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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 비운의 왕, 단종의 사약 이야기기사입력 2015.10.22 6:44 PM
사진=하늘땅한의원 장동민 원장
문1. 자, 매주 목요일은 <조선왕조실록>과 <동의보감>을 통해 <왕의 건강법>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조선 제 6대 임금인 비운의 단종 순서군요?
답1. 네, 맞습니다. 단종은 생각만 해도 참 마음이 아픈 왕이지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숙부에게 왕위를 뺏기고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된 왕입니다. 그래서 무속에서는 삼국지의 관운장처럼 아예 군왕신(君王神)의 하나로 모시기도 한답니다.
원래 단종의 아버지인 문종도 병약했지만, 어머니는 더 몸이 약해서 단종을 출산한 다음날 사망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인 세종의 후궁 밑에서 자라게 되는데요, 결국 엄마 없이 할머니 손에 자라게 된 거죠. 그러다 아버지 문종이 사망하자 마침내 12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는데, 너무 어린 나이라 신하들이 국정을 다스리게 되고 단종은 그저 형식적으로 결재만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빌미가 되어, 결국 바로 그 다음해에 단종의 숙부 수양대군은 이렇게 지나치게 비대한 신권을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계유정난’을 일으켜, 세종의 명을 받들어 단종을 지키던 황보인 김종서 등의 신하들을 모두 죽입니다.
문2. 네, 영화나 드라마로도 참 많이 나온 이야기죠. 계유정난이 일어난 얼마 안 있어, 단종을 폐위시키고 바로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게 되죠?
답2. 맞습니다. 계유정난 다음해에 마지막 남은 단종의 측근들을 다 몰아내고, 바로 그 다음해에 단종을 협박해서 숙부인 수양대군이 스스로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이 왕이 바로 7대 세조입니다.
세조는 왕위에 오르면서 처음에는 단종을 바로 죽이지 않고 상왕으로 대우해줍니다. 하지만 이듬해 단종을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는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자, 그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노산군(魯山君), 즉 폐주로 강등시켜 영월로 유배를 보냅니다. 그리고 다음해 다시 한 번 복위사건이 터지자, 이번에는 아예 목숨을 빼앗아버리게 됩니다.
문3. 권력이란 참 비정하군요. 숙부가 조카를 죽이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인데요. 실제 <왕조실록>에는 단종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요?
답3. 네 이 부분도 정말 기막힌데요. 세조 3년 10월 21일의 <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실패한 종친과 신하들이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단종이 17살의 어린 나이로 자살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노산군이 스스로 목매어서 자살하니, 예(禮)로써 장사지냈다.’고 기록돼있죠. 하지만 나중에 노산군에서 다시 단종으로 복위될 당시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애써서 찾아야 했다’는 기록에 미루어 볼 때, 세조 때의 <왕조실록>은 조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단종은 자살했다고 적혀있는 <왕조실록>의 기록과는 달리, 세조가 보낸 사약을 먹고 죽었다고도 하고 목 졸려 살해당했다고도 전해집니다. 가장 끔찍한 야사는, 단종에게 사약을 먹였는데 바로 죽지 않아 방문을 잠가 가두고 뜨겁게 불을 때서 죽였다는 얘기인데요, 그래도 죽지 않자 잔심부름하던 화득이라는 자가 활줄에 길쭉한 노끈을 감아 올가미를 만들어 단종의 목에 걸어 매달아 죽였다는 얘기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문4. 정말 잔인하고 가엾은 얘기네요. 그런데 이 사약이 어떻게 보면 일종의 특혜였다지요?
답4. 네, 맞습니다. 조선시대에 있어 사약에 의한 사형 집행은 왕족 또는 양반에게 명예를 존중하여 은전을 베푸는 방식이었습니다. 실제 그 당시 형법에는 교수(絞首)와 참수(斬首)만을 사형 종류로 인정하고 있었으나, 사약을 먹고 죽게 함으로써 신체를 보전케 한다는 배려의 의미가 담겨 있는 제도였던 것이지요.
한약재는 보통 병을 치료하거나 몸을 보하는 약으로 쓰이지만, 옛날에는 이렇게 독성이 강한 약재를 사용하여 사람을 죽이는 데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사약 재료로는 비상(砒霜)을 사용하였으며, 생금(生金)이나 수은 등을 사용하여 위장에 구멍을 내서 죽이기도 하였고요, 생청(生淸)이나 부자(附子), 게의 알(蟹卵) 등을 합하여 조제하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단종의 경우에는 사약을 받아 마신 후 온돌방에 들어가게 하고 문을 걸어 잠그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고 하니, 아마도 이런 경우의 사약 성분은 매우 뜨거운 성질을 지닌 부자(附子)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문5. 사약의 재료로 사용되었다니, 부자라는 약재가 매우 위험한 약재이겠군요?
답5. 맞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부자는 실제로 질병치료에 많이 쓰이고 있는 약재이기도 합니다. 그 뜨거운 성질로 인하여 주로 양기부족이나 차가운 기운이 너무 심하게 쌓인 병증에 사용되는데, 맥이 느리고 힘이 없으며 약하거나 추위를 많이 타고 전신 기능 쇠약 증상을 동반하는 증상 등에 쓰입니다. 또한 추울수록 심해지는 통증이나, 냉한 증상을 수반하는 관절 통증과 복통 설사 등에 사용하기도 하며, 체질적으로는 소음인에게 처방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보통 인삼 같은 약재들을 대량으로 포함시킨 처방을 복용해도 별 차도를 못 느끼는 분들인데요, 부자가 포함된 처방을 복용하고, 평생 느끼던 추위가 말끔히 사라졌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즉 부자와 같은 사약 재료라도 전문가인 한의사가 체질과 증상에 맞게 처방하면, 매우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문6. 체질과 증상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으니, 꼭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네요. 자, 그러면 다시 단종의 건강상태로 돌아가 보죠.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까지 다 허약했으면, 단종도 허약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답6. 맞습니다. 단종이 즉위했을 때의 <왕조실록>을 보면, 재미난 기록이 나오는데요, 황보인 등의 대신이 어린 나이에 즉위한 단종의 건강을 걱정해, 공개적으로 육식을 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성상께서 춘추가 아직 어리시고 혈기가 충실하지 못하시며 구역질하는 증세가 있으시니, 청컨대 육즙을 진어하소서”라고 말한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인데요, 이 때 단종은 이를 거부하며, 평소에도 자신은 구역질하는 증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는 육식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단종은 어릴 때부터 쉽게 구역질을 일으키는 증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7. 타고난 체질도 허약한데, 구역질 때문에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면, 단종은 정말 병약했을 것 같습니다. 이후에 치료는 어떻게 되었는지요?
답7. 이렇게 구역질을 일으키는 원인은 상당히 많습니다. 일시적인 식체(食滯)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고, 뇌혈관 질환과 같이 머릿속 압력이 상승해도 발생하기 때문에 단종의 구역질 증상에 대해 한마디로 진단내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후 기록을 보면, 김종서 등이 임금의 병을 조리하기 위해 산보하거나 말을 타서 행기(行氣)하도록 하는 아뢰는 부분을 보아, 단종 구역질의 원인을 유추해 볼 수 있겠습니다. 단종의 경우, 아마도 비위가 약해서 제대로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반대로 기운이 위로 올라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비위가 약해진 원인은 역시 스트레스로 인한 기혈순환장애로 보입니다.
그래서 단종 즉위년 6월 1일의 <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기를, “무릇 사람이 비록 장성한 나이로 있더라도 거상을 하면 반드시 마음이 허하고 기운이 약하게 되는데, 지금 주상께서 나이 어리시고 혈기가 정하지 못하시니, 청컨대 타락(酡酪)을 드소서”라고 아뢰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나이어린 임금이 과도한 스트레스와 기혈부족으로 몸을 상하게 될까 걱정하여 우유를 먹게 하려던 것이지요.
문8. 우유가 약으로 사용된다니 참 재미있네요.
답8. 네, 서울 동대문에서 혜화동에 걸쳐 야트막한 산이 있는데, 그 이름이 타락산(駝駱山)이라고 불렸습니다. 산의 모양이 낙타와 같아서 낙타산이라고도 불렸지만, 조선시대 궁궐에 우유(牛乳)를 조달하던 관아인 타락색(駝酪色)이 그 산기슭에 있어 타락산이라고 불렸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가게에서 손쉽게 사먹을 수도 있고 학교에서는 아예 급식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옛날에는 이렇게 궁궐에만 제공되던 귀한 음식이 바로 우유였습니다.
또한 또 다른 <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낙죽을 제조하고 바치는 부서가 내의원이었을 알 수 있는데요, 우유가 왕의 건강을 관리하는 ‘약(藥)’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그 당시에는 임금도 아무 때나 마실 수 없었고 특별한 날이나 몸이 아플 때 기력회복을 위해 먹는 보양식이었으며, 조정의 대신들도 동짓날 같은 특별한 날에만 국왕이 보내 준 우유를 맛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문9. 몸을 보하는 것 외에 우유의 다른 효능도 있는지요?
답9. 네. <왕조실록>을 보면, ‘타락은 조금 차서 심열(心熱)을 제거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영양상태가 좋지 못해 얼굴색이 좋지 못하면서 불면증과 가슴 두근거리는 증상에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증상의 원인이 스트레스로 인한 심열증임을 알 수 있는데요, 하지만 바로 이렇게 차가운 효능 때문에 부작용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 우유만 먹으면 배탈 나는 사람이 있는데요, 우유의 성질이 차가워서 위장장애가 일어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먹으면 그 증상이 줄어드는 것도 우유가 차가운 성질을 지녔다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농경민족인 경우에는 우유를 분해하는 효소가 적어 소화를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경우 우유 대신에 ‘두유(豆乳)’ 등으로 대체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