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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천안시와 충청북도 진천시 및 청원군 그리고 청주시의 만뢰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8년 02월 10일 (토요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흐리고 미세먼지가 있었으며 오전부터 강한 바람이 불며 추워지기 시작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4도에서 영상 06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장교현(21번 2차선 포장도로, 원진 임시버스정류장)-255 무명봉-280 무명봉-83번 송전탑-340 무명봉-391 무명봉-덕유산(415.6봉)-355 묵묘봉-벌목지대-325 무명봉-지장골고개(서낭당)-
이정표(환희산정상 0.8 Km, 덕곡산정상 1.0 Km, 대동저수지 1.0 Km)-준.희님 응원판-환희산 갈림삼거리 이정표(환희산정상 0.2 Km, 국사봉정상 1.6 Km, 대동저수지 1.6 Km)-환희산(402.6미터,
정상석과 삼각점)-환희산 갈림삼거리 복귀-385.5봉-304 무명봉 우틀-검정천막-양주조공 묘지지대-양계장과 민가-219 무명봉-영일정공 묘지지대-농업회사법인진천광역친환경농업(퇴비, 미생물배양)-
묘지지대-덕고개(송강로 2차선 포장도로)-민가와 밭 경작지-능선진입-186 무명봉-좌측 송전탑-우측 송전탑-220 무명봉-19번 송전탑-216 무명봉-207 무명봉(운동기구 갈림삼거리)-199
무명봉(운동기구 갈림삼거리)-202(운동기구 쉼터)-202 무명봉-무명안부-21번 송전탑-무명안부-밭 경작지-계산2길(1차로 포장도로)-190 무명봉(좌측 벌목지대)-193 녹슨 철조망-무명안부-
계산3길(1차선 포장도로)-202 묘지봉(우측 조망)-206.8봉-무명안부-퇴비와 미생물 배양회사들-182 무명봉-185 무명봉-벌목지대-아카시아나무지대-177 무명봉-도하3길(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
우측 대산영농조합법인)-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지대-178 잡목봉-26 송전탑-벅목 후 조림지-178 무명봉-소나무 조림지-179 무명봉-173.3 삼각점봉-무명안부-157 무명봉-172.5 무명봉(계산봉?)-
잡풀지대-165 무명봉-163 무명봉-쇠파이프 지대-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지대-165 무명봉-묘지지대-무명안부(시멘트 포장도로)-밭 경작지-인삼포 경작지-비포장 임도-벌목지대-159 무명봉-
평산신공 묘지지대-한고개(화북로 2차선 포장도로)-묵 밭-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지대-파란 물통-시멘트 포장도로-묘지지대-228.1봉-215 무명봉-도로공사 절개지-불난지역-181 무명봉-지독한
잡목지대-밭 경작지-두릉유리로(2차선 포장도로)-비포장 임도-동물이동통로(아산청주고속도로 옥산과 오창구간 통과)-비포장 임도-목령산 갈림삼거리(39번 송전탑)-무인산불감시카메라-
목령산(229.1미터, 팔각정, 삼각점)-목령산 갈림삼거리 복귀-비포장 임도 낙엽등로-154 무명봉-157 무명봉-오창에딘버러컨트리클럽 카드도로-컨트리클럽 본관-1번 홀-능선진입-2번 홀-골프장
식당 휴게소-능선진입(원형철조망)-155.2봉 이정표(목령산, 문화휴식공원)-162 무명봉-로프구간-205.3봉-191 무명봉 이정표(목령산, 문화휴식공원)-188 벤취쉼터 2봉-갈림삼거리(우측)-
153 무명봉-154.2봉-고속도로(아산청주고속도로 옥산과 오창구간) 옆 시멘트 포장도로-삽티고개(오창대로 540번 4차로 포장도로)-오창프라자 시외버스정류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가끔 아카시아와 산초 가시나무로 고생 했지만 대체적으로 양호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여 21.91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만뢰지맥 약 19.60 Km (장교현에서 삽티고개까지)
접속구간 약 02.31 Km (삽티고개에서 오창프라자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산행트랙 : 20180210 만뢰지맥 제2구간 장교현-삽티고개.gpx
산행시간 : 오전부터 불어오는 강한 바람으로 꾸준하게 진행하여 07시간 13분 (08시 31분에서 15시 45분까지)
교통편 : 갈때 - 05:47 봉천역에서 첫 지하철 탑승하여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이동 (1,250.-)
06:20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에서 천안행 버스 탑승 (5,400.-)
07:40 천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진천행 버스 탑승하여 장교현 원진에서 하차 (3,500.-)
올때 - 삽티고개에서 오창프라자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도보로 이동
16:00 오창프라자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남서울터미널 행 버스 탑승 (9,100.-)
17:27 서울남부버스 터미널역에서 지하철 탑승하여 봉천역까지 이동 (1,250.-)
음료수 : 4,400.-
산행 첫날 사용 총비용 : 24,900.-
만뢰지맥이란 ???
만뢰지맥은 금북정맥의 서운산에서 남쪽으로 5.1 Km 떨어진 엽돈재(34번국도) 남쪽 200 미터에서 분기하여 서남진하면서 만뢰산( 612.2 미터, 일부 지도엔 만근산으로 표기), 덕유산(412 미터), 환희산(402.2 미터), 취령산(또는 목령산, 229.1 미터)을 일구고 취령산(목령산)에서 방향을 바꿔 서남진하며 다시 상봉산(196 미터), 국사봉(171 미터)을 일구고 경부고속도로를 건넌후 마지막으로 응봉산(175.4 미터)을 들어 올린후 청주시를 바라보며 미호천에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9.5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이 산줄기를 지나는 산들중 제일 높은 산인 만뢰산의 이름을 따서 만뢰지맥이라고 박성태님이 신 산경표에서 표기하고 있다.
지나는 산들은 만뢰산(612.2 미터), 덕유산(412 미터), 환희산(402.3 미터), 목령산(혹은 취령산, 229.1 미터), 상봉산(196 미터), 국사봉(171 미터), 응봉산(175.4 미터)들이다.
진행하다 중단된 만뢰지맥에 다시 올랐지만 불청객인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조망도 없이 한구간 완주에 만족을 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작년 9월 말 청주에서의 가족 모임이 있어 근처의 산줄기를 찾다가 짧게 올랐던 만뢰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배낭을 챙겨보는 시간이다.
세계적인 M&A가 진행되어 몇 년전 이 산객이 근무하던 네덜란드 회사도 결국 10여배나 더 큰 독일계 회사로 흡수 통합되면서 회사 환경이 변하고 자신의 역활도 변하여 어렵게 제2인생을 살기로 결정하고 퇴사한 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결국 올 해 초 가장 중요한 사업 파트너와 최종 파트너쉽 계약을 맺어 2주 전부터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다만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산객이 근무하던 회사의 최대 경쟁사였기에 아직은 혼란스러워하는 고객들과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이다 보니 새로운 아이템과 설비들이 많아 당분간은 사업에 전념하며 회사를 안전화 시키는 것이 급선무이기에 지금까지와는 달리 산행에 오르는 기회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기에 더욱 마음 졸이며 산행에 매달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 정년 퇴임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에 평생 일을 할 수 있는 제2인생의 기회를 잡았으니 후회없이 멋진 삶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조금 더 노력하고 편안한 시간이길 바래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곳 만뢰지맥 산행 역시 작년에 처음 시작하지 않았으면 길게 걸어 두번만에 완주를 목표로 진행을 하였겠지만 작년에 장교현까지 짧게 진행을 하였기에 나머지 구간은 한번에 진행하기엔 하루해가 너무 짧아 두번에 나눠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걸어도 될 정도의 거리이기에 큰 부담은 없어 좋다.
특히나 서울에서 먼 거리도 아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큰 어려움이 없기에 하루 산행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귀가해 쉬고 다음날 다시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생각보다 일찍 끝이날 것 같아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겨 보는 만뢰지맥 산행이 되었다.
한동안 차가운 동장군의 기세가 대단해 남쪽 지방으로만 내려갔었는데 요즈음 날씨가 약간 풀리면서 진행하다 중단된 지맥중에 서울 집에서 가까운 만뢰지맥을 생각해 본다.
하지만 달갑지 않은 불청객인 미세먼지와 박무가 시야를 가리고 목구멍을 따갑게 만들어 산행 후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특히나 기대했던 조망은 거의 볼 수가 없어 아쉬움만 한가득 남겼던 시간으로 남겨 본다.
그래도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덕유산을 넘고 벌목지대로 진입하니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환희산 정상부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미세먼지속에서도 선명하게 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잠시 진행하던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으로 남겨 본다.
처음 환희산 정상부를 올려다 보며 우측이 조금 더 높게 느껴졌었는데 볼수록 정상석이 박혀있던 좌측 봉우리가 조금 더 높게 보이는 것은 아마도 모두 다녀 와 마음 편히 사진으로 올려다 보는 시간이었기에 정상적인 생각으로 바라봤던 것은 아니었을까 잠시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산행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근래들어 가장 심한 불청객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조망과 풍경을 즐기지 못하고 진행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즈막한 목령산 정자에 오르니 잡목 가지 사이로 제한된 시야이지만 사방팔방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과 풍경을 즐기는 시간도 가져보며 이름 맞추기를 해 본다.
제일 먼저 동쪽으로 이것 목령산 일명 취령산으로 올라오는 뚜렷한 등산로가 바로 발 아래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능선을 지나 오창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과 그 좌측으로 오창읍사무소쪽 그리고 우측으로는 청원오창2일반산업단지의 거대한 공장 건물들이 어느 유럽의 공장 단지처럼 낮은 빌딩에 거대한 자리를 차지하고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 좌측인 북서쪽으로 지나온 방향의 만뢰지맥 마루금을 찾아 보지만 나뭇가지로 가려져 있고 시야도 제한되어 있어 잘 구분이 되지 않아 아쉬움만 남기고 내려오는 목령산 정상이었다.
집에서 가깝고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도 어렵지 않아 마음 편히 느긋하게 준비하여 어렵게 지하철 2호선 첫 열차를 타고 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10여분의 여유가 생기고 잠시 마트에 들려 이 산객이 좋아하는 음료수를 확인하니 전국에서 가장 비싼 가격이기에 오늘도 사는 것을 포기하고 버스 출발시간을 기다렸다 6시 20분 발 천안행 버스에 몸을 실는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정신없이 잠에 취했다 일어나니 드디어 천안에 도착을 하고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서쪽으로 100여미터 근처에 있는 백화점 지하의 일반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해 마트에 들리니 같은 음료수 가격이 400.-원이나 차이가 나는 가장 저렴한 가격이기에 3병을 구입해 배낭에 넣고 진천가는 7시 40분에 탑승을 해 느긋하게 장교현으로 간다.
덕성리까지 버스표를 구매한 후 천안독립기념관도 들리고 다른 마을들도 들리며 사람들을 태우고 내려주는 버스에서 병천을 지나 기사분에게 장교현 고갯마루에서 내려줄 수 있느냐고 하니 어느 회사에 다니느냐며 고갯마루 지나자마자 좁은 공터인 원진이라는 회사 앞에서 잠시 정차하니 그곳에서 내리면 된다고 알려 줘 편안하게 장교현 고갯마루 10여미터 지난 지점에서 내리게 되었다.
지난 해 9월 23일 만뢰지맥 첫 구간 산행을 마치고 땀에 찌든 모습으로 지독한 칡넝쿨을 헤치고 내려왔던 장교현은 이제 한겨울 모진 칼바람에 그 무성했던 칡넝쿨도 모두 사라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쓸쓸한 고갯마루로 남아 있다.
장교현(220미터, 21번 포장도로)은 충청남도 천안시의 동남구 동면 덕성리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금암리 경계의 국도 21호 2차선 포장도로 선상에 위치한 고개로서 장교다리고개 또는 장교티(치)라 고도 부른다.
팔도군현지도의 목천과 조선지도의 목천에 직산 및 안성과의 경계에 장교치가 나타나고 조선지형도에 덕유산 북쪽 동면 덕성리와 진천 금암리 경계로 장교현이 표기되어 있다.
1464년(세조 10) 임금이 병을 고치기 위하여 전국의 여러 명산대천을 찾아다녔고 그때 세조가 보은 속리산으로 거동하게 되었는데 진천의 길상산(467미터)에 충청도 군사 4만여 명을 모아가지고 큰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때 충청도 목천 서쪽에 있는 각 고을의 장교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이 고개에서 쉬어 갔으므로 장교고개 혹은 장교다리고개 등으로 부른다고 하며 한편 장교 지명의 교는 다리의 교로 해석될 수도 있어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장교현 도로 옆 들머리에서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산행 준비 후 곧바로 절개지 위 낙엽들을 헤치고 제2구간 산행을 시작해 본다.
지난 여름 지독하게 자라났던 가시덩쿨과 잡풀들도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잠들어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낙엽 등로를 타고 가파르게 오르니 등로는 좌측 사면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잠시 더 좌측 사면 등로로 걸어가다 우측의 가파른 된비알 오르막 등로로 오르니 금새 도로 공사로 잘려진 정상적인 주등로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 그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이어가 본다.
발목 이상을 빠지는 낙엽을 헤치며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니 고사목들이 썩어 널부러져 있는 255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다시 커다란 참나무들이 보이는 안부를 넘어 오르니 이곳 역시 큰 참나무와 널부러진 썩은 고사목들이 보이는 280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미세먼지가 심한지 아침부터 목이 따끔거리기 시작하고 시야도 제한되어 보이는 풍경이 아주 가깝게만 보이는 산행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기에 아쉬움을 남기며 걸어 보는 시간이다.
다시 낙엽이 떨어져 수북히 쌓여 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83번 송전탑을 지나고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는 340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다시 죽어있는 고사목들이 자주 보이는 낙엽 등로를 따르니 무명안부를 지나 올라 391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내려갔다 오르니 아무 표식도 없는 덕유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한현우님이 작은 종이코팅지에 덕유산이라는 이정판을 걸어 놨다.
덕유산(415.6미터)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와 천안시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진천군의 남서쪽인 환희산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덕유산과 만뢰산 사이에 천안시로 넘어가는 고개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천안시와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천안으로 넘어가는 여러 개의 고개가 인접하여 있다.
이 산은 진천과 병천면 사이의 장교현 바로 남쪽에 위치하는데 조선지형도의 동면 북동쪽 덕성리와 죽계리 일대에 위치하고 덕현과 병기해 있으며 지명에서 사용되는 덕자는 우리나라 산 지명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전라북도 무주군 일대의 덕유산도 산이 크고 골이 깊으며 정상부가 평평한 곳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며 지역에 따라서는 덕스러움을 나타내기 위하여 덕자를 표기하는 예도 있다.
한편 덕성리의 바타니 마을은 일명 배성이라고도 하는데 덕유산을 비롯한 여러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므로 박달안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바타니라 부르게 되었다.
사진 한장 남기고 주위를 둘러 본 후 다시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드디어 등줄기에서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고 방풍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편안한 목장으로 진행을 이어가 본다.
덕유산을 지나 여전히 보이는 커다란 참나무와 그 아래 떨어져 수북히 쌓여 있는 활엽수 낙엽을 밟으며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잡목이 자라 묘지인지도 모를 묵은 묘지 한기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벌목지대가 펼쳐지는 곳에 도착을 하는데 그 아래 벌목지대에는 벌목된 나무들을 잘라 실어 나르는지 기계음이 들리고 사람들 모습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진행 방향의 환희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살펴보고 좌측으로 벌목지대와 그 아래를 살펴보니 지안리 지장골로 이어지는 골짜기가 넘실거리고 그 뒤 저 멀리 금북정맥 마루금도 보일듯 한데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분간하기 어려워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기계음을 들으며 좌측의 벌목지대와 우측의 일반 수종이 자라고 있는 그 경계지점을 타고 내려가며 진행 방향으로 환희산과 그 좌측으로 펼쳐진 지암리 및 금북정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내려가니 깊은 낙엽이 발목까지 덮는 안부를 지나 다시 올라 커다란 참나무 두그루가 서 있는 325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심호흡 한번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낙엽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작은 돌탑들이 보이고 굿을 한 음식들이 남아 있으며 우측으로는 비닐 움막까지 있는 지장골고개에 도착을 해 비닐 움막을 살펴보니 오늘은 비어 있다.
지장골고개(지장고개, 무속인 신당)는 충남 천안과 충북 진천을 이어주는 고개로서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에 있는 지장골(지정골, 지장리)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된 듯 보이는 고갯마루이다.
충청남도 천안시 남동구 동면 죽계리의 대골은 대동 또는 죽동이라고도 하며 죽계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고 마을 뒤에 대숲이 있으며 철을 다루던 곳이였던 대골에서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의 지정골(지장리)을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무속인 터가 있다.
지장골이라는 지명은 이곳 지장골고개 양쪽인 천안과 진천 두 군데 모두 있어 어느 지명에서 유래가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대부분 진천의 지암리에 있는 옛날 지장사라는 큰 절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지명인 지정골(지장리)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는 무속인들이 토속신앙을 위해 비닐하우스를 짓고 굿을 하고 있는 지장골 고개는 천안시 동남구 동면 죽계리 방향으로만 등로가 나 있고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의 지정골(지장리) 방향으로는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사라지며 그 고갯마루 로서의 기능도 사라지는 듯 보이는 고개이다.
어릴적 시골에 살면서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소망을 빌 때 자주 이용하던 굿이기에 별 감흥은 없지만 늘 이런 굿은 후미진 마을 뒷산 어귀나 마을 어귀 등에서 해왔던 추억이 있어 그리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는 않는 곳이다.
그 지장골고개를 지나 깊이 쌓여 있는 낙엽을 밟으며 가파르게 오르니 두발 오르면 한발 뒤로 미끄러지는 그런 등로로서 진행에 잠시 애를 먹고 있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어렵게 오르니 우측으로 대동저수지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환희산까지는 800미터 거리라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보이는 이정표이다.
그런데 이 이정표에 지나온 방향으로 덕유산이 아닌 덕곡산으로 되어 있어 잠시 헷깔리는데 아마도 덕유산을 덕곡산과 혼용해 사용하는 듯 보인다.
한자로 유자가 곡자와 비슷해 일어난 헤프닝인지도 모르겠다는 추측도 해 보는 시간이다.
그 이정표를 지나 쓰러진 고사목들을 피해 이리저리 조심하며 걸어 오르니 약간의 낙엽송들이 보이고 잠시 후 어김없이 준.희님이 걸어 놓은 응원판이 보여 목례 한번하고 힘을 받아 계속 되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올라가 본다.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385.5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잡목사이로 올려다 보이는데 가까운 가리임에도 불구하고 풍경은 흐릿하게 다가와 아쉬움이 큰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또 다른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 200미터 거리에 환희산 정상이 있다는 이정표에 사진 한장 남기고 환희산 정상부로 방향을 틀어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고속도로처럼 잘 나 있다.
환희산(402.6미터)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과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02.6미터이고 기쁨을 안겨주는 산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 아래에 지장골과 송강 정철의 묘와 위패를 모신 송강사가 있는 은골이 있으며 남산이란 지명은 지장골 남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진다.
삼각산은 봉우리가 삼각형인 산이라는 뜻이고 환희산이란 지명은 하늘산이 한으산을 거쳐 나타난 어형이 될 수 있어 높은 산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산 아래 봉죽리 어은마을에는 조선 선조 때의 정치가이자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의 위패를 봉안한 정송강사(충북유형문화재 9)와 유물전시관이 있고 사당 부근에는 송강 묘소와 신도비가 있으며 유물전시관에는 은배와 옥배 등이 보관되어 있다.
정철의 묘소는 원래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 신원리에 있던 것을 1665년(현종 6)에 우암 송시열이 지금의 묘소로 자리를 정하고 그의 후손인 정양이 이장하였다.
산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고 정송강사에서 약 30분이면 정상에 도착하는데 산 능선을 따라 평지와 같은 등산로가 있다.
정상에 서면 청주시와 진천읍 및 천안시 등의 도심이 한눈에 들어오고 산 전체가 정철의 유적 순례지라고 할 수 있으며 정송강사에서 산행을 시작하고 마치는 데 1시간 안팎이 걸린다.
산행 전 이곳 자료를 찾아보니 진천군 문백면 일부는 가사문학으로 유명한 송강 정철의 유적 순례지처럼 알려진 곳으로 많은 등산객들 뿐만 아니라 여행객들도 찾고 있는 곳인듯 보인다.
환희산 정상에서 잠시 쉬면서 물 한모금 마시고 추억을 남긴 후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우측 잡목 사이로 환희산 갈림삼거리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흘러 내려가는 민뢰지맥 산줄기 상 385.5봉이 봉긋 솟아 있는데 처음에는 그 봉우리가 국사봉으로 착각을 해 한동안 주위 산 이름들을 맞혀보며 불필요한 시간만 보낸 후 정독을 해 보니 국사봉이 아닌 만뢰지맥 상 충청남북도의 경계지점인 385.5임을 알고는 홀로 피식 웃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 우측으로 보여야 할 국사봉은 보이지 않는데 이곳에서는 그 국사봉도 다녀오리라 생각을 했지만 막상 진행하면서는 국사봉 다녀 온다는 생각도 잊고 갈림삼거리도 찾지 못해 다녀오는 것을 포기하고 나니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이 환희산 바로 아래 정송강사가 있어 들려오고 싶었는데 산행을 하면서는 왜 그런 생각도 잃어 버리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정송강사 이곳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시인인 정철(1536~1593) 선생을 모신 사당이며 선생의 자는 계함이고 호는 송강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이 뛰어나 명종 17년(1562)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함경도 암행어사와 교리 등을 지낸 뒤 고향 창평으로 가 있다가 선조 13년(1580) 이후 3년간 강원도와 전라도 및 함경 3도 관찰사를 지낸 후에 우의정과 좌의정에 올랐다.
세자 책봉 문제로 파직되었다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국왕을 의주까지 모셨고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선생은 문신이기보다는 시인으로서 그의 천부적인 재질을 나타내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최고봉으로 관동별곡, 사미인곡, 성산별곡 등의 가사와 많은 단가를 남겼으나 정치인으로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원래 묘소가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에 있던 것을 현종 6년(1665) 우암 송시열 선생께서 현 묘소를 정하고 후손 정포가 이장하여 사우를 건립하였다.
산행도 일찍 끝마쳤는데 잠시 정송강사에 들려 살펴보고 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그 환희산 정상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추억 한장 남기고 뚜렷하게 나 있는 등로를 타고 환희산 갈림삼거리로 되돌아 온다.
이제 진행방향으로 국사봉까지 1.6 Km 거리라는 이정표가 반가운데 처음에는 저 국사봉도 잠시 들렸다 내려오기로 하고 출발을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그 국사봉으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도 찾지 못하고 진행하다 결국 국사봉을 다녀온다는 것은 포기하고 말았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데 다음에 기회되면 정송강사를 달렸다 잠시 359.5봉과 국사봉을 함께 올랐다 내려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환희산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약간의 낙엽이 깔려있는 고속도로 같은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충청남도와 북도를 가르는 도경계지점인 385.5봉이 잡목 사이로 제법 높게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낙엽이 깔려있는 미끄러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 무명안부를 지나고 다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쯤 작은 돌아 하나 보이고 그 뒤 나뭇가지에 맨발님이 달아 놓은 385.5미터의 이정판이 보여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그 385.5봉을 지나니 등로는 그림같은 등로로 변하고 잠시 힐링하듯 걸어가니 잡목들과 관목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지난다.
그 무명봉을 넘어 내려가며 등로 우측을 보니 드디어 국사봉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곳을 가기 위해 주의하며 갈림삼거리를 찾아 보지만 이 만뢰지맥 마루금에서는 분기되는 등로가 없는지 찾지를 못하였다.
한동안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소나무가 보이는 30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잠시 후 묘지를 보호하기 위한 검정천막이 쳐진 곳에 도착을 하는데 그 검정천막이 찟어져 바람에 날리고 있어 보기 흉물스럽다.
잠시 짧은 구간 잡목들을 헤치고 내려가니 양주조공묘지지대를 지나 비포장 임도를 만나고 그 임도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강아지 몇마리가 이방인의 출현에 목청껏 울부짓는 거대한 양계장과 민가가 보이는 마당 앞으로 내려 선다.
그 양계장이 있는 민가 앞을 빠르게 통과한 후 능선으로 오르니 집 주인이 나와 이 산객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처다 보는데 처음이 아닌듯 그냥 뒤돌아 들어가 버린다.
별 특징 없는 거대한 참나무와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219 무명봉을 지나 우측으로 크게 휘어 내려가고 잘 관리되고 있는 영일정공 묘지지대를 지나 진행을 이어가니 미생물을 배양하는 특유의 냄새가 심하게 나는 거대한 공장 옆으로 내려서는데 관리인이 일을 하다 등로가 없다며 이곳 공장지대로 내려오면 안된다고 하며 몇명이 오느냐고 물어 온다.
아마도 자주 목격을 했던 것처럼 물어 봐 혼자 진행을 하다고 하면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꼭 마루금을 따라 진행을 해야 하다고 하니 조심스럽게 가라고 알려준다.
이곳은 거대 공장으로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퇴비와 미생물을 배양하여 다양한 비료를 만드는 공장처럼 보이는데 미생물을 배양할 때 나는 냄새가 마치 젖소의 겨울철 식량인 사일리지가 발효되며 내는 냄새와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그 퇴비와 미생물배양공장 좌측 뒤를 돌아 능선으로 오르니 한동안 관리기]ㅏ 되지 않아 지독한 잡풀들과 가시나무들이 자라나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주지만 길지 않기에 조심해 통과를 하고 다시 이어지는 공장 절개지 위를 통해 조심스럽게 진행을 이어가니 각기 다른 성씨를 가진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지대를 지나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덕고개에 도착을 한다.
덕고개(1번 포장도로)는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와 계산리를 이어주는 2차선 포장도로인 송강로가 지나가는 고갯마루로서 들머리의 낡은 철문 한쪽에는 맨발님이 걸어 놓은 덕고개라는 이정판이 걸려 있고 그, 문이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민가가 보이는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며 맥 잇기 산행은 이어지고 있다.
그곳 비포장 임도를 따라 민가가 보이는 열려진 녹슨 철문을 지나 걸어가니 할아버지 한분이 나와 계시고 양해를 구해 민가 가기 직전 좌측으로 보이는 검정 비닐이 씌워진 비어있는 담배밭을 통해 능선으로 올라도 되느냐고 물어보니 잘 알고 계시다는 듯 그곳으로 오르면 등산로가 맞다고 올라가라고 말해 준다.
검정 비닐을 씌워 담배를 경작했던 밭을 타고 올라 키 작은 분재형 소나무들이 보이는 곳 좌측 옆으로 오르니 지저분한 생활 쓰레기와 빈ㄹ 천막들이 널부러져 있고 고사목들고 쓰러져 산행을 방해하고 있는데 잠시 후 주능선에 도착을 해 186 무명봉을 넘는다.
그곳에는 무한도전클럽에서 매달아 놓은 천안아산태극종주라는 산행 띠지가 눈에 띠는는데 살펴보니 이 만뢰지맥 상당부분은 바로 무한도전 클럽에서 새로 개통한 천안과 아산지역의 산줄기를 태극 문양으로 만들어 개통한 산줄기와 상당부분 겹치고 있었다.
다시 보이는 천막을 넘으니 좌측으로 송전탑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들이 보이는 220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하고 출발한다.
무명봉을 지나 뚜렷하게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이곳 등로는 주변 주민들도 자주 올라 오는지 등로 자체가 반질거리는 수준이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하니 19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잠시 후 완만하게 올라 통나무벤취와 의자들 그리고 불에 그을린듯한 작은 솥들과 그 앞에는 불을 피웠던 흔적이 있는 21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오솔길 같은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많은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 207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는 직진의 우측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을 해야 하는 길주의 구간이다.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등로에는 솔갈비가 깔려있어 진행에 큰 도움을 받고 그렇게 한동안 힐링하듯 뚜렷한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본다.
잠시 후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벤취쉼터와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 202 무명봉에 도착을 해 다시 사진 한장 남기고 심호흡 한번 더 한 후 흐르는 콧불을 닦아내고 천천히 그 운동기구봉을 출잘해 보는 시간이다.
다만 이런 산중까지 올라 와 운동을 즐기는 주민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면서 보여주기식 행정은 아닐까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두번의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을 지나 진행을 이어가니 갑자기 등로가 희미해지기 시작하고 그 희미한 등로를 찾아 진행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시간이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192.2봉 오르는 갈림삼거리를 만나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이어지는 정상 등로를 찾아 어렵게 진행을 이어가고 잠시 편안하게 걸어 깊은 낙엽 등로를 따르니 제법 깊은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그 안부에도 수북히 낙엽이 쌓여 있는 무명안부였다.
안부 자체만 놓고 보면 뚜렷한 좌우 통행했던 흔적이 남아 있어 지도를 확인해 보지만 아무 이름도 찾지 못한 무명안부를 통과해 본다.
그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금새 21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약간의 잡목들이 등로를 막아 진행을 방해하지만 큰 어려움을 주는 정도는 아니기에 조심하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후 사라지는 등로를 찾아 도랑같은 깊은 안부로 내려가고 다시 가파르게 오르니 정상 등로는 직진으로 이어지지만 선답자들의 트랙 대부분이 우측 아래로 이어지고 있어 조금 더 걸어 진행해 살펴보니 바로 아래에는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절개지이기에 직접 내려가지 못해 우측 우회 등로를 타고 1차선 포장도로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우측으로 내려가니 담배 농사를 지었던 밭에 비닐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진천군 문백면 계산리와 봉죽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에 도착을 한다.
도로 우측에 있는 봉죽리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있는 리로서 산에 둘러싸여 골짜기가 많은 산골마을이며 어은리, 봉암리, 대상리, 석보리, 옥산리 일부가 합쳐져 봉죽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갈마지, 바사리, 봉암, 대말, 은골이 있는데 갈마지(석보)는 봉죽리 남쪽에 있는 마을로 말에게 갈증을 풀게 하기 위해 물을 먹이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사리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말을 죽였다 하여 마살리라 불리던 것이 바사리로 변했으며 지형이 말의 바를 사려 놓은 형국이라 바사리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봉죽리쪽으로 보이는 마을 민가를 살펴보고 그 1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다시 담배 밭이 있던 곳을 통해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잡목들이 성가시게 굴어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절개지로 이어지는 정상적인 마루금을 만나 우측으로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한다.
잠시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벌목된 190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잠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는데 중간 중간에 거대한 공장 건물들이 보여 농촌도 많이 변해가고 있음을 실감해 보는 시간이다.
그 봉죽리 넘어 저 멀리로 희미하게 보이는 산줄기들은 금북정맥이라 생각되는 산줄기로서 상당산쪽이 아닐까 추측을 해 보지만 뚜렷하지 못해 정확한 산줄기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렇게 등로 좌측의 벌목지대와 봉죽리 마을을 살펴보며 설어 진행을 이어가니 갑자기 눈 앞에 녹슨 철조망이 나타나고 등로는 그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좌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그 녹슨 철조망을 타고 좌측 능선으로 진행을 해 보지만 금새 등로가 사라져 아쩔 수 없이 그 철조망을 넘어 염소농장이라 생각되는 농장 안 넓은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해 본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검정 천막들이 찟어져 흩날리고 있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고 그 안부를 통과한 후 능선으로 오르니 녹슨 철조망은 이제 우측 아래로 내려가고 마루금은 계속 이어지는 좌측 능선으로 오르고 있어 어렵게 그 녹슨 철조망 지대를 벗어 나 본다.
계속 이어지는 낙엽 능선을 따르니 커다란 벗나무가 보이는 무명안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고 빛바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를 확인하며서 걸어 진행하니 잠시 후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에 도착을 한다.
이곳 역시 등로 좌측은 문백면 봉죽리이고 우측은 계산리로서 두 마을을 이어주는 나즈막한 고갯마루가 지나는 계산3길로 표기된 도로이다.
계산리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있는 리로서 진천군청에서 남동쪽으로 약 15.0 Km에 있고 행정구역 통폐합 때 산직리, 낙계리, 신리를 병합하면서 낙계와 산직의 이름을 따서 계산리라 하였다.
남북으로 차령산맥이 가로지르는 험준한 산악지대로 영동과 영서로 갈라져 있으며 영동에는 미호천이 영서에는 성암천이 흐르는 마을로서 평야지는 극히 적고 계곡부가 많다.
자연마을로는 덕고개, 세거리(신리), 안적골, 흐네기(흐락기)가 있는데 덕고개는 덕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고 막골(마옥, 마위동)은 산직마을 서쪽으로 1.5 Km에 있는 마을로서 옛날 이곳에서 옥돌을 갈고 닦아 장신구를 만들었다 하여 마옥골이라 불리던 것이 바뀐 이름이다.
세거리(신리)는 안본골 서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고 문백면과 충남 천안시 동면 및 청원군 오창읍으로 가는 세 갈래 길이 있고 안적골은 산직말 북쪽 1 Km에 있는 마을로 옛날부터 피난처로 유명하여 이곳에 와서 난리를 피하고 평안히 살았다 하여 안적골이란 지명이 생겼으며 흐네기(흐락기)는 산직말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계곡 물이 마을 가운데로 흘러 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차량 통행도 거의 없어 보이는 이 1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곧바로 능선으로 올라서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뚜렷한 등로가 나 있어 진행에는 거침이 없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그 묘지 위에서 살펴보니 진천 문백면 계산리쪽 거대한 축사와 퇴비공장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미세먼지로 뚜렷하지는 않지만 천안시 동면의 마을들도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다가 멀어지고 있다.
묘지를 지나 다시 쓰러져 널부러져 있는 고사목들을 어렵게 통과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바랑산님이 붙여 놓은 206.8미터봉 이정판이 소나무 위에 보인다.
감사한 묵념 한번 드리고 사진에 담은 후 곧바로 그 봉우리를 출발하는 시간이다.
약간의 잡목이 보이지만 진ㄹ행에 큰 어려움이 없는 소나무와 그 아래 떨어진 폭신한 솔갈비를 밟으며 빠르게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등로가 점차 희미해지더니 깊은 안부로 떨어진다.
좌우측으로 제법 깊은 골짜기 안부이기에 혹시나 하여 지도를 살펴보지만 지도에는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은 무명안부인데 좌측 끝자락에는 최근에 세워진 듯한 거대한 공장 건물들이 잡목 사이로 보이기도 하는 안부이다.
그 안부를 지나 오르니 오랫만에 등로에 낙엽송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그 낙엽송 구간은 짧게 끝이나고 만다.
낙엽송 진대를 지나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다시 거대한 공장건물들이 등로 옆으로 바짝 다가와 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상호를 살펴보지만 아무 표식도 없는 미생물배양 공장인듯 냄새가 지독하게 풍기기 시작한다.
그 공장 건물들을 등로 우측 아로 아래에 두고 걸어가니 공장 건물이 끝나는 지점에는 또 다른 공장 건물들을 지을 생각인지 넓은 공터가 내려다 보이고 그 아래 저 멀리에는 새로운 건물을 올리는지 철구조물들이 제법 공장 건물의 형태를 잡으며 올라가 있다.
잠시 후 182 무명봉을 지나고 185 무명봉도 통과한 후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드넓은 벌목지대가 펼쳐지는데 그 벌목지 바로 아래에는 거대한 축사인지 아니면 퇴비와 미생물배양 회사인지 모를 거대한 건물 몇동이 내려다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벌목지맥 경계를 따라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등로에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아카시아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나무들이 빼ㅔ곡하게 자라고 있어 진ㄹ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아마도 키 작은 나무들을 조림하면서 일부러 그 경계선에 아카시아 나무들을 식재해 놓은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아카시아 나무 천국이다.
잠시 후 거목을 잘라낸 후 남아 있는 밑둥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177 무명봉을 지나 우측으로 휘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 아래에도 거대한 원형 게르같은 건물과 그 우측 옆으로 거대한 축사인지 미생물배양을 위한 건물들인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망하며 내려가니 등로에는 여전히 아카시아 가시나무와 간간히 산초가시나무가 나타나 진행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가시나무와 잡목으로 막혀 더 이상 직진으로 내려갈 수가 없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우측 원형의 게르같은 건물쪽으로 내려가 만나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그 거대한 게르같았던 건물은 바로 동물들을 매몰했던 곳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어떤 동물인지는 구별하지 않았는데 이곳 역시 과거에 동물들을 매몰처리한 아픈 과거가 있는 곳처럼 보이는 곳이다.
그곳을 지나 만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다시 반대편 능선으로 오르는데 그곳에도 역시나 가시나무들이 자라면서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가시나무를 헤치고 오르니 식재된 듯한 나무들이 보이고 그 사이에는 잡목들이 자라면서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그래도 그 잡목들을 헤치고 오르니 진행 방향으로 지독한 잡목 등로가 열려있고 그 넘어 저 멀리 높은 송전탑 하나가 서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방향만 잡고 어렵게 잡목과 가시나무를 헤치고 전진하니 거대한 나무들이 벌목된 옆으로 잡목들이 사람들 키만큼 자라난 17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겨 보는 시간이다.
그 잡목봉을 지나 여전히 힘들게 하는 잡목들을 헤치고 진행을 이어가니 26번 송전탑 아래를 지나고 다시 등로 우측으로 벌목 후 나무를 식재해 놓은 경계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하지만 벌목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잡목들과 잡풀들이 자라 벌목된 지대의 의미를 퇴색하게 만들고 산행을 이어가는 산객에게도 심한 고통을 유발하고 있는 등로이다.
그래도 등로 우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거대한 공장 건물인지 축사 건물들을 조망하며 걸어 오르니 식재된 나무들과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17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심호흡 한번 해보는 시간이다.
그 무명봉을 지나 벌목지대와 헤어져 좌측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다시 벌목된 장소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방금 전 만났던 활엽수 대신 키 작은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그 벌목 후 소나무를 식재한 경계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179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지점을 확인한 후 다시 칼등 등로를 따르니 잠시 후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휘어 진행이 되고 있다.
잠시 후 다시 지독한 잡목들과 가시나무들이 등로를 가득메우고 있는 난해한 등로를 따라 어렵게 전진하니 잠시 후 등로는 다시 부드러운 소나무 아래 깔린 솔갈비를 밟으며 힐링하듯 걸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몇십미터 떨어져 있는 173.3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추억 몇장 더 남기고 나온다.
다시 그 173.3 삼각점봉 갈림삼거리로 나와 이제는 진행 방향으로 우측 직진의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면서 부드러운 솔갈비로 이뤄져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아주 편안하게 걸어 빠르게 진행을 이어가니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157 무명봉을 지나 172.5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는 봉 따먹기의 대가이신 박건석님이 종이 코팅지에 계산봉이라 적어 놨다.
아마도 이곳이 계산리라서 붙여 놓은 이름이 아닐까 생각을 하면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그 172.5봉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처럼 나 있고 그 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위에는 잎이 넓은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덮혀 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다.
조심하며 한동안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산짐승들이 몸을 얼마나 문질렀는지 커다란 소나무 밑둥이 반질거리고 표피가 떨어져 나가 말라 죽을 것 같은 형상의 나무가 보이는 곳에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는 우측 내리막 등로로 흘려 보내고 좌측 희미한 등로를 찾아 어렵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보는 시간이다.
좌측으로 희미한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갑자기 한여름에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죽은 잡풀들이 무성했던 묵은 밭 경작지로 이어지고 그곳을 지나 다시 나즈막한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곳의 소나무 한그루에도 산짐승들이 몸을 문질러 밑둥이 완전히 얇아진 불쌍한 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약간의 두려움이 밀려오지만 대낮이기에 주위를 한번 더 살펴보고 전진하니 드넓은 임도같은 등로에 지독하게 자랐다 말라죽은 잡풀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제법 큰 드론 하나가 떨어져 잠을 자고 있다.
그곳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와 활엽수가 혼재되어 있는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는 165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주위를 살펴보니 이곳 역시 무한도전 클럽의 천안아산태극종주 등로인지 그와 관련된 띠지들도 보이고 있다.
무명봉을 지나 쓰러진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등로를 따르니 다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편백나무가 보이는 163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틀어 진행이 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 등로는 방금 전 지나 온 172.5봉부터 철봉울타리가 끝나는 지점까지 ㄹ자 형태를 그리며 왔다리 갔다리 이어지고 있는 등로이다.
다시 쓰러진 거대한 아카시아 나무를 어렵게 통과하고 잠시 더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눈 앞에 갑자기 제법 굵은 쇠파이프로 목장 경계를 만들듯 벽을 만들어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다.
그 쇠파이프 담을 타고 좌측으로 진행을 시도해 보지만 잡목의 저항이 심해 어쩔 수 없어 그 쇠파이프 담을 넘어 목장인지 그 안의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진행을 이어가 본다.
그 쇠파이프 담장을 타고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하니 울타리가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곳에서 만뢰지맥 마루금은 좌측 잡목 구간으로 이어지고 있어 어렵게 그 쇠파이프 벽을 넘어 좌측 잡목 사이로 나 있는 희미한 등로를 찾아 산행을 이어가 본다.
하지만 키가 자라기 시작한 잡목 사이에 아카시아 가시나무와 산초가시 그리고 청다래 가시나무가 함께 뒤엉켜 있어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며 조심해 진행을 하니 진행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당행하게도 그 지독한 잡목지대는 그리 길지 않게 끝이나고 다시 소나무와 활엽수가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만나 긴 한숨을 내쉬며 진행을 이어가 보는 시간이다.
거대한 소나무 아래 자라고 있는 약간의 잡목들이 산행을 방해하고 있지만 심하지 않아 조심하며 진행을 하고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들의 다양한 색깔로 되어 있는 산행 띠지들을 확인하며 전진하니 165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최근에 만들어진 듯 한 묘지2기가 나타나고 밭 경작지가 보이더니 금새 등로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이어지고 있다.
이곳은 편의산 복현리 고개쯤으로 등로 우측으로는 복현리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아지 보이지 않고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좌측 비날을 씌워 고추농사를 지었던 밭 경작지를 따라 능선 방향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고추밭 경작지를 통해 그 끝자락까지 걸어 이동을 하니 우측 능선 방향으로 묵은 넓은 비포장 임도가 보이고 그곳을 통해 오르니 원마루금은 우측 나즈막한 능선인 듯 보이는데 금새 다시 이 묵은 임도와 합류하기에 좌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묵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 본다.
잠시 후 우측 마루금에서 내려오는 원마루금과 만나는 고갯마루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짚을 덮어 놓은 인삼포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아래로는 복현리 마을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이 산객의 고향에도 예전부터 많은 인삼을 키웠기에 그 수고스러움과 인내 그리고 고통을 알고 있어 그 인삼포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조심스럽게 그 인삼포를 통과해 본다.
인삼포를 통과하며 등로 우측 아래로 펼쳐진 복현리 마을을 내려다 본다.
드넓은 비닐 밭이 비닐을 벗겨 내지도 못한채 방치되어 있고 그 아래 조용하게 펼쳐진 작은 마을이 예전이 이 산객이 살던 고향 마을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잠시 더 발걸음 멈추고 살펴보며 진행을 이어가 본다.
복현리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 속한 리로서 평지가 넓은 편이고 여러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그 하천들은 용두천으로 흘러간다.
자연마을에는 도촌, 분더골, 새터, 서촌, 복고개, 수정아파트가 있는데 도촌은 길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분더골은 지형이 제비똥처럼 생겼다 하여 그 말을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다.
새터는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해서 이름 붙여졌으며 솔밭이 있고 서촌은 한고개의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한고개라고도 불리며 수정아파트는 1990년대 초 신축된 아파트단지이다.
이런 농촌지역이었던 오창은 과학단지가 들어서면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이제는 경제성장을 이끄는 한축으로 커졌으니 벽해상전을 이룬 도시중 한곳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잠시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복현리 마을을 살펴보고 계속되는 인삼포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인삼포가 끝이 나는 지점에서 등로는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있어 발걸음도 가볍게 빠른 속도로 걸어 본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아침과 오전보다 더 심한 찬바람이 불어 오며 내일부터 강추위가 찾아 온다는 일기예보가 허언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어 옷깃을 세우고 발걸음도 빨라지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다시 만나는 벌목지대 능선을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 저 멀리 새로운 공장들을 세우려고 하는지 드넓은 땅을 평편하게 잘 다져 놨고 그렇게 걸어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등로는 좌측 발목지대 경게선을 버리고 우측의 잡목들이 무성한 희미한 곳으로 안내를 하고 있다.
묘지를 만나 그 묘지지대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평산신공 표지들을 지나 잠시 후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한고개에 도착을 한다.
한고개(26번 2차선 포장도로, 복현리2구)는 복현리에 있는 마을중 한곳으로 복현리는 읍의 북동쪽에 위치하며 동은 장대리와 서는 양지리 및 남은 창리 그리고 북은 모정리와 접하고 있으며 오창과 진천간 17번 국도상의 복현교 서쪽에 있는 마을이며 마을 동 쪽에는 성암천이 인접하여 남류하고 있고 북쪽은 진천군과 경계를 이룬다.
복현리(복고개, 상현, 복현)는 본래 청주군 북강외일면의 지역으로서 고개 너머에 보가 있으므로 보고개(보현) 또는 복현이라 하였다가 복현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 영조대(1757~1765년경)에는 학탄리와 복현리 및 서하촌리로 이루어져 있다가 정조 13년 (1789)경 학탄리가 학성리로 개칭되었고 헌종대(1845)에 서하촌리로 개칭되어 조선 말기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1910년 일제강점 직전에 북강외일면이 상과 하면으로 분리될 때 하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학성동, 서촌, 송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복현리라 하여 오창읍에 편입되었고 현재 분터골, 새터, 복고개 마을로 이루어진 복현1리와 한고개 마을로 이루어진 복현2 리 도촌 마을로 이루어진 복현3리와 수정아파트로 이루어진 복현4리로 분구되어 있다.
이곳 한고개에서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조금 걸어 오르면 도로 좌측 능선으로 오르는 등로가 보이는데 잠시 오르면 묘지지나 지독한 잡목들이 나타나므로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진행 후 마루금으로 복귀해도 될 듯 싶다.
잠시 정상 마루금으로 오르니 묵은 밭 경작지를 지나 무명묘지 한기가 보이는 곳으로 오르고 그곳에서 우측 잡목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능선 방향으로 마루금이 이어지는데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가중 시키고 있다.
잡목과 관목들이 뒤엉켜 진행이 어려운 그 마루금을 따라 조심하며 진행을 하니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읽었던 파란 물통이 나타나고 조심하며 그 물통을 지나니 거대한 공사장 위로서 바로 아래에는 공사장으로 이어지는 절개지가 나타난다.
그 절개지 우측 능선을 타고 조심하며 진행하다 잠시 뒤돌아 보며 담은 파란 물통이다.
좌측으로 무슨 공사인지 모를 거대한 공사장을 지나 잠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고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비포장 임도 서ㅏ이로 나 있는 밭 경작지 좌측 가장자리를 타고 능선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등로는 곧이어 좌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명묘지 3기가 차례로 줄지어 서 있는 묘지지대를 지나 오르니 등로는 다시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등로로 이어지더니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오르막 좁은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오르니 맨발님이 정상판을 걸어 놓은 228.1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228.1봉을 지나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는 등로를 찾아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잠시 등로가 희미해지고 길찾기에 애매한 부분을 지나 어렵게 정상 마루금을 찾아 진행을 이어가 본다.
거의 사라진 희미한 등로를 타고 방향만 잡아 진행하니 밤나무가 보이는 181 무명봉을 지나고 다시 나타나는 소나무와 잡목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갑자기 도로 공사장 절개지 위에 도착을 해 아래를 살펴보니 거대한 포크레인 한대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 신설도로 공사장에 도착을 한다.
그곳 절개지 위에서 우측 사면으로 길게 걸어 내려가 공사장 안부에서 좌측 도로 공사중인 포크레인을 사진에 담고 곧바로 그 공사장을 지나 반대쪽 사면 등로를 타고 절개지 상부로 걸어 오르기 시작한다.
등로 우측으로는 거대한 공장 건물들과 동화나라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자랑하는 여관같은 건물이 내려다 보이고 있다.
그 공사장 도로를 건너 절개지 상단부로 오르니 예전에 불이 났었는지 거대한 소나무 밑둥이 모두 검게 그을린 흔적들이 보이고 잠시 잡목과 활엽수들이 보이는 등로를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방금 전 내려다 봤던 등로 우측의 거대한 공장건물들과 여관이라 생각되는 건물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바로 눈 앞으로는 거대한 잡풀지대가 펼쳐져 있는데 여름철에는 진행이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지독한 잡풀지대였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곳에서 진행 방향인 남동쪽을 살펴보니 능선 넘어 저 멀리 높은 송전탑과 그 우측 정상에 팔각정이 보이는 목령산이 조망되는데 진행 방향을 잘 확인까지 해 놓고 잡목과 잡풀들로 인해 우측 공장 건물쪽으로 조금 치우쳐 진행을 하게 되었다.
지독한 잡풀지대를 지나 묘지지대를 넘으니 등로는 좌측으로 이어지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잡목들을 헤치고 바로 발 아래 드넓게 펼쳐진 하얀 비닐로 덮혀 있는 밭 경작지 방향으로 짧은 절개지를 타고 내려가 본다.
어렵게 밭 경작지로 내려가 그 가장자리를 타고 진행하니 드디어 청주시 창원구 오창읍 성산리와 양지리를 이어주는 2차선 두릉유리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에 도착을 하는데 생각보다 거대한 트럭들의 통행량이 많아 조심하며 그 도로를 건너 본다.
이곳 성산리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 잇는 리로서 평야가 넓은 편이고 서쪽의 성재천과 동쪽의 용두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며 서쪽에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난다.
자연마을에는 빌미기, 덕대, 나무까치, 능골, 옥정이, 질푼이, 한현이 있는데 나무까치는 과거에 까치가 울고 갔다는 큰 나무가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고 능골은 빌미기 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어떤 묘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질푼이는 빌미기 서남쪽 질푼이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양푼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그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드넓은 밭인지 논 경작지가 나타나고 그 경작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 그 임도를 따라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밭 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그렇게 잠시 더 그 임도를 타고 밭 경작지를 살펴보며 진행을 하다 앞을 보니 진행 방향 저 앞으로 올라야 할 밭 경작지 넘어 목령산의 송전탑과 그 우측으로 팔각정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억새풀이 자랐다 말라죽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등로 우측 앞으로 갑자기 거대한 절개지가 펼쳐지고 그 아래 저 멀리 신설된 아산청주간고속도로의 옥산에서 오창구간이 시원하게 뚫려 있고 그 도로 위에는 동물이동통로가 설치되어 있어 그 동물이동통로를 통해 신설된 고속도로를 통과하게 되어 있다.
우측 바로 아래 설치된 철 계단을 타고 내려가며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고속도로 동물이동통로 지나 저 멀리 목령산의 송전탑과 팔각정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있다.
조심스럽게 고속도로 보수공사용 철계단을 타고 내려 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드디어 신설된 아산청주간 고속도로 위를 통과할 수 있는 동물이동통로를 만나 편안하게 통과를 해 본다.
그 에코브리지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한참만에 임도 우측으로 39번 송전탑을 만나고 이곳이 바로 목령산 갈림삼거리로서 마루금은 송전탑을 지나 우측으로 이어지지만 멀지 않은 곳에 목령산 정상 팔각정이 보여 좌측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목령산을 다녀 오기로 한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임도 좌측으로 산불감시카메라가 서 있고 사진에 담은 후 곧바로 목령산으로 출발을 한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오르니 목령산 팔각정 정상은 우측으로 빙 돌아 오르도록 되어 있어 반바퀴 돌아 오른다.
오르며 사진 한장 남기고 팔각정으로 다가가 보니 출입구에 이 팔각정의 기둥에 균열이 발견되어 안전을 위해 현재 한국임업진흥원에 진단을 요청한 상태라는 경고 플랭카드가 붙어 있다.
목령산(취령산 228.7미터)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성산리, 주성리, 양청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228.7미터이고 산의 모양이 마치 따오기 같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고 정상부에 목령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목령산성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양지리, 주성리, 양청리에 걸쳐 있는 목령산 정상에서 남서쪽 능선으로 쌓은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오창읍에서 사방의 도로망과 평야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의 요충지에 해당한다.
정상부의 서남쪽 능선 윗부분을 긴 타원형으로 에워싼 형태로 둘레는 약 390미터이고 그 중 정상부의 암반이 노출된 곳에는 직사각형에 가까운 석축곽이 있는데 길이 18미터에 폭 15미터이고 높이는 1.2미터 정도의 규모로 보아 건물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외부와의 출입은 사방의 능선을 이용한 소로가 있다.
돌로 쌓은 성벽은 지금은 무너져 원형을 알기 힘들지만 동쪽의 남사면 일부와 서쪽 소로의 남쪽에 흔적이 남아 있어 자연 깬돌로 쌓되 내외협축의 형식을 취했음을 알 수 있으며 우물터는 발견되지 않았다.
팔각정에 들리지 못하고 그냥 뒤돌아 갈 수 없어 조심하며 그 팔각정으로 오르니 사방팔방으로 시원한 조망과 풍경이 펼쳐져 있지만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었고 팔각정 주위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로 인해 또한 조망을 방해받아 조금은 아쉬운 시간이었다.
동쪽으로 거대한 오창 아파트 단지들과 산업단지의 공장건물들을 살펴보고 우측인 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다시 거대한 건물 공사장이 나타나고 그 좌측으로 높은 빌딩 하나와 우측으로 떨어진 곳에 높은 빌딩 2개가 랜드마크를 형성하며 미세먼지속에서도 그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늘 산행이 끝난 후 삽티고개에서 걸어 내려 가 저곳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탑승해야 되는 곳이기에 잠시 그 희미한 풍경을 머릿속에 담아 본다.
오창읍은 충청북도 청원군의 북부에 위치한 읍으로서 읍소재지는 장대리이고 불당산, 취령산,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경계로 서쪽에는 산지가 발달해 있고 동쪽에는 오창평야가 펼쳐진다.
동쪽 사면에는 미호천의 지류인 용두천이 흐르고 있어 평야를 형성하고 동쪽에는 북쪽 진천에서 남류하는 미호천이 평야의 중심을 흐르며 현재 여천과 화산 및 유리 등의 34개 동리를 관할하고 있다.
조선 시대 청주목의 북강외일면과 북강외이면에 속했던 지역이고 작천(까치내) 즉 북강의 바깥에 위치하는 지역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청주)에 오근원이 오근부곡 옛터에 있다고 수록되어 있고 오근창은 1669년(현종 10) 청주목사가 미호천 유역에서 생산되는 쌀을 보관하기 위해 옛 오근원 터에 새로 지은 창고이다.
오창면이란 지명은 오근창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근창은 전설에 의해 오공창으로도 불렸고 청주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북창으로도 불렸다.
여지도서(청주)에는 북강외일면과 북강외이면 사이에 북창과 기암서원이 표기되어 있고 북강외일면의 남쪽에는 오근진이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지도의 북강외일면과 북강외이면 사이에 북창이 표기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의 북강외일면에는 환희산과 작천이 표기되어 있고 여지도서(청주)에 의하면 북강외일면은 건천과 화산 및 박지산 그리고 연방리 등의 33개 마을을 관할하였다.
1909년 북강외일면은 북강외일상면과 북강외일하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오창면으로 통합 후 개칭되었으며 1949년 청주군에서 청원군으로 편제되었고 2007년 읍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른다.
지명 하나에도 많은 역사와 이야기가 남아 있는 오창읍이었다.
지나 온 방향으로 북쪽을 살펴보니 왔다리 갔다리 끊어질 듯 이어져 온 만뢰지맥 산줄기가 펼쳐져 있는데 다만 나뭇가지들로 막히고 미세먼지로 흐릿하게 보여 조금은 아쉬움도 남긴다.
그래도 저 멀리 공사장과 큰 도고 차이 없이 이어지는 산줄기 그 자체의 늠름한 포스는 여느 산줄기 못지 않게 지맥 줄기임을 알리고 있는 듯 보인다.
서쪽으로는 여전히 개발중인 곳이 많은지 황톳빛 개발지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인 북서쪽으로는 방금 전 살펴보며 진행을 해 왔던 거대한 공장지대의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그 팔각정 정상에서 아쉬운 조망을 즐긴 후 내려 와 정상석을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고 팔각정 1층 가운데 쪽에서 시멘트에 파묻히 삼각점만 어렵게 찾아 사진에 담고 그 목령산 팔각정을 떠나는 시간이다.
목령산 정상에서 잠시 시간을 갖고 주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지만 역시나 불청객인 미세먼지로 인해 기대했던 조망은 보지 못한 채 아쉬움만 남기고 내려가니 다시 무인산불감시카메라를 만나고 사진 한장 더 남기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목령산 갈림삼거리인 39번 송전탑 앞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우측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좌측 39번 송전탑 밑을 통해 능선으로 들어가니 지난 여름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 죽은 빛바랜 억새가 하늘 거리고 그 뒤로 뚜렷한 마루금이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지며 넓은 비포장 임도같이 뚜렷하게 나 있는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조금은 미끄러운 내리막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진행을 이어가니 무명묘지를 통과한 후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무명안부를 지난다.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평이한 낙엽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오창에딘버러컨트리클럽의 카드 포장도로가 바짝 다가와 있다.
계속 좌측에 골프장 카드 포장도로를 두고 능선을 따르니 소나무와 밤나무가 함께 서 있는 154 무명봉을 지나 법광님의 띠지가 걸려 있는 157 무명봉도 지난다.
그 무명봉 지나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지며 진행이 되어 결국 방금 전 내려다 봤던 오창에딘버러 컨트리클럽의 카트 포장도로로 내려서는데 눈 앞에는 골프장 본관으로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인다.
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오창에딘버러 컨트리클럽 본관 뒷쪽으로 지나 좌측 1번 골프장으로 진행을 하니 한팀이 골프를 치고 있어 잠시 기다렸다 재빨리 그 1번 홀 골프장을 지나 반대쪽 카트 포장도로로 이동을 한다.
이 추운 날씨에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안쓰러워 처다보니 골퍼들은 배낭을 메고 골프장을 지나가는 이 산객이 더 이상한지 한동안 멀뚱하게 바라보고 있다.
캐디들이 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 조심스럽ㄷ게 그 1번 홀를 카드 포장도로를 타고 통과하고 다시 이어지는 능선과의 경계를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한다.
어렵게 1번 홀을 완전히 벗어나 능선으로 올라가고 낙엽이 깔려있는 무명봉을 넘어 진행을 이어가니 다시 2번 홀로 내려서는데 이곳에도 두팀의 골퍼들이 골프를 즐기고 있어 잠시 대기하고 있다 샷이 모두 끝난 다음에 재빨리 카트 포장도로를 타고 작은 식당휴게소가 보이는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그곳에서도 잠시 기다렸다 골퍼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토록 하면서 재빨리 그 식당 휴게소 건물을 지나자마자 우측 잔디로 올라 얼어있는 잔디밭을 조심하며 통과한 후 능선으로 오르니 골프장으로 진입을 막기 위한 원형 철조망이 쳐져 있지만 이미 망가져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걱정했던 오창에딘버러컨트리클럽도 무탈하게 통과를 하고 나니 오늘 산행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 든 느낌이다.
오창에딘버러컨트리클럽을 완전히 벗어나 약간의 잡목들이 방해를 하고 있는 능선으로 오르니 무너진 원형 철조망이 기다리지만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지나온 방향으로 목령산과 진행 방향으로 문화휴식공원 방향 표시만 되어 있는 이정표가 서 있는 155.2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하고 출발을 한다.
다시 제도권으로 들어 왔는지 등로는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는 산행 구간이다.
고속도로 같이 잘 정비된 뚜렷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는 대부분 소나무 등로에 키 작은 관목들과 잡목들이 그 소나무 아래 혼재되어 있는 등로이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간벌된 지대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해 잠시 오창읍내를 살펴본 후 계속 산행을 이어가니 나뭇토막이 잘려 쌓여 있는 162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에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등로도 만난다.
그곳을 지나 평이하게 진행하니 다시 완만하게 오르는 오르막 등로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구간을 지나 좌측으로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그 넘어 오창읍내가 시원하게 조망되고 있어 잠시 살펴보고 진행을 이어가 본다.
아까 진행하다 공사중인 곳이 어떤 곳인지 미세먼지가 심해 분간하지 못했는데 지금와서 살펴보니 거대한 아파트 단지 공사장처럼 보인다.
잠시 후 산악위치번호 목령01-02 이정목을 지나고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금새 바랑산님이 정상판을 걸어 놓은 205.3봉에 도착을 해 남아 있는 간식과 과일 그리고 음료수로 잠시 허기를 달래고 진행하기로 한다.
이제 날머리인 삽티고개가 지척으로 다가와 있어 큰 부담없이 쉬었다 진행해도 시간은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허기를 달래고 계속 이어지는 뜨렷한 등로를 타고 부드럽게 걸어가니 가끔 동네 주민들도 만나는데 중무장을 하고 산행을 하는 이 산객이 이상한지 자꾸만 힐끔거리며 처다보는 듯한 느낌이다.
만나는 주민마다 인사 나누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목령산과 문화휴식공원이라는 방향 표시만 되어 있는 이정판을 만나고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한 후 곧바로 벤취수미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189 무명봉에 도착을 해 심호흡 한번 하고 출발한다.
벤취쉼터 2개를 지나 조금 더 넓고 뚜렷한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이제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희미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진행해야 할 길주의 지점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다시 한번 지도와 트랙을 확인한 후 우측의 소나무 등로를 따른다.
한동안 무심으로 소나무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빛바랜 선답자의 띠지가 팔랑거리는 153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지점을 확인한 후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이곳부터 등로는 다시 뚜렷한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로 변하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등로 우측으로 아산청주간 고속도로의 옥산과오창간 구간이 바로 발 아래로 다가와 있고 그 넘어로는 오창읍 성산리 지나 거대한 충북스틸 공장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우측 뒤로는 서오창 IC도 빤히 내려다 보인다.
등로 우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신설된 고속도로와 그 고속도로로 진출입을 하기 위한 접속도로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등로를 타고 잡목을 헤치며 진행을 이어가니 생각보다 잡목들의 저항이 심해 산행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그래도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조심하며 천천히 잡목을 헤치고 진행을 이어가니 잠시 좌측의 소나무가 보이는 154.2봉에 도착을 해 마지막 남은 짧은 마루금을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곳 154.2봉부터 지독한 잡목들의 저항으로 정상적인 마루금을 따라 진행하기가 쉽지 않아 선답자들의 산행 트랙을 참고하면서 좌측으로 빙 돌아 우회하며 삽티고개쪽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다시 소나무 능선을 빠져 나와 우측 고속도로 바로 위 벌목 후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등로로 복귀를 해 걸어 진행하니 잡목들의 저항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잠시 후 등로 우측 뒤로 서오창 IC와 고속도로 상 청주국제공항과 오창으로 빠져 나갈 수 있다는 도로표지판을 살펴보며 진행을 이어가 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등로 아래로는 고속도로 사이에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잠시 그곳으로 내려가 진행 방향과 지나온 방향을 살펴본 후 전진해 보지만 잡목에 가로막혀 진행이 불가능해 보이기에 더 이상 고집하지 않고 좌측으로 능선 넘어 식재된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 가장자리를 통해 삽티고개가 있는 540번 4차선 포장도로 방향으로 갈어 내려가 본다.
한동안 그 소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곳으로 우회하며 내려가다 정상 마루금 방향을 올려다 보니 고속도로 아래 삽티고개 역시 최근에 새로 단장된 모습으로 절개지를 이루고 있어 어짜피 직진으로는 산행이 불가능해 보인다.
다시 철조망이 쳐진 밭 경작지를 돌아 내려가니 드디어 540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삽티고개에 도착을 해 배낭 정리하고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삽티고개(540번 오창대로 4차선 포장도로)는 충북 청주시 오창읍 성산리와 구룡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사 최근에 이 고개 위로 아산과 청주간 신설고속도로와 그 아래 차량 전용의 고속화도로가 생겨 사람들의 통행은 더욱 어려워 보이는 고갯마루가 되었다.
삽티의 삽은 사이를 의미함으로 사이에 있는 고갯마루를 의미하는데 이곳도 그런 의미의 삽티고개가 아닐까 추측을 해 본다.
그곳 540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삽티고개에서 배낭을 정리하고 그 540번 도로를 따라 좌측 오창읍쪽으로 무작정 걸어 내려가 본다.
오창버스터미널까지는 약 4.5 Km 거리로서 한시간 정도 걸릴것으로 예상이 되는데 지금 시간이 오후 3시 18분을 지나고 있기에 오후 4시 30분을 목표로 걸어 내려간다.
생각보다 차량 통해이 많은 도로 곁을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오전보다 훨씬 차가워진 바람이 내일을 걱정하게 만들고 그렇게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오창 프라자라는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그곳 오창 프라자라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서울가는 시외버스를 이곳에서 탈 수 있다고 알려 줘 매표소에서 차표를 구매한 후 16시에 출발하는 우등버스로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귀경을 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막히지 않는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 남부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이제 오후 5시 30여분을 지나고 그곳 아래에 있는 3호선 지하철에 탑승해 집에 도착을 하니 이제 저녁 6시를 막 넘기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제2구간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일찍 귀가해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옆지기가 이 산객만을 위해 산행 후 늘 준비해 주는 돼지 김치불백으로 소맥 몇잔을 마시고 잠시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다음날 만뢰지맥 마지막 산행을 위해 배낭을 준비하고 조금은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드니 오늘 하루도 피곤했는지 금새 꿈나라로 향한다.
이제 만뢰지맥 산행도 마무리가 되면 토요일과 일요일을 나눠 마지막 한구간씩 남아 있는 관암지맥과 봉수지맥으로 내려가 완주를 하면 결국 천등지맥을 어떻게 마무리할 수 잇을까가 가장 고민이자 걱정이 되는 산행이 되었다.
그래도 바빠지기 전에 진행하다 중단된 지맥 산행을 가능하면 모두 완주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지맥 산행에 들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시간이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첫댓글 미세먼지와 박무가 심했던 날에 만뢰지맥을 이어가셨군요.
반년만에 다시 찾으시면서 감회로우셨겠어요.
홀로 멋진 산하와 동요되시는 모습은 변함없으시구요.
이어지는 안전하고 즐거운 여정을 바랍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네 방장님,
지난 9월에 가족 모임 때문에 청주로 내려가는 길에 잠시 첫구간을 올랐던 만뢰지맥 산행을 위해 미세먼지를 무릅쓰고 내려간 날이었네요
높지 않은 해발고도이지만 물길을 가르며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즐겼던 시간이기도 하였고요
늘 성원 주심에 감사 드리며 무술년 새해에도 늘 건강하게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