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으로 살라. (창 12장 1~3절)
앞의 내용 정리 (성경의 선교적 해석학)
성경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성경이 기록되었다.
또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교회를 만드셨다.
선교하시는 하나님에서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선교사로 보내심을 받았다.
요 20장 21절/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나님의 선교에 보내심을 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이란?
갈 3장 7~9절/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참 아브라함의 자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8절/ 또 성경은 장차 일어날 일, 곧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줄 것을 미리 일러 주었습니다. 이 복음을 먼저 아브라함에게 전했는데 그것은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성경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9절/ 아브라함이 이를 믿으니 그 믿음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누구든지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미션은?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그로므로 믿음에서 난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
누구든지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습니다
본문 창세기 12장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시대로 돌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2장 이전의 내용은 (타락과 범죄, 살인,등등등)
질문/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으로 세상을 창조 하셨다면…
이 시점에 하나님은 무엇하시기 원했을까요?
- 타락과 범죄, 살인등 상황에서 하나님은 무엇하시기 원하시면 하나님의 선택은?
- 이러한 질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대답으로 선교적 정체성을 부여하셨다.
-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인간의 악함, 나라 간의 분쟁, 창조 질서의 망가짐으로 신음하는 세상에 하나님의 대답의 시작이다.”
복으로 살라. (창 12장 1~3절)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시 37편 5절/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는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창 12장 1~3절 핵심 내용은 (가라/ 복이 되라) 선교적 명령이라면
동일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적 명령은 (가라(세상)/ 복이 될지라) 말씀하신다.
- 너는 가라 그러면 내가 나머지를 해줄 것이다.(그 결과로 복이 될 것이다.)
-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일을 행할 때 어딘가 복이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선교적 사명을 이행할 때 이땅에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 이것 선교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소명(부르심 “부를 소”, “목숨 명”)이라 한다.
사명(Mission/ 맡겨진 임무)를 사명이라 한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신다. (무조건 적으로, 아브라함의 공로와 관계 없이)
- 아브라함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조건이 필요했다.(Trust 믿음, Obey 순종)
복이란? “결핍이 풍성하게 채워지는 것이 복이다.
성경적 복이란? “하나님의 선물로 풍성하게 채워지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복을 채울 수 있는가? 경배, 예배할 때 복이 채워진다.
시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으로 결핍된곳에 충만하게 채줘지는 은혜, 이것이 복이다.)
1/ 하나님은 우리를 복주시기 위해 부르신다.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부르셨나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은?
2절/ …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복 많은 곳으로 가라” 말씀하지 않으셨다.
“복이 될지라” (복으로 살라) 말씀하셨다.
l 하나님의 계획은?
엡 1장 5절/ 하나님은 자기의 뜻대로 세상을 만드셨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신다. (이르시되)_
창 10장 (노아의 후손들), 11장 (셈의 후손과 아브람)을 부르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들에게 복(하나님)으로 살라 (축복하셨다)
그들을 향해 “너는 복이 될지라” (복으로 살라)
l “복이 없는 땅으로 가서 하나님의 복(하나님의 선교)를 유통하라” 말씀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계획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우리를 부르시며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뜻인 예수를 통해 복을 유통하라 (복으로 살라) 말씀하신다.
l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복을 주신다.
요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다마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복으로 세우시기 위해 광야로 부르신다.
2/ 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 광야로 부르심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복이 하나님에게만 있다. 하나님으로만 복을 누릴 수 있다.
But 그러나
창 11장 4절/ …(바벨을 만들고) 우리 이름을 내고, 온지면에서 흩어짐을 면하자
인간의 욕망/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우리의 이름”이다.
세상을 구원할 이름은? “오직 예수님 이름 뿐이다”
l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묻지 않는 이유는?
1/ 듣으려 하지 않는다.
2/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려 한다.
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을 까요?
- 사단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속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으로 오는 풍성한 복보다, 사단은 우리의 이름으로 채우라 유혹한다.
l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 학교로 보낸다. 광야학교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그러나 광야학교는 쉽지 않다.
- 왜냐하면 나를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 광야학교는 익숙하지 않은 곳이다.
- 광야학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환경이다.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l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곳은? 갈대아 우리 (비옥한 땅이다) 그런데 복이 없는 광야로 부르셨다.
l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는데/ 그런데 가야 하는 곳은 복이 없는 광야 땅이었다.
l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는데/ 그런데 처소는 조그마한 이동식 천막이 전부였다.
그는 광야에서 방랑하며, 그곳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땅에 하나님의 복을 유통하는 자가 되었다.
l 광야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하나님과 대적하는 곳에 서게 된다.
- 다윗과 사울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게 되었고)
- 야곱과 에서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다.)
l 결국 광야 학교는?
광야(세상)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광야 (죽음의 땅)에서 내가 죽고 하나님을 사는 땅이 된다.
l 하나님을 경험하는 길은 믿음으로 걷는 광야의 나그네 길과 같다.
광야의 길에서 어려운 고비를 넘을 때마다 하나님께 더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히 11장 8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지금 광야길을 가고 있다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만큼 하나님을 깊이 만날 것이다.”
l 광야에서 만나주시는 하나님
- 반드시 거쳐야 할 광야학교/ 하나님은 그곳에서 그들을 훈련시켰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즉 메소포타미아로 불리는 비옥한 농경지대를 뒤로하고 광야로 나와서 그곳을 밟으며 방랑했다.
- 그는 복의 근원으로 불렸지만 그가 가야 할 곳은 복 없는 광야 땅이었다.
- 그곳에서 방랑하며 하나님을 경험하며 그렇게 그 땅에서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밝았다.
- 그 땅을 전부 하나님이 주셨건만 그의 거처는 조그마한 이동식 천막이 전부였다.
하지만 광야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에서와 사울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의 라인에서 제외되었고 그의 자손들은 대대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과 대적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혹독한 광야학교 훈련은 그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이 실패했던 사울처럼 되지 않도록 도왔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다
복으로 살라
3/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다.
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l 기독교 역사는 떠남의 역사다.
- 세상에서 떠나 하늘의 소망으로
- 죄악의 땅에서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 인생의 여정을 떠나 하나님께 정착하는 여정이다
l 성경은 어떤사람이 복을 받는가?
- 예배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
- 사도바울은 믿음으로 성령을 받는자가 복이다. (갈 3장 14절)
- 죄사함을 받고, 부활과 영생으로, 은혜와 평강을 누림
- 사도베드로, 약고보는 (시험을 이기는 자가 복이다)
l 그러므로 어떤 상황과 환경에도 좌절하지 말라
- 하나님의 복이 최고이다
- 하나님의 복이 아닌 다른 것을 기대한다면 자절하게 될 것이다
- 좌절하는 자들은 시험에 들며,
- 시험에 들면 하나님의 나라가 눈에 안보인다.
눅 17장 21절/ 또 여기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함께 한다.
수 1장 5절/ …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 28장 20절/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을 절충한다.
l 우리가 하나님께 묻지 않는 이유는?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순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l 하나님께 묻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늘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다”
l 하나님께 묻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두려움이 있다.
교회를 다녀도 두려움 가운데 살아 가는 자들이 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인생의 주인 되심을 인정할 때 우리에게 참 평안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시험은 결코 쉽지 않다.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를 비우고, 하나님이 채우시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내가 주인이 되고 싶어한다.
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목적이 아닌 하나님을 찾을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된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광야의 하나님, 나그네의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다.
l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많은 경우 고난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세상과 분리되어 옛 자아가 죽고 하나님의 빛으로 들어가기 위헤서는 세상과와 마찰이 빚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히 11장 13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 땅에 대해서는 나그네이고 이방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가 복의 근원임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리고 복 있는 곳을 찾아서 그곳으로 가려고만 한다.
l 하나님과 함께라면.
광야는 익숙하지 않는 곳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신다.
광야에서 우리는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우리 가운데 이루시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인생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나의 경험과 노력, 지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방식에서는 하나님은 그저 멀게만 느껴진다.
예수 그리스도이 복의 근원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갈 3장 7~9절/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절/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l 창대케 된 이름 (바벨 건축)
창 11장 4절/ 또 말하되 자, 성읍과 캅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인간의 욕망 (우리의 이름으로) 구원하고자 한다.
l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다.
신 26장 19절/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빌 2장 9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l 믿음의 여정은 편안하고 안주하는 삶이 아니였다. (4~9절)
아브라함의 삶은 냉대와 유량생활의 피곤함이였다.
10절/ 피곤한 나그네 생활을 거듭하던 그는 결국 애굽에까지 흘러가게 되었다.
믿음으로 사는 자들은 현재의 안략과 풍요보다 미래의 안식과 평안, 소망이다.
히 11장 15~!6절/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절/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l 그러나 고난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신다.
수 1장 5절/ 내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 28장 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l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천국의 삶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과 환경속에서 좌절치 않아야 한다.
눅 17장 21절/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l 기독교의 역사는 떠남과 분리의 역사이다.
떠남과 분리의 근거는 하늘의 소명이요. 떠나야 할 자는 바로 부름받은 자신이다.
l 떠날 곳은 죄악의 도성이요,
떠나 행해야 할 곳은 약속의 땅 가나안이다. 아브라함의 출본토의 여정은 신앙의 순례길이다.
l 택한 자를 끝까지 보존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스스로 실망할 수밖에 없지만 결코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뤄가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날마다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 40장 30~31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디로 가서, 어떤 복이 어떻게 되기 원하실까요?
지금 하나님은 내가 어디서, 어떤 복이 되기 원하시는가? 하나님은 기대하고 있느냐?
선교의 무대
복은 창조적이고 관계적이다.
복은 선교적이며 역사적이다. (하나님의 복은 선교에 사용되도록 주신 것이다)
복은 언약적이며 윤리적이다.
복은 다국적이며 기독론적이다.
성경적 선택과 선교 (아스라엘의 선택은…)
- 하나님의 보편성이라는 맥락 안에서 이루어 졌다.
- 다른 민족들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이스라엘 자신의 어떤 특별한 특징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 오직 하나님의 불가해한 사랑에만 근거하고 있다.
-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도구적인 것이다
-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헌신의 일부다
- 단순히 구원론적인 것이 아니라 근복적으로 선교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디로 가서, 어떤 복이 어떻게 되기 원하실까요?
지금 하나님은 내가 어디서, 어떤 복이 되기 원하시는가? 하나님은 기대하고 있느냐?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을 본다.
Soli Deo Glor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