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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꽃상여
무엇이 그를 이끄는 걸까? 흡사 자석에 끌리듯 차표 한 장 달랑 들고 목포행 완행열차를 탔다. 기차는 만원이라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조는 사람들도 있었다. 출입문 모퉁이에 신문지를 깔고 앉으며 앞자리 중년 부부에게 눈인사를 하고 어둠이 짙어지는 차창을 응시하고 있었다.
영등포를 지나면서부터 인가의 불빛도 없고 가로등만이 뒤편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어둠속으로 달아나는 도망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졸업식 날 눈물 글썽이며 어머니가 손에 쥐어주신 삼천 원을 들고 서울행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올 때처럼 완행열차는 느릿느릿 졸리듯 달리고 있었다. 돈 많이 벌어 자가용타고 버젓이 오기 전에는 고향땅 발도 붙이지 않겠노라며 다짐했었다.
옆자리 젊은 남녀는 아마 초면 인 듯싶은 데도 도란도란 속삭이며 연인처럼 다정했다.
홍익회 제복을 입은 오징어 땅콩 장사가 오징어 땅콩을 구성지게 외치며 그들에게 캔 맥주와 오징어를 팔고 있었다. 그의 옆에 비집고 앉은 긴 머리 아가씨를 보던 그는 깜짝 놀랐다. 긴 생머리에 뿔태 안경 통통한 몸매 도톰한 입술... 분이 분이가.... 그는 눈을 의심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 저 아세요?”
그녀는 얼굴에 홍조를 띄며 어색하게 웃었다.
“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너무나 닮아서....”
그는 자리를 부탁한다는 눈짓을 보내고 열차 사이 화장실 복도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복도사이 스치는 밤공기가 뺨에 차다. 분이가 예쁘게 정리해준 문단반세기 스크랩 노트가 생각났다.
어떻게 그렇게 닮을 수가 있을까?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문득 그녀가 보고 싶어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버렸다.
긴 머리 아가씨가 옆자리 젊은 남녀를 흘기며 꼴불견이라는 모습으로 그를 반겼다. 그는 심란한 마음 창밖에 눈을 주고 있었다. 긴 머리 아가씨는 무슨 책을 읽고 있었다.
잠깐 졸았나보다. 긴 머리 아가씨가 어깨를 흔들며 깨웠다.
“ 대전 이예요.... 가락국수라도 드셔야죠?"
그는 아가씨와 나란히 국수를 시켰다.
“ 어디까지 가세요?”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 목포에서 우수영...”
“ 아하 그러세요? 저는 화원 이예요.... 반가워요!”
그녀의 붙임성은 오래전부터 알았던 아니 분이가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하얀 덧니까지 분이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시골에서 시집가라며 선을 보러 간다고 했다.
기차가 출발한다는 어나운서 멘트소리에 그들도 열차에 올랐다.
옆 좌석의 젊은 남녀는 오르지 않았고 그녀는 내 그럴 줄 알았어 하며 같이 앉자며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낙원동의 산부인과병원 간호사라고 했다. 그는 익선동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다정한 사람들처럼 고향 이야기를 나눴다.
화원이라면 그가 중학교 때 아이스케키 장사했던 동네였다. 시간은 벌써 희뿌연 새벽공기를 지나 목포역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역전 해장국집으로 들어섰다.
“ 난 막배로 갈랍니다. 해질녁에 들어가야 하니까...,”
“ 어머 저도요.... 동내 챙피해서... 참 묘하요. 처지가 비슷하니....”
그는 막걸리를 시키고 맥주는 아가씨에게 권했다. 막배 까지는 서너 시간이 남아있었다. 꼬막, 생선구이, 낙지 삶은 것, 홍어무침, 푸성귀 반찬, 상 가득 역시 남도의 식당이었다.
조근조근 얘기하며 몇 순배 잔이 돌자 취기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긴 머리 아가씨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자 더욱 예뻤다.
취기와 흥분과 도란도란 대화... 오랜 연인처럼 공감의 바다는 목포 앞바다의 만조처럼 밀려왔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타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은 나란히 목포극장 골목의 여관으로 들어섰다.
성난 정염의 바다는 해일로 밀려와 그들의 오감에 불을 붙었다. 급하게 너무나도 거칠게 방안에 들어서자말자 그들은 하나가되어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밑불도 필요 없이 막 꺽은 청솔가지의 화염이 거침없이 타드락 타드락 타오르고 있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익숙한 길처럼 낯설지 않는 순례길처럼...
서 너 차례 아니 아주 셀 수 없는 불꽃이 타올랐다. 그리고 일순 바다는 잔잔하게 멈춘 듯이 고요했다.
목포항을 출발한 뱃머리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두 손을 꼭 잡고 바닷바람을 검은 섬 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은 그들처럼 비릿한 바다 냄새로 또는 뜬금없는 만남처럼 불고 있었다. 화원반도의 섬 사이를 지나 별암리 선착장에 도착한 그들은 작은 찻집에 앉았다.
창밖에 어둠은 더욱 짙어지고 두 손 모두어 찻잔을 감싸 쥔 그녀가 입을 열었다.
“ 나 선 봐도 돼요?”
조금은 쓸쓸한 눈에 그늘이 졌다.
“.....”
“ 모래 쯤 우수영 들릴게요...”
“ 할머니 삼촌네라... 서울서 만나죠....”
“ ....”
그들은 별암리에서 화원 장터까지 걸었다. 신장로 가로수 위로 별빛이 쏟아지고 스므 날 하현달이 그들 머리위에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가 버스에 오르자 그녀가 손을 흔들며 잘 가라며 웃고 있었다.
하루가 백년처럼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녀와의 하루가 마치 예정 된 순서처럼 낯설지 않았다.
7년만의 귀향이라.... 차부에서 멀지 않는 막네 삼춘 집은 불빛도 없었다.
저만치 사람들이 스치면 고개 숙여 도둑고양이처럼 길을 걸었다. 불빛 없는 작은방 문을 당겼다. 왈칵 솟구치는 노인 냄새와 비릿한 피비린내에 얼굴을 찡그렸다.
오랜만의 귀향길에 떠온 돼지고기 두 근, 소주 두병, 봉다리를 팽개치고 전등을 켜보니 할머니는 입을 벌리고 누어있었다. 땟국에 절은 이불을 젖히니 검게 보타버린 혈변이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의 눈에 불꽃이 튀겼다.
“ 염병할... 다 죽고 새끼 하나 남은 놈이.... 쯧쯧쯧.... 지 애미 이런 꼴로....”
씩씩거리며 담배를 피워 물고 고향친구 만옥이와 성주에게 도와달라면 전화를 했다. 그는 소주병을 나발 불고 부엌으로 가 물을 끓였다.
똥으로 범벅 된 요는 치우고 할머니의 몸을 씻기고 하얀 무명치마 저고리를 갈아입히자 만옥이와 성주가 들어섰다.
“ 이것이 뭔 일이라냐? 너는 어뜻게 알고 왔고? ”
넋을 잃은 두 친구와 방안 정리를 하고 병풍을 빌려 와 윗목에 시신을 놓고 가렸다. 그들은 말없이 토방에 앉아 술잔을 나누었다. 저녁 달라는 돼지새끼가 꿀꿀거리고 있었다.
사방에 불켜진 집으로 고개 갸웃거리며 막네 삼촌과 작은 엄니가 들어서며
“ 누가 왔나? 사방데 불을 켜 놓고?”
내외가 장 보고 온 것이다. 불콰게 취한 눈으로 사태를 파악한 삼촌이 할머니를 흔들며 꺼이꺼이 울었다. 작은 엄니도 울었다.
“ 허허... 염병할... ”
그가 친구들과 술잔을 비우며 투덜거렸다.
핏발 선 눈으로 울음을 멈추고 삼촌이 토방에 걸터앉아 술을 들이켰다. 흘끔 친구들을 본 삼촌이 술잔을 던지며 소리쳤다.
“ 아야 느그들 먼 구경났냐? 멋땜시 여그서 남의 술 축네냐? ”
두 친구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눈에서 불꽃이 틔었다.
“ 멋이여? 도와주러 온 사람에게 시방 뭔 말이여? 뭐 거진줄 알아? ”
두 친구는 혀를 차며 일어섰다.
“ 강식이 아부지 시방 뭣혀? 미쳤어 미쳐!"
작은 엄니도 술잔을 치우며 소리쳤다.
“ 이놈의 예편네가? ”
7년 전 어머니는 서울 간다는 그에게 막내 작은아버지(어려서 부르던 습관이 지금도 삼촌이라 부른다) 에게 삼천 원을 빌렸었다. 술만 취하면 삼천 원 안 갚는다고 행패를 부려 그에게 편지를 써 그가 부처 준적도 있었다.
총각 시절 허구 헌 날 쌈박질로 할머니 속 편한 날이 없었다. 깡패들 소탕령으로 지리산에 국토건설단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동네 쌈이 벌어졌다하면 할머니는 현장을 둘러보고 안도의 숨을 쉬기도했다. 삼촌은 제풀에 꺽여 할머니 시신 앞에서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며 잠에 떨어졌다. 그는 작은어머니와 술을 마시며 앞으로의 일을 상의했다.
“ 저 인간 믿을 것도 없고 우리가 서둘러야 것다. ”
다음날 새벽같이 삼덕포와 옥천 두 작은집에 연락을 하고 어머니도 상포계에 연락했다. 정오 전에 작은 어머니들이 도착하고 마당에 사람들은 초상 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어머니와 작은어머니들은 옥양목 상복을 입고 그와 삼촌, 광식이, 상포계원들은 두건만 썼다. 장터 염씨네 형제가 염을 하고 시신은 꽃상여를 탔다.
옛날 그가 어렸을 적 에는 금살리 상여집에서 함석으로 만든 상여를 사용했었다. 격식도 선소리도 북장구도 없이 곡하는 며느리도 아들도 하나 없는 꽃상여는 장터샘을 한 바퀴 돌고는 빠른 속도로 내닫기 시작했다. 장터를 지나자 누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사랑 해 사랑해요 당신을 당신만을.... ”
나훈아의 가지마오를 상여 멘 사람들이 합창하기 시작했다. 가지 마오~가지 마오~ 나를 두고 가지를 마오...
희한한 꽃상여는 황토길 고개를 넘어 텃골 방죽 쪽으로 유행가 가락에 맞춰 내달았다. 그길 할머니는 호미 한 자루 들고 텃골 방죽 위 산전 밭으로 가시곤 했다. 굽은 등 호미든 뒷짐을 지고 홀로 흥타령을 하시며 걷던 길이다.
“ 진이여 내 사랑아 자느냐 누웠느냐 불러 봐도 대답이 없~네”
그 할머니의 타령과 유행가.... 말 할 수 없는 분노가 솟았다.
그는 착잡한 마음속으로 유행가를 따라 했다. 노래는 님 그리워로 바뀌다가 바다가 육지라면.... 그렇고 그런 류의 노래를 누군가 선창하면 합창으로 변하곤 했다.
춘삼월 햇살은 벌써 땀이 흘렀다. 하늘 높이 종달새가 솟구쳤다 떨어지듯 하강하며 우짖고 있었다.
방죽 뚝 길을 지나 논밭 길 가로질러 삼촌네 산전 밭 맨 위쪽 묘 자리 앞에 내려졌다. 막걸리 소주 국밥으로 요기를 한 사람들은 장례식이 아닌 산보 온 듯 했다.
하관을 하고 흙을 뿌리고 일꾼들이 노래를 부르며 흙을 다지고 있었다. 달구질과 유행가.... 가지마오가 또 울려 퍼졌다.
밭 가운데 어린 쑥들이 잡풀과 함께 푸르고 꽃상여가 불타올랐다. 그는 그 불가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일회용 꽃상여가 타드락 타드락 하늘높이 혀를 날름거리며 무서운 기세로 타올랐다. 할머니의 헌 옷가지며 이불들도 함께 타올랐다.
건너편 신장로에 버스가 멈추고 누군가 내리는 게 보였다.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던 그는 깜짝 놀랐다. 어제 화원의 그녀였다.
“ 미쳤구만.... 여그가 어디라고....”
묘는 때를 입히고 마무리 하며 간단한 제를 오리는 모양이다. 그녀는 망설임도 없이 그의 앞에 섰다. 작은어머니가 손짓하며 절하라고 했다.
“ 다녀오세요. 저기요 저도 절하면 ...”
“ 뭔 소리여? 또 여까지 온 것도 그라고...”
그가 볼멘소리로 소리쳤다. 그녀는 무섭게 타오르는 불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 누구냐? 니 샥시냐? ”
“ 아니어라 쬐끔 아는 친구요....”
작은 엄니가 묻자 얼버무리며 잔을 따르고 절을 올렸다. 귓전이 왱왱거리고 아까 마신 술기운인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사람들이 그녀를 턱짓하며 샥신가 보다며 수근 거렸다. 매장이 끝나고 사람들은 서둘러 이고 지고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같이 가자는 어머니의 소매를 작은 엄니들이 끌며 아가씨에게 가보라는 눈짓을 했다.
건너 망제 위로 해는 한 뼘쯤 기울고, 그는 묘 앞에 앉아 담배를 피워 올리고 그도 한대 피워 물었다. 한숨과 연기는 한데 섞여 허공 위로 곧추 올랐다.
사그라드는 꽃상여 불길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그녀가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가 그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 얘기 한 장터 옆 풀빵 집에 갔더니 여기를 알으켜 줘서...”
“ .... ”
“ 곤란했다면 미안해요.... 보고 싶어서 달려 왔어요.”
“ 뭐 손주 매느리라도 된가 보요잉 ”
그녀가 그의 손을 꼭 쥐며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붉은 석양이 망제 너머로 꼴깍 넘자 사방은 금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란히 손을 잡고 어둠이 깔린 신장로를 걸었다. 아까 불타던 꽃상여 불꽃처럼 뜨거운 사랑의 불길을 손을 통해 가슴을 통해 감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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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치 우리 이웃에 흔히 일어난 일같이 작품이 너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열차 여행중 낮모르는 여인과의 로맨스, 각박한 세상에 오랫만에 낭만적인 글을 읽었습니다. 좋은 작품 많이 발표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