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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5월 25일 토요일
[(녹) 연중 제7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성 베다 사제 학자 또는
[백] 성 그레고리오 7세 교황 또는
[백]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데 파치 동정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말씀의 초대
야고보는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낸다며,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하시며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5,13-20
사랑하는 여러분,
13 여러분 가운데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양 노래를 부르십시오.
14 여러분 가운데에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십시오.
15 그러면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지만,
비가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자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18 그리고 다시 기도하자,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이 소출을 냈습니다.
19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진리를 벗어나 헤맬 때
누가 그 사람을 돌이켜 놓았다면, 20 이 사실을 알아 두십시오.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이켜 놓는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고 또 많은 죄를 덮어 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3-16
그때에 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16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오늘 복음에는 절마다 “어린이”라는 낱말이 되풀이됩니다. 이에 해당되는 그리스 말 ‘파이돈’은 세 살에서 다섯 살 정도의 아이들을 가리킵니다. 이 나이의 아이들이 가지는 특징은 어른에게 온전히 의존하고 따르며 믿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이 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삶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고, 이렇게 하느님께 의존하는 삶의 자세가 역설적으로 인생을 무엇보다도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비결임을 강조합니다. 야고보서의 마무리에 해당하는 독서의 내용이 이러한 역설을 확인하여 줍니다. 독서에서는 고통을 겪으면 하느님께 기도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찬양 노래를 부르며, 아픈 사람이 있으면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권고합니다. 주어지는 상황을 수용하도록 강조하는 것입니다.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온전한 신뢰와 의존으로 단순하게 하느님께 다가가는 어린이들과, 어린이들을 데려온 사람들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를 막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언짢아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무엇보다도 힘들어하는 것은 나에게 다가오는 사건을 ‘막지 말고 그냥 두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비록 그것이 고뇌와 갈등을 일으키더라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면’ 예수님께서는 결국 우리를 ‘끌어안으시고 손을 얹어 축복’하여 주십니다. 그것이 구원으로 가는 여정입니다.(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본당 어르신 부부가 고백성사와 봉성체를 원하였습니다. 봉사자와 함께 찾아갔습니다. 형제님은 집에 있었는데, 자매님은 약속이 있다고 나갔다고 합니다. 전화를 드리니, 다시 오겠다고 했습니다. 기다리면서 형제님이 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재매님이 돌아왔고, 봉성체 날짜를 착각했다고 합니다. 봉사자는 하루 전날 확인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때로 착각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고백성사와 봉성체를 마치고 돌아오려는데 어르신 부부는 점심을 먹고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침 점심시간도 되어서 근처 식당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예전에 어른들은 ‘한(恨)’이 맺힌다고 말하였습니다. 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던 부부에게도 ‘한(恨)’이 있었습니다. 3년 전에 사랑하는 아들이 먼저 하느님의 품으로 떠났습니다. 신앙 안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겨감을 믿으면서도 어머니의 가슴에는 ‘한’이 응어리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픔을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어머니의 가슴에도 ‘한(恨)’이 있었습니다. 작은 형이 2004년 하느님의 품으로 떠났습니다.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늘 밝고 화사했던 어머니도 가슴 한 쪽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깊게 남아 있었습니다.
저의 삶에도 한(恨)은 아니지만 몇 번의 아쉬움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자식 된 도리로 부모님의 임종을 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2011년 5월 5일 목요일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저는 교우들과 함께 기차로 떠나는 성지순례 중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주교님께서도 오셔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창 신부님들이 미사를 해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2020년 9월 10일 목요일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저는 당시 뉴욕에 있었고, 팬데믹의 터널을 지나는 중이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으로 갈 수 없었고, 뉴욕에서 다른 분을 위한 장례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추기경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장례미사를 잘 마쳤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평화방송 사장 신부인 동창 신부님이 어머니 마지막 가는 길을 영상으로 제작해서 보내 주었습니다. 1995년입니다. 주교님께서는 제게 미국의 교포사목을 권하셨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느덧 30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저는 열정은 넘쳤지만, 절제와 겸손의 덕이 부족했습니다. 부덕한 저의 탓으로 미국으로의 인사이동은 취소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은 놀랍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좀 더 여물게 하신 다음 미국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진찰 한 후에 증상에 맞는 ‘처방전’을 만들어 줍니다.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으로 가면 약사는 처방전에 따른 약을 줍니다. 신앙생활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처방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처방전은 ‘기도’입니다. 즐거운 사람에게 필요한 처방전은 찬양 노래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처방전은 교회의 원로들입니다. 원로들은 아픈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발라줍니다. 야고보 사도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처방전은 기도와 찬양 그리고 교회와의 연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창조하시고, 사람들의 영혼에 하느님의 숨결을 넣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숨결을 느끼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살 때,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지금 이곳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이 세상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됩니다. 보석을 담으면 보석상자가 됩니다. ‘우리들 마음에 시기, 질투, 탐욕, 분노, 미움, 원한’의 쓰레기를 담으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느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용서, 희생, 나눔, 배려, 인내, 사랑’의 보석을 담으면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이 하느님 나라가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어린이와 같은 사람>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르 10,14)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5)
주는 대로 받고
받은 대로 주는
주는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마음에
마음으로
웃음에
웃음으로
따뜻함에
따뜻함으로
부드러움에
부드러움으로
다가감에
다가감으로
착함에
착함으로
사랑에
사랑으로
주는 대로 받고
받은 대로 주는
주는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데려와 축복해 달라는 사람들을 꾸짖는 제자들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는 많은 경우 다른 이들을 대하면서 자신보다 비교 아래에 있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면 하느님의 영원한 시간과 광활한 우주 속에서 현재의 비교 우위에 있다는 것은 참 의미 없는 일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 안에서 어느 누구나 소위 도토리 키재기처럼 다 미소하고도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린이를 받아들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인간으로서 하느님 안의 진정한 겸손을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경외심을 갖고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그 사람에게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가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오늘의 성인
성 베다(Bede)
신분 : 신부, 교회학자, 역사가
활동연도 : 672/673-735년
같은이름 : 비드
영국 타인(Tyne) 강 남쪽 지역의 노섬브리아(Northumbria) 왕국에서 태어난 성 베다(Beda)는 7세 때 친척들에 의해 캔터베리(Canterbury) 위어머스(Wearmouth)의 성 베드로 수도원으로 보내져서, 수도원 원장인 성 베네딕투스 비스코프(Benedictus Biscop, 1월 12일)의 지도하에 교육을 받았다. 685년부터는 성 베네딕투스 비스코프가 새로 지은 재로우(Jarrow)의 성 바오로 수도원으로 옮겨 그곳의 원장인 성 체올프리두스(Ceolfridus, 9월 25일)의 지도를 받았다.
그는 성장한 뒤에 그 수도원의 수도자가 되었고, 19세에 부제품 그리고 30세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몇 차례의 짧은 여행을 제외하고는 늘 수도원 안에서 생활하면서 주로 성경 연구에 전념했으며, 수도원 내의 교육과 저술 활동에 몸을 바쳤다.
그는 당대의 가장 박학한 사람으로 존경받았고, 영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성경에 관한 그의 주해서들은 당대에 가장 권위가 있었고 중요시되었으나, 그는 역사가로서 더 유명하다.
그의 “영국 교회사”는 널리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역사서이다.
그는 또한 영문법과 연대기 작업을 하였고 찬미가와 시를 썼다.
이외에도 그는 서한집과 강론집 그리고 순교록을 썼는데, 이들 책들이 모두 라틴어로 저술되었지만 그는 영어로 집필한 저술가로도 이름이 나 있다. 만년에 그는 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성 요한 복음서”를 번역하였고, 세비야(Sevilla)의 성 이시도루스(Isidorus, 4월 4일)의 저서들을 추출하였다.
그는 735년 5월 26일 재로우의 수도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재로우에 묻혔다가 더럼(Durham)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더럼 성당의 갈릴리 경당에 묻혀 있다.
성 베다는 일생 동안 기도하고 노동하며 단순하게 살고자 노력한 수도자였으나 그의 학문적 업적으로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그의 지혜와 학문을 높이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존자’(Venerable)라는 칭호를 덧붙였고, 이 칭호는 853년 아헨(Aachen)의 교회회의에서 공식화되었다.
그는 뛰어난 학자이면서도 겸손하였으며, ‘영국 역사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1899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가 교회학자로 선언하였고,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는 성 베다를 일컬어 ‘성령의 빛이자 교회의 빛’, ‘우리 스승이신 베다 존자’라고 하였다.
그는 단테(Dante)의 “신곡”(La Divina Commedia)의 ‘천국 편’에 등장하는 유일한 영국인이기도 하다. 비드(Bede)로도 불리는 그는 1100년 이전까지 영국 전례력에서 5월 26일에 기념되다가 1969년부터 5월 25일로 확정되어 기념되고 있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y Magdalen)
신분 : 수녀
활동지역 : 팟지(Pazzi)
활동연도 : 1566-1607년
같은이름 : 마들렌, 막딸레나, 메리, 미리암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의 최고 명문가인 팟지 집안에서 태어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는 태어난 다음날 카타리나(Catharina)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어릴 때부터 선행과 신심생활에 큰 관심을 보여 아이들을 모아 놓고 기도와 교리를 가르치기도 하고 성당에서 자주 기도하였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무엇보다도 성체께 대한 사랑과 존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영성체를 간절히 원하여 특별 관면을 받고 10세 때에 첫영성체를 하고, 12세 때 동정 서원을 하였다. 그 후 피렌체에 있는 산 조반니노(San Giovannino) 수녀원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더욱 열렬한 신앙인이 되었고 수도 성소의 뜻을 굳혀 나갔다. 부친은 딸을 결혼시키려고 하였지만, 그녀는 극렬히 반대하여 1582년 12월 1일 피렌체에 있는 천사의 성 마리아(Santa Maria degli Angeli)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1583년 1월 3일 그녀는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1584년 3월 초 병을 얻은 후 놀라운 탈혼이 반복되었는데, 거의 매일 성무일도를 바친 뒤 2-3시간 동안은 탈혼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녀의 병은 아주 위중했다. 동료 수도자가 아프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녀는 십자가를 가리키면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생각하고, 나의 구원을 바라보면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고 대답하여 그녀의 뛰어난 하느님 사랑을 표현하였다. 1585년 5월 17일 금요일 그녀는 이전보다 훨씬 긴 탈혼에 빠졌는데, 거의 40시간이나 계속되었다. 그 후 6월 16일 삼위일체 대축일 이후 5년 동안 영적 생활의 무미건조와 시련을 겪기도 했다. 1586년 10월 수련기를 마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극도의 고통을 맛보던 중 1590년 부활절에 50일 동안 금욕생활을 하라는 주님의 뜻에 따라 오로지 빵과 물로만 지냈고, 이러한 고행의 보답으로 하느님과의 일치의 선물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예언하는 은혜를 받은 것 외에도 먼 곳에 있는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고, 탈혼 상태에 있을 때 어떤 경우에는 무기력해지는 때도 가끔 있었다. 1604년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원장으로 선출되었는데, 얼마 후 병을 얻어 이전에 느껴 본 적이 없는 심신의 고통으로 3년을 보내야 했다. 결국 오랜 고통 뒤에 그녀는 1607년 5월 25일 41세의 나이로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1669년 4월 28일 교황 클레멘스 9세(Clemens IX)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우르바노 1세(Urban I)
활동년도 : +230년
신분 : 교황, 순교자
지역
같은 이름 : 어번, 우르바누스, 우르반
성 우르바누스(Urbanus, 또는 우르바노)의 출생에 관한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폰티아누스(Pontianus)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기록에 따르면 222년 성 칼리스투스 1세(Callistus I, 10월 14일) 교황이 세상을 떠난 뒤 교황으로 선출되어 8년 동안 재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교에 매우 우호적인 황제가 지배하는 동안 교황직에 있었기 때문에 전혀 탄압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3세기 전반기의 평화로운 기간 동안 그리스도인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이집트, 시리아, 북아프리카 그리고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서 그리스도인의 증가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이 시기에 로마(Roma)의 지하 묘지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로써 그리스도인의 수가 많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크게 기여한 것이 교황 우르바누스 1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그는 로마의 노멘타나가(Via Nomentana)에서 출생하였으며, 그의 권고와 가르침으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의 박해로 하느님의 교회를 위해 많은 고통을 겪었고 결국 목이 잘려 순교했다고 전한다. 이에 근거해서 교회는 교황 우르바누스 1세를 순교자로 공경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교황 우르바누스 1세가 포도 농사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교황의 축일인 5월 25일경에 포도 꽃이 처음 피기 때문이다.
성녀 막달레나 소피아 바라 (Madeleine Sophie Barat)
활동년도 : 1779-1865년
신분 : 설립자, 수녀원장
지역
같은 이름 : 마들렌, 막딸레나, 소피바라, 마들렌 소피
성녀 막달레나 소피아 바라(Magdalena Sophia Barat, 또는 마들렌 소피 바라)는 술통 제조업자인 아버지 자크 바라(Jacques Barat)와 어머니 마들렌 푸페(Madeleine Foute)의 막내딸로서 1779년 12월 12일에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의 즈와니(Joigny)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열한 살 위의 큰 오빠 루이(Louis)로부터 라틴어와 고전문학, 신학과 철학 등 좋은 교육을 받았는데, 루이는 나중에 예수회 사제가 되었고 동생에게 항상 엄격한 규율과 벌을 주었다고 한다. 루이는 동생의 교육을 위해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6세 된 성녀 막달레나를 파리(Paris)로 데리고 가서 여러 젊은 여성들과의 만남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대혁명의 여파로 전통적인 가치와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부르심의 징표로 감지한 성녀 막달레나는 21세 되던 때에 오빠의 소개로 예수회의 조제프 바랭(Joseph Varin) 신부를 만나 장차 성심 수녀회(Society of the Sacred Heart)를 창설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바랭 신부는 성녀 막달레나를 ‘예수 성심’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수녀회의 초석이 될 적임자로 생각했다. 그래서 1800년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에 성녀 막달레나와 세 명의 동료들이 예수 성심께 서원함으로써 성심 수녀회의 설립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성심 수녀회는 예수 성심의 무한한 사랑에 보답하고 그 사랑을 널리 알리는 것을 근본정신으로 하며, 특히 청소년 교육을 통하여 설립 목적을 구현해가고자 했다. 그래서 설립 이듬해인 1801년 파리 북쪽의 아미앵(Amiens)에 그들의 첫 수녀원과 성심학교를 세웠고, 1802년에 성녀 막달레나는 비록 회원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지만(당시 23세) 장상으로 선출되었다. 1806년 성심 수녀회 1차 총회에서 초대 총원장으로 선출된 성녀 막달레나는 일생 동안 수녀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다. 성심 수녀회는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1804년에는 그르노블(Grenoble)의 성모 방문 수녀회 공동체를 흡수하였다. 그들 가운데에는 1818년 미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성심 수녀회의 교육 사업을 활발히 전개한 성녀 로사 필리피나 뒤센(Rosa-Philippine Duchesne, 11월 17일)도 끼어 있었다. 이 수녀회는 1826년에 교황 레오 12세(Leo XII)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았다.
성심 수녀회는 발전을 거듭하였고 유럽 각국 주교들의 요청에 의해 여러 나라에 성심학교를 설립되었다. 1830년 프랑스의 7월 혁명으로 인해 푸아티에(Poitiers)의 수련소가 폐쇄를 당하자 성녀 막달레나는 스위스에 새로운 수련소를 세우기도 했다. 1865년 5월 25일 주님 승천 대축일에 그녀가 파리(Paris)에서 선종할 즈음에 성심 수녀회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중남미 등 16개 나라에 122개의 수녀원과 많은 학교가 있었다. 그녀는 1908년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25년 5월 2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녀 막달레나의 특성은 예수 성심에 대한 돈독한 신심과 사랑과 겸손의 실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