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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 퍼스트 리폼드 -
First Reformed >
-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영혼의
오딧세이 -
" 주님 십자가에 흘린 보혈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
뉴욕 스노우 브리지에 위치한
'퍼스트 리폼드' 교회...
1767년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세운,
이름 그대로 '첫번째 개혁'의 이 교회는
영적 길잡이 소명을 잃은 채,
간혹 들르는 순례자들에게 기념품이나
팔면서 명맥을 유지하는 역사 유적지로
자리할 뿐이지요.
교회를 구경하러 온 관광객 중 한 남자가
목사에게 생뚱맞게 팁을 건넬 정도입니다.
성가대는 물론 없고 유서 깊은 오르간도
고장으로 소리를 낸지 오래이지요.
신도들도 잘 찾지 않는, 이 교회의
담당 목사 에른스트 톨러
(에단 호크 분)는 매일 술을 마시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입니다.
설교하면서 간혹 기침을 해도 술로
일을 망치는 일은 없지만 말이지요.
씨리얼에 위스키를 타서 먹을 정도로
알코올 이외 식사에는 무심하고 전기를
쓰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목사관의 가구라고는 달랑 책상과
의자, 침대 하나뿐이지요.
바로 그곳에서 가혹할 정도로 고립되고
금욕적인 칩거의 목회 생활을 하며,
매번 새벽마다 흐느끼며 깨어나는 톨러...
군목 집안의 전통대로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에
참전시켰던 아들이 전사하자 그의 가정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죄의식으로 그는
사실상 수형자와 다름없는 생활을 자처하며
참회를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게지요.
진정한 종교적 믿음에 대해 고민은 하고
있지만, 반년 전 진단받은, 아마도 암으로
보이는 중병과 싸울 의지가 톨러에겐 없어
보입니다.
그토록 몸이 좋지 않은데도 검사를 제대로
받지 않는 이유는 본인의 병마저도 기꺼이 벌로
받아들이며 그냥 살고 싶지 않은 것 때문일 터,
대신 성찰과 기도만으로 담을 수 없는 자신의
일상과 그 소회를 일기를 통해 털어놓고자
마음 먹지요.
일기를 딱 1년만 쓰고 파기하기로 작정한
그는 솔직한 자신을 '지우거나, 지운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고치고 뜯어낸 기록이 그대로 남도록
컴퓨터가 아닌 노트에 펜으로 적어 나가는,
철저한 결벽성을 추구하지요.
'나 자신에 대하여 쓸 때는 무자비해야 한다'고
일기장을 채워가는 톨러는 지적이고도
진솔하지만 신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자신의 고뇌와 갈등을 토로합니다.
" 주님도 사랑받는 것에 신경쓰셨을까?
나는 그런 일에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
그는 이 일기를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이 아닌 ,
분노의 마음으로 행하는, 곧 '응답받지 못할 기도'
라고 여깁니다만...
그러던 어느 날,
임신 5개월의 신도인 메리
(아만다 사이프리드 분)가 찾아와
그녀 남편이자 자살폭탄테러를 계획하던 마이클
(필립 에팅거 분)을 만나달라고 간청하면서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 그이가 잘못될까봐요! "
마이클은 급진적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던 중
캐나다에서 옥살이를 하다 석방되어 최근 집에
돌아왔으나 지구 환경의 암울한 미래로 인해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지요.
마이클은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망가지고
오염된, 절망으로 가득찬 세계에 자식을 태어나게
하고 싶지 않은 이유에 대해 나름 합리적 근거를
조목조목 들이댑니다.
" 태어날 아이가 제 나이(33세)가 될 때면
2050년인데 그 때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세상은 너무 급속히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앞지르죠.
이미 생태계 3분의 1이 파괴되었습니다.
지구 기후변화로 전 세계에서 엄청난 난민이
발생하고, 전염병이 창궐하며, 날씨는 급변하고
인간 생존이 어려울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실까요?
저희가 세상에 저지른 일을요..."
정작 자신도 알콜중독에 빠져 병마와 싸우고
있는 톨러이지만, 그는 '절망'하는 마이클을 향해
'희망'의 편을 들어 최선을 다해 설득합니다.
" 인간은 불행한 재난과 죽음의 어둠 속에서도
암흑에 정면으로 맞부딪히며 생명의 씨앗을 키어
왔어요.
인간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려는 합리적인
의지와 능력이 있습니다.
절망의 답은 용기에요
(Courage is the solution to despair)! . "
마이클은 절규하지요.
" 목사님, 환경운동가들이 세상을 지키려다
현장에서 죽어갑니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요.
작년에만 백여 명이 죽었어요...
기후 대책에 관한 과감한 조치가 없으면
지구환경 문제는 시간 문제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지금은 2017년인데 아무런 조치가
없지요."
'신이 세상에 이런 짓을 한 우리를 과연
용서할까요'라는 마이클의 반문은
톨러의 가슴을 짓눌러 옵니다.
마이클을 괴롭게 하는 건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었지요.
자기 동료들은 정부와 기업의 탄압으로
죽임당했는데도, 세상에 악은 버젓이
활개치는데도, 자기만 구차하게 살아남아
아무 것도 행하지 못하고 있는 죄책감과
무력감말입니다.
그날 밤 톨러는 일기를 통해 고백하지요.
“밤새 천사와 씨름한 야곱이 된 기분이었다.
절망은 커다란 자만심에서 나오며 주님의
더 큰 뜻을 깨닫지 못한 채 자기만의 확신에
이르게 한다. "
그리곤 덧붙입니다.
"큰 희열을 느꼈다(exhilarating).”
톨러 목사와의 상담을 통해 만족할만한 답을
얻지 못한 마이클은 다음 약속을 하고
헤어집니다.
그러나 마이클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지요.
톨러는 그의 유언장대로 장례를 치루기 위해
본당 교회 격으로 그 이름처럼 말그대로 부유한
'풍성한 삶 교회(Abundant Life Church)'의 도움을
받습니다만,
결국 그로 인해 교회 후원기업체 '바크'사의
CEO에게 미움을 받게 됩니다.
지역 신문에 실린, '닐 영'의 풍자적 노래에 실려
행해진 마이클의 저항어린 장례식 행사 기사가
환경오염 주범 기업 입장에선 매우 불편하고도
못마땅하기가 그지 없었던 게지요.
급기야 250주년 봉헌식을 상의하던 바크의
대표이사는 톨러에게 일갈합니다.
" 그러니까 목사님,
마이클은 당신의 상담을 받고난 후
자살한 거 아닙니까?
목사면 목사답게 본인의 앞가림이나
똑바로 하세요! "
그에게 집착하는 풍성한 삶 교회 전도사
에스더(빅토리아 힐 분)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합니다.
“ 목사님은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요! ”
그러나 정작 톨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돌봐야 할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남편과 신념은 공유하되 절망은 나누지
않는다고 당차게 말하는 메리...
톨러는 홀로 남겨진 메리를 돕고 그녀의 남편을
대신하면서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오묘한
행복함과 신의 존재를 흔연스레 느끼게 됩니다.
“신의 축복이다(It’s god-given).”
마치 극 중 인용되는 요한복음 10장 10절,
“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지만,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의 말씀처럼 말이지요.
마이클이 자살한 다음 톨러는 그의 유품을
간직합니다.
미수에 그친 자살테러용 폭탄조끼, 또한
환경 파괴 실태와 지구를 오염시키는 기업에
관한 자료였지요.
마이클을 만난 후, 톨러는 환경문제와
이에 대처하는 교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품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살한 마이클을 통하여 '고통받는,
희생하는 순교자'라는 새로운 길을 발견한 것
이죠.
그토록 외로운 헌신의 길에 온전히
사로잡힌 톨러,
그는 마이클의 아내 메리에게 '자신이 마이클
에게 잘못한 건 아닌지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고
얘기합니다.
톨러는 동료 에스더가 아닌, 사별한 과부 메리를
택함으로써 종교적인 관계망을 극복하지요.
톨러와 메리는 영적인 합일을 이루어내며
급기야 공중으로 부양하기에 이릅니다만...
그것은 메리와 죽은 남편 마이클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치렀던 ‘마술적 미스터리 여행’의
의례였지요.
두 사람이 옷을 입은 채 몸을 맞대고 누워
눈동자 움직임까지 일치시키는 이 의식을 통해
톨러의 정신은 공중 부양하고 주님이 의도한
대로의 아름답고도 때묻지 않은 자연을 봅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출 수 없는 톨러...
그는 구태여 얼굴에 드리워진 메리의 머리칼을
걷고 ‘휘장’ 밖을 바라봅니다만,
인간으로 말미암아 신음하는 지구 오염의 풍경은
톨러에게서 찰나의 행복감을 걷어가며 극단의
결단을 요구하지요.
톨러는 마이클의 삶에 어린 흔적을 따라가던
중,
풍성한 삶 교회가 부도덕한 환경 오염 기업체
바크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후원받으며
그 회사와 유착해 온 사실을 알게 되고,
이 교회의 중대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이 늘 갈망해 왔던 참된 믿음을 실현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풍성한 삶 교회'에 자본이 유입되어
대형화됨에 따라 그 신도수도 수천여 명에
이르게 되면서,
이 교회는 후원 기업을 대변하고 비호하는
또 다른 세속적인 사회를 이루며, 수직적인 계급층
또한 형성되었던 게지요.
연단에 나와 주님 이름으로 축사를 하는
사람은 신앙심의 깊이와 그 진정성과는
별 상관없는 주지사 등 지역 정치인과
후원기업체 바크의 대표 뿐입니다.
풍요로운 삶 교회의 담임 목사 조세프
(세드릭 더 엔터테이너 분)는 말썽의 당사자
톨러에게 사회.정치적인 침묵과 부동을
강권하기에 이르지요.
'회개한다는 명분으로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문제를 일으키기 보다는
니카라과에 선교 활동이라도 가는게
어떻겠냐고'...
톨러 목사는 이토록 모순된 현장의 중심에서
스스로와 교인들에게 끊임없이 다음 질문을
던집니다.
"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실까요?
(Will God forgive us?) "
그는 마이클의 절망에 감염되고,
미수에 그친 그의 테러를 완수하는 행위를
정죄를 향한 그만의 보속(補贖)적 십자가로
선택하죠.
톨러의 자기중심적인 자만심은
그 자신에게 속삭입니다.
용서도 구원도 또한 희망도 없는,
조용히 참회하며 하릴없이
때를 기다리는 수형자의 '삶'이 아니라
악인들과 더불어 장렬하게 산화하는 순교자의
'죽음'이 더 낫지 않겠냐고.
< 퍼스트 리폼드 >에서 세상의 종말은
요한계시록 속의 예언을 넘어, 실제적이면서도
긴박한 위협으로 그려집니다.
"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 (요한계시록 11:18)
하여,
톨러 목사는 퍼스트 리폼드 교회의
250주년 봉헌식에서 '하나님의 무기로 완전
무장하는' 식으로 온 몸을 던지며,
마이클의 자살 폭탄 조끼를 입은 채
환경 파괴업체 대표와 이를 묵인하는 정치인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더러움을 포장하는
위선적인 타락 종교인들을 응징하기로 작정하지요.
그는 먼저 퍼스트 리폼드 교회를 에워싼
가시철조망을 걷어 냅니다.
마치 문턱을 몸소 낮춰 더 많은 죄인들을
받아들일 예비를 하는 교회처럼 말이지요.
그러한 철조망에 걸려 사망한 토끼들은
더 이상 없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톨러 목사는 마지막 일기에 고백하지요.
" 모든 보존 행위(환경 보호)는 창조 행위이다.
모든 보존된 것들은 창조를 지속한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에 참여하는
방법이다. "
" 주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더러운 죄 희게하는 능력을 그대는 참
의지하는가? "라며 불리워지는 극 중 찬송가로
드러나 듯,
톨러의 계획은 주님의 보혈로 오염된 세상을
정죄(淨罪)한다는 희생적 명분으로 맞춰집니다.
" 우리는 사람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
하지만,
절대 오지 말라 신신당부했던 메리가 만삭의
몸으로 봉헌식장에 등장함에 따라 폭력의
방향성은 결국 바뀌고 말지요.
처절한 울부짖음의 고민 끝에 자살폭탄 조끼를
벗어던진 톨러,
그는 대신, 자신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줄
가시 철망(뜯어냈던 교회의 철조망)을 온 몸에
가시면류관 마냥 두른 채, 붉은 피가 선연하게
배어 나오는 백색의 수단(soutane)을 사제복 안에
걸치지요.
그리고 술잔에 위스키가 아닌,
배관 세제인 극약을 따릅니다.
그러나 분명 열쇠도 갖고 있지 않은 메리가
굳게 잠긴 문을 열고 홀연히 나타나지요.
'죽음의 잔'을 거두어 줄 천사가 나타난 걸까요...
순간 검은(절망의) 색 사제복의 톨러는 잔을
떨어뜨리고 , 흰(희망의) 색 옷의 메리와 격정적인
포옹과 키스를 나누게 됩니다.
껴안음이 깊어질 수록 쇠철망의 가시도 더욱
참혹한 고통으로 박혀올 터,
지금까지 미세한 움직임조차 조심스레 삼가던
수동적 카메라는 이 두 사람의 주변을 역동적으로
격렬하게 휘감으며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같은 시각 예배당에선 찬송가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가 그 은유적 울림으로 영화를 감싸 안지요.
그렇게,
< 퍼스트 리폼드 >의 마지막 숏은
출구가 없는 암흑의 절망을 뚫고 비쳐오는,
한줄기 빛 같은 구원의 여지를 드리웁니다.
하여,
화면은 처절하면서도 뜨겁기 그지없는
포옹과 음악을 갑작스레 중단시키며
강림하는 암흑으로 변용된('reformed') 채,
그 '이후'를 결코 떠올릴 수 없는 마침표로
울려오지요.
< 택시 드라이버 > 의 각본가였던
폴 슈레이더 감독은 배우들의 열연을 고스란히
담기 위해 고전적인 4대 3의 좁다란 화면 비율을
택함으로서,
더 이상 종교가 구원이 되지 못하는 동시대의
갑갑한 상황에 상응하는 동시에,
화면 속 인물을 더 직시하며
영화 < 퍼스트 리폼드 >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만으론 온전히 들여다 보지
못하는 번민과 결단 속의
'희망과 절망', '사랑과 증오' , '삶과 죽음' ,
그리고 '이상 속에 사는 목사와 너무도 현실에
적응한 목사' 에 이르기까지 ...
이토록 묵직한 메시지들은 관객들이 수용하기엔
자못 산만하고도 버겁게 스며오지요.
그럼에도,
이 시대의 '택시 드라이버'로 비춰지는
톨러 목사역의 에단 호크,
그는 설명 못할 개인의 역사를 감춘 채 종교에 귀의한,
그리하여 몹시 차분하고 과묵한 듯 하면서도
내면으로는 번뇌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물의 요동치는 심리를 넋을 빼놓는 도발적인
예리함으로 그려내며,
자칫 지나치게 풀어질 수 있었던 과잉 의욕의
결점을 오롯이 커버해 내고 있습니다.
- 李 忠 植 -
1. 영화 < 퍼스트 리폼드
- First Reformed > 예고편
https://youtu.be/aH0R-oV8yOI
- 수난과 희생, 그리고 부활의 이 계절에,
평범한 일상 속에 깃든 영원한 것에 대한
감각적 통찰...
미국 시골 교회의 한 목사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뒤흔들만한 어느 사건과 맞닥뜨리면서
겪는 번민의 격랑을 담아낸 작품
< 퍼스트 리폼드 - First Reformed >.
영화는 믿음과 구원을 향한 출구 앞에서
무연스레 정지해 있던 톨러 목사의 일기장에
채워지는 갖가지 상념들을 빼곡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폴 슈레이더 감독은 배경으로서나 인물로나
종교적 요소를 많이 함유하고 있는 듯 하면서도,
단지 특정 종교만을 넘어 어느 누구나의
삶에까지 무거운 파장을 남기기 충분한
메시지를 진중하게 던져주고 있지요.
자신의 죄에 가혹했고 그래서 고립을 택했던
강직한 목사가 그 고립됨과 가혹함으로 인해
또 다른 극단적 선택의 길로 이끌리게 되는
아이러니...
하지만 미묘하고도 모호한 시선으로 열려 있는
결말은,
톨러 목사 내면에 자리했던 '영광의 자살',
곧 스스로 고통받음으로써 구원을 얻어낼 수
있다는 자멸적 욕망이
'엄마가 되고 싶다는 메리'의 아가페적 사랑으로
치환되는 이미지로 오롯이 변주되지요.
그것을 헤아리고 생각하기란 당연 쉽지 않지만,
맞닥뜨릴 때의 그 대담하고도 충격적인 울림만은
가히 잊기 힘든 화두로 부딪혀 옵니다.
2.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새찬송가 259장)
https://youtu.be/zE1YZqyQ-rE
3.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새 찬송가 405장)
- 손영진 노래
https://youtu.be/uwNNSW4OI3M