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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시편찬송가]의 석연챦은 출판이라?" "신학부 결의를 무시하고 17일 출판예배?" 이러한 기사 제목의 '기독신문' 보도 기사가 나오자 보는 시각에 따라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장로교단의 신학적인 바탕을 두고, '예배찬송가'의 원천적인 방향을 잡아가려는 실천신학자들과 가장 성경적인 찬송가의 출현을 기대하는 분들은 이번 칼빈 탄생 500주년에 맞추어서 [칼빈의 시편찬송가]가 발행된 것은 한국 장로교의 뿌리 깊은 성경신학, 실천신학의 입장에서 한국 최초로 이룬 쾌거요. 하나님의 큰 은혜요 섭리라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어떤 분의 의견대로 "이렇게 값지고 좋은 일을 장로교단의 총연합회와 의논도 없이 일부 장로교단(합동측)에서 단독으로 발행했느냐? 여러분들이 함께 작업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 아니냐?" 하는 교단 밖의 소리를 우리가 어떻게 볼 것이며, 이들의 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겉으로는 타당한 의견처럼 보이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속담을 기억해야 될 것이다. 편찬위원들과 한국교회를 사랑하시는 분들은 한국 땅에 <칼빈의 시편찬송가>가 발행되기를 학수 고대하였으며, 기도의 응답(제네바에서 만난 미국에서 온 목사님으로부터 한국에 <칼빈의 시편찬송가>가 발행되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었을 때 우리가 얼마나 오랜 동안 한국 땅에도 <시편찬송가>를 주시라고 기도해 왔다고...... 지금에서야 기도가 응답되었으니 정말 감사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는 간증)임을 부인 할 수 없다. 발행과정이 다소 꼬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따지는 것은 뒤로 하자. 그리고 이룬 결과를 인정하고 칼빈 500주년 기념하여 <칼빈의 시편찬송가 발행>을 축하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신학자와 지식인의 페어풀레이 정신일 것이다. 교단 내에서도 "어찌 신학부에서 책을 발행할 수 있느냐? 교단의 출판사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데, 어찌 사설(?) 출판사에서 발행할 수 있느냐?" 이렇게 따지시는 어른들이 있어서 어쩌면 가장 좋은 일을 이루어 놓고도 전문학자들의 일할 의욕조차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기우에서 글을 쓰는 것이다. 이번의 <칼빈의 시편찬송가>의 발행은 원래의 결의대로 우리가 '예배찬송가'로 사용할 수 있는 <시편찬송가>의 발행을 앞두고, 필연적으로 먼저 거쳐가야 되고, 한국교회에 소개해야 할 부분인 것이다. 찬송가공회에서 처음 21세기 찬송가 전문위원으로서 참여하여 찬송가곡을 선곡할 때에도 '시편찬송가'와 예배찬송가의 우선 편집을 하기로 하였지만, 막상 선곡하려 해도 당시에 찬송가에 실릴만한 '시편찬송가'를 찾아볼 수 없어서 선곡과정에서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이것 또한 '시편찬송가'가 가지는 예배음악 내지 예배 찬송가로서의 가치가 그만큼 높기 때문일 것이다. 찬송가나 성경을 발행함에 있어서 공회가 조직되고, 법인으로 등록하여 법적인 보호를 받으면서 책을 출판하고, 보급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두 공회가 조직되어(찬송가 공회는 최근에서야 법인등록) 성경이나 찬송가가 발행됨으로써 각자 교단의 신학적 입장이나 위상에 맞지 않는 방향으로 성경이나 찬송가가 발행될 수도 있다는 그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입장에서 우리는 냉철한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 보아야 할 것이다. 사회적인 언론에서도 한 미디어나 매체를 통해서 올바른 판단이나 시각을 가지지 못하는 사례들을 지켜 보면서 우리는 다양한 체널들의 정보를 입수하여 지혜로운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다수당의 의견이나 소당의 의견, 여당의 정책이나 야당의 정책을 균형있게 지지해야 올바른 정책이 시행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지켜보는 국민의 바른 시각이 있을 때 민주주의 정치가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이번에 발행된 [칼빈의 시편찬송가]는 이 일을 그간에 추진했던 신학부의 결의가 무시되거나 묵살 된 바가 전혀 없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간의 제92회기 총회보고서(p.484, 485, 563, 566 이상 2007년 내용)와 신학부 보고서(p.463, 469 이상 2008년 내용)에 의해서 결의에 착오없이 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추진 과정 중 일부 시편찬송가 편찬위원들이 작업과정에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여 편찬인원이 줄어듦으로 편찬작업에 다소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러나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행사 전에 이 일을 마치기 위하여 네 분의 편찬위원들에게 부과된 작업량이 많았지만 묵묵히 작업을 잘 소화해 내어 여호와이레로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점에서도 우려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 마지막까지 편찬위원의 역할을 감당하신 분들은 이미 <시편찬송가>를 오랜 동안 연구하고 자료들을 수집하여 개인적으로 시편찬송가들을 작곡하고, 시편가집들을 학수고대하면서 준비해 온 분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전문성이나 저작권은 자타가 인정해도 될 만한 여건과 자격을 갖춘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 기한 내에 그 방대한 자료들을 분석하고, 시편성경의 가사를 운율화 작업을 하고, 곡들을 편곡하여 고도의 수준으로 일을 감당하여 편찬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연구비나 자료수집에 예산이 충분히 지원되지 않은 시점에서 신학부의 시편찬송가 편찬을 위한 재정적인 청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편찬위원들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점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편찬위원들이 스스로 그간에 소장하고 있던 막대한 자료들을 제공하면서, 거기에 쏟아부은 물심양면의 투자를 보상을 해달라는 요구에 편찬위원장으로서 총회나 신학부에서 지원되는 예산이 없는 상태에서 위원장이 소속된 삼양 교회의 재정적인 도움과 개인 사비를 털어 놓으면서 어려운 작업을 극적으로 마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칼빈의 시편찬송가>가 발행이 되자 "왜 그런 사업을 우리와 함께 우리에게 맡겨서 하지 않았느냐? 신학부가 출판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애당초부터 과거 출판을 할때 쓰라린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편찬위원들의 염려와 충고에 따라 최소한의 합리적인 요구(저작권 등록, 저작권 인정)를 위원장이 수용을 하고 출판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이러한 마당에 "왜 어디에서 출판하지 않았느냐?" 하는 물음은 우매한 질문이 되는 것이다. 총회를 사랑하고 이끼는 마음 누구야 없겠느냐마는 다 이루어 놓은 작업결과를 그냥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또 개인적인 위협이나 호통으로 귀를 죽이는 그런 일도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은 것이다. 차제에 성경공회나 찬송가공회를 통해서 출판된 성경과 찬송가를 우리 교단도 수용하고 쓰고 있는 마당에 이제는 우리의 교단신학과 성경신학적 입장에서 그른 것은 당당하게 공회에 수정을 요구해서 바른 신학, 바른 교리에서 신앙의 교과서격인 성경과 찬송가를 출판하고 발행해야 하지 않을까? 성경이나 찬송가문제만큼은 이제 교단의 '신학부'나 '새찬송가위원회'에서 관장을 하되 그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인사들로 항구적인 전문위원들을 두어 개인적인 여건이나 신학사상에 하자가 없는 한 존속하게 하여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되 그때 그때 임시처방으로가 아닌 영구적 대처를 구상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찬송가공회 내에도 '찬송가위원회'는 공회 사무실에 전문위원들이 수시로 출입하면서 그들 나름대로 정보를 얻고 이익을 챙기고 있는 점은 우리가 깊이 참고해야 될 점들이다. 총회 홈페이지나 미디어 매체들을 통해 공개적으로 발표된 교단의 신학과 교리수호를 위해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문제들을 그냥 지나가지 말고 그때마다 총회의 상비부에서 모니터링을 하여서 처리해 가며, 답변을 준다면 더욱 신뢰받는 총회의 부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성도가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교리와 바른 신학을 지키기 위해 말로만이 아니라 신뢰받는 [신구약 성경전서], [찬송가]로 성도들이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선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린다. 참고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위해서 인용하려 한다.
칼빈 시편찬송가 석연찮은 출판 | |||||||||
신학부 결의 무시하고 17일 출판예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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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찬송가편찬위원회(위원장:서창원 목사)는 7월 17일 서울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칼빈의 시편찬송가 출판감사예배’를 드리고, 칼빈의 시편찬송 150편을 선보였다. 그러나 출판과정에서 드러난 석연치 않은 점들이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총회에서 출판이 결의돼 그간 작업을 계속해 온 시편찬송가는 신학부 결의로 금년 가을 총회에 보고한 후 출판할 것을 자체 결의한바 있다. 그러나 전격 출판이 진행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출판을 총회 출판부를 이용하지 않고 일반 출판사(진리의깃발)에서 출판한 점, 그리고 출판감사예배를 총회회관이 아닌 백주년기념관에서 드린 점, 축하와 감사의 장이 돼야 할 감사예배에 교단의 주요 인사들이 빠진 점 등이 의혹을 사고 있다.
이번에 출판된 〈칼빈의 시편찬송가 한국어판〉은 1562년 칼빈의 감독과 편집에 의해 출간된 〈제네바 시편가〉를 기초로 했으며, 2년 동안 한국 교회에 맞게 가사 수정과 운율화 작업을 진행했다. 이날 출판감사예배는 시편찬송가편찬위원인 서창원목사와 신소섭(성도교회) 목사, 이귀자(이화여대) 주성희(총신대) 교수를 비롯해, 정성구 박사(칼빈주의연구원장) 오치용 목사(칼빈500주년기념사업위원장) 예장고신 임종수 사무총장 한국장로교총연합회 김요셉 대표회장 등이 참석했다. 오치용 목사는 “칼빈의 시편찬송가 출판은 칼빈의 정신을 한국교회에 내놓은 큰 의미를 가진 일”이라며, “칼빈의 정신을 오늘의 언어와 문화로 담아내는데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종수 사무총장은 “이 찬송가를 장로교연합단체에서 힘을 모아 각 총회에서 인정하는 찬송가로 불려지길 바란다”고 축사했다. 〈칼빈의 시편찬송가〉의 가사작업을 담당했던 신소섭 목사는 “칼빈탄생 500주년을 맞아 칼빈의 시편찬송가를 발간했다는 감격과 기쁨이 너무 크다. 이 찬송가로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기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칼빈의 시편찬송가〉가 교회에서 불리기는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귀자 주성희 교수는 “칼빈의 시편가는 중세의 곡조를 갖고 있어 앞으로 더 작업이 필요하다”며 “일단 좋은 곡을 선발해서 〈한국의 시편찬송가〉를 만드는 2차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칼빈의 시편찬송가〉 저작권 문제도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다. 작업은 총회 신학부 서창원 목사를 중심으로 시편찬송가편찬위원회가 조직되어 시작됐다. 그러나 총회의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 편찬위원들이 저작권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칼빈의 시편찬송가〉가 본격적으로 교회에서 불려지려면, 일반 찬송가에 시편찬송가를 삽입하는 과정과 저작권을 둘러싼 문제가 해결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 |||||||||
〈칼빈의 시편찬송가〉가 과연 총회신학부의 결의를 무시하고 출판될 수 있을까? 전연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총회의 결의된 <시편찬송가>는 아직 출판되지 않았다. 총회에서 인준한 사항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책을 편찬하기 위한 내용에 무엇을 어떻게 편찬할 것인지는 신학부에서 여러 차례의 회의를 통해서 이 일을 추진하고 감당할 수 있는 '찬송가 편찬 전문가'들을 영입하여 <시편찬송가 편찬위원>을 확정하고, 수십 차례 모여서 총회에서 맡겨준 <시편찬송가>의 성격을 파악하고 전문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수차례 논의를 한 끝에 신학부의 결의에 의해서 먼저 <시편찬송가> 발행을 위한 공청회를 가졌던 것이다. 거기서 발제 되었던 내용, 논찬되었던 내용들을 정리 집약하여 최종적으로 우리가 가장 손쉽게 접근하는 방법을 찾아 진행하였다. 그래서 '시편찬송가 편찬위원회'(명칭이 혼돈되는 것 같아서 이는 시편찬송가를 만들기 위한 편찬전문위원들이 작업을 진행하던 중에 아직 한국에 <시편찬송가>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현실을 감안하여 <시편찬송가>의 원조인 <칼빈의 시편찬송가>를 칼빈 탄생 500주년을 맞아 한국 교계에 먼저 내놓기로 하여 결의된 내용을 실행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시편찬송가>의 발행을 위한 총회적인 예산이 전연 뒷받침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회의만 진행된다고 이 일이 성사되기란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전문편찬위원들의 요구에 따라 적어도 교통비와 최소한의 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한 경비, 또 악보의 사보를 위한 연구비들을 지급해 달라고 하는 편찬위원들의 요구를 위원장 목사님이 감당했던 것이다. 이러한 예산적인 배려가 전혀 없고, 이해조차 전무한 상태에서 이 일을 추진하신 편찬위원장의 어려움이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신학부장의 소속 삼양교회에서 <칼빈 시편찬송가>를 발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비를 조달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편찬위원들은 <시편찬송가> 발행을 허락해 주신 총회에 먼저 감사드린다. 그리고 삼양교회의 당회와 교회에 감사 드린다. 이번 출판을 위해서 자료 수집과정, 그리고 시편 성경 말씀의 운율화 작업은 정말 성경신학과 찬송신학의 극적인 결합이며, '칼빈 시편가'의 운율에 맞추어 가사 작업을 한다는 것은 정말 힘이 들었다. 그러나 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 헬라어 그리고 라틴어, 번역본들 비교하고,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 성경을 비교하면서 성경 본문에 충실한 시편 가사의 운율화에 접근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번 작업이 완전한 작품이라기 보다는 전에 소개된 '기독지혜사'에서 나온 <시편찬송가>(서울 : 기독지혜사, 2001 초판, 2002 재판)와는 전연 다른 것이다. 기독지혜사의 <시편찬송가>는 <칼빈의 시편찬송가>가 아니고, 스코틀랜드나 영국이나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작곡된 찬송가 곡조에 시편성경 가사를 리듬에 관계없이(운율화 작업 없이) 가사를 리듬에 1, 2, 3, 4절 관계 없이 자유롭게 배치를 한 것 뿐이다. 그러므로 이 찬송가의 발행을 위해 이번 편찬위원 한 분에게 자문을 구했을 때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만들자면 현대음악에서 가사를 중얼가리는 랩 같은 형식이 아니겠는가? 가사의 배치나 운율화는 감안하지 않은 음악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의 <칼빈의 시편찬송가>의 작업은 시편 150편을 <칼빈의 시편찬송가> 원래의 곡조(Melody, 원래 테너에 있는 선율을 우리 찬송가처럼 소프라노에 옮겨 놓고 그 선율에 베이스 기음과 화성을 살려서 화음을 재배치하는 재창조의 고난도의 작업이었던 것이다. 세간에 말하는 것처럼 글줄이나 읽고 쓰고, 찬송가 정도 화음이나 구성을 알면 해결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편찬위원들은 적어도 시편찬송가, 시편찬양곡을 비롯하여 시중에 소개된 작곡집, 찬송가학에 한한 전문서적을 저술하고, 신학적인 논문과 역서나 찬송가학의 저술을 인정받은 베스트 요원들이었기에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이런 일들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점 우리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린다.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성경신학자, 찬송신학자, 교회음악가들이 줄줄이 있고, 많은 교수들이 신학교에서 찬송가학 내지 교회음악 강의를 하고 계셔도 감히 엄두도 못냈던 대장정의 전문적인 작업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기독교서적을 출판하며 발행하는 이들은 최소한의 선교적인 사명과 종교적인 양심을 가지고 이러한 일들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총회 이름이나 교단의 이름으로 뭔가 한몫 챙겨보려는 그런 마음으로 접근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성사케 할 수 없는 것이리라. 그래서 경험을 바탕으로 처음부터 일을 시키시며 재촉하시는 분께 정당한 저작권, 작업비를 요구했던 것이다. 적어도 기독교 문서나 성경 찬송가를 발행하려는 분들은 최소한의 양심을 지녀야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고급 두뇌와 지식을 상품화 하려만 들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지는 방향으로 쓰여지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당장의 자신의 입지나 위신 등을 먼저 생각해서 공의를 그르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공의' 얘기가 나왔으니 개역개정판 성경에서 시편을 참조하다가 '하나님의 정의'라고 하는 문맥을 인용하려니 도저히 마음에 감동이 되지 않아서 '하나님의 공의'로 된 개역판 성경을 참조해서 바로 잡아 놓고 보니 좀 마음이 편해 졌다. 그래서 미국에 가 있는 한영 해설성경 편찬 위원 친구에게 문의를 했더니, 둘 다 별차가 없다고 답이 와서 '자네와 우리는 세대차가 나네.....' 하고서 속으로 중얼거리고, 쓴 웃음을 지었다. 우리의 언어 현실에서 '사회정의'를 말하는 자들의 언어 논리로는 그 것이 가능할 지 모르나 예수가 "사회 정의 구현의 선두주자"라고 이해하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그 중얼 거림 속에서 중세기 교황청의 교권에 억눌려 지동설을 펴놓고 밖으로 주장하지 못하고 속으로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어'라고 중얼 거렸다던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생각이 났다. 이 말도 갈릴레오의 말이라기 보다는 그의 제자들이 각색해 낸 이야기이겠지만 말이다. 한국 교회에 시편찬송가를 알리고, 보급해야 되겠다는 작업은 피를 말리는 전문작업이었음을 고백한다. 편찬전문위원들은 정말 개인적인 모든 스캐듈을 포기하다 시피하고, 기왕 나오는 것이면 칼빈의 500주년 기념 행사 전에 책이 출판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위원장의 조언이 있었기에 편찬위원들은 휴가를 반납한 채 자료 수집을 위해서 외국에 다녀 와야 했고, 자료 수집을 위한 경비 지출은 엄두도 못 냈던 현실에서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직 한국 개신교 선교 130년을 지나도 <칼빈의 시편찬송가> 하나를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을 자책하면서 사명감을 가지고, 한국에 진정한 예배찬송을 만들어 후대에 물려 주자라는 각오로 '시편찬송가 편찬위원'(자작 명칭이지만)들의 각고의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의지와 실천실행, 그리고 무명의 기도의 지원자들이 없었더라면 도저히 불가능했으리라. 신학부장이며, 시편찬송가 발행 겸 편찬위원장이 이번에 책이 완간되기 전 제네바 행사 때문에 출국하시고, 남은 편찬위원들의 부담과 마음 조림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장로교의 신학적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칼빈의 시편찬송가>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정말로 눈물겨운 감사를 드린다. 그렇다 개척자의 길은 항상 외로운 것이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Soli Deo Gloria! Coram Deo! <칼빈의 시편찬송가> 편찬위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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