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7:1) "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그의 날이 품꾼의 날과 같지 아니하겠느냐"
어짜피 사람은 이렇게 힘들게 살다가 죽는 것 아니냐?
사람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인생은 정규직도 아니고
하루 하루 일하는 품꾼과 같다.
■(욥 7:2) "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
삯도 없이 죽어라고 일하는 종들은 쉴 때를 기다리고
저녁이면 일이 끝나고 쉴 수 있으니까 그때만 기다린다.
삯을 계약하고 일한 사람은 그가 일 한 만큼 삯을
기다린다. 그 삯이 있어야 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욥 7:3)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 되었구나"
나에게는 그런 기다림의 끝은 없고 계속 이렇게
고통스런 나날이다. 죽음이 작정되었나보다.
욥의 고통이 여러 달째였다.
하루도 힘든 삶인데 여러 달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욥 7:4)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몸이 아플 때는 긴 밤을 잘 자면 모를까 아파서
꼬박 새야 하는 사람은 밤이 무섭다.
언제나 이 밤이 갈까?
낮에야 나를 예뻐하던 미워하던 사람들이 왔다 갔다하고
서로 깨어 있으니 괜찮지만 혼자 깜깜한 긴 밤을 지새야
하는 환자는, 특히 몸을 이렇게 해도 아프고 저렇게 해도
아프고 어쩌지를 못하겠는 사람은 더 고달픈 것이 밤이다.
온 몸이 종기로 아픈 욥은 서 있어도 힘들고 앉아 있어도
힘들고 누워 있어도 힘든 것이다.
(욥 7:5)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
지금은 병원이라는 곳이 있어서 환자복을 입고 약솜을 대고,
소독을 하고, 진통제를 먹고, 약을 바르고, 의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고 간병인도 있고 하지만, 이 때 당시는 그냥 마당 바닥에 앉아서
기왓장으로 정수리부터 발 끝까지 난 종기를 여기저기 긁고 있는
것이다.
소독을 제대로 했겠나, 흙먼지를 입고 피나고 굳고 긁고 터지고
또 피나고 긁고... 정말 피부염에 걸려보면 그 피부는 분명 내 피부인데
무슨 다른 가죽을 덧 씌워 놓은 느낌이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이 정도면 불쌍한 모습인데...
동네 사람들이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계속적으로 놀리고
침을 뱉고 했다고 하면 도대체가 얼마나 ‘악인’ 이라는 것인가?
얼마나 상처를 입었기에 그토록 놀리고 침을 뱉을까?
욥이 저러다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했다.
살 것 같지가 않다. 얼마나 흉하게 아픈지.
병문안 혼 친구들도 일주일이 지나니 처음만 불쌍했지
원래의 모습을 찾는다. 학문을 토설했던 그 때로.
■(욥 7:6)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
나는 인생의 소망도 없이, 생명의 소망도 없이
하루 하루 보내는구나
■(욥 7:7)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
내 생명이 촌각을 다투고 있구나. 이제 다시는 지난 날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겠구나.
원래 가난했던 사람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겠지만 과거에 왕같이 살던
사람은 지금 이렇게 일찍 죽는 것이 억울할 것이다.
그 많은 돈 다 쓰지도 못하고.
■(욥 7:8)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나는 이제 곧 죽을 것이다. 욥은 살 소망은 보이지 않고
이제 곧 나는 죽을 것이라는 하소연을 한다.
(욥 7:9)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스올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구름이 사라져 버리면 또 다른 구름이 형성 되지만,
원래 있었던 그 구름 자체는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스올' 이라는 곳에 빠뜨림을 당하면 다시 올라오지 못한다.
신께서 영의세계에서 어떤 영을 '스올'에 보내시면
그 영의 육체는 이 땅에서 죽는 것이다.
어떤 영도 스올에 떨어졌다가 스스로 나오지 못한다.
신께서 다시 빼주시기 전에는.
'스올' 이라는 곳은 육의세계의 '죽음'과 대칭되는
영의세계의 장소이다.
이 땅에서의 '죽음'은 육체가 죽고 없어지는 것이다.
영의세계에서 신께서 욥의 영을 스올에 완전히 내려 보내시면
육의세계에서의 욥은 다시 살릴 수도 없게 죽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스올에 내리시려다가 건져주시면 이 땅에서는 죽을 뻔
하다가 살아나는 것이다.
육의세계의 느낌으로 영의세계를 느끼면 거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있다.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이라서 그렇다.
특히 내가 죽어야 갈 수 있는 세상이라서 더 그렇다.
‘개미’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보는 것과 흡사하다.
(욥 7:10)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
죽어서 장사지내고 무덤으로 들어가면 이 세상과는 끝이다.
(욥 7:11)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죽을 때는 죽겠지만 지금은 아파도 너무 아프다.
입에서 아프다고, 왜 이렇게 아픈 것이냐고, 너무 하시다고
끙끙 앓는 불평의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욥 7:12) "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제가 그렇게 나쁜놈인가요?
내가 괴물처럼 대단한 자도 아닌데 어째 저를 그렇게
꼼짝도 못하게 지키시나요. 어째 저를 잡고 놓지도
않으시고 죽이시려 하시나요?
■(욥 7:13)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잠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오늘은 잠을 좀 잤으면 좋겠다.
푹 자고 일어나면 좋겠다 해도
■(욥 7:14)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꿈에서까지, 비몽사몽간에 환상으로까지
가만 내버려 두시지를 않으신다.
신께서 세포로 형성된 사람에게 영의세계에서 말씀하실 때
꿈으로 환상으로 하시는데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마귀가 온 것 같고 귀신이 온 것 같다.
계속해서 나를 두렵게 하기 때문에 밤낮으로 살 수가 없다.
■(욥 7:15)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다 아프느니 차라리 죽겠다.
신의 두려움은 그야말로 죽는 것이 낫다고 할 만큼 두렵다.
앞이 캄캄하고 아무 것도 없으며 다시는 그 어떤 좋은 일도
생길 것 같지 않고 완전 무 상태로 가버린다.
정말 죽는 것이 행복이라고 느낄 정도다.
■(욥 7:16)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이제 살고 싶지 않아요. 저를 죽이세요!”
나도 과거에 하나님을 잘 모르고 그냥 교회에서 배운 대로
교회생활 할 때에는 매사를 그런가보다 하고 지냈는데,
지금까지 살려주신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 집을 망하게 하고
우리를 죽게 하시겠냐? 하면서 나도 주의 것, 우리 집도 주의 것,
우리 빚도 주의 것 하면서 교회생활만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은
마음으로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을, 모든 사건을,
모든 상황을 전부 쥐고 가시고, 일이 되든 안 되든,
사건이 크든 작든, 먼지만한 작은 일들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것을 신께 배우고 알고 나니,
일이 안되고 앞이 캄캄할 때나 나의 장래생활의 소망이
무 상태로 가버리면 "차라리 저를 죽여 버리세요"
한다.
"사는 게 너무 힘드네요" "살고 싶지 않네요" 한다.
왜 이렇게 전과 다르게 알고 가게 하시는 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이끌어 가신다.
■(욥 7:17)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신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마음이라는 것을 주셨다.
이 마음이 내 것 같지만 어떨 때는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지만 잘 살면야 축복을 받는다.
하지만 잘 못살았을 경우, 마음을 잘 못 썼을 경우
신께서도 이 마음을 조절하신다. 마음을 헝클어 놓으신다.
그러면 분명히 내 마음인데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고,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게 된다. 조절을 못하게 된다.
마인드컨트롤 이라는 것이 안 된다.
신께서 ‘마음’을 관리하신다.
■(욥 7: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아침마다 권징하시는 것은 매 순간을 말하는 것이다.
지구가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어느 지역이든 아침을 맞는다.
신의 권징은 어느 순간인지를 모른다.
매 순간 마다 축복을 계산하시고 징계 값을 계산하시지만
그 계산된 것을 어느 때에 실행하시는 지를 우리는 모른다.
도둑같이 온다.
■(욥 7:19)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신께서는 정말 보시는 것 같지가 않다.
사람이 보면 들키는 것 같고, 사람이 보지 않으면
안 들키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영의세계로 보자면 창조주신의
재판 석 앞에서 말하고 행동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죽어서 천국에 가서 백 보좌 심판대 앞에서
내 입으로 스스로 분다고 교육받았는데, 지금 나에게
하나님아버지께서 알려주시는 것은 지금 현재 각
개인이 하나님아버지 보좌 앞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하는 것들,
남들이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들, 들키지 않는 것들,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재판 석 앞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에 대해서 머리털이 몇 개인지도 아신다는
말씀이 현실에 와 닿지를 않아서 그렇지 내 속에 들어와
계서서 나를 다 꿰뚫어 아신다는 것이다.
정말 그러시다. 믿어지지 않을 뿐.
■(욥 7:20)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왜 하나님께서는 욥기에 나오는 말들을 나도 하게 하실까?
내가 죄를 지은들 하나님께 무슨 해가 됩니까?
제가 그 정도로 대단합니까?
내가 제일 못됐습니까?
그 사람들은 다 괜찮은 사람들이고 저만 나쁩니까?
그 자리에 저만 없으면 되는 것입니까?
왜 저는 일이 이렇게 안 되게 하시나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요?
가르쳐 주셔도 모르겠습니다.
■(욥 7:21)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토록 내 죄를 꼭 쥐고 계시나요?
제가 지은 죄가 얼마나 나쁜 죄기에 그렇게 버려버리지 않으시고
갖고 계시나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