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변화를 위한 목표를 세우거나 새로운 일을 계획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글쓰기에 도전하여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치유의 여정을 경험한다. 신춘문예(新春文藝) 공모전은 신년이 되면 신문사들이 대회를 통해 신예 문인들을 발굴하는 장이다. 2022년 캐나다의 신춘문예 공모전 소식을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고국을 떠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민자들 가운데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을 만나 활동하는 문인협회가 여럿 존재한다.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지부는 그중에 하나로서 밴쿠버 문학 신춘문예 공모전이라는 이름 아래 '늘샘 반병섭 문학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 대회를 통해 등단한 새내기 문인들은 지역 한인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반병섭 시인은 캐나다에 이민하여 다섯 자녀를 키우면서 밴쿠버 한인연합교회 목사로 13년간 시무했고, 캐나다 문인협회장, 캐나다 크리스챤 문인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조 문학 '심상'으로 등단하여, 시집 '양지로 흐르는 강', '살아있음이 이리도 기쁜데' 등 시집을 발표했으며 '가슴마다 파도친다'로 대표되는 100여편이 넘는 찬송가 작사가로 유명하다. '계간 미래문학'이 제정한 제1회 해외동포문학상을 받았다. 통신원이 거주하는 써리시 베어크릭 파크(Bear Creek Park) 아시안 가든에 반병섭 시인의 시비 '나는 그저 물이면 된다'가 세워져 있다. 이역만리 타향살이 속에 동네 공원을 산책하는데 한글로 새겨진 시비를 보고 큰 위로를 받은 것은 자명하다. 밴쿠버 웨스트시 밴두센 가든(VanDusen Botanical Garden)에도 '그대 배달의 후예이거든' 시비가 있다.)
[써리시 베어크릭 파크(Bear Creek Park) 아시안 가든에 반병섭 시인의 시비 ‘나는 그저 물이면 된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반병섭 시비]
겨우내 비가 내리는 서부 캐나다에 시상식 날만큼은 오랜만에 찬란한 봄의 볕이 허락되었다. 실내 모임이 서서히 완화되는 시점이었지만 시상식은 한 공원에서 거행되었다. 임현숙 회장과 임원진, 협회 회원들이 행사장을 꾸미고 수상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한 수상자 총 50여 명이 참석하였다. 임현숙 회장은 "문학은 재능을 타고났어도 노력 없이는 꽃을 피울 수 없다. 숨을 쉬듯이 창작에 정진하기를 바란다."라고 격려했고, 최근 부임한 밴쿠버 송해영 총영사는 학창 시절 즐겨 들었던 찬송가의 작사가인 반병섭 시인을 기리는 문학상 시상식이 열린다고 하여 시간을 내었다며 축사하였다. 문인 회원들의 기고 글을 싣는 후원을 수년간 마다 않는 중앙일보 김소영 사장이 참석하여 역시 문인들을 후원하며 축사하였다. 늘샘 반병섭 문학상 심현숙 운영위원장은 격려사를, 김해영 심사위원장의 총심사평은 임윤빈 부회장이 대독하였다. 고 반병섭 시인의 자녀인 반성우, 반성혜씨가 함께 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시, 시조, 수필, 소설, 평론, 아동문학, 번역문학 부문 중 대상에는 수필 '어미나무'를 쓴 김진아, 시 부문 차상에 '모든 오래된 것들'의 박락준, 시 부문 장려상에 '설'의 한준태, 시조 부문 차하에 '가을비'를 지은 문현주, 소설 부문 차상으로 '호접몽'을 쓴 곽선영 씨가 수상했다.
심사평과 수상작 전문은 아래 링크를 통해 열람할 수 있다.
https://issuu.com/vanchosun.com/docs/0323
수상자들은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당선작을 낭독했다. 대상을 받은 김진아는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자기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어 글쓰기에 도전했다고 하면서 평범한 일상에 산책길에서 만난 풍경에서 글감을 찾은 이야기를 나눴다. 시조부문 수상자인 문현주 씨는 여든에 가까운 연세에도 불구하고 젊은 문인 회원들에게 선배님들의 지도편달을 부탁하여 좌중에 감동을 주었다. 선배 문인 김영주 씨가 시를 낭송하고 김춘희 씨가 수필을 낭독하면서 시간을 아로새겼는데, 초록의 자연 속에서 듣는 바이올린 솔로(임새아)와 바이올린 듀엣(박소담, 김지원)의 축하 연주는 아름답고 감미로운 선율로 팬데믹의 지난한 시간을 위로하는 듯했다.
[대상 수상자 김진아와 시상자 임현숙 회장, 사진 출처: 로터스 정]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들과 2022년도 밴쿠버 문학 신춘문예 공모전 수상자들, 사진 출처: 로터스 정]
통신원은 소설 '호접몽(나비의 꿈)'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은 곽선영 씨와 시조 시, '가을비'의 주인공 문현주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들의 대답에서 글로 인생을 씨름하는 문인만의 낭만을 엿볼 수 있었다.
[소설 '호접몽(나비의 꿈)'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은 곽선영 씨, 사진 출처: 박혜정]
1. 본인 소개와 이번 공모전에 참가하게 된 계기나 소감, 그리고 수상 소감을 여쭙고 싶습니다.
언어 애호가, 환상 수집가, 스토리 성애자, 내향형 인간 곽선영입니다.
글쟁이가 되는 것은 제 오랜 꿈이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틈나는 대로 만화를 그렸고, 동화와 동시도 썼어요. 그러나 성장기를 거치면서, 삶의 반경이 바뀌면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아내면서, 글쓰기는 일기장과 카톡에만 하는 어른이 되었지요. 불혹의 나이를 지나면서 한 번쯤은 내 글을 세상에 내놓고픈 마지막 유혹이 남아있어 이번 공모전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공모전에 응모할 때부터, 대상은 안 되겠지만 적어도 소설 부문에서는 수상하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말씀하셨듯, 요즘 세상에 누가 소설을 씁니까?(웃음) 그래서 저 혼자 응모하고, 혼자 수상하지 않을까 했었죠. 지나친 겸손은 교만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제가 소설 부문에서 당선하게 된 것은 투고작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덕분일 거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제 글이 당선작이라고 연락받자 그때부터 마음이 떨렸습니다. 난생처음 세상으로부터 받아본 인정이, 마치 글을 계속 써도 된다는 허락처럼 느껴졌거든요. 언젠가는 글밥(꼭 순수문학이 아니더라도)을 먹고 살고 싶다는 마음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기에, 더욱 기뻤습니다.
2. 문학이 당신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저는 의외로(?) 실용주의자입니다. 문학이, 그저 아름다운 글줄 잘 썼다, 잘 읽었다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공감의 과정을 거쳐 동질감을 나누는 수단이고, 외롭거나 버겁거나 메마른 삶에 대한 위로이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을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이민 생활 속에 글쓰기를 통해 얻은 에너지를 짧게 소개해주세요.
한국어 특유의 맛이 있습니다. 영어에 종일 부대낀 날, 특히 그 맛은 더 맛깔스러워집니다. 기름진 파스타를 먹다가 시원한 김치 한 조각 씹을 때 그 맛처럼 이민 생활 속 글쓰기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4.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아픈 마음에 위로가 되는 글, 메마른 마음에 꿈과 희망을 주는 글, 옹송그린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는 글, 길 잃은 마음에 북극성 별빛이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진부하지만 진심입니다.
"옹송그린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는 글, 길 잃은 마음에 북극성 별빛이 되는 글 2" 에서 계속
2022년 4월 재외동포재단 스터디코리안 해외통신원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