재산면을 잇는다. 남쪽이 일월면, 북쪽이 재산면이다. 일월에서 재산방향으로 나가면 왼쪽으로 콘크리트 포장길이 있는데 일월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에 위치한다. 31번국도 상에 있고 일월산을 관통하며 이 터널을 나오자 마자 봉화군으로 넘어간다. 양방향 왕복 2차로 터널이다.
♤ 삼각점봉(830.2m)
31번국도가 지나는 영양터널 위로 능선 좌우의 차량 소음을 들으며 급경사 오르막을 올라 영양터널 위 봉우리에서 완만하게 3분여 진행하면 삼각점봉이다.
- 준희선생님 산패와 4등삼각점 (소천 455)/ 2004 재설이 있다. 삼각점봉에서 6분여 진행하면, 준희선생님 793.6m 산패가 소나무에 걸려있다.
♤ 칠(칡)밭목(770m)/ 오미고개
봉화군 재산면 오미마을과 영양군 일월면 대티마을 잇는 양회임도 삼거리이다. 외씨버선길 이정목(←우련전, ↓일월산 야생화 공원)이 서 있다. 좌측에 오미마을이 있어 오미재로도 불린다. 칠밭목[오미재]에서 우측으로 재산면이 가깝지만, 지맥길은 재산면과 일월면의 면계가 아닌 좌측 일월면 안으로 들어서서 진행하다가 일월지맥 분기점에서 영양군 청기면을 만나 청기면과 일월면의 면계를 따라 우틀하여 일월재로 내려선다. 군계이자 삼면경계면(봉화군 재산면, 영양군 수비면 → 일월면)이 가깝다.
- 영양군 일월면 용화리 방면과 그 반대 쪽인 고개너머 북쪽의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의 우련전 사이를 넘나드는 고갯길이다.
-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외씨버선 길이 마주 보이지만 지맥길은 좌측 전봇대 뒤로 올라가 분기점까지 190m고도를 극복하기 위해 250m 가량을 꾸준히 올라쳐야 한다.
♤ 윗대티
영양하고도 북쪽 끝 지점에 있어 오지 가운데 오지인 용화리, 들머리는 바로 그 용화2리 윗대티마을이다. 윗대티는 일월산(1,219m) 아래 들어앉은 마을이다. 대티는 ‘큰 고개’라는 뜻으로, 마을 옆에 옛 고갯길이 남아 있다. 마을 초입에 대티골을 알리는 입간판이 보인다. 이곳부터 윗대티까지 가는 길이 옛 시골 마을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이 길은 외씨버선길 7코스 구간이기도 하다. 길을 따라 마을로 올라가면 띄엄띄엄 집이 있고, 밭에서 천궁과 산마늘 등이 자란다. 길옆에 맑은 냇물이 흐른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 풍경이다. 돌담과 고목이 마을의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윗대티마을에서 일월산 오르는 길에 있는 뿌리샘은 반변천의 최상류이자 발원지이다. 반변천은 일월면과 영양읍, 입암면을 지나 임하댐에서 모였다가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109.4km 물길이다.
도올 김용옥선생이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을 새롭게 풀어내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동경대전"은 동학 교주 수운 최제우가 한문으로 쓴 동학의 경전입니다.
♤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崔時亨, 1827~1898)
해월선생이 용화리 윗대티에 들어와 7년여간 은거하면서 일월재를 오르내리며 동학 재건의 발판을 마련한 곳이다. 교조신원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역모사건으로 변질되어 관군의 추격을 받고 일월산 대티를 떠났다. 그는 '한 번도 자기 자신을 높여 산 적이 없으나, 죽은 다음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지도자’로 꼽힌다. 끊임없는 관의 추적과 수배 속에서도 민초들의 삶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동학사상을 널리 펼치고, 이를 통해 동학농민운동이라는 근대 최대의 민중운동을 이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이후 3·1운동 등 독립운동과 근대화의 사상적 토대와 조직을 구현해냈다.
♤ 일월지맥 분기점/ 면계(일월면-청기면)
일월지맥분기점은 오미재에서 가파르게 올라선 능선삼거리로 덕산지맥은 우틀하여 약 0.5km 떨어져 있는 일월재로 내려서고, 좌측 위로 일월 지맥이 분기하는데 월자봉(서봉)은 약 0.7km 떨어져 있고, 이어서 공군부대를 지나 1.8km 정도 더 나가면 일월산 정상인 일자봉(동봉)이다.
- 준·희선생님의 '일월 지맥 분기점' 표지판이 있다. 일자봉 해맞이공원까지 다녀오는데는 왕복 5km이고 약 1시간 50분 소요된다.
♤ 일월지맥(日月枝脈)이란
낙동정맥 칠보산(974m) 남쪽 2.2km 지점 무명봉 직전에서 서남쪽으로 분기한 덕산지맥(德山枝脈)이 일월산 서북쪽 2.4km 지점인 1042m봉에서 또다시 남쪽으로 분기해서 반변천과 동천의 수계를 경계 지으며 월자봉(1,170m).일월산(1,219m), 홍림산(766.8m).작약봉(726.1m), 표대산(579.6m)를 지나 반변천과 동천이 합류하는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암벽루(선바위) 앞의 남이정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4km 되는 산줄기를 말한다. 최고봉인 일월산의 이름을 따서 일월지맥(日月枝脈)이라 칭한다.
♤ 일월지맥 개념도
♤ 일월산(日月山, 1,219m)/ 경북 최고봉
일월산은 경북 영양군 일월면과 청기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영양의 명산이다. 백두대간 매봉산에서 갈라진 낙동정맥이 구봉산을 거쳐 남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통고산에 이르러 낙동정맥은 남쪽의 백암산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 덕산지맥을 분기하는데 그 능선상에 불쑥 솟아오른 산이 일원산이다. 서쪽 약 17㎞ 지점에는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청량산이 위치하고 있다. 현재 산정에는 통신시설 등이 설치되어 있고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산정에는 동서로 두 봉우리가 있는데 동봉은 일자봉(日字峰)이라 하여 주봉이며, 서봉은 월자봉(月字峰, 1,170m)이라 한다. 현재 일자봉은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되어 산행이 자유롭지 못하고 월자봉을 중심으로 산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월산 동북쪽은 산세가 험하고 골이 깊다. 아름들이 나무들이 얼키설키 울창한 숲을 이뤘는데 그 밑 골짜기로 맑은 샘물이 흘러 낙동강 상류 반변천의 원류가 된다. 월자봉에 오르면 태백산에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며, 서쪽으로 청량산등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낙동정맥이 일자로 흐르는데 그 중에서도 백암산이 뚜렷하다. 특히 일월산은 태백산의 가랭이에 위치, 음기가 강한 여산으로 알려져 그믐날만 되면 전국 각지의 무속인들이 이 산을 찾아 영험함과 신통함이 더한 내림굿을 한다. 그렇게 하면 점괘가 신통해진다 하여 무속인들로부터 성산으로 추앙받는 곳이기도 하다. 월자봉 아래엔 황씨부인당이 있는데 영험이 있는 곳이라 알려져 기도객들이 많다. 결혼한 첫날밤에 소박을 맞아 한을 남긴 황씨부인이 남편을 만나 당을 지어달라고 하며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황씨부인당은 이곳에 기거하며 관리하는 부부가 있다.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일월산 중에는 귀한 약초가 많고 수도하는 사람들의 움집이 많은 것이 특색이며, 납·아연 등의 광산이 있어 현재 채굴 중에 있다. 유적으로는 조선 세조 때 남이장군이 토적 아룡의 족당을 무찔렀던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한 남의포와 봉감탑·석문입암 등이 있으며 사찰로는 동쪽 사면에 용화사지가 있고, 서남쪽 사면에 천화사가 있다. 이 산을 일월산이라 하게 된 것은 동해가 눈 아래 보이는 이 산정에서 동해의 일출과 월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산이라는 뜻에서 연유했다는 설과, 옛날 산정에 천지가 있어서 그 모양이 해와 달과 같아서 이름 하였다는 설이 있다. 일월산은 모난 데가 없이 덩치 큰 대형 육산이다. 이러한 일월산의 산세는 택리지의 이중환이 복거총론에서 지적한 대로 인재를 키우는데 적합한 산수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즉 일월산이 그 육중한 팔로 북풍을 막으며 남으로 포근히 감싸안고 있는 주실(주곡마을)에서는 유례없이 많은 인재가 배출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청록파의 시인 조지훈을 비롯, 박사며 장군이 수십명이 났다. 영양땅 척박한 환경에서 이렇게 많은 인재들이 배출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쌍봉이 보이는 전남 여천군의 어느 마을에서 쌍둥이가 유난히 많이 태어나고 있다는 얘기와 전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일월지맥에서 소개해야 하지만 덕산이 일월의 큰집인지라 잠깐 소개하고자 합니다.^^
"떡하나 주면 안잡아 먹지" 어렸을 적 이 전래동화를 듣지않고 크신 분은 없지않나 싶습니다.
♤ 일월설화
옛날 아이들 삼형제와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산너머 부잣집에 품팔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만 호랑이를 만났다. 호랑이는 어머니가 부잣집에서 얻어 온 떡을 달라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호랑이에게 떡을 주고, 결국에는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고 만다. 호랑이는 어머니의 옷을 입고 집에 와서 아들을 속이고 막내 아이를 잡아 먹는다. 막내 동생을 잡아 먹는 소리에 놀란 아이들이 우물가 나무 위로 올라 간다. 호랑이가 거기까지 쫒아와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나무로 올라 갔는지 묻는다. 아이들은 "큰 집에 가서 참기름을 빌려 와서 그것을 나무에 바르고 올라왔다고 한다. 호랑이가 그대로 했지만 미끄러져서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어떻게 올라 갔는지를 묻는다. 그러자 한 아이가 "큰 집에 가서 도끼를 빌려와서 나무 줄기에 계단을 만들어서 올라 왔다"고 대답한다. 호랑이가 계단을 만들고 올라오자, 아이들은 하느님께 호소하여 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호랑이도 두 아이들과 같이 하늘에 빌자 썩은 동아줄이 내려 와서 이에 매달려 하늘로 올라가다가 떨어져 수숫대에 항문이 찔려 죽고, 그 피가 수숫대에 번져 지금도 붉은 점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하늘에 올라간 두 남매는 각각 해와 달이 되었으며, 해가 된 누이는 낮에 다니는 것이 부끄러워 강한 햇살을 쏘아 사람들이 쳐다보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선운산에서 하드프리에 열중할 때 인근 미당 서정주문학관을 방문하여 '신부'라는 시를 처음 접했습니다. 막연히 경북 어느 지방에서 전해내려오는 전설을 모티브로 했다는 정도로 기억하는데 그곳이 바로 일월산입니다.
♤ 일월산 황씨부인당설화
경북 영양군에 전해내려오는 전설이다. 전설의 주요 내용은 신랑의 어리석은 오해로 인해 첫날밤을 치르지도 못하고 버림받은 여인이 평생 정절을 지키며 살다가 한을 품고 죽었다는 이야기다. 우리 민족의 정한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여러 문학작품의 소재로 다양하게 원용되었는데, 대표적인 작품에 조지훈의 시 《석문(石門)》과 서정주의 시 《신부(新婦)》가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일월산 아랫마을에 황씨 성을 가진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워낙 인물이 고와 마을의 두 젊은이가 서로 탐내어 결혼하고 싶어했다. 황씨 처녀는 두 총각 중 한 총각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신혼 첫날밤 뒷간에 다녀오던 신랑은 신방 문앞에서 기겁을 하고 물러섰다. 신방문에 칼날 그림자가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신랑은 앞마당의 대나무 그림자를 칼 그림자로 잘못 알고 처녀를 빼앗긴 연적(戀敵)이 앙심을 품고 자신을 죽이려고 숨어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랑은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리 달아나버렸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신부는 족두리와 원삼도 벗지 못한 채 조바심을 내며 신랑을 기다리다가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괴이하게도 처녀의 시신은 첫날밤 모습 그대로 삭을 줄을 몰랐다. 살아 있었을 때처럼 앉음새가 흐트러지지 않았고 돌부처처럼 앉아 언제나 신방을 지키는 듯 했다. 한편 멀리 도망간 신랑은 외지에서 다른 처녀를 만나 장가를 들었다. 그런데 이들 부부 사이에는 아이가 생겨도 낳기만 하면 이내 죽곤 했다. 답답한 마음에 점쟁이에게 물어보니 바로 황씨 규수의 억울한 원혼 때문이라고 했다. 뒤늦게나마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친 신랑은 지금의 일월산 부인당 자리에 신부의 시신을 옮기고 사당을 지어 혼령을 위로했고, 그때서야 신부의 시신이 홀연히 삭아 없어졌다고 한다.
♤ 일월재/ 군계이자 삼면경계면(봉화군 재산면, 영양군 일월면 → 청기면)
일월지맥의 분기점에서 5분여의 발품이면 지맥을 가로지르는 아스콘 포장도로를 만난다. 일월산 정상 방면과 그 반대 쪽인 서북 방향의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 쪽 사이를 잇는 도로가 넘나드는 고갯길 일월재다. 진짜 일월재는 영양터널 방향으로 조금 아래에 있지만 편의상 여기를 일월재라 부른다. 좌측은 월자봉, 일월산 가는 길이고 우측은 일월재의 다음 구간 들머리 방향이다. 등산로 입구에는 등산로 안내판이 중간이 깨어진 채 놓여있다. 지맥길은 일월재부터 논골재 지나서 만나는 삼군봉/청량분맥갈림봉(591.3m)까지 봉화군 재산면(才山面)과 영양군 청기면(靑杞面)의 경계를 달린다.
- 일월산으로 오르는 군사용 포장도로이다.
♤ 청기면 당리(唐里)
영양에서 봉화군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여 있다. 일월산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찰당골로 이어져서 당리 앞으로 흐른다. 다시 행화(杏花)앞으로 흐르는 내와 함수하는 곳으로 보아 그위에 있다. 당리 북동쪽으로 일월산이 있으며 여기에 황씨부인당이라 하는 서낭이 있으므로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영양군 청이면의 지역으로서 1941년 행정구역을 고칠 때 당리라 하였으며 청기면사무소 당리출장소가 있고 청북지서와 청북초등학교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당동의 당(唐)은 황씨부인당을 이르는 뜻이니 사당이란 의미가 강하다. 청기면 당리 석문마을에 가면 입암면 연당리처럼 입구의 양쪽이 높은 절벽으로 되어 있어서 '石門'이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입암면 연당리 선바위 일대를 조선중기 무렵부터 돌로된 문이라고 해서 '석문'이라고 불렀다. 이곳 역시 하천이 침식하여 생긴 지형으로 연당리 석문과 함께 영양의 2대 석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영양군 일대에는 이곳뿐만 아니라 '석문'이 가진 의미와 같은 지명인 '문바위'를 쓰는 곳이 더 있다. 연당리 석문과 달리 당리 석문에 가면은 청기에서 진입할 때 왼쪽편 절벽 아래 '단곡(丹谷)'과 '일곡(一曲)'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단곡'은 청기면 당리의 옛 지명으로 주천두라는 사람이 입향한 후 붙인 지명이라는 설이 있지만, 조선 정조 때 전의를 지냈던 단곡 이진태 선생의 호가 지명으로 사용된 것이다. 석문 정영방 선생의 호가 오늘날 선바위 부근의 자연지명 이었듯이, 지역에서 뛰어난 인물이었던 단곡 이진태 선생의 호가 지명으로 남겨진 것이다.
♤ 찰당골(察唐谷ㆍ察唐洞)ㆍ찰당(察唐)
당골 북동쪽 맨 위에 있는 마을이다. 동리 어귀에 있는 큰 당나무는 노인들의 시름을 잊게하고 신선의 경지를 느끼게 하는 참으로 멋진 당나무라는 뜻으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황씨부인당이 있는 산 아래에는 천화사(天華寺)란 절이 있었다. 조선 왕조 헌종 때의 선비였던 일초(一樵) 이제만(李濟萬) 선생이 찰당골의 빼어난 경치를 사랑하여 손수 바위에다 구곡(九曲)을 새겨 놓고 오며가며 일월산의 자연을 음미하였다. 이에 대한 글도 남겼으나 오늘날까지 전해 오는 글은 찾아 볼 길이 없다. 영천 이씨(永川李氏) 가보를 찾아보니 손수 벼랑에다 구곡을 새겨놓고 글을 남겼다(手刻丹崖九曲有遺詩)고 하였는데 현재 남아 전해 오는 글은 확인할 길이 없다. 일초 선생은 황씨부인당을 세운 이명존(李明存) 선생의 손자요, 조선왕조 정조 때에 전의를 지냈던 단곡(丹谷) 이진태 선생의 후사이다. 한자대로 풀이를 하자면 당을 잘 살피는 골, 그래서 찰당골(察唐谷)이어야 하는데 당나라 당(唐)을 씀으로 하여 여기서 조차도 중국을 섬기는 사대주의 의식이 드러나보인다.
♤ 횡악분맥 갈림봉(1,043m)
횡악분맥(橫岳分脈)이란 낙동정맥에서 분기한 덕산지맥 상의 일월재 위의 1,043m 봉에서 좌측으로 덕산지맥을 보내고 우측으로 분기하여 봉화터널-장군봉(1,136.5m)-횡악산(820.1m)-꼬치비재를 지나 회룡천과 낙동강이 합수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약 24km의 산줄기를 말한다.
♤ 구멍바위(1,062m)
횡악분맥 갈림봉을 지나서 떡시루를 쌓아놓은 듯한 암봉에 이르는데 구멍바위다. 암봉 앞에서 우측으로 돌아 내려서면, 좌측으로 보이는 암반 아래쪽 한가운데에 바람구멍이 뚫려있다. 구멍바위, 병풍바위, 너래바위, 다래바위, 호랑이굴이라 나눠서 호칭되며, 일월산 동화재 용화봉 아래 위치하고 있다.
♤ 1,054.3m봉
구멍바위(1,062m)봉을 지나 곧바로 오르는 봉우리이다. 준희선생님 산패와 표지판과 수많은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달려있다. 우틀로 완만하게 내려서기 시작하면 이후 육산 능선에 서적을 쌓아놓은 듯한 바위지대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이를 오르내린다.
♤ 동화재(980m)
참낭배기봉(1011.5m)에서 좌틀하여 이후 삼각점봉(816.1m)까지 약 45분간 줄기차게 내려서게 된다. 이정표(현위치 : 동화재, ←찰당골 4.0m, 월자봉 2.4m→)를 지난다. 이정표에 이곳을 동화재로 표시하고 있지만, 계속되는 내리막길이라 재 같지 않으며 약 2분 정도 더 내려서면 나오는 펑퍼짐한 넓은 안부가 동화재로 보인다. 일월산은 두리뭉실하여 바위하나 없을 듯하지만 월자봉에서 동화재를 지나 윗찰당골로 내려가는 능선에는 바위가 여럿 나타난다.
♤ 장수바위(해발 963m)
정상에 묘지가 있다. 암반의 형상이 장수를 닮아 장수바위라 부른다는데 지맥 능선길에서 보면 장수 형상이 영 가늠되지 않는다. 옛날 나무가 전혀 없던 산과는 다른 모습이기에 헐벗은 민둥산에서 바위만 놓고 보는 시각과는 많이 다르다.
♤ 다래바위(948m)
장수바위에서 좀 더 앞으로 나가면 대문 기둥처럼 양쪽에 입석 바위가 서 있는데 다래 바위 표지판이 붙어 있다.
♤ 비조암(飛鳥岩, 923m)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있는 듯한 바위 꼭대기에 새 한마리가 날아가는 모양의 바위이다. 비조암 좌측의 암릉길로 올라서서 중간지점 대문바위 조망처에서, 입석 꼭대기를 바라보면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날고 있는 형상의 바위가 뚜렷하게 보인다. 조금 더 올라선 비조암 전망대 암반 위에서 사방으로 조망이 좋다. 좌측으로 보이는 능선은 앞으로 진행해야 할 덕산봉으로 이어지는 지맥 마루금이고, 중앙의 동면저수지와 봉화 재산면 동면리 벌판, 그 뒤로 뾰족뾰족한 청량산과 그 우측의 문명산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청량산 뒤쪽으로 문수지맥이다. 그 우측으로 조산봉(854.7m)과 갈산봉(913.3m) 등 봉화 재산면의 봉우리들이 가늠된다.
♤ 삼각점봉(816.1m)
여기서 넓은 일반등산로는 좌측으로 가고, 지맥 마루금은 우틀하며 등로가 좁아지고 희미하지만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등산로 주위에 노송들이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걷는다. 솔나리도 자주 눈에 띈다.
- 준희선생님 816.1m 산패와 4등삼각점 (소천 451) 2004재설이 있다.
♤ 설매재(583m)/ 성황당 터
설매재는 우측 봉화군 재산면 동면리 설매마을과 좌측 영양군 청기면 행화리 웃백운선마을을 잇는 옛 고개로 안부 좌우로 길이 보이고 우측에 성황당 흔적의 돌무지가 보인다.
♤ 751.8m봉
지맥길은 반파된 영양남씨 봉분을 지나자 마자 우측으로 휘어지며 내려가나 좌측 40m 지점에 준.희선생님 푯말이 있다. 좌측에 있는 준.희선생님 산패를 확인하고 되돌아 나가 내려간다.
- 설매재에서 영양남씨 묘가 있는 751.8m봉 이후 고만고만한 봉우리인 잔펀치들의 업다운이 약 두시간 동안 계속 된다.
♤ 수리봉(716.6m)
수리봉 전후 나무사이로 우측으로 청량산과 문명산 라인을, 좌측으로 일월산의 조망을 바라볼 수 있다.
- 덕산 지맥 준희선생님 산패가 나무에 달려있고 급우틀로 휘어져 내려선다.
♤ 성황당고개
이후 다시 크게 내려섰다가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다 성황당 돌무덤을 지나 크게 올라 행화봉에 올라야 하는데 능선 우측으로 청량산이 계속해서 함께한다.
♤ 행화봉(杏花峰, 745.6m)
우측 건너로 청량산과 문명산, 그 뒤로 문수지맥의 문수산과 대간 줄기가 보이지만 울창한 수목들로 조망을 기대하기 어렵다. 행화봉에서 완만하게 내려섰다가 다시 725.3m봉으로 급경사를 오른다. 725.3m봉 정상에서는 부지불식간 좌측의 뚜렷한 알바길로 내려가기 십상이다. 지맥길은 직진하여 내려선다. 행화봉을 내려서면서부터 다시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고도를 차츰 낮추어 덕산봉 전 잘록이 안부까지 내려서게 된다.
- 덕산지맥 준희선생님 산패가 붙어있고 날등 위에 판독불가한 삼각점이 있다. 청기면 행화리에서 행화봉의 명칭을 딴듯하다.
능선을 따라 약간 오르면 덕산지맥 준희선생님 산패가 걸려있는 덕산봉이다.
♤ 덕산봉(德山峰, 690.3m)
덕산지맥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있는 봉우리로 이 봉에서 지맥의 이름을 얻었는데 그 흔한 정상 표석 하나 세워져 있지 않아 초라하다. 전에는 참나무에 아크릴표지 산패가 부착되어 있었다는데 산너머방장님과 무도에서 수고해 주신 덕분으로 준희선생님 산패로 교체되었다.
- 일자능선으로 일반등산로는 우측으로 이어지나 지맥길은 희미한 등로를 따라 좌틀로 휘어져 내려간다.
♤ 서낭당 안부사거리
덕산봉 정상에서 좌틀하여 내려서면 경사진 안부이고 조금 올라선 곳에 펑퍼짐한 능선이 나온다. 가끔 걸려있는 표시기를 따라 조금 내려서니 또렷한 등산로가 나온다. 잠시 따르면 좌우로 길 흔적이 있는 서낭당 안부사거리다. 이 안부 사거리는 영양군 청기면 행화리 신다골 방면과 그 반대 쪽인 서북 방향의 봉화군 재산면 남면리 독골 쪽 사이를 넘나드는 고갯길이다.
송림지대를 지나고 649.2m봉에서 좌틀하여 내려서면 유인안동권씨 묘지가 나타나고 다시 608m봉애 올라 좌틀하여 내려섭니다.
♤ 행전봉(618m)/ 삼각점봉
정상에 문패없는 묵정묘가 한기 있다. 649.2m봉에서 3분여 내려서면 안동권씨묘가 나오고 좌측편으로 벌목이 되어 훤하게 트인다. 왼편 벌목지대를 끼고 크게 왼쪽으로 휘돌아 가는데 멀리 백암산과 맹동산으로 보이는 낙동정맥의 마루금이 보인다. 지나온 지맥 마루금과 일월산도 조망된다. 벌목지대를 지나 오르면 묵묘와 오래된 삼각점이 박혀있는 행전봉에 오른다. 이후 계속 내리막길이다. 분기점에서부터 줄곧 서행하던 지맥이 덕산봉부터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구간이다.
- 소나무를 쌓아놓은 벌목지에 막혀 트랙을 살펴보고 우측으로 넓게 우회하니 묘지로 내려선다. 나지막한 산비탈을 이용한 인삼밭이 태양광발전단지로 바뀌었다. 양회임도를 따라 내려서고, 농로6거리 양회임도를 정면 2시 방향으로 진행하면 수레길을 따라 내려선다. 우측으로 가로등이 모여 있는 곳에 인가가 있다. 큰느티나무가 있는 고추밭 안부에서 고추밭 그물망을 넘어 가로지르며 물탱크가 보이는 Y자 갈림길에서 좌측이 맥길 같지만 우측 양회임도를 따라 나간다. 포장임도 끝에서 이동통신탑이 있는 숲길로 들어서고 이동통신탑을 좌로 우회하여 임도따라 나가면 논골재이다.
논골재 내려서기 직전 고추밭 배수로에서 물을 채우긴 했는데 농약냄새가 나는것 같아서 영 못 먹겠더군요. 논골재에서 피치 못하게 탈출해야 할 경우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도 생각해 두었습니다. 재산면 택시를 불러 재산면으로 나가면 허름한 여관과 하나로마트가 있습니다. 명호면이나 청량산입구로 나가야 식당과 모텔이 있습니다.
♤ 논골재(505m)/ 군계이자 면계/ 918번 지방도/ 산불감시초소
논골재는 봉화군 재산면(才山面) 남면리와 영양군 청기면(靑杞面) 행화리가 갈리는 경계에 있는 재로, 918번 도로가 지나며 영양군 방향에는 주실마을(注谷里) 16.1km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봉화방향 왼편에는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논골재에서 좌측 아래로 약 800m 내려서면 행화버스정류장에서 영양읍으로 나갈 수 있다. 논골재에서 지맥길 들머리는 봉화군/재산면 교통표지판 좌측 옹벽위 절개지로 오르는 우측 산능선이지만 절개지가 가팔르고, 무명봉에 조망도 없으며 잡목만 심해 고인돌 뒤 양회임도를 따라 주로 마루금을 우회 한다. 청기면과 재산면을 가르며 진행하다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삼군봉에서 우측이 봉화군을 벗어나 안동시로 들어서서 우 안동시 예안면, 좌 영양군 청기면을 가르며 남향하여 진행한다.
- 논골재 내려서기 전에 마루금은 좌측이지만 논골마을로 내려서야 물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집들이 큰 길에서 조금 들어가 있고 입구에 개가 매어져 있어 물 구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 논골재에서 임도를 따라 들어서면 우측은 노지 수박밭, 좌측 멀리 일월산 능선이 길게 조망된다.
영양에는 주실조씨로 불리는 한양조씨 주실마을 외에도 재령이씨가 유명합니다. 소설가 이문열, 정치인 이재오도 영양 재령이씨 가문입니다. 제 고닥교 교감선생님도 주실조씨 조병인선생님이셨습니다. 경북도교육감 선거에 나가시기도 하셨는데.... 그리운 은사님이십니다.^^
♤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注谷里) 주실마을
주실마을은 한양 조씨의 집성촌이자 청록파 시인인 동탁(東卓) 조지훈의 고향이기도 한데, 조선 인조 때 지은 전형적인 양반가 건물이자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壺隱宗宅)이 마을 한복판에 널찍이 자리 잡고 있다. 이외 조지훈의 문학세계와 그의 유품을 만날 수 있는 「지훈 문학관」을 비롯하여 '시인의 숲', '시 공원', '시 광장'과, 영조 때의 문신 조덕린(趙德隣)이 지은 「옥천종택(玉川宗宅)」과 영산서당이 서원으로 승격된 이후 영양군에서는 처음 지어져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서당인 「월록서당」 등 숱한 문화자원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주실 마을은 「외씨버선 길」 중 여섯째 길인 「조지훈 문학 길」의 종점이기도 하다.
♤ 삼군봉(591.3m)/ 청량분맥갈림봉(영양군 청기면, 봉화군 재산면 → 안동시 예안면)
지금까지 영양군과 봉화군 군계를 이어온 덕산지맥은 여기 삼군봉에서 봉화군과 헤어지고 안동시와 영양군의 경계를 따른다. 즉, 우측이 봉화군 재산면에서 안동시 예안면으로 바뀌는 삼군봉이다. 지맥은 좌측으로 떨어지고, 우측 능선은 안동시와 봉화군을 가르며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청량분맥 산줄기다.
- 임도 우측에 있어 우회하기 쉬운 봉우리이다. 잘 관리된 묘지가 자리하고 있고, 준희선생님 산패가 묘지 옆 소나무에 걸려있다. 직진의 등로가 뚜렷하지만 좌틀하여 급경사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 청량분맥이란 덕산지맥 591.3m 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섬밭재와 고치현을 지나서, 청량산분기점에서 서쪽으로 산성단맥을 떨어뜨리고, 문명산-황우산(600m)-미림산을 걸쳐 봉화군 명호면 고계리 고계마을 앞 낙동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22.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도촌리가 뜨고 있습니다. 아니 앞으로 덕산지맥이 새롭게 정비될지도 모르겠군요. ㅎㅎㅎ 이재명 더불당 유력 대권후보가 예안면 도촌리 출신이라고요.^^ 그 도촌리 골짜기가 바로 덕산지맥 아래 지통말입니다.
♤ 지통말고개(497m)
준희선생님 591.4m봉 산패가 있는 봉우리에서 근 100고지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서는 잘록이 안부이다. 좌우로 옛길의 흔적이 있는 고개로, 성황당 터의 돌무데기와 거목이 있다. 좌측 영양군 청기면 무진리와 우측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말을 잇는 고개이므로, 지통말고개로 부른다. 지통말은 지촌(紙村)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이 마을에 한지를 뜨던 통[지통]이 있었다 하여 붙은 마을 이름이다.
- 지통말 고개 이후 준희선생님 산패가 나무에 달려있는 586.4m봉에 올르고 계속해서 500에서 600고지 사이의 톱날처럼 이어지는 작은 봉들을 약 두시간에 걸쳐 오르내리는데, 특징없는 잔펀치의 업다운이 서너개 계속된다.
♤ 삼각점봉(597.0m)
여러둥치가 묶여 자란 신갈나무가 있는 578m봉에서 잠시 내려섰다 다시 올라서면 597.0m 삼각점봉이다. 송이 산지여서인지 '성창임업㈜ / 입산금지' 표지가 나무에 붙어있고, 찢어진 플래카드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송이철엔 산주와 마찰이 예상되는 구간이다.
- 3등삼각점 (예안 305), / 2004재설이 있다.
♤ 601.9m봉
지맥에서 좌로 약간 벗어나 있고, 다시 돌아나와야 한다.
♤ 장갈재(505m)/ 920번 비포장 지방도
장갈재는 우측(서쪽) 안동시 예안면 동천리 장갈리 마을과 좌측(동쪽) 영양군 청기면 토곡리(흙티) 갈하마을 사이의 고개로 920번 비포장 지방도가 지난다. 등로 좌측 편에 성황각이 있는 장갈재에 내려선다. 문고리가 걸려있는 성황각 안을 들여다보니, 촛대와 향로, 고깔모자를 쓴 두 산신이 모셔져 있다. 도로 건너 들머리 초입에 안동 웅부산악회에서 붙인 「안동시 경계 / 삼군 경계 6.8km - 장갈재 - 동산령 13.6km」 팻말이 걸려있는데, 삼군 경계는 지나온 봉화· 영양· 안동이 갈리는 삼군봉(591.3m)을 말하고, 동산령은 영등지맥 상에 있는 동산령을 말한다고 한다.
♤ 예안면 장갈리(長葛里)
우측의 장갈리마을은 동계천이 흐르는 불미골 동쪽에 있는 마을로, 길게 뻗어있는 모양이 칡덩굴처럼 여러 갈래로 뻗어있다 하여 장갈이라 이름 붙었다 한다.
♤ 530.7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있다.
♤ 장갈령터널
안동시 예안에서 영양군 청기를 거쳐 영양읍으로 연결되는 지방도 920호선(예안~영양) 구간 중 그동안 단절돼 있던 예안~청기 간 도로 확·포장 사업으로 터널을 뚫었다. 도에 따르면 이 사업은 399억 원을 투입해 2023년 완공 계획으로 영양과 안동을 직접 연결하는 간선도로망으로 건설되며, 예안~청기 간 도로 확포장 사업은 영양군 청기면과 안동시 예안면을 직접 연결하는 간선도로로 영양에서 안동까지 운행거리 15km, 소요시간 15분을 단축케 된다. 그동안 청송 진보를 거쳐야 하는 우회노선을 최단거리로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지역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겨울철 강설, 결빙과 잦은 낙석 등으로 먼 거리를 우회해야만 했던 지역 주민들로부터 조기착공 요구가 이어져 왔다. 영양군과 안동시를 잇는 장갈령터널을 건설함으로써 양 지역의 인적 물적 교류는 물론 지역균형발전에 크게 기여케 될 것으로 보고있다.
♤ 장갈령(長葛嶺, 565.9m)/ 삼면봉(안동시 예안면, 영양군 청기면 → 안동시 임동면)/ 영등지맥갈림봉
장갈령은 경북 영양군 청기면(靑杞面), 안동시 임동면(臨東面) 대곡리와 예안면(禮安面) 동천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청기면, 예안면, 임동면이 갈리는 삼면봉이다. 예전에는 영양현과 예안현 또는 안동부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가 지나가던 고개였다. 지금은 산행을 하는 이들이나 가끔 지나는 길목이다. 참나무, 소나무, 굴참나무 등이 우거져 있으며, 대곡리에는 수령 500여 년 된 굴참나무(천연기념물 제288호)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예안)에 "장갈현(長葛峴)은 현 동쪽 30리에 있는데 영해부(寧海府) 청기현(靑杞縣)의 경계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상당히 오래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예안의 옛 지도에도 대부분 장갈령을 지나 영양으로 가는 도로 표시가 있다. 덕산지맥은 삼면봉인 장갈령(565.9m)에서 영양군과 헤어지고 안동시로 진입하여 예안면과 임동면의 면계를 따라 위동재 넘어 396.6m봉까지 진행한다. 즉, 장갈령에서 좌측이 청기면에서 안동시 임동면으로 바뀌어 온전히 안동시 안으로 들어서서 안동시 예안면과 임동면을 가르며 돌메기재 이후까지 이어진다. 고개가 아닌 봉우리에 ‘嶺’이 붙어있다. 산경표에는 「장갈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산봉우리가 고개 이름인 령으로 표기되는 경우는 기지맥을 하며 가끔 보아온 터이다.
- 정상에는 안동 웅부산악회에서 붙인 「안동시 경계 / 장갈령」 표지판과 독도님의 「영등지맥 분기봉 / 565.9m」 표지판 및 수많은 시그날이 걸려있고, 약간 떨어진 나무에 '준·희' 님의 영등지맥 분기점 산패가 붙어있다. 덕산지맥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좌측 남쪽 능선은 영등지맥이 이어진다.
♤ 영등지맥(嶺登枝脈)이란
영등지맥은 낙동정맥 칠보산(974m) 남쪽 2.2km 지점 무명봉 직전에서 서남쪽으로 가지를 친 덕산지맥이 일월산 서북쪽 2.4km지점에서 일월지맥 산줄기 하나를 분기하고 남서진하여 동화재, 덕산봉(690m), 논골재를 지나 장갈령(長葛嶺.570m. 분기봉에서 33.1km지점)에서 남쪽으로 또 하나의 산줄기를 분기해 왼편으로 보이는 임도를 지나 607.4m봉, 벽산(567.1m), 영등산(505.5m), 동산령, 가랫재, 고산(528.5m), 아기산(588.9m )을 지나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임하호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5.6km 되는 산줄기를 말한다.
♤ 영등지맥 개념도
♤ 잘록이 안부(483m)
장갈령에서 우틀로 내려서면 등로 좌측에 임도가 나란히 지나간다. 좌측으로 임동면 대곡리 마실골 아래의 대곡저수지를 바라보면서 잘록이 안부를 지난다.
♤ 안동시 임동면 대곡리(大谷里)
마을이 크고 긴 골짜기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대곡(大谷) 또는 한실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임하현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복수천, 해천, 신평, 고도, 금수천, 고사, 갈마곡과 위리(渭里) 일부가 통합되어 대곡리로 개편되었다. 1931년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임동면 대곡리가 되었다. 대곡리는 임동면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임동면소재지인 중평리에서 지방도 999호선을 따라 약 17㎞ 지점에 있다. 마을의 가운데로 장갈령에서 흘러내리는 대곡천(大谷川)이 남류하여 임하호로 흘러들어간다. 마을은 이 대곡천 주변에 띄엄띄엄 형성되어 있다. 행정리는 강변(새마을), 새들, 바드래, 복바드래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대곡1리와 샛마, 굿마, 한실, 가르점, 돌목이, 고들마, 금바드래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대곡2리가 있다. 동쪽으로는 영양군 청기면과 입암면, 서쪽으로는 예안면 인계리와 구룡리, 남쪽으로는 임동면 위리와 마령리, 북쪽으로는 예안면 동천리와 이웃하고 있다. 임동면 대곡리 583번지에 소재하는 안동 대곡리 굴참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부에서 6분여 올라선 능선에서 이후 여러 봉을 산사면으로 우회하는데 우측 멀리 청량산이 조망된다.
♤ 삼각점봉(580.9m)
580.9m봉에는 준희님 산패가 달려있고 식별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다.
♤ 545.9m봉/ 삼각점봉
- 삼각점이 있다.
♤ 운남분맥
낙동정맥 칠보산 지나 남서쪽으로 분기한 덕산지맥이 덕산봉 지나 서쪽으로 재분기한 운남분맥은 502.1m봉, 덕재, 361.5m봉, 334.7m봉, 운남산을 지나 안동호로 맥을 다하는 길이 22.5km의 분맥으로 좌측으로 구계천을 우측으로 동계천으로 흘러드는 지류를 흐르게 한다.
♤ 523.6m봉/ 꼬구랑재
좌측으로도 봉우리로 이어지는 삼거리갈림봉으로 마루금은 우틀하여 내려선다. 재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의 평평한 꼬구랑재이다. 오히려 봉우리인데 재로 표시된듯 하다.
♤ 물무덤골재(416m)
우측의 안동시 예안면 구룡리에 물무덤골이 있고 그리로 내리는 묵은 하산로가 있다. 이곳 물무덤골재에서 540.3m봉까지 급경사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 돌메기재/ 면계, 임도
돌메기재는 안동시 임동면과 예안면 면계이다. 묵은 임도가 지나는 안부로 고목나무 두그루가 있다. 국가정보원 지도에는 ‘돌매기’로, 안동시청 홈페이지에는 ‘돌메기’로 표기되어 있다. 고개 우측으로 경북 안동시 임동면 대곡2리에 돌메기/돌목이 마을이 있다. 마을 뒤쪽 고개마루에 큰 돌 두개가 마치 성문처럼 놓여 있어서 돌목이라고 했다.
- 넓은 임도와 전신주가 있는 들메기재에서 바로 앞의 절개지를 치고 오른다.
♤ 포대봉(550.6m)
돌메기재에서 540.8m봉을 지나 영진 5만 지도에 포대봉으로 표기된 봉우리이다. 도엽명이 없는 4등삼각점 420, 78. 7 건설부가 있다. 좌틀로 내려서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 금수천임도/ 삼거리
금수천 임도는 좌측 임동면 대곡리 금수천마을과 우측 예안면 구룡리 한바우 마을을 잇는 임도다. 금수천 마을에 장수가 칼을 든 형세의 산이 있다. 그리고 마을이 산마루에 위치하며 마을 지형이 금수장갑형상(錦繡藏甲形像)이라고 하여 마을 명칭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좌측 금수천 마을 방향으로 잘생긴 소나무 두 그루가 보이고 앞에 농장이 있어 물을 구할 수 있다. 임도로 가는 트랙도 많지만 잡목 능선으로 올라선다.
- 좌측 임도를 따라 내려가 대도농장(사과과수원)에서 식수를 보충할 수 있다.
- 한바우마을 앞산입니다.
♤ 원시미임도/ 삼거리
좌우 넓은 임도로 96 민유임도 시설공사 임동-대곡 공사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원시미 임도 삼거리이다. 우틀로 돌아 수레길을 따라 올라선다. 빽빽한 가시잡목 숲이 가로막아 정상 오르기가 쉽지많은 않다. 정상 올라서면 묘지가 한기 있고, 돌아나와야 한다.
♤ 위동재(312.2m)/ 935번 지방도로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 찰앞시골 마을과 임동면 위리의 경계로 935번 2차선도로가 지난다. 고갯마루는 삼거리로, 마루금은 임도에서 조금 멀어졌다가까웠다 하지만 맞은편 도로 건너 계곡리로 들어가는 임도를 따라가다 임도가 좌로 휘어지는 고개마루 근처에서 우측 산길로 진입한다. 우측편에 시그널이 다량 달려있다.
- 사월큰길 도로 표지판 아래에 수준점(312m)이 있다. 들머리는 임도를 따른다.
-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 찰앞시골까지 1.5km거리이며, 예안면과 임동면을 잇는 대중교통은 오전, 오후 하루 2회 건너편 구룡마을까지 운행한다.
첫댓글 덕산지맥 첫 구간은 영양군 수비면 새신마을에서 안동시 예안면 경계의 위동재까지 진행하셨네요.
45km, 27시간 걸렸으니 지맥의 반 정도는 소화하신 거구요.
원샷 종주 이야기도 나오곤 하지만 ~ 장마철과 겹쳐서 진행 상에도 고심하시고 잘 진행하신 듯 싶습니다.
울진, 영양 쪽의 낙동정맥 시절이 문뜩 떠오르네요.
꿋꿋하게 구간 잘 마무리하신 결과입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멋지십니다.!
방장님 일빠 축하드립니다. ㅋㅋ
제가 덕산을 한방에 할려도 이미 현상선배님과 다류대장님이 한방에 해치우셔서 흥행에 자신이 없습니다. ㅋ
원래 계획은 영양에서 자고, 신암리에 첫차로 들어가 시작해서 금댕이재까지가 목표였는데...
여러 이유로 시시각각 변했습니다.
위동재에서 금댕이재까지 약 10km인데,
후반부라 기운도 나지않을것 같고 안동역에서 청량리행 막차에 대기가 빠듯하겠더군요.
후기도 2:2로 나누는게 낫겠고,
머잖아 같은 방식으로 모기장 텐트를 가져가 한번 더 비박진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엔 좀더 큰 전지가위를 가져가 볼려고요; 그 금댕이재 직전 장애물을 절단할 경우를 대비해서리.. ㅎ~
덕산지맥 이틀에 걸쳐서 무더위에 고생 많이 했네요
홀로 산행 하기야 홀산이 좋다고 생각 합니다
저도 아직 홀로 산행 할 지맥이 아직 많네요
덕산지맥을 세구간 나누어 종주 했는데 첫 구간은 하지 못했네요
분기봉~논골재 구간도 긴 구간인데 홀로 언제 산행 계획 중입니다
약간 선선 할때 생각 중이고
늘 홀산시 안산 하시기 바랍니다^0^
와룡산선배님!
하늘이 돕나봅니다.
구름도 많고, 바람도 불어주고...
약간의 비는 감수하고자 했는데 비가 안 온다는 예보에 이것저것 짐을 많이 덜 수 있었습니다.
처음 계획은 일월산 다녀오기로 사전 조사를 충분히 마쳤고, 논골재 자정쯤 도착 예정이었습니다.
준희선생님이 나중에 일월과 영등을 묶어서 해야하는데 굳이 다녀올 필요가 없다고 조언을 주시고 시간도 촉박하여 패스하게 되었습니다.
덕산지맥 교통편은 잘 정리했으니 나중에라도 도움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퐁라라님 덕산지맥 1구간 길게 가셨네요
새신마을 알바 생각이 나고 일원지맥분기점 일월산 멋져요 위동재까지 완성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화이팅입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
세르파선배님!
새신마을에서 신비님 트랙 따르다 알바 잠깐 하신거 알고 있습니다.
거기가 GPS 접속이 안되는 지점이란걸 미처 알지 못했네요.
직전까지도 신암리 새터마을이 출발점이었으니깐요. 자세하게 준비를 못 했어요.
비를 생각하고 지도도 넣지 않았네요.
아직은 GPS접속이 안되면 감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오합지졸입니다.
차분하게 새신마을이 낙동의 오른쪽(서쪽)에 있으며 낙동에 달라붙을려면 동진해야 된다는걸 생각하고 방위를 잡아야 하지만,
나침의가 없으니 그마저도 불가하고 진입로에 띠지를 살폈지만 세르파님 띠지도 발견을 못했어요.ㅠㅠ
오로지 빨리 GPS가 터지는 능선으로 오르자는 일념 뿐이었고
지금에 생각하니 분기점에 다녀왔더라면 싶습니다만 왕복 두시간은 소요될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접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퐁라라운영자님 오랜시간 준비를 하셨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던 덕산지맥 이네요
분기점을 못 만나 보셔서 많이 서운했겠습니다.
그리고 덕산지맥에 산패는 제가한게 아니고 산너머 대장님이 했습니다.
덕산지맥도 이제 한번만가면 되겠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 부뜰이운영자성님!
그랬군요. 얼른 가서 산너머님 산행기 한번 더 살피고 왔습니다.
2년 전 6명의 전사가 한방으로 진행하셨더군요. 보기는 했는데 자세히는 읽지는 못했어요.
부뜰운영자님은 아직 덕산은 안 하셨나봅니다.
다음 구간 비박지론,
광산고개 버스정류소나 다락마을 지나 1등삼각점이 있는 정자가 유력 후보지로 떠올랐습니다.^^
이튿날 시간이 많이 남는데 임청각과 구 안동역 그리고 찜닭으로 유명한 신시장 쪽을 둘러보며 안동 관광을 조금 해야 하겠습니다.
마음으론 하회마을도 가보고 싶은데 다음날 벡신 2차접종 예약이 되어있어 크게 무리를 하지 않을려구요.
비 때문에 출발하는데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붙기만 함사 진행하는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구요.
영양 청기면 쪽으로는 보이는 게 별로 없고, 봉화 재산면쪽으로는 마을이 가끔씩 보이더군요. 감사합니다.^^
밝은 날의 새신마을 끝집이 저렇게 생겼네요..
야간에 지나가 놔서 제대로 못봤었는데요.
일월지맥 분기봉 가면서 구름에 가린 일월산을
몇번 담으려다 겨우 흐릿한거 하나 담았던 것도
같구요..
철쭉 가지와 안개가 방해를 많이 했거든요.
그리고 보니 반바지님의 코팅산패는 못봣던거
같은데 제가 다녀온 후에 진행 했었나 보네요.
덕산지맥 주봉인 덕산봉에 올라서니 정상석도 없고
산패도 없어서 혹시 떨어졌나 찾다 보니 부러진 나무에
가려서 숨어 있기에 다시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서
달아 두었는데 눈에 잘 띄였나 봅니다. .
산불감시 초소에서 어둠을 피해 비박도 하시고 홀산이
자유로워 보이십니다. ㅎㅎ
은근 오르내림도 많은 구간들인데 꾸준한 걸음으로
진행 하시며 두루두루 잘 살피시네요.
다음 구간 부터는 좀 수월한 구간들이 많으니 속도도
나고 경치도 즐기시는 즐거운 걸음이 되실듯 합니다/ ^^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류대장님!
반바지님은 아마 보름쯤 전에 자유인에서 다녀온듯 보입니다. 재주니님도 같이요.
일월산을 보고 가는데 송신탑이 보이다가 사라지다 하던데 사진을 찍을만한 포인트가 없더군요.
행화봉 부터 빗기가 약간 비쳐 맘이 바빴더랬습니다.
제발 오더라도 논골재 도착해서 내렸음 하는 마음으로 서둘렀고요.
논골재 비닐하우스도 비박자리로 봐두었기에 들춰보니 수박 밭이더군요.
비박하는데 밖에서 돼지들 꿀꿀대는 소리가 맹꽁이 울음소리 같이 들리데요.^^
꽁냥꽁냥~ 꿀꿀꿀
이번에도 길섶에 딸기 많이 따먹었습니다.
멍석딸기도 맛나지만 하나씩 달린 곰딸기가 큼지막하니 먹을만 하더라구요. 감사합니다.^^
오우 45키로 한번에 덕산지맥 반틈을 하셨습니다.
영양군의 여러 얘기를 전설의 고향에서 다 들었던 내용인데도 불구
다시 읽어보니 또 새로운 재미가 있습니다. ㅎㅎㅎ
여유롭게 걷고 다 좋았는데 식수 구하는게 제일 큰 문제네요
밥은 굶어도 물을 보충하지 않으면 살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농약이 섞여 있을지 모르는 식수는 가급적 피하시기 바랍니다 .
오죽하면 그렇겠나 싶기도 하여 애잖하기도 하지만 물은 진짜 신경쓰셔야합니다.
행복한 지맥길 여유롭게~ 앞으로도 응원드립니다.
힘내세요~
네~ 부케님이 정확하게 보셨네요.
덕산지맥은 식수 공급이 젤 중요합니다. 특히나 여름에는요.
거리상으로 논골재에서의 물 보충이 중요합니다.
논골재 내려서기 전에 태양열집전판 지난 삼거리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민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논골재 도로에 내려섰다면 도로따라 영양쪽으로 600m 내려서면 민가가 있다구하고요.
멀리 가기 귀찮아 고추밭 배수구에서 보충했더니 고추밭에 주는 물이었는지 영 고추뿌리 냄새가 나고 안 되겠더라구요.
지통말고개에서 시간이 촉박하니 마냥 내려가기도 그렇고, 비록 깨끗하지는 못하지만 다시 물을 구했습니다.
설매재에서도, 지통말고개에서도 그 전날 비가 내려 물을 구할 수 있었고, 가뭄에는 바닥까지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구요.
금수천임도 좌측에 있는 대도농장 수돗물이 그렇게 반가웠답니다.^^ 감사합니다.
덕산, 준비를 엄청 많이 하신 것 같은데,
준비한 만큼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속상할 것 같습니다.
완전정복, 고등학교 참고서 제목으로나 가능하지
마루금에서는 실현 불가능에 가까운 말인가 봅니다.
들머리에 접근하는 상세한 교통편, 식수 문제 등
상세한 안내는 후답자들의 알토란 정보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덕산지맥의 전체적인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셔서 나중에 답사하는데 엄청 도움되리라 사료됩니다.
비를 핑계로 원샷 종주는 불발에 그쳤지만,
그렸던 덕산지맥의 그림은 퐁라라님 가슴속에 살아 꿈틀대리라 봅니다.
퐁라라님 따라서 저도 덩달아 '안동역에서 '를 흥얼거리며
산행기에 푹 빠졌다가 빠져나오는 엔딩 세리머니를 펼쳐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범산선배님!
습한 날씨에 한줄기 소나기가 기대되는 나른한 오후입니다. 맛점하셨죠?^^
덕산 졸업이 이 여름의 졸업이 되기를 바라며
마음은 벌써 덕산을 매조지고 주왕으로 떠나보냈습니다.
8월에는 주왕도 매조지고 영월에 어느 중간 쯤 서있기를 희망합니다.
제 후기는 선답기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통털어 종합정리한 것입니다.
후답자가 저처럼 자료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제 후기가 도움이 되어 좀 더 완성도 높은 후기가 나온다면 그 이상 바람이 없답니다.
덕산지맥분기점을 찾지 못해 아쉽습니다만
꽉 채움 보다는 적당한 비움도 공간의 미학이 있다하니깐요.
오나전 완벽함을 추구하는 마음에 허허실실 웃음 소리로 천공을 뚫을까도 생각했답니다. 위로 감사합니다.^^
퐁라라님 후답지근한 여름날씨에는 쉬엄쉬엄 하셔요~
그러다 더위드시면 득보다 실이큼니다~
저도 여름휴가때 덕산3구간 일월1구간 했습니다~
여름날씨에 아주 힘들게 산행한 기억이 나내요~
퐁라라님의 산행기 잘보고 갑니다~
항상 안,줄산을 바람니다~()()()
넵, 법광선배님!
그래서 덕산 마치고는 강원도로 피서갈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안동역에서 시외버스로 영양으로 가는데, 구 안동역과 법흥교도 지났습니다.
그리고 안동향교와 안동대학교도 지나고요. 광산고개로 올라가는 비리실마을 정류장도 지나더군요.
임하댐이 생기기 전에는 지금의 물 있는 곳에 도로가 있고 마을이 있었는데 산중턱에 도로가 생긴 셈이지요.
안동터미널에서 임동공용버스정류장까지는 40분 소요되더군요.
위동재에서 부른 임동면 택시기사님은
이제 나이가 많아 돈도 필요없고 낮시간대만(09~18시) 살랑살랑 한답니다.
밤이나 새벽에 부르면 안 나간다고 하시네요.
수몰 전엔 임동면에 개인택시가 7~8대 였어도 벌이가 괜찮았는데 이제 한대만 남았답니다.
다음 덕산지맥 졸업시에는 임청각과 구안동역 그리고 제비원을 다녀올 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