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3장
어제 새벽에 우리가 말씀을 나누었던 것은...3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1. 은혜를 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의 성전..은혜의 보좌를 바라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은혜를 베푸사 죄악의 구덩이에서 건지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2. 이 구원의 하나님을 만난 요나는 자기의 남은 일생을 감사로 제사를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성도는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입니다..항상 감사하는 성도입니다.
3. 하나님이 물고기에게 명하사 요나를 다시 토하게 하심으로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줌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내 인생의 주권도 내게 있는 게 아니라...하나님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하나님이 내 인생이 주인으로 모셔 들이면...
우리의 믿음이 한 단계 성장하고 성숙하여..업 됩니다....
이것은 내가 주인이 되어 있는 사람은 절대 알수 없는 영적 비밀이요
하나님을 주인삼아 본 성도만이 알게 되는 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요나의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은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예표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어제 장권사님께서 찾아주신 마16:4 말씀도 동일하지만
뒤에 더 설명되어 있는 말씀이 마12:39-40입니다...잠시 찾아보고 말씀으로 돌아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이제 요나서 3장으로 돌아와서...3장의 핵심 주제는 [뜻을 돌이키신 하나님]에 있습니다.
이 주제에 따른 요절은 10절입니다...먼저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0.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저는 이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악한 길에서 돌아서기면 하시면
하나님께서도 뜻을 돌이키신다는 이 말씀...그리고 내리겠다고 선포한 재앙을 거두신다는
이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왜 우리는 뜻을 돌이키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믿음생활하시면서 아시겠지만...나는 나의 나됨을 너무 잘압니다.
자랑할 것도 없고...내 세울 것도 없는 죄인중에 죄인일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로 살고자 할 때에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심을 누리고 있기에...
오늘 3장의 요절이 내게는 너무 귀한 말씀이요..좋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좀더 자세한 은혜는 10절에 가서 나누기로 하고...
3장의 단락을 먼저 나누어 봅니다.
1단락 / 1-4 / 내가 네게 명한 바를 선포하라
2단락 / 5-9 / 회개하는 니느웨 백성들과 왕
3단락 /10 /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 하나님
전체 내용을 정리해보면...하나님께서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서 다시 토하게 하셔서...
다시 사는 은혜를 주시고...첫번째 단락에서.. 다시 사명을 주시는 겁니다.
그것이 2절에...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이 말씀으로 시작되고요..
이 사명을 다시 받은...요나가...사흘길이나 되는 니느웨에 들어가서 하루동안 선포를 합니다.
이 요나가 외치는 선포를 들은 니느웨 백성들이...
2단락에서는 왕으로부터 온 백성들과 심지어 동물들까지 금식시키며 회개에 동참합니다.
이러한 회개를 보신 하나님이 그들이 돌이키심을 기뻐하시며..
3단락에서는 용서하시고...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1단락 / 1-4 / 내가 네게 명한 바를 선포하라
1.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다시스로 도망치는 요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요나를 폭풍과...물고기를 동원하여...
결국에는 요나가 니느웨 땅에 도착하게 하신 겁니다...
이 말씀의 뜻을 깨닫고 나니...잠언 16:9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사람들마다 각자의 계획이 있고...가고 싶은 길을 가지만...
훗날에 뒤돌아보면 결국은 하나님의 이끄심대로 가게 되었음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명확하면...그 뜻에 순종하심이 가장 편한 길이요..가장 빠른 길이요..은혜의 길0
그렇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가게 하시는 길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간다면...육신의 고난과 고생을 당함은 말할 것도 없고
엄청난 시간만 낭비하고...결국은 인생을 헛수고로 산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지혜롭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명확하다면 그냥 순종이 최고입니다.
2절은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요나에게 사명을 주시는 겁니다.
2.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1:2과 3:2절이 동일구절입니다.
1:2절에..너는 일어나...라고 하신 하나님께서...3:2절에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차이점이 있다면..1:2절에 너는 일어나라 하심은...
자신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돌아오라고 외치고 또 외치고...
선포하고 또 선포했지만 자기 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함에 대한 낙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1:2절에 일어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낙심에 빠져 있을 때...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고 낙심한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한 일어남입니다.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가족중에 믿지 아니하는 가족이 있을 때...
그 가족이 하나님앞으로 나와 예수를 믿기를 복음을 전하고 또 전하시고
복음을 전하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기도하고 기도하시쟎아요...
그렇게 함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밥먹여주나...뭐 이런 식으로 나오면...정말 낙심되지요?
마찬가지로...저는 설교자요....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바로 깨닫는 성도를 볼 때는 말할 수 없는 힘이 납니다...기쁩니다. 감사합니다.
반면에 말씀을 왜곡되게 듣거나...아니면 자기가 또 해석을 해서...
내가 전한 뜻과는 반대로.. 받아들일 때는 정말 힘이 빠지고 낙심되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이런 경우에 제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 헤어나오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기도하는 가운데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해도...서기관과 바리새인들...정통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
심지어 제자들까지도...말씀을 말씀대로...바로 듣지 않았다...이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러니까...하나님의 아들이 전하는데도 자기 듣고 싶은대로 듣고...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대로 해석하는데...갑자기...내가 하나님의 아들도 아닌데...당연하구나...
거기다 선지서를 읽어보시면...모든 선지자들이 돌아오라고 하지만...
남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 듣습니다...정말 안듣습니다..그러니까 선지자들도 낙심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렘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그의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이렇게 1:2절에 일어나라는 말씀은 복음을 전하다 낙심한 자리에 빠졌을 때..
그 낙심한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일어남이라면....
두 번째...오늘 3:2절의 일어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자리..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자리
그래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아니하고...다른 자리에 있는 요나에게...
일어나 돌이켜...하나님의 말씀의 자리로...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돌아오라는 일어남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두 가지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1)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다가 낙심한 자리에서 일어나야하고
2)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다른 자리에 앉았다면...일어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믿음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일어남이 있음을 믿으시고...항상 두 일어남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2.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자...하나님께서 다시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내가 네게 명한 바를 선포하라고 합니다.
제가 요나의 입장이라면...참으로 난감했을 겁니다....그것이 뭡니까? 언어적 차이입니다.
요나의 입장에서는 내가 내 민족에게 내 민족의 언어로 전해도 자기 백성이 알아듣지 못하는데
자기 민족도 아닌...다른 민족이지요? 다른 민족이니 언어가 다르지요?
언어도 다른 이방민족인...니느웨 사람들에게...히브리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
그들이 과연 언어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내 말을 알아 들을 것인가 알아듣지 못할 것인가?
알아 듣는다고 할지라도...그들이 내 말을 듣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것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인가?
이런 저런 여러 가지가 궁금했을 것입니다.
이런 궁금증을 가진 선지자가 있었습니다...그가 에스겔입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에스겔에게
에스겔 3:1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선지자의 사명은 듣든지 아니 듣든지...그것 상관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들이 돌이키고 안돌이키고도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단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니...이제 가서 그 하나님의 말씀만 정확히 전달하라는 겁니다.
이는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우리는 씨를 뿌리는 자입니다.
씨를 뿌리면서 날까 안날까? 나서 자랄까 안자랄까? 자라도 좋은 열매가 될까 안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이 사람은 이래서 전도 못하고...저 사람은 저래서 전도 못합니다.
그러다보니...전도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겁니다...
듣고 안듣고...믿고 안믿고는...열매가 되고 안되고는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듣거나 안듣거나 전하는 사명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요나가 3-4절에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1)창7:4 노아 대 홍수 때 사십 주야 동안 비가 내렸다.
2)창8:6 홍수후 40일이 지난 후 까마귀 내보냄
3)출3: 모세는 애굽에서 왕자로 사십년, 사막에서 사십년, 지도자로 광야에서 40년을 지냈다.
4)민13:25 열 두 정탐군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사십일 동안 정탐했으며,
5)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사십년간 방황하였다.
6)사울 왕과 다윗 왕, 그리고 솔로몬 왕은 각각 사십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7)삼상17장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은 사십일 동안 이스라엘에게 조롱했다.
8)왕상19:8 엘리야는 사십 주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9)겔4:6 유다족속을 위하여 40일 동안 우측으로 누워 있으라고 합니다.
10)마4:2 사십일 금식하신 후 시험
11)행1:3 또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시기 까지 사십일 동안 이 땅에 계셨다.
12)고후11:24 사십에 하나 감한 매.
그렇다면 이 40이라는 숫자...성경의 40이라는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이는 대부분...시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4는 땅의 수입니다...10은 만수...가득 찬 수...
4 곱하기 10은 40인데...40이 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하시되 이 땅에서 정하신 시험의 최대 수가 40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40일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입니다...
이 때가 되면...니느웨가 무너진다...심판과 멸망..영벌..
우리가 복음을 전 할 때 전해야 할 핵심은 이것이라는 겁니다..
믿음과 불신의 차이가...잘 살고 못살고의 차이도 있기는 하고...
건강하게 살고 건강하지 못하고의 차이도 있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차이는 복음을 믿으면...구원과 영생...
복음을 믿지 아니하면 심판과 영벌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