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왕방산(737.2m)
한북정맥이 훤하게 조망되는 포천의 진산
포천읍 바로 뒤에 솟은 왕방산(737.2m)은 덩치 크고 품이 넉넉해 보이는 인자한 시골 아낙네 같은 산이다. 포천읍 진산으로 남북으로 길게 누운, 바위가 그리 많지 않은 육산이다. 신라 말(872년) 헌강왕이 지금의 보덕사(도선국사 창건설)를 친히 방문했다 하여 산이름을 왕방산이라 하고 절이름을 왕방사라 부르게 됐다고 전해온다.
그러나 포천군읍지와 견성지 기록에 의하면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이 산에서 무예를 익히고 사냥을 했으며, 왕위에 오른 후에도 단오와 추석에 강무(임금이 참관하는 무예시범)를 했다 하여 왕방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함흥에 살다가 한양으로 돌아오던 중 왕자의 난 소식을 듣고 비통한 마음을 달래고자 이 산을 찾았다는 다른 유래도 전해진다.
왕방산 주변에 이와 연관된 지명으로 왕숙천, 팔야리(이성계가 한양땅에 들어가기 전에 여덟 밤을 지낸 마을) 등이 남아 있다. ㅇ;러한 유래를 갖고 있는 왕방산의 표기를 일제시대부터 왕자에 날 일(日)자를 붙여 旺자로 바꿔 표기했으나 최근에는 다시 王자로 바꿔 놓았다. 서울의 인왕산(仁王山)과 같은 경우다.
경기도 동두천시와 포천군 경계에 놓인 왕방산은 큰 덩치만큼 골이 깊고 능선이 길어서 북쪽의 물어고개에서 남쪽 해룡산(660m)과 이어지는 오지재 고개까지 8km 구간을 종주한다는 것은 조금 무리가 따른다. 방화선을 겸해서 다듬어 놓은 등산로가 훤히 뚫려 있어 반팔에 반바지 등산복 차림으로 팔을 휘휘 저으며 오르내릴 수 있는 등산로가 소나무와 참나무 숲길 사이로 남북으로 길게 나 있다.
"바위 절벽이나 위험한 비탈길이 없어서 눈 덮인 겨울에도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는 산입니다. 그러나 종주코스로는 조금 긴 편이라서 정상을 오른 다음 보덕사를 거쳐 곧바로 시내로 내려가는 것이 편합니다."
유태희관씨(포천군체육회 등산협회 회장)는 전구간 종주보다는 반을 끊어서 종주할 것을 권한다.
포천으로 달려가면서 보는 산들이 점점 작아 보인다. 산 주위에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길 옆 건물이나 광고판 사이로 빠끔히 보이는 산들이 예전에 논과 들판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왕방산도 그런 산 가운데 하나다. 중턱에 대학 캠퍼스가 자리잡았고 산자락에는 크고 작은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의정부를 지나 철원이나 일동을 오가면서 올려다보던 우람한 왕방산이 세월이 갈수록 점점 작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한쪽 능선 택해야
남북으로 뻗은 왕방산 능선 종주 등반은 4~5시간 걸린다. 또한 일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편하게 오가려면 포천읍내에서 2km 떨어진 물어고개나 호병골 보덕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물어고개에는 포천시민들이 제일로 쳐주는 약수터가 있다. 이 약수터는 신북면 가채리 노장 마라톤 선수들이 관리하고 있다.
고갯마루에 산으로 올라가는 나무게단이 나 있다. 초입의 가파른 오르막을 10여 분 올라가면 숲속으로 비스듬히 오르는 오솔길이 훤하게 뚫려 있다. 등산로 정비와 산불방지를 겸해 길을 넓히고 양옆의 나뭇가지를 쳐놓았다.
소나무숲 사이로 가끔씩 돌아가거나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바위길이 나타나지만 대체로 등산로는 푹신한 흙길이다. 노송 사이로 빠끔히 보이는 하늘은 더욱 푸르다. 소나무가 없는 우리나라의 숲과 산을 떠올릴 수 있을까. 왕방산 능선길을 오르다보면 한민족의 얼과 역사와 문화를 낳게 한 소나무의 강인한 자태와 소나무숲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베어낸 나무를 걸쳐 놓은 쉼터에서 몇 차례 쉬면서 가도 물어고개에서 정상까지 2~3시간이면 충분하다. 중간에 삼각점이 설치된 527.8m봉에 오르면 정상인 듯 동서와 북쪽의 포천 일대가 다 내려다보인다. 여기에 쌓인 돌더미는 봉수대터였을 것이라고 동행한 김성호박사(용산공업고등학교 교사)가 주변을 확인한다. 그는 성곽연구에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정상 바로 못미처의 거대한 헬기장은 너른 초원처럼 보인다. 둘러앉아 점심을 먹거나 간식을 들면서 포천천을 끼고 있는 포천읍 일대를 조망하기 좋은 곳이다. 숲 사이로 100m쯤 올라가면 소백산 정상처럼 생긴 왕방산 정상이 기다리고 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산뿐이다. 서쪽으로 동두천 시내가 산자락 틈으로 내려다보인다.
왕방산과 이어진 서북쪽 능선에는 조금 높아 보이는 국사봉(754m)이 건너다보인다. 그 너머로 경기의 소금강이라 부르는 소요산(585.7m)과 개성의 송악산이 빤히 보이는 감악산(675m)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남쪽에는 왕방산 줄기와 이어진 해룡산(660m)이, 동쪽으로 한북정맥의 대표적인 산들인 광덕산(1,046.3m), 백운산(904.4m), 국망봉(1,168.1m), 명성산(992.6m), 강씨봉(830.2m), 청계산(849.1m), 명지산(1,267m), 운악산(935.5m), 주금산(813.6m)이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을 한눈에 훑어볼 수 있다. 그 너머로 경기도에서 제일 높은 화악산(1,468.3m)이 뚜렷하게 보인다.
하산은 깊이울계곡이나 보덕사를 거쳐 호병골로 한다. 정상에서 남쪽 능선으로 20m쯤 내려서면 국사봉쪽 안부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빨간 리본이 달려있다. 600m쯤 내려가면 임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갈림길에서 깊이울계곡으로 내려선다.
왕방산과 국사봉에서 흘러내리는 깊이울계곡의 맑은 물은 침엽수림이 우거진 홋 같은 깊이울저수지로 흘러든다. 지난해 경기 북부를 휩쓴 대홍수로 계곡 양안이 다 무너져내려 등산로가 뚜렷하지 않다. 기암괴석이 널려 있는 계곡은 아니더라도 지나다보면 누구나 한 웅큼씩 움켜쥐고픈 계곡물이 흐른다.여럿이서 승용차를 타고 왔다면 저수지 위 주차장에 미리 한 대 세워두고 나중에 내려와서 타고 시발점으로 되돌아오면 된다.
정상에서 보덕사로 내려오는 길은 매우 가파른 급경사다. 등산로 여러 곳에 나무계단을 정성껏 만들어 놓아 천천히 내여오면 위험이 따르지 않는다. 보덕사까지 차가 다닐 수 있는 콘크리트길이 나 있다. 산행 시간은 4시간쯤 걸린다.
왕방산 능선 종주는 오지재고개나 물어고개에서 시작한다. 오지재 고갯마루에서 보면 주능선을 오르는 샛길이 낙엽송 숲길 사이로 나있다. 첫 봉우리 주위에 어디엔가 옛 석성터가 있다고 하나 답사를 다음 기회로 미뤘다. 오지재고개에는 임도(5.5km)의 입구가 있다. 일반 승용차도 다닐 수 있을 만큼 잘 닦여 있다. 왕방산의 서쪽 기슭을 끼고 도는 임도는 국사봉 세목고개 마루턱까지 이어진다. 산악자전거 코스로도 암성맞춤이다. 임도에서 능선을 오르면 정상이다. 임도 입구에 쓰레기처리비(어른 1,000원, 단체 800원)를 받는다는 공고가 나붙어 있다.
왕방산 능선 양쪽으로 숲이 울창한 계곡에는 이런 곳까지 손님들이 찾아올까 믿어지지 않는 속칭 러브호텔과 서양식으로 지은 호화찬란한 대형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그뿐인가. 가구공장을 비롯한 각종 공장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종합대학 캠퍼스가 맘껏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종합병원과 기도원들도 자리잡고 있다. 왕방산은 이처럼 너그럽게 모두를 끌어안고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고 있다. 이처럼 산이 있기에 우리가 있다.
*교통
왕방산 등산 기점인 포천읍내까지는 수유리나 의정부 전철역에서 수시로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수유리나 상봉터미널에서 철원, 금화, 일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포천읍에서 내리면 된다.
의정부 전철역에는 송우리~포천읍~신북을 오가는 138, 138-1번(경복대학) 좌석버스와 38번 일반버스가 다닌다. 물어고개 마루에서 산행을 시작하려면 신북온천이나 창수면을 오가는 56번 버스를 탄다. 아침 6시부터 1시간마다 다닌다.
물오고개에서 시작하여 왕방산 남북능선을 종주하고 설운리 오지재고개로 내려올 경우 설운리 중문의과대학 입구나 동두천시 광암동 왕방이 마을버스 종점까지 걸어 내려가야 한다. 오전, 오후 두세 차례밖에 다니지 않아 승용차편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깊이울계곡으로 내려갈 경우도 저수지를 지나 큰길까지 걸여 내려가야 한다. 큰길로 나서면 포천~물어고개~신북을 오가는 버스가 수시로 있다. 깊이울유원지 입구에서 타고 내린다.
*가볼만한 곳
청성산 반월성
포천읍내 포천천 건너 맞은편 군내면 구읍리 뒷산인 청성산(289.5m) 정상의 능선을 따라 축조된 석성이다(사적 제403호). 둘레 1,080m의 반월성에 올라서면 서쪽으로 왕방산 줄기와 포천읍내뿐만 아니라 포천천 일대가 모두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포천의 주성이었던 성으로, 성안에는 성문터 2곳, 치성 4곳, 장대터 2곳, 우물터와 건물터가 남아 있다. 현재 지표조사와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고구려와 신라의 각축장이었던 이곳에서 얼마 전 '마홀수해공구단(馬忽受解空口單)' 이란 명문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굴되어 고구려시대 이 지역의 지명이 마홀이었음이 밝혀졌다. 전략적 요충인 반월성은 후고구려의 궁예의 군사가 주둔했으며 조선시대 광해군 10년(1618년)에 수축하기도 하는 등 인조 원년(1623년)까지 성을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성벽을 따라 포천 일대를 조망하면서 한 바퀴 돌면 제자리에 돌아온다. 발에 채이는 기와조각들과 자기 파편을 들춰보면서 우리 조상들의 삶의 의지와 포천의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곳이다.
참조:국사봉
참조:왕방산 주변 코스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