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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살계법서(受菩薩戒法序)
詳夫菩薩戒者(상부보살계자)는 建千聖之地(건천성지지)며 生萬善之基(생만선지기)라
開甘露門(개감로문)하야 入菩提路(입보리로)니라.
[원문]
보살계란 것은 일천 성인을 세우는 땅이며 만 가지 좋은 일의 기본이다.
또한 감로의 문을 열고 보리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梵網經云(범망경운) 眾生受佛戒(중생수불계)하면 即入諸佛位(즉입제불위)라하니라
[원문]
범망경에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부처님의 계를 받으면 곧 모든 부처님의 지위에 오른다.” 라고 하였다.
欲知佛戒者(욕지불계자)인댄 但是眾生心(단시중생심)이요 更無別法(갱무별법)이니라 .
[원문]
부처님의 계가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가.
그것은 곧 중생들의 마음이니라.
달리 다른 법이 없느니라.
以覺自心故(이각자심고)로 名為佛(명위불)이요
以可軌持故(이가궤지고)로 名為法(명위법)이요
以心性和合不二故(이심성화합불이고)로 名為僧(명위승)이요
以心性圓淨故(이심성원정고)로 名為戒(명위계)요
以寂而照故(이적이조고)로 名為般若(명위반약)요
以心本寂滅故(이심본적멸고)로 名為涅槃(명위열반)이니라
此是如來最上之乘(차시여래최상지승)이며 祖師西來之意(조사서래지의)라
[원문]
자신의 마음임을 깨달으므로 부처요, 마음의 원리대로 유지되므로 법이요,
마음이 모든 존재와 화합하여 하나가 되므로 스님이요,
마음이 원만하게 청정하므로 계요,
마음이 고요하면서 살피는 까닭에 반야지혜요,
마음이 본래 적멸하므로 열반이니라.
이것이 여래의 가장 높은 법이며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니라.
聞者多生遮障(문자다생차장)하고 見者咸起狐疑(견자함기호의)는
以垢深福薄故(이구심복박고)라
是盲者不見(시맹자불견)이요 非日月咎(비일월구)니라
[원문]
그러나 보살계를 듣는 사람들이 장애를 일으키고
보살계를 보는 사람들이 모두 의심을 일으키는 것은 번뇌가 깊고 복이 없어서이니라.
마치 눈이 먼 사람이 아무 것도 보지 못하지만 태양이나 달의 잘못이 아닌 것과 같으니라.
若有志心(약유지심)하면 受者聞者(수자문자)가
法利無邊(법리무변)하야 七辯贊之莫窮(칠변찬지막궁)이며
千聖仰之無際(천성앙지무제)니 可謂真佛之母(가위진불지모)라
生諸導師(생제도사)며 妙藥之王(묘약지왕)이라
能治眾病(능치중병)이라 入道之要(입도지요)가 靡越於斯矣(미월어사의)니라
[원문]
만약 뜻이 있으면 보살계를 받는 사람과 보살계를 듣는 사람이
계법의 이익이 끝이 없어서 일곱 가지 뛰어난 변재로도 다 찬탄할 수 없으며
일천 성인이 우러러 보아도 다하지 못하리라.
가위 참다운 부처님의 어머니로다.
무수한 도사를 출생하며 신묘한 약 중에서도 왕이라.
능히 모든 병을 치료하나니 도에 들어가는 요긴함이 이 보살계를 넘어가는 것은 없으리라.
盧舍那佛(노사나불)이 說十地法門(설십지법문)하사
運菩薩之律儀(운보살지률의)하시며 立如來之行業(입여래지행업)하니
恒沙戒品(항사계품)이 圓三聚而統収(원삼취이통수)로다
[원문]
노사나불이 십지법문을 설하시어 보살의 계율과 위의를 운용하시며
여래의 행업을 세우시니라.
항하강의 모래처럼 많은 계품이 삼취정계를 원만하게 하여 모두 거두어드렸도다.
萬行因門(만행인문)이 唯一念而具足(유일념이구족)이라
五位大士(오위대사)가 莫不賴此因圓(막불뢰차인원)하며
十剎寶王(십찰보왕)이 無不由茲果滿(무불유자과만)이로다
[원문]
일만 가지 수행의 근본[因]이 오직 한 생각에 구족하였으므로
오위(五位)의 대사가 이 보살계를 의지하여 성불의 인(因)이 원만하지 아니함이 없으며,
시방세계의 부처님이 이 보살계를 말미암아 성불의 과(果)가 원만하지 아니함 없다.
今者欲弘大事(금자욕홍대사)나 難稱時機(난칭시기)라
若曾宿種一乘(약증숙종일승)하니는 方乃能生信解(방내능생신해)어니와
情執之者(정집지자)는 何以決疑(하이결의)리오
須陳問答之由(수진문답지유)하야 以袪邪外之障(이거사외지장)하리라
[원문]
지금 이 큰 일을 널리 밝히고자하나 시기가 맞지 않은지라
만약 일찍이 일승의 종자를 심은 이는 비로소 능히 믿고 이해하지만
정념에 집착한 사람은 어떻게 하여야 의혹을 풀 수 있으리오.
모름지기 문답을 펴서 삿되고 잘못된 장애들을 제거하리라
問(문) 夫菩薩戒者(부보살계자)는 乃文殊普賢之儔(내문수보현지주)어늘
具縛凡夫(구박범부)가 如何得受(여하득수)리오
[원문]
문, 보살계라는 것은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과 같은 분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으로 아는데
번뇌의 속박에 얽힌 범부가 어떻게 그것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해설]
보살계는 부처님의 계[佛戒]라고도 하고 마음의 계[心戒]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계인 까닭에 아무나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보살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보살, 즉 과거 천불의 스승이라고 알려져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그와 같은 높은 수준의 가르침을 온갖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과
내지 팔만사천 번뇌로 뒤엉켜있는 범부중생들이 어떻게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어불성설이며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이 문제를 풀어주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질문이다.
상식적인 불교나 일반적인 불교에 집착해 있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의문을 가질 수 있기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若執凡夫(약집범부)하야 非普賢者(비보현자)는 即是滅一乘種(즉시멸일승종)이라
古聖不合云(고성불합운) 普照塵勞業惑門(보조진로업혹문)이
盡是普賢真法界(진시보현진법계)라하니
若執眾生(약집중생)하야 非佛者(비불자)면 即是謗十方佛(즉시방시방불)이니라
大教不合云(대교불합운) 佛心與眾生(불심여중생)이 是三無差別(시삼무차별)이리라
[원문]
답, 만약 자신을 범부라고 집착하여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곧 일불승(一佛乘)의 종자를 말살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옛 성인이 결코 “많고 많은 번뇌와 업과 미혹들이
모두 다 보현보살의 참다운 진리의 세계다.”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중생을 집착하여 부처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곧 시방의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코 화엄경에서 “부처와 마음과 중생, 이 셋이 차별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以梵網經云(이범망경운) 一切有心者(일체유심자)는 皆應攝佛戒(개응섭불계)라하시니
且稟人者(차품인자)가 誰不有心(수불유심)이리오
凡成佛者(범성불자)는 皆從心現(개종심현)이니
所以釋迦出世(소이석가출세)하사 開衆生心中佛之知見(개중생심중불지지견)하시고
達磨西來(달마서래)하사 直指人心見性成佛(직지인심견성성불)하시니라
[원문]
그러므로 범망경에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부처님의 계[佛戒]에 포섭이 된다.”고 하시니라.
그리고 또 세상에 사람 된 자가 어느 누군들 마음이 있지 않겠는가.
무릇 성불한다는 것은 모두가 마음으로부터 표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은 세상에 오시어
중생들의 마음 안에 있는 부처의 지혜를 열어서 보여 주시고,
달마대사는 인도에서 중국에 오시어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부처를 이루게 하였다.
故祖師云(고조사운)
即心是佛(즉심시불)이며 即佛是心(즉불시심)이니
離心非佛(이심비불)이요 離佛非心(이불비심)이라하니라
所以一切色心(소이일체색심)과 是情是心(시정시심)이 皆入佛性戒中(개입불성계중)이라
[원문]
조사가 말씀하기를
“마음이 부처며 부처가 마음이니
마음을 떠나서 부처가 없고 부처를 떠나서 마음이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인 마음과 생각인 마음들이 다 불성계(佛性戒) 안에 들어간다.
即衆生佛性之心(즉중생불성지심)이 具佛心戒矣(구불심계의)어늘
況菩薩戒(황보살계)는 唯以開濟爲懷(유이개제위회)라
不同小乘(부동소승)의 局執事相(국집사상)이니
是以菩薩(시이보살)이 饒益有情之戒(요익유정지계)는 但濟物利人(단제물리인)이라
[원문]
중생들의 불성의 마음은 불심계를 갖추고 있다.
하물며 보살계란 오직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제도하는 것으로서 근본을 삼는다.
형식에만 국한하여 집착하는 소승들의 계율과는 같을 수 없다.
그래서 보살이 유정(有情)들을 요익하게 하는 계는
다만 중생들을 제도하고 사람들을 이익하게 할 뿐이다.
如末利夫人(여말리부인)은 惟酒爲戒(유주위계)하고
仙豫大王(선예대왕)은 惟利惟慈(유리유자)니라
[원문]
예컨대 말리부인은 오직 술을 만드는 것으로서 계를 삼았다.
또 선예대왕은 오직 사람들에게 이익한 일과 오직 자비를 베푸는 길만을 선택하였다.
問(문) 衆生心(중생심)이 既具佛戒(기구불계)인댄 何用更受(하용갱수)오
[원문]
문, 중생들의 마음이 이미 부처님의 계를 갖추고 있다면 어째서 다시 받는가?
[해설]
앞에서 이미 보살계의 진정한 뜻을 잘 밝히고 있어서
그대로 이해하면 이와 같은 질문은 있을 수 없으나
그러나 질문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명확하게 하고
아직 잘 알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거듭 거듭 이해시키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르침은 천번 만번 반복을 해도 좋은 일이다.
불교의 근본 종지(宗旨)이며, 최상승의 가르침이며,
불교 최상의 이치이며, 선불교의 지극한 도리가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며,
지상에서 이 이상 가는 가르침은 다시없기 때문이다.
答(답) 諸佛教法(제불교법)은 皆是爲未了者(개시위미료자)니라
以暫亡故(이잠망고)로 似有迷昧(사유미매)니라
今即約事重明(금즉약사중명)일새 故稱受戒(고칭수계)니라
自性妙律(자성묘율)은 圓理昭然(원리소연)하야 靡隔凡聖(미격범성)이라
未甞迷悟(미상미오)니라
[원문]
답,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두가 알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혹 들어서 알다가도 잠간사이에 잊어버린 까닭에 미혹하고 어두운 듯하다.
그래서 지금 외형적인 방법에 의지하여 거듭 밝히는 것이므로 계를 받느니라.
자성의 미묘한 계율은 완전한 이치가 밝고 밝아서 범부와 성인을 나누지 않는다.
일찍이 미혹한 것도 깨달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法句經云(법구경운) 戒性如虛空(계성여허공)이언마는
持者爲迷倒(지자위미도)라하고
大般若經云(대반야경운) 持戒苾蒭(지계필추)는 不昇天堂(불승천당)하고
破戒比丘(파계비구)는 不入地獄(불입지옥)이라하니라
何以故(하이고)오 法界中(법계중)에 無持犯故(무지범고)며
一切法空故(일체법공고)니라
[원문]
법구경에 말씀하시기를 ‘계의 성품은 허공과 같건만
계를 가지는 사람들이 미혹하여 잘 못 안다.’라고 하였다.
또 대반야경에 말씀하시기를 ‘계를 가지는 비구는 천당에 올라가지 못하고
계를 깨뜨린 비구는 지옥에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왜 그런가? 진리의 세계에서는 계를 가지거나 범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일체법이 텅 비어 없기 때문이다.
今爲未見性人(금위미견성인)하야
方便發揚(방편발양)하야 令信心戒(영신심계)케하고
約事開導(약사개도)하야 體用雙明(체용쌍명)하니
祇如十重四十八輕垢(기여십중사십팔경구)가
輕重雖殊(경중수수)나 總約事說(총약사설)이니라
別而不別(별이불별)이라 理事一際(이사일제)며
不別而別(불별이별)이라 持犯條然(지범조연)하니
不離事求理(불리사구리)하야 起斷滅之心(기단멸지심)하며
不離理行事(불리리행사)하야 執常情之見(집상정지견)이니라
[원문]
그러나 지금은 본성을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방편으로 드러내서 마음의 계를 믿게 하고,
형식에 의지하여 열어주고 인도하여 본체와 작용을 쌍으로 밝혔다.
다만 열 가지 무겁고 큰 계[十重]와
마흔 여덟 가지 가벼운 계[四十八輕垢]에 대해서 말하자면,
가볍고 무거운 것은 비록 다르나 모두가 형식에 의거하여 말한 것이다.
그래서 다르면서 다르지 않은 것은 이치의 입장과 형식의 입장이 하나이기 때문이며,
다르지 않으면서 다른 것은 계를 지키고 범하는 것이 길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식은 떠나버리고 이치만을 구해서 아무 것도 없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며,
이치를 떠나고 형식만을 행해서 평범한 보통 소견에 집착하지 말라.
問(문) 具縛凡夫(구박범부)가 根微垢重(근미구중)하니
若令受戒(약영수계)면 毀犯益多(훼범익다)요
若不觀根(약불관근)이면 返遭淪墜(반조윤추)리라
[원문]
문, 번뇌의 속박에 얽매인 범부가 근기는 미약하고 업장은 무거우니
만약 그들에게 계를 받게 한다면 헐뜯고 범하는 일이 더욱 많을 것이다.
그와 같은 근기를 관찰하지도 않고 계를 받게 하면
도리어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발생하리라.
[해설]
충분히 염려할 수 있는 질문이다.
앞에서 58조항의 계목을 대강 살펴보았으나 누구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중생이 그대로 보현보살 문수보살이요,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차별 없이 같다고 하여
사람이 곧 부처님이라는 차원 높은 지견은 아무나 받아드리고 소화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자신이 받아드리기 어려운 가르침은 비방하기가 일쑤다.
자신의 소견이 좁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법이 옳지 않다고 하여 법을 나무란다.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비유하자면 맹인이 자신의 눈이 어두운 것은 생각하지 않고
태양빛이 어둡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면 당연히 그 잘못에 대한 과보로 악도에 떨어지게 된다.
이 문제는 비단 질문자의 한 사람의 일에 그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의문이다.
答(답) 只為垢重障深(지위구중장심)하야 令受佛戒(영수불계)하니
現行煩惱雖厚(현행번뇌수후)나 佛乘種子無虧(불승종자무휴)니라
[원문]
답, 다만 번뇌가 무겁고 업장이 깊은 이를 위해서
그들에게 부처님 계를 받게 하는 것이다.
현재 일상생활에 드러난 번뇌가 비록 두텁고 무거우나
불승(佛乘)의 종자는 줄어들거나 이지러지지 않는다.
貴聞自本有之佛性善根(귀문자본유지불성선근)과
諸佛不可思議戒之威力(제불불가사의계지위력)하고
能令佛心明朗(능영불심명랑)하고 煩惱輕微(번뇌경미)하니
設少持時(설소지시)라도 功德無量(공덕무량)이니라
[원문]
스스로 본래부터 존재하는 불성이라는 훌륭한 근본과
모든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계의 위신력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설명들은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한다.
능히 그들로 하여금 불심은 밝게 빛나게 하고 번뇌는 없어지게 하니
설사 잠간 동안만 계를 가진다 하더라도 그 공덕은 한량이 없다.
纔發一念(재발일념)에 已過聲聞(이과성문)이니
諸佛挍量(제불교량)하사 羣經具載(군경구재)니라
不可以情思臆斷(불가이정사억단)으로 背佛違經(배불위경)하야
謗大之愆(방대지건)이 罪淪長劫(죄륜장겁)이니라
[원문]
이러한 보살계에 대해서 겨우 한 생각만 내더라도
벌써 소승 성문의 경지는 넘어선 것이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이 그러한 이치를 헤아려서 여러 경전 곳곳에 설하여 두었다.
공연히 개인적인 좁은 소견과 억지생각으로 부처님을 등지고 경전의 가르침을 어겨가며
대승의 가르침을 비방하면 그 허물로 인하여 오랜 세월동안
지옥에 빠지는 삶을 살게 되리라.
菩薩瓔珞經云(보살영락경운)
佛言(불언)하사대 佛子(불자)야 若過去未來現在一切衆生(약과거미래현재일제중생)이
不受菩薩戒者(불수보살계자)는 不名有情識者(불명유정식자)라
畜生無異(축생무이)하야 不名爲人(불명위인)이니라
常離三寶海(상리삼보해)하야 非菩薩(비보살)이며 非男非女(비남비녀)며
非鬼非人(비귀비인)이라 名為畜生(명위축생)이며 名為邪見(명위사견)이며 名為外道(명위외도)라
不近人情(불근인정)이라하니라
[원문]
보살영락경에 이렇게 되어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불자들이여, 만약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중생들이
보살계를 받지 아니한 사람은 생각이나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이름 할 수 없다.
축생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들은 늘 삼보(三寶)의 바다를 떠나있기 때문에 보살도 아니며
남자도 여자도 아니며 귀신도 못된다.
이름이 축생이다. 삿된 소견이며 외도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라고 하였다.
故知菩薩戒(고지보살계)는 有受法而無捨法(유수법이무사법)이라
有犯不失(유범불실)하야 盡未來際(진미래제)니라
若有人(약유인)이 欲來受者(욕래수자)어든
菩薩法師(보살법사)는 先為解說讀誦(선위해설독송)하야 使其心開意解(사기심개의해)하야
生樂著心然後爲受(생락저심연후위수)니라
[원문]
그러므로 알라. 보살계는 받는 법은 있어도 버리는 법은 없다.
설사 범하더라도 잃어버리는 일은 없다.
미래가 다하는 그 날까지 이어진다.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보살계를 받고자 하거든
보살계를 설하는 법사는 먼저 잘 해설하여 주고 읽고 외우게 하라.
그리고 보살계를 받는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고 옛 생각이 다 풀어지게 하여
보살계에 대해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 나도록 한 뒤에 받게 하라.
又復法師(우부법사)가 能於一切國土中(능어일체국토중)에
教化一人出家(교화일인출가)하야 受菩薩戒者(수보살계자)는
是法師(시법사)는 其福勝造八萬四千寶塔(기복승조팔만사천보탑)이어든
況復二人三人乃至百千人(황부이인삼인내지백천인)이리오
福果不可稱量(복과불가칭량)이니라
[원문]
또 보살계를 설하는 법사가 수많은 나라 중에서
한 사람을 교화하여 출가하게 해서 보살계를 받게 한다면
이 법사는 그로 인한 복이 팔만사천 보배 탑을 쌓은 공덕보다도 훨씬 수승하다.
그런데 하물며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나 내지 백 명 천명에게
보살계를 받게 하는 것이겠는가.
그 법사의 복덕의 결과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其法師者(기법사자)는
夫婦六親(부부육친)이 得互為師(득호위사)하야 受其戒者(수기계자)하야
入諸佛界菩薩數中(입제불계보살수중)하야 超過三劫生死之苦(초과삼겁생사지고)니라
是故(시고) 應受有而犯者(응수유이범자)를 名爲菩薩(명위보살)이라
勝無受而不犯(승무수이불범)이니라
有犯名菩薩(유범명보살)이요 無犯名外道(무범명외도)니라
[원문]
보살계를 설하는 법사는
부부와 육친들이 서로 서로 스승이 되고 제자가 되면서 계를 받아서
여러 부처님 세계의 보살 숫자 중에 들어가리라.
그래서 삼겁(三劫)이라는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의 생사의 고통을 뛰어넘게 되리라.
그러므로 응당 보살계를 받은 것이 있어서 범하게 되는 이를 보살이라 한다.
보살계를 받지 못하고 범할 것도 없는 사람보다는 훨씬 수승하리라.
계를 범할 것이 있는 사람을 보살이라 하고 범할 것이 없는 사람을 외도라 한다.
問(문) 何不以八關十善(하불이팔관십선)으로 漸漸度之(점점도지)하야
能稱小機(능칭소기)하야 免成毀犯(면성훼범)가
[원문]
문, 왜 팔관계(八關戒)와 십선계(十善戒) 같은 쉬운 것으로써
차츰 차츰 이끌어서 작은 근기들에게 알맞게 하는 것이
공연히 보살계를 주어 헐뜯고 범하게 하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은가?
答(답) 經云(경운) 若以十善化人(약이십선화인)하면 如將毒藥與人(여장독약여인)하야
雖一期得人天之飽(수일기득인천지포)나 不免生死毒發(불면생사독발)이라
終不出輪迴(종불출윤회)하야 翻增業垢(번증업구)이요
若以小乘開化(약이소승개화)하면 即是大乘(즉시대승)의 冤鴆(원짐)이요
解脫(해탈)의 深坑(심갱)이라 可畏之處(가외지처)라하니라
經云(경운) 寧起狐狼野干心(영기호랑야간심)이언정
不起聲聞辟支佛意(불기성문벽지불의)라하니
所以云(소이운) 但說大乘(단설대승)이라야 無咎(무구)라하니라
[원문]
답, 경전에서 말씀하기를 “만약 십선계로써 사람들을 교화하면
마치 독약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주어 죽게 하는 것과 같다.
비록 먹었을 때는 잠간 배가 부르듯이 십선계도 잘 지키면
사람으로 태어나고 천당에도 태어나지만
결국은 생사의 독약에 중독되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도리어 업장만 더욱 불어나게 할 뿐이다.
만약 소승법으로써 사람을 교화하면 곧 대승법을 죽이는 독약이 된다.
그리고 또한 해탈의 깊은 구덩이가 되고 만다.
참으로 두렵고 두려운 곳이다.”라고 하였다.
또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차라리 호랑이나 여우의 마음을 일으킬지언정
성문이나 벽지불이 될 뜻은 일으키지 말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다만 대승법을 설해야 허물이 없으리라.
問(문) 說法受戒(설법수계)는 本為超出苦源(본위초출고원)이어늘
何乃却令誹謗毀犯(하내각령비방훼범)하야 翻墮地獄(번타지옥)케하야
有損無益(유손무익)이어니 何成化門(하성화문)이리오
[원문]
문, 법을 설하고 계를 받는 것은 본래 고통의 근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찌 도리어 계를 비방하고 헐뜯고 범해서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가?
손해만 있고 이익은 없으니 어찌 사람을 교화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答(답) 自有聞而頓悟(자유문이돈오)하며 或有聞而漸持(혹유문이점지)하며
或有聞而起謗(혹유문이기방)하니 隨機不同(수기불동)이나 皆能獲益(개능획익)이라
佛法(불법)은 眞實(진실)하야 終不唐損(종불당손)이
如置毒乳中(여치독유중)하야 味味殺人(미미살인)하며
又如以毒塗鼓(우여이독도고)하야 遠近皆喪(원근개상)이니라
此大乘戒法(차대승계법)은 聞而起謗(문이기방)이라도 尚獲大益(상획대익)하야
超過供養恒沙佛人(초과공양항사불인)이어든
何況諦信(하황체신)하야 一心求受(일심구수)리오
[원문]
답, 대승계법을 듣는 순간 단박에 깨닫는 사람이 있고
혹은 듣고도 차츰 차츰 지니는 사람도 있다.
혹은 듣고 나서 비방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근기가 각각 다르나 모두 다 이익을 얻는다.
불법은 진실하다.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마치 독약이 우유 속에 들어가면 한 모금 한 모금이 다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다.
또 마치 독약을 바른 북과 같아서
북소리를 멀리서 들으나 가까이서 들으나 모두가 죽는 것과 같다.
이 대승계의 이치는 듣고 나서 비방을 하더라도 오히려 큰 이익을 얻는다.
항하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는 것보다 그 공덕이 훨씬 지나간다.
그런데 하물며 철저히 믿고 일심으로 받기를 구하는 사람이겠는가.
所以文殊菩薩經中校量云(소이문수보살경중교량운)
譬如有人(비여유인)이 聞說般若(문설반야)하고 起謗不信(기방불신)하야
墮地獄(타지옥)이라도 勝供養恒沙佛者(승공양항사불자)라하니라
何以故(하이고)오 供養恒沙佛(공양항사불)은 只得人天生滅之福(지득인천생멸지복)이어니와
若聞般若(약문반야)하고 毀謗墮地獄(훼방타지옥)이라도
受謗法畢(수방법필)에 以聞般若為種(이문반야위종)하야 纔聞說般若(재문설반야)하면
便得心開(편득심개)하야 剎那成佛(찰나성불)하리니
校其功力(교기공력)컨댄 天地懸殊(천지현수)니라
[원문]
그러므로 문수보살경 가운데서 서로 견주어 헤아리기를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반야에 대해서 해설하는 것을 듣고는 믿지 않고 비방하여 지옥에 떨어졌더라도
항하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부처님께 공양한 사람보다 더 수승하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항하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부처님께 공양한 것은
다만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천당에 태어나는 생멸의 복을 받지만,
만약 반야를 듣고 비방하여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비방한 과보를 다 받고 나서는
반야를 들은 것이 종자가 되어 나중에 다시 반야를 듣게 되면
곧바로 마음이 열려서 찰나사이에 성불할 것이다.
그 공덕의 힘을 견주어본다면 하늘과 땅처럼 다른 것이다.
又諸法無行經云(우제법무행경운)
有一淨威儀法師(유일정위의법사)가 怜愍眾生故(영민중생고)로
從所住處(종소주처)하야 常入聚落(상입취락)하야 食訖而還(식흘이환)하야
教化百千萬家(교화백천만가)하야 皆作佛子(개작불자)하야
令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영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하니라
又有一威儀比丘(우유일위의비구)가 常住寺中(상주사중)하야
乃至不能善於菩提所行之道(내지불능선어보리소행지도)라
淨威儀法師(정위의법사)의 諸弟子衆(제제자중)이 常入聚落(상입취락)이어늘
生不淨心(생부정심)하야 即鳴楗槌(즉명건퇴)하야 集衆立制(집중립제)하되
汝等(여등)은 自今已去(자금이거)로 不應入於聚落(불응입어취락)이라하니라
[원문]
또 제법무행경에 말씀하시기를
“어떤 한 청정한 위의(威儀)를 지닌 법사가 있었는데 중생들을 불쌍히 여긴 까닭에
거주하던 곳으로부터 항상 마을로 들어가서 걸식을 마치고 돌아와서
다시 백 천만이나 되는 가정들을 교화해서 모두 불자를 만들었다.
그래서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인 보리심을 내게 하였다.
그리고 또 한 위의를 지닌 비구가 있었는데 항상 절에 있으면서도
깨달음의 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였다.
청정한 위의법사의 제자들이 항상 마을에 들어가거늘
그들을 옳지 못하게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서
곧 목탁을 쳐서 대중들을 모아놓고 법을 제정하였다.
‘그대들은 지금부터 이후로 절대 마을에 들어가지 말라.’라고 하였다.”
於後淨威儀法師(어후정위의법사)가 遇有威儀比丘(우유위의비구)하야
知不信受大乘戒法(지불신수대승계법)하고
強說一偈(강설일게)하야 以作大乘種(이작대승종)하사
必知不信誹謗(필지불신비방)하야 入地獄(입지옥)하고
地獄罪畢(지옥죄필)에 因聞此法(인문차법)하야 為悟道之因(위오도지인)하리라
[원문]
“그 뒤 청정한 위의법사가 우연히 그 비구를 만났다.
비구가 대승계법을 믿지 않고 받아드리지 않음을 알고는
무리를 해서라도 게송을 설해서 대승법의 종자를 심어주고자 하였다.
그는 반드시 믿지 않고 비방하여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지옥의 죄업이 끝나고는 이 대승법을 들은 인연으로 도를 깨닫는 씨앗이 되리라고 여겼다.”
頌曰(송왈) 貪欲即是道(탐욕즉시도)요 嗔恚亦復然(진에역부연)이라
如是三法中(여시삼법중)에 具一切佛法(구일체불법)이라하니라
[원문]
“그 게송은 이렇다.
‘탐욕이 곧 도(道)다.
진심내고 어리석음도 또한 도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법 안에 일체의 불법을 모두 갖췄다.’라고 하였다.”
有威儀比丘(유위의비구)가 聞已誹謗(문이비방)하야 起是業已(기시업이)에
後時命終(후시명종)에 是業果報故(시업과보고)로 墮阿鼻大地獄(타아비대지옥)하야
九十百千億劫(구십백천억겁)을 受諸苦惱(수제고뇌)라가
從地獄出(종지옥출)하야 六十三萬世(육십삼만세)를 常被誹謗(상피비방)하고
其罪漸薄(기죄점박)하야 後作比丘(후작비구)하야
三十二萬世(삼십이만세)를 出家之後(출가지후)에
是業因緣(시업인연)으로 返道入俗(반도입속)하고
乃至無量千萬世(내지무량천만세)를 諸根暗鈍(제근암둔)하니라
師子游步(사자유보)야 於汝意云何(어여의운하)오
爾時有威儀比丘(이시유위의비구)가 豈異人乎(기이인호)아
勿造斯觀(물조사관)하라 則我身是(칙아신시)니라
[원문]
“그 훌륭한 비구가 그 게송을 듣고 나서 비방하였다.
비방한 업 때문에 죽고 나서는 그 과보로 무간지옥에 떨어졌다.
지옥에서 구십 백 천겁동안 온갖 고통을 받다가
다시 지옥에서 나와서 육십삼만 세를 항상 남들로부터 비방을 받았다.
그리고는 죄업이 점점 가벼워져서 드디어 비구가 되어 삼십이만 세를 출가하여 지낸 뒤,
이 업의 인연으로 다시 세속에 돌아가서
한량없는 천만 세를 육근이 우둔하여 미련하게 살았느니라.
사자유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때의 그 비구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놀라지 말라. 내가 바로 그 비구였느니라.”
我時起是微細不淨惡心(아시기시미세부정악심)하야
受此罪業(수차죄업)하야 墮於地獄(타어지옥)이니
若人不欲起微細罪業者(약인불욕기미세죄업자)인댄
於彼菩薩(어피보살)에 不應起於惡心(불응기어악심)이며
菩薩所行道(보살소행도)를 皆當信解(개당신해)하야 不應起嗔恨之心(불응기진한지심)이니라
乃至如來(내지여래)가 見是利故(견시리고)로 常說是法(상설시법)이라하시니
故知(고지) 因聞此大乘法(인문차대승법)하야 而得成佛(이득성불)이니
聞而起謗(문이기방)이라도 尚得成佛(상득성불)이어든
何況志誠(하황지성)으로 求聞求受(구문구수)리오
[원문]
“내가 그 때에 조그마한 나쁜 마음을 일으켜서
이러한 죄업을 받아서 지옥에 떨어졌으니
만약 누구라도 조그마한 죄업이라도 일으키지 않으려면
훌륭한 법을 설하는 그런 보살에 대해서 나쁜 마음을 내지 말라.
그리고 보살이 행하는 길을 모두 마땅히 믿고 이해하여 절대로 원망하거나 분노하지 말라.
여래는 이러한 이익을 보아왔기에 항상 이 법을 설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알라. 이 대승법을 들은 인연으로 부처를 이루었다.
듣고 비방만 하더라도 오히려 부처를 이루었는데,
어찌 하물며 지극한 정성으로 들으려하고 믿고 받아드리는 일이겠는가.
且如菩薩戒中(차여보살계중)에 十重婬殺等戒(십중음살등계)는
只如現在不受戒凡夫(지여현재불수계범부)가 從無始來(종무시래)로
具造殺盜淫欲等事(구조살도음욕등사)와 慳貪嗔恚等法(간탐진에등법)하되
過去已造(과거이조)하며 現在今造(현재금조)하며 未來當造(미래당조)하야
念念無間(염념무간)하고 心心靡移(심심미이)하야
恒沒生死(항몰생사)하고 恒沈苦獄(항침고옥)하니라
故(고)로 經云(경운)
閻浮衆生(염부중생)이 舉足動步(거족동보)가 無非是罪(무비시죄)라하니라
若行殺害(약행살해)하면 墮畜生中(타축생중)하야 互為高下(호위고하)하고
若起嗔恚(약기진에)하면 墮地獄中(타지옥중)하야 常時燒煑(상시소자)하고
若生慳貪(약생간탐)하면 墮餓鬼中(타아귀중)하야 飢火常然(기화상연)하니
故(고)로 法華經云(법화경운) 於地獄中(어지옥중)에 作園觀想(작원관상)하며
駝驢猪狗(타려저구)가 是其行處(시기행처)라하니라
[원문]
또 보살계 가운데 열 가지 무거운 계에 속하는
살생이나 훔치는 것이나 음행하는 것 등등은
다만 현재 계를 받지 아니한 범부들에게는 오랜 세월 이전부터
살생, 훔치는 것, 음행등과 아끼고 탐내고 성내는 등등의 일을
과거에도 해 왔으며 현재에도 하고 있으며 미래에도 당연히 할 것이다.
항상 이어져서 그 마음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늘 생사의 바다에 빠지고 고통의 감옥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염부제 중생들이 발을 들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죄악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다.
만약 생명을 살해하면 축생이 되어 서로 뒤바뀌어 오르내린다.
만약 분노를 일으키면 지옥에 떨어져서 항상 불에 탄다.
만약 아끼고 탐욕을 부리면 아귀가 되어 늘 굶주림의 불길에 휩싸인다.
그러므로 법화경에 말씀하시기를 “지옥에 있으면서 마치 뒷동산처럼 여기고
낙타나 당나귀나 돼지나 개가 되어 사는 것이 그들의 생활이다.”라고 하였다.
所以(소이)로 蓮華色比丘尼(연화색비구니)가 昔爲戲人(석위희인)하야
披法服時(피법복시)에 以宿命智(이숙명지)로 觀過去無始前(관과거무시전)에
恒處地獄(항처지옥)하야 無有出期(무유출기)하고
遂乃廣勸王舍城中釋種等女(수내광권왕사성중석종등녀)하니
但出家(단출가)하면 破戒入地獄(파계입지옥)이라도 終有解脫之時(종유해탈지시)라하니
是以(시이)로 但受破戒(단수파계)라도 速超得道之場(속초득도지장)이요
不受不破(불수불파)하면 永處泥犂之患(영처니리지환)이니
以業道罪相酬(이업도죄상수)하야 無有休息(무유휴식)이니라
[원문]
그러므로 연화색(蓮華色)이라는 비구니는 예전에 사람들의 노리개가 되었는데
출가하여 법복을 입고는 과거를 꿰뚫어보는 숙명통의 지혜를 얻어 과거를 관찰해보니
항상 지옥에 드나들어 빠져나올 기약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드디어 왕사성 석가족의 여자들에게 널리 권하였다.
“다만 출가만 하면 설사 파계해서 지옥에 들어갈지라도
마침내는 해탈할 때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다만 계를 받고 파계만 할지라도 신속하게 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계를 받지 않고 파계할 것도 없는 사람들은
영원히 지옥과 같은 삶에서 살게 되리라.
업을 지은 것과 죄를 받는 일이 서로 서로 반복해서
주고받고 배상하여 쉴 날이 없으리라.
故(고)로 決定毗尼經云(결정비니경운)
佛言優婆離(불언우파리)야 何故(하고)로 修大乘(수대승)하야
行菩薩戒(행보살계)는 寬容無犯(관용무범)하고
何故(하고)로 聲聞禁戒(성문금계)는 窄狹嚴切(착협엄절)가
優婆離(우파리)야 當知(당지)하라 若初修大乘(약초수대승)하야 行菩薩戒(행보살계)하면
晨朝有犯(신조유범)하야 應當結罪(응당결죄)라도
至午(지오)하야 若菩提心(약보리심)이 無間斷(무간단)하면 戒聚成就(계취성취)하야
則非所犯(칙비소범)이며
乃至中夜有犯(내지중야유범)이라도 至於後夜(지어후야)하야 菩提心(보리심)이
無間斷(무간단)이면 戒聚成就(계취성취)하야 則非所犯(칙비소범)이니라
優婆離當知(우파리당지)하라
初修大乘(초수대승)하야 行菩提心戒行(행보리심계행)이 寬緩(관완)일새
若有菩薩(약유보살)이 結罪有犯(결죄유범)이라도 不應悔懼(불응회구)니라
復次若聲聞犯戒(부차약성문범계)는 戒相則滅(계상즉멸)하야 無復更全(무부경전)이니
何故爲聲聞持戒(하고위성문지계)는 除煩惱故(제번뇌고)로 如救頭然燒衣(여구두연소의)하야
心速為求寂滅涅槃(심속위구적멸열반)하야 堅持戒行(견지계행)이라하니라
[원문]
그러므로 결정비니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파리(優婆離)여, 무슨 까닭으로 대승법을 닦아서
보살계를 행하면 너그러워서 범하는 일이 없는가.
그리고 또 무슨 까닭으로 성문의 계는 좁고 엄한가.
우파리여, 마땅히 알아라. 만약 처음으로 대승법을 닦아서 보살계를 행하면
아침에 범해서 응당히 죄에 얽히더라도
낮에 이르러서 만약 보리심이 간단없이 이어지면 계가 성취되어서
곧 범하는 바가 되지 않느니라.
그리고 한 밤중에 범하더라도 새벽에 이르러서 보리심이 간단없이 이어지면
계가 성취되어 곧 범하는 바가 되지 않느니라.’
‘우파리여, 마땅히 알아라.
처음 대승법을 닦아서 보리심을 행한 계행이 너그럽기 때문에
만약 보살이 죄를 지어 범함이 있더라도 응당 후회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또한 성문이 계를 범하는 것은 계의 형상이 곧 소멸하여 다시는 온전하여질 수 없다.
왜냐하면 성문이 계를 지키는 것은 번뇌를 제거하기 위한 까닭에
머리에 불이 붙고 옷에 불이 붙은 것을 꺼야하는 것과 같아서
마음에 빨리 적멸열반을 구하기 위해서 굳게 계행을 지킨다.’ 하니라.
以知菩薩(이지보살)은 爲發菩提無上心故受戒(위발보리무상심고수계)하야
雖暫有犯(수잠유범)이라도 乃從事而論(내종사이론)하야 一期所制(일기소제)라
若菩提心(약보리심)과 四弘願不斷(사홍원불단)하면 即不名犯(즉불명범)이요
若永捨菩提心(약영사보리심)하고 違四弘誓(위사홍서)하면 即名犯戒(즉명범계)어니와
以聲聞人(이성문인)은 不發菩提心受戒(불발보리심수계)하야
但求出離(단구출리)니 事戒纔犯(사계재범)하면 持心即斷(지심즉단)이라
以從生滅邊論故(이종생멸변론고)니라
若菩提心菩薩戒(약보리심보살계)는 約盡未來際(약진미래제)토록 無有間斷故(무유간단고)니라
[원문]
그러므로 알라.
보살은 보리심이라는 최상의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계를 받아서
비록 잠간 범했더라도 형식적인 것이라는 사실의 바탕위에서 논한다.
어느 한 순간만 필요한 법이지 영원한 것은 아니다.
만약 보리심과 사홍서원이 끊어지지 아니하면 곧 범했더라도 범했다고 하지 않는다.
만약 영원히 보리심을 버리고 사홍서원을 어기면 그것이 곧 계를 범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문인은 보리심을 발하지 않고 계를 받아서
다만 세상에서 벗어나기만을 구하므로 형식적인 계를 조금만 범하면
계를 가지는 마음이 곧 끊어지고 만다.
생멸에 치우쳐서 논하기 때문이다.
만약 보리심 보살계는 미래세상이 다하도록 결코 단절이 없기 때문이다.
又經云(우경운)
犯戒名菩薩(범계명보살)이요 不犯名外道(불범명외도)라하니
以未聞大乘佛性戒故(이미문대승불성계고)로 無可得犯(무가득범)이라
縱修萬善(종수만선)이나 皆是無益(개시무익)이요 苦行所收(고행소수)니
種苦求甘(종고구감)이 終無得理(종무득리)니
蒸砂作飯(증사작반)이 豈有成時(기유성시)리오
所以(소이)로 梁帝發願云(양제발원운)
不願作鬱頭藍子(불원작울두람자)하야 暫得生天(잠득생천)이요
寧可作提婆達多(영가작제바달다)하야 永處地獄(영처지옥)이라하니라
[원문]
또 경전에서 이르기를,
‘계를 범하면 이름이 보살이요 범하지 않으면 외도라.’하였으니
대승불성계를 아직 듣지 못한 까닭에 범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만 가지 선행을 닦으나 모두 이익이 없다.
고행에 해당할 뿐이다.
쓰디쓴 것을 심어서 달콤한 것을 구하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모래를 쪄서 밥을 만든들 어찌 이루어지겠는가.
그러므로 양나라 무제임금이 발원하기를,
‘울두람자가 되어서 잠깐 천당에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고
차라리 제바달다가 되어서 영원히 지옥에서 살리라.’라고 하였다.
且如不受戒衆生(차여불수계중생)이 法爾累聚(법이루취)하야
煩惱所縈(번뇌소영)으로 皆墮地獄(개타지옥)이니
設得暫出(설득잠출)이라도 還墮輪迴(환타윤회)하야
似蟻循環(사의순환)하며 如火旋轉(여화선전)이니
若得戒力(약득계력)하야 心遇緣因(심우연인)하면
一念迴心(일념회심)하야 自然開悟(자연개오)하리라
[원문]
또한 계를 받지 아니한 중생들이 의례히 업장이 겹치고 쌓여서
번뇌에 얽혀 모두 지옥에 들어가니
설혹 잠간동안 벗어났더라도 또다시 윤회에 떨어져서
마치 개미가 쳇바퀴를 돌듯하고 불놀이 할 때 불이 돌아가는 것과 같이 연속이 되니
만약 계의 힘을 얻어서 마음이 인연을 만나면
한 순간에 마음을 돌이켜서 저절로 깨닫게 되리라.
經云(경운)
如王生子(여왕생자)에 爲民所敬(위민소경)하야
得戒護人(득계호인)은 生聖種中(생성종중)하야
後必得聖(후필득성)이 如紹王位(여소왕위)라하니
設有毀犯(설유훼범)이라도 如菩薩戒八勝中(여보살계팔승중)에
第五受罪輕微勝(제오수죄경미승)하야
墮六趣中(타륙취중)이라도 常得爲王(상득위왕)이니
此是劣中之勝(차시열중지승)이니라
[원문]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마치 왕이 왕자를 낳으매 백성들의 공경하는 바가 되는 것과 같아서
보살계를 받아 사람들의 애호함을 받고 성인의 종자 가운데 태어나서
뒤에는 반드시 성인이 되는 것이 마치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설사 계를 범하는 일이 있어도 보살계의 여덟 가지 수승한 것 중에
‘제5 죄를 지어 벌을 받아도 매우 가볍게 되는 수승함’이 된다고 하였다.
육취(六趣) 가운데 떨어졌을지라도 항상 왕이 되니
이것은 열악한 가운데 수승함이다.
又如出家比丘(우여출가비구)가 誰是微細精持戒人(수시미세정지계인)가
二地分持(이지분지)요 惟佛能淨(유불능정)이니
所以(소이)로 經云(경운) 惟佛一人(유불일인)이 持戒清淨(지계청정)이요
其餘盡名破戒者(기여진명파계자)라
南山云(남산운) 受者法界爲量(수자법계위량)이요
持者麟角猶多(지자린각유다)라하며
又云(우운) 坐受立破(좌수립파)라도 得無量福(득무량복)이니
乃至但作奉戒之心(내지단작봉계지심)이언정 莫作得戒之限(막작득계지한)이라하니라
[원문]
또한 출가한 비구라고 해서 누가 세세하게 계를 모두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보살의 두 번째 지위[二地]에 오른 보살이라 하더라도 어느 한 부분만 지킬 수 있다.
오직 부처님만 능히 청정하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오직 부처님 한 사람이 계를 가지는 것이 청정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파계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남산율사가 말하기를 ‘계를 받는 사람은 드넓은 법계처럼 그 양이 많고
계를 지키는 사람은 기린의 뿔의 숫자도 오히려 많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앉아서 계를 받고 서서 파하더라도 한량없는 복을 얻으니
다만 계를 받들 마음만 가지지 계를 받은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는 말라.’라고 하였다.
善生云(선생운) 天地無邊(천지무변)이며 戒亦無邊(계역무변)이라
草木無量(초목무량)이며 戒亦無量(계역무량)이라
虗空大海高深(허공대해고심)이라 戒亦高深(계역고심)도 亦復如是(역부여시)라하니
故知(고지) 受時十方戒法無邊(수시시방계법무변)이나
破者毫釐少分(파자호리소분)이라 終不盡破(종불진파)니라
[원문]
선생경에 말하기를 “천지가 가없고[無邊] 계도 또한 가없으며,
초목이 한량없고 계도 또한 한량없다.
허공과 대해가 높고 깊듯이 계도 또한 그와 같이 높고 깊은 것이 이와 같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알라. 계를 받을 때는 시방계법이 가없으나
파하는 것은 터럭 끝과 같이 아주 적어서 마침내 다 파할 수가 없다.
所以(소이)로 薩婆多云(살파다운)
寧可一時(영가일시)에 發一切戒(발일체계)언정
不可一時(불가일시)에 犯一切戒(범일체계)라하며
寧可有戒可犯(영가유계가범)이언정 不可無戒可破(불가무계가파)라하니
如無戒可破之人(여무계가파지인)은 莫道具造惡業(막도구조악업)하라
只如深山遠谷(지여심산원곡)에 木食草衣(목식초의)로
百千萬劫(백천만겁)을 修遠離行(수원리행)이라도
若不受戒法(약불수계법)하면 大智度論中文殊菩薩(대지도론중문수보살)이 呵云(가운)
與禽獸無異(여금수무이)라하니라
[원문]
그러므로 살바다(薩婆多)에 이르기를
“차라리 일시에 일체 계에 대한 마음을 낼 수는 있을지언정
가히 일시에 일체 계를 범하지는 못한다.”하였다.
또 “차라리 계를 받아 범할 것이 있을지언정 파할 계가 없게 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만약 파할 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악업을 갖추어 짓는다고 말하지 말라.
다만 심산유곡에서 나무 열매로 식사를 하고 풀잎으로 옷을 삼아 입으며
백천만겁동안 세상을 멀리 떠나는 수행을 닦을지라도
만약 계법을 받지 아니하면 대지도론에서 문수보살이 꾸짖기를
“새나 짐승으로 더불어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又寶林傳中(우보림전중)에
有小乘持戒比丘(유소승지계비구)가 眼不觀色(안불관색)하며
耳不聽聲(이불청성)하되 以不達佛理故(이불달불리고)로
受施主供養(수시주공양)하야 尚作大蕈還債(상작대심환채)라하니
豈況無戒信受(기황무계신수)하야 理行都無者歟(이행도무자여)아
[원문]
또 보림전(寶林傳)이라는 책에
“어떤 소승 지계비구가 눈으로는 아름다운 경계를 보지 않고
귀로는 좋은 소리를 듣지 않았으나 불법의 이치를 알지 못한 까닭에
시주의 공양만 받아서 오히려 큰 버섯이 되어 시주의 빚을 갚았다.”하니
어찌 하물며 보살계를 받은 바도 없이 신도의 시주를 받아서
이치와 행이 도무지 없는 사람이겠는가.
如上所引(여상소인)이 事理照然(사리조연)하야
金口不易之眞詮(금구불역지진전)이며 古聖現行之牓樣(고성현행지방양)이니
何得憑虗作實(하득빙허작실)하며 背正投邪(배정투사)하야
障他無上之善根(장타무상지선근)하야 起自菩提之大難(기자보리지대난)이리오
若不投誠懺悔(약불투성참회)하면 舌爛口中(설란구중)하야 善惡因緣難逃(선악인연난도)라
苦樂立即交報(고악립즉교보)하리라
[원문]
지금까지 인용하여 온 것은 형식과 이치가 너무 분명해서
부처님의 입으로도 바꿀 수 없는 참다운 가르침이며, 옛 성인들이 행하신 본보기다.
어찌 헛된 것을 의지하여 참다운 것을 지으며,
또 어찌 바른 것을 등지고 삿된 것에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최상의 선근을 장애하고,
자신에게는 보리의 큰 어려움을 일으키겠는가.
만약 정성을 다해 참회하지 아니하면 혀가 입 속에서 흩어져서
선악의 인연을 도망하기 어려우리라.
고와 낙의 과보를 선 자리에서 받으리라.
問(문) 何故(하고)로 犯菩薩戒(범보살계)는 不名犯而(불명범이)나
戒性無盡(계성무진)이리요
[원문]
문, 무슨 까닭으로 보살계를 범하는 것은 범한다고 이름 하지 않으면서
계의 성품은 다하지 않는가?
答(답) 夫菩薩戒(부보살계)는 若約理推(약약리추)하면 即惟心(즉유심)이라
心性無盡(심성무진)이니 所以(소이)로 瓔珞經云(영락경운)
一切凡聖戒(일체범성계)가 盡以心爲體(진이심위체)니라
若約事明(약약사명)인댄 初發菩薩(초발보살)이 心四弘誓願(심사홍서원)하면
並徹未來際(병철미래제)하야 攝化有情(섭화유정)하야
不同人天二乘等戒(부동인천이승등계)라하니라
[원문]
답, 대저 보살계는 만약 이치에 의지해서 미루어 본다면 곧 오직 마음뿐이다.
마음은 다함이 없다. 그러므로 영락경에 말씀하시기를
“일체 범부와 성인의 계가 모두 마음으로서 본체를 삼는다.
그러나 만약 형식에 의지해서 밝힌다면 초발심보살이 마음에 사홍서원을 발하면
미래제에 사무치도록 유정들을 교화한다.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나고 천상에나 가는 이승들의 계와는 같지 않다.”라고 하였다.
阿差末經云(아차말경운)
若一切聲聞戒(약일체성문계)는 入涅槃故(입열반고)로 戒力消盡(계력소진)하며
若辟支佛戒(약벽지불계)는 無大悲故(무대비고)로 戒力消盡(계력소진)이어니와
舍利弗當知(사리불당지)하라 菩薩摩訶薩戒(보살마하살계)는 行無盡(행무진)이니
何以故(하이고)오 一切淨戒(일체정계)가 皆因菩薩戒攝(개인보살계섭)하야 現前故(현전고)니
譬如種子漸多(비여종자점다)에 利益無盡(이익무진)이니라
舍利弗當知(사리불당지)하라 菩薩心者(보살심자)는 猶如種子(유여종자)하니
諸佛如來(제불여래)는 戒行無盡(계행무진)일새 是大丈夫(시대장부)며
名無盡戒行(명무진계행)이니라
舍利弗(사리불)아 是修行菩提持戒故(시수행보리지계고)로 戒行無盡(계행무진)이라하니라
又(우) 受菩薩戒(수보살계)가 具五功德八殊勝(구오공덕팔수승)하니
向下廣明(향하광명)하야 挍量無盡(교량무진)하리라
[원문]
아차말경에 이르기를
“일체 성문들의 계는 열반에 들어가기 때문에 계의 힘이 다하고,
벽지불의 계는 자비가 없기 때문에 계의 힘이 다한다.
사리불이여, 마땅히 알라. 보살마하살의 계는 그 실천이 다함이 없으니
왜냐하면 일체의 청정한 계는 모두 보살계를 인하여 포섭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곡식의 종자가 많으면 그 이익이 다함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사리불이여, 마땅히 알라. 보살의 마음이란 마치 곡식의 종자와 같으니
제불여래는 계행이 다함이 없으므로 대장부며 이름이 ‘다함이 없는 계행’이니라.
사리불이여, 보리심을 닦아서 계를 가지기 때문에 계행이 다함이 없다.”라고 하였다.
또 보살계를 받는 것이 다섯 가지 공덕과 여덟 가지 수승함을 갖추었으니
뒤에 널리 밝혀서 다함이 없음을 비교하여 헤아리리라.
問(문) 如上所說(여상소설)인댄 云何是菩薩破戒(운하시보살파계)오
[원문]
문,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면 보살의 파계란 무엇인가?
答曰(답왈) 曇無讖菩薩戒本云(담무참보살계본운)
略有二事失菩薩戒(약유이사실보살계)하니
一捨菩薩願(일사보살원)이요 二增上惡心(이증상악심)이니
除是二事(제시이사)코는 若捨此身(약사차신)이라도 戒終不失(계종불실)이라
從是以後(종시이후)로 所生之處(소생지처)에 當有此戒(당유차계)니
增上惡心者(증상악심자)는 所謂妄說人法二空(소위망설인법이공)하야 未得爲得(미득위득)하야
生大邪見(생대사견)하야 起不信心故(기불신심고)로
犯輕重之垢(범경중지구)하야도 不生怖畏(불생포외)니라
若有因緣(약유인연)하야 或犯輕重等戒(혹범경중등계)하야 雖暫時破(수잠시파)라도
深信因果(심신인과)하야 常生懺悔(상생참회)하면 即不名犯(즉불명범)이라하니라
[원문]
답, 담무참보살계본에 말하였다.
“파계에는 간략하게 두 가지 일이 있다. 그것만이 보살계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나는 보살의 서원을 버리는 일이며, 하나는 잘난체하는 더럽고 추한 마음이다.
이 두 가지의 일을 제하고는 만약 이 몸을 버릴지라도 계는 마침내 잃어버리지 않는다.
지금부터 이후로 태어나는 곳마다 마땅히 이 계가 있다.
더럽고 추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과 세상이 공하다고 거짓말을 하여
얻지도 못하면서 얻었다고 한다.
크나 큰 삿된 소견을 내어서 믿지 않는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가벼운 것이나 무거운 것을 범해도 두려움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인연이 있어서 혹 가볍거나 무거운 계를 범해서 비록 잠간 파할지라도
인과를 깊이 믿어서 항상 참회하면 곧 범했다고 하지 않는다.”하였다.
又曇無讖戒本云(우담무참계본운)
若菩薩(약보살)이 嗔他(진타)하고
受著嗔事(수저진사)하야 不休息者(불휴식자)는 犯重垢罪(범중구죄)나
不犯者(불범자)는 常欲捨嗔(상욕사진)이니
嗔心猶起(진심유기)라도 是名不犯(시명불범)이라하니라
[원문]
또 담무참계본에 말하였다.
만약 보살이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고
화를 내는 일에 대해 집착해서 그칠 줄 모르는 사람은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지만,
범하지 않는 방법은 항상 화를 버리려고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면 화내는 마음이 오히려 일어나더라도 이것은 범하지 않은 것이다
問(문) 於諸佛誘進門中(어제불유진문중)에 方便極多(방편극다)나
省要提携(성요제휴)라하니 何不勸生安養(하불권생안양)하고
豈須破戒(기수파계)하야 翻障淨方(번장정방)이리요
[원문]
문, 모든 부처님들의 중생들을 타이르고 달래어
수행에 나아가게 하는 길에는 방편이 지극히 많다.
그중에서 가장 간단하고 요긴한 방편이
중생들을 이끌고 극락세계로 데리고 가는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어찌 극락에 태어나는 것을 권장하지 않고
지키지도 못할 보살계를 주어 다시 파계하게해서
도리어 정토인 극락에 가는 것을 방해하는가?
答(답) 若生安養(약생안양)인댄 教受九品之文(교수구품지문)이라
上根受戒習禪(상근수계습선)하고 中下行道念佛(중하행도염불)이니
衆生根器不等(중생근기부등)이라 不可守一疑諸(불가수일의제)니라
大乘起信論(대승기신론)에 明諸佛本意(명제불본의)하야 爲攝大乘(위섭대승)하니
初入信之人(초입신지인)이 恐生惡世(공생악세)하야 難得成就(난득성취)일가하야
令迴向往生(영회향왕생)하야 免得退轉(면득퇴전)이라
若見佛法身(약견불법신)하면 易成就法忍(역성취법인)이라하니
此是明文證(차시명문증)이니라
[원문]
답, 만약 극락[安養]에 태어나려고 한다면 구품(九品)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게 된다.
상근기(上根器)의 사람들은 보살계를 받으며 선정을 닦고
중간 근기나 하근기들은 불상을 돌거나 탑을 돌며 염불을 한다.
중생들의 근기가 같지 않기 때문에 한 가지 만을 지켜서 다른 방편들을 의심할 것은 아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모든 부처님의 본래의 뜻을 밝혀서 대승에 포섭하였다.
처음 믿는 사람들이 열악한 세상에 태어나서 성취하기 어려워할까 염려되어
그들에게 극락에 왕생하는 것에 회향하도록 해서 불교에서 물러서지 않게 하였다.
만약 부처님의 법신을 본다면 쉽게 깨달음[法忍]을 성취한다.”하였으니
이것이 분명한 글로써 증명하였다.
上品往生(상품왕생)은 如文殊菩薩云(여문수보살운)
如壯士屈伸臂頃(여장사굴신비경)에 上品見佛(상품견불)하야
便證菩薩初地(변증보살초지)요
如下第九品(여하제구품)은 聞大乘(문대승)하되 不信佛戒(불신불계)하고
或只念佛(혹지염불)하야 乃至臨終迴向(내지임종회향)에 亦得往生(역득왕생)이니
十二劫(십이겁)에 始花開(시화개)나 未得見佛(미득견불)하고
漸證小乘(점증소승)이니 格其圓功(격기원공)컨댄 遲速大隔(지속대격)이라하니라
[원문]
극락세계에 태어나는데 상품에 왕생하는 것은 문수보살이 말씀하시기를,
“마치 힘이 센 장사가 팔을 구부리고 펴는 사이에 상품으로 태어나 부처님을 친견하고
곧 바로 보살의 최초 지위에 오른다.
그러나 최하의 구품에서는 대승법을 듣고도 부처님의 계를 믿지 못하며,
혹은 다만 염불만 하고 임종할 때에 또한 왕생하게 되기도 한다.
십이 겁 만에 비로소 꽃이 피지만 부처님을 친견하지 못하고
차츰 차츰 소승의 경지를 증득하니 원만한 대승의 공력과 비교하자면
더디고 빠른 것이 크게 차이가 있다.”하였다.
若受菩薩戒(약수보살계)하야 發無上菩提心者(발무상보리심자)는
已信大乘(이신대승)이며 已受大法(이수대법)이라
中間設破(중간설파)라도 亦兼念佛懺悔助生(역겸염불참회조생)이며
又得戒威德力(우득계위덕력)과 發大乘心力(발대승심력)이요
不受戒者(불수계자)는 亦造惡業(역조악업)이라
只有念佛之力(지유염불지력)이요 全無戒力(전무계력)과 及聞大乘法等力(급문대승법등력)이니
約世間論(약세간론)컨댄 少力(소력)이 且不如多力(차불여다력)이며
庶人力(서인력)이 不如國王力(불여국왕력)이요
其但念佛名(기단념불명)하야 下品生者(하품생자)는
臨終(임종)에 難值遇善友(난치우선우)니
皆遇緣差(개우연차)하야 又志力不堅(우지력불견)일새 數數間斷(수수간단)하야
惡業深厚(악업심후)하야 善弱難排(선약난배)니
須是衆緣(수시중연)이라야 方能克證(방능극증)이니라
[원문]
만약 보살계를 받아서 최상의 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이미 대승을 믿은 것이며 이미 큰 법을 받아드린 것이다.
중간에 설사 파계하는 일이 있더라도 염불하고 참회하여 왕생을 도우리라.
또한 보살계라는 위덕의 힘과 대승심을 발한 힘을 얻게 되리라.
보살계를 받지 아니한 사람은 또한 악한 업을 지으며
다만 염불한 힘만 있고 보살계의 힘과 대승법을 들은 힘은 전혀 없다.
세간의 논리로 말하자면 적은 수의 힘과 많은 수의 힘은 같지 않으며,
서민의 힘과 국왕의 힘은 같지 않은 것과 같다.
다만 부처님의 이름만을 외워서 하품에 태어나는 사람은
임종에 훌륭한 벗[善友]을 만나기 어렵다.
모두 만나는 인연이 어긋나고 또한 의지력이 견고하지 못해서 자주 자주 중단이 된다.
악업은 깊고 두터우며 선업은 약해서 물리치기 어렵다.
여러 가지 인연이 있어야 비로소 능히 성취할 수 있다.
故(고)로 經云(경운)
非少福衆生(비소복중생)으로 而得生彼(이득생피)라하니
何如大小俱運(하여대소구운)하며 權實兼行(권실겸행)하야
廣備資糧(광비자량)하야 萬善熏發(만선훈발)하야
一心決定(일심결정)하야 可趍蓮臺(가추연대)리오
此論受戒而破者(차론수계이파자)는
或有頓持(혹유돈지)하며 或有漸持(혹유점지)하니
若但令一門念佛往生(약단령일문염불왕생)인댄 則九品虗設(즉구품허설)이요
上品大乘(상품대승)은 孤然可棄(고연가기)니
從上諸佛(종상제불)이 不合制戒(불합제계)와 及禪定多聞(급선정다문)이요
但說一門(단설일문)하야 以度群品(이도군품)하니라
[원문]
그러므로 경전에 말씀하였다.
“복이 없는 중생은 그곳에 태어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대승적 수행과 소승적 수행을 함께 운용하며, 방편과 실법을 겸하여 행해서,
양식이 될 온갖 수행을 널리 갖추고 만 가지 선업이 드러나게 하여,
한 마음이 결정되어서 극락세계의 연화대에 옮겨가는 것과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이 서문에서 이야기한 보살계를 받고 파계하는 사람은
혹은 한꺼번에 가지는 사람도 있고 혹은 차츰 차츰 가지는 사람도 있으니
만약 다만 한 문으로만 염불해서 왕생하게 한다면 구품이라는 말이 허설이다.
상품대승은 고루하여 버려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계와 선정과 다문(多聞)을 제정하지 않고
다만 한 가지 문만을 설해서 중생들을 제도했어야 하리라.
天台教云(천태교운)
以八教網(이팔교망)으로 撈人天魚(노인천어)라하니
有頓有漸(유돈유점)하며 不定秘密(부정비밀)과 藏通別圓(장통별원)으로
如是接機(여시접기)하되 尚不得一(상부득일)이니
且一網孔(차일망공)이 如何張鳥(여하장조)하며
一士夫(일사부)가 如何治國(여하치국)이리요
[원문]
천태교(天台教)에세 말하기를,
“여덟 가지 가르침의 그물로 사람과 천신의 고기들을 다 건진다.”라고 하였다.
돈교, 점교, 부정교, 비밀교, 장교, 통교, 별교, 원교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중생들을 가르쳐도 오히려 하나도 얻지 못할 수가 있다.
그물 구멍 하나가 어떻게 새를 잡을 수가 있으며
한 사람의 지도자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諸佛無有定法故(제불무유정법고)로 號阿耨菩提(호아누보리)라
機病不同(기병부동)하고 法藥有異(법약유이)하야
醫不專散(의부전산)이요 天不長晴(천부장청)이라
或有聞法悟者(혹유문법오자)하며 或有坐禪悟者(혹유좌선오자)하며
或有念經得度(혹유념경득도)하며 或有受戒證眞(혹유수계증진)하니
諸佛大意(제불대의)가 以可度爲懷(이가도위회)라
設不可度者(설불가도자)는 說眞實法(설진실법)하야도 亦不得入(역불득입)이요
若可度者(약가도자)는 說虗妄法(설허망법)이라도 亦得超彼(역득초피)니라
[원문]
모든 부처님들은 고정된 법이 없기 때문에 “최상의 깨달음”이라한다.
사람들의 병이 같지 않고 가르침의 약도 다르다.
의사는 오로지 가루약만 쓰지 않고 하늘은 늘 맑지만은 않다.
혹 어떤 이는 법문을 듣고 깨닫는 사람도 있고,
혹 어떤 이는 좌선을 하여 깨닫는 사람도 있다.
혹 어떤 이는 경전을 읽어서 깨닫는 사람도 있고,
혹 어떤 이는 보살계를 받아서 진리를 증득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부처님들의 큰 뜻은 중생을 제도하는 것으로써 본의를 삼는다.
만약 제도할 수 없는 사람은 진실한 법을 설해도 또한 불법에 들어가지 못하고
제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짓 법을 설해도 또한 저 언덕에 오를 수 있다.
故(고)로 佛言(불언)하되
若以虛妄得度者(약이허망득도자)인댄 我亦妄語(아역망어)라하니라
菩薩(보살)이 修六度萬行(수육도만행)이 如乘死屍過海(여승사시과해)하며
亦如囚禁(역여수금)이 廁孔得脫(측공득탈)이라
終不定一法是(종부정일법시)며 定一法非(정일법비)요
乃至斥妄謀眞(내지척망모진)과 捨此取彼(사차취피)가 並是執縛自繩(병시집박자승)이라
疑網所籠(의망소롱)하고 情見不忘(정견불망)하야 致茲大失(치자대실)이라
[원문]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거짓말로써 제도를 얻을 사람이라면 나도 또한 거짓말을 하리라.”라고 하시니라.
보살이 육도만행을 닦는 것이 마치 시체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것과 같으며,
또한 감옥에 갇힌 죄수가 변소 속을 지나서 탈출하는 것과 같다.
마침내 어느 일정한 한 가지 법이 옳은 것도 아니고,
일정한 한 가지 법이 그른 것도 아니다.
거짓을 배척하여 진실을 도모하는 것과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하는 것이
모두가 포승줄을 잡고 스스로를 묶는 것이다.
의혹의 그물에 덮이고 생각으로 헤아리는 소견[情見]이 없지 아니해서
큰 손실을 불러오리라.
三乘十二分教(삼승십이분교)는 惟醫我執愚心(유의아집우심)이라
執盡情亡(집진정망)하면 智生道現(지생도현)이니
故(고)로 經云(경운) 眼病見空花(안병견공화)라
除翳不除花(제예불제화)며 妄心執有法(망심집유법)이라 遣執不遣法(견집불견법)이라하니
若悟大道圓通之人(약오대도원통지인)은
尚不見一法是(상불견일법시)니 何有一法非(하유일법비)리오
盡十方世界(진시방세계)에 未有一人成佛(미유일인성불)이며
亦不見一人作衆生(역불견일인작중생)이니
地獄在何方(지옥재하방)이며 天堂居何處(천당거하처)리오
不省愚蒙翳目(불성우몽예목)하야 爭攀空裏之花(쟁반공리지화)하니
豈察妄想疑根(기찰망상의근)이리요
徒怖暗中之鬼(도포암중지귀)하나니 實可怜愍(실가령민)이며
徒自驚嗟(도자경차)로다
[원문]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教)는 오직 아집과 어리석은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다.
아집이 다하고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情]이 없어지면 지혜가 생기고 도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눈병 때문에 허공에 꽃이 보인다.
눈병을 치료하면 꽃은 제거하지 않아도 되듯이 망령 된 마음으로 집착하니 법이 있다.
그러므로 집착만 버리면 법은 버리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였다.
만약 큰 도를 깨달아 원만하게 통한 사람은
오히려 한 법도 옳은 것을 보지 않거니 어찌 한 법인들 그른 것이 있겠는가.
온 시방세계에 한 사람도 성불한 이가 있지 않으며,
또한 한 사람도 중생된 사람을 볼 수 없다.
지옥이 어디에 있으며 천당이 어디에 있겠는가.
어리석은 사람은 눈병 난 것을 살피지 못하고 허공 속에 있는 꽃만 부여잡으려 한다.
어찌 망상과 의혹의 근본을 살필 수 있겠는가.
한갓 어두운데서 잘못 본 귀신을 두려워하니 실로 가련하고 불쌍하도다.
나 스스로 놀라고 탄식할 뿐이로다.
吾今依佛語故(오금의불어고)며 遵至教故(준지교고)로
曲順機宜(곡순기의)하야 隨緣舒卷(수연서권)하야
有求大道者(유구대도자)면 說一乘之妙旨(설일승지묘지)하고
來求小行者(내구소행자)면 布六行之權門(포육행지권문)하야 大小兼弘(대소겸홍)하며
禪律俱運(선률구운)하노니 云云自彼(운운자피)라
於我奚爲(어아해위)리요 何得專愚(하득전우)하야
生於妄見(생어망견)하야 執權謗實(집권방실)하며
毀大怖空(훼대포공)가 螢燄(형염)이 何齊日馭之光(하제일어지광)이며
蚊嘴(문취)가 豈盡滄溟之底(기진창명지저)리요
逆風執炬(역풍집거)에 自取焚燒(자취분소)하며
漏管窺天(누관규천)에 徒抱慙耻(도포참치)니라
今遵佛旨(금준불지)하야 古聖圓文(고성원문)을 纂集施行(찬집시행)하야
度有緣者(도유연자)하노니
溥願法界含識(부원법계함식)이 凡有見聞(범유견문)하니는
受菩薩戒而行菩薩心(수보살계이행보살심)하며
發菩提願而圓菩提果耳(발보리원이원보리과이)니라 (終)
[원문]
나는 지금 부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까닭에,
그리고 지극한 가르침을 따르는 까닭에
근기와 수준의 정도에 순응하여 인연을 따라 펴기도 하고 거두기도 한다.
큰 도를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승의 묘지(妙旨)를 설하고,
작은 수행을 구하면 육바라밀의 방편문을 펼쳐서 크고 작은 것을 겸하여 넓히고,
선정과 계율을 함께 운용하여 지금까지 논해 온대로
이러이러하게 자신의 뜻과 다른 이의 생각을 함께하였다.
어떻게 나에게만 맞게 할 수 있겠는가.
어찌 오로지 어리석은 이는 망령된 소견을 내어 방편을 집착하여 실법을 비방하며
대승을 훼방하고 공의 이치를 두려워하는가.
반딧불 빛이 어찌 태양빛과 같을 수 있으며
모기의 부리가 어찌 바닷물을 다 마실 수 있으리오.
역풍을 향해 횃불을 들면 스스로를 불에 태우게 되고,
좁은 대쪽 구멍으로 하늘을 보면 한갓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 부처님의 뜻을 따라 옛 성인들의 훌륭한 가르침을 모으고 베풀어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제도하려한다.
법계의 모든 중생으로서 무릇 보고 듣는 이들은
보살계를 받아서 보살의 마음을 실천하고
보리의 원을 발해서 보리의 성과(聖果)를 원만히 하기를 널리 바랄 뿐이다.
보살계 조항의 열 가지 무거운 계란
“1, 살생하지 말라. 2, 훔치지 말라. 3, 음행하지 말라. 4, 거짓말 하지 말라.
5, 술 팔지 말라. 6,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7,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지 말라. 8, 자기의 것을 아끼려고 남을 욕하지 말라.
9, 성내지 말고 참회하는 것을 잘 받아라. 10,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는 것이다.
10계의 내용들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 부처님의 계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원칙에서 보면
사람 사람들이 모두 부처님이거늘 어찌 살생할 수 있으며
어찌 부처님의 물건을 훔칠 수 있으며
어찌 부처님과 음행할 수 있으며
어찌 부처님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겠는가.
보살계의 원칙에서 이해하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치우치지 않는 지혜로써 중도적인 실천이어야 한다.
만약 치우치면 바른 지계가 아니다.
마흔 여덟 가지 가벼운 계[四十八輕垢]의 계목(戒目)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즉 보살계는 부처님의 계이며 사람 사람들에게 이미 다 갖춰져 있다는
불성계의 원칙에서 볼 줄 아는 근본 취지의 안목[宗眼]을 잃지 않고 보아야 하리라.
“1, 스승과 벗을 공경하라. 2, 술을 마시지 말라. 3, 고기를 먹지 말라.
4, 오신채(五辛菜)를 먹지 말라. 5, 계를 범한 이는 참회시키라.
6, 법사에게 공양 올리고 법을 청하라. 7, 법문하는 데는 가서 들으라.
8, 대승법을 그르게 여기지 말라. 9, 병든 이를 잘 간호하라.
10, 죽이는 기구를 마련하여 두지 말라. 11, 나라의 사신이 되지 말라.
12, 나쁜 마음으로 장사하지 말라. 13, 비방하지 말라. 14, 불을 놓지 말라.
15, 다른 법으로 교화하지 말라. 16, 이익을 탐내지 말고 옳게 가르치라.
17, 세력을 믿고 요구하지 말라. 18, 아는 것도 없이 스승 되지 말라.
19, 두 가지로 말하지 말라. 20, 산 것을 놓아 주고 죽는 것을 구제하라.
21, 성내고 때려 원수 갚지 말라. 22, 교만한 생각을 버리고 법문을 청하라.
23, 교만한 생각으로 잘못 일러 주지 말라. 24, 불교를 잘 배우라.
25, 대중을 잘 통솔하라. 26, 혼자만 이익을 받지 말라.
27, 별청(別請)을 받지 말라. 28, 스님들을 별청하지 말라.
29, 나쁜 직업으로 살지 말라. 30, 세속인과 나쁘게 사귀지 말라.
31, 값을 치루고 구해 내라. 32, 중생들을 해롭게 하지 말라.
33, 나쁜 짓을 생각하지 말라. 34, 늘 보리심을 생각하라.
35, 원을 발하라. 36, 서원을 세우라. 37, 위험한 데 다니지 말라.
38, 높고 낮은 차례를 어기지 말라. 39, 복과 지혜를 닦으라.
40, 가려서 계를 일러 주지 말라. 41, 이익을 위하여 스승 되지 말라.
42, 계를 받지 아니한 이에게 포살(布薩)하지 말라. 43, 계를 범할 생각을 내지 말라.
44, 경전에 공양하라. 45, 중생들을 항상 교화하라. 46, 높은 상에 앉아서 법문하라.
47, 옳지 못한 법으로 제한하지 말라. 48, 불법을 파괴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범망경에는 58조목의 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지만
글이 많아서 그 제목만을 인용하였다.
중생이 부처님의 계를 받으면 부처님의 지위에 오른다는 말이 있었다.
그 이치를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왕이 왕자를 낳으면 백성들이 공경하고 왕위를 계승한다.
설사 그 왕자가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는 역시 변함없는 왕자다.
죄를 다소 짓더라도 형벌을 형식적으로 아주 가볍게 받고 만다.
보살계는 받기만 하고 잘 지키지 못해도 성인들의 종자 가운데 태어난다.
그러므로 좀 부족해도 그도 역시 성인이다.
그와 같은 위력이 있다.
보살계를 받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사실을 잘 알아서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불교의 진리를 바르게 공부한 사람도 역시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남악 혜사(南岳惠思,515-577)스님은
보살계를 받는 의식[受菩薩戒儀]을 말씀하시면서
보살계의 여덟 가지 수승한 점을 소개하였다.
자세히 전문을 인용한다.
1. 도에 이르는 것이 수승하다.
보살계를 받으면 마치 큰 붕새가 단번에 높이 올라 십만 구 천리를 날듯이
이 보살계는 도에 나아가는 것이 매우 빨라서
발심만 하더라도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를 넘어서버리고
성문과 연각들보다 최상의 깨달음에 앞질러가기 때문이다.
2. 발심이 수승하다.
한 순간 큰 자비와 지혜의 마음을 내면 성문과 연각의 경계를 초월한다.
마치 옛날 어린 사미가 있었는데 보리심을 발하므로
노 아라한이 도리어 시자가 되어 공경하고 옷과 발우와 삿갓을 들어주며
앞길을 비켜 주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 나이가 많은 노 아라한이 어린 사미를 시자로 삼고 길을 가는데
사미가 문득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계를 받고자 하는 생각을 하였다.
앞서가던 노 아라한이 타심통으로 그 사실을 알고는
사미가 들고 가던 짐과 삿갓을 도리어 받아들고 앞서가던 길을 비켜주고
뒤에 따라가면서 공경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3. 복이 수승하다.
가령 염부제 안에 가득한 아라한들을 공양하더라도
한 마리의 큰 붕새에게 공양하는 것 보다 못하다.
왜냐하면 이 붕새는 앞서 보살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4. 공덕이 수승하다.
보살계를 받는 것은 비유하면 태양이 어디든지 비추는 것과 같고,
성문계를 받는 것은 마치 반딧불처럼 그 빛이 매우 작은 것과 같다.
도저히 서로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5. 죄를 받는 것이 가벼운 수승함이다.
보살계를 받은 뒤에 설사 파계를 하더라도
오히려 외도들의 계를 받지 아니한 사람보다 훨씬 수승하다.
외도들은 삿된 견해 때문에 영원히 악도에 잠겨있어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
그러나 파계를 한 사람은 계의 위력이 있어서
설사 악도에 떨어졌더라도 죄를 받는 것이 아주 가볍다.
만약 지옥에 떨어지면 지옥의 왕이 되고,
만약 축생에 떨어지면 축생의 왕이 되고,
귀신들에게서도 귀신들의 왕이 되고,
인간에서는 인간의 왕과 나라의 왕이 되고,
천당에 태어나면 천당의 왕이 된다.
태어나는 곳마다 왕의 지위를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기를
“계를 범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보살이라 이름 한다.
그는 계를 깨뜨릴 것이 있지만 범할 것도 없는 사람은
계를 깨뜨릴 것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6. 모태에서의 수승함이다.
보살이 모태에 있을 때 항상 천신과 왕과 팔부제선신(八部諸善神)의 왕들이
지키고 보호하는 바가 되기 때문이다.
7. 신통이 수승하다.
대지를 변화시켜 황금과 칠보로 만들고
장강(長江)을 저어서 소락과 제호를 만든다.
능히 한 순간에 백 천세계를 초월하고
하루에 백 천 중생들을 교화하기 때문이다.
8. 과보가 수승하다.
연화장세계에 태어나서 법성신(法性身)을 증득하고,
한 번 참되고 항상한[真常]진리를 얻으면
영원히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보살계는 탐진치 삼독과 팔만사천 번뇌가 꽉 차 있더라도
자신과 모든 사람들이 이미 부처라는 사실을 들어 이해하고 믿고 살면
그것으로 불교공부는 끝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부처님 이상 가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위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내용들은 모두가 이 사실 한 가지를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