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남교당은 원기 43년에 20평의 와가 1동을 매입하여 교당을 개설한 후 지금까지 입교 교도수 5천명에 27명의 교무님들의 혈성어린 교화, 교육, 자선 사업을 펼친 현장이다.
이런 현장의 역사가 생생하게 수록되어 있는 50년사의 책자를 받고, 내용을 읽어 보면서 교당에 대한 이야기를 몇시간의 대화를 통해 몇장의 글로서 작성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교당 모습)
먼저, 본 교당의 초대교무를 역임하셨던 백타원 이원조 교무님이 교당의 50년사에 기록한 글의 일부를 발췌하여 본다.
어느 해 총부에 갔을 때 정산 종법사님을 뵙고서는 “다른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가져오는데 저는 갖고 올게 없어서 총부에 오기가 그렇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정산 종법사님께서는 혀를 차시면서 “그곳은 인재가 많이 나올 곳이니, 너는 육영사업을 많이 해라. 농촌에서는 육영사업을 많이 하고 도시에서는 장학사업을 많이 하면 된다”고 하셨다.
또 공타원 종사님께서는 선을 나러 오셔서 “꿈에 인근의 모든 소나무가 절을 하더라. 여기가 참 좋은 곳이다”고 말씀을 하고 가셨다.
“스승님들의 말씀 그대로 군남지역에서 60여명에 가까운 전무출신들이 배출이 됐고 전국 각지에서 주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어린이회 출신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전무출신으로 성장해 전국 각지에서 대종사님의 교법을 전하고 있는 것은 큰 보람이다. 또 재가로 남은 청년들도 곳곳에서 교당의 주인으로 활동하는데다 자녀를 전무출신으로 내놓은 사람들도 있다. 이 또한 참으로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변함없는 신심과 공부심으로 정진하는 교도들을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라는 이야기만으로 본 교당을 가장 함축성 있게 설명을 하였다고 본다.


(2층 대법당 및 불전 모습)
교당 설립 초창기인 원기 47년에 16,000명 이었던 군남지역의 인구가 원기 90년도에 3,000명 정도로 감소하고, 65세 이상의 인구가 1,000명 정도로 고령화 되어 가고 있는 이곳에서 현재는 출석교도 120명(전체인구의 4%) 정도가 매주 교당을 찾고 있다고 한다.
원기 79년도에 신축된 새로운 교당은 시골교당의 규모로는 상당한 크기를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벽돌식 2층 건물로서, 1층에는 소법당과 생활관이 마련되어 있고, 2층에는 4열의 기다란 장의자가 배열된 대법당과 입구측에 영모원이 개설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2층 대법당 입구에 있는 영모원 및 영정 장식장)
최근에 개설된 영모원 방에 들어가니 이미 대전교당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개인위패를 모시는 영모전과는 조금 다르게 일측 벽으로 설치된 각각의 유리장내에 영정사진들을 보관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최근에 사람들이 화장을 하고 남겨진 가루를 강물에 뿌리거나 수목장 형태로 나무에 뿌리는 경향이 많아짐에 따라 후손들이 이들을 향후 만나볼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이들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것 조차 없어지는 경향이 생기게 되어 원불교에서 이들을 교당의 영모원에서 모시고자 새롭게 시작을 했다고 한다.
교당에 이와 같은 영모원을 만드는 것은 시골교당 뿐만이 아니라 도심의 교당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 할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을 가진다.
이렇게 한다면 원불교 교당에서 어린 시절부터 사후 열반까지를 책임지는 영생의 서비스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1층 소법당 및 응접실 모습)
또한, 최근에 본 교당은 청운보은동산의 협력으로 교당 인근에 여산노인복지센터를 신축하여 전무출신 부모님과 본 고장 출신으로 고향에서 노후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시설명인 “여산”은 군남지역 출신으로 부지를 희사한 서치선교무의 부친이자 창립유공인인 서청일 교도의 법호를 나타낸다고 한다.
본 복지센터는 다른 복지시설과는 달리 국가의 지원 없이 자력으로 설립 한 것이다.
2인 1실의 숙소 10동으로 지어진 복지센터에는 아직 입주자가 부족한 상태지만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4천여평의 땅을 임대받아 본 지역의 특산물인 고사리와 모시잎을 교무님들이 직접 재배를 하고 있다고 하니 우리 교법인 영육쌍전의 힘이 아니면 어찌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여산실버복지센터 모습)
교당 입구의 게시판에 붙어 있는 상세한 원기 94년도의 공부와 사업 목표, 그리고 1년 동안 발표할 경강내용 및 발표자를 선정하여 공부하는 모습을 볼 때 고령자가 대부분인 시골교당에서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반하여 도시 교당의 우리는 너무 사업에 열중하느라 공부를 소홀하고 있다는 부끄럼이 앞선다.

(교당의 공부 및 사업 목표 계획서)

(교당의 비전 목표)
아울러, 원기 100년에 출석교도수 500명, 그리고 전무출신 30명을 배출하고, 지역내의 통합복지와 종교문화의 중심이 되어 마음공부의 요람을 만들고, 본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원불교 최초의 대안학교인 성지송학중학교를 세계적인 학교로 만들기 위한 후원을 실시한다는 비전을 수립하여 이에 매진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도시 교당의 일원으로서 더욱 더 분발하여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대도시의 교당에서 더욱 커다란 교화 대불공을 이루어야 하는 사명감을 느끼면서 활발한 교화를 실시하고 있는 활불의 도량터인 군남교당의 답사를 마쳤다.
방문일자 : 2009년 5월 9일
작성일자 : 2009년 5월 13일
교당주소 :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 포천리 321 (전화 : 061-352-5075)
대담 : 김연희 교무
첫댓글 바쁘신 시간 내어 몸소 자동차를 가져오셔서 군남교당과 군서교당을 답사할수 있게 하여주신 김연희교무님 감사합니다 오고 가는 도중에 해주신 말씀도 재미있었구요~ 나중에 또 만나 뵙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