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Car il faut bien que s’'il y a une realite dans les essences ou possibilites, ou bien dans les verites eternelles, cette
realite soit fondee en quelque chose d’'existant et d’'actuel ; et par consequent dans l’'existence de l’'Etre necessaire, dans lequel l’'essence renferme l’'existence, ou dans lequel il suffit d’'etre possible pour etre actuel (§ 184-189, 335).
왜냐하면 만일 본질 또는 가능성 안에 어떤 실재성이 있다면, 또는 영원 진리들 안에 실재성이 있다면, 이 실재성은 실재적이고 현실적인 사물 안에, 필연적인 존재의 실존 따라 정초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본질이 실존을 포함하고 또, 현실적이기 위해 가능하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45. Ainsi Dieu seul (ou l’'Etre necessaire) a ce privilege qu’'il faut qu’'il existe s’'il est possible. Et comme rien ne peut empecher la possibilite de ce qui n’'enferme aucunes bornes, aucune negation, et par consequent, aucune contradiction, cela seul suffit pour connaitre l’'existence de Dieu a priori. Nous l’'avons prouvee aussi par la realite des verites eternelles. Mais nous venons de la prouver aussi a posteriori puisque des etres contingents existent, lesquels ne sauraient avoir leur raison derniere ou suffisante que dans l’'etre necessaire, qui a la raison de son existence en lui-meme.
신만이, 또는 필연적 존재만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존재해야 한다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떤 부정, 어떤 제한도 포함하지 않는 것의 가능성을 아무것도 방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선험적으로 신의 실존을 인식하기 위해서 충분하다. 우리는 영원진리의 실재를 통해 증명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또한 뒤에서부터 증명하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우연적 존재자들은 실존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존의 이유를 자기 안에서만 가지는 필연적 존재만이 우연적 존재자들의 충족이유 또는 최종이유를 가질 수 있다.
46. Cependant il ne faut point s’'imaginer avec quelques-uns, que les verites eternelles, etant dependantes de Dieu, sont arbitraires et dependent de sa volonte, comme Descartes parait l’'avoir pris et puis M. Poiret. Cela n’'est veritable que des verites contingentes, dont le principe est la convenance ou le choix du meilleur au lieu que les verites necessaires
dependent uniquement de son entendement, et en sont l’'objet interne (§ 180-184, 185, 335, 351, 380).
그럼에도 데카르트와 푸아레가 그렇게 파악했던 것처럼 영원진리들이 신에 의존하기 때문에, 실제적이고, 신의 의지에 의존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들은(영원진리) 적합 또는 최선의 선택을 원리로 삼는 우연적 진리들에서만 참일 뿐이며, 반면에 필연적 진리는 신의 오성에만 의지하고, 신의 내적 대상이 된다.
47. Ainsi Dieu seul est l’'unite primitive, ou la substance simple originaire, dont toutes les Monades creees ou derivatives sont des productions et naissent, pour ainsi dire, par des Fulgurations continuelles de la Divinite de moment en moment, bornees par la receptivite de la creature, a laquelle il est essentiel d’'etre limitee (§ 382-391, 398, 395).
오로지 신은 근원적인 단일성 혹은 본래적인 단순 실체인데, 그로부터 창조되고 파생된 모든 모나드는 신의 창조물이다. 그리고 모든 모나드들은 매순간 신성의 지속적인 섬광을 통해서 태어난다. 피조물들의 수용성에 따라 제한된 모나드들은 피조물들에 있어 제한적이다.
48. Il y a en Dieu la Puissance, qui est la source de tout, puis la Connaissance qui contient le detail des idees, et enfin la Volonte, qui fait les changements ou productions selon le principe du meilleur (§ 7, 149-150). Et c’'est ce qui repond a ce qui, dans les monades creees, fait le sujet ou la base, la faculte perceptive et la faculte appetitive. Mais en Dieu ces attributs sont absolument infinis ou parfaits ; et dans les Monades creees ou dans les Entelechies (ou perfectihabies, comme Hermolaus Barbarus traduisait ce mot) ce n’'en sont que des imitations, a mesure qu’'il y a de la perfection (§ 87).
신 안에는 모든 것의 원천인 힘. 관념들의 세부 사항을 포함하는 인식. 최선의 원리에 따라 만드는 의지가 존재한다. 창조된 모나드에 있어서 기체 또는 바탕, 지각적 능력, 욕구 능력에 상응하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나 신에서 이런 술어들은 절대적으로 무한하고 완전하며, 이것들은 창조된 모나드들과 엔텔레케이아(또는 완성태들-바르바로가 이 낱말을 번역한 바에 따르면)에서 완전성에 따른 모사들일 뿐이다.
49. La creature est dite agir au-dehors en tant qu’'elle a de la perfection, et patir d’'une autre, en tant qu’'elle est imparfaite. Ainsi l’'on attribue l’'action a la Monade, en tant qu’'elle a des perceptions distinctes, et la passion en tant
qu’'elle en a de confuses (§ 32, 66, 386).
피조물은 완전성을 갖는 한 밖으로 행동한다고 말해진다. 그리고 그것이 불완전한 한에서 다른 피조물에 의해 겪는다고 말해진다. 모나드가 판명한 지각을 갖는 한에서는 모나드의 작용이라고 결부시킬 수 있고, 모나드가 그것들을 혼란된 지각을 갖는 한 수동이라고 덧붙일 수 있다.
첫댓글 44절: 다시 옮겨봅니다. "왜냐하면 본질들이나 가능성들 속에, 또는 영원진리들 속에 어떤 실재성이 존재한다면, 이러한 실재성은 실존하거나 실제적인 어떤 것에quelque chose, 따라서par consequent 필연적 존재의 실존 속에 토대를 두고etre fonde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필연적 존재에 있어서는[안에서는]dans lequel 본질이 실존을 포함하고 있거나 실제적이기 위해서 가능적인 것으로 충분하다."
45절: "어떤 부정, 어떤 제한"은 순서가 바뀌었고 par consequent 이하가 누락되었습니다. "어떤 제한, 어떤 부정, 따라서 어떤 모순도 포함하지 않는"이 되어야 합니다. 선험적이라고 옮겨진 a priori는 스터디에서 말한대로 칸트적인 용례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만큼 '앞에서부터' 정도로 옮겨지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진리의 실재를 통해 증명했었다"는 nous l'avons에 있어 직접목적어인 le가 누락된 번역입니다. "우리는 또한 그것을[신의 실존을] 영원진리의 실재성에 의해 증명하기도 했다"가 됩니다.
lesquels ne sauraient로 시작하는 마지막 문장에서 주어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앞의 etres contingents를 대리합니다. 그러므로 "우연적 존재자들은 자신의 실존의 근거[이유]를 자기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필연적 존재 안에서만 자신들의leur 최종 또는 충분이유를 가질 수 있다"가 됩니다.
46절: 첫문장에서는 '어떤 사람들과 함께avec quelques-uns'가 누락되어 있으며, 임의적 또는 자의적을 의미하는 arbitraires가 '실제적'이라고 잘못 옮겨진 듯합니다. 그리고 둘째 문장의 주어인 cela를 영원진리들인 '이것들'이라고 보았는데, 오히려 이 지시대명사는 문맥상 앞문장의 술어 전체인 '임의적이고 신의 의지에 의존한다'를 지칭합니다. 그러니까 데카르트는 영원진리들이 신의 의지에 의존하는 임의적인 것이라고 보았지만, '이는', 즉 신의 의지에 의존한다는 그런 임의성은, 라이프니츠가 보기에는 우연적 진리들에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47절: 첫문장의 창조물productions은 문자 그대로는 '산물'이 적당합니다. "그리고 ~ 태어난다"라는 둘째 문장은 pour ainsi dire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 태어난다"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47절 전체가 한 문장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는데, 따라서 bornee 이하는 독립문장 보다는 일종의 분사구문처럼 푸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신으로부터 창조되거나 파생된 모든 모나드들은 산물들이며, 제한되는 것이 본질적인 피조물의 수용성에 의해 한정됨으로써,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신성의 연속적인 섬광을 통해 태어난다."
제한되는 것이 본질적인 피조물의 수용성에 의해 한정됨으로써bornees par la receptivite de la creature, a laquelle il est essentiel d’etre limitee: 이것은 a laquelle 이하 관계절을 제외한다면, "피조물의 수용성에 의해 한정[제한]됨으로써"로 먼저 읽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읽혀진 다음에 a laquelle을 고려해보아야 합니다. laquelle은 여성명사를 대리하므로 바로 앞에 있는 la creature를 대체합니다. 그래서 이 문장에서 관계절 자체를 풀어버리고 다시 문장을 만든다면, il est essentiel d'etre limitee a la creature라는 비인칭구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피조물에게는 제한되는 것이 본질적이다"로 옮겨집니다.
48절: "최선의 원리에 따라 만드는"은 "최선의 원리에 따라 변화들 또는 산물들을 만드는"이 되어야 합니다. c'est ce qui repond a ce qui, dans les monades creees, fait le sujet ou la base, la faculte perceptive et la faculte appetitive에서 dans을 제외하고 본다면 c'est ce qui repond a ce qui fait A, B, C가 됩니다. 뒤로부터 직역해서 본다면 "A, B, C를 이루는fait 것ce qui에 상응하는 것qui repond은 바로 이것c'est ce이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attribut는 이 문맥에서는 '속성'이 나아 보입니다.
49절: agir 동사의 명사형이 action이고 patir 동사의 명사형이 passion입니다. 전자는 작용/능동/활동을 뜻하고 후자는 수동을 뜻합니다. 따라서 '행동한다'와 '겪는다'보다는 '작용한다'와 '작용을 받는다' 정도로 옮기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두번째 문장은 "모나드의 작용이라고 결부시킬 수 있다"가 되었는데, 이것은 주어 없는 문장으로 읽혀집니다. on으로 사용된 비인칭구문을 그렇게 옮기기도 하지만, 보다 분명히 l'on attribue l'action a la monade를 직역하면, "우리는on 모나드에a la monade 능동l'action[이라는 단어]을 덧붙인다/결부시킨다attribue"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