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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데드팬 미학 의 핵심
[1] 데드팬의 기원과 미학적 개념의 형성
1. 코미디 용어로서의 데드팬
(1) 데드팬은 원래 미학 용어가 아니라 20세기 초 미국에서 사용된 코미디 용어이다.
① ‘dead’는 ‘죽은’을 뜻한다.
② ‘pan’은 얼굴을 뜻하는 속어이다.
③ ‘deadpan’은 어떤 상황에서도 얼굴 표정이 변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2) 데드팬은 처음에 무표정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배우의 연기 방식을 가리켰다.
① 무대 위에서 의자가 무너지고 소품이 쏟아져도 배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②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계속 대사를 이어간다.
③ 과장된 표정이 아니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무표정 자체가 웃음을 만든다.
(3) 따라서 데드팬의 원래 의미는 ‘무표정한 유머’이다.
① 특정한 한 사람이 만든 용어라기보다 미국 대중문화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말로 보인다.
2. 미학적 개념으로의 확장
(1) 데드팬이 언제부터 미술과 사진의 용어로 사용되었는지는 한 사람과 한 시점으로 특정하기 어렵다.
① 코미디에서 사용되던 말이 점차 미술 비평의 언어로 스며든 것으로 볼 수 있다.
② 먼저 작품과 태도가 나타나고 나중에 이를 설명하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2) 미술사에는 작품이 먼저 등장하고 용어가 나중에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① 베허 부부가 1960년대부터 냉정하고 반복적인 산업사진을 제작했을 때 자신들을 ‘데드팬 사진가’라고 부르지 않았다.
② 워홀이 캠벨 수프 캔을 반복해 제시하거나 카뮈가 감정을 절제한 문장을 쓸 때도 자신의 작업을 데드팬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③ 인상주의는 처음에 비평가가 조롱의 의미로 붙인 이름이었고, 미니멀리즘도 작가들이 직접 붙인 이름이 아니었다.
(3) 용어가 없다고 해서 그 미학과 태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① 이름이 붙는 순간 흩어져 있던 작업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되고 공유된다.
② 데드팬도 20세기 문학·미술·사진 곳곳에 존재하던 공통된 태도가 하나의 이름 아래 묶인 것이다.
3. 철학적 연결
(1) 데드팬의 태도는 칸트의 무관심성과 하이데거의 도구적 기능으로부터의 이탈에 연결해 생각할 수 있다.
① 칸트는 아름다움을 이해관계와 욕망에서 벗어난 무관심적 판단과 관련지었다.
② 하이데거의 사유에서는 사물이 일상적인 도구의 기능에서 벗어날 때 다르게 드러나는 문제가 중요하다.
③ 다만 이는 데드팬의 직접적인 기원이라기보다 그 미학적 의미를 넓게 해석한 연결이다.
[2] 개념미술과 데드팬 사진의 형성
1. 1960년대 개념미술
(1) 데드팬 사진의 중요한 뿌리는 1960년대 개념미술에서 찾을 수 있다.
(2) 개념미술가들은 사진을 감정의 표현 수단이 아니라 기록과 제시의 도구로 사용했다.
① 감동적이거나 아름다운 사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② 사실이나 개념을 냉정하게 전달하기 위해 대상을 일정한 방식으로 기록하고 제시했다.
③ 사진가의 감정보다 사실·기록·개념·배열이 앞에 놓였다.
2. 주요 사례
(1) 에드 루샤는 스물여섯 개의 주유소를 비슷한 방식으로 촬영하여 책으로 묶었다.
① 사진을 아름답게 만들기보다 주유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건조하게 기록하고 배열했다.
(2) 더글러스 휴블러는 특정한 장소와 시간을 기록한 사진을 행정 문서처럼 제시했다.
① 사진은 감정적 표현물이 아니라 시간·장소·행위를 증명하는 자료처럼 기능했다.
② 작품의 핵심은 사진 한 장의 아름다움보다 기록 방식과 그것이 가리키는 개념에 있었다.
(3) 한스 하케는 사회적 사실을 보고서 형식으로 냉정하게 제시했다.
① 사진과 자료는 감상적인 아름다움보다 사회적 현실을 조사하고 드러내는 증거로 사용되었다.
(4) 이들의 사진은 공통적으로 관료적이고 건조하며 설명적인 성격을 보였다.
① 예쁘게 찍으려는 욕망을 억제하고 사실과 개념을 비개성적으로 제시했다.
3. 베허 부부와 제자들
(1) 베허 부부는 개념미술과 나란히 산업시설을 냉정하고 반복적인 방식으로 촬영했다.
① 일정한 거리와 시점, 비슷한 빛과 구도를 유지했다.
② 대상을 감정적으로 해석하기보다 동일한 조건에서 비교할 수 있도록 제시했다.
(2) 이러한 작업 방식은 베허 부부의 제자들에게 이어졌다.
① 1990년대에는 미술계의 주류이자 동시대 예술의 중요한 중심축으로 부상했다.
② 이 시기부터 사진은 현대미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3] 데드팬의 핵심 원리
1. 감정의 비개입
(1) 데드팬 사진의 핵심은 사진가의 감정과 주관적 반응을 작품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데 있다.
① 극적이거나 감동적인 순간을 강조하지 않는다.
② 대상이 그곳에 있고 카메라가 그것을 기록한 것처럼 냉정하게 제시한다.
③ 사진가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 사진 매체의 특성을 최대한 밀어붙인다.
(2)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고정된 촬영 규칙이나 형식 문법이 아니다.
① 무표정하게 촬영했다는 외형만으로 데드팬이 되는 것은 아니다.
② 중요한 것은 감정과 해석을 앞세우지 않고 대상과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이다.
③ 데드팬은 기존 예술사진의 감동·아름다움·극적 표현을 벗어나려는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이다.
2. 무감정이 만드는 역설
(1)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이 오히려 강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① 작가가 의미를 미리 해석해 주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사진과 직접 대면해야 한다.
② 설명이 없기 때문에 사진을 더 오래 보고 스스로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③ 아무런 감정도 요구하지 않는 이미지 앞에서 관객은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의식한다.
(2) 이러한 작동 방식은 카뮈의 『이방인』 첫 문장과 닮아 있다.
①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②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문장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충격을 준다.
③ 데드팬 사진도 감정을 강조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의 감정을 불러낸다.
3. 장르가 아니라 태도
(1) 샬럿 코튼은 그의 책에서 베허 스쿨 이후의 데드팬 사진을 건축·풍경·초상의 세 범주로 나누어 보여준다.
① 이러한 분류는 데드팬을 하나의 장르나 양식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② 그러나 데드팬은 단순한 무표정의 묘사나 촬영 기술이 아니다.
(2) 데드팬은 세계·사진·관객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미학적 태도이다.
① 사진이 침묵할수록 관객은 “왜 이것을 이렇게 찍었는가”라고 묻게 된다.
② 그 질문을 통해 작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사진에 관한 생각, 시대를 읽는 시선이 드러난다.
③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사진 앞에서 관객은 결국 작가의 태도를 생각하게 된다.
[4] 문학·미술과 데드팬적 태도
1. 20세기 예술 전반의 흐름
(1) 데드팬은 사진에만 나타난 독립적인 현상이 아니다.
① 20세기 문학·미술·사진이 넓게 공유한 태도이다.
② 사진은 이러한 태도가 특히 선명하게 드러나는 매체이다.
2. 문학의 데드팬
(1) 카뮈의 『이방인』, 카프카의 『변신』, 로브그리에의 누보로망에는 데드팬과 유사한 태도가 나타난다.
① 서술자는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지 않는다.
② 사건이나 사물을 과장해서 해석하지 않고 사실처럼 제시한다.
③ 독자는 서술자의 감정적 안내 없이 작품과 직접 대면한다.
(2) 롤랑 바르트는 『글쓰기의 영도』에서 감정과 수사를 최소화한 글쓰기를 ‘에크리튀르 블랑슈’, 곧 ‘백색 글쓰기’로 개념화했다.
①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색채를 앞세우지 않는 백지 같은 글쓰기이다.
② 데드팬은 이러한 20세기 예술의 비개성적 태도가 사진에서 특히 분명하게 나타난 것이다.
3. 카프카의 『변신』
(1) 『변신』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①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이 거대한 해충으로 변해 있었다.”
(2) 이 문장에서 결정적인 것은 서술자의 반응이 없다는 점이다.
① 인간이 벌레로 변했는데도 서술자는 놀라지 않는다.
② 이어지는 내용은 그레고르가 출근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걱정하는 것이다.
③ 불가능하고 충격적인 사건이 일상적인 문법으로 서술된다.
(3) 카프카식 데드팬은 부조리를 설명하거나 정당화하지 않고 이미 일어난 사실처럼 제시한다.
① 독자는 감정적·해석적 단서를 얻지 못한 채 혼자서 상황과 대면한다.
② 서술자의 침묵과 반응 없음이 독자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4) 카프카의 세계에서 관료제·법·아버지의 권위는 설명되지 않는다.
① 그것들은 그저 존재하며 인물은 복종하거나 좌절한다.
② 서술자는 왜 그런지 묻지 않는다.
③ 이러한 ‘왜’의 부재가 부조리를 더욱 거대하고 압도적으로 만든다.
4. 미술의 데드팬적 흐름
(1) 미술에서는 뒤샹이 1917년에 제시한 변기를 하나의 원점으로 볼 수 있다.
① 워홀의 캠벨 수프 캔과 미니멀리즘 조각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② 작가의 감정적 표현보다 사물의 제시·반복·배열·비개성적 형식이 앞에 놓인다.
[5] 사진의 매체성, 저자의 죽음과 관객의 탄생
1. 가장 사진적인 모더니즘 미학
(1) 사진은 사진가의 신체적 흔적과 감정을 작품 전면에 직접 드러내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① 회화의 붓질처럼 작가의 손과 몸의 흔적이 화면에 직접 나타나지 않는다.
② 카메라는 대상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계적으로 기록하는 것처럼 보인다.
③ 데드팬은 이러한 사진의 특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미학이다.
(2) 데드팬은 매체의 본질을 추구한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가장 사진적인 미학으로 볼 수 있다.
① 사진은 다른 예술을 흉내 내지 않고 자신의 매체적 특성을 드러낸다.
② 이러한 특성은 사진을 독립된 예술로 인정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2. 저자의 죽음과 관객의 탄생
(1) 사진의 매체적 특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 역설이 발생한다.
① 매체의 자율성은 강화되지만 창작자로서 작가의 존재는 작품 전면에서 사라진다.
② 그 결과 ‘저자의 죽음’과 ‘관객의 탄생’이 동시에 나타난다.
(2) 바르트는 1966년 「저자의 죽음」에서 작품의 의미를 저자의 의도만으로 확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① 저자가 물러난 자리에서 관객과 독자가 작품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② 이 글은 현대미술과 사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글이다.
3. 작가 중심에서 관객 중심으로
(1) 동시대 예술은 작가가 의미를 독점하는 닫힌 예술에서 관객이 의미 형성에 참여하는 열린 예술로 이동했다.
① 작가는 작품의 의미를 완전히 결정하지 않는다.
② 관객이 작품과 대면하고 질문하며 의미를 만들어낸다.
③ 데드팬 미학은 이러한 관계를 통해 오늘날에도 비판적 긴장을 유지한다.
(2) 데드팬은 작가의 개입을 감추며 대상을 냉정하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타블로 비방과 반대된다.
① 타블로 비방은 치밀하게 연출한 장면을 통해 작가의 개입과 구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② 그러나 관객을 의미 형성의 주체로 만들려는 태도에서는 서로 연결된다.
[6] 푼크툼의 부재와 침묵의 미학
1. 베허 부부의 사진과 푼크툼
(1) 바르트가 『밝은 방』에서 말한 푼크툼은 관객을 개인적으로 찌르고 상처 입히는 요소이다.
① 베허 부부의 사진에는 이러한 푼크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② 화면의 모든 요소가 균등하게 제시되며 어느 하나도 특별히 관객을 찌르지 않는다.
③ 대상은 분류되고 코드화되며 중립화된 시선 속에 놓인다.
(2) 그러나 푼크툼의 부재 자체가 역설적으로 하나의 푼크툼처럼 작용할 수 있다.
① 아무것도 관객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관객을 건드린다.
② 아무런 감정도 요구하지 않는 이미지 앞에서 관객은 자신의 감정을 의식한다.
③ 카프카의 서술자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 독자를 불안하게 만들듯이, 베허 부부의 사진은 아무것도 찌르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으로 관객을 찌른다.
2. 침묵과 흔적
(1) 사진의 침묵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① 작가의 설명이 물러난 자리를 관객의 질문과 해석이 채운다.
② 시간이 흐르면 촬영된 대상의 소멸과 부재가 멜랑콜리의 정서를 만들 수도 있다.
③ 그러나 데드팬에서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침묵의 미학과 흔적의 미학이다.
[7] 태도와 형식 문법의 차이
1. 기존 문법을 벗어나려는 태도
(1) 태도와 형식 문법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① 데드팬이 혁신적이었던 이유는 기존의 사진 문법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② 더 중요한 것은 기존 문법을 벗어나려는 의도와 태도이다.
③ 동시대 예술은 이러한 태도를 요구한다.
(2) 데드팬은 겉보기에 비예술처럼 보인다.
① 작가의 감정과 존재가 작품 안에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② 작가가 무엇을 느끼고 말하려는지 즉시 확인하기 어렵다.
③ 그러나 바로 이러한 침묵이 관객을 작품의 주체로 만든다.
2. 새로운 문법의 관습화
(1) 처음에 혁신적이었던 형식도 반복되면 다시 관습적인 문법이 된다.
① 같은 대상을 동일한 방식으로 촬영하고 격자형으로 배열하는 유형학적 사진은 이미 익숙한 형식이 되었다.
② 기존 문법을 벗어난 혁신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관습으로 굳어진 것이다.
③ 따라서 데드팬의 핵심은 유형학적 배열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문법을 계속 의심하는 태도에 있다.
3. 유형학 이후의 작업
(1) 루카스 야산스키와 마르틴 폴라크의 『영주의 사냥터』는 사진 배치가 흥미로운 작업이다.
① 익숙한 유형학적 배열을 반복하지 않는다.
② 사진들의 관계와 제시 방식에서 새로운 긴장을 만들어낸다.
(2) 로니 혼의 작업은 가장 사진적인 맛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① 그 사진성은 단순히 전시장에 사진을 배열하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② 작업을 수행하고 반복한 결과로서 사진이 존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8] 레디메이드와 퍼포먼스로서의 사진
1. 사진예술의 두 가지 성격
(1) 사진의 예술성은 레디메이드와 퍼포먼스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
① 사진은 현실에 이미 존재하는 대상과 장면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레디메이드적이다.
② 사진가가 특정한 장소에 가서 대상을 마주하고 촬영하는 행위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퍼포먼스적이다.
③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현실의 선택과 사진가의 수행이 결합된 결과이다.
2. 현대미술과 사진의 관계
(1) 이러한 관점에서는 현대미술 그 자체가 이미 사진이라고 볼 수 있다.
① 조각·회화·설치도 대상을 선택하고 행위를 수행하며 그 결과를 기록하고 제시한다.
② 사진은 하나의 장르를 넘어 현대미술의 작동 방식 자체와 깊이 연결된다.
[9] 「무언가 아무것도 아닌 것」과 데드팬의 확장
1. 대상과 시선의 확장
(1) 「무언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란 중요한 대상이 아니라, 평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평범하고 사소한 대상과 사물을 의미한다.
① 버려진 물건·낡은 공간·얼룩·습기·모서리처럼 주변에 흔히 있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것들이다.
② 사진의 대상은 산업시설·건축·풍경·초상에서 ‘무언가이면서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소한 사물과 현상으로 확장된다.
③ 대상은 달라졌지만 이를 과장하거나 아름답게 꾸미지 않고 냉정하게 제시하는 데드팬적 태도는 이어진다.
2. 판단의 유보와 낯설게 보기
(1) 사진가는 하찮은 대상에 특별한 가치나 아름다움을 미리 부여하여 설명하지 않는다.
① 대상에 감정적인 의미를 덧붙이거나 특정한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② 하찮은 대상을 위대하거나 아름다운 대상으로 바꾸려 하지 않고 그것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③ 판단이 유보될수록 평범한 대상은 기존의 기능과 익숙한 의미에서 벗어나 낯설게 보인다.
3. 아무것도 아닌 대상의 가시화
(1) 데드팬의 냉정한 시선은 평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지나쳤던 대상을 보이게 만든다.
① 평범한 대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찮고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② 사진은 그 대상을 선택하고 프레임 안에 고립함으로써 다시 바라보게 한다.
③ 사진가는 대상의 중요성을 직접 선언하지 않지만 촬영하고 제시하는 행위 자체가 “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찍었는가”라는 질문을 만든다.
4. 레디메이드와 관객의 역할
(1)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대상과 사물을 촬영하는 작업은 현실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선택해 예술의 장으로 옮긴다는 점에서 레디메이드와 연결된다.
① 사진가는 새로운 사물을 만들기보다 이미 존재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되어 온 대상을 선택한다.
② 대상은 사진으로 옮겨지는 순간 원래의 기능과 생활의 맥락에서 일부 분리된다.
③ 대상 자체뿐 아니라 하찮은 것을 선택하여 바라보게 만든 사진가의 태도가 작품의 핵심이 된다.
(2) 사진이 대상의 의미를 직접 설명하지 않을수록 관객의 역할은 커진다.
① 관객은 “왜 이런 아무것도 아닌 것을 찍었는가”라고 묻게 된다.
② 대상에 남은 흔적·시간·부재·기능·주변 환경을 스스로 상상한다.
③ 사진의 침묵은 의미의 부재가 아니라 관객이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열어놓은 상태이다.
5. 형식이 아니라 태도의 확장
(1) 아무것도 아닌 것을 찍은 모든 사진이 데드팬이라는 뜻은 아니다.
① 아무것도 아닌 대상을 무표정하게 촬영했다는 외형만으로 데드팬이 되는 것은 아니다.
② 핵심은 감정과 해석을 앞세우지 않고 하찮은 대상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이다.
③ 따라서 데드팬이라는 고정 형식의 확대가 아니라, 하찮은 대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데드팬적 태도의 확장으로 이해해야 한다.
(2) 데드팬의 확장은 사진의 대상과 의미 형성의 주체를 함께 확장한다.
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졌던 평범한 대상과 사물도 사진의 주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② 사진가의 감정과 설명이 물러난 자리에서 대상은 익숙한 기능과 기존의 의미로부터 잠시 벗어난다.
③ 관객은 그 하찮은 대상이 선택된 이유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가치판단과 보는 습관을 돌아보게 된다.
④ 결국 데드팬은 사진의 대상을 사소하고 하찮은 것까지 넓히는 동시에 작가 중심의 의미를 관객에게 열어주는 미학이다.
[10] 데드팬 미학의 핵심 명제 정리
1. 데드팬은 원래 미학 용어가 아니라 무표정한 유머를 뜻하던 20세기 초 미국의 코미디 용어이다.
2. 데드팬 미학은 한 사람이 만든 이론이 아니라 문학·미술·사진에 흩어져 있던 비감정적 태도가 나중에 하나의 이름으로 묶인 것이다.
3. 데드팬 사진의 직접적인 뿌리는 1960년대 개념미술과 베허 부부의 냉정하고 반복적인 기록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4. 데드팬은 사진을 아름다움과 감정의 표현물이 아니라 사실·개념·기록을 제시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5. 데드팬의 핵심은 무표정한 촬영 형식이 아니라 작가의 감정과 해석을 작품 전면에 드러내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6. 데드팬 사진은 대상을 과장하거나 아름답게 꾸미지 않고 일정한 거리에서 냉정하게 제시한다.
7. 작가가 감정과 해석을 절제할수록 관객은 사진과 직접 대면하고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
8.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사진의 침묵은 의미의 부재가 아니라 관객에게 의미 형성의 자리를 열어주는 방식이다.
9. 데드팬 사진에서는 작가의 존재가 물러나면서 ‘저자의 죽음’과 ‘관객의 탄생’이 동시에 일어난다.
10. 아무것도 관객을 찌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관객을 찌를 수 있으며, 푼크툼의 부재가 역설적인 푼크툼으로 작용할 수 있다.
11. 데드팬은 문학의 무감정한 서술, 뒤샹의 레디메이드, 워홀의 반복, 미니멀리즘의 비개성적 형식과 연결되는 20세기 예술 전반의 태도이다.
12. 데드팬은 사진가의 흔적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사진 매체의 특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가장 사진적인 미학 가운데 하나이다.
13. 데드팬은 작가의 주관성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선택·거리·촬영·배열 속에 작가의 태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14. 데드팬은 고정된 장르나 촬영법이 아니므로 무표정하게 찍었다고 해서 모두 데드팬 사진이 되는 것은 아니다.
15. 데드팬의 혁신성은 특정한 형식을 반복하는 데 있지 않고 기존의 감정적·미적 사진 문법을 벗어나려는 급진적 태도에 있다.
16. 유형학적 배열은 처음에는 혁신적이었지만 반복되면서 다시 관습적인 형식이 되었으므로 데드팬을 격자형 배열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17. 사진은 현실에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레디메이드적이고, 사진가가 대상을 찾아가 촬영한다는 점에서 수행적이다.
18. 데드팬의 시선은 산업시설·건축·풍경·초상에서 평범하고 사소하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진 대상과 사물로 확장된다.
19. 데드팬은 하찮은 대상을 위대하거나 아름답게 바꾸지 않고 그것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제시한다.
20. 사진은 아무것도 아닌 대상을 프레임 안에 고립함으로써 “왜 이것을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만든다.
21. 데드팬은 중요하다고 여겨진 대상과 하찮다고 여겨진 대상 사이의 위계를 해체하고, 모든 대상을 동등한 시선 아래 놓는다.
22. 데드팬 사진의 침묵 앞에서 관객은 대상이 선택된 이유를 생각하며 자신의 가치판단과 보는 습관을 돌아보게 된다.
23. 결국 데드팬은 사진의 대상을 확장하고 작가가 독점하던 의미를 관객에게 열어주는 침묵과 거리의 미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