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는 라디오 심야방송을 청소년들이 많이 듣던 시절이다. 73년 초등학교 6학년때 급우가 0시의 다이알의 사회자가 윤형주에서 이장희로 바뀐다는 이야기를 했을때 그런게 있나보구나 하고 넘어갔다.75년도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저녁에 공부하면서 책읽으면서 심야방송을 조금씩 듣기 시작했다.
당시는 라디오도 귀했던 시절이었다. 내가 살던 당시 영등포구 염창동 살던 집에 60년대 말에 도둑이 2번 들어와 물건을 훔쳤는데 한개는 세수대야였고 한개는 라디오였다. 즉 라디오도 귀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라디오의 심야방송은 MBC의 차인태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 TBC 황인용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밤을 잊은 그대에게, DBS 동아 방송 0시의 다이알, CBS의 꿈과 음악 사이에 라는 프로가 경쟁적으로 방송했었고 방송 중간에 나오는 선전중 종로에 있던 입시학원광고가 많았다. CBS는 방송중 '영어 한마디만' 이란 코너를 넣어 원어민이 한문장씩 영어를 가르치는 시간을 넣었었다.
그분들이 틀어주는 음악은 시청자 엽서를 받고 많이 신청한 음악을 틀어주었고 청취자들은 엽서를 보낸후 자기 이름이 방송에 나오는걸 기다리던 시절이었다.
진행은 DJ가 음악을 틀어주면서 중간중간 사회 유명인사나 학자등을 초대해서 유익한 대화를 나누면서 청취자들에게 들려주고 중간 중간 음악을 틀어주었다.
주말에는 엽서신청자 통계를 내어 1위에서 10워까지 순위를 매겨 틀어주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1976년 12월에서 1977년 1월 넘어가는 시절 순위를 발표하며 음악을 틀어주었는데 당시 1위가 하남석의 밤에 떠난 여인이 된적이 있었고, 폴랑카의 파파. 레인보우의 Temple of the kings도 유행했던 기억이 있다 77년도엔 레오세이의 When I need you, 데비 분의 You light up my life가 한국가요로는 김세화의 눈물로 쓴 편지가 1위를 했던 기억이 난다.
잊지 못하는 방송은 1976년 11월에 실시한 전국 고교 예비고사 시험이 있었는데12월 어느날 발표를 하는날이었다. 황인용아나운서가 11시부터 당시 밤을 잊은 그대에게 시그널 음악인 시바의 여왕을 틀어준 다음 그방송 끝까지 예비고사 합격하지 못한 학생을 위한 위로의 방송을 계속 진행하였다. 당시 난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고교3학년 또는 재수생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방송이었고 내용은 너무 낙담하지 말고 용기를 잃지 말라는 방송을 하며 계속 음악을 틀어주었다. 당시 합격자 발표날 이름이 없는 학생은 집에 안들어오거나 늦게 들어오느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 한국사회의 학업열을 볼수 있었다.
한번은 음악을 틀어놓고 잠을 자는데 황아나운서가 이런 멘트를 했다. '이 음악 들으시면서 잠을 드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섭섭하지만요' 물론 그음악 들으면서 잠이 든거 같다.
지금은 디지털 오디오를 사용하지만 명품 오디오는 아날로그식 오디오 즉 진공관식 오디오가 좋은 소리를 낸다고 한다.
독일이 2차대전 패망 직전 히틀러의 지시에 의해 진공관식 스피커 50개를 당시 장인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 스피커가 현존하는 가장 좋은 소리를 내는 스피커인데 이중 한개가 한국에 들어와 경매를 했는데 황인용씨가 경매에 참여해 사려고 했는데 액수를 다른 사람이 크게 비딩하여 못샀고 얼마후 1940년대 미국에서 제작된 역시 진공관식 스피커 경매에 참여하여 엄청난 금액으로 그 스피커를 샀다고 한다. 그 스피커가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값비싼 스피커라고 국내 최고 오디오 전문가인 지인으로 부터 들을수 있었다.난 그 스피커소리를 듣고 싶어 그분이 운영하는 경기도 파주 헤이리 마을에 있는 음악 감상실을 몇년전 한국 방문시 다녀왔다. 그곳에 있는 스피커는 보기만해도 명품임을 느낄수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의 시그널 음악은 1966년 오스트리아 유로비젼 대회 수상음악이라고 한다. 이음악도 들은면 옛 추억이 떠오른다.
학창시절 라디오로 주로 듣던 음악을 들으면 빛바랜 오래된 흑백사진을 보는듯, 피곤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비젼을 갖고 살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더 많은 좋은 추억을 build하고 싶게 하는 용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