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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최고봉 경각산에서)
1. 산행 참가자
총동문 산악회 산우 30 명(13회~35회)
-동기 산우: 김극범, 김종무+정혜인, 남장현, 양명륭, 정인수, 한수복 이상 7명
2. 산행 시간
슬치 03:35
실치재 04:10
갈미봉(540m) 05:30
옥녀봉 갈림길 07:00(아침~07:50)
효간치 08:30
경각산(660m) 09:20
불재 10:00
치마산(607봉) 11:20
작은불재(362m) 12:00
염암부락재(316m) 미답 : 동성마을(12:40)
3. 산행 落穗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생명의 계절 4월의 산행이다.
부지깽이를 땅에 꽂아도 꽃잎이 터져나올 듯 산아래는 온갖 봄꽃들이 활짝 피어나고 일찍 핀 꽃은 아쉽게도 바람에 꽃비가 되어 흩날리고 있다.
산길에도 수줍은 산꽃들이 스스로 곱게 피어나 찾는 이의 발걸음을 반겨줄 것이다. 찬 바람 불어와 꽃잎이 더디게 벌어져도 결국 꽃은 피는 것이고 미련한 발걸음이라도 꾸준히 걸으면 봉우리를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던 산꽃과 눈을 맞추는 순간은 행복한 순간이다.
鈍足일 망정 알뜰한 산행을 꿈꿀 수 있는 빛나는 好時節이기에 하루가 다르게 풋풋해지는 호남의 산속으로 들어서는 마음이 설레고 일단 발걸음이 가볍다.
임실과 완주의 호남 산줄기를 즈려밟는 발자욱마다 산들이 내밀한 속살을 살짝 드러내 반겨주고 가슴 설레게 하는 화사한 산꽃들이 활짝 피어 있을 것이다. 심술 궂은 찬바람에 꽃잎이 얼고 멍들더라도 마침 은근한 春情이 샘솟는 때이다.
호젓한 산길마다 붉게 물든 수줍은 열아홉 처녀의 볼처럼 어여쁜 진달래 붉은 純情이 봄바람에 흔들리고 저 홀로 외롭게 꽃송이를 풍성하게 피워낸 산목련, 흐드러지게 滿開한 산벚꽃이 부르르 몸 떨리는 화사한 절정의 짧은 순간에 겨워 숨죽여 멈추어있기를 기대해 본다.
마침 千辛萬苦를 견뎌내 히말라야 임자체 정상에 우뚝 올라 서울인의 용기와 기개를 드높여 보여준 선후배 산우들의 쾌거 소식을 들으니 기품 있는 함박꽃이 산중에 활짝 핀 모습을 보는 듯하다. 정상에 오른 선후배 산우들이 뿌듯한 感懷 속에 품격 있는 절정의 순간을 맛보지 않았겠는가.
지난 구간 종점이었던 17번 국도의 슬치 마을에서 랜턴을 켜고 실치재를 향해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지도에서 살펴보는 전체 산길이 서북 방향을 향해 삐뚤빼뚤한 반원을 그리고 있어 출발지 슬치나 종착지 염암부락재의 위도가 비슷하다.
오랜만의 장거리 산행이다. 산행 거리가 21km로 나와 있지만 실거리는 25~26km 정도로 추정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고 조금 걱정스러운 것은 여러 봉우리에서 오르내림의 고도 차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현역 입대를 위하여 신체검사에 받는 壯丁의 심정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콘크리트 임도를 따라 산길로 들어선다. 인근에 축사가 있는지 송아지 움메 울고 새벽 발자국 소리가 못마땅한 듯 개 짖는소리 들려온다.
별빛을 기대해 하늘을 보니 구름이 낀듯 캄캄하고 낮은 산의 윤곽만 다가선다. 마침 쌀쌀한 바람 계속 불어와 속도감 있게 발걸음을 옮긴다. 교차하는 임도를 따라 걸으며 실치재를 지나고 낮은 오르막 산길로 들어선다. 임도가 넓게 만들어진 것은 그만큼 벌목이 많았을 것이고 산비탈이 많이 개간 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오른편으로 전주 외곽쯤의 불빛이 보이고 랜턴 불빛 가는 곳에 꽃송이가 반쯤 피어난 진달래꽃이 찬바람에 꽃잎을 흔들리며 떨고 있다. 조금 애처로운가.
묘지가 있는 469봉에서 물 한모금 마시며 한숨을 돌린다. 계속 불어오는 찬 바람이 구름을 흩어 놓았는지 밤하늘의 별이 군데군데 보인다. 여러모로 별빛이 반갑다.
장재를 모르게 지나치고 낮으막한 오르막길을 걸어 갈미봉으로 향한다. 이름표 하나 나뭇가지에 달고있는 갈미봉 정상의 헬기장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부석거리는 낙엽에 발목이 빠지는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따라 쑥재로 향한다. 군부대 탄약창이 있는지 높다란 철책이 오래 따라온다.
아침 6시가 다가오니 산중의 먼동이 터오고 산중의 제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왼쪽으로 누런 골프장이 내려다보이고 월성저수지가 보이는데 마침 내리막길에 진달래꽃 군락이 일제히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산뜻한 모습에 새벽의 졸린 기운이 확 사라진다.
이제 반쯤 벌어지기시작하여 새벽 바람에 누구의 純情처럼 흔들리는 진홍빛 꽃송이가 반갑고도 안스럽다.
쑥재로 내려서니 이제 막 나무에서 꽃만큼 아름답게 움트는 연녹색 새잎이 눈에 쏙 들어오도록 싱그럽다. 찬 바람 계속 불어도 산중에 봄이 왔구나. 생강나무 꽃봉오리가 의외로 흰색의 미끈한 유선형 타원체이다. 저 꽃봉오리에서 노란 꽃망울이 활짝 튀어나오는가.
가파른 비탈길에서 이십여 분 가쁜 숨을 몰아쉬어 옥녀봉 삼거리에 닿는다. 능선의 전망도 좋아져 八方으로 장중한 산줄기의 흐름이 새벽빛에 드러난다.
붉은 빛이 감도는 동쪽으로 손톱만하게 보이는 반가운 마이산의 모습도 다시 찾아보고 걸어온 금남호남정맥의 높은 산들을 바라보며 저 산줄기를 열심히 걸어 이곳에 이른 感懷에 젖는다.
이제 산중의 아침 식사를 즐길 시간이다. 마침 진달래꽃 피어나는 쉼터에서 서로의 음식을 나누어 요기를 하며 향기 짙은 솔방울술 몇 모금 마셔 추운 속을 덥힌다. 같이 술 한 모금 나눈 등반대장(29회 한영균)이 절묘한 한 마디를 건넨다.
"花開半이오 酒醉微라". 꽃도 반쯤 피어난 것이 오히려 아름답고 술도 살짝 취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이야기인가. 시의적절한 이 말 한 마디로 등반대장은 오늘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용서가 될 것 같다. 설사 미흡한 사전 답사를 하고 산행 지도를 부실하게 만들었더라도 어찌 선배 깃수의 끗발로 한 소리를 하겠는가.
식사가 끝나 서두르라는 산행 마이스터 형님(13회 김진수)의 채근으로 삼삼오오 떠나기 시작하는데 쑥재부터 행방이 묘연한 동기 산우(25회 한수복)가 나타나지 않는다. 전화 통화가 가능하기에 길을 잃어 고생한 끝에 뒤쫓아온다는 것은 알지만 5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예전에 전화 불통지역인 대간길 저수령에서도 길을 잃어 행방과 소식이 묘연하다가도 동네 트럭을 타고 나타난 전력이 있으니 틀림 없이 오리라는 것은 알지만 걱정 되는 것은 배낭에 먹을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동기 산우가 나타나 2km 정도 헤맨 것을 이야기하며 서둘러 산중의 밥 한 술 뜨는 것을 기다려 천천히 한오봉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이제 동기들이 완전히 후미가 되어 있다. 몇 걸음 앞으로 나무박사 형님(19회 박찬홍)과 아우들(31회 정종원, 34회 어지선)이 가는 모습이 보였다 안보였다 하고 총산 회장과 대간 단장을 역임하신 형님(17회 이정호)께서도 후미가 되어 있다. 오르막에서 조금 고전하시는 모습이시다.
한오봉에서 3.1km 떨어진 경각산을 오를 일이 걱정이다. 보이는 산길이 가팔라 산길이 얼마나 더 내려갈지 勞心焦思 하는데 마침 편백나무 숲길을 지나자니 나무 향기와 함께 몸에 좋은 기운이 몰려나오는 느낌이다. 곧 산길이 내려갈만큼 내려간 효간치에 닿는다.
계속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오르막을 올라간다. 찬 바람이 부는 것이 오히려 산행에는 괜찮은 느낌이다.
고래의 뿔이란 이름에 어울리게 암릉이 솟아오른 봉우리에 힘겹게 닿아 경각산인가 했는데 정작 경각산은 저 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암릉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아 땀을 식히며 팔방에서 다가와 그윽하게 펼쳐지는 산중의 경치를 즐긴다.
다시 힘을 내 나선형으로 감아 도는 산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니 평탄한 길이 나오고 드디어 경각산에 이른다.
북쪽으로 옥녀봉에서 한오봉에 이르는 능선이 뚜렷한데 서쪽으로 모악산의 모습이 우뚝하고 구이저수지 물빛이 번쩍인다. 동쪽으로 지나온 정맥산길이 다시 나타나고 그 아래로 德裕에서 智異로 달려가는 대간 산줄기의 모습이 아련하고 장중하다. 저 산줄기들이 제각각 모이고 흩어지며 유장하게 흘러가는 모습을 보는 것 하나로 잠을 설치며 이곳에 오른 노고가 충분히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문제는 남쪽이다. 파란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불재에서 몇 봉우리를 더 넘어서야 하는가.
멋드러진 소나무 한 그루를 감상하고 749번 포장 도로가 지나는 불재로 내려 선다. 고도가 300m 정도이다.
참숯 가마터에서 왼쪽 임도로 들어서니 활공장을 거치지 않고 산길로 연결이 된다. 산길이 오르막 일변도라 힘이 들기 시작하는데 다행스럽게 평탄한 길도 나타난다. 하지만 치마산 줄기라는 607봉 오르는 길이 힘겹기만 하다. 간식을 나누어 먹고 어렵사리 낙엽이 쌓인 길을 걸어 607봉으로 향한다. 참나무 낙엽 속에 지난 가을의 도토리가 많이 떨어져 있다. 다람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남쪽 산길에 활짝 핀 진달래와 땅바닥에 앙징맞게 피어난 이름 모를 보라색 들꽃들을 보는 것으로 고달픈 산길의 위안을 삼는다. 오늘 처음 보는 산비탈의 산벚꽃도 눈여겨 본다. 산목련은 끝까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 저 흰꽃은 싸리나무꽃인가.
드디어 607봉에 힘겹게 닿아 이정표를 본다. 여기서 작은 불재가 3.7km로 되어 있으니 이상하다. 불재에서 작은 불재 구간이 4km로 지도에 표시 되었는데 3km 이상을 오르고도 아직 3.7km가 남았다니 맥이 풀린다. 누구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인데 다리를 삐끗한 동기 산우가 불재에서 산길을 떠난 것이 천만다행이다.
아파오는 다리를 끌고 가파른 내리막을 40분 정도 내려가니 아담한 산중의 쉼터 같은 고도 360여m의 작은 불재이다.
선두팀이 한 시간쯤 전에 지나갔고 끝으로 홍보기획단장(25회 정인수)가 10분쯤 전에 지나갔다는데 이리저리 후미팀이 모이니 17회 형님 두 분을 비롯해 모두 8명이 모인다.
나무박사 형님께서 소장한 지도를 보며 잠시 후미팀의 구수회의가 열린다.
작은 불재에서 영암부락재 구간이 약 3km로 추정이 되고 1시간 30분이 걸린다는 것인데 봉우리 3개를 넘어가야 한다는 소식이다. 산행 지도에는 2km 거리에 내리막을 걷다가 봉우리를 하나 넘어가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불재부터는 산행 지도에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어쨌든 계속 가고 싶은데 길이 나있는 왼쪽 탈출로를 살피고 온 동기 부단장(25회 김종무)과 다수의 의견이 아프거나 지친 사람도 있고 산행 행사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여기서 없는 길이라도 찾아 반대 방향인 오른쪽 완주 구이면의 동성이나 교동쪽으로 내려가자는 것이다.
지치기도 하였거니와 駿足도 아닌 처지에 먼저 내려간 산우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고 혼자만 가는 것도 썩 내키지 않으니 進退兩難이다. 자세한 상황을 알기 위해 먼저 넘어간 산행 후미대장(35회 박영진)에게 전화로 물어보니 정확한 거리는 모르겠고 넘어가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는 대답이다.
후미팀들이 돌무더기 쏟아져 내리는 급한 내리막에서 희미한 길의 흔적을 찾아가며 하산을 시작한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 아우(31회 정종원)를 붙잡고 사정조로 이 하산길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니 정맥산길을 같이 넘어가자고 해보는데 아우가 확신이 없는지 대답을 주지 않는다. 나도 따라 내려가야 하는가. 예비역 영관 장교, 위관 장교, 사병 출신들이 무더기로 현역 대신 보충역 판정을 받는 순간이다.
완답자가 2/3가 넘는 상황에서 이것이 나의 한계이고 나의 불찰과 책임이니 아파오는 다리를 끌고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마음이 아쉽고 허전하다. 기다릴 터이니 후미팀 전원은 정맥길로 살아서 귀환하라는 명령은 떨어지지 않는가.
돌들이 미끄러지는 희미한 산자락길에 푸릇푸릇 돋아나는 나무의 싱그러운 새순과 벌써 색깔이 짙어진 푸른 풀밭을 보니 분한 마음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다. 산자락으로 여기저기 산벚꽃 피어나 무르익는 봄기운을 전해주는데 길섶에 어여쁘게 피어난 샛노란 피나물꽃이 왜 이 길로 오느냐고 묻는 듯하다. 너를 보러 왔도다.
지친 다리를 끌고 천천히 마을로 내려오니 집집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봄꽃 천지이다. 목련, 벚꽃, 배꽃, 복숭아꽃,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대궐 속의 어여쁜 꽃들을 가슴에 담으며 살아있슴을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할 순간인가.
결국 未完의 산행이 이렇게 아쉽게 끝났어도 땀방울 아롱졌던 꽃피는 산길에의 그립고 소중한 추억은 여전히 남을 것이니 시원한 맥주 한 모금 들이켜 그 아쉬움을 씻어낸다.
구수한 두부탕 끓여 술 한 잔 하며 산행의 所懷를 서로 나누는 뒤풀이는 언제나처럼 흥겹고 흐뭇하다. 언젠가 미답의 구간을 안내하겠다는 산행 후미대장(35회 박영진)의 위로의 말을 믿으며 몇 잔 술을 더 들이키니 졸음이 산처럼 밀려온다.
다음 달 또 다른 꽃 피어나고 신록이 질어가는 눈부신 계절 5월의 정맥 산행을 기대하며 돌아오는 찻속에서 잠시 꿀맛 같은 잠에 빠진다.
章
2010.4
(未明의 갈미봉)
(쑥재의 새 순)
(마이산과 지나온 정맥길)
(마음 설레이게 하는 진달래)
(싱그러운 편백나무 숲)
(경각산)
(무슨 꽃인지?)
(암릉에서의 한 때)
(옥녀봉과 한오봉 능선)
(모악산과 구이 저수지)
(임실의 밭과 마을)
(다시 보는 진달래)
(어렵게 오른 607봉에서의 위관 장교)
(피나물꽃, 줄기를 꺾으면 핏빛 물이 나오는 독초라 한다))
(아마 싸리꽃?)
(배꽃?)
(앵두?)
첫댓글 치마산 올라가면 곧 작은 불재 나오고 하산이라 생각해서 무심히 갔습니다. 작은 불재에서는 힘도 들고 이제 이것만 올라가면 내리막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올라가니 앞에 보이는 오르막이 3개 정도는 보여, 작은불재로 내려갈까 했지만 한영균 등반대장 모습이 보여 겨우 완답했습니다.
山中에서는 초겨울 날씨같이 추웠고 세찬 골바람도 맞아가며 걸었읍니다만... 그래도 그런 날씨 덕분에 생고생. 개고생은 免했던 것 같습니다. 완답하신 公들뿐 아니라 집행부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한 未完踏하신 公들 모두 수고하셨읍니다. 그런데, 후미대장을 自請하고 그 임무를 다한 宗公까지 negative성 중간탈출자로 구분한 집행부 처사가 솔직히 조금 거시기 하네요.....
이제 현상 유지만 해도 잘 하는 것 같소. 무절제한 술탓도 있겠지만 멀고 지루한 산길에서 체력이 하루 다르게 떨어지는 느낌...두 분 장교 형님들에게서 산중의 아침 공양을 잘 받았습니다. 다음 구간도 이번 구간 이상이라는데 꼭 완답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