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처럼
임성욱
(시인/사회복지학박사)
“옛날에 그 다락방을 너무 좁다고,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와서 몽상을 통해 되찾은 추억 속에서는, 알 수 없는 기이한 융합으로 그 다락방은 작으면서도 크고, 더우면서도 시원하고, 언제나 기운을 되찾게 하는 것이다.” 라고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1884~1962)는 얘기했다. 그렇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여로를 거치면서 살아왔다고 해도 지나온 과거는 우리들을 아련한 추억 속에 빠지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옛 어른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던 것 같다. 때문에 현재가 아무리 진흙탕 속이라 하더라도 잘 참고 이겨나가면 먼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사랑스러운 햇살이 우리의 가슴을 쓰다듬어 주리라 믿는다. 막하 우리 주변은 온통 시름으로 가득 차 있는듯하다. 피부에 직접 와닿는 높은 물가지수가 특히 그렇다. 한계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더욱 하루하루를 살아가기가 싶지 않을 것이다. 필자도 마트나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눈여겨보며 갈등을 겪다가 아주 저렴하다고 생각되는 것 몇 가지만 사서 들고 귀가하면서 비애감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계산대에서 계산하기도 창피했다. 상당한 시간 동안 돌아다니다가 바구니도 필요 없이 손에 들고 값을 치르는 나의 모습이 스스로 반추해봐도 쓸쓸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나의 삶. 이것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살아온 여정에 대한 훈장이 아닐까. 때문에 뒤이어 당당한 생각이 꽃 피워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나를 내가 칭찬해주지 않으면 누가 칭찬해주겠는가. 이 칭찬은 나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단어가 아닐까. 병원에 가면 갖가지 질병으로 수많은 환자들이 신음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의술은 의사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사려 깊은 말 한마디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병원에서는 그 환자 은퇴 전의 직함을 불러준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환자들의 자존감이 생각 이상으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는 곧 빠른 쾌유로 연결된다. 필자도 평상시 은퇴자들을 만날 때마다 은퇴 시의 직함을 불러준다. 또는 상대방의 직장생활 중에서 가장 높은 직위에 있었을 때의 직함을 불러준다. 이 경우 그 누구도 이를 싫어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 중에서 가장 찬란했던 위치를 인정해 주길 원한다. 인지상정이 아닐까. 때문에 일부러 이를 행하지 않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불러일으켜 사랑을 받는 것 아닌가. 우리는 태어나 언어를 배우면서부터 수많은 말들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세 치 혀로 빚어진다고 해서 모두가 말이 되지는 않는다. 극단적으로는 그 어떤 독약보다도 더 지독한 맹독 중의 맹독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는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어떻게 말하느냐보다는 때로는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욱 중요하기도 하다. 특히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결코 말을 잘한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언어의 총량에 관해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언(多言)이 실언(失言)을 빚고 실언이 곧 자신을 공격하는 맹독이 되어 되돌아올 수도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에 언급한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처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