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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북도 칠곡군과 대구광역시의 황학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1년 12월 03일 (금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아침에 약간의 비가 내림 후 점심때부터 맑고 화창했지만 오후부터 바람이 강하게 불며 추위를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0도에서 영상 08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지천면사무소-신동로 2차선 포장도로-지하통로(경부고속철로 통과)-시멘트 포장도로(신동로)-폐가들-형제농원입구(신리827, 국가유공자형제의 전원)-잡목 능선진입-비포장임도-진산강공
가족묘지들-웅덩이 무명봉-23번 송전탑-길주의 갈림삼거리(좌측)-152봉-4번 칠곡대로(중앙분리대에서 큰 사고)-절개지 능선 무명봉-제선충 무명봉-편백나무 조림지-아카시아 무명봉-
185.4봉(186봉, 이정판, 벤취쉼터1)-삼각점(185.4봉, 왜관425 삼각점)-길주의 갈림삼거리(벤취쉼터1, 우측)-161.8 삼각점봉(인식불가 삼각점)-길주의 갈림삼거리(우측)-경부고속도로
절개지 상단-능성구공 묘지들-콘크리트 수로-철계단-경부고속도로 갓길-지하통로(경부고속도로 통과)-논경작지와 민가-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임도-절개지 상단(마루금 접속)-144.9 무명봉-
비포장임도 갈림사거리 안부-노비재 안부-굵은 아카시아 무명봉-237 아카시아 무명봉-길주의 갈림삼거리(우측)-소나무 등로-재선충 더미와 고사목들-용재산(253.8봉, 이정판)-묘지들-28번
송전탑-무명묘지 안부-용산(244봉, 이정판)-잡풀묘지-마천산(274.4봉, 이정판, 왜관308 삼각점)-대구시 다사읍과 청룡지맥 조망-달천리 갈림삼거리 이정표(봉수대터 0.4 Km와 주차장 2.1 Km,
산림욕장입구 1.0 Km와 주차장 1.2 Km, 달천리 4.0 Km와 등산로 4.0 Km)-마천산 산림욕장 안내도와 사각정자-시멘트 포장도로 안부 이정표(봉수대터 0.2 Km, 임도와 하빈무등리, 이강서원
등산로 1.65 Km, 이강서원 임도 0.3 Km와 화장실 0.19 Km)-마천산 봉수대터(256미터, 산성터, 대구38 삼각점) 이정표(숲체험교육장 0.4 Km와 체력단련장 0.55 Km, 주차장 1.7 Km와
산림욕장입구 1.9 Km)-이정표(주차장 1.3 Km와 산림욕장입구 1.5 Km, 봉수대터 0.4 Km와 숲체험교육장 0.8 Km)-계단-전주이공 묘지들-이정표(주차장 0.5 Km와 산림욕장 0.7 Km)-
하빈고개(하빈로84길 2차선 포장도로, 운동기구, 쉼터)-능선진입(다사읍 도로표지판 뒤)-무명묘지2-벤취쉼터4-자갈 소나무 무명봉-이정표 갈림삼거리(마천산산림욕장 0.87 Km, 마천산
정상 2.0 Km, 문양역 4.59 Km)-234봉-무명묘지-안동김공 묘지-벤취쉼터2와 국가지점번호판-사각계단-벤취쉼터2-181.6봉(등산로 안내도와 벤취쉼터2)-사각탁자와 벤취쉼터들 및 이정표(부곡
배수지 0.4 Km, 마천산 산림욕장 1.53 Km, 문양역 2.20 Km)-대나무-태양광 발전시설과 청룡지맥 조망-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부곡배수지 안내판-부곡배수지-능선진입 이정표(등산로
쉼터 550m)-136봉(운동기구와 벤취쉼터들 및 거울) 이정표(다사역 1.1 Km, 다사읍사무소 1.3 Km, 배수지 550 m)-밀성박씨 묘지들-다사로 2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동양농기와
다사초교 사이 골목길)-밭농경지-묘지들-시멘트 포장도로 안부(좌측 대구외곽순환고속도로 공사중)-다사근린공원-벤취쉼터2와 무명묘지-119.4 삼각점봉(인식불가 삼각점, 띠지들, 벤취쉼터,
운동기구)-벤취쉼터2-헬기장-벤취쉼터들-운동시설-달성문화센터-다사로 시멘트 포장도로-다사로 6차선 포장도로-그린코아 아파트-다사역로 8차선 포장도로-삼성 옵티마 약국(상처 치료)-
매곡사거리-태왕드림하이츠-한서꼼빠니아타운-우방타운-능선진입-철망등로-매곡배수지 확장공사장-통나무계단-갈림삼거리-계단-강정보녹색길 안내판과 이정표(정상 0.4 Km, 체육시설)-
체육시설 이정표(정상 0.2 Km, 우방과 삼산아파트, 체육시설, 태성아파트 0.4 Km)-계단 전 이정표(모암봉 0.2 Km, 체력단력장 0.2 Km, 전망대 0.7 Km)-나무계단-죽곡산(195.8봉, 인식불가
삼각점, 팔각정, 모암봉 정상석, 전망안내판)-나무계단-안전목책과 로프-전망대 갈림삼거리 이정표(강정보 0.9 Km, 모암봉 0.4 Km, 전망대 0.65 Km)-갈림삼거리 안부 이정표(등산로 입구
디아크 0.1 Km, 등산로입구 0.18 Km, 죽곡산정상 모암봉 0.95 Km)-81봉(이정판, 띠지들)-묘지지대-대나무 터널-강정길 시멘트 포장도로-육각정자-갈림삼거리(죽곡리 강정마을 표지석)-
강정고령보 안내판-2차선 포장도로-낙동강보관리단-강 문화관 디아크-금오강과 낙동강 합수점-산행종료
산행거리 : 22.11 Km (지천면사무소에서 디아크 금오강 합수점까지)
산행트랙 :
산행시간 : 08시간 43분 (06시 42분부터 15시 26분까지, 4번 칠곡대로에서 사고로 산행시간 길어짐)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4시 30분 여관에서 기상 해 샤워 후 모텔 근처 감자탕식당에서 아침 해결
06시 00분 디아크 옆 주차장에서 카카오택시 호출 해 출발(20,000.- 원)
06시 40분 지천면사무소에 도착 해 산행 준비 후 곧바로 출발
올때 - 15시 26분 금오강 합수점을 다녀 와 디아크 주차장에서 황학지맥 산행 마무리
20시 20분 막히는 도로 따라 무사히 귀가
황학지맥이란 ???
팔공지맥 상 가산(901.6m)의 북서쪽으로 1.2 Km 지점인 846.5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칠곡군 가산면과 동명면 경계를 따라 오계산(466.3m). 소야고개, 실봉산(457.5m), 백운산(713.4m), 황학산(757.8m), 버등재, 소학산(624.2m), 요술의고개, 좌봉산(427.3m), 칠곡조양공원묘원, 장원봉(370.2m), 지천면사무소, 매복산(161.8m), 노비재, 용재산(253.8m), 용산(244.0m), 마천산(274.4m), 하빈고개, 죽곡산(195.8m)과 디아크 방향으로 남진하다가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달성군 다사면 죽곡리 강정마을에서 그 맥을 다하는 48 Km 산줄기를 말한다.
팔공지맥과 더불어 대구시민의 젖줄기라 할 수 있는 금호강의 북쪽 울타리가 되며 합수점에서 낙동강 건너 청룡지맥의 끝점과 마주보며 마무리 된다.
칠곡대로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로 얼굴에 큰 상처를 내고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너무나 힘들게 진행하면서도 무사히 마무리하고 귀가 해 가족들의 걱정으로 산행에 변곡점을 만들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황학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북 칠곡군과 대구시 및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와 네이버의 지식백과 그리고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어제 황학지맥 제1구간을 지천면사무소까지 길게 진행한 후 대구시 달서로 이동을 해 하룻밤 잘 쉬고 새벽 일찍 감자탕으로 아침까지 해결한 후 산행 날머리인 디아크 주차장으로 가 밖으로 나와보니 어제보다는 바람이 없고 기온도 조금 더 올랐는지 한기는 훨씬 덜하다는 느낌이다.
카카오 택시를 이용해 지천면사무소로 이동을 해 조금은 여유롭게 산행을 시작하는데 4번 칠곡대로 앞에서 도로를 건널 수 있는 곳을 찾아 보지만 보이지 않고 특히나 도로를 건넌다 해도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는데 평일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차량 통행도 많아 무단횡단도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기다렸다 차량 통행이 뜸한 시간에 무사히 중앙분리대를 넘는 순간 얼었던 중앙분리대 위에서 약간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얼굴을 그대로 도로 위에 부딪히며 떨어져 안경은 박살이 났고 도로 건너 살펴보니 얼굴 한쪽이 쓸리면서 피가 흐르고 오른쪽 눈은 퉁퉁 부어 앞이 보이지 않는데 다행스럽게도 뼈에는 이상이 없는지 고통이 심하지는 않는다.
얼굴의 피를 지혈하고 부어있는 눈을 확인한 후 손등과 무릎에 느껴지는 통증 부위를 확인해 보니 진행에는 무리가 없지만 퉁퉁 부어있는 얼굴과 눈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은 서지 않는데 더욱이 경부고속도로 지하통로를 건너는 시간에 예기치 않은 비까지 뿌리니 산행에 대한 의욕은 완전히 상실되고 말았다.
한동안 그 지하통로에서 고민하는데 비가 잦아들고 얼굴과 무릎의 통증도 없어 다른 사람들에게 얼굴이 보이지 않토록 주의하며 진행이 가능한 곳까지 일단 가 보기로 하고 다시 출방ㄹ하는데 왜 이런 산행을 해야 하는지 약간은 회의에 빠진 시간이었지만 마무리하고 나니 또 다른 생각으로 나머지 지맥 산행을 계획하고 있으니 그저 쓴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결국 귀가해 가족들로부터 심한 꾸중과 걱정을 듣고 몇일간 근신하며 지내다 보니 이제 붓기도 많이 빠지고 눈도 정상으로 돌아 왔는데 얼굴에 생긴 깊은 상처는 평생의 흔적으로 남지 않을까 걱정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4번 칠곡대로를 통과하면서 중앙분리대에서 미끄러져 도로위로 넘어지며 얼굴과 눈에 큰 상처를 입고 산행 자체를 고민했지만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아 조금 더 진행하며 경부고속도로를 통과하는데 예보에도 없던 비까지 내리며 산행 자체가 싫어지는 시간도 있었지만 조금 참고 기다리며 생각해 보니 그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 스스로에게 약속하고 20여년 가깝게 지켜 온 산행이기에 산행 자체가 가능하다면 끝까지 진행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다시 힘을 내 본다.
용재산과 용산 및 마천산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열리고 살펴보니 다사읍 이천리의 마을과 농경지 지나 금오강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고 그 넘어 건너 대구시 성서제5차첨단일반산업단지와 아파트 단지 뒤로 몇 년전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며 만났던 청룡지맥의 궁산이 솟아 있고 그 좌측 옆으로는 와룡산이 보이는데 저 청룡지맥 날머리 역시 우측으로 흐르는 금오강을 따라 강정보 옆 디아크를 바라보며 마무리가 되기에 그곳에서 디아크를 바라보며 황학지맥은 또 언제나 거어 볼 수 있을지 궁금해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 청룡지맥의 와룡산과 궁산 뒤로는 청룡지맥의 분기점 부근인 청룡산ㄱ솨 최정산에서 우측의 비슬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산줄기가 역시나 옛 추억으로 다시 떠오르는데 그곳에서 만들었던 시간들이 이제는 오래된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치며 삶의 일부를 만들고 있다.
큰 상처로 한쪽 눈을 잃고서도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어렵게 진행하니 드디어 황학지맥의 마지막 죽곡산에 올라 진행 방향인 남쪽과 남동 방향을 살펴보니 좌측의 금오강과 우측의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에 강정보와 디아크 조형물이 내려다 보이고 그 디아크 조형물 좌측인 금오강 건너편으로는 몇년 전 서서 디아크를 바라보며 언제나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해했던 청룡지맥 날머리도 가깝게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청룡지맥 날머리 좌측으로는 대구시 달서구의 마을들과 산업단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로는 청룡지맥의 주산인 청룡산과 최정산에서 우측의 비슬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산줄기가 옛 추억을 들려주며 말없이 응원을 보내고 있는 듯 하다.
오늘은 대구시 달서구에서 새벽에도 문을 연 감자탕식당에서 든든하게 아침까지 해결하고 가까운 강정보 옆 디아크 조형물 주차장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카카오택시를 부르니 10여분만에 도착을 해 곧바로 지천면사무소로 향한다.
어제와 같은 어둠속에 만나는 지천면사무소 건물이지만 어둠이 짙어지는 마무리 시간과 엷어지는 새벽시간이란 미묘한 차이로 인해 마음에서 느껴지는 풍경은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남겨진다.
어제보다는 덜 추운 날씨에 초반부터 방풍의를 벗어 배낭속에 넣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산뜻하게 출발을 하지만 경부선 철로를 통과하며 잠시 해맨 후 정상적인 도로와 등로를 찾아 진행을 할 수 있었다.
황학지맥 제2구간 들머리로 이용한 지천면사무소가 있는 지천면은 경상북도 칠곡군의 중부에 위치하고 있는 면으로 군에서 가장 면적이 넓고 북쪽은 석적면 및 가산면과 남쪽은 대구광역시와 접하고 있다. 면의 북쪽으로 소학산과 황학산 및 백운산 등 높은 산들이 솟아 있고 여기에서 발원한 이언천과 창평천 등이 남쪽으로 흘러 금호강으로 합류하는데 이언천 변의 충적지를 제외하면 평지가 드물어 농경지 면적이 넓지 않다.
지천면 전역에 자라는 아카시아나무를 이용한 양봉이 성하고 조선시대 칠곡도호부의 상지면(上枝面)이었으며 1914년에 인근의 이언면(伊彦面)과 도촌면(道村面) 및 노곡면(蘆谷面)의 일부를 병합하여 지천면이라 하고 칠곡군에 편입되었다.
지천면은 현재 송정리와 금호리 등 15개 리를 관할하고 있고 면 소재지는 신리이며 상지면과 이언면 등에 대한 기록은 여지도서에 처음 실려 있다.
상지방과 이언방 모두 칠곡도호부 관아에서 40리 떨어져 있다고 쓰여 있고 지천이라는 이름은 1914년 지천면을 만들 때 중심이 되었던 상지면과 면의 주요 하천인 이언천(伊彦川)의 끝 글자를 따서 지천(枝川)이라 하였다고 한다.
지천면사무소 앞 갈림삼거리에서 신동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몇걸음 걸어 도로를 건너면 경부선 철로를 건널 수 있는 지하토로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이용해 경부선 철로를 통과한 후 다시 지상으로 나가니 등로 옆으로 경부선 철로가 빤히 보여 사진에 담고 그 철로 우회등로를 빠져 나간다.
경부선 철도는 서울과 부산 사이에 부설된 복선 철로로서 총길이는 441.7 Km이고 대전광역시와 대구광역시를 경유하는 한국 철도의 중추 간선노선이며 장항선, 충북선, 호남선 등과 접속되어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경부선은 1901년 8월 20일에 서울 영등포에서 같은 해 9월 21일에 부산 초량에서 일본 자본의 회사인 경부철도주식회사에 의해 기공되어 4년 후인 1904년 12월 27일 완공되었고 1905년 1월 1일을 기하여 전선(全線)의 영업이 개시되었으며 그 해 5월 25일에 서울 남대문 정거장(지금의 서울역) 광장에서 개통식이 거행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경인선(1899년 9월 18일 개통)에 이은 두 번째의 철도 개통이었지만 서구 열강의 식민지 체제 구축이 철도 부설 및 채광권 획득에서 비롯되었던 많은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부선의 부설은 일제의 우리나라 침략 정책 수행의 구체적 발판이었다.
지하통로를 통해 경부선 철로를 무사히 통과하고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남쪽으로 향하는데 그 도로 양쪽으로 보이는 민가들이 모두 흉물처럼 폐가가 되어 있어 철로 옆 소음이 얼마나 심한지 그리고 지방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눈으로 배우는 시간이다.
텅텅 비어 폐가가 되어 버린 민가들을 지나 오르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형제농장 가는 안내판이 보이는데 국가유공자 형제의 전원이라는 글자도 함께 보이는데 그쪽 방향으로 등로가 이어진다.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가 좌측으로 휘돌아 가는 위쪽으로 민가가 보이고 등로는 이곳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우거진 가시잡목을 헤치며 진행을 이어간다.
가시잡목 등로를 지나 좌측으로 조금 더 전진하니 폐허가 된 시멘트 창고가 보이고 그 앞에서 우측으로 보이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걸어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직진의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좌측 임도로 오르니 진산강씨 평장들이 보이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산행을 출발한 지천면사무소 주위의 밝은 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그곳 지나 널부러져 있는 고사목과 잡목지대를 오르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 한기가 보이는데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여명이 밝아오며 지천면사무소 주위의 마을들과 건물들 그리고 그 뒤 저 멀리 어제 걸어 온 황학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묘지 위에서 지나 온 지천면사무소 주변의 마을과 그 뒤로 어제 걸었던 황학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그 묘지 뒤로 오르니 웅덩이와 재선충 나무 더미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펼쳐지고 그곳을 통과하니 23번 송전탑이 나타난다.
그 송전탑을 지나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펼쳐지는데 등로에는 솔갈비가 아닌 활엽수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갈림삼거리봉에 도착하는데 그곳에는 관목의 소나무 한그루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다.
갈림삼거리봉에서 우측 등로를 버리고 좌측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여명이 밝아오며 주위 사물들이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등로는 계속 완만하게 오르며 이어지는데 등로 옆 나무들은 대부분 소나무로 채워지고 그 사이로 관목의 활엽수들이 혼재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노간주나무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살펴보니 독도님이 이 봉우리를 152봉으로 고도 표시를 해 놨고 그 옆으로는 큰 소나무가 잘린 밑둥들이 보이고 있다.
이곳에서 등로는 우측인 서쪽으로 크게 휘어져 이어지는데 진행 방향 반대쪽인 동쪽으로 제법 멋진 산줄기가 보여 지도로 확인해 보니 이언천 넘어 무명 산줄기가 더 마루금처럼 보이고 있다.
왜 직진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우측인 서쪽으로 이어지는지 궁금해하며 진행하니 점점 차량 소음이 강하게 들리기 시작하고 조금 더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관목의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4차선 포장도로가 눈 앞으로 다가와 지도로 확인해 보니 4번 칠곡대로 4차선 포장도로인데 그 도로를 통과하기 위해 직진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우측으로 우회하며 내려온 것이다.
이곳에서 20년 산행 역사상 최고의 수치스런 사고를 당하고 지금까지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너무 안이한 안전의식으로 평생의 후회를 만들 잘못을 하고 말았다.
선답자들의 산행 트랙을 확인해 보니 우측으로 조금 더 진행한 다음 칠곡대로를 통과해 능선으로 붙었기에 살펴보니 그곳에 횡단보도도 없고 지하통로나 도로도 보이지 않아 무단횡단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듯 보인다.
또한 도로를 건넌다 해도 도롯가에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 그 철망을 통과하는데 어려움이 예상되어 도로 우측 아래로 보이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내려가 보니 지하통로도 없어 다시 도로로 올라 와 기다려 보니 차량통행량이 많아 무단횡단도 쉽지 않다.
그래도 한동안 더 기다렸다 마침 차량통행이 없어 재빨리 무단횡단을 시도하는데 중앙분리대를 넘어 내려가려는데 얼었던 지지대에서 미끄러지며 그대로 반대편 차도로 고꾸라져 오른쪽 얼굴과 눈 및 손등과 무릎을 포장도로에 부딪혀 안경이 완전히 박살이 났는데 우측 저 멀리 차량들이 달려 와 아품도 느끼지 못하고 도롯가로 가 살펴보니 얼굴의 피부가 완전히 벗겨져 있고 붉은 피가 흘러내리며 눈은 퉁퉁 부어 오른쪽 눈이 완전히 감겨 보이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원망과 창피함에 아품과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도롯가에 설치된 철망문을 열고 탈출해 공터로 내려가 모바일폰으로 얼굴을 확인해 보니 얼굴 우측 광대뼈 있는 곳의 살점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있고 안경이 박살나면서 눈 주위를 강하게 압박해 눈이 부었으며 손등과 무릎에 깊은 상처가 생겨 보기에는 심각하게 느껴지는데 눌러보니 뼈가 아프거나 잘못되었거나 고통이 심하지 않아 잠시 더 기다렸다 진행여부를 결정하기로 한다.
도롯가로부터 조금 떨어진 관목을 뚫고 다시 절개지 앞에서 잠시 더 진행을 이어가야 하는지 얼굴과 눈 그리고 팔 다리를 확인하니 고통이 없고 피도 그쳐 진행을 이어가기로 결정하고 절개지 우측 가장자리로 오르니 키가 큰 억새와 잡풀들 사이로 가시잡목들이 나타나고 조심하며 걸어 오르는데 갑자히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으니 거리 조절도 힘들고 균형잡기도 쉽지 않아 초반에는 걸어 전진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천천히 걸어 오르니 드디어 원 마루금인 절개지 상단부에 도착을 하고 살펴보니 관목의 활엽수가 서 있는 좁은 공터의 무명봉이다.
그 무명봉에서 남서 방향으로 완마하게 내려가니 묘지들이 보이고 이제서야 시간이 한참 지난 일출이 바로 앞 이언천 넘어 지천면 낙산리의 무명 산줄기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그것도 나뭇가지에 막혀 잘 보이지 않는다.
일출을 보고 편백나무들이 식재된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제선충 방지 나무더미가 보이는 무명봉 넘어 등로는 다시 우측인 서쪽으로 크게 휘어지며 이어진다.
잠시 후 낡은 띠지가 보이는 무명봉 지나 남서 방향으로 진행하니 소나무와 잡목들이 보이는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그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곧이어 굵은 소나무 아래 벤취쉼터 하나와 관목의 참나무가 보이는 봉우리에 도착을 하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그 옆으로 준희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이 보이는데 185.4봉이다.
어렵게 사진 한장 담아보니 오른쪽 광대뼈 부근의 얼굴에 큰 상처가 생겼고 눈은 퉁퉁 부어 떠지지도 않으며 입술은 위 아래 모두 터지고 퉁퉁 부어 인간의 얼굴이 아닌 듯 보이는데 신기하게도 통증이나 뼈에 이상은 없어 걷는덴 이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얼굴과 눈이기에 진행하면서도 자주 얼굴과 눈을 확인하고 손등과 모릎을 살펴보니 손등에는 콘크리트 조각들이 박혀있어 조심스럽게 빼내는데 무릎쪽은 등산복도 멀정하지만 생각보다 상처가 커 타박상이 심각하다는 생각이다.
걸을때마다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지만 진행에 어려움을 줄 정도는 아니기에 계속 전진하니 그 185.4봉을 지나자마자 등로 옆으로 왜관425란 삼각점이 박혀 있어 사진에 담고 곧바로 다시 출발한다.
삼각점을 지나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활엽수들 그리고 그 사이로 잡목들이 보이는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등로를 따르니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참나무 사이로 벤취쉼터 하나가 설치되어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가니 활엽수 낙엽 등로가 이어진다.
서쪽으로 꺽여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금새 빛바랜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있는 곳에서 등로는 다시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고 낙엽이 지지 않은 관목의 참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히 내려가니 등로 주위로 빛바랜 억새들이 하늘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그곳 안부를 지나 다시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빛바랜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넘어 금새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고 그 위로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161.8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그 삼각점봉을 지나니 등로는 남서 방향에서 남쪽 방향으로 바뀌고 사진으로 얼굴을 살펴보니 얼굴 오른쪽 부분 전체가 부어있고 특히 눈과 입술 부위가 많이 부어있어 보기에 흉할 정도이다.
잠시 후 굵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 지나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갈림삼거리를 만나고 그곳에서 좌측의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진행하니 굵은 참나무 아래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 있는 등로 따라 절개지 상단에 도착을 해 그 아래를 살펴보니 왜관IC와 칠곡물류IC 지난 왕복 8차선의 경부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절개지 상단에서 경부고속도로 건너편으로 진행해야 할 계단식 절개지 마루금 우측으로 진행 방향을 확인하고 우측으로 길게 우회하며 내려가니 능성구공 묘지들이 차례로 나타나고 곧이어 시멘트 수로가 이어진다.
그 콘크리트 수로를 타고 내려가니 수로 좌측으로 철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을 따라 경부고속도로 방향으로 내려가니 고속도로 가장자리 방향으로 높은 철망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철망 우측 옆으로 진행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의 등로가 열려있다.
그 철망 옆 등로를 따르니 칠곡물류까지 3 Km거리라는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곧이어 짧은 구간 경부고속도로 갓길을 통해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지하통로가 보인다.
그 지하통로로 내려가니 갑자기 예보에도 없는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잠시 후 암거를 통해 경부고속도로를 완전히 통과한 후 살펴보니 비가 조금 더 강하게 내려 얼굴과 팔 다리를 확인하며 조금 더 기다렸단 진행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다.
그 지하통로로 내려가니 갑자기 예보에도 없는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잠시 후 암거를 통해 경부고속도로를 완전히 통과한 후 살펴보니 비가 조금 더 강하게 내려 얼굴과 팔 다리를 확인하며 조금 더 기다렸단 진행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다.
몸은 이제 산행을 중단하고 그만 병원에 들려 상처를 확인하고 치료 받은 후 일찍 귀가하자는데 마음은 자꾸만 기다려 보자구 내적 갈등을 하는데 지하통로 우측으로 하빈면 대평리 모산마을의 민가들이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비가 잦아들기 시작하고 배낭커버를 씌운 후 방풍의를 입고 지하통로를 나와 좌측 고속도로 옆 나즈막한 능선으로 오르니 비가 그치기 시작한다.
황학지맥 마루금도 아닌 우회하는 등로인데 두덕으로 올랐다 내려가니 눈 앞으로 작은 개울과 논 경작지 그리고 우측 뒤로 민가가 보이는데 개울을 건너기부터 가시잡목들과 도깨비가시풀 열매가 가득 매달려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어렵게 그 개울을 건너니 논경작지로 이어지는데 한겨울인데도 물이 채워져 있어 허물어진 논둑을 통해 진행하는데 참으로 난감하고 어렵게 민가 옆 비포장임도로 전진하니 민가가 아닌 농기구들을 보관하는 창고같은 가건물들이다.
잠시 후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드디어 어렵게 원 마루금과 접속을 하고 그곳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을 확인하고 우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며 지맥 산행을 이어간다.
관목의 참나무오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다시 미끄러운 활엽수 등로가 나타나고 굵은 참나무가 보이는 곳을 지나 둔덕을 넘으니 갈림사거리의 무명안부를 통과하는데 여전히 좌우측으로 지나다닐 수 있는 등로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좌측으로 지천면 영오리와 우측의 달성군 하빈면 대평리를 이어주는 무명안부 지나 계속 이어지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잡풀들이 보이는 등로를 타고 소나무들이 보이는 언덕같은 무명봉 넘어 지도에 노비재라 표기된 안부로 내려가는데 실제 지형은 안부처럼 생기지 않은 부드러운 능선 등로처럼 보이는 곳이다.
노비재(성황당터 안부)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대평리와 칠곡군 지천면 영오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명칭 유래를 보면 노비재는 옛 지도에는 해오라기 노(鷺)자를 쓴 노비현(鷺飛峴)이였다가 느빗재로도 불리는데 이 고개에는 조선 시대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이곳에서 쉬다가 해오라기가 나무에 앉았다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는 급제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팔공지맥 가산(901.6m)에서 서쪽으로 뻗어나온 산줄기가 오계산(466.3m), 백운산(713.4m), 황학산(760.7m), 소학산(622m), 자봉산(406.2m), 장원봉(379.2m), 용산(250m), 마천산(274.2m), 죽곡산(195.8m)을 거쳐 금호강의 좌안 달성군 다사읍까지 이어지는 황학 지맥(黃鶴枝脈) 중 하빈면 대평리에 노비재(145m)가 있다.
황학 지맥 중 달성군 하빈면 구간에서 북쪽의 160m 고지와 남쪽의 237m 고지 사이에 노비재가 있는데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 상부 대동계 낙동통 낙동층에 해당하며 대표 암석은 이암, 혈암, 사암, 역암과 무연탄이다.
산 중에 위치한 노비재 주변에는 오래된 성황당 흔적이 있지만 수풀과 잡목으로 뒤덮혀 있어 고개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안부같지 않은 노비재 지나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제법 굵은 아카시아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오를수록 등로 옆으로 빛바랜 잡풀들이 우거졌다 숨이 죽은 풍경들이 나타난다.
등로 좌측인 동쪽으로는 이언천 지나 지천면과 대구시 북구 방향의 나즈막한 무명의 산줄기 넘어 저 멀리 가팔환초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 환성산과 초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생각보다 웅장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산객의 키만큼 자랐다 말라있는 나무같은 잡풀지대를 지나 굵은 아카시아나무에 흰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237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얼굴을 확인하니 피는 머졌는데 진물이 흘러 내려 얼굴의 상처와 부어있는 눈 때문에 걱정도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 봉우리 지나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들이 혼재되어 있지만 잡목과 잡풀들이 사라진 뚜렷한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안부같지 않은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줄기가 제법 굵은 잡풀들이 무성했다 말라있는 등로가 보이기 시작하며 둔덕봉을 지나 무명안부로 내려간다.
그 안부를 지나니 빛바랜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를 타고 진행을 이어간다.
갈림삼거리를 지나니 아름다운 굵은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한동안 그 소나무 등로를 지나니 MTB를 탔는지 등로가 움푹 패인 등로도 나타난다.
둔덕봉 지나 굵은 소나무 아래 말라있는 잡풀 등로를 지나니 재선충 나무 더미들이 보이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널부러져 있는 고사목 지대 지나 우측 옆으로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253.8미터의 용재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는데 얼굴의 상처로 인해 사진 한장 남기는 것도 쉽지 않다.
용재산(龍在山.253.8m)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무등리에 솟아있는 산으로 용재산과 관련된 자료는 보이지 않는데 다만 용재산 아래 무등리의 용과 관련된 전설과 무등리에서 그 이름을 찾아 볼 수 있을 뿐이다.
무등리의 명칭 유래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인 무등에서 나온 명칭으로 이곳에는 고려 시대 무인(武人)들이 많아 살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무등리의 동쪽은 용재산(龍在山, 254m)이 남동쪽은 용산(龍山, 244m)과 성산(城山, 274m) 등 마천산령(馬川山嶺)의 산줄기가 놓여 있으며 이들 산지의 산기슭에 취락들이 들어서 있다.
용재산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의 얕은 능선에 칠곡군 지천면으로 넘어가는 노비재가 있다.
등로 우측으로 약간 벗어나 있는 용재산에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뒤돌아 나오니 등로 위에는 여전히 널부러져 있는 고사목들이 보이고 우측인 남쪽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많은 묘지들이 연속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묘지지대를 지나니 28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는 다시 남쪽에서 남동 방향으로 바뀌고 굵은 소나무에 흰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무명봉도 넘으니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히 덮혀 있는 무명묘지가 보이는 안부도 통과한다.
그 무명안부 지나 한동안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휘어지고 구부러져 있는 아카시아나무들이 보이고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244미터의 용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용산(龍山.244m)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무등리에 있는 산으로 명칭 유래를 보면 용산(龍山)의 한자 의미가 용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내력은 알 수 없다.
달성군 북부 지역에 위치한 용산(244m)은 달성군 하빈면 현내리에 걸쳐 있는 마천산(馬川山, 274.4m)과 다사읍 달천리에 있는 박산(朴山, 217.7m)으로 이어져 금호강으로 사라지는 마천산령(馬川山嶺)의 한 봉우리이다.
소나무를 비롯한 잡목들이 우거져 있으며 기반암은 대체로 산지의 방향과 일치하는 중생대 백악기 상부 쥐라기에 해당하는 낙동통의 진주층(이암, 혈암, 사암, 역암)으로 되어 있다.
용산은 대구 지하철 2호선의 문양역에서 시작하여 문양·서부실 둘레길 좌측 능선에서 다사 둘레길과 하빈 고개, 마천산 산림욕장, 마천산 봉수대, 마천산, 용산, 박산, 박곡리로 이어지는 약 14 Km의 다사 둘레길 제2구간에 위치하고 있다.
달성군 다사읍을 한 바퀴 순환하는 코스인 다사 둘레길은 총 3구간으로 되어 있으며 도상 거리 약 32 Km 정도이다.
제1구간은 강창교에서 제2구간은 문양역에서 하차하여 서쪽 능선을 타고 오르다 보면 분기점이 나타나는 곳이고 제3구간은 해랑교(海娘橋)가 출발지이다.
용산에서도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추억 한장 남기고 살펴보니 얼굴과 눈 그리고 입술이 더욱 부어 올라 비대칭을 이루고 걱정과 고민이 깊어만 가는데 눌러보면 아품이나 고통은 없어 뼈나 눈 속은 다치지 않은 듯 하여 조금 더 진행해 보기로 한다.
하지만 여전히 한쪽 눈이 보이지 않으니 오르고 내리는 등로에서 제대로 거리감을 느끼지 못하고 힘들게 용산을 내려가니 등로는 우측인 남서 방향으로 흐르며 잡풀이 무성했던 무명묘지도 통과한다.
다시 이어지는 굵은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우측인 서쪽으로 바뀌더니 잠시 후 굵은 활엽수 나뭇가지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고 그 뒤로 왜관308이란 3등 삼각점이 박혀있는 274.4미터의 마천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마천산(馬川山, 274.4m, 310삼각점)은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다사읍과 하빈면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274m이고 경상도지리지(1425)를 비롯해 지리지 관련 고문헌에 대부분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마천산은 하빈현에서 남으로 1리에 있는데 일명 금성산(錦城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같은 문헌에서 마천산 봉수는 남으로 성주 화원현 성산(城山)에 응하고 북으로는 성주 각산(角山)에 알려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구읍지에는 마천산은 부의 서쪽으로 30리쯤에 있고 일명 금산(錦山)이라고도 하며 봉수대가 있고 칠곡의 가산(架山)에서 비롯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 힘이 아주 강한 장수 한 사람이 마천산에 말을 타고 다녔는데 그때 그 장수가 타던 말의 발자국이 남게 된 탓에 마천산이라는 지명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얼굴을 보니 이제 눈과 입술이 최대치로 부풀어 오른 듯 본인이 보기에도 상처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 고통이 극심했던 손등과 무릎까지 통증이 사라지며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니 조금만 더 참고 진행하자 생각으로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자료를 찾다보니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무등리 용재산에는 용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일명 용재산 용의 승천이란 이야기로서 용재산으로 귀양 온 용이 인간을 위해 열 가지 좋은 일을 하고 승천할 때 꼬리를 끈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용 흔적 전설이다.
옛날 용재산에 있는 용소에 용이 살고 있었는데 이 용은 본래 하늘 옥황상제의 시종무관으로서 용모가 준수하고 성품이 호방하여 옥황상제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하루는 옥황상제가 천상의 잔치를 열어 천상의 선관과 별신들이 모이고 선녀들의 춤과 온갖 얘기로 잔치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는데 이때 잔치를 주관한 옥황상제가 여러분 내가 평소에 자랑하고 싶던 것이 있으니 모두 봐 주시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자리에 모인 선관과 별신들은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 하였고 옥황상제는 시종무관을 불러 칼춤을 추라고 했으며 시종무관은 자리에 나와 멋지게 춤을 추었다.
시종무관의 춤 솜씨가 너무 빼어나 좌중이 모두 그 춤에 취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선녀가 춤을 추는 시종무관의 모습을 보고 사모의 정을 가지게 되었다.
잔치가 끝난 뒤 선녀가 몰래 시종무관에게 와 자신의 마음을 전하였고 시종무관도 춘정을 이기지 못해 둘이 같이 먼 별나라로 달아나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옥황상제는 몹시 화가 나 시종무관을 잡아다 용재산에 귀양을 보내 버렸는데 옥황상제는 시종무관을 귀양 보내면서 인간을 위해 열 가지 좋을 일을 하면 귀양을 끝내고 함께 도망간 선녀와 인연을 맺어 주겠다고 했다.
시종무관은 수백 년을 용재산 용소에 머물면서 인간을 위해 아홉 가지 좋은 일을 했고 나머지 한 가지 좋은 일을 할 기회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해 큰 가뭄이 들자 동네 사람들이 용재산 용소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게 되었고 용은 자신의 신통력을 이용해 마을에 비를 내려 주었다.
용은 드디어 열 가지 좋은 일을 모두 해낸 후 비가 내리던 날 천둥이 치며 용이 하늘로 솟아 올랐고 그때 용이 승천하면서 끌린 꼬리 자국이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용재산 용의 승천의 주요 모티프는 죄를 지어 지상계로 귀양오기와 10가지 좋은 일 하고 승천하기 등이인데 용재산 용의 승천의 전승 집단은 용재산의 신이성을 알리기 위해 옥황상제, 용, 선녀 등 천상계의 인물을 이용하고 있다.
용재산 용의 승천은 용재산에 남아 있는 자국인 증거를 통해 용재산이 천상과 관련한 신이한 산이라는 사실을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마천산 정상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좌측인 남쪽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멋진 풍경들이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살펴보니 2019년 4월말에 걸었던 청룡지맥의 마지막 구간에 솟아 있는 궁산과 좌측으로 와룡산이 보이고 그 청룡지맥 바로 앞으로는 금오강이 옛 추억을 들려주며 도도히 흐르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 청룡지맥 뒤 저 멀리로는 좌측의 청룡산에서 우측의 비슬산으로 이어지는 청룡지맥 마루금이 여전히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많은 사연들을 남긴 비슬산이 내년 봄 참꽃이 피는 날 다시 만나자 약속을 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기대하지 못했던 황홀한 풍경과 조망에 잠시 더 머물며 많은 사진에 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환상의 청룡지맥과 비슬산을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굵은 소나무와 약간의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굵은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무명봉 넘어 MTB로 패인듯한 등로를 따르니 봉수대터까지 0.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 지나 활엽수 낙엽이 깔린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간다.
잠시 후 무명안부 지나 둔덕봉으로 오르니 마천산 산림욕장 안내판과 사각정자가 보이는 무명봉 넘어 조금 더 내려가니 봉수대터까지 0.2 Km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봉수대터 방향에서 몇명의 동네 산책하는 어르신들이 내려 와 재빨리 얼굴을 가리고 조금 돌아 능선으로 오르다 바람이 잦아들고 햇볕이 따사로운 곳에 앉아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진행을 이어간다.
출발하기 전 지도를 확인하니 시멘트 포장도로 좌측으로 마천산 산림욕장이 조성되어 있어 동네 어르신들이 산책로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등산로처럼 보인다.
마천산 산림욕장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에 있는 산림욕장으로 친환경적인 도시 근교 산림 휴양 시설의 마련을 통해 늘어나는 산림 휴양 수요에 대처하고 시민들의 건강 증진 도모를 위해 조성되었다.
2007년 8월 산림욕장으로 지정·승인된데 이어 같은 해 11월 산림욕장 조성 및 진입 임도 개설을 마쳤으며 2008년 4월 산림욕장 조성 공사를 준공하였다.
2008년 5월 공유 재산 관리 계획을 수립(주차장 부지 매입)하고 2009년 1월 주차장을 조성하였으며 총면적은 48만 7516㎡(공유 48만 2756㎡, 사유 4,760㎡)이다.
편의 시설로 육각 전망대 1개소, 목교 1개소, 평상 11개소, 평의자 32개소, 목계단 49단, 로프 난간 9경간이 설치되어 있고 안내 시설로 종합 안내판 1개소, 방향 표지판 6개소, 숲 해설판 20개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외에 운동 시설 15개소와 자연 발효 화장실 4개도 설치되어 있다.
마천산 산림욕장은 대구 도시 철도 2호선 기점인 문양역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승용차 이용객뿐만 아니라 도시 철도를 타고 온 원거리 방문객 또한 많다.
문양역에서 산림욕장에 이르는 주변 산지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과 하빈면의 경계를 달리는 분수령(分水嶺)인 마천산령(馬川山嶺)에서 뻗어 내린 구릉성 산지이다.
우선 문양역 북쪽으로는 낮은 구릉이 자연 마을 서부실(西部室)을 휘돌아 감싸고 있는데 대구 도시 철도 2호선이 개통된 후 시민들의 가벼운 산행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고 산 정상은 마천산(196m)이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 마천산령의 끝자락 봉우리로 볼 수 있다.
다시 북동쪽으로 내려가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와 하빈면 현내리로 통하는 고갯길 도로를 건너면 성산(城山, 274m) 남서쪽으로 마천산 산림욕장이 위치하고 있으며 성산은 마천산령의 최고봉으로서 마천산(274m)으로도 부른다.
한편 이 곳에는 마천산 봉수대터(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산 40 일원)가 남아 있는데 마천산 봉수대는 경상도 동래에서 한양을 잇는 제2로의 간봉으로서 조선 시대 초기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양역 주변은 대구 10미(味)의 하나인 논메기 매운탕 식당들로 유명하여 마천산 산행과 함께 별미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잠시 쉬고 있는 사이 마천산 방향에서 아주머니 세분이 내려 와 봉수대터 방향으로 먼저 올라가고 마주치기 싫어 조금 더 쉬며 기다렸다 거리감이 생길 쯤 빠르게 걸어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봉수대터 방향으로 오른다.
참나무 아래 부드럽게 깔려있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오르니 무너진 돌담들이 나타나고 그 돌담 지나 오르니 방금 전 먼저 오른 3명의 아주머니들이 운동을 하고 있어 가능하면 얼굴이 마주치지 않토록 돌아 올라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고 우측 한쪽으로 마천산 봉수대터 설명판 그리고 대구38이란 기준점 설명판이 보이는 256미터의 마천산 봉수대터에 도착을 한다.
이곳 봉수대터(233.6m, 마천산봉수대터 안내판, 삼각점 안내판)는 마천산봉수대터를 말하는데 봉수(烽燧)는 횃불(烽)과 연기(燧)로 국경과 해안의 안위를 약정된 신호 전달 체계에 의해 국경 지대의 군정(軍情)을 신속하게 중앙에 보고하던 군사 통신 수단이며 삼국 시대부터 원시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고려 시대에 정례화되었다.
조선 전기에 다섯 개 노선의 봉수망이 정비되면서 전국적으로 700여 개소에 이르는 봉수대가 설치되어 운영되었는데 봉수는 성격에 따라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였던 중앙 봉수인 경봉수(京烽燧), 국경과 해안가 및 도서 등 연변 초면에 설치되어 있는 연변 봉수(沿邊烽燧), 연변 봉수와 경봉수를 연결하는 내지 봉수(內地烽燧)로 구분되며, 조선 후기 군사적으로 중요하였던 영진에서 자체적으로 설치하여 본읍·본영·본진으로 연락하도록 운영되었던 근설 봉수(權設烽燧)가 있다.
마천산 봉수(馬川山烽燧)는 대구부(大邱府) 서쪽 하빈현(河濱縣)에 있는 것으로 남쪽으로는 화원현(花園縣) 성산(城山) 봉수의 연락에 응하며 북쪽으로는 성주의 각산(角山) 봉수대에 통보하도록 되었다.
마천산 봉수대터에서도 추억과 사진 몇장 남기고 좌측으로 휘어져 진행하니 벤취쉼터 2개와 황학지맥 산행과는 관계없는 이정표 지나 작은 벗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한다.
잠시 후 굵은 참나무가 보이는 등로 지나 이정표를 통과하니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굵은 아카시아 나무들이 보이고 그 사이마다 널부러져 있는 고사목들이 보여 방향만 잡고 이리저리 어렵게 진행하니 잡풀들이 우거졌다 말라있는 등로도 통과한다.
다시 우측으로 크게 사면치기 하듯 돌아 조심스럽게 내려가는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으니 거리감과 균형 감각에 이상이 생겨 몇번이나 미끄러지며 힘들게 내려가니 갑자기 안전목책과 러프가 설치되어 있는 계단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타고 우측으로 편안하게 이어간다.
멋진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뚜렷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사각나무 계단이 나타나고 곧이어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전진하니 많은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그 묘지들 뒤로 잠시 후 하빈고개 넘어 만나야 할 234봉도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묘지지대 우측 능선을 타고 내려가며 진행 방향을 올려다 보고 묘지 넘어 좌측을 보니 저 멀리 고층 빌딩들이 보이고 그 뒤로 멋진 봉우리와 산줄기가 제한적으로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지도로 확인해 보니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의 고층 아파트들이 보이고 그 뒤로는 청룡지맥의 마지막 산줄기인 궁산과 와룡산 줄기이고 제일 먼쪽으로는 청룡산과 최정산 방향으로 보인다.
조망을 즐기며 묘지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이정표 지나 하빈로84길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하빈고개에 도착을 한다.
하빈고개(2차선도로, 다사읍과 하빈면 경계)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금남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명칭 유래를 보면 하빈(河濱) 고개는 하빈면에 위치한 고개이기 때문에 하빈고개란 명칭으로 불린 듯하다.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와 하빈면 현내리를 연결하는 마현령(이현 고개)도 하빈고개라고도 불리고 있는데 달성군 하빈면 묘리삼가헌 서쪽 지방도 67호선에 합류하는 도로에 있는 하빈고개는 달성군 하빈면과 칠곡군 왜관읍 경계 지역에 위치한다.
서쪽의 낙동강과 인접하여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는 산줄기 중 낮은 안부에 조성된 하빈고개는 고개라고 하기에도 해발 고도가 매우 낮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빈 고개의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 상부 대동계에 해당하는 낙동통 하산동층이고 대표적 암석은 이암과 혈암 및 사암 그리고 역암이다.
하빈고개는 대구 지하철 2호선의 문양역에서 시작하여 문양과 서부실 둘레길 좌측 능선에서 다사 둘레길, 하빈고개, 마천산 산림욕장, 마천산 봉수대, 마천산, 용산, 박산, 박곡리로 이어지는 약 14 Km의 다사 둘레길 제2구간에 위치하고 있고 하빈고개 아래의 굴다리를 지나면 낙동강 변으로 이어져 낙동강 물레길과 낙동강 자전거 종주 코스와 함께 육신사(태고정), 삼가헌(낙빈 서원), 하빈고개, 하산리 하목정, 성주 대교, 하빈 수변 공원, 하빈천 입구, 매죽골, 문산 전망대, 문산 정수 사업소, 문산리, 영벽정, 죽곡 정수 사업소 후문, 죽곡산, 강정보로 이어지는 약 5시간 내외의 강정 녹색길 걷기 코스의 구간으로 이어져 있다.
도로 건너 우측으로 올라 고갯마루를 넘으니 좌측 들머리 방향으로 운동기구와 벤취쉼터들이 보이고 들머리 방향으로는 다사읍이라는 도로표지판이 서 있다.
다사읍이란 도로표지판 뒤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무명묘지 2기를 지나고 동네 산책길 같은 마루금이 뚜렷하게 보이는데 읷 역시 활엽수 낙엽들이 깔려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밟았는지 미끄럽지 않고 오르막 경사도가 심하지 않아 진행에는 지장이 전혀 없다.
잠시 후 그림같은 참나무 등로가 열리고 그렇게 한동안 무심으로 걸어 오르니 갑자기 등로가 우측인 서쪽 방향으로 휘어져 이어지고 곧이어 굵은 소나무 두그루 옆으로 벤취쉼터 4개가 나타나는데 그 벤취에 걸터 앉아 물 한모금 마시며 얼굴을 보니 피가 났던 광대뼈 부근은 이제 완전히 아물어 얇은 딱지가 져 있고 주변으로 붉게 충혈되어 있으며 눈과 입술부위는 여전히 퉁퉁 부어 말을 하기도 보이지도 않는다.
다시 벤취쉼터 4개를 지나 남쪽으로 여전히 뚜렷하게 나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작은 돌들이 보이는 무명봉 넘어 등로가 남쪽에서 남동쪽으로 바뀌고 해발 219미터란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마천산에서 2.0 Km 지나왔고 산림욕장까지 0.87 Km 남아 있으며 좌측으로 문양역까지 4.59 Km 거리라는 표시가 보이는 갈림삼거리에서 좌측 문양역 방향의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오르는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우측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이어가니 다시 작은 바위들이 등로에 산재되어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는데 그래도 시간이 지나 한쪽 눈으로 진행하는데 조금은 익숙해졌는지 바위 사이로 진행하는 발걸음이 확연히 빨라졌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후 등로를 다시 남동에서 남쪽으로 변하고 짧게 활엽수 등로를 따라 평이하게 전진하니 굵은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봉우리 정상 한쪽으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는데 독도님이 이곳을 234봉이란 고도표시를 해 놨다.
그 234봉을 지나 계속 남쪽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연속해서 묘지들이 나타나고 몇기의 묘지들을 지나니 비포장임도 같은 뚜렷한 등로 양쪽으로 제법 굵은 참나무들이 보이는데 등로 위 활엽수 낙엽들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어 의아하게 생각하며 진행하다 할아버지 한분을 만나면서 그 의문점이 해결되었는데 할머니와 두분이 산책을 하시면서 낙엽이 있으면 깨끗하게 치우면서 산책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행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동네 산책길 같은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니 가끔 동네 주민들이 산책하는 모습들이 자주 나타나고 그 주민들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피해 진행하다 보니 마치 범인이 된 듯한 기분에 산행의 즐거움도 많이 반감되는 시간이다.
잠시 후 벤취쉼터2개와 국가지점번호판이 있는 무명봉 넘어 계속 평이한 산책로 같은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오르막 사각나무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올라 다시 나타나는 벤취쉼터 2개를 통과하니 약간의 바위 등로 지나 또 다시 벤취쉼터 2개와 등산로 안내도가 보이는 181봉에 도착을 한다.
벤취쉼터와 등산로 안내도가 있는 181봉 지나 부드러운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넓은 사각탁자 2개와 벤취쉼터들이 보이는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진행 방향으로 이정표도 서 있어 확인해 보니 해발고도 184미터로서 방금 전 내려온 181미터보다 낮아 보이는데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 고도 표시이기에 트랭글로 확인하니 168미터이다.
이곳은 직진의 문양역 방향으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좌측 부곡배수지 0.40 Km 방향으로 대나무 등로를 지나 진행을 해야 할 길주의 갈림삼거리 안부이기도 하다.
대나무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다시 주민들이 올라오고 얼굴을 가리고 인사만 드린 후 내려가니 눈 앞으로 거대한 태양광 발전시설들이 보이고 그 뒤로 잠시 후 올라야 할 136봉도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진행 방향을 살펴보며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태양광 발전시설이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금오강과 성서제5차첨단일반산업단지 지나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고 그 좌우측으로 청룡지맥의 와룡산에서 궁산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마루금도 아름답게 하늘금을 그으며 이어지고 있는 풍경이 환상이다.
그러고 보니 저 아파트들은 방금 전 하빈고개로 내려가며 묘지지대 위에서 바라봤던 그 아파트 촌으로서 방향이 바뀌니 아파트와 청룡지맥 마루금의 풍경도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좌측으로 달성군 다사읍 방향의 아파트와 청룡지맥 마루금을 사진에 담으며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이제 등로 우측 저 멀리 칠봉지맥의 의봉산이라 생각되는 산과 그 좌우측으로 칠봉지맥 마루금이 살짝 보이는데 시야가 좁아 정확히는 분간하기 어렵다.
그렇게 등로 좌우측을 살펴보고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태양광발전시설 주위로 견고하게 설치된 녹색철망을 따라 진행하니 부곡배수지 안내판이 나타나고 곧이어 우측으로 배수장 건물 지나 등산로입구 쉼터 550m란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거대한 태양광발전시설과 부곡배수장을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진행한 181봉부터 이곳까지 이어진 마루금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 오고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굵은 참나무와 아직 낙엽이 지지 않고 변색된 나뭇잎들을 달고 있는 키 작은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어 가을 정취가 나는 등로가 이어진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자연을 음미하며 부상당한 얼굴도 인식하지 못하고 진행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는지 수북히 쌓여 있던 활엽수 낙엽들이 밟혀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고 그렇게 한동안 더 멋진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바위들이 나타나며 급경사 오르막 등로를 지나 넓은 공터에 많은 운동기구들이 설치된 136봉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거울도 보이고 우측 바로 옆으로 이정표도 서 있는데 이제 우측의 다사읍사무소 방향의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다사역 1.1 Km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 길림삼거리봉이기도 하다.
운동기구들이 보이는 136봉 지나 좌측으로 크게 꺽어 동쪽 방향으로 진행하니 이곳 역시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들이 고스란히 등로에 남아 있고 편안하게 진행하니 관목의 참나무들이 많이 보이는데 잡목이나 잡풀들은 주민들이 제거한 듯 진행에 어려움이 전혀없다.
잠시 둔덕봉 지나 길게 이어지는 참나무 아래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 앞으로 거대한 아파트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옛날 국토지리원 지도를 살펴보니 나타나지 않아 다음지도로 확인해 보니 다사읍 매곡리의 신설된 아파트들로서 다사역과 다사초등학교가 가깝게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잠시 후 밀성박씨 묘지들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다사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 앞으로 다사초등학교 건물이 보이는데 등로는 그 건물 직전 좌측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 이어지고 있다.
다사로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다사초등학교 앞 동양농기란 입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좌측 골목길로 들어가니 공장건물들이 나타나고 직원들을 만나는데 제지는 하지 않아 재빨리 통과하니 비닐하우스와 파란 그물망이 어지럽게 설치되어 있는 많은 텃밭들이 나타나고 그 사이를 미로처럼 빠져 나가니 다시 능선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만나 잠시 발걸음 멈추고 방금 전 어렵게 지나 온 다사읍 방향의 고층 아파트와 마루금을 살펴본다.
다사읍은 대구광역시의 달성군 서쪽에 위치한 읍으로 읍소재지는 매곡리이고 금호강, 궁산(弓山, 250m)에서 와룡산(臥龍山, 300m)능선, 낙동강을 경계로 달서구와 서구, 북구, 고령군, 칠곡군과 분리되며 읍의 동편 북부 일부구간을 경부선이 통과한다.
다사는 757년(신라 경덕왕 16) 양주(良州, 경남 양산)의 속군(屬郡)인 수창군의 한 현으로 다사지현(多斯只縣) 또는 답지(畓只)로 불렀고 992년(고려 성종 11) 대주(岱州, 경북 성주), 1018년(고려 현종 9) 경산부(京山府), 1143년(고려 인종 21) 대구현으로 각각 소속되었다.
1414년(태종 14) 대구의 속령으로 하빈현의 하동(河東)과 하서(河西), 하남(河南)의 3개면이 1910년(광무 10)까지 지속되었다가 1910년 하빈현을 하동면과 하남면으로 나누었다.
1914년 하동면과 하남면을 합쳐 다사면이라 하고 달성군에 소속되었다가 1996년 3개 리가 1997년 6개 리가 증설되어 인구도 급증하였다.
1997년 다사읍으로 승격하였으며 다사읍 지명은 4세기 초 신라시대 다사지현(다사면과 하빈면 일대)에서 유래되었다.
다사읍 매곡리를 빠져 나와 능선으로 오르니 몇기의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곳 묘지 잔디 위에서 배낭 내려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며 얼굴을 보니 눈과 입술 부위로는 최대로 부어 올랐는지 얼굴이 기묘하게 변해있고 광대뼈 부근의 상처는 많이 아물어 진물도 나오지 않는다.
다사읍을 통과하기에 병원이나 야국을 찾아 보기로 하고 묘지위에서 조금 더 휴식을 취하고 조금 더 전진하며 동쪽에서 남동 방향으로 걸어가니 잡풀지대를 지나 갑자기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는 지하통로와 새로 신설되는 듯한 도로가 보이는데 다음지도로 확인해 보니 올해나 내년에 완공 예정인 대구외곽순환고속도로로서 완공되면 마루금도 또 변화되지 않을까 예상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도깨비가시풀과 도둑가시풀 열매가 무상하게 남아 있어 스틱으로 헤치며 어렵게 오르니 벤취쉼터 2개와 커다란 무명묘지 1기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공사중인 대구외곽순환고속도로를 살펴보니 4차선 도로로서 많이 진행되었음을 느끼는 시간이다.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다사근린공원을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신설되는 외곽순환고속도로와 금오강 건너 성서제5차첨단일반산업단지 뒤로 오늘 이 산객이 넘었던 마천산에서 우측의 용산과 박산 방향으로 흐르는 산줄기가 빤히 보여 몇장의 사진에 담고 산행을 이어간다.
주위 풍경들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들이 혼재되어 등로에는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고 곧이어 경사도가 급해지는 지점부터 통나무 계단이 드문드문 설치되어 있다.
그 계단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운동시설과 벤취쉼터들 그리고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 한쪽에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데 남양주 금곡님의 띠지에 이 봉우리는 119.4봉이라 적어 놨다.
그 119.4 삼각점봉을 지나니 등로는 이제 남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바뀌고 넓은 참나무 등로 위로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지만 많은 주민들이 다녀갔는지 낙엽들은 모두 숨이 죽어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벤취쉼터 2개를 통과하고 바스락거리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밟으며 오르니 드넓은 헬기장이 보이는 123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헬기장인 123봉 지나 계속 이어지는 남서 방향으로 내려가니 많은 벤취쉼터들이 설치되어 있어 좋은 날씨에 주위 주민들이 자주 올라 와 쉴 수 있도록 해 놨다.
억새마대가 깔려있는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진행 방향으로 다시 거대한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내리막 등로에는 중간에 벤취쉼터들을 설치해 주민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배려를 해 놓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밴치쉼터와 운동기구가 있는 곳에서 내리막 경사도가 완화되고 곧이어 밭경작지 지나 다사읍 매곡리의 다사로 4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 앞 4차선 포장도로를 횡단보도를 통해 통과한 후 다사로 6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죽곡삼정그린코아더베스트아파트가 보이고 곧이어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황단보도를 통해 도로를 건너 다사역로를 타고 걸어가니 좌측으로 드림마트도 보인다.
잠시 후 매곡사거리에 도착을 해 약국을 찾아보니 좌측으로 옵티마약국이 보여 들어가 약사와 상담하니 약사가 걱정을 해 주고 약사의 도움을 받아 광대뼈 부근의 큰 상터를 소독제와 메디폼으로 치료하고 눈과 얼굴이 부어있는 것과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는 먹는 약을 구매해 먹고 남아 있는 약을 배낭에 넣고 나오니 그나마 마음적으로 위안이 되고 있다.
약국에서 얼굴의 상처를 치료하고 나와 매곡사거리를 건너 태왕드림하이츠아파트 옆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강창1차삼산타운아파트 지나 정면으로 강창한서꼼빠니아타운아파트가 올려다 보인다.
그곳 갈림삼거리에서 오른쪽 도로로 따라 걸어 오르니 강창우방타운아파트 단지들이 보이는데 이곳은 전부 아파트 단지 밀집지대처럼 보이는 매곡리이다.
이곳 매곡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에 있는 리로서 마을에 낮은 고개와 산이 있으며 마을이 큰 골짜기가 된다 하여 매실 또는 종곡, 두곡, 매곡이라고도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매곡, 연화, 왕성고개 마을이 있는데 연화(連花)마을은 왕성고개마을 남쪽에 있는 마을로 연화봉 밑에 있다 하여 연동이라고도 부르고 왕성고개마을은 매곡마을에서 연화동으로 넘어가는 왕성고개 밑에 있다 하여 왕성고개라 이름 붙여졌으며 이 마을에는 면사무소, 중학교, 우체국 등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을이 완전히 개발되면서 예전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신도시화 되어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마천루를 이루고 있다.
강창우방타운아파트 단지를 지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니 좌측으로 가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도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그 도로 좌측으로 옹벽과 철망이 설치되어 있는 위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좌측으로 드넓은 아파트 단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좌측에 철망을 두고 능선으로 오르니 남쪽 죽곡리 방향으로 길게 아파트 단지들이 줄지어 나타나고 그 뒤 저 멀리 끝자락에 비슬산 줄기가 아련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파트 단지들을 확인하며 능선 등로를 따르니 등산로 안내판과 공사안내판이 나란히 서 있는데 읽어 보니 매곡배수지 확장공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그곳에서 우측 매곡배수지 확장공사장 방향으로 걸어가니 매곡배수지와 소공원 안내판 지나 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매곡배수장 건설현장이 나타나는데 그 건물 좌측으로 나 있는 공사중인 도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작업자들이 매곡배수장 주변에 녹색 철망을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데 철망이 설치되고 나면 후답자들은 또 한동안 빙 돌아 진행을 해야 하거나 다른 등로를 찾아 우회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작업자들이 작업을 하는 곳에서 능선 방향이 아닌 우측의 또 다른 건물 방향으로 오르니 그 건물을 우측에 두고 능선 방향으로 공사중비가 한창이고 그 뒤로 오르니 능선 방향으로 길게 통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다 뒤돌아 보니 아파트 단지에서 매곡배수지 확장공사장 지나 이곳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흐름이 한눈에 보인다.
이제 그 통나무 오르막 계단을 타고 한동안 오르니 등로에는 고무매트가 깔려있고 곧이어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에서 올라오는 등로에도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계단이 길게 올라 와 있다.
이제 남쪽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산로 아님이란 안내판이 우측으로 보이고 그 안내판을 지나 멋진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 같은 넓고 뚜렷한 마루금을 따라 진행하니 약간의 바위지대 지나 다시 사각나무 계단이 나타난다.
그 계단을 타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강정보 녹색길 안내판이 서 있고 우측으로 체육시설로 갈 수 있는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남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정상까지 0.4 Km 거리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그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등로는 다시 남쪽에서 좌측인 동쪽 방향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고 벤취쉼터 하나를 통과하니 체육시설들이 다시 나타나지만 추운 겨울이라 그런지 이용하는 주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운동시설이 있는 무명봉 지나 여전히 뚜렷하지만 평이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벤취쉼터와 운동시설들이 나타나는데 우측으로 전망대까지 0.7 Km 거리에 죽곡산 모암봉 정상까지는 이제 0.2 Km 남아 있다는 전망대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그 갈림삼거리를 지나자마자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다 계단 좌측을 보니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펼쳐져 있고 그 좌측 뒤로는 금호강이 구비쳐 흐르며 그 금호강 뒤로는 황학지맥 동쪽으로 솟아 있는 산들이 보이고 사진 우측으로는 청룡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궁산에서 우측 아래 황학지맥과 마주보는 곳으로 달려가는 산줄기가 이어지는 모습도 한눈에 들어 온다.
이제 눈을 북쪽과 북북동쪽 방향으로 돌리니 동네 산책길처럼 나지막하게 이어지는 산줄기이지만 오늘 이 산객에게는 사고 후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참으로 어렵게 걸어 온 황학지맥 마루금 상 마천산과 용제산 그리고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벗어나 있는 박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어제 걸었던 황학지맥 산줄기와 그 우측으로 건령산 줄기가 거대한 아파트 단지 좌측 뒤로 아스라히 보이기 시작한다.
사고 후유증은 없지만 퉁퉁 부어있는 눈과 입술로 인해 힘들게 진행하다 보니 처음 계획된 산행시간보다 2시간 이상 지체되어 이곳 죽곡산 가까이 도착하게 되었다.
한동안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며 좌측으로 청룡지맥과 다사읍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 그리고 어제부터 걸었던 황학지맥 산줄기와 그 동쪽으로 떨어져 있던 봉우리들을 살펴보고 오르니 드디어 팔각정자가 있고 그 정자 아래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있으며 글씨가 보이지 않는 모암산 정상석 및 전망대가 설치된 죽곡산 정상에 도착을 해 다친 얼굴로 추억 한장 남기는데 아직도 보기 흉한 몰골이다.
죽곡산(竹谷山.195.8m)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와 매곡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지난 2003년에 명칭이 제정된 죽곡산(竹谷山)은 옛날부터 대나무가 많다고 하여 죽곡산이라고 불렸는데 지명 유래지를 보면 재미있게도 죽곡(竹谷, 대실) 지명의 유래가 죽곡 산성의 축조와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즉 마을의 뒷산에는 신라가 가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축조한 개성(狗城)이 있고 성의 군사들이 전쟁 때 쏠 화살을 만들기 위해 산에 대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대나무 골짜기라는 뜻의 대실 또는 죽곡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죽곡산은 연화산이라고도 불리며 가장 높은 봉우리는 취모봉(醉帽峯) 또는 모암봉(帽巖峯)이라고도 하는데 취모봉은 주로 매곡리에서 불렸던 지명으로 술에 취한 사람이 모자를 쓰고 조는 것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고 모암봉은 주로 죽곡리에서 불린 지명이다.
지도에는 죽곡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실제로 산 정상석에는 모암봉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죽곡산(195.8m)은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와 매곡리에 걸쳐 솟아 있으며 낙동강과 금호강 합류점에서 약 1 Km 상류인 낙동강 좌안에 위치해 있다.
죽곡산도 와룡산과 같이 100m 미만의 대구 서부 저기복면보다 높이 솟아 있는 잔구(monadnock, 기반암의 차이에 의해 오랜 침식을 견뎌 주변보다 높게 솟은 산)로서 이러한 지형은 기반암이 궁산(弓山, 250.9m)과 같이 주변의 암층보다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큰 신라통의 신라 역암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라 역암은 북쪽과 동쪽에 분포하고 있는 칠곡층의 암석보다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여 주변보다 높이 솟아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죽곡산까지는 강정보 녹색길이 조성되 있다.
산행의 들머리인 강정 마을을 통해 전망대와 180m 고지를 거쳐 정상으로 갈 수 있다.
해발 고도가 낮은 산이기도 하지만 안내판과 의자 등이 잘 조성되어 있고 등산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 불편함 없이 쉽게 등산을 즐길 수 있으며 전망대와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뛰어나다.
죽곡산 정상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를 둘러 보는데 눈동자 부위가 약간 알싸한 통증이 느껴지고 팔각정 아래 숨어 있는 삼각점을 찾기 위해 고개를 숙이니 코에서 고여있던 핏물이 계속 흘러 나와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하고 잠시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얼굴 전체를 만져 보니 퉁퉁 부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크게 아프거나 통증을 느끼지 못해 다시 죽곡산 모암봉 정상부를 사진에 담고 조망이 트이는 정자와 정상석 아래 전망대로 내려가 본격적인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본다.
제일 먼저 북동쪽을 살펴보니 죽곡산 바로 발 아래로 다사읍 매곡리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곳 지나 금호강과 그 위에 설치된 강창교가 사진 중앙부로 위치하고 그 우측 뒤로는 달서구의 산업단지들과 아파트 단지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으며 좌측 뒤로는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를 품고 있는 청룡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궁산과 그 뒤로 와룡산이 몇 년전 만들었던 고운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이제 강창교를 사진 좌측 가장자리에 두고 동쪽 방향을 살펴보니 다사읍 죽곡리의 아파트 단지와 민가들 우측 아래로 금호강이 휘돌아 흐르는 모습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그 금호강 건너 달서구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 우측으로 더 거대한 산업단지들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 산업단지 우측 뒤로는 비슬산에서 청룡산으로 이어지는 청룡지맥 뒷쪽으로 최정산 줄기도 살짝 보이기 시작하며 잠시 옛 추억에 젖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우측 가장자리로는 황학지맥 날머리와 마주보고 있는 청룡지맥 날머리도 보이는데 2년 6개월 전 저곳에 서서 황학지맥은 걸어 볼 수 있을까 하고 궁금했던 시간에 대한 답을 오늘 줄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도 해 본다.
이제 눈을 남동 방향으로 돌리니 이제부터 타고 내려가야 할 마루금 끝자락에 황학지맥 날머리인 디아크문화관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낙동강이 흐르는데 우측으로 보여야 할 강정보는 소나무 가지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그 디아크 좌측으로는 금호강이 황학지맥과 청룡지맥을 가르며 흘러 드넓은 퇴적지대가 마치 섬처럼 보이는 앞뒤에서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점을 이루고 그 뒤 저 멀리로 우측의 비슬산에서 좌측의 청룡산과 최정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청룡지맥 산줄기가 또한 이 산객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사고없이 기분 좋게 진행을 했다면 벌써 저 디아크에 도착을 해 서울로 귀경하고 있거나 주위 다부동전적지라도 들려 볼 계획이었는데 그래도 늦게나마 이렇게 마지막 죽곡산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한동안 더 그 죽곡산 정상에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휴식을 취하며 허기를 달래니 약간의 통증을 느꼈던 눈동자도 통증이 사라지고 코에서 핏물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아 불안감을 지우고 천천히 그 죽곡산 정상부를 출발한다.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내려가니 울퉁불퉁한 바위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좌측으로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으니 내려가는데 애를 먹는다.
그래도 등로 좌측와 진행 방향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들을 사진과 가슴속에 담으며 내려가니 급경사 구간을 지나 관목의 아카시아나무들이 보이는 편탄한 등로로 내려가고 잠시 편안하게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전망대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더 평이한 아카시아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이제 비포장임도 같은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우측으로는 임시로 만들어 놓은 듯한 사각쉼터도 보인다.
솔갈비가 깔려있는 통나무 계단을 타고 천천히 내려가니 벤취쉼터 하나 지나 우측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묘지를 통과하고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좌측으로 묘지지대 지나 이정표가 설치된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진행 방향 좌측 앞으로는 파란 그물망이 설치된 작은 밭경작지들도 보인다.
죽곡산 정상인 모암봉에서 0.95 Km 내려왔고 진행 방향으로 등산로입구인 디아크 방향으로 0.1 Km란 이정표 우측으로도 조망이 터져 살펴보니 다사읍 죽곡리 마을이 바로 날 아래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낙동강이 흐르며 그 낙동강을 지나면 의봉산과 외곡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제 날머리가 멀지 않았기에 주민들을 자주 만날 것 같아 마스크를 착용하고 가능하면 상처난 얼굴을 가리고 심호흡 한번하고 그 갈림삼거리를 출발한다.
좌측 밭경작지 가장자리에 설치된 파란 그물망을 따라 짧게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하게 깔려있는 오르막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우측에 묘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갑자기 눈 앞으로 바위봉이 나타나고 조심하며 걸어 오르니 정상부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데 81봉이라는 이정판과 고도 표시된 띠지들이 보인다.
지도에도 표기가 되어 있지 않아 확인이 불가능한 81봉에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내려 와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따라 마지막 산행을 이어가 본다.
실질적인 마지막 봉우리인 81봉을 지나 우측인 남쪽으로 휘어져 진행하니 멋진 소나무 등로 지나 잡풀들이 무성하고 키 작은 밤나무가 자라기 시작하는 무명묘지 지나 다시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잠시 후 길게 펼쳐진 작은 공동묘지로 내려서게 된다.
그 묘지지대로 내려서며 등로 좌측 앞으로 남쪽과 남남동쪽을 보니 새로 건설중인 대구외곽순환고속도로가 바로 지척으로 보이고 그 우측으로 흐르는 금호강을 따라 청룡지맥 날머리 지나 비슬산에서 청룡지맥 마루금을 타고 청룡산과 최정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기만 하다.
금호강과 새로 건설중인 고속도로를 확인하고 길게 이어지는 묘지지대를 통과하니 좌측 아래로 금호강을 두고 사면 등로가 뚜렷하게 나 있어 그 등로를 따르니 우거진 대나무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다.
그 대나무 밭을 빠져 나가니 다사읍 죽곡리 강정마을의 민가 사이로 빠져 나가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금새 마을 한가운데에 설치돈 팔각정으로 오른다.
강정마을의 팔각정을 지나 강정길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니 우측으로 전동매니아란 전동기 대여점과 카페가 보이고 강정보 돌짜장이란 식당을 지나 강정보 녹색길 안내판이 설치된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옆 이정표를 보니 이제 강정보디아크까지는 0.6 Km 거리이다.
그 강정본길 옆에 세워진 커다란 죽곡리 강정마을이란 표지석 앞에서 마스크를 쓰고 추억 한장 남기는데 아직도 오른쪽 눈은 완전히 감겨 보이지 않지만 상처부위를 마스크로 가리니 조금은 덜 흉해 보인다.
죽곡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에 있는 리로서 낙동강변에 있는 마을이라 나루터가 있고 낮은 산이 많으며 마을에 대나무가 있다 하여 대실 또는 죽곡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강정, 남동, 대곡, 송병동 마을이 있는데 남동(南洞)마을은 대곡마을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남동이라 하였고 강정(江亭)마을은 낙동강 가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강정이라 이름 붙였다.
죽곡리 강정마을이란 커다란 표지석 지나 우측으로 조금 걸어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우측으로 대구시 강정고령보입니다 란 안내판도 보인다.
한동안 더 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직진 방향으로는 디아크까지 300미터에 우측으로는 강정보까지 250미터 거리란 이정표가 서 있다.
우측으로 수자원공사의 낙동강보관리단이라는 건물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강정보 디아크광장과 주차장들이 차례로 나오고 드디어 황학지맥 날머리인 디아크 조형물이 눈 앞으로 다가 와 있다.
디아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에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디아크(The ARC)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다양한 전시와 공연 및 행사 등을 개최하고 있으며 2012년 9월 20일에 개관하였다.
2014년 11월 5일에 대한 건축사 협회의 한국 건축 문화 대상(준공 건축물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디아크의 연면적은 3,688㎡이며 지하 1층과 지상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하 1층은 전시실과 세미나실, 다목적실이 있고 지상 1층과 2층은 써클 영상존, 3층은 전망대와 카페테리아로 구성되어 있으며 디아크의 관람은 지하 1층에서 시작된다.
현재 디아크의 지하 1층 전시실은 2개 구역으로 나뉘어 과거와 현재의 낙동강의 다양한 모습을 전시하고 있으며 다목적실과 세미나실은 강연과 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지상 1층과 2층은 벽면 전체에 펼쳐진 스크린을 통하여 회전 영상을 볼 수 있으며 3층 전망대에서는 달성군과 경상북도 고령군을 잇는 강정 고령보와 낙동강·금호강을 내려다볼 수 있다.
디아크 문화관을 사진에 담고 우측 도로로 나와 우측으로 낙동강을 살펴보니 바로 우측 뒤로 강정고령보가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전국 4대강 16개보 가운데 가장긴 강정보(강정고령보, 江亭高靈洑)는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과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에 있는 낙동강의 보로서 4대강 정비 사업 과정에서 부설되었고 우륵교라는 다리가 있지만 지역 갈등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하니 라쉬드가 설계한 디아크는 물고기가 물 위로 뛰어오르는 순간과 물수제비가 물 표면에 닿는 순간의 파장을 잘 표현해 조형미와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디아크는 건물면적 3천761m2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낙동강을 찾는 관람객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건축문화대상은 대한건축사협회에서 주관하는 건축분야 최고 권위의 상으로 올해 23회째를 맞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며 지역 갈등도 심각했던 4대강 사업도 이제 역사속으로 묻히며 그 긍부정의 평가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디아크와 강정고령보를 살펴보고 조금 더 그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드디어 좌측의 금호강과 우측의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에 도착을 해 이틀간 많은 사연을 만들었던 황학지맥 전 구간 산행을 마무리 한다.
다른 지맥의 합수점과 달리 이곳의 합수점에는 거대한 섬이 자리하고 있어 언듯 보기에는 합수점같아 보이지 않는데 정확히 합수점이 맞으며 그 뒤로 비슬산에서 청룡산과 최정산으로 이어지는 청룡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옛 추억에 젖어 본다.
우측으로 흐르는 낙동강은 영남지방 전역을 유역권으로 하여 그 중앙 저지대를 남류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유로연장 521.5km에 유역면적 23,817㎢으로 압록강(鴨綠江) 다음가는 한국 제2의 강이다.
강원 태백 함백산(咸白山 1,573m)에서 발원하여 상류부에서는 안동을 중심으로 반변천(半邊川)을 비롯한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서쪽으로 곡류하다가 함창(咸昌) 부근에서 다시 내성천(乃城川)과 영강(嶺江) 등 여러 지류를 구심상(求心狀)으로 받아들이고 유로(流路)를 남쪽으로 돌려 상주(尙州) 남쪽에서 위천(渭川)을 선산(善山) 부근에서 감천(甘川)을 대구(大邱) 부근에서 금호강(琴湖江)을 남지(南旨) 부근에서 남강(南江)을 합친 뒤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삼랑진(三浪津) 부근에서 밀양강(密陽江)을 합치고 나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남해로 들어간다.
낙동강(洛東江)은 가락국(또는 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을 의미하는데 옛날 가야의 터전이었던 경북의 고령과 상주, 선산, 경남의 합천, 의령, 함안, 고성 지방은 모두 낙동강의 서쪽 지역에 자리를 잡았으며 이들 지역에서 보면 낙동강은 동쪽 편에 위치한다.
고려 시대 때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낙동강을 황산진 또는 가야진으로 표기했으나 조선 초기의 역사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에는 낙동강을 낙수(洛水) 혹은 낙동강이라고 썼으며 이 책에는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 36리에 있다 라는 기록이 있다.
18세기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에도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을 말함이다 라고 적고 있고 이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낙동강이란 이름이 표시되고 있어서 오늘날과 같은 낙동강의 이름은 조선 초기부터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황학지맥 날머리인 합수점을 확인하고 좌측으로 돌아 조금 더 걸어가니 금호강 건너편으로 2년 6개월 전 청룡지맥의 날머리란 이름으로 서서 이곳을 바라보며 언제나 걸어 만나볼 수 있을까 궁금해 했던 그 답을 오늘 이 시간에 전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으로 바라본다.
금호강은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화원유원지 부근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경상북도 포항시 죽장면 상옥리의 가사령(佳士嶺)과 기북면 성법령(省法嶺)에서 발원하여 영천과 경산 등지를 거쳐 흐른다.
금호강이 지리지 관련 고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경상도지리지로 금호(琴湖)이고 대구읍지에도 금호로 표기되다가 대동지지 이후부터 금호강으로 표기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구읍지에 금호는 대구부에서 서북쪽으로 약 10리쯤 거리에 있고 발원하는 곳이 두 곳인데 하나는 영천(신령) 보현산(普賢山, 1,124m)이고 다른 하나는 모자산(母子山)에서 나오며 영천에 이르러 합쳐지므로 쌍계(雙溪)라고도 하고 서쪽으로 흘러 사문진(沙門津,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금호강의 금(琴)은 금호강 주변의 갈대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는 소리가 마치 가야금을 뜯을 때 나는 소리와 같다는 의미이고 호(湖)는 금호강의 지세가 낮고 평평하여 이곳을 흐르는 금호강이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다는 의미여서 금호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이제 금호강과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청룡지맥과 황학지맥 산행도 마무리가 되었기에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여행으로 들릴 수 있는 기회는 있을지 몰라도 오늘처럼 산행으로 다시 들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 조금 더 머물며 얼굴의 상처부위도 확인하고 주위 풍경들을 사진과 추억으로 담은 후 다시 새벽에 주차시킨 애마를 찾아 주차장으로 향한다.
20여 년 산행에서 가장 치욕적이고 후회되는 황학지맥 마지막 제2구간을 마무리하고 애마로 돌아 와 배낭 정리하고 등산복 상의만 갈아 입은 후 거울을 보니 한심하고 한숨만 나오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눈동자나 뼈에는 이상이 없는 듯 해 불행 중 다행이란 말로 스스로 위로를 하고 예비로 남겼던 안경을 꺼내 쓰고 옆지기에게 조심스럽게 문자를 하니 곧바로 불같이 전화가 오고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버러 온 가족이 걱정을 하며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으니 천천히 올라가겠다고 전하고 다시 가까운 약국을 찾아 상태를 확인하니 붓기가 빠져야 눈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이미 구매한 메디폼과 약을 먹으며 붓기가 빠지면 안과를 들려보라 조언을 해 준다.
막히는 도로를 타고 어둠이 짙게 깔린 시간에 귀가하니 가족 모두 한걱정에 많은 잔소리를 듣고 사정 이야기를 하고 안심 시킨 후 저녁 식사를 하는데 내일 김장이 결정되어 처제와 아들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간다는데 함께 내려가겠다고 하니 집에서 집이나 지키라는 잔소리가 날아 든다.
근처 병원에 들리지만 부어있어 확인이 쉽지 않지만 일단 눈동자에는 상처가 없는 듯 하니 붓기가 빠지면 다시 보자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 오며 아무래도 홀대모 모임은 힘들 것 같아 방장님에게 늦게 문자 넣어 죄송함을 알리고 3일동안 메디폼을 붙히고 약을 계속 먹으며 기다리니 이제 붓기도 상당히 빠지고 본 모습의 얼굴로 돌아 왔지만 여전히 눈 주위가 부어 있고 입속이 헐어 있으며 무릎 통증이 남아 있어 완치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듯 하다.
앞으로의 산행에서 도로를 횡단 할 때 트라우마나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지만 하루 빨리 기억속에서 나쁜 사고 상황을 잊고 예전처럼 다시 산행에 전념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이번주에 다시 산행을 위해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하면 가족들이 아예 짐싸 나가라고 할 것 같아 고민이지만 얼굴이 부어있는 것 빼고는 빨리 회복되었기에 어떻게 산에 들지 벌써 고민이 시작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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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칠갑산선배님!
산행기가 빡빡하지만 그래도 집중하여 두 시간이 넘는 시간만에 읽어냈습니다.
산행 초반 시작하며 다치셨는데, 불편한 몸으로 끝까지 완주를 하셨군요.
162지맥 중 잊혀지지 않는 황학지맥이 될 성 싶습니다.
저도 주왕지맥 하며 가로놓여진 나무를 넘다가 손으로 잡은 가지가 힘없이 부러져 나가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옆으로 기울어져 착지해 인대를 다쳤는지 불편하게 걸었던 기억이 소환되네요.
어떤 상황이었는지 대충 짐작은 되는데 중앙분리대가 아침 이른 시간에 살짝 얼어있어 미끄러웠던 모양입니다.
가족들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전화를 안하고 들어가자니 아빠 모습을 보고 더 놀랄것 같고,
미리 전화를 하자니 가족들이 걱정하는 모습이 뻔한데 어찌해야 할까 일순 고민하시는 모습도 비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원도 오지 산골짜기가 아니고,
또, 골절이 의심되지 않으니 걸을 수 있으셨던것 같은데,
어휴~~ 그 놈의 지맥이 뭔지...
가다가 아니갈 수도 없고, 다쳐 가면서도 꼭 걸어야 되는 것인지...
가족 입장으로선 도통 이해가 되지 않을것도 같습니다.
몇일 지나 안정이 많이 되셨다니 여간 다행이 아닙니다. 부상 투혼으로 황학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산행을 하면서 늘 도로를 통과하는 시간이 신경 쓰였는데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네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멀더라도 안전하게 통과하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았는데 왜 그리 자꾸만 조바심을 내는지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낌니다.
산행 자체는 늘 즐기려고 노력하는데 산행 외적인 문제들 즉 운전하고 귀가하는 시간과 식사 같은 문제들로 인해 조금 서두르다 보면 늘 안전에 구멍이 생기기도 하구요
이번 경험으로 앞으로의 산행은 조금 더 안전하게 법규를 지키며 진행하는 마음이 강해질 듯 합니다.
금요일 귀가해서는 가족들로부터 많은 질책과 잔소리를 들었는데 가장으로서 할 말이 없더군요
그래도 몇일 지나고 나니 눈 주위로 아직 약간의 붓기가 남아 있고 광대뼈 부근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 아쉬움이 있지만 사고치고는 일찍 잘 마무리가 되는 느낌입니다.
먼저 많은 걱정을 드려 선배님들과 회원님들에게 죄송한 마음 전해 드림니다.
신동면에서 신리 막걸리드리붓고 신동에서 한숨자고 갔어야 칠성판에 기스가 나지 않았을 것인디~
비실이의 나와바리인 황학지맥출입신고를 게을리한 탓이었을까? 비실이생각.
퐁라라님 말씀처럼 그 넘의 지맥이 뭔지?
가다가 아니가면 아니갔만 못하니라~ 뭐 그런거 때문이겠지요.
얼른 쾌차 하시고, 완주 하실때까지 무탈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일찍 알았으면 막거리 한잔에 가까운 곳에서 편히 쉬었을 것을 아쉬움이 남습니다.
꼭 기억해 놨다 다음에 들리면 신리 막걸리 맛 한번 보고 올라 오겠습니다.
상처는 생각보다 심하지 않아 다행인데 다만 얼굴에 난 상처가 남지 않을까 염려가 되네요
앞으로는 비실이 선배님 구역으로 갈 땐 사전에 꼭 신고 잘 하고 통과하도록 하겠습니다.
성원 감사 드리며 길라잡이 노릇을 해 주는 산행 띠지 부착에도 이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더 감사한 마음 전해 드림니다.
칠갑산님 황학지맥 졸업을 축하 축하드립니다~
순간의 실수로 사고가 있으셨군요~
그래도 그만하신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셔요~
치료을 잘 받으셨어 빠른 쾌유을 바람니다~
자나깨나 안.줄산하셨어~
고생하셨습니다~()()()
이번 황학지맥 산행에서도 법광님이 걸어 둔 고도 표시가 되어 있는 산행 띠지의 도움을 잘 받고 올라 와답니다.
감사 드림니다.
말씀처럼 찰나의 방심으로 산행의 큰 오점을 남겼지만 생각보다 상처가 크지 않아 다행이었답니다.
이번 모임에서 뵙고 인사 드리고 싶었는데 아쉬움도 남네요
늘 좋은 시간 되세요
사진상으로도 심한 상처인데 실제론 얼마나 ... ㅠ
그런 상태로 구간을 마치니
참으로 할 말이 없습니다.
산이 뭔지
자신과의 약속이 뭔지...
참 대단하시다는!
안산이려는 노력도
한 순간의 생각치 못한 복병에 그리 되니...ㅠ
심각한 상태의 부상은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먼저 걱정을 드려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래도 보이는 것보다 부상이 심하지 않아 몇일 치료 잘 받고 나니 이제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 왔답니다.
다만 광대뼈 부근의 상처가 깊어 약간의 상처는 남지 않을까 염려가 되지만 좋은 약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피부가 회복되는 것도 좋아진다고 하니 믿어 볼려고요
이번 모임에서 뵙고 인사 드리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큽니다.
늘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람니다.
대단한 용기에 박수를 먼저 보냅니다
물론 산행을 하다가 불상사도 있지만 제가 보기엔 많이 다친것 같은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에 다시 한번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인근 우리지역에서 다쳤다고 하니 한편으로 죄송 하기도 하네요
전 이구간 집에서 가깝고 해서 162지맥 마지막 구간으로 찜 해 놓았지요
또한 가산은 동네 뒷산 좀 멀지만
근처 아래까지 나무 하려 다니고 했지요
팔공지맥 할머니 할아버지 바위에서 보면 아래 보이는 곳이 제 고향 입니다
예전에 대구로 이사를 왔지만 아직 사촌이 살고 부모님 산소도 한티고개 아래에 있지요
그만큼 애정이 많은 곳인데 다쳤다고 하니 많이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 입니다
그래도 그 몸으로 완주 하시고 무사히 귀가하여 치료를 받고 계시다니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 됩니다
저도 앞으로 홀산이 많이 남았지만 늘 조심하고 조심 해야 될것 같습니다
황학지맥 완주에 빠른 쾌유를 빕니다^0^
용기인지 아니면 무리하는 것은 아닌지 진행을 하면서도 많은 고민을 했던 시간이었답니다.
다만 보기에는 심해 보였는데 눈동자와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아 천천히 진행하다 보니 날머리도 만나게 되더군요
다만 운전하며 귀가하는 시간에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운전에는 어려움이 많아 천천히 귀가를 하였구요
고향이 가산 아래이신가 봅니다..좋은 고향을 두셨네요
와룡산님 구역에 알리지도 않고 들어갔다 사고를 당한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들고요
말씀처럼 늘 안전하게 이어가시는 산행길 되시기 바람니다.
와룡산님이 나와바리 관리를 다하지 못한 벌로
다음 모임시 벌주 한잔 하시고
칠갑산님은 관리자에게 미리 신고하지 않고 무단 출입한 벌로 역시 벌주 한잔~ 그러면 되겠네요 ㅎ
좋은 해결책을 주셨네요 이슬하님,
다음에 만나뵙게 되면 탁배기 한잔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이쿠 사진으로바도 큰 부상이구만 기어이 합수점까지 가셨네요.
저도 오래전에 비슷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때가 어느해 추석연휴었는데.
산악회에다 공지를해서 8명이서 충북알프스를 한다고 출발을 했지요.
새벽에 들머리인 서원리에 도착해서 주위를살피다가 봇또랑에 꼬구라져서 팔과 얼굴에 상쳐를 입었는데.
참말로 난감하데요.
내가 산행을 못하면 판이 깨질판이라 괜찬다고 허풍을떨면서 진행을 했는데요.
정말 속으로는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디 부러진게 아니라 천만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가족들 눈치를바서라도 당분간을 쉬시는게 좋겠는데.
벌써부터 산 생각을하고 있으니 더 혼나셔야 되겠습니다.
눈동자나 뼈에 이상이 있었으면 당연히 중단하고 가까운 대구의 병원으로 달려갔겠지만 살점은 떨어져 나가고 많이 부어있었지만 통증이 없어 그냥 진행을 했답니다.
조금 더 조심하고 사회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아쉬움이 컸답니다.
가족들에게 많은 걱정을 하게 했고 잔소리도 많이 듣다보니 당분간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서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할 것 같네요
그래도 몸이 많이 회복되고 나니 다시 산이 그리워져 슬쩍 산행 이야기를 했더니 난리인데 조금 고민은 되네요
늘 두분이 모임에 고생해 주시기에 이번 동막골에서의 모임도 잘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산행에서도 늘 즐기시는 시간 되시기 바람니다.
급한 마음에 도로를 넘다가 그런 아찔한 사고를
당하셨네요..
사고는 언제 어느때 찾아올지 모르니 항상 조심
또 조심하는 수밖에요..
저도 주왕에서 또 성령에서 몇바퀴 했더니
갈비가 정상이 아니네요..
남일 같지 않아요..
야경이 좋았던 대구 달서구 와 디아크 주간에는
또 다른 모습이네요 .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 다류대장님,
차라리 산행 중 사고였으면 말이라도 예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도로를 무단황단하다가 떨어져 다쳤으니 말하기도 난처하더군요
앞으로는 조금 더 멀리 돌아가더라도 규정을 지키며 횡단보도나 지하통로를 찾아 건너야 할 것 같기도 하구요
그래도 몇일 지나니 사고난 날 걱정과는 달리 많이 좋아져 다시 배낭 챙기는데 옆에서 가족들이 난리네요
예기치 못한 사고 한번이 참으로 산행을 어렵게 만듭니다.
다류대장님도 늘 안전하게 즐기시는 산행 이어가시기 바람니다.
칠갑산님
황학지맥 마지막 구간을 진행하시면서 사고를 당하셨군요.
눈 주변의 부기도 있어 상처도 만만치않아 보이네요.
지맥이 뭔지? 각박한 현실에 억매이는 산꾼들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힘든 고초를 겪으시면서 날머리에 이르셨다니 대단하신 발자취를 남기신 셈입니다.
모임 전날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내심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부기도 가라앉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빠른 쾌유를 빕니다.~
먼저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오랫만에 참석해 많은 선배님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아쉬움도 크고요
부상부위는 거의 완치되었는데 얼굴의 상처는 약간 걱정이 되네요
이번 주 기양지맥에 들어 확인 한번하면 사고로 인한 불편함은 없을 듯 하고요
다음 기회에 꼭 참석해 인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무박은 기본이고 외박도 비일비재 하며
눈과 비...
태풍이 와도 산을 향하는 우리들을 보면
가족들의 응원을 받기가 쉽지만은 않죠.
그런 와중에 다치기라도 하면 가족들 볼 낯이 없죠.
그러함에도 이 수고스러움을 즐기고 사는 우리들은 무슨 운명인지요?? ^^
남들이 볼때 우리들은 늘 산으로 놀러만 간다고 생각하잖아요.
돈 벌러 가는게 아니고 돈 쓰며놀러 가는건데...
조금 천천히 여유있게....
그리고 안전하게 놀아야 잘 노는건데
너무 지치다 보니
빨래 내려가 쉬고 싶은 마음데 서두르게 되더라구요.
조심히...천천히 걷는 연습을 우리들은 더 해야 되나 싶습니다.
산은 조심히 천천가야 하지만
다친부위 만큼은 후딱 완쾌 하셔서
얼마 남지 않은 지맥길 안전하게 이어가길 바랍니다.
네 똥벼락님
이번 사고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한 안전 산행과 생활법규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배우고 느꼈던 시간이었답니다
신산경표의 162 전지맥 완주가 목표이긴 하지만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없이 내가 좋아 오르는 초심으로 건강을 최우선에 두고 진행하려 합니다
얼굴 부위의 상처를 제외하면 모두 정상으로 돌아 와 이번주 이틀간 기양지맥을 마무리하고 올라왔는데 아무 이상이 없어 사고 후유증은 없는듯 보입니다
늘 좋은 산행기 잘 보고 있으며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