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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이돌핀 (Didorphine)5050 원문보기 글쓴이: 파라다이스
흑송의 귀농(귀촌) 및 전원생활 이야기 | | | 전원 & 귀농정보 |
2009.09.11 21:13 |
흑송의 귀농 및 전원생활 이야기
(2009.9.11)
저는 1955.2월에 전라북도 김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전교생이 6학급밖에 안되는 초등학교를 나와 김제에 있는 중학교에 시험을 보아 입학을 하였다.
충남 대전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졸업 후. 곧 바로 군대를 갔으며, 제대 후 운이 좋게도 대학교에 행정직원으로 취직을 하였고 결혼을 하여 아내와 두 아들을 두고서 한 직장에서 29년이란 긴 참으로 행복한 직장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45세가 되면서 항상 시골에 가서 생을 마감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되었고, 10년 후에는 반듯이 산과 계곡 및 뜰이 있는 곳으로 정착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지리산 종주산행을 수없이 다녔고, 최종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 지리산과 섬진강변을 귀농 정착지로 낙점하고는 년도 단계별 준비과정을 수립하였다.
급기야 2009.2.28. 29년 재직하였던 직장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이곳 지리산자락과 섬진강변에 전원마을(지리산반달곰송이마을-11세대)을 만들어가면서 퇴직 후에도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 살아가야 할 은퇴 후의 생과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일을 하고 노후의 얼마간의 생활비와 용돈을 스스로 조달하기 위하여 감 농장을 준비하였고, 본격적인 농부가 된지도 6개월 15일이 되어가고 있다.
[2008년 7월부터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전남 구례군 토지면(조선시대 양반가옥인 운조루가 있는 마을)을 매주 오가며 감 농사를 직접 짓고 수확하여 판매하기까지 너무나 바쁜 6개월을 보내면서 우리 인간들이 꼭 느끼고 알아야 할 자연(태양)이 주는 선물의 고마움이 이런 것 이로군아! 하면서 늘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곤 하였다
2008년도 감 수확량은 약 15,000Kg 정도가 되었다. 직장과 주변의 아는 사람들의 많은 도움으로 그리 어려지 않게 감을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은 품질(크기와당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한번 먹어본 사람들이 품질과 감의 당도가 좋다며 추가 주문을 하여 주었고 주위 분들을 소개도 해주어서 약 2,500만원(올해는 3,000만원 예상)정도의 매출도 올릴 수 있었다.]
귀농 후 2009년 3,4월은 감나무 전정작업, 5,6월 적뢰(감속아내기), 7,8월 적과 및 풀 관리룰 하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하면서 보람있게 보내고 있다.
이렇게 귀농을 하기까지는 10년의 준비기간을 가졌다. 우선 10년 전에 19년의 수원생활을 벗어나서 외곽지역인 화성군의 농촌마을로 이사를 하여 예비 귀농생활을 하였다
그 다음으로 농촌에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땅(터)과 귀농작물을 생각하고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저축과 은행권의 자금 대출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하나하나씩 단계적으로 계획을 수립하여 진행을 하다보니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비록 본격적인 귀농을 한지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농사에 대한 자신감과 시골생활이 몸에 베어가고 있어서 성공적으로 잘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다.
요즈음 귀농을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려는 많은 사람들이 농장을 찾거나 전화로 상담도 해오고 여행을 겸하면서 많이 찾아온다. 찾아온 예비 귀농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농(귀촌)에 대하여 다음 사항들로 공통적인 고민을 하는 것을 느꼈다.
1. 생계형 귀농 후에는 무엇으로 먹고 살아가며 소득은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
2. 땅은 어느 지역에서 구입하고, 그 과정과 작물 소요면적은 얼마정도?
3. 땅과 주택구입 자금은 얼마가 있어야 하며, 그 평당 가격은 얼마나 될까?
4. 귀농 후 시골사람들과의 마찰 또는 텃세는 없는가?
5. 귀농 후 실패를 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등으로 요약되는 것 같다.
이와 같이 귀농에 여러 가지 제약조건이 현실로 다가오기에 실행에 옮기려면 겁이나고, 특이나 별다른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꿈만 꾸다가 포기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땅을 어느 지역에 얼마나 싸게 구입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 여겨진다.
제가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가끔 멋진 승용차가 들어온다. 잠시 후 다가와 혹시 이 마을에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을 구하려고 한다며 물어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사실 시골 땅값은 도시 사람들이 올려놓고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제가 농촌에 귀농을 하여 생활하면서 제일 어려운 것은 일손이 부족함이다. 적뢰작업(감 속아내기)을 하기 위하여 일할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시골에는 일할 사람이 없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노령화되어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집의 일을 처리하기에도 연노하고 일손이 부족하다보니 남의 일을 도와주거나 품을 팔수가 없다.
도시에는 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시골의 일손부족은 어제 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자기 먹걸이 해결을 위한 소농이라면 가족끼리 일을 하여도 무방하겠으나 조금 규모가 크다면 귀농 전에 한번쯤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사항임을 최근에서야 깨닫고 있다.
최근에 와서야 생각해본 것인데 동호인 전원주택이 있듯이 뜻과 마음이 맞는 두,세 가족이 농지를 이웃(한 마을)에 같이 구입하여 서로 품앗이 형태로 일손을 돕고 외로움도 달래가며 살아가야 시너지효과도 내고 귀농도 성공할 듯싶다.
저의 감농장 규모는 2,100평(300여 그루)인데 혼자서 일을 하기에는 벅차서(지금까지 3인 인건비 지금) 농장을 조금 줄이기 위해 감 농장을 해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보기도 하면서 잘 버터 나가고 있다.
귀농에 대한 경험과 견해에 대하여 할 말을 많으나 지면상 어려워 아래 내용과 같이 정리해보고자 합니다.(이 글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어서 귀농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기시켜 주기 위하여 다른 곳에서 퍼온 글이다)
은퇴후 전원생활 - 철저한 준비ㆍ열린 마음이 관건
“시골에나 내려가서 살지”식 접근은 큰 오산
"최소한 텃밭 농사 가능할 정도의 준비 필요"
■"우리 마을로 오는 도시민들이 있다면 적극 환영합니다. 하지만 시골에 와서 두문불출하며 독불장군 식으로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역 주민과 어울려 살겠다는 마음자세만 있다면 큰 어려움 없이 시골에 정착할 수 있습니다."
"요즘엔 시골도 많이 달라졌다"면서 "전원생활 성공 여부는 본인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 합니다
■ "안되면 시골에 내려가서 살지", "텃밭이나 가꾸며 살고 싶다" 하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전원생활을 이런 식으로 가볍게 생각했다가는 큰 오산이다. 전문가나 귀촌ㆍ귀농 선배들이 실패하지 않는 전원생활의 비결로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철저한 준비와 지역주민과 더불어 살겠다는 공동체 의식. 특히 성공적인 귀촌에는 지역주민과의 원만한 관계, 협력, 유대가 관건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 경치만 즐기는 전원생활은 오래 못가 = 전북 진안군청에서 마을과 군청 사무를 담당하며 귀촌 희망자를 돕는 `간사장'을 맡고 있는 구자인(41) 씨는 최소한 텃밭농사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사전 준비를 강조한다.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04년 귀촌한 구씨는 "도시민의 성공적인 전원 정착에는 각자 맞는 방식이 있겠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텃밭농사가 연결고리가 돼야 한다"면서 "그래야만 수확의 기쁨, 보람, 재미도 찾고 건강도 돌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여유를 바탕으로 경치만 즐기는 전원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 구씨는 도시민들이 귀촌하기 전에 지속적으로 주말농장을 경험할 것을 권했다. 농촌으로 들어가는 것도 두렵지 않고 적응도 빠르기 때문이다.
■ 전원생활을 할 집과 땅을 구하는 데도 준비가 필요하다. "도시민들은 살던 아파트를 팔거나 전세금을 빼면 어느 정도 큰 돈이 되다보니 시골땅이나 집을 너무 쉽게 사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초기 투자가 과도하면 다른 곳으로 움직이기도, 되돌리기도 힘들다" 상당수의 귀촌 선배들이 무턱대고 집이나 땅을 사서 시골에 내려오기보다는 최소 1-2년 정도는 남의 땅을 임대하거나 전세로 살면서 경험도 쌓고 지역 물정을 익힌 다음 집과 땅을 정하라고 조언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남의 집을 빌릴 때는 가급적 전세보다 월세가 안전하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도 집주인이 보증금을 내줄 수 없을 때 다른 세입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 전원생활을 하기 전 영농교육이나 체험 과정 등 사전준비를 한 사람들은 농촌 이주후의 삶과 경제적인 성취도면에서 만족을 느끼는 반면 계획없이 귀농하거나 수동적인 사람들은 농촌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 사전준비 충분할수록 만족도 높아 = 특히 시골에 내려가 농사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생계형 귀농의 경우 사전 영농교육과 일정 기간의 실습이나 체험은 필수다. 유기농업이나 특용작물을 재배해 고소득을 올리는 농가도 있지만 철저한 사전 준비와 노력없이는 실현하기 어려운 극소수 농가의 `성공 스토리'일 뿐이라는 게 귀농 선배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농촌은 돈 별려고 오는 데가 아니며 돈 벌어 편하게 살려면 도시에서 그냥 사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 외환위기 때 철저한 준비 없이 이루어진 `IMF형 귀농'의 경우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는 게 농업 전문가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당시의 귀농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한 실태 조사에서는 56%가 "귀농은 실패한 선택", 62%가 "도시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들이 도시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바로 `낮은 소득'.
유명 호텔의 `잘나가는' 소믈리에를 그만 두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귀촌한 김명웅(38) 씨는 지역주민과의 융화가 시골생활에 빠르고 손쉽게 적응, 정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귀촌하기 전 전국의 유명하다는 농촌 마을을 둘러보는 등 3년 간의 준비 기간을 가졌다.
성적 제일주의의 도시 교육풍토 등이 싫어 가족의 행복을 위해 시골을 선택한 김씨는 작년 3월말 부산에서 강원도 화천군 동촌리의 산속호수마을로 귀촌했을 때 일부러 승용차를 가져가지 않았다. 그는 급한 용무 등이 생겼을 때 마을 주민의 차를 얻어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가까이 다가서자 마을주민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는 모습이 마을사람들에게 `빈한함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것.
◇ 배운다는 자세로 마을주민과 어울려야 = 중풍으로 오랫동안 투병중인 어머니와 함께 귀촌한 김씨는 시골생활 두 달도 채 안돼 `마을 사무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마을 사무장이란 농촌체험관광마을 사업의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관리 등을 전담하는 인력. 쉽게 말하면 시민사회단체의 간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마을 총무다. 그의 사무장 월급은 100만원. 마을 홈페이지 관리와 사무장 보조로 50만원을 받는 부인의 월급까지 합치면 소득이 150만원이다. 이 정도의 소득이면 시골에서 생활하는 데 경제적으로 전혀 어려움이 없다.
김씨는 "배운다는 자세로 마을의 고령자를 도와 같이 작물도 재배하고 농사 일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마을주민과 정보도 공유하고 빨리 융화될 수 있다"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도시민이 시골에 와 무작정 큰 비용이 들어가는 비닐 하우스를 시작해 낭패를 보는 것보다 여러모로 현명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전처럼 도시민들이 시골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반대로 마을 주민이 외지인을 무작정 배척하거나 반감을 갖는 경향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도시의 화이트칼라 은퇴자들이 건축비만 수억원이 들어가는 전원주택에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경치나 즐기고 생활한다면 지역주민들이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최근 외지인을 보는 농촌주민의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한국리서치가 2005년 10월 농어민 2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72.9%가 도시민의 농어촌 정주를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도시민이 농어촌으로 오면 부동산 가치가 높아질 뿐만 아니라 생활환경이 더 좋아지고 농어촌 지역에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반면 부동산 투기나 도시민과의 위화감 등을 염려해 도시민의 이주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농어촌 주민은 25.5%에 불과했다.
혹여 전남 구례군(지리산/섬진강변)지역으로 귀농/귀촌/전원생활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은 제게 문의해오시면 알고 있는데 까지 성심성의껏 상담해드리겠습니다.
전화 061-781-6022, 010-7376-6022
E-Mail : dkbae@skku.edu
흑송 배 동 규
네이버 지성아빠 카페에서 뫼셔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