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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서상일 동상(망우당공원 조양회관 내 소재) |
그는 일간지 지면에 金龍祚 화백의 그림을 곁들인 그림 동요를 연재하게 된다. 金龍祚 화백은 그의 大邱達成國民學校 재직 시의 제자였다.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진학을 하지 못하는 제자를 大邱美術社(사장 徐東辰, 1931)에 입사시키고,15)16)
비도 그쳤는데
우산을 들고
제 그림자 깡충깡충
밟으며 가는
비 개인 오후의
저녁 한나절
-<비 온 뒤> 부분
제3집의 특징은 위의 예에서 본 것과 같은 충만한 색채감에 의한 시각적 이미지가 많이 등장하는 등 감각적인 표현이 많은 점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형식적인 면에서는 7․5조의 정형률을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내용에 따라 표현 형태를 다르게 모색하는 노력으로 받아들여진다.
4. 時․空觀에 대한 새로운 認識
-제4집 『푸른 하늘』의 세계-
제4동요집 『푸른 하늘』은 제3집이 나온 이태 뒤인 1937년 2월에 발간되었다.
이 동요집에는 日語 동요가 22편, 우리 말 동요가 17편 수록되어 있다. 이태 동안의 작품으로는 양이 적은 편이다. 따라서 평자들은 이 기간에 창작력이 다소 감소되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17)
그리고 소재도 대부분 학교생활에서 취함으로 해서, 제3집 보다는 소재의 폭이 다소 좁아졌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현재의 위치에서 치열함을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고 본다. 즉 관념적인 소재 선택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리얼리티를 더욱 깊이 추구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소재에 따라 다양한 형식도 추구하게 되는데 이 무렵 <동창회>, <보낸 뒤>와 같은 동시조를 시도한 점으로 보아 그 동안의 문학 활동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새로운 방향 모색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8)
하룻밤 그 전이
어제라지만
어제는 어제가
아니었는 걸
이 밤을 자고 나면
내일이라지만
이 밤을 자고 나면
내일일른지
언제가 되며는
만나게 될지
아무래도 이상하다
어제와 오늘
-<어제와 오늘> 전문
이 시에서 時․空觀에 대한 그의 깊은 탐색을 엿볼 수 있다. 단순히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로 구분되는 일상의 시간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나 본질적인 時․空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러한 탐색은 필연적으로 인간 본질에 대한 추구를 동반하게 된다. 따라서 이 기간 중 그는 보다 심오한 인간 본질 추구에 매달리느라 작품 생산은 그 수량이 좀 줄어든 게 아닌가 한다.
눈이 녹걸랑
언덕에 올라
새 봄을
선물로 가지고 오는
자줏빛 제비를
맞으러 가자
-<눈이 녹걸랑> 전문
풀향기
그윽한 풀밭에 누워
가냘픈
피리소리 듣노라며는
엄매엄매
얼룩배기 꼬리를 치며
키다리
수수밭을 넘어갑니다.
-<풀밭> 끝연
흰 구름 두둥실 흘러가며는
허수아비 하늘 보고 웃고 있는데
건들메 시원시원 불어 오누나
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라
-<초가을> 3연
위의 작품들은 그 내용과 형식으로 보아 일면 종전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여지나 전체적으로 독자를 고려한 주제 탐구와 표현으로 치열한 작품 생산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성내 갔다 돌아오는 마을 소들의
요롱 소리 그친 지도 오래 됐는데
아버님은 어찌 아직 아니 오실까
매운 바람 소나무를 스쳐 가는데
가물가물 호롱 밑에 어머님께선
말없이 일만 일만 하시는 이 밤
화로가에 얹어 둔 된장 그릇이
보글보글 그 소리도 그쳐졌는데
건너 마을 반짝불도 보이지 않고
멍멍 짖던 개들도 잠들었는데
아버님은 어찌 아직 아니 오실까
눈 나리는 산골 밤은 깊어 가는데
-<아버님 기다리는 밤> 전문
이 작품은 우리의 어린 시절 정서를 절실히 되살려 주는 한국적인 동요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동요 가운데 <장에 가신 아버지>와 <성내 가신 어머니> 등은 모두 이 작품과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서 가난한 한국의 시골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린이들의 정서를 노래하고 있다.
이런 계열의 작품은 李應昌 자신의 개인적 감정과 경험이 많이 깃들어 있다고 보여진다. 그의 아버지 李始榮은 島山 安昌浩 선생이 ‘날개달린 호랑이’라고 칭송할 만큼 이름난 武人으로서 時, 書, 畵에도 능했다고 한다. 한평생 독립운동가로서 만주무관학교를 세우는데 참여하였으며,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내 잠입을 꾀하다가 만주에서 아깝게도 급서하신 분이다.
사진 4. 우재 이시영 순국 기념탑(대구앞산공원 소재) |
李應昌은 열세 살일 때 이 비보를 받았다고 한다. 순국열사의 외아들로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아버지를 사무치게 기다리는 소년 李應昌의 어린 마음을 우리는 능히 상상할 수 있다.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島山은 땅을 치며 “文武가 兼全한 又薺(李始榮)가 갔으니 또 하나의 큰 별을 잃었구나.”하고 통곡했다 한다.
이때부터 李應昌은 홀어머니를 섬기며 신문 배달, 막노동을 하며 고학으로 학교를 마치고 교원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후에 그의 작품 가운데 신문 배달하는 소년이나 구두닦이 아이들을 소재로 한 동요들은 모두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개인적 성장 배경은 그의 초기 작품의 특징인 센티멘탈에 잠기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센티멘탈리즘에 안주할 수만은 없다는 자각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던 중, 제4집에서는 잠시 調整期를 맞게 되었고 그 결과는 時․空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5. 社會 啓蒙 意識의 發現
-제5집 『외갓집』의 세계-
비록 日語로 된 동요를 쓰고 책도 읽기는 하였지만 그는 독립운동가의 외아들로서 국가에 대한 뚜렷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작품 속에는 갈수록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고운 꽃에 모여드는 벌떼 같이
힘을 모아 부지런히 일을 해 보세
-후렴 생략-
깊은 산 속 한 방울의 맑은 물같이
모이고 또 모여서 바다로 가세
백두산의 장엄한 수해와 같이
사나운 눈바람도 이겨 나가세.
-<어린이날 노래> 2․3․4절
이 동요가 수록된 제5집『외갓집』을 쓸 무렵 그는 14년 동안의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교단 생활을 청산하고 대구 근교의 과수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동심에 대한 그리움과 열정으로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어린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으나, 日帝의 발악이 갈수록 혹심해지자 그로서는 더 이상 배겨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마침내 그는 농촌에 들어가 그가 좋아하는 자연 속에 파묻혀 살 결심을 하였다.19)
이 무렵에 쓴 동시들 속에는 사회 계몽 의식이 밑바탕에 짙게 깔려있다.
간 곳마다 가갸
나도 너도 나냐
마당에는 마먀
사랑에는 사샤
여기 저기 들리네
집집마다 들리네
달 밝은 가을 밤에
소리마저 잘도 읽네
-<글 읽는 소리> 1․2연
광길아 가자 가자 학교에 가자
글 배워야 좋은 사람 되지 않겠니
낫을 놓고 기역자도 모른대서야
창피해서 새 세상에 살아가겠니
이 강산의 새 일꾼이 될 수 있겠니
배워야지 알아야지
새 희망에 살아야지
금수강산 삼천리에
새 나라를 세워야지
-<가자 가자 학교에 가자> 1․2연
위의 시들을 살펴보면 ‘글을 읽자’ 그리고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자’라고 권하고 있어 그가 문학을 통해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다분히 사회 계몽 의식을 띠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광복 직전에 쓴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우리는 그의 세상에 대한 열망과 함께 그의 문학적 지향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사회 계몽적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가장 좋은 형식으로 정형동요를 택한 것 같다. 정형동요는 독자들에게 리드미컬하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산 산 백두산
그의 기상 장엄해라
하늘못은 거룩해라
우리 백두산
강 강 압록강
삼천만의 어린 핏줄
영원토록 용솟음칠 우리 압록강
-가운데 부분 줄임-
글 글 우리 한글
온 세상에 으뜸가는
세종께서 창제하신
우리 나라글
-<산 산 백두산>1․2․5연
동무들은
시험 준비에 바쁜데
나도
한 달 뒤면 졸업을 한다.
-가운데 부분 줄임-
열두 마지기의 논과
닷 마지기의 논
이것이 우리 집의
전 재산이요
생명선인 것을…….
상급학교에
못 가도 좋다.
동무들이 오 년 뒤
중학을 나올 때
나는 한 사람의 농군이 되어
다섯 식구의
기둥이 돼야지.
-<희망> 부분
위의 시의 바탕에 깔린 것도 한결같이 사회 계몽 의식이다. <산 산 백두산>이 우리의 얼을 강조한 것이라면 <희망>은 현실적인 방향을 다루고 있다. 앞의 시는 독특한 형식에 의해 단단한 맛을 풍기고 있고, 뒤의 시는 후덕스러운 메시지에 의해 은근한 맛을 풍기고 있다.
당시의 사회 환경으로 보아 학벌을 중시하여 상급 학교 진학을 권하였을 만한데, 농촌으로 가라고 권한 것은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된다. 직업의 존귀성에 대한 교훈을 바탕으로 자신 있게 농촌생활을 권하였던 것은 당시의 형편으로 보아 농촌 재건이 가장 시급했던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이 시기에 씌어진 작품들 모두가 계몽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은 물론 아니다.
키다리 수숫대가
노오란 바람에 흔들릴 때면
바다 같은 푸른 하늘에
하이얀 구름이 흘러갑니다.
-가운데 부분 줄임-
스르륵 스륵 고추잠자리
떼를 지어 날아들 가면
언덕 너머 오두막집에서
고까 입고
자랑하러 외가 갔더니
외할머니
손뼉 치며 하도 반가워
오래간만이구나
안아 주시죠.
회사 갔다
돌아오시는 아버지 보고
오래간만이구나
절을 하니까
영문을
알지 못해 웃기만 하죠.
-<오래간만이다> 부분
앞의 <초가을 풍경>은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목가적으로 표현한데 비해, 뒤의 <오래간만이다>는 동심의 세계를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다.
이 무렵에 씌어진 그의 대부분 작품들이 사회 계몽적인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비해 <초가을 풍경>, <봄바람은>, <봄소식>, <산골학교> 등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고, <고사 시간>, <군인아저씨> 등은 시대적인 아픔을, <오래간만이다>, <새교실> 등은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형식면에서는 정형 동요가 자유 동시보다 단연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리듬을 살린 메시지 전달이 독자에게 더욱 쉽게 다가갈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6. 現實 克服의 苦惱와 意志
-제6집 『8월과 소년』의 세계-
제6집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에서 1958년까지의 비교적 긴 시기에 씌어진 작품들로 묶여져 있다.20)
이 시기는 6․25를 전후하여 좌우 이데올로기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인하여 상처는 깊어졌고, 그 상처는 고스란히 우리 민족의 가슴을 도려낸 시기였다. 전쟁의 상흔은 잠시 문학 활동을 멈추게 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작품을 냈다.
이 시기에 그는 수필과 성인 詩로 그러한 아픔을 노래하느라 아동문학 작품은 좀 적은 듯하다.21)
이 시기에 씌어진 작품들의 특징을 한 마디로 규정지을 수는 없으나 큰 범주로 본다면, 새로움에 대한 준비를 위한 고뇌와 의지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을 차면 담 넘어 논에 빠지고
달음박질 하다가는 이마도 받던
운동장아 잘 있거라 우리는 간다.
여름에는 물도 귀해 목이 마르고
풀풀 나는 먼지 속에 언 손을 부빈
가교사야 잘 있거라 우리는 간다.
-<잘 있거라 가교사> 전문
이 시에는 지금까지 몸담아왔던 가교사를 벗어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낡은 가교사는 고정화된 틀 혹은 사회 제도로 상징적인 해석을 할 수도 있다. 그 까닭은 정이 들기는 하였지만 다소 불편했던 가교사에 대해 미련 없이 이별을 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내세우는 ‘舊穀을 벗는다’는 말은 형식적인 낡은 껍질은 물론 정신적인 새로운 모색을 포함하는 말로 쓰인다. 형식적인 면에서의 쇄신은 바로 내용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뒤에 이어지는<푸른 하늘에>라는 작품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리웁던 본교사에
돌아온 아침
너도나도 싱글벙글
노래가 날고
인형같이 얌전하던
여학생까지
활개치며 달려가는
넓은 운동장
파수인양 강당 앞의
푸라타나스
사 년만에 놀랄 만치
자랐구나
게양탑의 태극기도
우리를 반겨
신명나게 춤을 춘다
푸른 하늘에
-<푸른 하늘에> 전문
이 시에는 새로운 교사에 돌아온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새로운 집, 새로운 교사는 곧 새로운 의욕을 뜻한다. 이는 그가 당시 학교를 경영하고 있었기에 더욱 감격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사회는 어지럽지만 다행히 6․25는 끝나고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움을 찾아 부지런히 일을 할 시기인 이 무렵의 그의 작품들도 이러한 새로움에의 의욕이 넘쳐나고 있다.
빈 도시락 끼고
참새도 제 집에 돌아가는
어스름 골목길 돌아들 가는데
대지에 황혼이 깃들면
나는야 간다.
그리운 배움터
-<직업소년의 노래 2. 구두닦이> 7연
푸른 하늘 날아가는
흰구름들도
내 가슴에
피어나는 희망 같구나
이 기쁨 이 감격
가슴에 안고
우리 형님 뒤를 따라
나도 가야지.
-<나도 중학생> 3연
이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는 당시 소년들의 한 모습과 새로운 희망에 찬 지은이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전쟁의 상처로 인해 몸과 마음이 거칠어졌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의지는 단순한 의식의 표출로서가 아닌 철저한 고뇌와 의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절실하게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고뇌는 다음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다.
마음이
공연스레
설레일 때는
뒷산에 올라가서
바위에 기대
가슴을 떡 벌리고
큰 숨을 쉬고 오물조물
조물대는
시가를 본다.
-가운데 부분 줄임-
천만 년
8월의 푸른 하늘을
지긋이 팔장끼고
우러러 본다.
-<8월과 소년> 부분
이 시기에 지은이는 산 위에 올라가 오물조물 조물대는 시가를 내려다보고자 하는 시각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이 세상을 보다 더 넓게 보려는 고뇌인 것이다.
그리하여 지은이는 마침내 이 8월의 하늘이 천만 년 전의 하늘임을 깨닫는 것이다. 즉 천만 년 전의 하늘을 지금 이 순간에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한 인식은 나아가 천만 년 후의 미래도 동시에 조망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이러한 깨달음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절망도 결국은 극복된 다는 깨달음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산을 내려와 거친 현실 속에 섞인다. 그리고는 낙망을 극복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다음 시에서 이러한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내일 아침 신문이
나왔습니다.
내일 아침 신문이
나왔습니다.
서산에
붉게 타는 저녁노을도
내가 지닌
희망처럼 찬란합니다.
-가운데 부분 줄임-
내일을 굳게 믿는 소년이기에
샛별같이 빛납니다.
두 눈동자는
-아래 줄임-
-<소년> 부분
이 작품은 신문팔이하는 지은이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쓴 시이다. 현실을 극복하려는 굳은 의지가 전편에 걸쳐 강렬하게 내비쳐지고 있다.
내일 아침 신문이/ 나왔습니다.
내일 아침 신문이/ 나왔습니다.
반복되는 이 단순한 말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현실이 아무리 거칠더라도 우리는 살아가야 할 내일이 있음을 잔잔하게, 그러면서도 강인하게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시어를 거듭 사용함으로 하여 강조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고 있다. 이 시기의 그의 작품은 현실에의 고통을 도리어 발전의 계기로 삼기 위한 고뇌와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7. 自然에의 同化
-제7집 『산바람』의 세계-
제7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1959년부터 1968년 사이에 씌어진 것들이다. 이 작품들이 씌어진 때의 그의 나이는 53세에서 62세 사이이다. 그래서인지 매우 원숙한 경지에서 작품들을 생산한 것으로 보인다.
도련님
그 동안에
많이 컸구려
산을 넘고
바다 건너
구름을 타고
옛집이
그리워서
또 왔습니다.
사이좋게
사이좋게
같이 놀자오.
-<제비>앞부분
이 작품 속의 제비는 지은이 자신일지 모른다. 산을 넘고 바다 건너온 것은 그가 이제까지 겪어온 풍상들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 동안 그는 굴곡 많은 삶을 살아왔다. 이제는 거친 세파를 좀 잊고 편안히 살고 싶은 감정의 일면이 이 시에 나타나 있다. 그러한 갈망은 후반부에 더욱 강하게 나타나 있다.
살구꽃이/ 구름처럼/ 곱게 핀 대낮//
큰 누나는/ 저 산 너머/ 시집을 갔다.//
이러한 상황은 평안하기는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이 그리움은 고독감과 이어진다. 자연에 동화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은 다음 시에서도 잘 나타난다.
오늘은 입춘
겨울이 가는데
봄은 오는데
지난 여름
몹시 가문 탓일까?
아직 보리고개는 멀었는데
벌써부터
굶는 이웃이 늘어만 가니.
-가운데 부분 줄임-
유리창 밖은
아직 찬바람이
앙상한 포프라 가지를 울리고 가도
-<한 줌 쌀> 부분
어김없이 다가오는 계절의 변화를 그는 거역하지 않는다. 다만 그 변화에 따르는 이웃의 고통에 가슴 아파하고 있다. 아직 포프라에는 싹도 나지 않았는데 벌써 식량이 떨어진 이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그는 이러한 것을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한 줌씩 쌀을 모았다. 자신도 모았지만 이웃에게도 모을 것을 그냥 권유하여 굶는 이웃을 도와주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순리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실천하였다. 자연을 보는 그의 시각은 넉넉함에 차 있다.
송이 송이 꽃송이
송이 송이 피었네
방울 방울 물방울
방울 방울 빛나네
나비 나비 범나비
나비 나비 오너라
-<송이 송이 꽃송이> 전문
이 작품에 나타난 無技巧의 技巧 또한 자연스럽다. 가볍고 명랑한 느낌이 드는 말을 반복하여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있다. 무엇인가 메시지를 많이 담아야겠다는 욕심에서 벗어난 명쾌한 작품이다. 이와 같은 계열의 무기교 작품으로 또 다음 <밉생이>를 들 수 있다.
“영아 영아
앞집 할머니가
너 보고
뭐라시지?”
“그놈 참
밉생이대이.”
하지 뭐!
-<밉생이> 전문
이 작품은 단 두 마디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군더더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면서도 귀여운 아기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밉생이’란 ‘밉상이’와 같은 말로서 ‘미운 얼굴이나 행동’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렇지만 ‘밉상’이란 말은 역설적으로 고운 얼굴, 귀여운 얼굴이라는 뜻이다.22)
이 작품은 가장 자연적인 인간의 한 모습을 아름답게 떠올렸다. 절제된 몇 마디로 자연스럽게 인간의 모습을 산뜻하게 표출시킨 것이다.
이처럼 그는 자연화된 인간의 모습 뿐 아니라 자연 그 자체에 대해서도 깊은 정을 가지고 묘사하고 있다. 그의 수필에는 산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많으며 또한 아름답다. 또한 동시에도 산을 노래한 것이 매우 많다.23)
하늘에 쭉쭉 뻗은
전나무 숲사이를
페난트 휘날리며
캠핑대가 굽이친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싱싱한 그 차림새
-<산바람>의 ‘전나무’ 전문24)
이 시에는 산을 즐기는 지은이의 여유 있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시는 후기로 올수록 자연에 깊은 정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그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제 그는 자연에 귀의한 경지의 시각으로 사물을 그려내고 있다.
8. 깊은 사랑과 觀照
-제8집 『철이의 세계 1주 여행』의 세계-
1973년 8월 그는 국제도서관협회 한국 대표 자격으로 프랑스 그래노블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 그는 약 50여 편의 동시, 동요를 썼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그가 1973년 11월, 67세의 일기로 타계하자 유작이 되었다.
그의 별세를 애도하는 大邱兒童文學會가 중심이 되어 엮은 『滄洲選集』(1974)에 그의 유고가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에는 耳順의 경지에서 바라본 바깥 세계를 통해 더욱 깊어진 조국애와 관조하는 자연관을 느낄 수 있다.
에스키모와 흰 곰이 산다.
알라스카도
우리가 사는 땅과 별로
다른 것이 없다.
사람도 다니고
비행기도 뜨고
-가운데 부분 줄임-
세계는 좁아졌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북극> 부분
이 작품은 그가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는 바깥세상 즉 ‘북극’에 대한 것이다. 호들갑스럽지 않고 차분하다. 당시에는 해외여행이 몹시 힘든 때였다. 따라서 약간 과장되기가 쉬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담담하게 첫 소개를 하고 있다.
이는 그의 천성을 짐작할 수 있게도 해준다. 그리고 모르긴 해도 이는 문화적인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당시의 어린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지 않으려는 그의 깊은 배려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는 또한 어린 독자들에게 조국에 대한 긍지를 심어주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남쪽 불란서 그레노불에서
며칠 유하는 동안
테니스 라켓과 운동화를
사 오신 두 아저씨
모양도 근사하고
“잘 만들었는데”
“아니, 이거 한국제 아냐?”
무릎을 치며 기뻐했습니다.
나도 한몫 끼었습니다.
-<운동화> 부분
치마를 두른 사람
머리에 수건을 감은 사람
나무 구두를 신은 사람
먹같이 검은 사람
-가운데 부분 줄임-
옷 색깔도
오렌지 빨강 노랑 청포도색
이 많은 사람들도 한결같이
가족을 가지고 있겠지
조국과 함께.
-<조국> 부분
이 두 작품은 조국에의 소속감을 다시 한번 깨우쳐 주고, 자신의 조국을 소중히 해야겠다는 메시지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이러한 체험을 어린이들에게 전하려는 그의 의도에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어린이에 대한, 그리고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도 점점 관조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소리 없이 인사를 하고
소리 없이 걸음을 걷는다
-가운데 부분 줄임-
소리 없이 꽃은 피고
소리 없이 나무는 자라
소리 없이 세월은 흐르고
소리 없이 인생은 자란다
소리 없이 소리 없이
-<소리 없이> 부분
태고적부터 청청 하늘을 이고
수만 년 엄연히 섰건만
사람도 짐승도 본 적이 없다.
-가운데 부분 줄임-
그리움을 심는다
사랑을 심는다
-<만년설> 부분
이러한 관조의 세계는 더욱 깊은 자연에의 귀의로 이어진다. 국제회의를 다녀온 이후, 그의 작품은 더욱 자연에의 귀의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마음이 허전하면
산을 간다
바위를 안고
수목을 거느리고
못 새 짐승을 기르되
오직 묵묵히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너는
바다의 어머니
우주의 세포
-가운데 부분 줄임-
마음이 허전하면
산을 간다.
-<산> 부분
틈만 있으면 꽃을 심는다
틈을 만들어 꽃을 가꾼다
-가운데 부분 줄임-
꽃은 가족이고 보람이다.
꽃은 사랑이며 종교다
-<꽃은> 부분
생각해 본다
천 년 뒤를
수 년 뒤도 해는 뜨고, 바람은 불고,
어떤 건물이 설까, 꽃은 피고
나무는 자라겠지.
사람이 어떤 옷을 입고
더욱이 어떤 사람이 뭣을 먹으며
첩첩 산중의 절간처럼
저 벌판은 그대로 남을까?
저 나무도 남고
저 꽃들도 피고 있을까?
- <천 년 뒤> 전문
그는 더욱 원숙한 경지로 자연에 귀의하며 관조의 세계를 작품으로 그려내고 있다.
Ⅲ. 結 論
1. 作品의 形式과 內容
먼저 형식면에서는 대부분 동요로서 정형율을 유지하고 있으나 더러 외형률을 벗어나 자유 동시를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시대적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 즉 192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사이에는 전래동요에서 창작동요로, 그리고 그 이후에는 창작동요에서 자유동시로 옮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당시의 우리나라 아동문단의 보편적인 흐름이기도 하였다.
그의 동요 밑바탕에는 전통적인 7.5조 중심의 기본 율조가 깔려있고 이러한 기본 율조에 한국적인 정서를 담으려고 애썼다.
내용면으로 보면 초기에는 비교적 센티멘탈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초기 작품에서는 어린이와 시대적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각을 가짐으로 해서 대체로 감상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그의 센티메탈은 당시의 사회 형편과 자신의 개인적 형편으로 미루어 볼 때, 그로 하여금 문학의 길로 이끌게 한 동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930년 전후에는 이러한 세티멘탈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여러 곳에서 보였다.25)
1950년대에는 사회 계몽 의식이 강한 작품으로 사회 질서와 민족의 혼을 바로 잡으려고 하였다. 이 시기의 작품은 강한 사회 개혁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60년대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자연에 동화되어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함을 강조한 작품이 많이 보이고, 1970년대에는 확고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민족애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자연에의 귀의를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의 말년의 작품은 더욱 깊은 사랑과 관조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사진 5. 이응창 시비(대구원화여자고등학교 소재) |
2. 文化的 業績
초창기의 한국 아동문학은 문화 운동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러한 운동은 해방 후에 순수 아동문학 작품 활동으로 이어지는 토양이 되었다. 이러한 문화 운동적 활동은 표면적인 명성이나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일이 아니며, 문학 활동이 바르게 서기 위해서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라는 점에서 작품 활동과 병행하는 가치를 가진다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운동은 지금도 많이 전개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이다.
그는 詩誌《竹筍》(1946) 동인으로 문학 창작 및 문화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大邱兒童文學會의 창설, 창주문학상 제정 등 아동문학 발전에 끼친 공로는 대구아동문학사 나아가 한국아동문학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사진 6. 대구아동문학회 회원 일동 |
大邱兒童文學會는 1957년 그가 재직하고 있던 大邱源花女子高等學校에서 창립총회를 가진 이래 지금까지 반세기를 이어오는 기초를 놓았다. 이러한 문화 운동 및 문학적 공로로 그는 1971년 경북문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는 창주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창주문학상도 어느덧 35회를 맞이하였고 이 등용문을 통해 문단에 나와 활동하고 있는 아동문학 작가들은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참고 문헌
李應昌, 동요집 <외갓길>. 필사원본, 1945.
李應昌, 시집 <길>. 대구 일심사, 1966.
李應昌, 동시집 <고추잠자리>. 서울 배영사, 1968.
李應昌, 수상록 <가꾸는 마음>. 대구문화출판사, 1969.
李應昌, 수상록 <기다리는 마음>. 대구 일심사, 1973.
李應昌, 유고집 <滄洲選集>. 대구 일심사, 1974.
李在徹, <韓國現代兒童文學史>. 서울 일지사, 1978.
李在徹, <韓國兒童文學作家論>. 서울 개문사, 1988.
대구아동문학회, <달뜨는 마을>. 회원 연간 작품집 제1호, 1958.
대구아동문학회, <꽃과 언덕>. 회원 연간 작품집 제2호, 1959.
대구아동문학회, <오손도손>. 회원 연간 작품집 제3호, 1966.
대구아동문학회, <나무는 자라서>. 회원 연간 작품집 제4호, 1967.
대구아동문학회, <개나리 문고>. 회원 연간 작품집 제5-9호, 1968.
대구아동문학회, <도라지 문고>. 회원 연간 작품집 제10-14호, 1969.
대구아동문학회, <동시와 동화>. 회원 연간 작품집 제15호, 1972.
1)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2) 할아버지는 李寬俊, 어머니는 楊允祚.
3) 이재철(1988), 한국아동문학작가론, 서울 : 개문사. 152쪽.
4) 대구아동문학회 연간집 제32호(1990), 영그는 아이들. 서울 : 아동문예사. 172쪽
5) 전대웅(1974), 이응창론(창주선집), 대구 : 일심사. 144-155쪽.
6) 이응창(1968), 고추잠자리. 서울 : 배영사, 후기에서 일부 발췌.
7) 이응창(1970), 70년대의 역점, 대구일보사 탐방기사.
8) 이재철(1978), 한국현대아동문학사, 일지사.
9) 김성도(1967), 회장님께 드리는 마음의 꽃다발. 대구아동문학회 연간집 제4호.
10) 창주문학상운영위원회가 밝힌 창주문학상 제정 취지 전문. 창주문학상은 동화, 동시 부문에서 신인상을 뽑는데 상금은 당해 년도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 상금과 동일하게 지급하고 있다. 상금 전액은 유족이 희사하고, 수상자 선정은 대구아동문학회가 주관하고 있다.
11) 매년 5명 이상의 심사위원에 의해 수상자가 결정되며 시상식은 원화여자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린다. 2007년에도 10월 10일 오후 2시에 원화여고 강당에서 시상식이 열렸으며 2007년 심사위원으로는 동화부문에 정휘창, 이순우, 김선주, 김상삼이었고, 동시 부문에서는 하청호, 김몽선이었다.
12) 그의 동시집 곳곳에 창작 년도가 표시되어 있다. 그 경향을 전체적으로 미루어 볼 때, 창작 년도 순으로 작품을 수록한 것으로 보인다.
13) 精神分析學에서 쓰이는 말로 지나간 때를 동경하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固着은 리비도가 以前의 상태에서 떠나지 못하고 굳어진 상태를 말하고, 退行은 일단 발달한 것이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以前의 안락했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심리 상황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현실에 잘 적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14) 전대웅, 앞의 책. 145쪽.
15) 尹凡牟(1983), 現代美術百年. 한국일보사. 金龍祚 항목 참조.
16) 徐相日(1887-1962)은 李應昌의 아버지 李始榮과 같이 항일 독립 운동을 하던 동지였다. 李應昌의 나이 열셋일 대 아버지인 李始榮이 만주에서 숨을 거두자 徐相日은 친구의 아들인 李應昌을 거두어 나중에 사위로 맞는다. 조양회관은 徐相日이 중심이 되어 건립한 항일 구국 운동을 위한 회관이며, 지금은 대구 망우당공원 안에 이전되어 있다.
17) 전대웅, 앞의 책. 148쪽.
18) 전대웅, 앞의 책. 149쪽.
19) 전대웅, 앞의 책. 151쪽.
20) 배영사에서 펴낸 ‘고추 잠자리’ 제6편에는 1967년에 씌어진 <나도 중학생>과 1959년에 씌어진 <성묘>가 함게 수록되어 있으나, 제6편의 작품 대부분이 1958년 이전의 작품이다. 그리고 제7편에는 1959년에 씌어진 작품이 중심이 되고 있으므로 제6집의 시대적 구분을 1958년 가지로 하였다.
21) 1966년 10월에 성인을 독자로 하는 시집 ‘길’을 펴낸다. 이 시집에는 그가 창작한 많은 시 가운데에 67편이 선정되어 있다. 이 시들은 대부분 전쟁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1950-1960년 경에 씌어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아동문학 작품보다는 성인 시문학 작품에 더 열정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22) 민간 속설에 따르면 어린이의 얼굴이 잘 생기면 귀신이 시기하여 단명한다고 한다. 그래서 귀여운 얼굴일수록 일부러 ‘밉상’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23) 수상집 ‘가꾸는 마음’(1969)에는 <나는 산을 좋아 합니다>, <가족 하이킹>, <동심과 산과>, <덕유산 마루에서>, <이른 봄, 산에 오르다>, <산골 두메>, <산맥은 부른다>, <산에의 사모>, <산바람>, <산 노래> 등 많은 수필, 동요, 성인시가 실려 있고, 수상집 ‘기다리는 마음’(1973)에도 <산 Ⅱ>, <산을 간다> 등의 작품이 실려 있으며, ‘기다리는 마음’의 저자 근영에는 등산복 차림으로 하늘을 우러러 보는 모습이 실려 있다.
24) ‘고추 잠자리’(1968) 안에는 <산바람>이라는 큰제목 아래 전나무, 달걀밥, 파도처럼 등 세 편이 실려 있고, 수상집 ‘가꾸는 마음’에는 <산바람>이라는 큰제목 아래 전나무, 모과나무, 식사준비, 식사, 캠프파이어, 꿈나라, 산정에서, 바위 밑에서는, 웃음소리는, 휴식, 파리떼, 이별의 노래 등 모두 열두 편의 동시가 실려 있다.
25) 이재철, 앞의 책. 157쪽.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정리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