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를 오래 해서 그런지 마른 반찬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특히 마른 멸치는 쉽게 상하지도 않고, 칼슘도 풍부하고, 맛도 좋아서 저처럼 게으른 사람에게 딱 맞는 진미예요. 게다가 육수를 우려낼 때 멸치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값도 싸지, 구하기도 쉽지, 건강에도 좋지요. 또 심심할 때 고추장에 찍어서 우물우물 씹다 보면, 굳이 몸에도 안 좋은 과자를 사 먹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멸치에 빠져들었습니다. 이제 어린 제 딸도 멸치를 간식 삼아 잘도 받아먹을 정도로 우리 가족의 멸치 사랑은 남다릅니다.
그런데, 이제 멸치를 맛있게 먹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로 플라스틱 때문입니다.
멸치는 작은 생선이라, 보통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멸치의 내장 속에 미세 플라스틱이 어마어마하게 모여 있습니다. 바닷물이 이미 심각하게 오염이 되어 멸치 같은 생선들이 플랑크톤 대신 영양가도 없는 플라스틱을 많이도 먹게 됩니다.
해안가에 떠밀려온 고래, 거북이 같은 바다 생물 사체의 위 속에서 플라스틱이 가득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봅니다. 먹지도 못할 걸 먹이로 알고 먹어대다가 결국 아사(餓死) 한 것입니다. 그 마지막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플라스틱을 먹이로 생각하고 자기 아기 새에게 토해주는 어미 새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식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건 짐승이든 사람이든 다 같을 텐데, 결국 독을 먹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 어미 새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그런데 그게 비단 어미 새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세상 곳곳이 플라스틱으로 넘쳐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플라스틱은 결국 우리, 사람들에게로 돌아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균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의 양은 일주일에 신용카드 1개 분량이라고 합니다. 이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굉장한 충격이었어요. 저는 플라스틱을 먹은 적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알고 보니 사 먹는 생수에서, 양치질할 때 치약에서, 세수할 때 세안제에서, 일회용 종이컵에서, 우려먹는 티백에서도 플라스틱이 나와 내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겁니다. 심각하죠. 심각해요.
독일의 문호 괴테는 “자연과 가까울수록 병은 멀어지고, 자연과 멀수록 병은 가까워진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이렇게 계속 가다간 인류 전체가 병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부터라도 플라스틱을 줄여나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미 많이 먹은 저는 이미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자라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거든요.
살펴보니 플라스틱 프리(Plastic Free) 제품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왕 사용해야 하는 제품들은 분해가 되는 걸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 물티슈 대신 종이 물티슈,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했습니다. 늘 메고 다니는 가방에도 장바구니용 에코백을 하나 넣었고요. 카페를 가거나 마트에서 저처럼 일회용품을 안 쓰려고 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때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분류 배출도 철저히 합니다. 박스에 있는 테이프나 스테이플러 심은 다 제거하고 내놓습니다. 플라스틱 용기는 설거지하면서 같이 세척해서 버립니다. 우유팩도 이제는 아주 잘 찢습니다.
물론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봤자 인도나 중국처럼 인구 많은 나라가 동참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고 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저 같은 사람이 조금씩이라도 모이고 모여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변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오늘도 묵묵히 플라스틱을 덜 소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깨끗한 멸치 좀 먹이고 싶어서요.
첫댓글
저도 멸치 없는 밥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인데
충격적입니다
저도 다시한번 각성하게 되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