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순간이지만
오늘이 아들의 변리사 시험 발표일이다. 발표 한 시간 전부터 인터넷의 발표사이트를 열어놓고 몇 번씩 검색을 해 본다. 최종 시험을 치른 지난 4개월 전부터 지금까지 설마설마 하면서도 아들의 합격을 의심해 보지는 않았으나 가슴이 두근거려 우황청심원이라도 한 할 먹어둘 걸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9시 정각, 발표 페이지가 열리기 무섭게 아들의 주민번호와 이름을 쳐 넣고 확인 버튼을 눌렀다. 결과란에 올려진 ‘불합격’이란 글씨가 눈을 의심케 하는 순간 나는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망연히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만 응시했다.
문자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음을 듣고서 휴대폰을 여니
“아버지 죄송해요, 안됐습니다.”
라는 아들의 메시지였다. 평상시 같았으면 전화로 두런두런 얘기도 잘하던 녀석이 문자를 보낸 것을 보면 제 딴에도 큰 충격을 받고 애비에게 면목이 없어서일 것 같은데, 이런 때일수록 무슨 말이라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 풀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서 괜찮다며 위로를 해주고 싶은데도 내 목소리엔 울음기가 섞여 오히려 아들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꼴이 되고 말았다.
아들이 변리사가 되겠다며 잘 다니고 있던 대기업에 사표를 낸 것은 3년 전이었다. 작금의 상황으로 보아 회사에서 정년을 보장받기도 어려운 데다 시계 부속품처럼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직장인의 생리가 적성에 맞지를 않으니 자유로운 전문직으로 변신을 하겠다는 이유였다.
그때 벌써 아들에게는 자식이 있어 가장으로서 해야할 책무가 있고 또 국가고시에 도전을 했다가 잘못되면 10년씩이나 낭인 생활을 할 수도 있음을 보기도 듣기도 했던 터라 만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으나 나는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왜냐하면 내 고집으로 아들의 바람을 꺾어놓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애비의 뜻을 잘 따랐다. 공부도 꽤나 잘해서 서울의 유수한 대학엘 들어갔는데 전공이 적성에 맞지를 않으니 재수를 해서라도 의과대학으로 진학을 하고싶어 했다. 그러나 나는 합격의 보장도 없는 상태로 일 년이나 허투루 세월을 보내는 것 같아 반대를 했었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취업을 해서 나를 많이 기쁘게 했는데, 입사 후에도 일찍 두각을 나타내어 회사로부터 많은 수혜를 입었다. 5년간의 짧은 근무기간이었지만 남들이 평생 한 번 받기도 어려운 어학현지화교육을 필두로 대학원 진학까지 했으며 해외출장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미루어 회사의 핵심 요원으로 자리를 잡았거니 했었다.
그러나 아들이 대학 시절에 진로 변경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자주 토로했다는 얘기를 아내로부터 듣고서는 아들의 적성을 고려치 않고 내 고집대로 한 결과가 아들의 인생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내심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결국 나는
“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 되는 것이니까 네 처와 상의해서 하라”
라며 동의를 해주고 말았다.
아들이 고시 공부를 시작한 후 며느리가 고생을 많이 했다. 다달이 들어오던 월급이 끊기니 당장 생활비가 걱정이고 해서 며느리는 허리끈을 동여매어 지출을 최소화 하고 대학 때의 전공을 살려 수학 과외를 다시 시작했다. 다행히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돌아 단기간에 수험생을 많이 확보해서 생활에는 별 어려움이 없는 모양이나 두 돌을 갓 지난 어린 손자가 문제였다.
가까이에 산다면 아기를 돌봐 줄 수도 있고 아니면 남들처럼 아이를 데려와 얼마 동안이나마 키워 줄 수도 있겠지만 자식도 원하지를 않았고 나 역시 주위에서 손주를 데려와 키우느라 고생하는 또래들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아내의 건강을 핑계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으나 도우미의 손을 빌려야 하는 손자가 축은하기만 했다. 그래도 며느리는 요즘 엄마들과는 달리 모유를 먹여가며 엄마 노릇, 아내 노릇, 그리고 직업인으로서 활달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여간 고마운 게 아니디.
며느리의 내조로 아들은 열심히 공부에만 매진 했다. 일 년에 한 번씩만 주어지는 시험에서 실패를 하면 다음 해까지 흘려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아들은 두 해를 그렇게 보냈다. 국가고시라는 게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적잖이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저녁 무렵에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처음엔 충격이 커서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지금은 마음을 잘 추슬러서 담담한 상태라며 걱정을 말라면서도 응원해 주고 기대했던 가족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큰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더 노력해도 안 될 것 같으면 포기를 하는 게 맞겠지만 채워나가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고 그것을 채운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며 다시 한번 도전의 뜻을 밝힌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인생에서 일 년이란 시간이 짧은 것은 아니나 어쩌면 시간의 길이보다 삶의 질이나 방향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지난 시간 아들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아 일 년을 더 투자하게 되었지만 고지가 보이기에 좌절은 않을 것이다. 순간의 시련을 이겨내면 그 끝에는 그가 꿈꾸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이맘 때에는
“아버지, 합격했어요!”
하는 아들의 들뜬 목소리를 내 꼭 듣고야 말겠다.
Ps: 그 후 약속대로 아들은 변리사가 되었다. 아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