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무정운역훈서문[洪武正韻譯訓序]
신숙주(申叔舟) 지음/김슬옹 공역 시안
[홍서1] 聲韻之學, 最爲難精_[정운역훈서1ㄱ:1].성운학(말소리에 대한 학문)은 자세하게 나타내기가 가장 어렵다.
[홍서2] 蓋四方風土不同, 而氣亦從之.__[정운역훈서1ㄱ:1-2] 대개 사방의 풍토가 같지 않으므로 역시 기운도 다르다.
[홍서3] 聲生於氣者也, 故所謂四聲七韻. 隨方而異宜._[정운역훈서1ㄱ:2-3] 소리는 기운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이른바 사성과 칠운이 지방에 따라 다른 것이 마땅하다.
[홍서4] 自沈約著譜, 雜以南音, 有識病之, 而歷代未有釐正之者._[정운역훈서1ㄱ:4-6] 그런데 심약(沈約)이 ≪사성운보(四聲韻譜)≫를 저술하면서 남방의 음이 섞이게 되어 지식인들이 이를 병통으로 여겼으나 역대에 아무도 정리하여 바르게 해놓은 이가 없었다.
[홍서5] 洪惟皇明太祖高皇帝, 愍其乖舛失倫, 命儒臣, 一以中原雅音,定爲洪武正韻. 實是天下萬國所宗._[정운역훈서1ㄱ:5-7] 명나라 태조 황제가 그것이 틀려서 차례를 잃은 것을 민망히 여기고, 유학하는 신하들에게 명하여 중국의 정음으로써 통일하게 하니 이것이 ≪홍무정운(洪武正韻)≫으로 , 실로 천하의 모든 나라가 높이는 바이다.
[홍서6] 我世宗莊憲大王. 留意韻學. 窮硏底蘊. 創制訓民正音若干字._[정운역훈서1ㄱ:7-8] 우리 세종대왕께서 운학(성운학)에 뜻을 두고 끝까지 연구하여 훈민정음 몇 글자를 창제하셨다.
[홍서7] 四方萬物之聲. 無不可傳. 吾東邦之士. 始知四聲七音. 自無所不具. 非特字韻而已也._[정운역훈서1ㄱ:8-9_ㄴ:1] 그리하여 사방 만물의 소리를 전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되었으며, 우리나라 선비들이 비로소 사성과 칠음을 알게 되어 저절로 갖추지 못할 것이 없으며, 특히 글자의 운에만 한정될 따름이 아니다
[홍서8] 於是以吾東國. 世事中華. 而語音不通. 必賴傳譯. 首命譯洪武正韻._[정운역훈서1ㄴ:1-3] 이에 우리나라가 대대로 중국을 섬겼으나 언어가 통하지 아니하여 반드시 통역을 의뢰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홍무정운≫을 번역할 것을 명하였다.
[홍서9] 令今禮曹參議臣成三問,典農少尹臣曹變安,知金山郡事臣金曾,前行通禮門奉禮郞臣孫壽山及臣叔舟等. 稽古證閱. 首陽大君臣諱,桂陽君臣璔. 監掌出納. 而悉親臨課定. 叶以七音. 調以四聲. 諧之以淸濁. 縱衡經緯. 始正罔缺._[정운역훈서1ㄴ:3-8] 현 예조 참의 신 성삼문ㆍ전농 소윤인 신 조변안, 지금산군사 신 김증, 전 행통례문 봉례랑 손수산 및 신 숙주로 하여금 옛것을 살펴 교정하게 하고, 수양대군 신 휘(諱)와 계양군 신 증이 출납을 맡게 하고, 모두 직접 자리에 참석하여 과별로 정하여 칠음으로 맞추고 사성으로 고르고 청탁으로 조화를 시키니, 가로 세로 씨줄과 날줄이 비로소 바르게 되어 결함이 없었다.
[홍서10] 然語音旣異. 傳訛亦甚. 乃命臣等. 就正中國之先生學士. 往來至于七八. 所與質之者若干人._[정운역훈서1ㄴ:8_2ㄱ:1] 그러나 발음이 다른 이상 잘못 전한 것이 또한 많아서 신 등에게 명하여 중국의 선생이나 학사에게 가서 바로잡게 하므로 7,8번을 내왕하여 더불어 질문하는 자가 여러 명에 달하였다.
[홍서11] 燕都爲萬國會同之地. 而其往返道途之遠. 所甞與周旋講明者. 又爲不小少. 以至殊方異域之使. 釋老卒伍之微. 莫不與之相接. 以盡正俗異同之變.[정운역훈서2ㄱ:1-4] 연경은 만국인들이 모이는 곳으로 그 머나먼 길을 가고 오는 동안에 일찍이 더불어 주선하고 검토하고 밝혀준 경우도 또한 적지 아니하고, 다른 지역의 사신을 비롯하여 노승이나 병졸 같은 하찮은 사람들까지도 만나 보니, 바른 것과 속된 것이 다르고 같은 변화를 다 밝히게 되었다.
[홍서12] 且天子之使至國而儒者. 則又取正焉. 凡[정운역훈서2ㄱ:4-5] 또한 중국의 사신이 우리나라에 온 자가 유학자일 경우에는 또 물어서 바른 것을 취했다.
[홍서13] 謄十餘藁. 辛勤反復. 竟八載之久. 而向之正罔缺者. 似益無疑.[정운역훈서2ㄱ:5-6] 무릇 십여 벌의 원고를 베껴서 어렵게 되풀이해서 8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나고서야 빠지고 결함이 있는 것을 바로 잡아 바르게 되니 더욱 의심이 없게 되었다.
[홍서14] 文宗恭順大王. 自在東邸. 以聖輔聖. 參定聲韻. 及嗣寶位. 命臣等及前判官臣魯參,今監察臣權引,副司直臣任元濬. 重加讎校.[정운역훈서2ㄱ:6-9] 문종대왕께서 동궁에 계실 적부터 성인으로 성스러운 세종대왕을 보필하여 성운 연구 사업에 직접 참여하셨고, 왕위를 계승하게 되자 신 등 및 전 판관 신 노삼ㆍ현 감찰 신 권인ㆍ부사직 신 임원준에게 명하여 거듭 교정을 가하게 하였다.
[홍서15] 夫洪武韻用韻倂拆. 悉就於正. 而獨七音先後, 不由其序._[정운역훈서2ㄱ:9ㄴ:1] 무릇 ≪홍무정운≫에서 운모로서 아우르고 분류한 것은 모두 바로잡아 놓았는데 유독 칠음의 앞뒤가 그 차례를 따르지 아니하였다.
[홍서16] 然不敢輕有變更. 但仍其舊而分入字母於諸韻,各字之首._[정운역훈서2ㄴ:1-2] 그렇다고 감히 경솔히 변경할 수가 없어서 다만 이전 것을 그대로 두고 자모를 여러 운모 각 글자 앞에 성모를 분류하여 넣어 두었다.
[홍서17] 用訓民正音. 以代反切. 其俗音反兩用之音. 又不可以不知. 則分注本字之下. 若又有難通者. 則略加註釋. 以示其例. 且以世宗所定四聲通攷. 別附之頭面. 復著凡例. 爲之指南._[정운역훈서2ㄴ:2-6] 훈민정음을 이용하여 반절을 대신하고, 그 속음과 두 가지로 사용하는 음을 몰라서는 아니되므로 나눠서 본 글자 아래 주를 달고, 그래도 통하기 어려운 것이 있으면 대강 주석을 가해서 그 예를 보여주고, 또 세종께서 정해 놓으신 사성통고(四聲通攷)를 따로 머리에 붙이고, 다시 범례(凡例)를 나눠서 표준을 만들었다.
[홍18] 恭惟聖上卽位. 亟命印頒. 以廣其傳._[정운역훈서2ㄴ:6-7] 성상께서 즉위하시자 빨리 간행해서 반포하도록 명하여 널리 전하게 하시었다.
[홍19]以臣甞受命,於先王. 命作序以識顚末._[정운역훈서2ㄴ:7-8] 신이 일찍이 선왕에게 명을 받았다고 명하여 서문을 지어 전말을 기록하게 하셨다.
[홍20] 切惟音韻. 衡有七韻.縱有四聲. 四聲肇於江左. 七音起於西域._[정운역훈서2ㄴ:8-9] 삼가 생각하건대, 음운은 운도에서 가로로는 칠운이었고 세로로는 사성이 있는데, 사성은 강의 왼쪽[남조]에서 시작되고 칠음은 서역[인도]에서 기원하였다.
[홍21] 至于宋儒作譜. 而經緯始合爲一. 七音爲三十六字母. 而舌上四母. 唇輕次淸一母. 世之不用已久. 且先輩已有變之者. 此不可強存而泥古也. 四聲爲平,上,去,入. 而全濁之字. 平聲近於次淸. 上,去,入近於全淸. 世之所用如此. 然亦不知其所以至此也._[정운역훈서2ㄴ:9_3ㄱ:1-6] 그런데 송나라 유학자들이 사성보(譜)를 지어내자 가로의 칠음과 세로의 사성이 비로소 합하여 하나가 되었으며, 칠운이 36자모(字母)가 되어 혀 위에 설상음 네 자모와 순경음의 차청음 한 자모는 세상에서 사용하지 않은 것이 이미 오래고 또 선배 학자들이 이미 바꾸어 놓은 것이 있으니, 이는 억지로 두어서 옛것에 얽매여서는 안 되며, 사성은 평성ㆍ상성ㆍ거성ㆍ입성이 되는데 전탁 글자는 평성이 차청과 비슷하고 상성ㆍ거성ㆍ입성은 전청과 비슷한데, 세상에서 쓰고 있는 것이 이와 같으나 또한 그것이 이렇게 된 이유를 알 수 없다.
[홍22] 且有始有終. 以成一字之音. 理之必然而獨於入聲. 世俗率不用終聲. 甚無謂也._[정운역훈서3ㄱ:6-7] 또 초성도 있고 종성도 있어 한 글자의 음을 이루는 것은 이치의 필연인데, 유독 입성에만 세상이 대개 종성을 쓰지 아니하니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홍23] 蒙古韻與黃公紹韻會. 入聲亦不用終聲何耶._[정운역훈서3ㄱ:7-8]몽고운(蒙古韻)과 황공소(黃公紹)의 ≪운회(韻會)≫도 입성에는 역시 종성을 쓰지 아니하였으니 어찌된 일인가?
[홍24] 如是者不一. 此又可疑者也._[정운역훈서3ㄱ:8-9] 이와 같은 것이 한 가지가 아니니, 또한 의심되는 것이다.
[홍25] 往復就正旣多. 而竟未得一遇精通韻學者. 以辨調諧紐攝之妙. 特因其言語讀誦之餘. 遡求淸濁開闔之源. 而欲精夫所謂最難者. 此所以辛勤歷久而僅得者也._[정훈역훈서3ㄱ:9_3ㄴ:1-4] 중국에 오가며 바로잡은 것이 많았으나 마침내 한 번도 운학에 정통한 자를 만나서 그 골라 놓고 얽어 놓은 묘리를 변론해 보지 못하고, 특히 말하고 읽고 외고 하는 나머지에 의해서 청탁과 개합(입을 열고 닫음)의 근원을 연구하여 이른바 가장 어려운 것을 정밀히 해명하고자 하니, 이것은 오래도록 어렵게 힘쓰고 오랜 세월을 견디고서야 겨우 얻게 된 것이다.
[홍26] 臣等學淺識庸, 曾不能鉤探至賾, 顯揚聖暮尙賴. [정운역훈서3ㄴ:4-5] 신 등은 학문이 얕고 식견이 부족해, 일찍이 지극히 깊은 이치를 탐구하여 임금님의 가르침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홍27] 我世宗大王天縱之聖, 高明博達, 無所不至, 悉究聲韻源委而斟酌裁定之, 使七音四聲, 一經一緯竟歸于正, 吾東方千百載所未知者, 可不浹旬而學, 苟能沉潛反復有得乎, 是 則聲韻之學, 豈難精哉._[정운역훈서3ㄴ:5-9] 우리 세종대왕께서는 하늘이 내린 성인으로 식견이 높고 널리 통달하여 지극하지 아니한 바 없으시어 성운(聲韻)의 처음과 끝을 모조리 연구하여 헤아리고 옳고그름을 따져 칠음ㆍ사성과 하나의 세로 음과 가로 음이라도 마침내 바른 데로 돌아오게 하였으니, 우리 동방에서 천백 년 동안이나 알지 못하던 것을 열흘이 못 가서 배울 수 있으며, 진실로 깊이 생각하고 되풀이하여 이를 해득하면 성운학이 어찌 자세히 밝히기 어렵겠는가
[홍27] 古人謂梵音行於中國. 而吾夫子之經. 不能跋提河者. 以字不以聲也. 夫有聲乃有字. 寧有無聲之字耶._[정훈역훈서3ㄴ:9_4ㄱ:1-2] 옛사람이 말하기를, ‘범어가 중국에 행해지고 있지만, 공자의 경전이 인도로 가지 못한 것은 문자 때문이지, 소리 때문이 아니다.’고 하였다. 대개 소리가 있으면 글자가 있는 법이니 어찌 소리 없는 글자가 있겠는가.
[홍28] 今以訓民正音譯之, 聲與韻諧, 不待音和類隔正切回切之繁且勞, 而擧口得音, 不差毫釐, 亦何患乎風一之不同哉._[정훈역훈서4ㄱ:2-5] 지금 훈민정음으로써 번역하여 소리가 운과 더불어 고르게 되면 같은 음을 쓰는 ‘음화(音化)’, 다른 부류의 음으로 대신 쓰는 ‘유격(類隔)’, 순서대로 음을 쪼개는 ‘정절(正切)’,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음을 쪼개는 ‘회절(回切)’ 따위의 번거롭고 또 수고로울 필요가 없이 입만 열면 음을 얻어 조금도 틀리지 아니하니, 어찌 풍토가 똑같지 아니함을 걱정하겠는가.
[홍29] 我列聖製作之妙. 盡美盡善. 超出古今. 而殿下繼述之懿. 又有光於前烈矣._[정훈역훈서4ㄱ:5-7] 우리 여러 성스러운 임금께서 제작하신 묘법이 다 아름답고 다 선하여 고금을 넘나드는 동시에 전하께서 선대의 사업을 계승하는 아름다움이 또한 앞시대보다 빛나도다.
경태 6년(1455) 중춘 16일에 수충협책정난공신 • 통정대부 • 승정원 도승지 • 경연 참찬관 겸 상서윤 • 수문전 직제학 • 지제교 충춘추관 • 겸 판봉상시사 • 지이조사 • 내직사 준원사 신 신숙주 두 손을 땅에 짚고 머리를 조아려 삼가 서문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