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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과 한국 토착 문화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에 들어가면서……
욕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소위 ‘상스러운 말’ 이다. 이 상스러운 말은 ‘상놈스러운 말’ 즉, 기본적으로 교양 있는 문화인이고 지식인이어서 자신이 ‘상놈’ 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사용하지 않아야 할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 각층의 명사들 예를 들면, 정치인, 변호사, 의사, 연예인 등등 이른바 ‘있는’ 사람들조차도 욕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발표를 준비하는 우리 조차도 욕을 상용하는 것을 보면, 참 흥미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우리 나라 사람들의 욕 사용 빈도와 강도는 타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강력하다고 하는데, 예로부터 흰옷을 입고 효와 예를 중시하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한국의 이미지와 매우 상충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문화와 욕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는 한국의 욕 문화를 이해하고 나아가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하는 작은 발돋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론>
욕은 욕설의 줄임말로 그 사전적 의미는 '남을 저주하는 말, 남의 명예를 더럽히는 말' 로서, 사람들이 흔히 '욕설을 퍼붓다' 또는 ‘욕하다’ 는 '상대를 저주하는 말과 명예를 더럽히는 말을 마구 하다'로 상대의 정을 상하게 하는 행위를 뜻한다. 문화 연구자들은 욕에 대해 (1) 그 문화에서 금기시되어 있거나 현저하게 업신여겨지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 혹은 (2)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서 (3) 강렬한 감정이나 태도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것 등으로 정의 내리고 있다. 또한 다산 정약용은 <아언각비(雅言覺非)>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욕이란 부끄러움이고 굴욕이다. 우리나라의 풍속은 추악한 말로써 꾸짖는 것을 이름하여 욕(辱)이라고 한다” 고 정의하였다.
욕에는 행위로 표현되는 욕과 말로써 표현되는 욕이 있지만 욕도 사람간의 의사소통의 일부라는 것을 생각할 때, 언어로서 기능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때, 언어가 사회 구성원들간의 약속된 소통체계이며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어린 시절부터 쓰임이 발달된다는 측면을 고려해보면, 욕이라는 것도 사회적으로 학습된 하나의 약속체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온 모시오아투나 씨와 한국 청년 이구현씨가 서로 불쾌한 상황에 부딪혀 욕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분위기나 표정을 보고는 좋은 소리는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은 할 수 있지만, 둘은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욕의 사용은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그 말과 맥락을 이해한다는 것을 전제로 존재하며, 이것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심한 욕도 그 의미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욕을 공부해보는데 있어서, 그 욕들이 존재하는 한국의 사회 문화적인 특성을 따로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욕을 쓰는가? 언제 쓰는가? 왜 쓰는가? 욕을 들을 때는 기분이 어떠한가?
위의 질문에 대해서 ‘기분 나쁠 때, 화나서, 욕 들으면 기분 나쁘다’ 라고 만 답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사용하는 욕의 본질과 기능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욕의 사전적 의미와 기능적인 의도로만 욕을 쓰지는 않는다. 때로는 서로 죽일 듯이 욕을 주고 받기도 하고, 어떨 때는 욕을 하면서 서로 웃고 즐기기도 한다. 어떤 욕은 들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고 좋기까지 한 경우도 있고, 최근에는 인터넷 상에서 익명의 욕 한마디에 심한 상처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이토록 다양하게 나타나는 욕 쓰임의 상황과 욕을 하는 이유 그리고 그들의 심리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알아보도록 할 것이다.
<본론 >
1) 화자의 긍정적인 의도의 욕
욕을 통해 욕하는 사람은 자신의 분노를 제거 하여 심적인 안정을 가지게 되고, 몸의 순환을 도와 우울증을 낫게 하며, 심리적 열등감을 해소하는 기능을 한다. 한국문화에서만 있는 한(恨)과 원(怨)은 지방 특색에 맞춰 다양한 욕을 통해 승화 된다. ‘원’이라는 것은 남에게서 당한 억울함을 일컫는 것이고, ‘한’이란 것은 스스로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생기는 것이다. 이 특이한 한국의 정서를 해소하는 많은 방법 중에 하나가 욕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보면 사회적 계층 간의 위화감을 해소하여 심리적 거리를 가깝게 한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지위가 높거나, 학식이 풍부한 사람의 인간적인 면을 욕을 통해서 깨달을 수도 있다.
- 대통령도 욕을 먹는 시대 (이명박)
요즘 많은 매체를 통해서 음식점을 소개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욕 할머니가 나온다. 하다못해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이명박 각하에게까지 우리의 욕 할머니는 거침없이 욕을 내뱉는다. 그리고 그런 집은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찾아온다. 왜 이렇게 욕을 해 대는데도 사람들이 몰리는 것인가? 욕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저주하는 말 혹은 남의 명예를 더럽히는 말로 해석되어 있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분화하는 언어, 이른바 갈 데까지 간 파국의 경지가 욕이다. 따라서 욕의 본성은 반란, 파괴, 폭행, 예외, 소외, 일탈 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 욕은 세상에서 통제되고 억눌렸던 본능을 배설해 내려는 시도일 수 있다. 자유롭게 욕을 뱉어내다 보면 억제된 내면을 표출함으로써 일종의 '카타르시스'와 같은 통쾌함,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욕은 시, 소설, 연극은 물론 영화에까지 다양한 장르에 사용된다. 다시 돌아와서 좋은 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왜들 욕 할머니에 대해서 화내지 않고 단골이 되는 것인가. 물론 사전적 의미처럼 남에게 이롭지 못한 말의 의미로도 해석되지만 강한 정감표시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욕은 야누스적인 특징이 있어서 싸울 때도 쓰지만 가장 친한 사람과의 대화중에도 습관처럼 사용한다. 심한 수위만 넘지 않는다면 서로 웃으면서 정을 돈독히 하는 수단으로 활용 되는 것이 바로 욕이다.
①친한 사이끼리 농담처럼 하는 욕
동조현상과 내 집단 편애를 통해 욕의 친밀감을 높이는 기능을 설명할 수 있다. 같은 집단 내에서 비슷한 욕을 사용하는 경우 또는 특정 집단에 대해 똑같이 욕을 하는 경우 등은 내 집단을 통해 동질감을 확인함으로 해서 자기를 확인하려는 의도가 크다.
예시 영상) KBS 10대 욕에 중독되다.
②유머가 담긴 욕
혼잣말이나 자기비하적인 성질, 조소나 풍자를 할 때 쓰는 욕은 듣는 이나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정서와 분위기의 환기를 이끌어 낸다. 속마음을 공적인 자리에서 솔직하게 드러내며 욕을 하는 사람을 볼 경우에 분위기 환기와 다른 사람들도 가지고 있던 생각을 대신 들어 내줌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정신분석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인 금기를 공공연하게 깨뜨릴 때 웃길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욕설이 난무하는 것을 금기로 여기는데 모두가 보는 TV에서 욕이 나오게 되면 그 금기가 사회적으로 깨진 것이 된다. 이것은 추동과 관련이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가 사회에서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재수 없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과 싸우게 되거나 자신의 도덕관에 맞지 않기 때문에 자아나 초자아가 추동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그 프로그램에서 평소 자신이 재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과 비슷하거나 재수 없다고 생각할만한 사람이 나왔는데 상대방이 "재수 없어"라고 얘기해 주면 자신이 하지 못했던 일을 했기 때문에 쾌감을 느끼게 된다.
③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토속적인 욕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토속적인 욕으로는 지방색을 띠는 욕을 예로 들 수 있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긍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욕으로 표현함으로써 상대방과의 친밀감과 유대감을 형성시킬 수 있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심한 수위만 넘지 않는다면 서로 웃으면서 정을 돈독히 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게 바로 욕이다. 예전에 광주에서 욕쟁이 선발대회가 열린 적이 있다. 거기서 으뜸상을 탔던 욕은 "날강도를 찜 쪄서 안주 삼고, 화냥년을 경수 받아 술 빚어먹고, 피똥 싸고 죽을 남원사또 변학도와 사돈 해서 천하잡놈 변강쇠 같은 손주 볼 놈"이었다. 이런 욕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을 나쁘게 하기 보다는 편안함과 고향을 생각나게 만든다. 도시인들이 그들의 평소에 받는 대우와는 전혀 다른 욕 할머니에게 받는 천한 대우를 돈을 주면서까지 받는 이유는 바로 토속적인 옛날을 회상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④웃음이나 친한 표정, 행동을 동반하는 욕
상당히 나이 든 사람들이 친구끼리 주고받는 욕을 들어 보면 욕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욕을 통해서 친근감을 느끼고 욕에다 정을 실어 보내고 욕에 실려 오는 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유쾌한 욕도 대상과 공간이 제한되어 있다. 상대가 친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그 자리가 허물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처음 본 상대에게 욕을 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사람들이 오래된 친구를 찾는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겪는 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편하고 익숙하게 행동하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편한 관계 속에서 웃음이나 애정을 가지고 동성에게 욕을 하는 것은 욕을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정도로 서로의 신뢰와 편안함이 있다는 증거가 된다.
2) 화자의 부정적인 의도
아무래도 욕은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해대는 욕은 자신의 내면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긍정적인 약효가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욕은 타인에게 심각한 인격훼손과 여러 가지 손해를 끼치게 된다.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신체적인 활동으로 드러낸다. 울거나 몸부림을 치고 소리를 지른다. 신체는 아이들이 자신의 분노를 남에게 전달하고 배설하여 그것들을 감소시키는 수단인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에겐 그런 극단적인 분노 표출 방법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점차 분노를 표출하는 수단으로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그 언어는 분노가 낳은 공격성과 독기를 내포하게 되어 욕의 형태가 된 것이다. 통신에서의 언어 사용이 더 격렬해지고 욕이 난무하는 것은 사회에서 용인이 안 되는 욕을 가상세계에서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기재로 욕을 선택하게 된 것은 학습의 영향이 클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적인 통제 바깥에 있는 감정을 표출하려는 욕구는 선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이 나타내 보이는 주요한 표현 행위는 타고난 것이고 고유한 것이다. 그 행위는 개인적 학습의 결과가 아니다. 이 점을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행위는 대부분 학습이나 모방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서 아주 어릴 적부터 한 인간의 생애 내내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머물게 된다.
-다윈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중에서
욕의 기능과 영향을 아무리 미화하고 꾸민다고 할지라도 욕은 상대방에게 나의 감정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분노를 배설함으로써 흥분이나 분노를 감소시키고 그럼으로써 차후의 공격행위를 감소시킬 수 있다. 인간에게는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되갚아 주려는 보복심리가 있다. 그런데 받은 만큼이 아니라 그 보다 더 주려는데 문제가 있다. 질 수 없다는 심리가 이것을 더욱 부추기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대를 눌러 이기기 위해 상대가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숨겨진 약점을 찾아내 '까발리는'행동을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드러내고 싶지 않는 약점이 있는데 이것을 스티그마(stigma)라고 한다. 스티그마란 한 인간 개체가 지닌 온갖 부정적인 징표를 말한다. 이것은 육체적인 결함이 될 수도 있고 정신적인 결손이 될 수도 있다. 바로 이 스티그마가 공격의 대상이 된다.
3) 욕, 우리는 왜 쓰는 것일까?
①욕을 하는 정서, 심리, 문화
이제까지 우리는 욕이 사용되는 상황을 화자의 긍정적 또는 부정적 의도에 따라 분류해 보았다. 그렇다면, 좀더 구체적으로 사람들은 왜 욕을 쓰는지 그들의 욕을 하는 정서와 심리를 사회, 문화적인 측면과의 연장선상에서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
-내면의 노여움이나 짜증을 배출하는 카타르시스의 역할.
어린 아이는 세상이 만화나 동화에서 나오는 재미있고 아름다운 곳으로, 엄마의 보호 안에서 안락한 곳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살다 보면 산다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책에서 배운 것 같이 정의롭지도 않고, 훈훈한 마음씨 보다 냉철한 이성을 적응적이라고 하며, 선이 악을 이기지도 않으며, 사랑이 돈과 명예를 이기지도 못 할 때도 많은 게 세상이고 현실이다. 게다가 인생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 실망하고, 나에게 분노하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분노와 좌절감 노여움의 에너지는 개인의 내부에 쌓이게 된다. 이러한 부정적 에너지가 내부로 향하게 되고 외부로 배출되지 않을 때, 우울증, 정신분열증, 불안장애 등 우리가 소위 말 하는 정신병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욕은 ‘이런 망할 놈의 세상!’ ‘나쁜 놈, 죽일 놈!’ 하고 외치면서 내부로 향한 분노 에너지를 우리가 체내의 노폐물을 배설하듯, 외부로 배출해버리는 개인의 정신건강을 위한 일종의 책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말하는 리비도의 공격적/성적 충동에 의한 불안을 제거하는 방어 기제처럼 말이다.
-잘못된 언어 습관과 교육.
서론에서도 지적했듯이, 욕이 아무리 ‘상소리’ 이고 말 같지 않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욕은 자신이 맡고 있는 언어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언어는 사회 구성원들간에 정해진 의사소통 도구로서, 언어의 발달은 학습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언어는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방향성이나 개성이 잘 드러나며, 자꾸 반복해서 사용할 수록 그것은 화자의 특징적인 언어습관으로 굳어질 수 있다. 자, 그럼 욕의 습관화를 학습의 기제 중 고전적 조건 형성과 모방 학습의 과정을 통해 살펴 보자. 고전적 조건 형성은 강화 또는 처벌을 통해 어떤 행동의 강도나 빈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학습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또한 모방 학습은 관찰을 통해 실제로 강화나 처벌을 경험하지 않은 것도 학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욕 학습에 적용해보면, 예를 들어 평소 욕을 사용하지 않는 바른(?) 언동을 보이는 초등학교 5학년 이모군이 있었다. 이모군은 엄마가 욕하는 것은 나쁜 행동이라고 하셨기에 욕을 쓰지 않았지만, 친구들이 걸핏하면 된소리 거센소리의 욕설을 섞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왠지 어른이 된 것 같고 멋있어 보였다. 이군은 4학년 때까지 친구들이 자신의 나긋나긋한 말투를 놀리자 5학년에 올라와서는 그들을 따라 해보았다. 친구들은 예전에는 축구도 끼워주지 않고 같이 잘 안 놀더니만 욕도 쓰고 거친 말투를 사용하자, 대우가 달라지고 같은 남자아이로서 대접해주었다. 이군은 친구들의 반응이 너무 기분이 좋았고,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또 어머니가 못하게 하던 욕을 쓰니 왠지 모를 쾌감이 들었다. 이때, 이모군은 친구들의 욕 사용을 모방학습 하였고, 그 모방이 자신에게 자기 강화 와 또래집단으로부터의 정적 강화를 주었기 때문에 욕을 사용하는 그 행동의 강도와 빈도가 높아지게 된 것이다. 이모군의 예에서처럼 많은 아동들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욕을 학습하고 욕의 상용화가 이루어진다. 또한 욕의 학습에 이바지하는 영향요인으로서의 대중매체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2001년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 는 적나라한 욕설과 가학적인 폭력장면의 묘사 등으로 청소년들에게 여러 모방범죄를 일으켰으며, 욕설을 하고 폭력을 쓰는 것이 진정한 남자들의 세계인 것처럼 묘사하여 ‘조폭 영화’ 의 장을 열게 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개그맨 김구라의 욕 방송, 독설개그 등으로 직간접적인 욕설 사용이 마치 ‘쿨’하고 재치 있는 것으로만 포장되고 있는 경향이 보여지고 있기도 하다.
-남성들의 자기과시 혹은 사회적 지위 결정 역할
위의 이모군의 예에서도 보이듯이 남자들 사이에서는 욕설 사용이 남성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남성들은 친구들 간에도 일종의 위계질서가 확립되어 있어, 이를 테면 그룹의 리더가 확실히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리더인 사람은 욕설을 더 자주 쓰거나 강하게 쓰는 경향이 있고, 순한 어휘를 사용하는 남성은 그 위계 질서에서 하위를 차지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욕설 사용이 공격성의 표출이라고 본다면, 생물학적으로 동물의 세계에서도 더 강한 수컷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나 이런 경향은 군대에서 더 심하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군대야말로 실제로 위계 질서가 가장 중요시되고 그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욕의 미화 (욕 할머니, 유머, 대리만족)
욕이 내면의 분노와 스트레스를 외부로 표출하여 개인의 정신건강을 도모하고, 남성 사회에서 위계질서 확립을 해준다고 해서 욕 사용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욕이 화자의 정신건강에 좋다고 해서, 그 욕을 듣는 사람의 정신 건강에도 좋을 리 만무하다. 화자는 좋은 의도와 나쁜 의도 둘 중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했는지와는 상관 없이 욕은 듣는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최근에 이슈화되고 있는 ‘악플’ 때문에 자살하는 최진실씨와 같은 연예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게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욕에 대해서 관대하고 심지어는 미화시키기도 하는 사회 문화적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왜 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 서강대 김열규 교수는 그의 저서 ‘욕 그 카타르시스적 미학’ 에서 욕을 풍자와 해학적 요소로서 풀어내었다. 그는 욕은 약한 자를 대변해주고 대신 싸워주는 것이라고 한다. 즉, 피지배층이 지배층을 향해 던지는 한마디 욕설이 그들에게는 ‘칼’을 대신해 자신들의 한과 분노를 표출하게 해주는 일종의 약으로서 쓰인다고 한다. 혹시 봉산탈춤의 제 6과장의 ‘말뚝이’를 기억하는가? 말뚝이는 피지배층의 대표인으로서 양반에게 겉으로는 복종하는 척 하지만 온갖 욕설과 풍자로 양반 3형제를 구경꾼들 앞에서 놀림거리로 만든다. 이러한 말뚝이의 역할이 욕이 약자들에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 문화에서 사랑 받은 욕은 아무 상욕이 아니다. 현대 문학 중 김유정의 작품들을 보면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구수한 욕설을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더 친숙하고 푸근한 느낌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그의 소설 ‘봄봄’ 이나 ‘감자’ 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자식아. 일 허다 말면 누굴 망해 놀 속셈이냐. 이 대가릴 까놀자식?"
우리 장인님은 약이 오르면 이렇게 손버릇이 아주 못됐다. 또 사위에게 이 자식 저 자식 하는 이놈의 장인님은 어디 있느냐. 오죽해야 우리 동리에서 누굴 물론하고 그에게 욕을 안 먹는 사람은 명이 짜르다 한다.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그를 돌아세놓고 욕필이(본 이름이 봉필이니까) 욕필이, 하고 손가락질을 할 만치 두루 인심을 잃었다. –김유정 봄봄 중에서 발췌-
또한 한국 욕 문화의 특징적인 현상으로 위에서도 언급한 대통령도 욕을 먹는다는 ‘욕 할머니’ 가 있다. 주로 이런 할머니들은 곱창, 족발 등등의 지극히 한국적인 음식점을 운영하시는데, 거의 평생을 음식을 만드셨던 분들로 내공이 높은 고수들이시다. 이런 분들은 욕의 기본적 기능과 정의를 모두 무시하는 행동을 보여주곤 한다. 처음 보는 손님에게 화가 나거나 공격을 하려는 의도 없이도 “야 이 망할 놈들아! 얼른 들어와서 쳐먹어!” 등 격한 표현을 주로 사용하신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사람도 열에 여덟은 싱글벙글 오히려 웃는다. 참으로 한국인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손님도 할머니의 욕설 자체보다는 그 거칠고 투박한 말이 싸고 있는 따듯한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숲을 보는 ‘맥락효과’로 설명해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우리가 욕을 허용하는 특정 상황들에 대한 것 만으로 욕 전반을 푸근하고 친근한 것으로 일반화 하기에는 그것이 우리 사회 문화에 끼치는 좋지 않은 영향력이 강한 것 같아 다음 장에서는 욕의 부정적인 주로 영향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②욕의 영향
욕은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어는 사회의 거울이므로 이런 외적인 조건들보다는 근본적으론 사회 환경이 크다는 것이다. 더 큰 가치를 어디에 둘지 갈팡질팡하는 동안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이 욕에 중독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아무데나 침 뱉고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버려도 양심의 가책도 없고, 또 그런 행동들을 제지할 어른도 없는 이 사회가 가장 큰 주범인 셈이다. 어느 교수의 욕이 10대들의 하위문화가 되면서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욕은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이나 남을 저주할 때 쓰는 말이다. 마치 멀쩡한 하늘에서 갑자기 벼락을 치듯, 한 순간에 간담 한복판이나 정수리를 후려치는 마음의 흉기가 욕인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도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욕을 할 수 있으므로, 욕이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욕을 함으로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 알아야만 한다.
미국의 언어학자 하야카와는 아름다운 말, 듣기 좋은 말을 ‘가르랑 말’이라고 부른다.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목에서 가르랑거리며 내는 소리처럼 듣는 이로 하여금 기분 좋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남의 인격을 무시하여 깔보고 업신여기는 말이나 남을 저주하는 욕은 ‘으르렁 말’이라고 부른다. 개가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소리처럼 남을 자극하고 위협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욕을 하고 으르렁거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먼저 상대방에게 겁을 주거나 깔보고 업신여기고 욕되게 하기 위해서지만, 그 마음 바탕에는 자신의 분노를 뿜어내려는 의도가 함께 깔려 있다.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을 쓴 김열규 교수도 ‘욕은 감정을 터뜨리면서 삭임질 한다.’고 말했다. 욕을 통해 나쁜 감정을 털어 버리는 것이다. 또 욕은 보통 말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강조하고 싶을 때 ‘꼭 기억해’보다 ‘기억 못하면 죽어’라고 말하는 것이 더 효과가 좋듯이 욕에는 순기능이 있기 때문에 인류가 욕을 멈추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을 듣는 사람은 기분이 나쁘다. 실제로 미국의 심리학자 엘마 게이츠는 욕이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말 할 때 나오는 침 파편에 가라앉아 있는 것을 분석했는데, 감정에 따라 침에 가라앉아있는 물질 빛깔이 달라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침에 가라앉아 있는 물질 빛깔이 보통 때는 아무 빛깔이 없고, 사랑을 표현할 때는 분홍빛이 되었다. 그런데 화를 내고 욕을 할 때는 거무스름한 갈색 빛 이었다. 그 갈색 빛 침 물질을 모아 실험용 흰 쥐에게 주사했더니 몇 분 만에 죽고 말았다. 욕에 독이 들어있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문제는 그 독이 몸 밖으로 내보내지지 않고 몸 속에 쌓인다는 것이다. 물을 얼려 그 결정을 촬영한 일본의 대체의학 박사 에모토 마사루도 ‘바보’ ‘죽여 버리겠어’와 같은 욕을 들은 물의 결정은 일그러져 있음을 발견했다. ‘사랑해’라는 말을 들려준 물 결정이 활짝 핀 꽃처럼 아름다운 육각형 모양의 결정을 이룬 것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 몸이 70%이상 물로 채워져 있음을 헤아려 본다면 욕을 하는 것이 건강에 얼마나 나쁜 독이 되는가 짐작할 수 있다.
-양파의 성장 (KBS 다큐멘터리 10대 욕에 중독되다) <- 영상으로 대체
-잘못된 인격 형성
욕은 자신의 내면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좋은 점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욕은 상대에게 인격적인 상처뿐 아니라 여러 가지 손해를 끼치게 된다. 아니 타인보다도 본인에게 더 큰 손상을 주게 된다. 그것은 욕을 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공격적인 성격으로 바뀌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자기발전은 더욱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욕은 당연히 잘못된 의사소통이지만 최악의 해결방법이다. 사람들은 자기감정을 다루지 못해 욕이라는 극약 처방을 사용하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욕을 통해 공격적으로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또 단순히 시선을 끌기 위해 습관적으로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어찌되었든 이 모든 경우를 통해 욕이라는 의사소통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못마땅한 자신의 감정을 감추기 위한 어설픈 방법이요, 그만큼 자신은 사회적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을 만인 앞에 공개하는 꼴이 된다.
-저급 문화 형성
언어는 이렇듯 인격을 나타내지만 궁극에 가서는 그 말이 그 사람의 인생이 되곤 한다. ‘차 조심하라’는 말보다는 ‘오늘도 말조심하라’는 말이 더 설득력을 얻는 것은 ‘말이 씨가 된다.’는 격언처럼 말이 쌓여 운명이 바뀐다는 것을 우리는 인생을 통해 이미 터득했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자연스럽게 욕을 쓰는 것을 누구를 탓해야 할까? 또한 이런 오염된 기성세대의 문화는 그대로 내버려둔 채 백 번 아이들을 걱정한들 해결될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얼마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란 사람이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 앞에서 “아 씨발, 더러워서……” 라고 했다던가. 이게 대한민국 문화의 현주소다. ‘자지’나 ‘보지’ 같은 순 우리말은 떳떳하게 쓰지도 못하고 ‘페니스’나 ‘음부’ ‘옥경’ 등의 알아듣지 못할 말로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이 쓰발 새끼야!”란 욕을 서슴없이 내뱉는 게 우리 한국의 문화 수준인 것이다.
<결론> - 한국인 특유의 정서와 결합된 욕의 사용과 그에 따른 영향과 문화
이제까지 한국인 특유의 욕의 사용과 그에 따른 영향을 사회 문화와의 관련성 속에서 살펴보았다. 언어는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며, 욕도 언어의 한 갈래로서 자기의 기능을 한다. 욕은 주변 문화에 민감한 특징을 가지며, 한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입에 찰싹 달라 붙어 말을 할 때 무의식 중에도 나오게 된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는 여러 부정적인 감정이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리비도를 자극하고, 그 리비도의 무의식적 발현의 하나로서 욕은 나타나는 것 같다. 욕은 부정적인 정서가 개인의 심리 내부에서 쌓이는 것을 막아주고 외부로 배출함으로써 개인의 정신건강을 도모한다. 그러나 욕이 외부로 배출되었을 때 그 욕을 듣게 되는 상대방은 심리적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욕은 비판, 풍자, 해학, 친근의 의미로 사용될 수 있지만, 일상적인 대화에서 상용되는 욕은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언동을 통해 우리의 언어사회를 품격 저하시키고 저질 문화를 형성한다. 또한 오가는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중고등학생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욕설이 난무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어떤 십대들의 공격적인 말투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이다. 욕을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순기능을 사용하더라도, 바람직한 행동으로 정당화 되어서는 안 된다. 욕은 남 잘 되는 것보다 못되기를 바라는 데서 비롯될 경우가 많고, 좋은 것 보다는 나쁜 것을, 바람직한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을 들추게 될 때가 많아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내기 위해 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