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 핀의 모험>. 내가 사랑하는 책!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이 책은 자신있게, 감히, 말할 수 있다. 내 영혼의 책! 엊그제 <펭귄 클래식>전집을 샀다는 자랑을 포스팅했는데, 이왕 이야기한 것, 한 가지만 더 한다. 내가 전집을 고를 때 세 가지 기준 가운데 하나가 <허클베리 핀>이 들어 있느냐 아니냐도 중요한 기준이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세계명작을 다 뽑아 보면 1200...권 정도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집 가운데 그 어떤 전집도 1200권이 나온 유례가 없기에, 대략 500여 권 안팎으로 리스트를 만들어 ‘회사사정과 편집자의 편견’으로 전집 목록을 구성한다. 따라서 어떤 전집에 있는 책이 다른 전집에는 당연히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책이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들어가지 않은 세계명작전집을 나는 명작 리스트로 꼽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일테면 나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중독자 혹은 절대 마니아, 오타쿠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내게 참 인연도 깊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중인 1월 9일 저물 무렵, 이명신(李明新) 국어선생님이 보내주신 소포를 받았다. 소포엔, 선생님과 생일이 같은 날인 상우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짧은 편지와 함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들어 있었다. 감동!
책을 펼쳐든 순간부터 읽어나갔다. 완전히 책에 몰입, 저녁밥은 먹는 둥 마는 둥이었다. 그리고 오줌 누러도 안 나갔을 것이다. 괘종시계가 세 번 울릴 때, ‘샐리 아줌마가 톰을 데려다 양자로 삼아 문명인으로 만드는 걸 거부하겠다.’는 이야기로 끝나는 걸 읽었다.
‘세상에! 이런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니!’
그 밤, 나는 내 생의 최초로 문학적 감동으로 세례 받았다. 그해 겨울 방학이 끝날 때까지 나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두 번 더 읽었다. 이것이 첫 번째 인연이다.
두 번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청주 MBC에서 ‘독후감공모’를 했는데,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써낸 응모작이 대상을 받아, 상금 3만원과 백수사에서 펴낸 <한국문학전집 20권>과 <루이제 린저 전집 12권>을 부상으로 받았다. 상을 받으면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얼마나 좋아지던지!
세 번째는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다. 충북 충주 출신이면서, 어쩌다, 아니 운명적으로 입학한(여기엔 웃기지도 않는 사연이 있지만, 5월에 나올 책에 상세히 밝히고) 충남 대전의 충남대학교에는 같이 입학한 동기도 하나 없고, 선배도 하나 없었다. 아예 대전에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어쨌거나 인문계열로 입학한 나는 꿔다 논 보릿자루가 되어 같은 계열의 200여 명을 소 닭 보듯이 지냈다. 목련이 깁스를 완전히 풀고, 아카시아 꽃잎이 바람에 막 날리기 시작할 무렵이었지 아마도! 오세영 교수님의 <문학개론> 수업으로 시에 대한 공부를 마치고, 공부 내용을 음미하듯 천천히 캠퍼스를 걸어 나와, 하숙집으로 가기 전에 늘상 앉았다 가는 벤치에서, 눈부신 신록을 감상하는 중에, 얼굴만 아는 같은 계열 K가 다가와 물었다. “너 시 좋아하니?”하고 묻기 시작하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10여분쯤 되어 K가 물었다. “너, 시인이나 작가 누구 좋아하니?” 내 대답. “박용래 시인하고 마크 트웨인!” K가 말하길, “와, 마크 트웨인! 나도 엄청 좋아하는데......” 이것저것 잴 거 없이 우린 친구가 되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대한 이야길 하숙집까지 같이 가서 밥을 먹으면서 했다.
네 번째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은 더 잘 알기 위해, 친구 K와 도서관을 뒤져가면서 읽고 토론했다. 마크 트웨인, 특히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대해 미국의 거의 유일한 문호(文豪)라고 꼽는 헤밍웨이가 극찬하며 존경한다는 구절을 읽었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다섯 번째와 스물 네 가지쯤의 인연은 줄이겠다.
그래도 보너스로 하나 더 덧붙이면, 소영씨가 보컬을 맡고 있는 락그룹 뮤지션 <허클베리 핀>도 아니 좋아할 수 없다. 허클베리베리베리베리 핀인데......
스물다섯 번째로 딸내미를 위한 세계문학 전집을 선택함에 있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들어간 것을 꼲은 건 너무나 당연하다. 펭귄 클래식에 이 책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제 아무리 <황제펭귄클래식 크로스 오버 더 레인보우 시리즈>라도 안 뽑았을 것이다.
마흔을 넘기면서도 줄곧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아니 마크 트웨인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건,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긴 것과 더불어, 마크 트웨인의 삶이 주는 매력! 즐겨 입던 흰 양복과 흰 사자 갈기 같은 흰 머리, 평생 동안 한 여성에게 지고지순 했던 사랑! 언제까지나 불의와 제국주의 타도를 외치며 타협하지 않았던 높은 기개, 진정한 언어의 연금술사로 미국 문학의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작가로서의 위상 때문이지만, 몇 년 전 그가 20년에 걸쳐 쓴 진정한 의미의 ‘자서전’을 보고 진심으로 열광하게 됐다.
마크 트웨인 정말 사랑해도 좋은 작가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최고다!
(펭귄 클래식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마크 트웨인 자신이 운영하던 출판사에서 1885년 2월 18일 나온 판본을 저본으로 번역했단다.) 와우! 1885년이란다!
(*펭귄 클래식 전집의 표지는 거의 다 좋은데, <허클베리 핀의 모험> 표지는 영화에서 핀이 통나무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는 장면 캡춰인 것 같은데, 핀이 지친 상황이라서 그랬겠지만 '영특한 핀'의 이미지와는 멀다. 그림 캐릭터도 좋은 거 많은디....아쉽다.) *전집은 절대로 때깔 보고 잡아먹는 게 아니지만서도, 독자 입장에선 한 권씩 만나기에 질리지 않고 산뜻하게 만나게 해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